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매매 중 소송사건 벌어져 결국 사기미수죄로 7개월 옥살이
⊙ 대법원 확정판결 후 위증 밝혀져 再審 결과 ‘무죄’…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아
⊙ 誤審 논란 가운데 再審 재판 기록 중 일부 송두리째 사라져
⊙ 11년 法廷 공방에 재산 탕진, 일자리 잃고 이혼까지 당해
⊙ 대법원 확정판결 후 위증 밝혀져 再審 결과 ‘무죄’…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아
⊙ 誤審 논란 가운데 再審 재판 기록 중 일부 송두리째 사라져
⊙ 11년 法廷 공방에 재산 탕진, 일자리 잃고 이혼까지 당해
1997년 2월까지, 이장호(李長鎬ㆍ50)씨의 삶은 남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대전에서 주산·부기(簿記) 학원을 운영했고,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둔 한 집안의 평범한 가장(家長)이었다. 25세 때부터 부기 강사를 시작해 1980년대엔 서울에서 학원을 열어 남부럽지 않게 돈도 벌어 봤다.
1990년대 중반 사회 곳곳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주산, 부기, 타자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이씨는 1996년 7월 주산학원 바로 옆 건물(대전시 중구 선화2동 소재)을 임차해 컴퓨터 학원을 차렸다. 하지만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그는 학원을 서모씨에게 팔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씨는 이 학원매매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13년이 지난 현재, 그는 전(全) 재산을 날린 상태다. 아내와는 이혼 후 연락이 끊겼고, 두 아들과 단칸방을 전전하고 있다. 생계는 주로 막노동과 대리운전 기사를 하면서 유지한다. 총 12차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재산을 탕진해 빚더미에 앉았고, 소송 중 징역을 선고받아 7개월 동안 옥살이도 했다.
“이 모든 게 돈 5000만원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5000만원이 아니라 5억원이었다 해도 무조건 포기했을 겁니다. 돈이 문제겠습니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저는 총칼이 사람 죽이는 줄은 알았지만, 법이 이렇게 사람을 죽일 줄은 몰랐습니다.”
기자를 만난 이씨는 인터뷰 내내 연방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자세는 흐트러졌다. 때론 격앙된 표정으로 억울함을 호소했고, 가족 이야기가 나올 땐 눈물을 글썽였다. 무슨 사연이 나름 ‘잘나갔다던’ 학원 원장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그의 증언과 법정 기록을 통해 사건을 재(再)구성해 봤다.
채권인가 잔금인가 다투다 法廷구속
이씨가 컴퓨터 학원을 서씨에게 판 것은 1997년 2월경이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매매대금은 1억2500만원으로 건물임대 보증금, 수강생 권리금, 건물증축비용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2월 18일에 보증금을 포함한 기본 매매대금 7500만원으로 계약서를 썼고, 서씨는 이 중 계약금 500만원을 이씨에게 전달했다.
계약 과정에서 서씨는 이씨에게 “학원 개조 사업에 자금이 필요하니 2000만원을 빌려달라”고 요청했고, 당시 자금에 여유가 있었던 이씨는 계약 이틀 후인 20일에 2000만원을 현금으로 빌려줬다. 그리고 같은 날 수강생 권리금 1800만원과 증축비용 1200만원을 포함해 5000만원에 대한 차용증을 쓴 후 법무법인에서 채권 관계를 분명히 하는 공정증서(公正證書)를 받았다.
서씨는 첫 계약서에 적힌 7000만원 잔금을 같은 해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갚았다. 하지만 나머지 5000만원을 갚지 않자 이씨는 수차례 서씨를 찾아가 돈을 갚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서씨는 “학원이 잘되지 않아 폐원(閉院)까지 해서 자금이 없으니 차후에 갚겠다”며 미뤘다고 한다. 이씨는 서씨를 10여 차례 찾아가는 한편, 내용증명을 두 차례 보냈다.
하지만 학원을 인수한 서씨의 주장은 다르다. “애초에 추가로 빌린 돈은 없었고, 학원매매 대금은 1억500만원이 아닌 7500만원이며, 잔금을 모두 치렀다”는 입장이다. 학원 개조 사업 자금 2000만원을 빌리거나 수강생 권리금을 주기로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학원 매매계약 인증서(7500만원)와 채권채무계약서(5000만원)가 서로 다른 건으로 총 1억500만원을 받아야 했다고 주장했고, 서씨는 두 서류는 같은 건으로 7500만원 중 2500만원을 변제하고 남은 잔금이 5000만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 500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공정증서를 근거로 1999년 4월 채권압류 및 전부(轉付)명령에 따른 강제집행을 법원에 신청했고, 서씨의 재산은 압류됐다. 그러자 서씨는 잔금을 모두 갚았음에도 이씨가 공정증서를 회수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돈을 또 받으려 한다며 이씨를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또 이씨의 전부명령 신청에 대한 즉시항고, 본안(本案)에 대한 청구이의 소송 등 민사소송도 추가했다.
