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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건희 과외선생’ 서문원 박사가 말하는 과학 강국의 길

“과학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해외동포 적극 활용해야”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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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1, 기술·테크놀로지로 한국이 세계에서 1등 강국 되어야”
⊙ 재미과협, 실리콘밸리에 ‘세종과학기술혁신센터’ 건립 추진 中
⊙ “인재 유출 고민 말고 인재 유입에 집중해야”
⊙ “10代 이건희, 순수하고 참신하고 상상력 풍부”

徐文源
1936년생. 서울대 공대 섬유공학과 졸업, 美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섬유공학 석사·통계학 박사 / 미 벌링턴사 본부 수석통계 및 OR연구원,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찰스캐넌 석좌교수, 서울대 통계학과 초빙교수, 경도공대 초빙교수,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초빙교수, 한국뉴욕주립대학 응용수학 및 통계학과·경영학과 초빙 석좌교수, 대학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회장·공로회원·50주년 위원회 위원장, 미 섬유학회 회장 역임. 現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명예석좌교수, 미 통계학회 명예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 대한민국 대통령 교육부문 표창, 국민훈장 석류장, 국민훈장 과학기술 웅비장, ASTM DeWitt Smith 메달 수훈
  2021년 10월, 85세의 노(老) 교수는 한국행(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는 코로나19가 극심하던 때로 입국자들에게 2주간의 자가격리가 필수였다. 젊은이들에게도 버거운 일이었지만 노 교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드시 한국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대규모 펀드를 유치하겠다. 이 돈으로 실리콘밸리에 한국 중소기업과 벤처가 진출할 수 있는 전초기지를 만들겠다.”
 
 
  ‘미국 상륙작전’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9월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뉴욕대(NYU) 키멜 센터에서 열린 디지털 비전 포럼이 끝난 뒤 재미과학자,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문원 박사를 6월 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서 박사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자가격리를 하는 도중 그가 가장 아끼는 한국의 기업인이며 옛 제자였던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별세 소식을 가슴 아프게 들었지만, 장례식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2주 격리를 마친 그는 같은 생각으로 함께 일하는 과학계의 후학 이태식·안세영 박사, 당시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이하 재미과협) 회장 박병규 박사를 대동하고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인사들을 만나 방한(訪韓) 취지를 설명했다.
 
  그의 구상은 미(美) 실리콘밸리에 ‘세종과학기술센터’를 설립하고 재미 과학기술인들이 힘을 합해 한국 벤처기업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미국 상륙작전’이라고 말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공략하려면 한국의 중소기업이나 연구개발 사업이 ‘보따리 장사’ 모델에서 벗어나 미국에 진지를 구축하고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선 고지를 탈환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고, 이 일을 위해 제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재미과학기술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얘기였다. 그러나 일은 쉽지 않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세 번 바뀌었다.
 
  정권이 바뀐 지난해 6월에 재미과협은 이 일을 재추진하기 위해 ‘세종과학기술혁신센터’ 출범식을 가졌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인사혁신처는 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과학기술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5월 17일에 재미과협 등과 ‘해외 우수인재 발굴 및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김영기 재미과협회장이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세종센터’ 안을 전달했다. 인사혁신처가 해외 한인 전문가 집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미과협, 36개 지부·분회에 과학자 회원 3만 명
 
  “한국은 실리콘밸리에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미국에 자리 잡은 한인과학기술자 3만 명이 한국의 벤처기업, 연구소, 대학들이 아무 때나 미국에 내려 짐을 풀고 투자자를 찾고 테크놀로지로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겁니다.”
 
