[쟁점분석 | 복지] 인터뷰 | 田炳憲 민주당 정책위의장 : 월간조선

“대통령의 성장과 효율 위주의 정책에 국민들은 지쳐 있습니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고요. 국민 전체를 보듬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 때입니다.”

전병헌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복지이슈와 관련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해 6월 야당 정책위의장직을 맡은 그는 8개월여에 걸쳐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제안해 왔고, 여당과의 정책대결에서 성공적으로 이슈를 선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민주당이 ‘3+1(무상의료/무상보육/무상급식+반값등록금) 보편적 복지’를 내놓았는데, 이는 민주당 복지정책의 일부일 뿐이며 조만간 주거·일자리복지정책을 마련해 ‘3(무상의료/무상보육/무상급식)+1(반값등록금)+2(주거지원/일자리지원)’ 복지제도를 만들겠다고 전했다.

전 의장의 설명이다. “사실 주거와 일자리 복지가 복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세난민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주거문제가 심각한데,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까요. 보육과 의료 등 기초생활을 보장한 다음 일자리와 주거문제도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봅니다.”

복지는 사회적 再생산의 수단

그는 기존 복지의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처럼 예산 마련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복지라 생각하면 사실 답이 안 나옵니다. 없던 예산을 끌어모아서 집어넣고, 또 다음 해에 또 끌어모아서 집어넣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죠. 복지 예산을 ‘나눠주는’, 일회성 소모예산이라고 생각하면 복지 확대는 불가능해요. 한나라당은 아직 이런 옛날식 복지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식을 완전히 전환하면 답이 나옵니다. 정부가 복지정책을 통해 교육·의료·보육·주거를 지원한다면 가구당 가용소득이 늘어나겠지요. 그러면 소비가 늘어나고 내수경기가 활성화되고 임금도 높아지고 경제가 선순환되는 겁니다. 정부는 복지 투자를 생산유발 비용이라고 보면 됩니다. 또 복지가 활성화되면 범죄율이 줄어들고 출산율은 늘어나는 등 미래지향적인 효과는 확실합니다.”

전 의장은 “현재 성장과 효율성 위주의 정부여당 정책에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고, 그렇다고 성장이나 고용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국민의 고충은 더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산편성의 우선순위만 바뀌어도 예산에 여유가 생깁니다. 여당은 기존의 재정구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복지의 재정문제를 이야기하는데요. 4대강 등 개발예산만 줄여도 증세 없이 보편적 복지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당이 벤치마킹하려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복지정책도 언급했다. 룰라 대통령은 ‘왜 부자를 돕는 돈은 투자이고 서민을 돕는 돈은 비용이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는데, 이처럼 강력한 복지정책을 펴서 복지 대상을 중산층까지 확대했기 때문에 재집권이 가능했다는 것이 전 의장의 설명이다.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전 의장은 “지금은 4대강이나 SOC (사회간접자본) 개발보다는 사람에 투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경기활성화 등을 위해 SOC 및 개발산업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면 중도를 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국 초등학교 인원감축을 목표로 학교환경개선사업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한 반 인원이 60여 명이었는데, 한 반 인원을 30명대로 줄이고자 교사(校舍)를 리모델링하고 교사(敎師)를 충원하는, 개발과 인적투자를 함께하는 사업이었죠. 당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는 엄청나게 반발했습니다.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국정상황실을 통해 강하게 밀어붙였고, 현재 초등학교 한 반 인원은 35명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복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예산낭비라는 비난도 있겠지만, 이렇게 미리 제도를 마련하지 않으면 후대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부고속도로도 처음 만들 때 찬성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하지만 그때 만들지 않았으면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가능했을까요? 경부고속도로 건설당시가 우리 경제 성장의 시작점이라 본다면, 지금이 우리 복지의 시작점이라 보면 됩니다.”

그는 ‘무상복지’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후 여당과 보수파의 공격을 거세게 받고 있기도 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시행하는 복지가 공짜·무상인가”라는 지적에 그는 “무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내부적 논의도 해봤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장경제에서 국가가 국민 세금을 재원으로 국민에게 공공재 또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무상서비스라고 표현한 겁니다. 초등학교 등록금이나 국방·경찰서비스, 도로·항만 등의 서비스를 생각해 보세요. 국민들은 이를 ‘무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급식과 의료, 보육도 이 같은 공공재와 같은 차원에서 ‘무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겁니다. 특히 의료서비스의 90%를 국가가 부담하는 것은 사실상 무상의료라 보면 됩니다.”

