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분석] ‘겨울 불청객’ 高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 월간조선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Avian influenza virus)는 오리 및 닭을 포함하는 다양한 종류의 가금류(家禽類)와 기러기, 청둥오리와 같은 야생조류에서 감염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자연숙주는 기러기목(Anseriformes) 및 도요목(Charadriiformes)과 같은 야생 물새류로 알려져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표면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바이러스의 종류를 구분하게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야생조류에 대한 인플루엔자 감염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H형 16종 및 N형 9종 등 모든 종류의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야생조류를 통해 전파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 중 청둥오리와 같은 야생 오리류에서 가장 다양한 혈청형의 바이러스가 분리 보고되고 있다.

현재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야생오리를 포함하는 각종 물새류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주요 보유숙주로, 먼 거리를 이동하며 바이러스 전파의 근원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야생오리는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집단 사육되고 있는 닭, 칠면조, 오리 등의 사육 가금류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1차적인 감염원으로 지목받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의 전파 경로

가금 농장에 전파된 조류 인플루엔자는 급성으로 전염되며, 가금류에 감염되면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난다. 피해 정도는 바이러스의 병원성에 따라 저(底)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LPAI)와 고(高)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PAI)로 구분된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닭과 칠면조는 100%에 가까운 폐사율을 보이고, 자연 보유숙주인 오리의 경우 임상 증상이 닭에 비해 쉽게 발현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염되어도 증상이 미약한 오리의 경우 바이러스를 장기간 배출하는 특징을 보여 육안으로 감염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조류 인플루엔자 전파에 매우 중요한 존재로 생각되고 있다.

H5형과 H7형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국제수역사무국(OIE) 및 국내에서 가축전염병 중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으며,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시 해당국 방역기관 및 OIE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발생국은 전파 방지를 위해 해외로 닭과 오리 등 양계산물을 수출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양계산업에 경제적 손실을 줄 수 있다.

한국은 지난 2003년과 2006년, 2008년에 각각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 당시 가금 농가와 국가가 입은 손실이 5000억원이다. 2008년에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의 경우 기존과 달리 육용오리에서 다수 발생했다. 2003년과 2006년에 발생한 바이러스의 특성과 달리 오리에서도 높은 폐사율을 보여 국내에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유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내에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하는 원인과 전파 경로는 이렇다. 우선 철새에 의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국내로 유입된다. 이후 철새 분변에 오염된 사람이나 차량에 의해 바이러스가 농장으로 유입되고, 다시 오염된 차량, 사람, 동물 등에 의해 인근 지역으로 전파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에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특징으로는 생가금유통시장(Live bird market)을 통해 전파된 후 중간상인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시 서울의 한 구청은 꿩 등 관상용 조류를 구입해 조류사육장에서 키우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해 모두 살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방역지대인 인근 대학 호수의 오리를 포획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체 감염과 무관

올해 국내에서 발생한 4차례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모두 혈청형이 H5N1으로 확인됐다. 그 때문에 이 바이러스가 인체에 전염될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사망한 사례도 있다.

1997년 홍콩에서 세계 최초로 조류 유래 혈청형 H5N1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에 감염돼 6명이 사망했다. 또 2003년 이후 동남아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500건이 넘는 인체 감염 사례가 보고되는 등 60%의 매우 치명적인 사망률을 보였다.

올해를 포함해 국내에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의 경우 혈청형은 H5N1이나, 분리 바이러스에 대한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실시한 결과 국내 분리주는 모두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사람을 사망하게 한 바이러스와는 다른 계통의 바이러스로 확인되었다. 인체 감염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유라시아 지역의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시기는 철새의 이동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철새로부터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포함한 모든 아형의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분리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파에 철새는 주요 전염원으로 의심받고 있다.

2003년과 2006년에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전염 시기는 겨울철새가 중국, 몽골 및 시베리아 지역에서 5~9월경 번식 후 9~11월 남쪽으로 이동하여 국내 주요 철새도래지에서 월동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몽골 등 인접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지역에서 철새류에 인공위성수신장치(GPS)를 부착하고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결과, 국내 발생 지역을 경유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에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철새류의 이동에 따라 유입된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이다.

국내에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것은 올해까지 모두 4차례다. 이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짧은 기간을 두고 인접국인 일본에서도 같은 종류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폐사한 철새에서 검출되어 철새에 의한 전파를 증명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로 이동한 겨울철새로부터 지속적으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있다. 또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의 발생이 빈번한 몽골과 중국의 인접국인 점 등 고병원성 인플루엔자의 재발뿐만 아니라 인체 감염이 가능한 변이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 철새 도래지에서 월동 중인 기러기목 겨울철새.

가금류의 방목이 문제 유발

반면, 미국과 멕시코 등 북미 대륙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상황은 국내 상황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198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 등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의 경우 그 지역에 상재(常在)하고 있던 H5N2형 저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가금류에서 순환하는 도중 고병원성으로 변이·진화하여 발생한 케이스다. 이는 2003년 이후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철새에 의한 바이러스 이동과 같은 동아시아 지역의 발생 패턴과는 다르다.

21세기 이후 H5N1형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북미 대륙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고빈도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발생 패턴은 철새의 이동과 더불어 아시아의 식문화와 연결지어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오리를 집단 사육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대부분 오리를 농경지 주변 하천에 방목하여 기르는 일이 없지만,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매우 흔하게 이루어지는 사육방식이다. 사육오리가 야생오리류와 함께 먹이 활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관찰돼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이 경우 야생오리와 사육오리 사이에 바이러스 교환이 일어나고, 야생오리는 다시 계절에 따라 주변국가로 이동하며 바이러스를 전파하게 된다.

한국의 조류 인플루엔자 진단 기술은 동남아 국가나 중국과 달리 국제기구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국제수준에 도달해 있다. 방역당국에 대한 중앙정부의 집중적인 재정적 지원 덕분에 방역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공항·항만 등에서 인적·물적 이동은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국경 없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철새에 의한 바이러스 전파는 방역 선진국인 한국과 일본도 막기가 어렵다. 미국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이후 아시아 지역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이 늘어나면서, 아시아 철새와 미국의 철새가 만나는 장소인 알래스카 지역에 대한 경계를 매우 강화하고 있다. 현재까지 저병원성 바이러스이지만 알래스카에서 두 대륙의 바이러스의 교환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이 때문에 두 대륙은 상대 대륙에서 유입되는 바이러스에 대해 실시간으로 모니터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바이러스 연구 위한 지원책 늘려야

2003년 발생 이후 국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방역 정책은 강제 살처분과 보상비 지급 정책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이러한 살처분 시스템은 신속한 진단, 발생지역과 감염의심 지역 설정 및 이동 제한, 감염되었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모든 가금류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과 매몰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이러한 예방적 살처분 시스템은 국가적으로 매우 큰 비용이 발생하므로 미국, 호주, 일본 등 선진국에서 주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과거 3차례의 국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모두 상재화되지 않고 조기 종식되었다. 그것은 최초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시점부터 정부가 신속하고도 일관된 강제 살처분과 보상 지급 정책을 수행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까지 발생하여 국가적 재난 상황에 처해 있다. 쌀쌀한 날씨에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불청객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한 종합 방제 전략 수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할 수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하였다.

따라서 거시적 안목에서 국가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방제를 위해 방역예산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연구를 위한 R&D 분야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그것에는 첨단 기법을 이용한 조기 진단 방법 개발, 조류 인플루엔자 예찰 개선법 개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국가차단 방역 시스템 연구, 효율이 높은 선택적 살처분 정책개발, 그리고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백신 개발 등이 조화된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