  노 교수의 메시지는 시종일관 같았다.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찰스캐넌 명예 석좌교수인 서문원 박사는 국내 과학계의 섬유·의류 및 통계 분야에서 유명하고 과학계 원로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한국보다는 미국 사회에서 더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서 박사는 한국인으로서는 15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통계학회 공로회원(펠로)이 됐고, 6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섬유학회 회장이 돼 큰 업적을 쌓아 몇 명 되지 않는 특별공로회원으로 추대됐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대 섬유대학에서 120년 만에 첫 한국인 특임 현직 석좌교수로 임명됐고 세계적인 영국·미국의 세 저널의 편집인·부편집인으로 40여 년간 활동하며 260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1년에 창립된 재미과협을 먼저 알아야 한다. 재미과협은 1971년 당시 고(故) 최형섭(崔亨燮) 과학기술처 장관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수행한 김형기 국제기술협력국장이 주머니를 털어 기증해 만들어졌다. 서문원 교수는 노스캐롤라이나 지부 회원으로 회원등록 순서에 따라 그의 재미과협 ‘군번’은 ‘서문원-252번’이다. 이 단체는 학술교류와 기술이전, 과학자 양성, 자문 활동 등을 통해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했고, 2021년에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현재 미국 37개의 지부·분회에 속한 3만여 명의 과학기술자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미과학협력센터(KUSCO) 만들어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콘퍼런스가 2016년 6월 20일(현지시각) 열렸다. 한 연구자가 국방 분야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서문원 박사는 1994년에 재미과협 회장으로서 첫 연례학술대회(UKC)를 미국에서 개최하는 쾌거를 통해 재미과협에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돈 한 푼 없는 단체’를 도운 것은 한화그룹의 김승연(金昇淵) 회장이었다. 회장실 밖에서 시끄러운 미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승연 회장이 나타났다. 그는 밖에서 서 교수가 기부금 내라는 소리, ‘그렇게 많은 돈은 회장만 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학술대회 비용은 내가 다 책임지겠는데, 계약한 호텔이 좀 시원찮으니 DC 안에 있는 5성 호텔 ‘메이플라워’로 옮기세요.”
 
  김승연 회장이 말했다.
 
  “김 회장님, 그건 안 됩니다. 이게 창립되고 23년 만에 처음 열리는 ‘연례총회 및 학술대회’인데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해야 합니다. 남는 경비가 있으면 내년 회의에 써야죠.”
 
  한화는 회의 비용 일체를 지급했고 미국 전역과 한국에서 무려 8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왔다. 재미과협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다. 학술대회의 성공에 고무된 서 박사는 이듬해 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마침 학술대회 참석자들을 대사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던 한승수(韓昇洙) 주미대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직후였다. 그와 동행했던 유두영·안세영·지용성 박사는 재미과협 보조비를 얼마나 달라고 부탁해야 하나를 두고 서문원 박사와 의견 충돌을 빚었다. 서문원 박사는 단호했다.
 
  “이봐, 내가 올해 회장인데 청와대는 몇만 달러 달라고 가는 데가 아니야. 내가 1000만 달러 달라고 할 테니 같이 들어가서 한목소리를 내든지 아니면 당신들은 잔디밭에서 그냥 쉬고 있어. 나 혼자 들어갔다 나온다!”
 

  서문원 박사는 한승수 비서실장에게 1000만 달러 지원을 부탁했다.
 
  “첫째, 워싱턴에 제대로 된 재미과협 본부 건물이 있어야 하며, 둘째 미국에 익숙지 않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아무 때나 찾아와서 과협회원들의 조언을 받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한인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자라나는 한인 2세, 3세에 대한 투자입니다.”
 
  이듬해 700만 달러가 태평양을 건너왔고, 1996년에 한국 정부의 투자로 워싱턴 근교 비엔나(현 재미과협 본부)에 한미과학협력센터(KUSCO)가 만들어졌다. 김영삼(金泳三) 당시 대통령은 KUSCO 센터를 재미과협에 준다는 담화를 199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던 UKC 직후에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서 박사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과학기술웅비장을 수훈했다.
 
 
  ‘여인숙’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3월 9일(현지시각), 반도체 공급망 대책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이 텍사스에 1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그는 지난 4년간 ‘세종과학기술센터’의 건립을 돕고 있다. 가끔 친구들이 “넌 미국놈인데 한국에 대해 뭘 안다고, 허튼소리 말고 막걸리나 마셔”라고 하는 얘기가 듣기 싫어서 2018년도에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서문원 박사는 “더는 재미과학자가 아닌 한국 국민 자격으로 국가에 도움 되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문원 박사가 구상하는 ‘세종과학기술혁신센터’ 사업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 1300억원(1억 달러)을 투자, 건물을 확보해 창업센터를 만들고 재미한국인 과학자들을 활용해 한국을 ‘세계 기술 1등 강국’ ‘과학흥국’으로 발전시키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재미과협의 50년 역사와 350만 한국계 1~4세들의 잠재 능력을 활용, 한국의 중소기업·대학·연구소에서 발명된 아이디어가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인 미국에서 상용화되도록 인프라를 만들어 돕는 것이 목표다. 재미과협 소속 3만 명의 석·박사급 회원이 제품의 연구·개발·상용화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게 하는 사업이다. 한국 정부가 45%, 대기업·중소기업·대학 등이 45%, 재미과협과 미주 동포 사회가 10%를 분담하는 것이 서 박사의 구상이다. 서 박사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연방정부를 설득해 1억~2억 달러를 추가로 얻어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작년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청와대에 들어가 실리콘밸리에 재미과협이 창립 50주년 사업으로 1억 달러짜리 세종과학기술혁신센터를 세우자는 제안을 했을 때 반응은 1995년과 달랐습니다. ‘50년이나 더 된 재미과협이 왜 새삼스레 센터 건물이 필요하냐’고 묻기에 ‘재미과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업에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것이니 당연한 질문 아닐까요.
 
