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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제2의 삼성전자를 찾아라! ② 국민의 생활건강을 半세월 책임져 온 LG생활건강

화장품·생활용품·음료 포트폴리오로 14년 연속 매출·이익 성장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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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석용 부회장의 ‘내진설계’ 철학, 메르스·중국의 사드보복 속에서 흔들림 無
⊙ 14년 만에 주가 44배 늘어… 주당 124만원대인 코스피 대장주
⊙ ‘국민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겠다’는 연암 구인회 LG창업주의 魂이 녹아 있어
  지난 2009년 1월. LG생활건강 본사의 화장실 곳곳에는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폐허가 된 동경 시내에서 원형을 유지하고 우뚝 서 있는 건물은 ‘프랭크 L.라이트’가 설계한 임페리얼 호텔이 유일했습니다. 엄청난 대지진이 올 수 있다는 가정 아래, 훨씬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내진설계’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도 이런 ‘내진설계’를 위해 첫째, 사업의 흥망과 상관없이 발생되는 고정비를 최대한 줄여야겠습니다. 둘째, 경영의 스피드를 높여야겠습니다. 셋째, 사업 분야를 다양화해야겠습니다.〉
 
  차석용 당시 LG생활건강 사장의 ‘CEO 메시지’였다. 그는 3~4개월마다 화장실의 ‘CEO메시지’를 교체한다. 매일 화장실을 오가는 사원들의 머릿속에 문구가 깊이 박혔다.
 
  지난 2018년 1월 신년회,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이 강단에 섰다.
 
  “국내를 뛰어넘어 아시아의 대표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어떠한 외부환경, 변화에도 사업이 흔들리지 않도록 내진설계를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그의 입에서 또다시 ‘내진설계’라는 단어가 나왔다. 10년 만이다. 오늘날 LG생활건강의 경쟁력을 함축시키는 단어다.
 
  지난 10년간 국내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내수가 위축됐고, 중국발(發) 사드보복으로 중국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우리 기업들의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LG생활건강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CEO의 확고한 ‘내진설계’ 철학 덕분에 오히려 이 회사의 실적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매년 ‘사상 최대’ 매출 기록 경신
 
  ‘차세대 삼성전자를 찾아라’의 두 번째 주인공은 LG그룹의 주력사인 LG생활건강이다. 업계 1위인 회사는 ‘일등LG’를 표방하는 LG그룹의 기치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지난 6월에 발표한 미 〈포브스의 100대 혁신기업〉에서 LG생활건강은 27위에 랭크돼 있다. 이웅희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차세대 삼성전자’를 선정하면서 “한류 문화 콘텐츠 외에 K-뷰티의 성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화장품 수출은 50억 달러로 게임 산업보다 수출액이 많다. LG생활건강은 국내 매출 96위의 우량 기업”이라며 “화장품 제품 개발에 주로 집중한 아모레퍼시픽은 중국발 사드보복 이후에 실적이 주춤하지만, LG생활건강은 전략적인 사업다각화와 M&A 전략으로 사드보복 같은 악재 속에서도 14년째 성장세를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의 주가는 123만6000원(2018년 9월 6일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19조4000억원대다. 코스피 종목 16위에 랭크돼 있다. 회사 매출은 6조2700억원대, 순익은 6100억원대(2017년 말 기준)다. 이 수치는 올해 경신될 가능성이 크다. LG생활건강은 올 2분기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상반기 매출 3조3000억원대, 순익 3800억원대였다. 이 같은 실적이 하반기까지 이어질 경우, LG생활건강은 올해 연말쯤 ‘사상 최대의 매출과 이익’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를 기록할 것이다.
 
 
  2001년 LG화학의 한 부문에서 독립법인으로 전환
 
LG생활건강은 지난 2007년부터 음료 회사를 인수해 회사의 영역을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 부문으로 넓혔다. 사진은 LG생활건강이 생산하고 있는 음료 제품들.
  LG생활건강은 대한민국의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를 제조·판매하는 회사다.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인 ‘후’·‘숨’·‘오휘’·‘빌리프’,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인 ‘이자녹스’·‘수려한’·‘비욘드’·‘보닌’·‘더페이스샵’·‘CNP차앤박 화장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생활용품은 ‘페리오, 죽염’·‘엘라스틴’·‘온:더바디’·‘리엔’·‘테크’·‘샤프란’ 등이 있다. 음료 부문에서는 ‘코카콜라’·‘스프라이트’·‘미닛메이드’·‘씨그램’·‘토레타’ 등을 판매하고 있다.
 
