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104가구 귀농, 1967년 이래 감소 추세이던 인구 33년 만에 증가
⊙ 2008년 전국 최초로 귀농 지원 조례 만들어 도시민 적극 유치
⊙ 빈 농가 수리해 주고, 사업비의 50% 군에서 지원
⊙ 젊은 피 수혈로 지역 경제 활성화
⊙ 170여 억원 군민장학기금 조성해 교육 환경 개선에 투입
⊙ 2008년 전국 최초로 귀농 지원 조례 만들어 도시민 적극 유치
⊙ 빈 농가 수리해 주고, 사업비의 50% 군에서 지원
⊙ 젊은 피 수혈로 지역 경제 활성화
⊙ 170여 억원 군민장학기금 조성해 교육 환경 개선에 투입
- 최근 2년 사이 장미 농사를 짓기 위해 귀농한 사람들. 오른쪽으로부터 이중근씨, 김창환씨, 방재철씨, 박봉서씨, 김영국씨, 강진농업기술센터의 고형록 계장, 최희석씨, 김주성씨.
전남 강진은 조선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의 다산초당과 시인 김영랑(金永郞)의 생가로 유명한 고장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5시간 거리인 이곳은 여느 농어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1960년대 이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1967년 12만명이었던 인구가 2008년 4만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감소 일변도로 달리던 이곳의 인구가 지난해 처음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4만1153명이었던 인구가 2009년 4만1164명을 기록, 11명이 늘어난 것이다. 강진군은 “인구 증가는 33년 만의 일”이라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출산율 저하로 수도권마저 인구가 줄고 있는 마당에 남도 끝 강진의 인구가 늘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군(郡)에서 귀농인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강진농업기술센터의 고형록(高炯錄) 계장은 “최근 귀농(歸農) 인구가 급증한 데다 출산율이 높아진 것이 인구 증가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강진군은 2006년 2가구(6명), 2007년 14가구(59명), 2008년 65가구(160명), 2009년 104가구(283명) 등 귀농 인구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고 계장은 “최근 들어 강진군이 귀농 1번지로 각광받고 있다”며 “은퇴 후 귀농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젊은층의 귀농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젊은 귀농인 중에는 지역 연고는 물론 농사 경험이 전무한 사람도 상당수라고 한다.
강진군은 이렇다 할 기업도 없고, 대도시를 끼고 있는 지역도 아니다. 군민의 대다수가 농업과 수산업, 임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다. 이곳에 젊은 귀농인들이 몰리는 이유가 뭘까. 강진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 귀농인들을 만나 보았다.
분재 농장 운영 엔지니어 출신 윤보현씨
50대 중후반의 윤보현(尹普鉉)씨와 김국현(金國炫)씨는 각각 분재 농원과 딸기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은 취미 생활을 직업으로 전환하면서 귀농한 경우다. 이들은 “평소 좋아했던 일이고, 나이 들어서도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틈틈이 귀농을 준비해 왔다”고 입을 모았다.
강진군 도암면에서 분재 농원을 경영하고 있는 윤보현씨는 자동차 세일즈 엔지니어 출신. 그는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에서 20년 동안 근무했고, 조기퇴직한 1996년 이후 10여 년 동안 광주에서 회사 대리점 격인 AS센터를 경영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줄곧 도시에서 생활한 그는 “농촌 생활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식물을 좋아해 집안에서 여러 가지 화초를 많이 키우며 반 농사꾼으로 살았다”며 “화초 가꾸기에 열중하다 보면 직장에서 받는 각종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돼 좋았다”고 말했다.
“저는 화초 중에서도 특히 분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분재 관련 책도 많이 봤고, 열심히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그 분야 전문가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아예 농장을 경영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아내의 반대가 심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008년 3월에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윤씨 부부는 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두 자녀를 위해 광주에 있는 집을 그대로 둔 채 여유자금 8000여만 원을 들고 강진에 정착했다. 윤씨는 “귀농 대상지를 찾아 여러 곳을 둘러봤지만 강진군만큼 귀농 지원 시스템이 잘돼 있는 곳이 없었고, 기후가 온화해 난방비 절감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내려오게 됐다”고 말했다.
윤씨는 3300㎡(1000평)의 밭을 사고, 이곳에 총 277㎡(83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두 동을 지어 동백과 녹차 묘목을 생산하고 있다. 주택은 빈 농가(農家)를 수리해 살고 있다. 여기에 들어간 투자액이 8000여만 원이며, 이 중 3500만원(사업비 3000만원, 주택 수리비 500만원)을 군으로부터 지원받았다.
강진군은 현재 귀농자에 한해 사업비의 50%(최대 3000만원 한도)를 보조하고 있으며, 농가 수리비로 5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귀농인이 농작물 재배를 위해 시설비로 3000만원을 투자할 경우 그것의 50%인 1500만원을 군이 보조해 주는 식이다.
윤씨는 최소 4~5년씩 길러야 하는 분재의 특성상 아직까지 소득이 없다. 그는 “산림감시원 같은 공공근로와 지역 언론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며 “이런 일은 적게나마 생활비 마련에도 도움이 되고 소속감을 키워줘 좋다”고 말했다.