3개의 소송 중 즉시항고는 “전부명령을 취소할 만한 사유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하지만 청구이의 사건 재판부는 서씨의 손을 들어줬고, 사기혐의에 대해서도 1심 재판부는 건물주 문모씨와 증축업자 안모씨 등의 진술을 근거로 이씨에게 징역 1년의 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곧바로 항소를 했지만, 두 사건 모두 2심에서 패소했고 대법원 상고는 기각됐다. 그리고 2심 판결 직후 이씨는 사기미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씨의 설명이다.
옥살이 후 건물주의 위증 밝혀져 再審 결정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변호사들도 무죄 확률이 크다고 했고, 제가 구속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평생 법과 무관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판결 후 곧바로 구속됐으니… 정말 상상도 못할 결과가 나온 것이죠. 그날 아침에도 학원 문 열고, 출근한 강사들에게 잠깐 법원에 다녀오겠다 하고 나왔는데 바로 구속이 돼버렸습니다.”
7개월 옥살이(1개월 감형)를 한 이씨는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대법원에서까지 확정을 받은 이상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가족은 그의 편이었다. 아내는 계속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줬고, 어린 아들들도 ‘전과자’가 돼버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2002년 6월 출소한 그는 대전 중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상복을 입고 “법원에 제출된 서류가 위조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가 말하는 서류는 건물의 증축 사실이 없음을 인증했던 건축물관리대장이다. 건물 증축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판결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서류였다. 1999년 9월 재판 중 서씨가 제출한 건축물관리대장엔 증축 사실이 없는 것으로 기재돼 있다.
하지만 이씨가 5개월 전인 1999년 4월 발급받은 건축물관리대장에는 증축 내용이 기재가 돼 있었다. 그의 시위가 시작되자 대전 지역 언론들이 이 문제를 거론했고, 결국 중구청 서류가 조작된 것으로 판명이 났다. 중구청은 당시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컴퓨터 오류에 따른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2002년 9월 대전지방검찰청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심규철(沈揆喆) 의원은 검찰이 건축물관리대장이 변조된 것을 정확히 밝혀내지 못한 것에 대해 “이해 못할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억울한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소송은 다시 시작됐다. 건축물관리대장 변조(變造)는 입증이 됐고, 대전지방법원은 2003년 6월 건물주인 문씨의 위증 혐의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문씨는 상고했지만, 기각돼 2004년 3월 확정 판결이 났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이씨의 두 재판은 재심(再審) 절차에 들어갔다. 이 중 형사 재판(사기미수)은 2004년 9월 재심이 결정됐고, 1년 반 동안의 재판 끝에 2006년 1월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7년 법정 공방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취재를 했던 기자들로부터 축하 전화가 왔고, 지인들은 “진실은 승리한다. 누명이 풀렸다”며 그를 응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음 날 열린 민사소송(청구이의) 공판에선 재심청구가 기각됐다. 같은 사건에 민사와 형사 사건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이씨는 “민사 재심 과정 중 재판부가 ‘형사사건 결과에 따라 결론을 짓겠다’고 해놓고 전혀 반대되는 판결을 내렸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대법원 파기환송… 다시 ‘유죄’로
“당시 조서 내용을 보면 ‘재판 당시 관련 형사사건의 결과를 보기 위하여. 속행. 추후지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형사사건 결과와 동일한 결과를 내기 위해 재판부가 판결을 미뤘고, 형사사건 바로 다음 날 선고를 내렸죠. 그런데 정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하지만 그때까진 희망이 있었어요. 많은 전문가가 ‘형사사건이 재심 무죄가 나온 이상,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힐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워줬기 때문이었죠.”
재심 형사사건은 검찰이 상고했고, 민사사건은 이씨가 상고했다. 결과는 둘 다 이씨에게 불리한 판결이었다. 무죄 판결 난 형사사건은 대법원에서 다시 파기 환송됐고, 이씨는 다시 ‘전과자’가 됐다. 이씨가 상고한 민사사건도 기각됐다.
특히 대법원은 형사사건에 대해 “신빙성이 있는 피해자(서씨)의 진술을 배척하고 피고인(이씨)의 변소만을 받아들여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재심 재판)은 증거의 증명력을 판단함에 있어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어긋난다”면서 “자유심증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거나 채증법칙을 위배해 사실을 오인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재판부는 끊임없이 제가 2000만원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서씨가 2000만원을 갚으면서 5000만원 차용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차용증을 쓴 날은 분명히 1997년 2월 20일이고, 서씨가 제게 돈을 준 날은 24일입니다. 서씨는 처음엔 20일에 잔금 2000만원을 지급하고 차용증을 썼다고 했죠.”