  LG생활건강 사사(社史)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은 2001년 4월에 일어났다. 당시 LG생활건강은 LG화학의 한 부문이었다.
 
LG생활건강이 생산하고 있는 화장품과 생활용품들.
  LG그룹은 회사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고, 첫 타자로 LG화학을 선택했다. 석유화학·정보전자소재·산업재 등을 화학 부문으로, 생활용품·화장품을 생활건강 부문으로, 생명과학과 출자관리 등을 기존 법인 부문으로 분리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그 결과 LG화학에서 분할한 LGCI(18%), LG화학(66%), LG생활건강(16%)이 출범했다. 이들 3개 회사는 각각 이사회를 열어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독자경영체제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에서 지주회사법이 제정된 이래, 제조업 분야에서 최초의 지주회사가 탄생했다.
 
  LG화학의 한 부문이었다가 독립법인이 된 LG생활건강의 포부는 남달랐다.
 
  “생활용품 사업에서 확고한 1등을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우위를 더욱 강화하고, 화장품 사업에서는 기능성 화장품 시장에서 1위 품목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시장 1위 도약 기반을 구축하겠다.”
 
  LG생활건강은 독립법인 첫해에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2002년부터 성장성과 수익성을 고려해, 치약, 샴푸 등 생활용품 6대 제품군에 마케팅을 집중하고, 화장품 방문 판매 시장을 늘려갔다. 하지만 회사 분할과 동시에 회사는 고비를 맞게 된다. 국내 경기의 급격한 위축으로 2003년과 2004년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곤두박질쳤다.
 
 
  LG의 구원투수, 차석용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14년 연속 매출 상승을 이끌었다.
  2004년 12월 말. 해태제과 사장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차석용 사장 되십니까? 아무래도 저희 LG생활건강을 맡아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영광입니다.”
 
  전화를 건 이는 LG그룹의 고위 관계자, 받은 이는 당시 해태제과를 맡았던 차석용 사장이었다. 이렇게 단 두 마디로 차석용 사장과 LG의 인연이 시작됐다. 차석용 부회장은 먼 훗날 이렇게 말했다.
 
  “연봉이 얼마인지, 어떤 조건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연봉 액수는 첫 출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LG의 정도경영과 인재중심주의에 대한 신뢰 때문에 제안을 받자마자 LG행(行)을 결정했다.”
 
  차석용 부회장과 LG생활건강의 만남이 재계에서 최고의 ‘궁합’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석용 부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자율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기회를 얻었고, LG생활건강은 CEO의 역량 덕분에 향후 반세기를 책임지는 강한 회사로 거듭날 토대를 마련했다. LG생활건강 안팎에서는 ‘차석용이 오기 전(前)과 후(後)의 회사’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친 차 부회장은 미 P&G 본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한국P&G, 해태제과 사장을 지낸 샐러리맨의 신화다. 전문경영인으로서 국제 감각과 경영 능력을 쌓은 그는 경험을 토대로 변화와 도전을 즐기는 최고 경영자였다. 차석용 부회장의 ‘CEO로서의 실력’에 대해서는 숫자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입증이 된다. 그는 LG생활건강 경영을 맡은 후, 50분기 이상 매출과 영업이익을 모두 올렸다. LG생활건강은 업계에서 유일하게 지난 14년간, 매년 지속적으로 성장을 해왔다. 업계에서는 전무후무한 일로 평가를 한다.
 
