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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新경영 30주년

지금의 삼성 기초 만든 1993년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완전히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도 망하고 나라도 망한다”(이건희 회장)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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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거면 공장 세워!” 50대 초반 회장이 불러일으킨 삼성의 변화
⊙ 이건희의 분노 후 삼성그룹 CEO들이 제출한 자필 반성문의 내용은…
⊙ 7-4제 전격 시행, “시간 내 효율적으로 일하는 게 세계화이고 경쟁력 강화하는 길”
⊙ “대한민국이 잘돼야 국민이 밖에서 무시를 안 당한다고”… 국가와 미래를 생각한 이건희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호텔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삼성에 1993년 6월은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호텔에서 임원들을 대상으로 70여 분에 걸쳐 강의를 했다. 삼성 신(新)경영의 시작점으로 불리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이후 이 회장은 약 3년간 쉴 틈 없이 삼성 전 직원을 향해 21세기를 대비하기 위한 완전한 변화를 요구했고, 이 시기 삼성의 변화는 현재 세계 반도체와 스마트폰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초일류 삼성의 기반을 닦았다.
 
  2023년의 삼성은 30년 전에 비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위기도 찾아왔다. 2023년 1분기 삼성전자의 실적은 14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 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와 비교하면 95.8%,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86% 급감한 수준이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1조원 이하를 기록한 것은 200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때문에 IT 제품 수요가 줄었고, 반도체 수요와 가격 모두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삼성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삼성은 신경영 30주년을 특별히 조명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쳤다. 그러나 언론은 신경영 30주년을 앞다퉈 보도했다. 삼성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30년 전 이건희 회장이 부르짖은 신경영을 다시 돌아보고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新경영이란…
 
삼성 이건희 회장이 2011년 7월 삼성전자 수원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선진제품비교전시회ʼ 참석 후 구내식당에서 사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이건희 회장이 내건 신경영의 핵심 내용은 ‘양(量)이 아닌 질(質) 위주의 경영’이다. 당시 재계 1위가 아니었던 삼성을 일류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이 회장이 세운 구체적인 목표는 제조공정에서 불량품 생산율을 0에 가깝게 줄이는 것, 인사(人事)에 양이 아닌 질을 100% 반영하는 것,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효율적으로 마치는 것,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 등이었다. 그는 임원들을 향해 “금성사(현 LG전자), 대우보다 물량 떨어져도 되니 질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호통을 쳤고, “100불(달러)짜리를 제발 80불에 팔지 마라” “불량품 여러 대 나오는 공장은 당장 멈추라”며 매출 규모보다 상품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또 능력에 따른 급여 차등화, 고졸·여성 사원 차별 철폐, 파벌 금지, 유연근무제 등 삼성의 근간을 형성한 인사제도가 대부분 이 시기에 완성됐다.
 
  이 회장이 신경영을 추진하는 방법으로 강조한 것은 ‘변화’였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할 정도로 변화를 부르짖었던 그는 “1950~1970년대에 조금 늦는 것과 1990~2000년대에 조금 늦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며 “지금 늦으면 완전히 기회 상실을 하는 것이고, 이걸 내가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임직원들을 향해 극적인 수준의 변화를 요구했다. 끊임없이 변화를 강조한 이 회장의 얘기다.
 

  “오래된 회사일수록, 자산이 많고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나태와 권위주의가 있고 개인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가 우글거려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으면 21세기에는 오그라들게 돼 있는 게 내 눈에는 보여. 임직원들이 자기 업에 프라이드를 갖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 기업이 다른 기업과 차원이 달리 인류와 민족에 공헌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노사 불화고 뭐고 다 없어지고 그 결과가 저절로 이익으로 나오고, 이익은 물론 대국민 이미지도 좋아져.”
 