  “재작년에 각계각층 인사를 만나 ‘지금이 한국이 앞으로의 50년을 멀리 바라보고 큰 계획을 세울 때이며, 한국이 과학기술로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 이 센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만난 50여 명의 과학계 원로, 전·현직 국회의원, 장관들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기꺼이 이 일에 동참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국내 모금을 위한 재단 설립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큰 투자자가 나오기까지는 계속 홍보해야 합니다.”
 
  ― 구상하는 센터의 특색이 뭡니까.
 
  “한국에 있는 중소기업 연구소, 이공계 대학, 대학부설 연구소, 정부출연 연구소, 기업연구소, 벤처회사 등이 미국에 와 기술자문을 받고, 협력 파트너도 찾고, 마케팅을 해야 할 때 이를 위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저는 이 장소를 ‘여인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아무 때나 며칠밤을 자고 간다는 의미로요. 한국 기업을 위해 이런 작은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와 산업협의회, 무역협회 등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실리콘밸리 심장부에 지어 투자자 관심 끌어야”
 
  ― 이런 기관이 없었을 리 없는데요.
 
  “정부에 진흥센터는 많지만 이런 식(式)으로 운영되는 곳은 없습니다. 과학자들의 자문을 책임져 주선해주는 곳도 없고요. 어떤 제품을 현지 시장에서 상용화해야 할 때 미국 투자자가 한국에 올 필요 없이 미국의 이 ‘여인숙’에서 만나면 됩니다. 노벨상 받은 사람들을 한국으로 불러 강연 몇 번 시키고 보내는 비용이면 파트너를 만나 상품기획 등을 논의할 수 있는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 진출할 의사가 있는 미국의 중소기업들이 이 센터에 와서 한국 회사들을 만나고 간다면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 실리콘밸리에 건물을 짓는 것이 상징적 의미도 있다는 거군요.
 
  “미국에 사는 한국계 1~4세대가 이 건물을 바라보며 스스로 한국인의 핏줄과 연결돼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되고 한국을 도우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하고, 이들이 한국의 과학자, 기업들과 연계를 맺어 교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정부 예산이 투입되려면 구체적인 단기 성과가 나와야 하는데요.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미국에 건물을 만든다고 당장 한국에 무슨 이득이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회의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싸워서 이겨야 한다’뿐입니다. 근시안적인 접근으로는 고지를 점령할 수 없습니다. 당장 내년에 승부를 보자고 하면 되겠습니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는 사람들은 큰 장사를 못 합니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이기려면 과학기술이 뒷받침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과학기술자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재미 과학자들이 한국의 기업을 도울 기회를 주고, 한국 기업은 그들의 역량을 십분 활용해야 합니다. 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방법은 차선책이 아니고 유일무이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 강국 도약 위해 해외 2~4세 동원해야”
 
빌 게이츠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 이사장. 서 박사는 이 재단과 같은 활동을 우리 기업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뉴시스
  서문원 박사의 지론은 시종일관 같았다. ‘대한민국 과학 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문원 박사의 얘기다.
 
  “미국은 필요한 외국 인재의 경우 이민법을 바꿔가면서까지 영주권, 시민권을 주고 기용합니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대하는 목소리, ‘국민정서’ 같은 이야기는 과감하게 개혁하는 곳이 미국, 캐나다, 유럽입니다.”
 
  ― 박사님은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치셨지만, 한국을 경험해보지 못한 해외 2, 3세들이 한국 기업을 도우려 할까요.
 
