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窓日記] 어느 강도상해범과의 불편한 同行 : 월간조선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중견변호사들의 식사모임에 나가고 있었다.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어려움도 나누는 친목모임이었다. 법원장을 지내고, 지금은 로펌의 대표로 있는 선배 변호사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쓰는 소설이나 칼럼에서 너무 법원을 까지 말게. 거기 밥줄을 대고 있는 우리 변호사가 판사들을 敵(적)으로 돌리면 좋을 게 없어.”

“알겠습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원고청탁을 받을 때마다 눈에 보이는 것, 느끼는 걸 그대로 써댔다. 비리를 보면 그걸 쓰는 게 작가의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했다. 피를 찍어 쓰듯이 법조의 문제점들을 파헤쳤다.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고소를 당해 피의자로 경찰서 철제의자에도 앉아 봤고 손해배상 판결도 받아 봤다. 그래도 양심은 아프지 않았다. 판결문은 메마른 법적 관점에서 본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과 가슴으로 보는 작가의 관점과 법적 관점은 달랐다.

싸늘한 바람이 우뚝 솟은 법원건물 사이를 휘몰아치던 몇 해 전 11월 하순의 어느 날이었다. 50대 후반의 남자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허옇고 넓적한 얼굴의 그는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에도 여러 번 찾아왔다는 남자였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들을 찾아다니면서 처남의 사건을 부탁했더니 아무도 맡으려고 하지 않아요. 언덕 위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갔더니 ‘검찰에 있다가 바로 개업을 했는데 강도상해 같은 그런 더러운 사건은 손을 대지 않는다’면서 여기로 가 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글 쓰는 인권변호사라는 평이 있으니까 맡아 줄 거라고 얘기합디다.”

풀려 나올 가능성이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의 사건은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기피하고 있었다. 강도상해죄면 경험상 판사가 최고로 봐줘야 3년6개월의 징역형이었다. 그에게 물었다.

변호사로서의 직업 철학

―제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변호사로서의 내 직업관은 ‘同行(동행)’이었다. 판결은 판사가 하는 것이다. 변호사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과 동행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이르는 것이 절벽이라 하더라도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가 주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우리도 여기저기 상담을 다녀봐서 못 나올 건 이미 알죠. 그렇지만 형제 입장은 그게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변호사나 대 준다’는 심정입니다. 형제들은 모두 나이 먹고 極貧者(극빈자)예요. 그렇지만 우애는 대단합니다. 한 사람이 10만원씩 힘들게 갹출했으니까 다른 말씀 마시고 사건을 맡아 주세요.”

그는 떼를 쓰다시피 매달렸다. 그 돈이면 법정에 오가는 품값과 세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저는 돈이 없다고 사건을 거절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 결과를 예상한다면 무거운 징역형입니다. 그러나 동행을 요구하신다면 사건을 맡을 용의가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30년 법조생활의 직업철학을 설명했다.

나는 법원에서 그 사건의 수사기록을 복사해다 읽기 시작했다. 기록 속에서 수사의 첫 장면은 이렇게 떠오르고 있었다.

늦가을 새벽 4시경 난곡경찰서 형사과 강력팀 사무실은 스산한 냉기가 깔려 있었다. 파란 형광등 불빛이 다닥다닥 붙은 철책상 위에 반사되고 있었다. 당직형사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다부진 체격의 작달막한 남자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도둑을 잡은 용감한 사나이가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새벽 3시쯤일 거예요. 잠이 안 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순간적으로 도둑이라고 생각했죠. 가만히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그 자리에 서서 주위를 살폈죠. 그때 맞은편 연립주택 지하방 앞 골목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오는 거예요. 가로등 불빛에 얼굴이 언뜻 비쳤는데 처음 보는 놈이었어요. 동네사람들 얼굴 대충 알거든요. 제가 ‘누구요’ 하고 소리쳤더니 그놈이 튀기 시작했죠. 도둑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뒤쫓기 시작했어요. 형사님, 종이 한 장 줘 보실래요?”

형사는 프린터에 있던 A4 용지 한 장을 꺼내 주었다. 남자는 볼펜으로 동네를 엉성하게 그리면서 설명했다.