 
  차석용, 부임하자마자 음료 부문으로 사업 확대
 
  차석용 부회장이 부임하기 전 LG생활건강의 매출은 생활용품에서 70%, 화장품에서 30%가 나왔다. 차 대표는 이 시스템부터 싹 뜯어고쳤다. 그는 “회사의 미래를 위해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처음 눈독 들인 것은 2007년, 호주 코카콜라아마틸이 대주주인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이라는 회사였다. 이 회사는 코카콜라 원액을 납품받아 물과 배합해 콜라를 생산, 유통시키는 회사다. 이 회사가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자 SPC그룹, 웅진그룹 등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식품 음료업계의 뜨거운 이슈였다. 여기에 생활용품과 화장품 사업을 해온 LG생활건강이 참여하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당시 M&A 전에 뛰어들었던 관계자의 말이다.
 
  “화장품 업체들이 건강·미용 식품에 관심을 기울인 경우는 있었지만 ‘음료’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LG생활건강의 행보에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청량음료 사업은 마진 하락 압박이 계속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이익을 내기 쉽지 않고, 자연주의 트렌드가 대세인 상황에서 청량음료 사업이 LG생활건강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인수전이 LG생활건강과 SPC 2파전으로 압축된 후에는 제품군과 연관성이 높고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던 SPC가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을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반대였다. SPC가 LG생활건강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LG생활건강이 회사를 품에 안았다. LG생활건강의 명확한 비전과 역량에 ‘LG’라는 브랜드 가치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LG생활건강은 음료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장기적으로는 화장품과 생활용품 위주였던 회사 사업에 음료 사업을 포함시켜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었다. 이후 차석용 부회장은 다이아몬드샘물(2009년), 한국음료(2010년), 해태음료(2011년)를 인수하며, 화장품과 생활용품 위주였던 회사의 포트폴리오 구조를 뜯어고쳤다.
 
  음료 사업의 M&A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차 부회장은 화장품 업체 인수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바이올렛드림(구 보브)과 일본 화장품 업체 긴자스테파니(2012년), 캐나다 바디용품업체인 Fruits&Passion(2013년)을 인수했다. 국내의 알짜배기 업체도 그의 손에 들어왔다. ‘차앤박 화장품’으로 유명한 CNP코스메틱스를 2014년 인수했다.
 
  이로써 LG생활건강은 생활용품, 화장품, 음료 3개 사업부 진용을 갖추게 됐다. 차 부회장은 “바다에서도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에 좋은 어장이 형성되듯 서로 다른 사업 간의 교차지점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창출된다. 기존 생활용품과 화장품 사업 사이에는 교차점이 한 개뿐이지만, 음료 사업의 추가로 교차점이 3개로 늘어나면서 회사 전체에 활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머지않은 미래에 내수 경기 침체와 중국의 사드 악재로 인해 화장품 부문이 고전을 면치 못할 때에도, 회사의 매출이 오히려 상승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CEO의 ‘선구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차석용式 M&A가 성공한 이유
 
  차석용 부회장이 LG생활건강의 사령탑을 맡은 이후에 회사는 총 20여 개의 M&A를 했다. 너무 과감한 결정은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차석용 부회장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에게서 성장이라는 단어는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명제 중 하나다. 회사 경영에 있어서도 성장이 멈춘 기업은 성장이 멈추어 노쇠기로 접어든 생명체처럼 생기를 잃고 가진 것을 지키려는 데 (‘Not to lose’) 치중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성장을 지속해야 한다. 기업은 성장하기 위해서 기존 시장, 사업 영역에서의 성장(Organic Growth)과 M&A를 통한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사업 영역에서의 성장(Acquired Growth)을 추구하고 있다. ‘사업 영역에서의 성장’은 많은 기업이 추구하기 때문에 눈에 덜 띈다. M&A를 통한 ‘새로운 사업 영역에서의 성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기 때문에 이 영역에 특히 공을 들이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의 말이다.
 
  ― LG생활건강이 음료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섰을 때 뜬금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LG생활건강의 기존 사업과 M&A로 새롭게 진출하게 된 음료 사업의 연관성은 우선 생활용품 사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생활용품과 음료 모두 대형마트, 슈퍼 등을 주요 유통망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음료 사업에 진출하면 유통 채널 측면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봤습니다. 또 화장품 사업은 상대적으로 여름에 약세인데, 이를 여름이 성수기인 음료 사업이 보완함으로써 계절 리스크를 상쇄하고 연간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가질 것으로 봤습니다.”
 