  “미국에 350만 명의 동포가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만 해도 한국을 적극적으로 돕고는 싶지만 기회를 주지 않아서 은퇴 후에 그저 노년을 즐기는 잉여 과학 인력이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아는 분은 원자탄 제거 기술을 보유한 원자력 전공자입니다. 한국을 위해 이바지하고 싶어 하지만, 그 능력이 사장(死藏)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 둥지를 틀었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한국 정부, 미국 정부가 공동으로 기회를 만들어주면 세계의 여러 가난한 나라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취지는 공감하나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일이라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는 장기적 안목으로, 기업은 ‘부(富)의 현지사회 환원’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정당화가 가능합니다. 삼성·현대차·LG·SK·한화 등 대기업들은 이미 국적을 초월한 글로벌 기업이 되었거나 이를 지향해나가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서 돈을 벌었으면, 그 나라에 일부 수익을 환원하는 것은 더 큰 부를 창출하기 위한 지속성 있는 마케팅 전략입니다.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은 무턱대고 돈을 퍼주는 것이 아니고 그 나라 국민이 원하는 공익사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펼치는 사업이 한 좋은 예입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이런 성숙도를 가지고 세계시장을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우리 재미과협은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고 이런 한국 정부와 기업의 공익사업에 동참할 기회를 만들어달라는 것일 뿐입니다.”
 
  ― 미국이 세계의 중심지이니 그곳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이야 많겠지요.
 
  “한국은 지금 4차 산업혁명만 이야기할 때가 아닙니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4차, 5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한국은 땅덩어리의 면적으로 보면 작지만 경제력은 엄청납니다. 밖에서 볼 때 한국의 기술력으로는 이 큰 경제를 더는 성장시키기 어려워 보입니다. 한국의 대학은 많이 발전했고 연구 능력도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고도성장을 위해서는 질(質)의 문제와 아울러 기술인력의 절대적 숫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모국(母國)인 한국을 응원하고 도움을 주려는 수많은 재외 동포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을 숫자로, 역량으로 계산하고 또 그들이 사는 현지의 비(非)한국계 네트워크를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과학인력, 많이 부족해”
 
  ― 우리의 자체 과학 기술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정예부대는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G7, G6, G5로 가기 위한 고급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게다가 박사 학위 따러 미국으로 유학 가는 이공계 학생 또한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2010년에 1076명이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2020년에는 709명뿐이었습니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약 6배, 인도는 2배의 이공계 유학생을 미국에 보내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 과총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박사 중 65%는 미국에 남는다고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에 약 1만 명의 이공계 박사 학위 소지자가 미국에 갔는데 매년 350명만이 귀국하는 겁니다. 요즘 한국의 최대 고민 중 하나가 저출산인데, 이 문제도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와 재미과협은 미국의 동포들이 한국의 과학기술계, 산업계와 직접 연결돼 세계사에서 큰 챕터를 하나 쓸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서문원 박사는 “한국이 또 하나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의 좋은 대학만으로는 중국과 인도를 이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타국의 인재들을 국적 따지지 말고 영입,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삼성이 텍사스주, 현대차가 앨라배마주에 공장을 세우는 등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 러시’는 대단합니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대형 연구센터를 만든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GSK를 ‘영국 회사’, 지멘스(Siemens)를 ‘독일 회사’라고 하지 않고 미국에 있는 다국적 연구 중심 회사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이런 연구 중심 회사를 미국에 만드는 날이 곧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야 고급 두뇌가 국적에 관계없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인재 영입이 가능해집니다. 일각에서는 ‘연구소를 외국에 만들면 기술 유출이 우려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두려우면 글로벌 회사가 되지 못합니다. 모든 기술은 유출되고 유출된 기술도 얼마 안 되어 쓸모없는 기술이 됩니다. 유명한 저널에 발표된 기술은 이미 기밀이 아닙니다. 발표하는 이유는 교수가 논문 수를 늘려 진급하고 유명해지는 방법이지 돈을 벌기 위한 핵심 기술이 아닙니다. 우리가 핵심 기술이라며 꽁꽁 싸매는 것이 이미 남들도 다 아는 기술일 때가 잦습니다.”
 
  ― 고로 박사님은 예를 들자면 삼성의 미국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할 직원이 아니라, 삼성이 좋은 연구소를 미국에도 만들어 현지에서 일할 고급 인재를 찾아야 한다는 거군요.
 