“그놈은 건물과 담장 사이 좁은 공간으로 도망갔어요. 제가 쫓아가니까 담을 넘어 계속 도망가는 거예요. 제가 계속 쫓아가니까 막다른 골목길에서 그놈이 양손에 칼과 각목을 들고 있었어요. 깜짝 놀라 대항할 걸 찾아보니까 구석에 쓰레기통이 보였어요. 그걸 들어서 그놈한테 던졌죠.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막대기를 들고 저도 덤벼들었어요. 그놈이 칼을 휘둘렀어요. 황급히 손으로 막았죠. 전 칼에 찔린 줄도 모르고 엉켜서 넘어져 싸우고 있었어요. 저는 그놈의 팔을 꺾고 그를 잡았어요. 나중에 경찰 지구대에 와서 보니까 옷에 피가 묻어 있더라고요. 칼에 찔렸는지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손이 떨리네요.”

강도범을 검거하면 형사도 考課(고과)점수가 올라가고 잡은 사람도 표창을 받는다. 형사는 남자의 몸을 살펴보았다. 옷에 피가 묻어 있고 팔뚝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형사가 유도했다.

―혹시 도둑질을 하고 나오다가 잡힌 게 아닙니까? 절도범이 체포당하지 않으려고 잡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으면 그때부터는 도둑이 아니라 강도상해범이 되거든요.

“그거야 당연히 도둑놈이지, 그렇지 않으면 밤에 왜 골목길을 서성대겠습니까. 지하방에 혼자 사는 여자 집에 들어가 돈을 훔치고 덮치려고 했을지도 모르죠.”

형사는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물었다.

노숙자의 무죄 항변

―그 잡힌 남자와 현장에서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경찰이 오기 전에 저보고 합의를 하자고 했습니다. 1300만원이 들어 있는 통장을 주겠다고 했어요. 내가 안된다고 하니까 주머니에서 100만원 뭉치를 꺼내 땅에 탁 던졌어요. 그걸 가지고 봐달라는 거죠.”

이 기록을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과장과 조작의 냄새가 났다. 피해도 없는데 한밤중에 동네 골목길까지 따라가 격투극을 벌였다는 남자의 진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수사기록을 계속 읽어 나갔다.

한 시간 후 전경대원이 지혈을 하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노인을 경찰서 강력팀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60대 중반은 훨씬 넘은 듯한 노인은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된 남자였다. 근육질의 남자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아 팔뼈가 부러지고 이마가 터졌다. 형사가 모니터에 피의자 신문조서 양식을 띄우면서 물었다.

―이름이 뭐죠?

“김칠성입니다.”

노인 특유의 쇳소리가 섞인 음성이었다.

―전과가 있어요?

“30년 전에 폭행을 한 적이 딱 한 번 있어요. 그때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어요.”

정직한 느낌이었다.

―현재 어디 살고 있어요?

“특별히 정해서 사는 데는 없어요. 서울역이나 공원벤치에서 잠을 자고, 밥은 하루 두 끼 사 먹습니다. 인력시장에 가서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쉽니다.”

노인은 노숙자 같았다.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않았는지 톡 쏘는 악취가 그로부터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한 달에 인력시장에서 얼마를 벌어요?

“30만원에서 40만원 정도 됩니다.”

―그 돈으로는 식대와 술값 담뱃값이 안되죠? 그래서 그 골목길에서 서성댔던 거죠?

형사가 유도신문을 해 나갔다.

“괴로울 때만 술을 마시기 때문에 그 돈이면 충분합니다.”

―연고자가 있어요?

“제가 잡혀 온 바로 거기 여동생이 살고 있는데,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고 있어서 가서 자지는 못합니다.”

구치소 면회소에서의 첫 대면

경찰에서 조사받는 한 피의자(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할아버지. 왜 조사받는지 이유를 알고 있어요?

“골목길에서 잠잘 때 쓸 박스를 찾고 있는 중이었어요. 소주를 좀 마신 상태였어요. 오줌이 마려워 골목길 벽에서 소변을 보고 나오다가 어떤 집 열린 새시문에 걸려 넘어질 뻔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렇게 오줌을 누고 나오는데 어떤 남자가 몽둥이를 들고 ‘야, 새끼야’ 하면서 덤벼들기에 맞아 죽을 것 같아 줄행랑을 쳤죠.”

―잡아 온 남자가 하는 말은 칼과 각목을 들고 있어서 자기도 바닥에서 막대기를 들고 저항했다고 하는데.