이씨는 당시 재판 과정에서 이를 반박하기 위해 직접 수표를 입금한 은행에 찾아갔다. 이미 대전지점으로 넘어가서 폐기될 것이란 직원의 설명에 직접 지점까지 찾아갔지만, 답변은 비슷했다. 폐기예정인 수표 뭉치가 지하에 한꺼번에 보관돼 있어 사실상 있어도 찾기가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이씨는 3명의 인부를 동원해 1주일 동안 지점 지하실을 모두 뒤졌다. 그리고 결국 해당 수표를 찾아내 법원에 제출했다. 수표에는 서씨의 동업자인 안모씨가 24일에 인출한 기록이 있었다. 이씨의 설명이다.
“첫 계약과 무관한 별도의 채권이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서씨는 7000만원 중 2000만원 잔금을 그날(20일) 치르고 공증을 받았다고 했는데, 결국 공증이 먼저(20일) 작성된 후 24일에 수표가 발급된 것이 드러났죠. 누가 4일 뒤에 받을 것을 미리 예상해 차용증을 작성합니까.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서씨는 법정 증언을 통해 “이씨가 먼저 공증을 작성하자고 해서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 응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죽기 전까지 진실 밝히겠다” 아들에게 약속
검찰과 서씨의 주장은 이외에도 여러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된다. 검찰은 사건의 원심(原審) 공소기록에서 공정증서를 근거로 “이씨가 잔금을 모두 받았는데 재산상 이득을 취하려 한 혐의가 있다”고 했지만, 그 내용은 공정증서가 아닌 ‘인증서(학원매도계약서)’를 근거로 한 내용이었다. 지방법원과 대법원은 원심에서 오기된 기록을 그대로 적용해 이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검찰은 2005년 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실수로 공소기록이 잘못 기재된 것이나 사소한 것으로 사건의 판결에 영향을 줄 만한 내용은 아니다”라고 했다.
위증교사 혐의도 논란을 빚었다. 건물 증축업자 안씨는 2004년 1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며 서씨와 건물주로부터 위증교사(敎唆)를 받았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담당검사에게 제출했다. 문서 내용 중 일부다.
“학원매수자(서씨)와 건물주(문씨)가 수차례 찾아와 돈은 필요한 대로 줄 테니 유리하게 진술해 달라며 세 차례 50만원을 직접 건넸습니다. 또 건물주는 시내 주유소 두 개를 운영한다며 기름도 넣으라고 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확실하지 않은 허위증언을 해 자수합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재기수사 결론을 통해 “작성자가 진술을 번복해 증거자료로 삼을 수 없고, 돈을 건넨 것도 인정되나 반드시 위증교사에 대한 대가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서씨도 법정 진술을 통해 “증축업자에게 유리한 진술을 부탁하거나 돈을 건넨 사실이 없으며, 따로 만난 사실도 없다”고 증언했다.
2006년 1월 이씨를 무죄 판결한 재심 재판부는 이들 의혹에 대해 상당부분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증축비용이나 수강생 권리금은 매매대금에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씨가 서씨에게 현금으로 빌려준 2000만원을 당시 보관하고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며 ▲대출의 목적인 공사대금은 주로 선불이 아닌 후불로 지급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에서 두 차례 유죄를 받은 이씨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5000만원을 받겠다고 시작된 법정공방은 그의 인생과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자살할 생각으로 건물 옥상에도 수차례 올라갔고, 농약을 구하기 위해 배회하기도 했다. 칼을 목에 대고 한참을 고민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목숨을 끊을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두 아들이 눈에 밟혀서였다.
“아이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아빠가 전과자가 아니라는 것을 죽기 전까지 꼭 밝히겠다고요. 이제 돈은 필요 없어요.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전과자가 아닌 것만 밝혀지면,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당장 죽겠습니다.”
재심 관련 재판 기록 송두리째 사라져
그의 재판 논란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이씨는 “1999년 법원에서 확정한 전부명령 강제집행을 두고 민사재판부가 서씨의 청구이의 소송을 각하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며 대법원에 다시 항고했다. 이씨의 설명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일단 전부명령이 확정될 경우 진위를 따질 필요 없이 청구이의 소송은 바로 기각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이의가 있을 경우엔 집행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거나 민사법원에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야 해요. 그런데 이건 처음부터 해선 안 될 재판을 11년 동안 해 온 셈이 됐습니다.”