친환경 딸기 재배 통신 전문가 출신 김국현씨
강진군 군동면 라천리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김국현씨는 전자통신 전문가 출신이다. 광운대 전자통신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20여 년 동안 한국전력공사와 LG파워콤 등에서 근무했다. 군동면이 고향이긴 하나 초등학교 졸업 후 줄곧 도시에서 살아온 까닭에 김씨 역시 농사 경험은 없다. 그는 “한국전력에 근무하던 시절부터 희귀 난을 키우며 원예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재미삼아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 귀농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농사를 직접 짓기보다 고향에 있는 농산물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농업 유통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인터넷 매커니즘을 잘 알기 때문에 남들보다 유리할 것으로 여겼죠. 그런데 기존 농산물 유통망 뚫기가 쉽지 않더군요. 홈페이지를 개설했지만 판매할 물건이 없었습니다. 결국 물건을 직접 조달할 목적으로 농사에 뛰어들었죠.”
통신 전문가로 잘나가던 그가 귀농한다고 했을 때 지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자의든 타의든 정년이 코앞으로 다가온 선배들은 “잘했다”며 부러워하는 눈치였고, 정년까지 좀 여유가 있는 동년배들은 “미친놈”이라며 황당해 하는 표정이었다. 김씨는 “정년 후에도 20~3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아무 대책 없이 자리에 연연하는 동년배들이 더 안타까웠다”고 했다.
작년 5월에 귀농한 김씨는 현재 6명이 참여하는 딸기 재배 영농조합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 영농조합은 비닐하우스 21개동(총 4400평 규모)에서 최상품 친환경 딸기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첫 파종해 11월부터 3월 초 현재까지 1만5000t의 딸기를 수확, 1억1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딸기는 초여름까지 수확이 가능한 데다 제철인 봄부터는 착과 수가 급증하기 때문에 앞으로 4500t 가량 추가 수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농사 경험이 없는 김씨는 토박이 조합원들 사이에 ‘농업 박사’로 불린다. 이론적으로 무장되어 있는 데다 그가 오고 난 후 딸기 품질이 월등하게 좋아져서다. 그는 “시설 재배의 경우 일조량이나 온도, 수분 조절 등 환경 관리에 철저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 와서 보니 조합원들이 시설 딸기를 하면서 동시에 소규모 채소와 축산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더군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죠. 그런데 시설 재배의 경우 하루종일 신경쓰지 않으면 어떤 작물이든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욕심인지 모르지만 조합원들에게 딸기 하나만 잘해도 먹고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어요.”
김씨는 조합원들이 딸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재배면적을 점차 늘려 간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우선 올해는 딸기 육묘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이미 3960㎡(1200평) 규모의 육묘장 증설 계획안을 농업기술센터에 제출, 사업비의 50%를 지원받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며 유기농산업기사, 종자관리사, 종자산업기사, 종자기능사 등 4개의 자격증을 취득해 놓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 고품질 딸기와 육묘를 생산해 국내시장은 물론 해외시장까지 공략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미 농장 운영 20년 제과인 민대기씨
강진군 칠량면은 한때 국내 장미 시장의 40%를 점유했을 만큼 유명한 장미 재배단지다. 국제 유가가 폭등하면서 작목 전환한 농가가 많지만 아직도 30여 농가가 장미를 재배하고 있다.
이곳에서 2640㎡(800평) 규모의 장미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민대기(閔大氣)씨는 2007년 부인 안선옥(安善玉)씨와 함께 귀농했다. 20년 동안 국내 굴지의 제과회사에 근무한 민씨는 “땀 흘리는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 농촌이라고 판단해 귀농했다”고 말했다.
민씨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는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시작한 첫해에 6000만원 순수익을 냈다. 인심 좋은 주변 농가들의 도움과 직장생활 하듯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성실하게 일한 결과라고 한다.
“모든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죠? 장미 농사를 지어 보니 그 말이 진하게 와 닿더군요. 특히 장미는 자식을 키우듯 지속적인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좋은 꽃을 피우는 작물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재배면적을 넓히고 싶은 욕심이 없어요. 저희 부부가 감당하기에는 지금의 면적이 적당하거든요.”
민씨의 경우 기존에 있던 농장을 8000만원에 인수했지만, 시설이 노후화돼 보수비가 상당히 들어갔다고 한다. 게다가 첫해에는 경험이 없어 사람을 많이 쓰다 보니 예상보다 지출이 많았다고 한다.
“흔히 사업에 실패하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을까’라고 생각하는데, 농사야말로 초기 투자비용 면에서 만만하게 볼 분야가 아닙니다. 성공적인 귀농을 위해서는 최소한 4~5년 전부터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민씨의 농장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씩 광주와 서울로 꽃을 출하한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인근 목포대에 개설돼 있는 원예 마이스터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말했다.