“아이고, 나 미치겠네. 그 사람이 이상한 놈입니다. 그 남자가 제 목을 조르고 몽둥이로 막 때렸어요. 그래서 돈을 줄 테니 그만하라고 사정했죠. 가지고 있던 돈을 꺼내서 있는 대로 다 줬어요.”

하지만 형사는 절도 혐의를 풀지 않고 계속 추궁했다.

―휴대품 중에 작은 손전등이 있던데 어디서 난 거죠?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문방구에서 샀습니다. 산 밑에서 잠을 자면서 똥이 있는지 보거나, 휴지를 줍기 위해서 산 겁니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고 있을 것 같았다. 형사는 컴퓨터로 그 노인이 알려준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시켜 前科(전과)조회를 했다. 아무런 전과가 발견되지 않았다. 형사는 노인의 지문을 찍고 일단 대기시켰다.

어두운 동굴 같은 구치소의 공기 속에는 땀 냄새, 입 냄새, 기름 냄새의 입자가 항상 떠돌아다니는 듯했다. 푸른 옷을 입은 죄수들이 팔짱을 낀 채 지하통로에서 올라오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했다. 나는 구치소 면회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병색이 완연한 한 노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에 유난히 붉은 기가 많았다. 노랗게 변색된 눈이 매같이 번쩍였다. 그가 얌전히 앉아 입을 열었다.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많이 봤습니다. 세상을 향해 바른말을 하시고 용기 있게 글을 쓰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낮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계속했다.

“전과가 있고 잘못 살아왔지만, 이번 일은 정말 아닙니다. 아들하고 며느리도 있고 집사람도 있습니다. 또 이발사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왜 도둑질을 하겠어요?”

전과 8범

그는 절실하게 호소했다. 그에게 물었다.

―가족도 있고 확실한 직업도 있으시면서 왜 경찰서에서 노숙자라고 그러셨어요.

지문 확인 결과 그는 절도 전과 8범인 황기욱(가명)으로 밝혀졌다. 교도소에서 출감한 지 6개월밖에 안된 사람이었다.

“그게 가족에게 알려져 보십시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더구나 그 다음날은 제 환갑잔치를 가족들이 해 주겠다고 한 날이었어요. 집에 연락을 할 수가 없었죠. 저는 전과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전과자라고 하면 그 순간부터 어떤 말도 믿어 주지 않아요. 그래서 전과가 컴퓨터에서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이름을 대고 노숙자라고 했죠. 내 아이들에게 알려지는 게 가장 싫었어요.”

―검찰은 잡으려는 사람을 다치게 한 걸 가지고 강도상해죄로 기소했던데요.

“제가 절도 경험이 있어서 하는 얘깁니다만, 형사나 검사는 절도를 너무 몰라요. 제가 도둑질하려면 부잣집에 가지, 왜 연립주택 지하 셋방으로 가겠어요? 또 도둑질을 하려면 연장이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최소한 드라이버나 만능열쇠 같은 거 말이죠. 한번 압수된 것 중에 그런 게 있나 살펴보세요.”

그는 도둑에 대해서는 꿰뚫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변호사님도 여러 범죄자를 만나보셨으면 잘 아시겠지만, 도둑질이라는 게 얼마나 긴장되고 피 말리는 작업입니까? 그 힘든 것만 생각해도 가져오는 물건값만큼 다 노동을 한 겁니다. 전 그날 밤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세 병이나 마셨어요. 이 세상에서 어느 도둑놈이 술 취해 흐느적거리면서 절도를 하겠냐고요. 적어도 남의 집에 도둑질하러 들어가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모든 일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요. 캄캄한 방에 들어가 남들이 자는 머리맡에서 장롱을 열고 훔칠 물건을 찾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십니까. 사람들은 도둑질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가 계속했다.

“이번 일만큼은 정말 無罪(무죄)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검찰에서 진술한 조서를 보세요. 내가 부인한 그대로 적혀 있을 겁니다. 경찰도 마찬가지고. 이 사건은 아무 증거도 없어요. 훔친 물건이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도둑질하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의 말이 맞을 것 같았다.

법정에서의 증언

해가 다 저물어 가는 12월 말 오후 두 시였다.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그는 팔에 석고붕대를 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곧 죽어 갈 노인의 모습이었다. 재판장이 물었다.