이에 대해 대전지방법원은 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씨가 이후 재판 과정에서 전부명령이 확정된 사실에 대해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강제집행 종료 여부를 법원이 직권으로 탐지할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의 설명과 달리, 해당 재판부에는 전부명령 확정과 그 즉시항고에 대한 기각판결문이 제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2007년 10월 대전지방법원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종률(金鍾律) 전 의원은 “법원의 주장과 재판 내용이 서로 다르다”며 “불신과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명확하게 법원의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이씨는 처음부터 다시 소송을 시작했다. 청구이의 소송 자체가 잘못됐다는 근거로 학원매매 당시 서씨의 보증인인 신모씨를 대상으로 전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2008년 9월 이씨의 주장에 대해 “이씨에 대한 유죄판결(사기미수)이 재심을 거쳐 다시 확정됐고, 제3채무자인 신씨를 상대로 전부금 지급을 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행사로 허용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이씨는 이에 불복해 곧바로 항소했다.
문제는 다음 재판 중 벌어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청구이의 재심 재판에 대한 기록을 증거로 제출하라”고 했고, 재산을 탕진한 후 변호사 없이 홀로 소송을 해 온 이씨는 직접 법원에 자료 열람ㆍ복사 신청을 했다. 그리고 이씨는 법원 직원으로부터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처음엔 직원이 며칠 있다가 다시 오라고 하더군요. 얼마 후 다시 갔는데 기록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도 재심 기록이요. 재판기록이 총 6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권에 500쪽쯤 되니 3000쪽 분량이죠. 이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심 기록만 사라진 겁니다. 저에겐 정말 중요한 위증 관련 재판 기록인데, 3권이 사라진 겁니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이 기록문서의 보존기한은 2013년 말까지다. 법원은 직원을 동원해 문서창고 전체를 뒤졌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200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다시 한 번 법원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민주당 이춘석(李春錫) 의원은 “민원인(이씨)이 분실된 자료에 대해 자신의 오심을 밝히는 결정적인 근거라고 주장한다”면서 “법원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하여 사법불신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 이주영(李柱榮) 의원도 “기록이 없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범죄적 사건에 대한 수사 의뢰”를 당부했다.
대전지법 “기록 대부분 복구해 사건 처리에 큰 지장 없었다”
길기봉(吉基鳳) 대전지방법원장은 기록 분실에 대해 “핵심적인 부분(국과수 감정서)을 재발급받아 ‘거의 100%’ 복원했다”고 증언했지만, 이후 “분실기록 중 조서, 증거목록, 피고가 제출한 참고자료는 복구를 못 했다”고 답변 내용을 정정했다.
대전지방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우선 법원에서 기록 관리에 허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당연하며, 판사나 직원들은 늘 이 점에 유념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면서도 “엄청난 분량의 사건기록을 내 사건처럼 하나하나 관리하는 데에는 인력상, 예산상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다음은 법원 측의 공식 답변내용이다.
“당시 사건은 관련 민원인이 오랫동안 재판을 해 오던 것이었고, 재심기록까지 포함하여 이미 12차례에 걸쳐 기록 열람 등사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관련 민원인께서도 이미 많은 분량의 자료를 갖고 계셨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행히 분실 부분은 재심사건으로서 이미 관련 자료가 다른 관련 사건에도 있는 복사물들이 많아 분실기록 대부분을 복구하여 사건처리에는 그다지 지장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이로 인하여 관련 민원인이 큰 불이익을 받았다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록 관리 책임자는 견책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미 지난해 일이긴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법원은 민원인들에게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사건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도록 기록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조만간 도입될 전자소송이 정착되면 해당 당사자는 관련 기록을 언제든지 전자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므로, 향후에는 이번과 같은 일은 없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기, 구속, 위증, 재심, 기록 분실로 이어진 11년 법정 공방에 그의 삶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그를 믿고 따르던 아내는 2002년 남편의 얼굴이 TV에 나오고 난 뒤 마음을 바꿨다. 이씨는 “당시 아내가 초등학교 전교회장이었던 아들의 학교에 갔다가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TV뉴스가 방영됐다”면서 “그 후 집을 자주 비우더니 결국 이혼소장을 내밀었다”며 울먹였다.
“아이들을 봐서라도 그러지 말라며 애원하며 찾으러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학부모회 사람들이 남편 아니냐며 묻는데 어떻게 학교에 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전교회장의 어머니 입장에서요.”