장미에 젊음 건 세 친구 이중근·박봉서·김창환씨
강진군 칠량면에는 민씨처럼 장미 농사를 짓기 위해 최근 2년 사이 8가구가 귀농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중 3명은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점이다. 칠량면 한림마을에 사는 이중근(李重根·46)씨, 박봉서(朴鳳緖·46)씨, 김창환(金昌煥·46)씨는 모두 인천에 살다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순차적으로 귀농한 친구들이다.
가장 먼저 귀농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이중근씨. 인천에서 유통업으로 꽤 성공한 이씨는 20대 때부터 ‘흙에 살리라’는 꿈을 키워 오던 중 아는 사람의 소개로 지난해 7월 강진에 정착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살아온 그는 장미 재배는 물론 농사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런 그가 귀농하고 싶다며 농업기술센터를 찾았을 때 장미 재배를 권한 이가 고영록 계장이라고 한다.
“솔직히 귀농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농사를 모르니까 뭘 해야 할지 상당히 고민했어요. 그래서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갔는데, 고 계장님께서 장미를 재배해 보라고 권해 주시더군요.”
이씨는 고 계장의 권유로 민대기씨 농장 바로 앞에 있는 3960㎡(1200평) 규모의 농장을 구입했다. 농장은 5월 출하를 끝으로 관리를 하지 않아 장미 묘목이 잡초에 파묻혀 있을 정도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한 번 하기로 결심한 일은 불도저 식으로 밀어붙이는 성격이라는 이씨는 여름 내내 온도가 40도를 넘나드는 하우스 안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 달 만에 체중이 무려 6kg이 줄어들 정도로 많은 땀을 흘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혼자 내려와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줘 그나마 끼니를 거르지 않고 일에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까지 내려와 함께 살고 있지요. 조만간에 인천에 홀로 계시는 어머님도 모셔올 생각입니다.”
박봉서씨는 고등학교 동창인 이씨를 도우러 왔다가 정착한 경우. 박씨는 그나마 시골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한때 경기도 평택에서 가물치 양식장을 운영했던 것. 그는 “10년 동안 양식장을 운영해 모은 돈을 도시에서 단 2년 만에 까먹었다”며 “도시의 삶은 사람과의 싸움인 반면 시골의 삶은 육체와의 싸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과 싸우는 것보다는 육체와 싸우는 것이 더 건강한 것 같아서 귀농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씨에 이어 맨 마지막으로 합류한 친구가 김창환씨다. 전국을 떠돌며 부동산업을 하던 그는 “꼼꼼하고 잠재력이 큰 친구(이중근씨)에 대한 믿음과 장미에 혹해 귀농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아직 미혼인 그는 현재 2640㎡ 규모의 장미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귀농으로 칠량면 한림마을은 한층 젊어졌다. 이중근씨는 “마을에 아이들이 많아서 놀이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미 인턴 과정 밟으며 사업 구상 중인 김영광씨
올해 2월 인천에서 가족과 함께 귀농한 김영광(金榮光·43)씨는 이중근씨 농장에서 월 120만원을 받으며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6개월 동안의 인턴생활을 마친 후 농장을 경영할 계획이어서 매물로 나온 시설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귀농 인턴제는 강진군이 농사 경험이 없는 귀농인을 위해 마련한 지원 정책 중 하나로, 인턴에게는 월 120만원(군 보조 80%, 선도 농가 20% 부담)을 지급하고 있다. 고영록 계장에 따르면 귀농지원 조례가 만들어진 2008년 이래 인턴 과정을 밟은 귀농인은 총 18명이다. 강진군은 가족을 두고 홀로 내려온 인턴이나 농가를 구하지 못한 귀농인을 위해 임시 숙소 3개소를 조성해 놓기도 했다.
김영광씨는 인턴십을 통한 현장 체험 외에 강진농업기술센터의 이재신(李載信) 화훼 연구사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교육을 받고 있다. 장미 재배 기술과 시장 정보가 주요 교육 내용이라고 한다.
이재신씨는 “귀농인들은 기존 농업인들과 달리 학습에 대한 열의가 높고, 전업농들이다 보니 면적당 생산성도 훨씬 높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존 장미 농가들의 경우 벼농사와 축산 등을 병행하는 복합농이다 보니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귀농인들의 경우 다른 농사를 짓지 않고 장미에만 집중해 3.3㎡당 수익이 2만원쯤 높은 편이에요. 이분들 덕분에 강진군의 장미 품질이 훨씬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재신 연구사에 따르면 장미 재배를 염두에 두고 귀농할 경우 최소 1억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고, 소득이 크게 나지 않는 3년 정도는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실제 장미 귀농인들은 “도시에서 치킨집을 창업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48마리 한우 축사 운영
고향으로 귀촌한 김용봉씨
강진군에는 한우를 키우기 위해 귀농하는 사례도 제법 된다. 군동면에서 한우 48마리를 키우고 있는 김용봉(金龍奉·44)씨도 그중 하나다. 김씨는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농지가 없어서 도시로 나갔다가 20여 년 만에 돌아왔다”고 했다. 귀촌(歸村)한 셈이다.