  ― 차석용 부회장의 M&A에서 ‘승자의 저주’는 없었습니까. M&A의 원칙이라고 하면요.
 
  “첫째, 안정적인 사업 기반 위에서 M&A를 실행했고, 둘째 명확한 중장기 전략과 원칙에 부합하는 대상을 엄선했고, 셋째 인수 이후 사업정상화에 필요한 핵심 과제를 조기 실행했기 때문에 M&A가 성공했습니다. 차 부회장만이 갖고 있는 M&A 원칙입니다.”
 
  ― M&A는 큰 리스크를 수반하는 일로 우리 풍토에선 오너 경영인의 결단 영역으로 간주됩니다. 성과를 결과로 입증한 지금이 아닌, 재임 초창기에는 전문경영인인 차 부회장이 M&A 전략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M&A는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요소들을 많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첫째, 잘되는 회사가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아주 적기 때문에 그런 회사를 산다고 할 때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부실하고 문제가 많은 회사를 살까’ 하는 의구심을 가집니다. 둘째, 회사가 매물로 나오면 적정한 가격에 인수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경험 많은 주간사를 끼고 공개입찰방식에 의해 매각을 진행하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형성됩니다. 이럴 경우 회사를 인수하면 ‘승자의 저주’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셋째, 인수 후에 문화와 성장 과정이 다른 피인수 회사의 사업을 우리 회사의 문화와 융합해 시너지를 내야 하는데 이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M&A는 적정한 가격에 성사시키기도 어렵고, 성사가 되더라도 턴어라운드시키기도 어렵고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는 일은 더욱더 어렵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모두가 아주 실패하기 쉬운 과정들이라 오너가 결단력을 가지고 주위의 반대에 관계없이 밀어붙일 때에만 가능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LG생활건강이 진행했던 M&A도 오너의 사업가 정신과 전문경영인에 대한 격려와 믿음이 없었다면 중도에서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차 부회장은 마케팅을 가장 중시한다. 그는 ‘마케팅이란 차별화되고(Different), 더 좋은(Better)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과의 특별한(Special) 관계를 맺어가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 핵심 요소는 ‘창의력’이다. 차 부회장의 집무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임원이나 팀장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필요하면 거리낌 없이 들어가서 차 부회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LG생활건강의 일상적 풍경이다. 회의 횟수를 대폭 줄였고, 필요한 회의는 모두 1시간 이내에 끝낸다. 불필요한 회의 대신에 차라리 그 시간에 ‘고객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자는 것이 차 부회장의 생각이다.
 
 
  연암 구인회 창업주의 혼이 녹아 있는 LG생활건강
 
故 연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LG생활건강이 오늘날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자랑하며 국내의 대표기업으로 우뚝 섰지만, 이 회사가 가진 의미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LG그룹의 정신과 혼이 담긴 회사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LG그룹의 모태 기업이기도 하다.
 
  1945년 8월, 해방이 찾아오면서 전쟁으로 위축됐던 경제활동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주와 고향을 오가며 때를 기다리던 연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진주보다 더 큰 도시인 부산에서 기업가의 꿈을 펼쳐보기로 하고, 그해 11월 부산에서 ‘조선흥업사’를 세웠다. 이는 미 군정청 허가를 받은 무역점 1호 업체였다. 연암의 생각은 확고했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화장품은 영원하다.’
 