박찬종(朴燦鍾) 전 의원(변호사)은 이씨의 사건에 대해 “법원 재판부가 규모가 작은 사건에 대해서 당사자의 딱하고 어려운 사정을 철저하게 가려줘야 하지만, 규모나 금액이 큰 사건에 비해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국민들이 보고 있다”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작고 억울한 사건에 대해 그만큼 세밀하게 보살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씨는 “더 이상 바랄 것도, 받을 것도 없다”며 “끝까지 아빠를 믿는 아들들에게 범죄자가 아님을 떳떳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서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미 법적으로 다 끝난 사건을 왜 계속 걸고 넘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씨가) 사기꾼이라고 법원에서 판명난 건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권위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신뢰해야 할 원칙이다. 하지만 무작정 법원의 판결을 따르라고 하기엔 그의 인생이 너무나 처량하고 안타깝다.⊙
사진 : 서경리
1990년대 중반 사회 곳곳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주산, 부기, 타자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이씨는 1996년 7월 주산학원 바로 옆 건물(대전시 중구 선화2동 소재)을 임차해 컴퓨터 학원을 차렸다. 하지만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그는 학원을 서모씨에게 팔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씨는 이 학원매매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13년이 지난 현재, 그는 전(全) 재산을 날린 상태다. 아내와는 이혼 후 연락이 끊겼고, 두 아들과 단칸방을 전전하고 있다. 생계는 주로 막노동과 대리운전 기사를 하면서 유지한다. 총 12차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재산을 탕진해 빚더미에 앉았고, 소송 중 징역을 선고받아 7개월 동안 옥살이도 했다.
“이 모든 게 돈 5000만원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5000만원이 아니라 5억원이었다 해도 무조건 포기했을 겁니다. 돈이 문제겠습니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저는 총칼이 사람 죽이는 줄은 알았지만, 법이 이렇게 사람을 죽일 줄은 몰랐습니다.”
기자를 만난 이씨는 인터뷰 내내 연방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자세는 흐트러졌다. 때론 격앙된 표정으로 억울함을 호소했고, 가족 이야기가 나올 땐 눈물을 글썽였다. 무슨 사연이 나름 ‘잘나갔다던’ 학원 원장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그의 증언과 법정 기록을 통해 사건을 재(再)구성해 봤다.
채권인가 잔금인가 다투다 法廷구속
이씨가 컴퓨터 학원을 서씨에게 판 것은 1997년 2월경이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매매대금은 1억2500만원으로 건물임대 보증금, 수강생 권리금, 건물증축비용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2월 18일에 보증금을 포함한 기본 매매대금 7500만원으로 계약서를 썼고, 서씨는 이 중 계약금 500만원을 이씨에게 전달했다.
계약 과정에서 서씨는 이씨에게 “학원 개조 사업에 자금이 필요하니 2000만원을 빌려달라”고 요청했고, 당시 자금에 여유가 있었던 이씨는 계약 이틀 후인 20일에 2000만원을 현금으로 빌려줬다. 그리고 같은 날 수강생 권리금 1800만원과 증축비용 1200만원을 포함해 5000만원에 대한 차용증을 쓴 후 법무법인에서 채권 관계를 분명히 하는 공정증서(公正證書)를 받았다.
서씨는 첫 계약서에 적힌 7000만원 잔금을 같은 해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갚았다. 하지만 나머지 5000만원을 갚지 않자 이씨는 수차례 서씨를 찾아가 돈을 갚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서씨는 “학원이 잘되지 않아 폐원(閉院)까지 해서 자금이 없으니 차후에 갚겠다”며 미뤘다고 한다. 이씨는 서씨를 10여 차례 찾아가는 한편, 내용증명을 두 차례 보냈다.
하지만 학원을 인수한 서씨의 주장은 다르다. “애초에 추가로 빌린 돈은 없었고, 학원매매 대금은 1억500만원이 아닌 7500만원이며, 잔금을 모두 치렀다”는 입장이다. 학원 개조 사업 자금 2000만원을 빌리거나 수강생 권리금을 주기로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학원 매매계약 인증서(7500만원)와 채권채무계약서(5000만원)가 서로 다른 건으로 총 1억500만원을 받아야 했다고 주장했고, 서씨는 두 서류는 같은 건으로 7500만원 중 2500만원을 변제하고 남은 잔금이 5000만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 500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공정증서를 근거로 1999년 4월 채권압류 및 전부(轉付)명령에 따른 강제집행을 법원에 신청했고, 서씨의 재산은 압류됐다. 그러자 서씨는 잔금을 모두 갚았음에도 이씨가 공정증서를 회수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돈을 또 받으려 한다며 이씨를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또 이씨의 전부명령 신청에 대한 즉시항고, 본안(本案)에 대한 청구이의 소송 등 민사소송도 추가했다.