김씨는 고교 졸업 후 줄곧 서울에서 목수로 일하다 IMF 외환위기 때 전남 나주로 귀농했다. 그는 “처음부터 고향에 정착하려고 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축사 건립을 반대해 1년 반 정도 나주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나주에서 축사를 임차해 20여 마리의 한우를 키우던 김씨는 2008년 말 고향인 군동면으로 이주했다. 기존의 축사 하나가 매물로 나와 인수한 것이라고 한다. 축사는 부지 2970㎡(900평)에 건물 825㎡(250평) 규모다. 그는 축사 구입비로 수중에 있던 돈을 모두 투입했고 축사 운영비는 지역 공사 현장에서 날품을 판 것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추가로 송아지를 구입하느라 농협에서 융자도 좀 받았습니다. 빚이 1억원 가까이 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요. 16마리로 시작했던 소가 48마리로 늘었고, 올해 11월이면 송아지 19마리가 태어날 예정이니까요.”
아들만 둘이었던 김씨는 고향에 정착해 딸 하나를 더 얻었다. 그는 “왜 좀 더 일찍 오지 않았나 후회할 정도로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만, 아내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아이가 읍내에 있는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싶어하는데,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학원 차가 마을까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권도뿐만 아니라 학습지 교사도 읍내에서 먼 지역에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생기면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읍내에 집을 한 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귀농 대상 지역을 선택하는 데 교육 환경은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시골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선뜻 귀농하지 못하는 까닭의 90% 이상이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자가 강진에서 만난 40대 중후반의 귀농인들의 경우 자녀들이 초·중·고에 재학 중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 역시 귀농을 결정할 당시 자녀 교육 문제로 고민이 많았으나 강진의 교육이 도시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해 단행했다고 한다.
강진군에는 6개의 중학교와 5개의 고등학교(인문계 3, 실업계 2)가 있다. 인구 4만여 명에 불과한 지자체로서는 고등학교가 많은 편에 속한다. 군 관계자는 “인구가 급감하면서 많은 지자체가 정원 미달로 교육기관들을 통폐합했지만 우리 군은 그러지 않았다”면서 “2005년에 설립된 강진군민장학재단 때문에 최근에는 정원 미달은커녕 초과하는 학교도 생겼다”고 말했다.
관내학교 지역명문으로 급부상
강진군민장학재단은 현 황주홍(黃柱洪) 군수가 강진군의 낙후된 교육 환경을 열악한 군 재정력으로는 개선하기 힘들다는 판단 아래 2005년 4월에 설립했다. 이후 군민과 사회단체 임직원, 출향인 등 각계각층의 독지가들이 장학금을 출연해 5년 동안 170여억 원이 조성되는 기적을 일으켰다. 재단은 이 중 60여억 원을 각종 장학금과 교육 개선 사업에 투입했다. 군내 폐교를 리모델링해 원어민 강사들이 진행하는 외국어 타운으로 운영하는가 하면, 해마다 중학교 3학년 학생 30명을 선발해 해외어학연수를 보냈고,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그 결과 강진고는 2006년도부터 4년 연속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으며, 전남생명과학고(농업계)는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 40명이 불합격하는 경쟁력을 보였다. 군 관계자는 “자율형 공립고교인 강진고는 올해 군내 6개 중학교와 타 시군 2개 중학교 등 8개 중학교 전체 수석이 입학할 정도로 지역 명문학교로 급부상했다”고 말했다.
강진군이 여러 가지 조건상 귀농 예비자들에게 귀농 1번지로 각광받으면서 농업기술센터에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귀농 상담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각종 언론 매체의 취재 열기도 뜨거워 이제는 귀농인들이 “일에 방해된다”며 귀찮아할 지경이다. 고형록 계장은 “작년의 경우 센터를 직접 방문한 예비 귀농인이 하루 한 사람꼴이었다”고 말했다.
“상담 문의를 하는 분들 중에는 보조금에 욕심을 갖거나 도피의 한 방법으로 귀농을 하려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접해 봤기 때문에 이제는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이 정말 농촌에 뿌리내릴 사람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습니다.”
귀농자 중에는 빈 농가를 수리해 놓고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농가 수리비는 물론 사업비까지 받아 농사를 짓던 중 야반도주해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한 손해는 고스란히 군이 떠안아야 했다. 고 계장은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 자기 투자비용이 적은 사람의 경우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 등 철저한 검증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군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투자 여유 자금이 넉넉한 분이거나 농업의 미래를 생각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강진은 면적이 인구 1000만의 서울과 비슷하나 군민은 4만여 명에 불과하다. 군청에서 만난 황주홍 군수는 강진을 “미지의 신대륙이자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감소 일변도로 달리던 이곳의 인구가 지난해 처음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4만1153명이었던 인구가 2009년 4만1164명을 기록, 11명이 늘어난 것이다. 강진군은 “인구 증가는 33년 만의 일”이라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출산율 저하로 수도권마저 인구가 줄고 있는 마당에 남도 끝 강진의 인구가 늘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군(郡)에서 귀농인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강진농업기술센터의 고형록(高炯錄) 계장은 “최근 귀농(歸農) 인구가 급증한 데다 출산율이 높아진 것이 인구 증가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강진군은 2006년 2가구(6명), 2007년 14가구(59명), 2008년 65가구(160명), 2009년 104가구(283명) 등 귀농 인구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고 계장은 “최근 들어 강진군이 귀농 1번지로 각광받고 있다”며 “은퇴 후 귀농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젊은층의 귀농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젊은 귀농인 중에는 지역 연고는 물론 농사 경험이 전무한 사람도 상당수라고 한다.
