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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첨단 기술, 이렇게 유출된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33건 중 실형은 단 한 건”(2021년 1심)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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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2022년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93건 적발… 한 달에 1.6개씩 유출된 셈”
⊙ “제품 하나에 들어가는 설명서 70~80페이지, 유출시켰다면 고의일 수밖에”
⊙ “금속 탐지기 옆 소지품 레일에 가져온 USB 끼워 넣어도 모를 것”
⊙ 美 경제스파이법(EEA), 영업 비밀 절도범의 재산이나 이익 몰수 가능
  “출근할 때 휴대폰에 (보안) 애플리케이션을 깔거나 스티커를 카메라 렌즈에 부착해요. 이 스티커를 한번 떼면 휴대폰에 자국이 남아요. 이걸 뗀 흔적이 있어도 저절로 떨어졌다고 하면 스티커를 잃어버리지 않는 이상 별다른 의심 없이 보내줘요. 물론 우리도 입사할 때 기술 같은 걸 유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협력업체나 청소하시는 분들도 서명을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스티커를 두 장 준비하는 식으로 보안을 뚫을 수 있을 거예요.”
 
  국내 2차전지 개발·제조사에서 기술직으로 근무하는 A씨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자사(自社) 보안 절차에 허점이 있냐는 물음에 이같이 대답했다. 보안 수칙을 위반할 경우, 어떤 제재가 가해지냐는 물음엔 “다른 사원의 경우, 별다른 중징계 없이 넘어가는 걸 봤다”고 했다. 이 회사의 전직 임원급 인사는 재작년 재직 당시 회사의 영업비밀을 촬영·유출한 혐의를 받아 현재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정보당국은 이 사건에 대해 ‘기업 측이 직접 고소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1월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분야의 기술 유출 사건이 급증했다. 2013~2017년 국정원이 적발한 이 분야 기술 유출 사건 수는 32건으로, 전체 기술 유출 사건 104건 가운데 23%를 차지했다. 그런데 2018~2023년 7월 들어서는 104건 가운데 60건으로 늘어 58%에 달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은 2013~2017년 7건이었던 게 2018~2023년 7월 사이 30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기업들은 기술 유출을 막을 대책에 대해 “개별 기업 차원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워낙 그런 일(기술 유출 사건)들이 많았다”며 “기술 유출에 대해선 민감해서 일절 얘기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양향자 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반도체 업종 산업 기술 유출 건수가 역대 최다(13건)를 기록했다.
 
 
  산기보호법 위반 사건, 무죄·집유 87.8%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유출 흐름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서 근무한 전직 임원이 반도체 공정 배치도 등의 영업비밀을 불법으로 사용했다가 적발됐다. 그래픽=조선DB
  ― 사건 발생을 계기로 보안 조치가 강화됐습니까.
 
  “반도체가 워낙 보안이 중요한 업종이기 때문에 기술 유출 사건을 계기로 (보안 강화를) 했다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담당 부서를 두고 기술적, 시스템적으로 (보안 조치를)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모(某) 방위 산업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를 가리는 스티커를 부착해야 했다.
 
  ―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것 외에 다른 조치도 하고 있습니까.
 
  “스티커는 당연히 하는 거였고요, 사업장 입문(入門) 시,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제한되는 등의 방식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舊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에 서면 질의서를 보내 ‘기술 유출 사건이 급증하는 데 대해 기업들은 어떻게 보는지’를 물었다.
 
  한경협 측은 “기술 유출의 수법 등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며 “첨단 기술이 경제력이라는 기술 패권주의가 확산되면서 해외로의 기술 유출을 막고 첨단 산업을 엄격히 보호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답했다. 국정원도 “경쟁국 기술 탈취가 가장 심각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은 보안 담당자 없는 경우 많아”
 
  ― 대비책은 마련했나.
 
  “기업 차원에서 문서 보안, 출입 보안 등 다양한 보안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권이 없는 개별 기업 차원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 국가는 기술 유출자에 대한 법적 제재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나.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1심 형사 사건은 총 33건이다. 이를 검토한 결과, 무죄(60.6%) 또는 집행유예(27.2%)가 87.8%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재산형(刑)과 유기징역(실형)은 각각 2건으로, 6.1%에 그쳤다.”
 
  ― 적발되는 계기는 주로 기업에서 먼저 알아채는 건가.
 
  “자체적으로 보안 규정과 보안 부서를 통해 잡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 협력업체 등 중소기업의 경우, 기술 유출 대응이 더욱 어려울 듯하다.
 
  “중소기업은 보안 담당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도 많다. 중소기업의 기술 유출은 상대적으로 해외 유출보다는 국내 경쟁 기업으로의 유출이 많은 편이다.”
 
  ― 최근 한경협에서 가장 주시하는 기술 유출 분야는 무엇인가.
 
  “반도체, 2차전지, 자율주행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기술의 해외 유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은 93건 적발됐는데, 이는 한 달에 1.6개씩 유출된 셈이다.”
 
 
  “회사에서 배운 기술이 내 것과 명확히 구분되나”
 
  ― 기업들이 가장 주목한 기술 유출 사건은 무엇인가.
 