3개의 소송 중 즉시항고는 “전부명령을 취소할 만한 사유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하지만 청구이의 사건 재판부는 서씨의 손을 들어줬고, 사기혐의에 대해서도 1심 재판부는 건물주 문모씨와 증축업자 안모씨 등의 진술을 근거로 이씨에게 징역 1년의 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곧바로 항소를 했지만, 두 사건 모두 2심에서 패소했고 대법원 상고는 기각됐다. 그리고 2심 판결 직후 이씨는 사기미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씨의 설명이다.
옥살이 후 건물주의 위증 밝혀져 再審 결정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변호사들도 무죄 확률이 크다고 했고, 제가 구속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평생 법과 무관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판결 후 곧바로 구속됐으니… 정말 상상도 못할 결과가 나온 것이죠. 그날 아침에도 학원 문 열고, 출근한 강사들에게 잠깐 법원에 다녀오겠다 하고 나왔는데 바로 구속이 돼버렸습니다.”
7개월 옥살이(1개월 감형)를 한 이씨는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대법원에서까지 확정을 받은 이상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가족은 그의 편이었다. 아내는 계속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줬고, 어린 아들들도 ‘전과자’가 돼버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2002년 6월 출소한 그는 대전 중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상복을 입고 “법원에 제출된 서류가 위조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가 말하는 서류는 건물의 증축 사실이 없음을 인증했던 건축물관리대장이다. 건물 증축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판결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서류였다. 1999년 9월 재판 중 서씨가 제출한 건축물관리대장엔 증축 사실이 없는 것으로 기재돼 있다.
하지만 이씨가 5개월 전인 1999년 4월 발급받은 건축물관리대장에는 증축 내용이 기재가 돼 있었다. 그의 시위가 시작되자 대전 지역 언론들이 이 문제를 거론했고, 결국 중구청 서류가 조작된 것으로 판명이 났다. 중구청은 당시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컴퓨터 오류에 따른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2002년 9월 대전지방검찰청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심규철(沈揆喆) 의원은 검찰이 건축물관리대장이 변조된 것을 정확히 밝혀내지 못한 것에 대해 “이해 못할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억울한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소송은 다시 시작됐다. 건축물관리대장 변조(變造)는 입증이 됐고, 대전지방법원은 2003년 6월 건물주인 문씨의 위증 혐의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문씨는 상고했지만, 기각돼 2004년 3월 확정 판결이 났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이씨의 두 재판은 재심(再審) 절차에 들어갔다. 이 중 형사 재판(사기미수)은 2004년 9월 재심이 결정됐고, 1년 반 동안의 재판 끝에 2006년 1월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7년 법정 공방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취재를 했던 기자들로부터 축하 전화가 왔고, 지인들은 “진실은 승리한다. 누명이 풀렸다”며 그를 응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음 날 열린 민사소송(청구이의) 공판에선 재심청구가 기각됐다. 같은 사건에 민사와 형사 사건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이씨는 “민사 재심 과정 중 재판부가 ‘형사사건 결과에 따라 결론을 짓겠다’고 해놓고 전혀 반대되는 판결을 내렸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대법원 파기환송… 다시 ‘유죄’로
“당시 조서 내용을 보면 ‘재판 당시 관련 형사사건의 결과를 보기 위하여. 속행. 추후지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형사사건 결과와 동일한 결과를 내기 위해 재판부가 판결을 미뤘고, 형사사건 바로 다음 날 선고를 내렸죠. 그런데 정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하지만 그때까진 희망이 있었어요. 많은 전문가가 ‘형사사건이 재심 무죄가 나온 이상,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힐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워줬기 때문이었죠.”
재심 형사사건은 검찰이 상고했고, 민사사건은 이씨가 상고했다. 결과는 둘 다 이씨에게 불리한 판결이었다. 무죄 판결 난 형사사건은 대법원에서 다시 파기 환송됐고, 이씨는 다시 ‘전과자’가 됐다. 이씨가 상고한 민사사건도 기각됐다.
특히 대법원은 형사사건에 대해 “신빙성이 있는 피해자(서씨)의 진술을 배척하고 피고인(이씨)의 변소만을 받아들여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재심 재판)은 증거의 증명력을 판단함에 있어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어긋난다”면서 “자유심증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거나 채증법칙을 위배해 사실을 오인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재판부는 끊임없이 제가 2000만원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서씨가 2000만원을 갚으면서 5000만원 차용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차용증을 쓴 날은 분명히 1997년 2월 20일이고, 서씨가 제게 돈을 준 날은 24일입니다. 서씨는 처음엔 20일에 잔금 2000만원을 지급하고 차용증을 썼다고 했죠.”