강진군은 이렇다 할 기업도 없고, 대도시를 끼고 있는 지역도 아니다. 군민의 대다수가 농업과 수산업, 임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다. 이곳에 젊은 귀농인들이 몰리는 이유가 뭘까. 강진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 귀농인들을 만나 보았다.
분재 농장 운영 엔지니어 출신 윤보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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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재 농장을 하고 있는 윤보현씨. |
강진군 도암면에서 분재 농원을 경영하고 있는 윤보현씨는 자동차 세일즈 엔지니어 출신. 그는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에서 20년 동안 근무했고, 조기퇴직한 1996년 이후 10여 년 동안 광주에서 회사 대리점 격인 AS센터를 경영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줄곧 도시에서 생활한 그는 “농촌 생활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식물을 좋아해 집안에서 여러 가지 화초를 많이 키우며 반 농사꾼으로 살았다”며 “화초 가꾸기에 열중하다 보면 직장에서 받는 각종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돼 좋았다”고 말했다.
“저는 화초 중에서도 특히 분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분재 관련 책도 많이 봤고, 열심히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그 분야 전문가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아예 농장을 경영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아내의 반대가 심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008년 3월에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윤씨 부부는 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두 자녀를 위해 광주에 있는 집을 그대로 둔 채 여유자금 8000여만 원을 들고 강진에 정착했다. 윤씨는 “귀농 대상지를 찾아 여러 곳을 둘러봤지만 강진군만큼 귀농 지원 시스템이 잘돼 있는 곳이 없었고, 기후가 온화해 난방비 절감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내려오게 됐다”고 말했다.
윤씨는 3300㎡(1000평)의 밭을 사고, 이곳에 총 277㎡(83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두 동을 지어 동백과 녹차 묘목을 생산하고 있다. 주택은 빈 농가(農家)를 수리해 살고 있다. 여기에 들어간 투자액이 8000여만 원이며, 이 중 3500만원(사업비 3000만원, 주택 수리비 500만원)을 군으로부터 지원받았다.
강진군은 현재 귀농자에 한해 사업비의 50%(최대 3000만원 한도)를 보조하고 있으며, 농가 수리비로 5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귀농인이 농작물 재배를 위해 시설비로 3000만원을 투자할 경우 그것의 50%인 1500만원을 군이 보조해 주는 식이다.
윤씨는 최소 4~5년씩 길러야 하는 분재의 특성상 아직까지 소득이 없다. 그는 “산림감시원 같은 공공근로와 지역 언론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며 “이런 일은 적게나마 생활비 마련에도 도움이 되고 소속감을 키워줘 좋다”고 말했다.
친환경 딸기 재배 통신 전문가 출신 김국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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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김국현씨. |
“처음에는 농사를 직접 짓기보다 고향에 있는 농산물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농업 유통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인터넷 매커니즘을 잘 알기 때문에 남들보다 유리할 것으로 여겼죠. 그런데 기존 농산물 유통망 뚫기가 쉽지 않더군요. 홈페이지를 개설했지만 판매할 물건이 없었습니다. 결국 물건을 직접 조달할 목적으로 농사에 뛰어들었죠.”
통신 전문가로 잘나가던 그가 귀농한다고 했을 때 지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자의든 타의든 정년이 코앞으로 다가온 선배들은 “잘했다”며 부러워하는 눈치였고, 정년까지 좀 여유가 있는 동년배들은 “미친놈”이라며 황당해 하는 표정이었다. 김씨는 “정년 후에도 20~3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아무 대책 없이 자리에 연연하는 동년배들이 더 안타까웠다”고 했다.
작년 5월에 귀농한 김씨는 현재 6명이 참여하는 딸기 재배 영농조합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 영농조합은 비닐하우스 21개동(총 4400평 규모)에서 최상품 친환경 딸기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첫 파종해 11월부터 3월 초 현재까지 1만5000t의 딸기를 수확, 1억1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딸기는 초여름까지 수확이 가능한 데다 제철인 봄부터는 착과 수가 급증하기 때문에 앞으로 4500t 가량 추가 수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농사 경험이 없는 김씨는 토박이 조합원들 사이에 ‘농업 박사’로 불린다. 이론적으로 무장되어 있는 데다 그가 오고 난 후 딸기 품질이 월등하게 좋아져서다. 그는 “시설 재배의 경우 일조량이나 온도, 수분 조절 등 환경 관리에 철저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 와서 보니 조합원들이 시설 딸기를 하면서 동시에 소규모 채소와 축산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더군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죠. 그런데 시설 재배의 경우 하루종일 신경쓰지 않으면 어떤 작물이든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욕심인지 모르지만 조합원들에게 딸기 하나만 잘해도 먹고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어요.”