  “기업이 살려면 기업 연구소가 살아야 한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오늘의 한국은 기업이 만들어낸 기적이고, 과학자, 기술자의 땀과 노력이 그 원동력이었습니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계속 이공계로 몰려가야 하고, 국내에서 그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면 해외에서 충원해야 합니다. 워싱턴의 조지타운대학은 중국에 총장특사를 파견해 중국 연구와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의 여러 대학에 ‘공자연구소’라는 것을 만들어 오다 요즘 많이 위축됐고, 일본은 오래전부터 미국의 여러 주에 정부 차원에서 재팬 센터를 만들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최근에 발족시킨 동포청이 앞으로 고국을 떠나 사는 동포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당연한 의무 외에 현지에 묻힌 과학 인재를 발굴하여 과학 외교에 앞장서게 하며 한국의 대기업, 중소기업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고 리크루트하면서 동포가 세계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주는 등 21세기에 맞는 새 사업을 펼쳐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윤석열은 과학흥국 꿈꾸길”
 
2018년 10월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조선일보 에너지산업 콘퍼런스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신산업’이 열렸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사진=조선DB
  서문원 박사는 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 더 진출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몇 해 전 미국 본토의 작은 공장을 사서 현지 법인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S 방직회사를 예로 들었다. S 방직의 회장이 서 박사에게 ‘미국에 진출하는 것이 수익성이 있느냐’ 물었을 때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 미국인데 우선 상륙하시고 이익은 만드셔야지요. 지금은 깃발을 꽂을 때 아닙니까?”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현재 S 방직은 몰려드는 미국 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할 정도여서 생산설비를 늘리고 있다.
 
  “물론 모든 기업이 미국에 진출해 성공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에서 언제까지 ‘보따리 장수’를 해야 합니까?
 
  무모하게 미국에 상륙하지 말고 가능성 타진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제안하는 ‘세종과학기술혁신센터’가 필요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미·중 관계가 경색된 상황이 우리에게는 ‘미국 상륙’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봅니다.”
 
  ― 과학기술로 미국 본토를 제패하겠다는 것은 좀 이상적으로 들립니다.
 
  “제패는 아닙니다. 큰 시장에서 더 큰 수익을 얻자는 것입니다. 저는 몽상가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를 하는 과학자입니다. 저는 모든 기업에 ‘앞으로 5년 안에 10배로 이익을 내게 해보라’는 무리한 요청을 합니다. 어렵죠 물론. 그런 계획을 세우지 못하겠으면 회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한강의 기적은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매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태평양에 혈관으로 해저터널을 만들어 동포들의 모세혈관 속 피가 대동맥이 되어 한국으로 흐르게 하자’고 말합니다. 이런 꿈을 꿔야 ‘T1 코리아’와 ‘과학흥국’이 성취됩니다.”
 
  ― T1 코리아요?
 
  “G7, G1은 뒤로 미루고 우선 기술·테크놀로지로 한국이 세계에서 1등 강국이 되자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입국’으로 성공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과학흥국’의 주역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윤 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보면 과학·기술·혁신·협력이라는 단어가 거듭 되풀이됩니다. 재미과협은 2년 전에 ‘세종과학기술혁신센터’ 초안을 만들었고, 지난해에 출범식을 가졌습니다. 미국이나 해외를 찾을 때 재벌 총수들도 가야 되지만 과학기술을 중시한다는 가시적 선전 효과만으로라도 과학자들도 데리고 갔으면 합니다. 현지의 과학자, 석학, 동포 과학자들과 만나게 하면 과학의 위상이 높아집니다. 한국의 스포츠, K 팝, 자동차가 미국 현지에서 깃발을 날리고 있는데, 한국의 기술과 과학이 왜 세계를 제패하지 못하겠습니까.”
 
  ― 윤석열 정부가 과학에 좀 더 치중하기를 바라시는군요.
 
  “대통령은 큰 꿈을 국민에게 같이 꾸게 하고 어려운 주문을 해야 합니다. 제가 1962년 미국 땅에 착륙하기 직전인 1961년 5월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우리는 10년 안에 달나라를 정복하겠다’는 꿈을 국민에게 심어줬습니다. 취임연설에서 ‘국민 여러분, 당신의 나라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 묻지 말고, 당신이 스스로 이 나라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여쭤보세요’라는 명연설로 미국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대통령도 실현되기 몹시 어려운 꿈을 국민에게 약속하면서 국민에게도 어려운 주문을 해줬으면 합니다. 이것은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든가 ‘주택난을 없애주겠다’는 등의 약속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과학, 기술, 혁신, 미래, 협치라는 단어를 공식석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은 긍정적 신호라고 봅니다. 지금은 국경 없는 시대입니다. 해외에 산재해 있는 한국계 과학기술인의 잠재력은 물 꼭지 틀듯 틀기만 하면 쏟아지게 돼 있습니다.”
 