―그날 밤 손전등은 왜 소지했죠?

판사들은 압수된 물품 중에 있는 작은 손전등을 의심했다.

“가난한 저의 집에는 집안에 화장실이 없습니다. 밤에 똥을 누려면 손전등을 들고 떨어져 있는 변소로 갑니다. 그날도 술 먹으러 집을 나올 때 화장실에 갔다가 점퍼 호주머니에 손전등을 그대로 넣고 외출했었습니다.”

그가 어눌한 어조로 느리게 대답했다. 진짜 같았다. 재판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심을 풀지 않는 표정이었다.

―보통 손전등보다 굉장히 작은 휴대용이던데.

“전에 낚시 다닐 때 가지고 다니던 겁니다.”

방청석에는 그의 여동생 부부가 앉아 있었다. 여동생은 마음을 졸이면서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왜 처음에 노숙자라고 하면서 신분을 감췄죠?

“노숙자라고 말하면 금방 내보내줄 줄 알았습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이름을 대고 오히려 가족과 산다는 걸 말해야 맞지 않나요?

“경찰에서는 전과가 있다는 걸 알면 전혀 말을 믿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과를 숨기려고 그랬습니다.”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만하다’는 듯 표정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피고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재판장이 질문을 돌렸다. 정상참작 사유를 찾는 눈치였다.

“우리 식구는 땅 한 평 없이 소백산 골짜기 마을에 살았죠. 저는 어려서부터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어느 날 외삼촌 집에 갔다가 거기 있던 자전거를 타고 나왔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것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도둑이 됐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 막노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도 없다 보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사장 같은 데서 남의 물건을 슬쩍 가지고 가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교도소에 있을 때 마음잡고 이발 기술을 배웠죠. ‘이번에 나가면 절대로 다시 들어오지 말자’고 결심했습니다. 올 봄에 석방이 되고는 여기저기 이발소를 다니면서 머리를 깎아 줬습니다. 그 덕에 이제 단칸방도 얻었고요.”

도둑의 생리

―이발소에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 얘기를 해 보세요.

“이발사라는 게 뭐 별게 있나요. 머리를 깎겠다는 손님이 있다고 전화가 오면 중국음식점 배달꾼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저기 이발소로 갑니다. 불려 가도 안에 들어가지 못해요. 손님하고 아가씨하고 연애를 하고 있으니까요. 내 나이가 환갑인데 어떤 때는 젊은 놈들이 반말 짓거리를 해 가면서 건방 떨면 자존심 상하고 싫을 때도 많죠.”

―그래도 이발사로 보람 있을 때가 있을 거 아니에요?

“손님이 내가 깎은 머리를 보고 만족해하며 칭찬해 주면 그때는 정말 기분이 좋아요. 저는 교도소에서 이발 기술을 연습하느라고 수천 명의 머리를 깎아 줬죠. 실력은 괜찮습니다.”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귓속말로 옆에 있는 陪席(배석)판사와 속삭였다. 이번에는 배석판사가 그에게 물었다.

―왜 굳이 밤 세 시에 주택가인 거기 있었죠?

“판사님은 제가 한밤중에 도둑질하러 간 것으로 의심하고 지금 물으셨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록을 보시면 제가 예전에는 진짜 도둑질을 했잖습니까? 도둑질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밤에 도둑질하려고 가정집에 들어간다는 걸 믿지 않습니다. 밤에 가정집은요, 강도 아니고는 노력한 만큼 소득이 없어요. 막 뒤질 수도 없잖아요. 요즘 밤도둑은 전부 월급날 무렵 빈 사무실 털이지, 가정집은 절대 안 턴다니까요. 판사님이 도둑에 대해 몰라서 그래요.”

그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가 계속했다.

“제가 들어갔다는 그 집을 보십시오. 가난한 半(반)지하 셋방입니다. 왜 거길 털러 들어가겠습니까.”

배석판사의 얼굴에 수긍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판사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가 설명을 계속했다.