김씨는 조합원들이 딸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재배면적을 점차 늘려 간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우선 올해는 딸기 육묘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이미 3960㎡(1200평) 규모의 육묘장 증설 계획안을 농업기술센터에 제출, 사업비의 50%를 지원받게 됐다고 한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며 유기농산업기사, 종자관리사, 종자산업기사, 종자기능사 등 4개의 자격증을 취득해 놓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 고품질 딸기와 육묘를 생산해 국내시장은 물론 해외시장까지 공략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미 농장 운영 20년 제과인 민대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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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농장을 하는 민대기ㆍ안선옥씨 부부. |
이곳에서 2640㎡(800평) 규모의 장미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민대기(閔大氣)씨는 2007년 부인 안선옥(安善玉)씨와 함께 귀농했다. 20년 동안 국내 굴지의 제과회사에 근무한 민씨는 “땀 흘리는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 농촌이라고 판단해 귀농했다”고 말했다.
민씨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는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시작한 첫해에 6000만원 순수익을 냈다. 인심 좋은 주변 농가들의 도움과 직장생활 하듯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성실하게 일한 결과라고 한다.
“모든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죠? 장미 농사를 지어 보니 그 말이 진하게 와 닿더군요. 특히 장미는 자식을 키우듯 지속적인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좋은 꽃을 피우는 작물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재배면적을 넓히고 싶은 욕심이 없어요. 저희 부부가 감당하기에는 지금의 면적이 적당하거든요.”
민씨의 경우 기존에 있던 농장을 8000만원에 인수했지만, 시설이 노후화돼 보수비가 상당히 들어갔다고 한다. 게다가 첫해에는 경험이 없어 사람을 많이 쓰다 보니 예상보다 지출이 많았다고 한다.
“흔히 사업에 실패하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을까’라고 생각하는데, 농사야말로 초기 투자비용 면에서 만만하게 볼 분야가 아닙니다. 성공적인 귀농을 위해서는 최소한 4~5년 전부터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민씨의 농장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씩 광주와 서울로 꽃을 출하한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인근 목포대에 개설돼 있는 원예 마이스터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말했다.
장미에 젊음 건 세 친구 이중근·박봉서·김창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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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귀농인들은 매주 한 번씩 이재신(중앙 오른쪽) 화훼 연구사로부터 재배 기술 및 시장 정보 관련 교육을 받는다. |
가장 먼저 귀농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이중근씨. 인천에서 유통업으로 꽤 성공한 이씨는 20대 때부터 ‘흙에 살리라’는 꿈을 키워 오던 중 아는 사람의 소개로 지난해 7월 강진에 정착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살아온 그는 장미 재배는 물론 농사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런 그가 귀농하고 싶다며 농업기술센터를 찾았을 때 장미 재배를 권한 이가 고영록 계장이라고 한다.
“솔직히 귀농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농사를 모르니까 뭘 해야 할지 상당히 고민했어요. 그래서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갔는데, 고 계장님께서 장미를 재배해 보라고 권해 주시더군요.”
이씨는 고 계장의 권유로 민대기씨 농장 바로 앞에 있는 3960㎡(1200평) 규모의 농장을 구입했다. 농장은 5월 출하를 끝으로 관리를 하지 않아 장미 묘목이 잡초에 파묻혀 있을 정도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한 번 하기로 결심한 일은 불도저 식으로 밀어붙이는 성격이라는 이씨는 여름 내내 온도가 40도를 넘나드는 하우스 안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 달 만에 체중이 무려 6kg이 줄어들 정도로 많은 땀을 흘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혼자 내려와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줘 그나마 끼니를 거르지 않고 일에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까지 내려와 함께 살고 있지요. 조만간에 인천에 홀로 계시는 어머님도 모셔올 생각입니다.”
박봉서씨는 고등학교 동창인 이씨를 도우러 왔다가 정착한 경우. 박씨는 그나마 시골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한때 경기도 평택에서 가물치 양식장을 운영했던 것. 그는 “10년 동안 양식장을 운영해 모은 돈을 도시에서 단 2년 만에 까먹었다”며 “도시의 삶은 사람과의 싸움인 반면 시골의 삶은 육체와의 싸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과 싸우는 것보다는 육체와 싸우는 것이 더 건강한 것 같아서 귀농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씨에 이어 맨 마지막으로 합류한 친구가 김창환씨다. 전국을 떠돌며 부동산업을 하던 그는 “꼼꼼하고 잠재력이 큰 친구(이중근씨)에 대한 믿음과 장미에 혹해 귀농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아직 미혼인 그는 현재 2640㎡ 규모의 장미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귀농으로 칠량면 한림마을은 한층 젊어졌다. 이중근씨는 “마을에 아이들이 많아서 놀이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미 인턴 과정 밟으며 사업 구상 중인 김영광씨
올해 2월 인천에서 가족과 함께 귀농한 김영광(金榮光·43)씨는 이중근씨 농장에서 월 120만원을 받으며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6개월 동안의 인턴생활을 마친 후 농장을 경영할 계획이어서 매물로 나온 시설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귀농 인턴제는 강진군이 농사 경험이 없는 귀농인을 위해 마련한 지원 정책 중 하나로, 인턴에게는 월 120만원(군 보조 80%, 선도 농가 20% 부담)을 지급하고 있다. 고영록 계장에 따르면 귀농지원 조례가 만들어진 2008년 이래 인턴 과정을 밟은 귀농인은 총 18명이다. 강진군은 가족을 두고 홀로 내려온 인턴이나 농가를 구하지 못한 귀농인을 위해 임시 숙소 3개소를 조성해 놓기도 했다.