연암 구인회 창업주가 부산 서대신동에 차린 락희화학의 전경. LG생활건강의 초창기 제품이 이곳에서 생산됐다.
  화장품 판매업으로 시작한 연암 구인회 창업주는 이후 제조업으로의 진출을 모색했다. 경남 진주에 남겨뒀던 구인상회를 매각하는 등 전 재산을 투자해 화장품 원료인 ‘글리세린’을 사들였다. 부산 서대신동에 위치한 구인회 창업주의 자택은 화장품 생산공장으로 바뀌었다. 첫 시제품의 이름은 바로 ‘럭키(Lucky)’였다. LG그룹의 과거 사명인 ‘럭키금성그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럭키크림’은 당시 외제 화장품이 장악하고 있던 부산 화장품 시장에 새로운 도전장을 던졌고, 높은 판매율을 앞세워 연암 구인회 창업주는 1947년 1월 5일, 락희화학공업사를 만들었다. 회사를 만든 뒤, 1년 동안 럭키크림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문제는 크림통 뚜껑이 자꾸 부스러지는 것이었다. 연암 구인회 창업주는 락희화학을 통해 깨지지 않는 뚜껑의 연구를 시작했고, 합성수지를 이용한 뚜껑의 비밀을 밝혀냈다. 한국 플라스틱 공업의 출발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1952년 10월, 합성수지 제품 생산을 전담하기 위한 동양전기화학공업사가 설립됐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 위에 모든 것을 새롭게 쌓아 올려야 하는 우리에게, 연암은 자신의 힘을 보태고 싶었다.
 
  “국민 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연암 구인회 창업주는 값싸고 편리한 생활용품을 공급기로 결정했고, 빗·비눗갑·칫솔·식기류 등의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해 국민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렸다. 연암이 화장품을 만들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치약이었다. 당시 국내에는 가루 치약이 일부 생산, 유통되고 있었을 뿐, 크림 타입 치약은 ‘콜게이트’ 치약 같은 미국의 유명 상표가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크림 타입 치약 제조기술은 매우 까다로워서 당시의 열악한 기술 수준과 환경에 비춰볼 때, 자체 생산은 시도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1960년대 거리를 누빈 럭키치약 광고 차량.
  하지만 연암은 포기하지 않았다. 곧장 치약 개발을 지시했고, 첩첩산중의 어려움을 거쳐 1955년 초에 국내 최초의 크림 타입 치약인 ‘럭키치약’을 세상에 내놨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국산 치약’이었다. 하지만 ‘치약은 미제’라는 상인들의 고착된 인식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연암은 다양한 가격 전략을 통해 출시 3년 만인 1958년부터 콜게이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럭키치약’을 치약의 대명사 반열에 끌어올렸다.
 
  ‘글리세린’은 치약의 품질을 좌우하는 습윤제로서 치약 원료의 20~30%를 차지할 만큼 중요했기에, 락희화학은 글리세린 생산이라는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출했다. 락희화학은 1959년 락희유지공업을 설립하고, 1960년부터 글리세린을 생산, 무지개·비너스·레몬비누·벌꿀배합비누와 뽀뽀비누 등 다양한 화장비누와 세탁비누를 생산해 소비자들의 큰 인기를 모았다. 1966년에는 경기도 안양공장을 설립, 국내 최초의 합성세제인 ‘하이타이’와 ‘뉴히트’를 생산했다. 이후 주방용 액체세제 ‘에이퐁’과 두발용 제품인 ‘크림샴푸’(1967년)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내 생활용품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왔다. 락희화학은 1960년대에 빠른 외형 성장으로 우리나라 화학공업계를 주도하는 대표 기업으로 그 지위를 굳건히 했다. 1969년도 각 부문별 매출 구성비는 유지사업부 39.5%, 플라스틱 사업부 34.5%, 비닐사업부 26% 순이었다.
 
  락희화학, 국내 최초로 치약에 이어 합성세제 개발에 성공. 락희화학의 자매사인 락희유지가 국내 최초로 합성세제를 개발한 데에는 후발 기업으로서의 고뇌와 분투가 담겨 있다. 1962년 허신구 상무는 일본과 동남아 지역을 순방하면서 합성세제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고 개발을 결심했다. 처음에 반대가 적지 않았으나, 1964년부터 금성사가 세탁기 개발에 착수해 합성세제 개발에 탄력이 붙었다. 경쟁사였던 애경유지와 치열한 개발 경쟁을 벌인 끝에 락희유지가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공장을 준공하고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1966년 4월, LG역사 신문 제3호.)
 
LG생활건강이 1980년대에 생산했던 세탁세제 제품들.
  1960년대 말, 럭키그룹의 사세는 이미 굴지 그룹 반열에 올랐다. 1947년 설립된 모기업 락희화학을 비롯해 반도상사(1953년), 금성사(1958년) 등 11개의 자매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1969년 총 매출 260억원, 총 수출액 100만 달러였다.
 