이씨는 당시 재판 과정에서 이를 반박하기 위해 직접 수표를 입금한 은행에 찾아갔다. 이미 대전지점으로 넘어가서 폐기될 것이란 직원의 설명에 직접 지점까지 찾아갔지만, 답변은 비슷했다. 폐기예정인 수표 뭉치가 지하에 한꺼번에 보관돼 있어 사실상 있어도 찾기가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이씨는 3명의 인부를 동원해 1주일 동안 지점 지하실을 모두 뒤졌다. 그리고 결국 해당 수표를 찾아내 법원에 제출했다. 수표에는 서씨의 동업자인 안모씨가 24일에 인출한 기록이 있었다. 이씨의 설명이다.
“첫 계약과 무관한 별도의 채권이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서씨는 7000만원 중 2000만원 잔금을 그날(20일) 치르고 공증을 받았다고 했는데, 결국 공증이 먼저(20일) 작성된 후 24일에 수표가 발급된 것이 드러났죠. 누가 4일 뒤에 받을 것을 미리 예상해 차용증을 작성합니까.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서씨는 법정 증언을 통해 “이씨가 먼저 공증을 작성하자고 해서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 응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죽기 전까지 진실 밝히겠다” 아들에게 약속
검찰과 서씨의 주장은 이외에도 여러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된다. 검찰은 사건의 원심(原審) 공소기록에서 공정증서를 근거로 “이씨가 잔금을 모두 받았는데 재산상 이득을 취하려 한 혐의가 있다”고 했지만, 그 내용은 공정증서가 아닌 ‘인증서(학원매도계약서)’를 근거로 한 내용이었다. 지방법원과 대법원은 원심에서 오기된 기록을 그대로 적용해 이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검찰은 2005년 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실수로 공소기록이 잘못 기재된 것이나 사소한 것으로 사건의 판결에 영향을 줄 만한 내용은 아니다”라고 했다.
위증교사 혐의도 논란을 빚었다. 건물 증축업자 안씨는 2004년 1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며 서씨와 건물주로부터 위증교사(敎唆)를 받았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담당검사에게 제출했다. 문서 내용 중 일부다.
“학원매수자(서씨)와 건물주(문씨)가 수차례 찾아와 돈은 필요한 대로 줄 테니 유리하게 진술해 달라며 세 차례 50만원을 직접 건넸습니다. 또 건물주는 시내 주유소 두 개를 운영한다며 기름도 넣으라고 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확실하지 않은 허위증언을 해 자수합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재기수사 결론을 통해 “작성자가 진술을 번복해 증거자료로 삼을 수 없고, 돈을 건넨 것도 인정되나 반드시 위증교사에 대한 대가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서씨도 법정 진술을 통해 “증축업자에게 유리한 진술을 부탁하거나 돈을 건넨 사실이 없으며, 따로 만난 사실도 없다”고 증언했다.
2006년 1월 이씨를 무죄 판결한 재심 재판부는 이들 의혹에 대해 상당부분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증축비용이나 수강생 권리금은 매매대금에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씨가 서씨에게 현금으로 빌려준 2000만원을 당시 보관하고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며 ▲대출의 목적인 공사대금은 주로 선불이 아닌 후불로 지급된다는 점 등을 근거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에서 두 차례 유죄를 받은 이씨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5000만원을 받겠다고 시작된 법정공방은 그의 인생과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자살할 생각으로 건물 옥상에도 수차례 올라갔고, 농약을 구하기 위해 배회하기도 했다. 칼을 목에 대고 한참을 고민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목숨을 끊을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두 아들이 눈에 밟혀서였다.
“아이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아빠가 전과자가 아니라는 것을 죽기 전까지 꼭 밝히겠다고요. 이제 돈은 필요 없어요.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전과자가 아닌 것만 밝혀지면,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당장 죽겠습니다.”
재심 관련 재판 기록 송두리째 사라져
그의 재판 논란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이씨는 “1999년 법원에서 확정한 전부명령 강제집행을 두고 민사재판부가 서씨의 청구이의 소송을 각하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며 대법원에 다시 항고했다. 이씨의 설명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일단 전부명령이 확정될 경우 진위를 따질 필요 없이 청구이의 소송은 바로 기각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이의가 있을 경우엔 집행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거나 민사법원에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야 해요. 그런데 이건 처음부터 해선 안 될 재판을 11년 동안 해 온 셈이 됐습니다.”
이에 대해 대전지방법원은 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씨가 이후 재판 과정에서 전부명령이 확정된 사실에 대해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강제집행 종료 여부를 법원이 직권으로 탐지할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의 설명과 달리, 해당 재판부에는 전부명령 확정과 그 즉시항고에 대한 기각판결문이 제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2007년 10월 대전지방법원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종률(金鍾律) 전 의원은 “법원의 주장과 재판 내용이 서로 다르다”며 “불신과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명확하게 법원의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이씨는 처음부터 다시 소송을 시작했다. 청구이의 소송 자체가 잘못됐다는 근거로 학원매매 당시 서씨의 보증인인 신모씨를 대상으로 전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2008년 9월 이씨의 주장에 대해 “이씨에 대한 유죄판결(사기미수)이 재심을 거쳐 다시 확정됐고, 제3채무자인 신씨를 상대로 전부금 지급을 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행사로 허용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이씨는 이에 불복해 곧바로 항소했다.