김영광씨는 인턴십을 통한 현장 체험 외에 강진농업기술센터의 이재신(李載信) 화훼 연구사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교육을 받고 있다. 장미 재배 기술과 시장 정보가 주요 교육 내용이라고 한다.
이재신씨는 “귀농인들은 기존 농업인들과 달리 학습에 대한 열의가 높고, 전업농들이다 보니 면적당 생산성도 훨씬 높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존 장미 농가들의 경우 벼농사와 축산 등을 병행하는 복합농이다 보니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귀농인들의 경우 다른 농사를 짓지 않고 장미에만 집중해 3.3㎡당 수익이 2만원쯤 높은 편이에요. 이분들 덕분에 강진군의 장미 품질이 훨씬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재신 연구사에 따르면 장미 재배를 염두에 두고 귀농할 경우 최소 1억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고, 소득이 크게 나지 않는 3년 정도는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실제 장미 귀농인들은 “도시에서 치킨집을 창업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48마리 한우 축사 운영
고향으로 귀촌한 김용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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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를 키우고 있는 김용봉씨 가족. |
김씨는 고교 졸업 후 줄곧 서울에서 목수로 일하다 IMF 외환위기 때 전남 나주로 귀농했다. 그는 “처음부터 고향에 정착하려고 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축사 건립을 반대해 1년 반 정도 나주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나주에서 축사를 임차해 20여 마리의 한우를 키우던 김씨는 2008년 말 고향인 군동면으로 이주했다. 기존의 축사 하나가 매물로 나와 인수한 것이라고 한다. 축사는 부지 2970㎡(900평)에 건물 825㎡(250평) 규모다. 그는 축사 구입비로 수중에 있던 돈을 모두 투입했고 축사 운영비는 지역 공사 현장에서 날품을 판 것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추가로 송아지를 구입하느라 농협에서 융자도 좀 받았습니다. 빚이 1억원 가까이 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요. 16마리로 시작했던 소가 48마리로 늘었고, 올해 11월이면 송아지 19마리가 태어날 예정이니까요.”
아들만 둘이었던 김씨는 고향에 정착해 딸 하나를 더 얻었다. 그는 “왜 좀 더 일찍 오지 않았나 후회할 정도로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만, 아내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아이가 읍내에 있는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싶어하는데,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학원 차가 마을까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권도뿐만 아니라 학습지 교사도 읍내에서 먼 지역에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생기면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읍내에 집을 한 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귀농 대상 지역을 선택하는 데 교육 환경은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시골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선뜻 귀농하지 못하는 까닭의 90% 이상이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자가 강진에서 만난 40대 중후반의 귀농인들의 경우 자녀들이 초·중·고에 재학 중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 역시 귀농을 결정할 당시 자녀 교육 문제로 고민이 많았으나 강진의 교육이 도시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해 단행했다고 한다.
강진군에는 6개의 중학교와 5개의 고등학교(인문계 3, 실업계 2)가 있다. 인구 4만여 명에 불과한 지자체로서는 고등학교가 많은 편에 속한다. 군 관계자는 “인구가 급감하면서 많은 지자체가 정원 미달로 교육기관들을 통폐합했지만 우리 군은 그러지 않았다”면서 “2005년에 설립된 강진군민장학재단 때문에 최근에는 정원 미달은커녕 초과하는 학교도 생겼다”고 말했다.
관내학교 지역명문으로 급부상
강진군민장학재단은 현 황주홍(黃柱洪) 군수가 강진군의 낙후된 교육 환경을 열악한 군 재정력으로는 개선하기 힘들다는 판단 아래 2005년 4월에 설립했다. 이후 군민과 사회단체 임직원, 출향인 등 각계각층의 독지가들이 장학금을 출연해 5년 동안 170여억 원이 조성되는 기적을 일으켰다. 재단은 이 중 60여억 원을 각종 장학금과 교육 개선 사업에 투입했다. 군내 폐교를 리모델링해 원어민 강사들이 진행하는 외국어 타운으로 운영하는가 하면, 해마다 중학교 3학년 학생 30명을 선발해 해외어학연수를 보냈고,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그 결과 강진고는 2006년도부터 4년 연속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으며, 전남생명과학고(농업계)는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 40명이 불합격하는 경쟁력을 보였다. 군 관계자는 “자율형 공립고교인 강진고는 올해 군내 6개 중학교와 타 시군 2개 중학교 등 8개 중학교 전체 수석이 입학할 정도로 지역 명문학교로 급부상했다”고 말했다.