“사실 저녁때 친척 형이 암으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어렸을 때 내가 얻어맞으면 돌봐 주고 나무할 때도 거들어 준 친형 같은 분이죠. 그 소식을 듣고 우울해져서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셨어요. 그리고 여동생한테 전화를 했더니 오라고 하더라고요. 동생은 부업으로 전자부품 조립하는 일을 한밤중에도 해요. 우리같이 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은 굳이 시간을 가리지 않아요. 동생 집에 가다가 골목길에서 소변을 본 겁니다. 형사가 확인도 했죠. 사실 전에 도둑질을 해 봤지만, 그때는 바짝 긴장해서 오줌도 나오지 않아요.”

여동생의 증언

그의 설명이 강물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를 잡았다는 남자가 증인석으로 올라왔다. 단춧구멍같이 작은 눈이 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도둑을 과감하게 쫓아갈 만한 사람 같았다. 재판장이 물었다.

―도둑맞은 물건이 있나요.

“없습니다.”

―밤 세 시에 동네를 두 블록이나 쫓아가 격투까지 벌이면서 도둑을 잡았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도둑이 집안까지 들어왔나요.

검사가 제출한 공소장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저는 사실 앞 골목에서 그 사람이 바지단추를 채우면서 나오기에 연립주택 지하방에 사는 여자를 건드린 강간범이라고 오해한 겁니다. 도둑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쫓아가지 않았을 겁니다.”

―칼에 찔렸나요? 여기 공소장을 보면 찔렸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몸싸움을 하면서 벽에 팔뚝이 긁혔지 칼에 찔린 건 없습니다. 제가 과장한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의 여동생이 증인으로 나섰다. 순박해 보이는 50대 가정주부였다. 그녀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 오빠는 시골에서 땅 한 평도 없는 가난한 집 외아들로 태어나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네 명의 여동생을 먹여살렸어요. 오빠는 남의 집 머슴으로 일했고, 일이 없을 때는 산에 가 도토리를 따서 시래기로 죽을 끓여 먹었죠. 몇 년 후 오빠는 어깨너머로 이발기술을 배워 시골동네에서 어른들의 머리를 깎아 줬어요.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오빠는 그 후 이발관에 취직해서 거기서 먹고 자면서 청소와 궂은일을 하면서 기술을 익혔어요. 6년 동안 일한 후에 난곡동에 방 한 칸을 얻어서 어머니와 자매 네 명을 서울로 불러 올렸죠. 오빠는 어머니께 반항 한 번 안 하고 동생들 욕 한 번 하지 않은 착한 오빠입니다. 사고 당시 오빠를 보니 머리는 터져서 피범벅이지, 팔은 부러졌지, 정말 몸이 떨려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그토록 때렸으니까요.”

프로급 도둑

배석판사가 물었다.

―그날 밤 오빠가 먼저 전화를 했어요?

“예,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동통신사에 전화 내역을 조회하면 되겠군요.

“….”

여동생은 갑자기 흔들리면서 당황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아니, 오빠가 휴대폰이 아니라 공중전화에서 했을지도 몰라요. 더러 공중전화에서 하기도 하니까요.”

그녀가 당황해서 얼버무렸다. 판사는 한마디 더 물었다.

―밤 세 시에 오빠를 오라고 한 게 정말 맞아요?

“맞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가리지 않아요.”

판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치소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가 환한 얼굴로 자랑했다.

“여기 구치소에 있는 재소자들 항소이유서는 전부 내가 써 줍니다. 어떤 건 먹혀들어 가기도 하고, 어떤 건 안 먹히기도 하죠. 그럴 땐 왜 안 먹혀들어 갔는지 연구합니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전과가 많은 그가 재판의 생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예전에 절도할 때 전공이 밤도둑이에요? 낮도둑이에요?

밤 세 시에 그가 주택가에 있었던 게 정말 우연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저는 돈 많은 주택가를 주로 털었어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경까지는 주부들이 나가 집을 비울 확률이 많죠. 저는 그 시간을 노렸어요. 커튼이 쳐져 있고 문이 꽉 닫힌 집은 빈 게 틀림없어요. 그럴 때 먼저 문이나 창문을 쾅쾅 두드려 봐요. 사람이 있다가 문을 열고 나를 쳐다보면, 아무 이름이나 적당히 대면서 그 사람 집이 맞느냐고 물어보는 거죠. 아니라고 하면 그냥 자연스럽게 가는 거죠. 그러다가 빈집이면 들어가서 마음 놓고 털었죠.”

얘기를 들어 보니, 그는 프로급 도둑이 틀림없었다. 법정에서의 거짓말도 수준급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둑질은 대개 몇 번쯤 하다가 걸려요?