 
  ‘한국결핍증후군'
 
  올해 87세를 맞은 서문원 박사는 매우 건강해 보였다. 또박또박한 말투와 일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에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뜻밖에도 ‘KDS’라는 고질병이 있다고 했다. 서 박사 스스로 붙인 이름인데 ‘한국결핍증후군(Korea Deficiency Syndrome)’이란다. 한국에 몇 번 오면 고쳐지나 했더니 계속 오는데도 고쳐지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저는 미국에 사는 2, 3, 4세를 보면서 이 아이들이 ‘잘사는 나라의 고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얘들에게 분명히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데 더러는 한국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 슬퍼집니다. 책임은 부모에게도 있고 동포사회와 모국 정부에도 있습니다. 재미과협이 한국의 호응을 얻어 실리콘밸리에 센터를 만드는 작업의 이면에는 한국인 2, 3, 4세에게 같은 정신적인 피가 흐르게 만들어야 하는 크나큰 과제가 있습니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일은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입니다.”
 
  이런 아픈 마음으로 서문원 박사는 1974년에 그가 살던 그린즈버러에 한국학교를 설립해 초대교장을 지냈다. 그는 지금 사는 도시 롤리에 있는 트라이앵글한국학교의 이사장직을 12년 만인 지난해에야 끝냈는데, 요즘도 한국학교 일이라면 밤중에도 벌떡 일어난다고 한다.
 
  서문원 박사를 기자에게 소개한 이는 그에 대해 ‘꿈을 가진 영원한 청춘이자 애국자’라고 칭했다. 그가 스스로 ‘한국결핍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말한 데에는 그가 미국 유학을 결정했을 때의 기억이 한몫하고 있다. 서 박사는 1962년 서울대 대학원 재학 중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는데, 필기시험 후 최종 인터뷰를 할 때 ‘한국에의 헌신’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한국의 GDP는 82달러, 노스캐롤라이나까지의 비행기 편도 요금이 무려 640달러인 때였다. 인터뷰 때 미 대사관의 참사관이 서 박사에게 비전을 물었을 때 그는 “섬유공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답했다. 답변 덕분이었는지 서 박사는 3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섬유공학 석사·통계학 박사를 마쳤다. 서 박사의 얘기다.
 
  “연이 닿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저는 한국에 빚진 사람입니다. 제게 장학금을 준 미국의 재단과 저를 선발한 시험관과의 약속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타국인 미국에서 한국이 인류 역사에 전례가 없는 발전을 이룩하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전공인 섬유공학과 통계학으로 틈틈이 삼성의 생산기획시스템, 전산시스템의 기초를 만드는 일에 이바지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보다 넓은 시야로 한국이 ‘과학흥국’이 되는 일에 밀알이 되고 싶습니다.”
 
 
  “학생은 왜 공부를 잘해야 되느냐”(이건희)
 
  그가 삼성의 일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특이한 이력 덕분이다. 서문원 회장은 서울대 공대 섬유공학과 재학 시절인 1957~1958년 2년 동안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같이 먹고, 자고, 놀고 공부하며 학습지도를 했다. 서 박사의 방은 2층에 있었고, 이건희의 방은 바로 옆이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의 서울사대부고 ‘7년 선배’이자 ‘과외선생’이었다.
 
  서 박사가 기억하는 이건희 회장은 범상치 않은 10대 소년이었다.
 
  “이건희 회장을 처음 만난 날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이 회장은 나를 심문하다시피 했는데 ‘학생은 도대체 왜 공부를 잘해야 되느냐’ ‘학생은 왜 꼭 정해진 시간에 공부해야만 하느냐’ ‘왜 중·고등학생은 영화관에 가면 안 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이와 비슷한 질문으로 나를 심문했고, 저는 궁색한 답을 만들어내기 일쑤였습니다. 제가 궁지에 몰리면 그는 ‘중앙극장에 오늘 한 번만 같이 가주면 내일부터는 꼭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예쁜 제안을 했고, 저는 여러 차례 그와 중앙극장에 갔습니다.”
 

  ― 타고난 협상가였을까요.
 