“아직 국민소득이 선진복지국가 수준에 못 미치는 만큼 적극적인 복지정책에 나서기엔 이른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이 보편적 복지정책을 시작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선진국 복지병’과는 형편 달라

“선진복지국가들도 대부분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에서 보편적 복지정책을 시작했어요.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3만~4만 달러가 넘어갈 때 복지시스템이 정착될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지금 시작해야 계층 간 갈등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OECD 국가들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을 당시 전체예산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적게는 34.7%(2006년 이스라엘)에서 55.7% (2003년 스페인) 수준이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처음 2만 달러를 달성한 2007년 26.3%에 불과했으며, 2만 달러 수준인 2011년에도 28%에 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선진국 복지병 우려’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복지국가에서 복지병 때문에 성장속도가 줄어들고 근로의욕이 감퇴한다는 데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복지정책 외에 다른 이유가 더 많다고 봅니다. 또 우리는 복지후발국가로서 선진국의 복지정책을 따라가자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에서 나타난 부작용과 소모비용을 교훈·참고 삼아 창의적인 복지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 위원장의 설명이다. “일부 언론이 일본이 지나친 복지비용 때문에 위기에 빠졌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과도한 규제완화와 선심성 감세 등으로 총체적 위기에 빠진 것이죠. 또 일본은 OECD 국가 중 복지예산 비중이 매우 낮은 편입니다. 일본은 취약한 복지시스템 때문에 위기가 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전 위원장은 “최근 복지논쟁에서 의견이 통하는 정당이나 대권주자가 있느냐”는 질문에 “여권에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유일하게 새로운 복지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완전히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과 국민이 복지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원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논의가 원론 수준에 머물 뿐 구체적인 대안이나 재원 등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아이만 낳으면 국가가 키워주고 대학 보내주겠다’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야당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 중 다른 건 몰라도 무상보육은 지도자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대학등록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야당의 안에 반박하기만 하는 집권당을 뭐라고 평가해야 할까요.”

부유층도 보편적 복지 대상이 될 수 있다

여당과 논쟁 중인 ‘부유층까지 포함한 보편적 복지’에 대해 전 의장은 여당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

“부유층이 무상급식 혜택을 받는다면 그것이 과연 불공평한 것일까요? 부유층은 전 계층에 똑같이 제공되는 무상급식의 혜택 범위에서 이미 벗어나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예를 들면 별도의 비용을 내는 사립학교 등으로요. 그렇지 않더라도 부유층은 많은 세금을 내고 급식을 받고, 빈곤층은 적은 세금으로 급식을 받게 되는 것이 불공평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세형평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복지를 통해 부의 분배가 이뤄지는 겁니다. 복지의 대상을 골라내는 일이야말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고 각종 비리가 끼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도 많은 재산을 갖고도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예산을 교묘하게 받아먹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야말로 불공평이죠.”

그는 “국가로부터 존중받아야 할 국민이 복지를 제공받기 위해 스스로 가난을 증명하거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면 아직 후진국 수준의 ‘시혜적 복지’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보편적 복지가 실현되면 부유층 지원과 시민들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새는’ 예산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전 의장은 “복지와 투자를 얘기하면서 과거 관행과 미래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不成說)”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새는 예산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정책도 새나가는 예산을 100% 막을 수는 없어요. 또 공짜라고 병원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의료쇼핑’ 같은 현상을 막기 위해 포괄수가제와 주치의제도 등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전 위원장은 “보편적 복지가 아닌 선택적 복지를 한다면 그 ‘선택’에 얼마나 더 큰 비용이 들어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생겨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얼마나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가 문제죠. 새는 예산 운운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얘깁니다.”

복지의 재원에 대해 질문했다. 전 의장은 “민주당이 전문가 용역을 통해 추산한 3+1 복지 예산이 16조4000억원 정도이고, 4대강 사업 같은 선심성·낭비성 예산을 줄이고 현행 세제만 정리해도 43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며 “재원이 부족해서 복지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답했다.

“야당이다 보니 책임감 없이 선정적인 주제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야당 정책의 본질은 현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논란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총선과 대선이 1년 넘게 남았는데 지금 굳이 선정적인 이슈를 제기할 이유가 없겠죠. 또 여당으로서 무책임하게 선심성 정책을 실시하고 세금을 낭비한다면 포퓰리즘이라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차기 정권에서 실시할 수 있는 복지정책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복지는 우리 사회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고 담론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문제 삼을 겁니다. 복지는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안 하면 큰일 나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논란을 위한 논란을 제기하면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복지문제는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