“솔직히 도둑질 100번 하면 한 번 정도 걸릴까 말까 해요. 버는 돈도 수십억 원은 벌 겁니다. 그러니까 도둑질하는 버릇들을 고치지 못하죠.”

―경찰에 잡혔을 때는 노숙자인 척하고, 또 검찰에서는 끈기 있게 부인하다가, 법정에서 노련하게 자기변호를 하는 모습을 보니까 이 방면에서는 고수 같군요.

그에게서 느낀 솔직한 심정을 던져 보았다.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자세를 다시 잡으면서 얘기했다.

“저는 정말 억울한 사정을 얘기하는 겁니다. 전과자라고 하면 그저 모두 거짓말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원통해서 못살겠습니다. 전 이번만큼은 하늘을 우러러 티끌 한 점 잘못한 게 없어요.”

모든 것이 연기였다

갑자기 그가 신파조로 울먹거렸다. 그는 자신의 연기가 내게 먹히는지 잠시 살피더니 이렇게 털어놓았다.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만, 사실은 다른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여동생 집으로 가기 위해 언덕길을 오르는데 평소 안면 있던 그 동네 떡집 아줌마가 내려오는 거예요. 몇 번 봤는데 얼굴이 예뻐요. 그래서 제가 ‘밤늦게 어딜 가? 나하고 데이트 안 할래?’라고 야한 농지거리를 했죠. 그런데 갑자기 뒤에 따라오던 남편이 그 소리를 듣고 내게 덤벼드는 거예요. 전 남편이 뒤에 있는 줄 전혀 몰랐죠. 다급하게 도망을 쳤어요. 그래서 근처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거기서 한참 동안 숨어 있다가 오줌을 누고 나오다가 그렇게 됐어요. 그런 속사정을 어떻게 형사나 검사한테 얘기하겠습니까?”

그가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 눈치를 힐끗 봤다. 또다시 발전된 버전 같았다. 다시 물었다.

―기록을 보면 체포된 시각이 밤 3시라고 되어 있는데, 떡집 아줌마를 새벽 3시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 농담을 하셨나요?

내 말에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안되겠네.”

모든 게 거짓이고 연기였다.

나는 퀴즈의 답안내용을 알고 풀이과정을 살피는 시청자 같았다. 그는 나름 완벽한 연기를 했다. 훔친 물건도 없었다. 증인도 없는 셈이었다. 그는 치밀한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법의 빈틈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변호사는 검사나 형사와 입장이 다르다. 범죄인의 교활성을 느껴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건을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다. 그런 행동 자체가 그의 有罪(유죄)를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변호사윤리규정 위반이다.

그렇다고 그의 입맛에 맞춰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나를 그의 연극판에 교묘하게 캐스팅해서 소품 역할을 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의 능란한 연출과 연기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판사들은 정답을 찾았다. 판사들은 남몰래 지하방에 세 들어 사는 여자를 증인으로 불러 물어보았다. 여자는 “그 시각 누군가 들어와 자기방의 바깥 창문을 열었다가 인기척이 나니까 살짝 닫더라”고 진술했다.

교활한 자에 대해 법도 만만치 않았다. 절도미수범이라도 잡으려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면 강도상해로 엄벌에 처하게 규정되어 있다. 법원은 그에게 강도상해죄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지능적인 교활범에 대한 대가였다.

선고가 나자 그의 여동생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나를 찾아와 험하게 따졌다.

“이건 법이 너무하잖아요. 아무것도 훔친 게 없는데 징역 4년이 뭡니까. 가난하고 못 배웠으니까 이렇게 깔아뭉개도 되는 겁니까?”

여동생은 거품을 물며 분통을 터뜨렸다.

“수십억을 도둑질해 처먹고도 버젓이 다니는 놈들이 많은데 우리 오빠가 단 1원이라도 훔쳤느냐는 말이에요. 변호사님은 도대체 뭐 했어요? 아이고 억울한 우리 오빠….”

협박에 시달려

그녀는 모든 게 내 탓이라는 듯이 표독스럽게 악을 썼다.

“감옥 안에서 오빠가 펄펄 뛰고 있어요. 내일 구치소로 변호사 오래요. 도대체 변호사가 뭘 했는지 따져 보겠대요.”