문제는 다음 재판 중 벌어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청구이의 재심 재판에 대한 기록을 증거로 제출하라”고 했고, 재산을 탕진한 후 변호사 없이 홀로 소송을 해 온 이씨는 직접 법원에 자료 열람ㆍ복사 신청을 했다. 그리고 이씨는 법원 직원으로부터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처음엔 직원이 며칠 있다가 다시 오라고 하더군요. 얼마 후 다시 갔는데 기록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도 재심 기록이요. 재판기록이 총 6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권에 500쪽쯤 되니 3000쪽 분량이죠. 이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심 기록만 사라진 겁니다. 저에겐 정말 중요한 위증 관련 재판 기록인데, 3권이 사라진 겁니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이 기록문서의 보존기한은 2013년 말까지다. 법원은 직원을 동원해 문서창고 전체를 뒤졌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200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다시 한 번 법원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민주당 이춘석(李春錫) 의원은 “민원인(이씨)이 분실된 자료에 대해 자신의 오심을 밝히는 결정적인 근거라고 주장한다”면서 “법원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하여 사법불신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 이주영(李柱榮) 의원도 “기록이 없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범죄적 사건에 대한 수사 의뢰”를 당부했다.
대전지법 “기록 대부분 복구해 사건 처리에 큰 지장 없었다”
길기봉(吉基鳳) 대전지방법원장은 기록 분실에 대해 “핵심적인 부분(국과수 감정서)을 재발급받아 ‘거의 100%’ 복원했다”고 증언했지만, 이후 “분실기록 중 조서, 증거목록, 피고가 제출한 참고자료는 복구를 못 했다”고 답변 내용을 정정했다.
대전지방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우선 법원에서 기록 관리에 허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당연하며, 판사나 직원들은 늘 이 점에 유념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면서도 “엄청난 분량의 사건기록을 내 사건처럼 하나하나 관리하는 데에는 인력상, 예산상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다음은 법원 측의 공식 답변내용이다.
“당시 사건은 관련 민원인이 오랫동안 재판을 해 오던 것이었고, 재심기록까지 포함하여 이미 12차례에 걸쳐 기록 열람 등사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관련 민원인께서도 이미 많은 분량의 자료를 갖고 계셨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행히 분실 부분은 재심사건으로서 이미 관련 자료가 다른 관련 사건에도 있는 복사물들이 많아 분실기록 대부분을 복구하여 사건처리에는 그다지 지장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이로 인하여 관련 민원인이 큰 불이익을 받았다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록 관리 책임자는 견책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미 지난해 일이긴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법원은 민원인들에게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사건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도록 기록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조만간 도입될 전자소송이 정착되면 해당 당사자는 관련 기록을 언제든지 전자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므로, 향후에는 이번과 같은 일은 없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기, 구속, 위증, 재심, 기록 분실로 이어진 11년 법정 공방에 그의 삶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그를 믿고 따르던 아내는 2002년 남편의 얼굴이 TV에 나오고 난 뒤 마음을 바꿨다. 이씨는 “당시 아내가 초등학교 전교회장이었던 아들의 학교에 갔다가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TV뉴스가 방영됐다”면서 “그 후 집을 자주 비우더니 결국 이혼소장을 내밀었다”며 울먹였다.
“아이들을 봐서라도 그러지 말라며 애원하며 찾으러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학부모회 사람들이 남편 아니냐며 묻는데 어떻게 학교에 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전교회장의 어머니 입장에서요.”
박찬종(朴燦鍾) 전 의원(변호사)은 이씨의 사건에 대해 “법원 재판부가 규모가 작은 사건에 대해서 당사자의 딱하고 어려운 사정을 철저하게 가려줘야 하지만, 규모나 금액이 큰 사건에 비해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국민들이 보고 있다”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작고 억울한 사건에 대해 그만큼 세밀하게 보살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씨는 “더 이상 바랄 것도, 받을 것도 없다”며 “끝까지 아빠를 믿는 아들들에게 범죄자가 아님을 떳떳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서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미 법적으로 다 끝난 사건을 왜 계속 걸고 넘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씨가) 사기꾼이라고 법원에서 판명난 건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권위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신뢰해야 할 원칙이다. 하지만 무작정 법원의 판결을 따르라고 하기엔 그의 인생이 너무나 처량하고 안타깝다.⊙
사진 : 서경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