  “가장 큰 충격을 준 기술 유출 사건은 삼성전자 공장의 설계도면, 공정배치도 등을 빼돌린 사건이다. 삼성전자에서 18년, 하이닉스에서 10년간 임원으로 재직한 반도체 분야 전문가가 중국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복제판을 지으려다 지난해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이는 2019년 있었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복제 시도 사건’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서 근무한 전직 임원이 대만 전자기기 생산 기업 ‘폭스콘’의 중국 반도체 공장 건설을 대행하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정배치도 등의 영업비밀을 불법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아 지난해 6월 기소됐다. 현재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 기술 유출은 주로 어떻게 이뤄지나.
 
  “대기업의 경우, 기술 개발에 참여한 임직원들이 퇴사하면서 중국 등 경쟁국 기업으로 기술을 몰래 빼돌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 B씨는 “회사에서 배운 기술이 내 것과 명확히 구분되느냐”고 반문하며 “직무상 습득한 노하우로 이직하는 게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인지, 가장(家長)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기술 유출의 고의는 명확하게 알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반박했다.
 
  “제품 하나에 들어가는 설명이 70~80페이지에 달해요. 거기에 적힌 숫자 하나만 달라도 조성비가 달라지는데요, 용접하고 자르는 것도 다 정해진 조건하에서 공정이 들어가는데, 공정 조건 하나하나를 다 외우는 건 불가능하죠. 이건 저희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이 다 그래요. 도면을 찍어가거나 유출하지 않는 이상 머리로 외워갈 순 없다는 거예요.”
 
 
  대부분 초범, 화이트 칼라 범죄
 
  사실 마음만 먹으면 기술 유출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재직자들의 평가다. 모(某) 전자제품 제조사의 디스플레이 분야 연구원 C씨는 “회사에 들어갈 때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는데, 휴대폰과 같은 금속 소지품을 잠시 올려놓는 레일에 USB 등 밖에서 가져온 저장 장치를 살짝 끼워 넣고 통과해도 모를 것 같았다”고 했다.
 
  재직자들의 말대로면 기술 유출 사건은 구체적인 고의와 동기를 갖고 자료를 빼돌리려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적 처벌의 강도는 세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19년 《월간조선》 2월호에 보도된 ‘삼성디스플레이 엣지패널 기술 유출 사건’의 경우도 2021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가 지난해 7월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당시 삼성디스플레이의 추산 피해액은 6조6000억원이다. 이 사건은 삼성디스플레이의 협력업체 ‘톱텍’사(社)가 삼성 스마트폰 시리즈에 사용되는 ‘3D 라미네이션(휴대폰 모서리를 곡면 형태로 구현하는 기술)’ 관련 설비 사양서 및 패널 도면 등의 기술 자료를 중국 업체에 유출시킨 사건이다.
 

  2016년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조선업체의 협력사에서 근무하던 인도인 직원이 해당 기술을 개인용 PC에 담아 인도로 보내는 일이 있었다. 국가핵심기술은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된 ‘국민 경제와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재판에선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모든 형사 사건은 유죄 입증 과정에서 아무리 전후 맥락이 이어져도 한 곳의 논리적 고리라도 끊어지면 무죄가 된다”고 했다.
 
  법무연수원이 2018년 발행한 《제33집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에 따르면 “영업비밀 침해 행위에 대해 실형이 선고되어 확정된 예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대부분 영업비밀 침해사범은 초범인 점이 많고, 화이트 칼라 범죄인 점, 게다가 법원 입장에서는 객관적 손해 액수 산정이 어려워 실제 손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美, 피해액과 처벌 수위 연동
 
  한편 미국의 경우, 1996년 자국 기업의 중요 정보가 외국 정부 등에 제공되는 게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경제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EEA)을 제정했다. 한국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6년 10월 국가 차원의 기술 보호를 위해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 이듬해 4월 시행했다.
 
  일리노이주(州) 변호사인 최지연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3월 15일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에 투고한 논문 〈미국 경제스파이법 처벌 사례 연구〉를 통해 “미국의 처벌 사례는 적극적인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스파이법(EEA)은 기술 유출 양형 기준이 세분화돼 있고 피해액을 처벌 수위와 연동한다. 또 영업 비밀 절도범의 재산이나 이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국내법에 따르면 범죄에 사용된 물건만이 몰수의 대상이다.
 
  미국은 2001년 5월 CIA(중앙정보국) 등 정부 부처 합동으로 국가방첩센터(NCIX)를 설립하고 매년 산업스파이 활동 실태를 보고서로 작성, 의회에 제출했다. 국정원은 이를 벤치마킹해 기술 보호를 위한 전담 조직 ‘산업기밀보호센터’를 설치했다. 국내에서도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여론이 실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상원)는 지난해 8월 8일 제126차 전체회의를 통해 ▲국가핵심기술 국외 유출·침해 ▲전략기술 국외·국내 침해 ▲방위산업기술 국외·국내 침해 및 누설·도용 등의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새로 설정하기로 했다. 이 양형 기준안(案)은 올해 3월 제130차 양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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