그들은 한 번 변호사를 사면 그들의 종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지 않겠습니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왜요?”

“계약서상 변호사로서 의무는 끝이 났습니다.”

가난하고 무식하다는 게 그들의 무기였다. 그들은 힘들면 언제든 거짓말을 할 권리를 부여받고 있는 것같이 생각했다. 그들은 돈 40만원을 주고 난 후 나중에 주기로 약속한 선임료도 이미 줄 생각이 없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오후 나는 구치소의 그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나를 저주하는 말로 시작한 편지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법원 판사들을 욕하는 글이나 써대는 새끼를 변호사로 산 내가 미친놈이다. 그런 놈이 변호하는 걸 판사가 왜 봐주겠느냐? 내가 여기 같이 있는 죄수들을 모아 놓고 변호사인 너를 재판해 봤다. 모두 다 변호사인 네 잘못이라고 하더라. 나중에 몰래 증언한 여자를 변호사인 네가 짓뭉개버렸으면 무죄가 되는 건데,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잘못이라고 하더라. 그 외에는 완벽하게 증거가 없었으니까. 이제부터 너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 기다려라.”

그가 숨겨 왔던 악마의 발톱이 드러났다. 뱀 같던 그의 노란 눈빛이 떠올랐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로 심부름을 보내던 여동생의 남편을 수시로 내게 보냈다. 처음에 내게 찾아와서 “가족들이 마지못해 변호사를 대 주기 위해서 왔다”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는 이따금씩 와서 인사 한 번 꾸벅 하고 가곤 했다. 그는 “가라고 해서 왔다 간다”고 했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가 잠시 내 눈치를 힐끗 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부탁했다.

“제가 건설회사에 다녀서 그러는데 죄송하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면 안될까요?”

그의 눈길은 비굴할 정도로 내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뭡니까?”

내가 물었다.

“변호사료를 2000만원 받으셨다는 영수증을 하나만 써 주시죠. 절대로 피해 드리지 않고 그냥 자료로 가지고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중간에서 모든 문제를 잠재우겠습니다.”

뭔가 이상했다. 경우에 맞지 않는 부탁이었다.

“저한테 무료변호를 해 달라고 부탁하시고는 형제끼리 갹출했다고 40만원 주신 게 전부인데, 일단 그 내용을 각서로 쓰시죠. 그러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영수증을 하나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그가 불안감이 가득 찬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나는 그의 각서를 일단 받아 놓았다. 원인 모를 불안이 일었다.

불편한 同行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나는 변호사징계위원회로부터 소환을 받았다. 감옥에 있는 그가 나를 처벌해 달라고 진정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징계위원이 냉랭한 어조로 물었다.

―증인신문을 게을리한 이유가 뭡니까?

“거짓말에 동조하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변호사는 절차는 다 밟아야 하지 않나요.

“저질 연극에 끝까지 소품이 되어야 하나요?”

내가 되물었다. 징계위원은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용을 2000만원이나 주었는데 결과는 징역 4년이라고 당사자가 불평을 하는데 어떻습니까?

그 말에 나는 언뜻 그의 여동생 남편이 영수증 한 장만 허위로 써 달라고 부탁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뭔가 알 것 같았다. 여동생의 남편이 내게 트집을 잡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2000만원이요?”

내가 싱긋 웃으면서 물었다.

―그렇습니다. 여기 진정서를 보면 심부름을 하던 여동생의 남편에게 그 돈을 주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동생 남편으로부터 받아 놓았던 확인서를 징계위원에게 내놓았다.

“배달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2000만원과 40만원 그중 어떤 게 진실인지 관계자를 불러 조사해 보시죠.”

그렇게 나는 혐의가 풀렸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감옥 안에서 동료들의 법률문서를 대필해 준다던 그는 국가인권위원회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국가기관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온 통지서 한 장에는 그가 보낸 이런 내용의 편지가 붙어 있었다.

“가난하고 무식하게 환갑이 넘도록 살아온 인생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철창 뒤에서 회한의 세월을 보냅니다. 검사의 모략, 변호사의 게으름과 판사의 둔감성으로 저는 지금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의뢰인들과 동행하는 것이 변호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해 온 내게 그와의 동행은 ‘불편한 동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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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窓日記] 어느 강도상해범과의 불편한 同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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