 
  7–4제를 시행한 이유
 
  사실 ‘신경영’이라는 단어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1987년부터 강조해 온 것이었다. 삼성의 신경영이 본격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이 시기에 전격 실시된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때문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한 지상파 방송이 고스란히 방영했고, 7–4제는 수만 명에 달하는 삼성인의 생활패턴을 바꾸면서 그들의 가족, 그들을 대상으로 한 소상공인들의 생활 패턴도 바꿨다. 많은 사람이 삼성의 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희 회장은 이때 “내가 1987년부터 그렇게 신경영을 이야기해도 변화가 없더니 언론과 국민이 주목하기 시작하니 (삼성) 내부에서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고 토로하며 강하게 신경영을 추진해나갔다. 7–4제의 확실한 시행도 주문했다.
 
  “7–4제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각한 게 아니야. 선진국에서는 7–4제, 8–5제, 6–3제 다 섞어서 하고 있는데 러시아워를 피하고 일의 효율은 높이면서 개인 시간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목적이야. 일을 선진국처럼 8시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목적이고 일을 그렇게 해치우지 않으면 선진국을 따라갈 수 없어. 당장 효율이 나오진 않을 거야. 5년,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하지만 스스로 개발하고 스스로 발전하지 않으면 절대 안 돼. 4시 퇴근 후 골프를 치든 낮잠을 자든 그림을 그리든 맘대로 해. 뭐든지 철저히, 열심히 하면 개인 능력이 저절로 나오게 돼 있어. 임원들은 직원이 언제 퇴근하는지, 퇴근 후 뭘 하는지 묻지도 마. 내 말 듣는 척하면서 그런 거 묻지 말라고. 야근까지 하며 12시간 동안 하던 일을 8시간 안에 하라면 처음엔 힘들겠지만 익숙해져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8시간이 아닌 6~7시간 내에도 일을 끝낼 수 있는 효율을 갖게 돼. 그게 바로 세계화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야. 7–4제의 최종 목표는 21세기 인력 수준을 상향조정 하는 거라고. 분야별로 천재급이 하나씩 있어야 돼. 과거 17세기에는 왕이나 영주를 위해 수만 명의 노예가 일을 했잖아. 앞으로 21세기는 한 사람의 천재가 100만 명을 거둬 먹여 살리는 시대야. 반도체 발명한 사람, 소프트웨어 발명한 사람 봐봐. 본인도 부자가 됐지만 이걸로 수천만 명이 잘살게 됐다고. 이게 앞으로의 21세기 인재와 조직의 기본 형태야.”
 
 
  ‘잘사는 나라’ 만들고 싶어 한 이건희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삼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 회장은 “나라가 잘살아야 기업도, 국민도 대접을 받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기업과 사회, 국가는 별개가 아닌 하나의 존재였다. 이 회장의 얘기다. “내 재산이 1조원, 2조원 늘어나면 뭐 해. 내가 이렇게 밤새 고민하고 고함지르고 하는 게 나나 삼성이 잘되려고 하는 거야? 대한민국이 잘돼야 국민이 밖에서 무시를 안 당한다고. 삼성 임원이라면 국가적, 사회적인 책임감도 가져야 돼. 지금 우리가 완전히 안 바뀌면 격변하는 21세기에 절대로 잘살 수가 없어.”
 

  이 회장은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면서 이와 함께 대한민국도 일류국가로 우뚝 서길 원했다. 1980~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수한 인재들은 전문직, 공직, 은행 등 업종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었다. 이 회장은 ‘기업인, 월급쟁이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삼성 직원들의 급여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면서 “삼성 직원이라면 집 한 채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임직원의 의식주와 건강, 자녀와 부모 등 가족을 회사의 영역으로 갖고 와 걱정 없이 살게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사원복지는 물론 사회복지에도 관심을 쏟고 “아이들이 잘 못 되면 나라에 미래가 없다”며 ‘달동네’에 보육시설을 짓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도 지시했다. 또 “사회 소외계층 돕는 데 이익의 10%를 써라” “공장 지을 때 양로원, 탁아소, 가족들이 쓸 수 있는 운동장 같이 지어라” “중소기업 연수원을 우리(삼성)가 지어줘라” “삼성 임원은 애사심은 물론 국가와 사회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는 “이익을 철저하게 내서 종업원과 투자자, 주주들에게 최대 이익을 주고 인류에 공헌하고, 그리고 남은 돈은 재분배해야 돼. 삼성이 벌어들인 이익을 우리가 좀 더 가져간다고 이 나라가 나아지나? 벌어들인 만큼 사회에 베풀어야 되는 거야”라고 했다.
 