강진군이 여러 가지 조건상 귀농 예비자들에게 귀농 1번지로 각광받으면서 농업기술센터에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귀농 상담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각종 언론 매체의 취재 열기도 뜨거워 이제는 귀농인들이 “일에 방해된다”며 귀찮아할 지경이다. 고형록 계장은 “작년의 경우 센터를 직접 방문한 예비 귀농인이 하루 한 사람꼴이었다”고 말했다.
“상담 문의를 하는 분들 중에는 보조금에 욕심을 갖거나 도피의 한 방법으로 귀농을 하려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접해 봤기 때문에 이제는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이 정말 농촌에 뿌리내릴 사람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습니다.”
귀농자 중에는 빈 농가를 수리해 놓고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농가 수리비는 물론 사업비까지 받아 농사를 짓던 중 야반도주해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한 손해는 고스란히 군이 떠안아야 했다. 고 계장은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 자기 투자비용이 적은 사람의 경우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 등 철저한 검증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군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투자 여유 자금이 넉넉한 분이거나 농업의 미래를 생각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강진은 면적이 인구 1000만의 서울과 비슷하나 군민은 4만여 명에 불과하다. 군청에서 만난 황주홍 군수는 강진을 “미지의 신대륙이자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 [인터뷰] 黃柱洪 강진 군수 “강진에서는 70이 넘어도 청년처럼 일하고 삽니다” 
―강진이 귀농 1번지로 뜨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기후가 좋고, 청정지역이라는 환경조건 때문일 것입니다. 그 다음은 2008년 전국에서 최초로 마련한 귀농지원 조례 때문 아닐까 싶어요. 빈집을 수리해 주고, 강진 지역의 전직 공무원 모임인 행정 동우회와 귀농 가구를 1 대 1 상담 파트너로 맺어주는 등 맞춤형 서비스에 포인트를 맞춘 것이 귀농지원 조례입니다. 하지만 이런 가시적인 서비스보다는 ‘친절’이라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강진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강진을 홍보하는 현수막에도 ‘강진군은 날씨보다 마음이 더 따뜻한 고장입니다’라는 문구를 쓰고 있죠. 이곳에 가면 텃세도 없고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라는 안도감을 느끼도록 말입니다.” ―강진에 귀농 인구가 증가하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농촌 지역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구 감소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또 강진군에서 오래 산 분들은 온정적인 데 반해 도시에서 오신 분들은 좀 합리적인 데다 경제적 마인드가 강하게 장착된 분들이라 지역 사회에 긍정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지요. 새로운 피가 수혈된 만큼 앞으로 강진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강진군이 젊어지려면 40, 50대 장년층보다는 20, 30대 청년층이 많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강진군에서는 79세까지도 장년층으로 분류될 만큼 40, 50대면 청년이지요. 서울에 계신 분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이 서울에서는 70이 넘으면 현역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이 오너밖에 없지만 농촌에서는 70이 넘어서도 누구나 현역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에 있으면 일찍 은퇴해 조로하게 됩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 수명이 짧아지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50대까지는 시골 사람에 비해 서울 사람들이 젊어 보이지만 70대 이후부터는 시골 사람들이 훨씬 젊어 보입니다.” ―전국 지자체 중에서 유일하게 행정 조직을 능력 중심의 팀제로 전환한 것으로 압니다. 직원들의 불만은 없습니까. “팀제의 궁극적 목적은 기업에서 강조하는 고객 제일주의입니다. 연공서열이 지켜지는 현행 제도는 행정 서비스의 주인인 군민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죠. 팀제는 주민들의 만족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발전이 보장되는 만큼 공무원들의 노고와 수고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제도입니다. 시행 초기여서 아직까지는 불만들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만, 정착되고 나면 성취 동기를 유발시키는 제도인 만큼 더욱 신나서 일하게 될 거예요.” ―그렇듯 좋은 제도인데 왜 다른 지자체에서는 아직까지도 시행하지 않는 건가요. “팀제는 몇 년 전 중앙정부가 4개의 지방자치단체에 시범적으로 시행해 보도록 권했는데, 그중 하나가 강진이었습니다. 팀제를 시행해 보니 우선 과거보다 노동의 양이 많아지니까 공무원들이 싫어하데요. 4년마다 치러지는 선거에 공무원들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자체장들로서는 팀제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다 자의적인 인사권도 없으니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우수한 귀농인을 유치하기 위해 추가로 추진 중인 정책이 있나요. “여성과 자녀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할 생각입니다. 어느 가정이든 귀농의 키는 여성이 쥐고 있기 때문이지요. 도시보다 월등한 교육 인프라를 확충하고, 귀농 여성들끼리 교류하고 인맥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정서적, 심리적, 문화적 매력을 강화해 강진을 미지의 신대륙이자 기회의 땅으로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