  “저는 그가 삼성을 대기업으로 만든 이면에는 이 협상 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믿습니다. ‘학생 이건희’는 틀에 박힌 패러다임을 우선 도전해보고, 관습의 테두리를 벗어나보려는 노력을 십분 제게 활용했습니다. 그 과정이 고통이었지만, 저를 늘 웃게 하는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하룻밤에 모가지가 몇 개씩 날아가”(이병철)
 
  서문원 박사는 그를 이건희 과외선생으로 ‘고용’한 고 이병철(李丙喆) 삼성그룹 창업주에 대해서도 많은 기억을 갖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서 박사에게 이건희 회장의 ‘개인 과외’를 맡기고 매월 마지막 날이면 저녁상, 조반상으로 초대해 “우리 건희가 선생님 시키는 대로 잘하고 있죠?”를 반복해 물었다. 식사 후에는 정중히 흰 봉투에 한 번도 통용되지 않은 지폐를 넣어 급료로 전달했는데, 이 자리에는 항상 이건희 회장의 어머님이 동석했다. 서문원 박사의 얘기다.
 
  “급료는 당시 매겨졌던 딱 그 수준에서 지급했습니다. 이병철 창업주와 사모님께서 너무나 정중하셨기에 그 모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네, 건희가 참 잘하고 있습니다’와 같은 겉치레 대답은 하지 못했고 제가 겪는 어려움과 고쳐나가야 할 점들을 낱낱이 고하는 자리였습니다. 저한테는 기업체 사장들의 월말보고, 국정감사와 비슷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제자 이건희는 순수하고, 참신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큐트(cute)한 10대 소년이었습니다.”
 
  그의 ‘이건희 과외선생’은 임무를 맡은 지 2년이 넘는 어느 날, 서 박사가 징집돼 논산훈련소로 가게 되면서 끝이 났다. 이후 서 박사가 1962년에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학생 이건희’와는 작별했다.
 
  서 박사는 1971년에 임시 귀국했을 때 이병철 창업주를 잠시 만났다. 이병철 창업주는 서 박사에게 삼성으로 올 것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의 ‘전임 이건희 과외선생’이었던 최경탁(崔京鐸)씨는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삼성전자공업 이사를 역임 중이었다. 그는 훗날 동서식품 사장을 지냈다. 서문원 박사의 얘기다.
 
  “이병철 회장께서 ‘자네는 미국에서 무슨 공부를 했나’고 묻기에 ‘통계학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확률론이라는 것을 전공했는데 통계학의 극한치 이론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좀 더 쉽게 풀어서 ‘머리카락을 반으로 쪼개는 공부를 했다’고도 했습니다. 이병철 회장님은 제 얘기에 웃지도 않고 벽을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시더군요. ‘우리나라는 머리카락을 반으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하룻밤에 모가지가 몇 개씩 날아가네. 자네는 미국에서 공부를 더 해서 크게 되면 좋겠어’라고 하시더군요.”
 
  이병철 당시 삼성 회장은 대신 서 박사에게 섬유공학과 통계학으로 제일모직의 자문역을 맡도록 했고, 삼성의 생산기획시스템, 전산시스템의 기초를 만드는 일에 이바지할 기회를 줬다.
 
 
  “Yes, I have a dream”
 

  서 박사는 틈틈이 한국을 찾았고,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다시피 한 상황에서도 두 차례나 자가격리를 하며 한국에 왔다. 서문원 박사의 얘기다.
 
  “이건희 과외선생으로서의 경험은 제가 미국에서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교수로, 또 한국인 2세를 사랑하며, 안타까워하고, 더 큰 세계 시민으로 살아주기를 바라며 지난 50년을 살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학생 이건희’에게 무한 감사하는 부분입니다.”
 
  ― 세종과학기술혁신센터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계속 한국에 오실 예정입니까.
 
  “한국에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는 타령이 있지요. 제 심정이 바로 그거입니다. 저는 한국이 기술 1등 국이 되고, 한국 국민이 세계 1등 국민이 되는 것을 보고 죽을 겁니다. 그러려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죠?(웃음) 제가 살아생전에 이 일이 이뤄지지 않아도 저는 우리 아빠가, 우리 할아버지가 이런 꿈을 꾸고 실현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꾸준히 한국에 와서 그 업무를 수행해야겠지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을 빌려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다, 나는 꿈이 있다!(Yes, I have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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