 
  국가와 미래로 확대된 新경영
 
  이건희 회장은 이 밖에도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프라”라며 “철강, 반도체, 자동차, 전자, 도로, 이동통신까지 지금 안 하면 우리가 후대에서 원망 듣는다”고 강조했다. 인구 집중과 교통 등 도시화 문제가 심각해지던 서울시를 복합화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의료와 제약 산업이 21세기에 꽃필 것이라고 예상하고 의과대학 신설, 세계적인 제약회사 인수, 의료복합단지 구성 등을 계획했다. 이 밖에도 문화, 예술, 스포츠, 보육, 안전, 시니어, 애견, 패션 등 손을 뻗지 않은 산업이 없었다.
 
  이건희 회장의 미래 예측 능력은 지금 봐도 놀라운 수준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에 ▲1997~1998년에 우리나라에 진짜 불경기가 온다 ▲지금 제1, 2 이동통신에서 곧 4, 5이동통신 시대가 온다 ▲10~15년 후에는 카드 하나로 전 세계에서 결제도 되고 전화도 되는 세상이 온다 ▲21세기엔 개인이 전부 전화를 갖고 세계 어디에서도 전화가 다 된다 ▲자동차는 기계가 아니라 정보통신(IT) ▲물(水)사업을 연구해라. 21세기엔 물이 더 중요해진다 등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예측을 다수 내놓았고 그의 예측은 모두 현실이 됐다. 2023년의 삼성은 2053년의 세계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을지 주목할 만하다.⊙
 
삼성그룹 CEO들의 자필 반성문
 
1990년대 초반 삼성그룹 CEO들이 이건희 회장에게 제출한 자필 반성문. 사진=월간조선DB
  이건희 회장의 분노(忿怒)는 삼성 변화의 동력 중 하나였다. 이 회장은 신경영의 추진에 제동이 걸리는 상황에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안전사고 등 심각한 상황이 닥쳤을 때는 임원들을 향해 “자필로 반성문 써서 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최근 발간된 《더 리얼 이건희》(조선뉴스프레스 간)는 삼성그룹 계열사 CEO들이 이건희 회장에게 자필로 써서 제출한 반성문과 시말서 등을 최초 공개했다. 이건희는 신경영 본격 추진 후 그룹 회장단 회의를 자주 주재했는데, 신경영 추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 안전사고가 터졌을 경우 등 심각한 상황이 닥치면 회장들에게 “자필로 반성문을 작성해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남아 있는 ‘반성문’은 1994~1996년 계열사 회장(CEO)들이 작성한 것이다. 제목은 반성문, 자성문, 시말서, 반성과 각오, 개인의 반성 등으로 다양하다. 반성문을 제출한 인물 중에는 이건희와 인척이나 사돈 등 관계인 이른바 ‘로열 패밀리’도 포함돼 있다. 아래는 삼성 CEO들이 자필로 쓴 글 일부다.
 
  “회장의 분신으로서 철학과 사상을 반영할 수 있는 경영을 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겠습니다. 21세기를 향한 그룹의 발전에 반드시 족적을 남기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금융계열사 A회장)
 
  “이번 반성모임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음미해보고 지금까지 저의 의식과 태도를 깊이 반성하였습니다. 회장님의 말씀을 테이프로 듣고 회장님의 철학과 의지를 새삼 느꼈고, 한편으로는 그 당시 저는 왜 그렇게도 감각이 없었을까 후회도 했습니다.”(금융계열사 B회장)
 
  “매사 일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전, 사후관리에 철저를 기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홀히 하고 적극적이지 못하였던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다시는 이러한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오를 단단히 하면서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제조계열사 C회장)
 
  CEO들은 각자 1~4장 분량의 자필 반성문을 쓰고 서명해 비서실에 제출했다. 4장을 빽빽하게 채운 CEO도 있었다. 이건희의 카리스마가 어느 정도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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