  1969년 12월 31일, 연암 구인회 창업주의 타계로 구자경 그룹 명예회장으로의 2세 시대가 열렸다. LG생활건강은 LG그룹의 명맥과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그룹의 모태이다.
 
 
  경쟁사보다 늦게 출시한 궁중 화장품 ‘후’가 성공한 이유
 
단일 브랜드로 매출 1조원 시대를 연 럭셔리 화장품 ‘후’. 13년째 톱스타 이영애가 광고 모델을 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이 지난 2003년에 내놓은 궁중화장품 브랜드 ‘더 히스토리 오브 후’는 LG생활건강의 대표 브랜드이자, 매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단일 브랜드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매출 1조원(2016년)을 기록한 제품이다. 지난 2017년에는 단일 브랜드로 매출 1조4200억원을 기록하며 아시아 ‘톱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LG생활건강의 ‘후’는 경쟁사인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보다 늦게 개발된 한방 화장품이다. LG생활건강 ‘후 한방연구소’는 수만 건에 달하는 궁중 의학서적에 대한 기록을 뒤지고, 궁중 왕실의 비방이 적혀 있는 수백 권의 고서(古書)를 분석했다. 궁중 여성들이 아름다움과 피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어떤 약재와 처방을 사용했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후’의 제품에 적용했다. ‘후’ 개발 담당자의 얘기다.
 
  “‘후’ 브랜드가 출시됐을 때는 이미 경쟁사의 강력한 한방 화장품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고객과 시장을 살펴본 결과 소비자들에게 한방 화장품은 다소 진부하거나 중·장년층이 사용하는 화장품의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경쟁사가 갖고 있던 ‘전통 한방, 단아함’과 차별화된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우아하고 화려하고 럭셔리한’ 이미지로 포지셔닝을 했습니다. 그렇게 궁중 속 왕후들의 미용 비방이 현대 과학과 조화된 고품격 궁중 브랜드를 출시했습니다.”
 
  ― 제품 기획에서 출시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왕실의 생활상을 담은 기록뿐 아니라 《황제내경》 《제중신편》 《세의득효방》 같은 왕실의 의술을 기록한 한의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 궁중 비방을 찾아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공진비단, 경옥비단, 청심비단’으로 이 성분들을 바탕으로 만든 제품이 바로 가장 사랑을 받는 후의 대표 제품인 ‘비첩 자생 에센스’입니다. 최고급 라인 ‘환유’는 개발 기간만 3년이 걸렸습니다.”
 
  ― ‘후’는 화장품 용기까지 화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용기까지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럭셔리 제품은 그 제품만의 영혼, 스토리텔링을 통한 감성적인 니즈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고급 크림인 ‘후 환유고’ 디자인은 여의주를 끼고 웅비하는 봉황의 모습을 국보 제287호인 백제 ‘금동대향로’에서 차용해 뚜껑에 금속 공예 장식으로 달았습니다. 고객들이 원하는 품격 욕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결과적으로 ‘후’는 회사 매출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후’의 비약적 도약은 2014년 하반기부터입니다. 중국 단체 관광객의 국내 방문이 늘면서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품질이 좋고 고급스러운 화장품 수요가 높아졌는데 ‘후’와 맞아떨어졌습니다. ‘후’가 출시 초기부터 중국에 진출해 현지에서 부유층이 즐겨 찾는 고급 백화점에 집중 입점하는 등 럭셔리 마케팅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한국 드라마 판권 사서 무상으로 베트남 방송국에 제공하며, 한류 통한 마케팅 벌여
 
중국 상하이 빠바이반 백화점의 LG생활건강 ‘후’ 매장에서 고객들이 제품 설명을 듣고 있다.
  ‘제2의 삼성전자를 찾아라’ 간담회 개최 시, 참석자들이 LG생활건강을 꼽은 이유 중 하나는 한류(韓流)와 맞닿아 있어서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일본, 미국, 대만, 베트남 등 다양한 해외 시장에서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면서, ‘K뷰티’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LG생활건강은 1995년 중국에 첫 진출해 상하이 법인을 중심으로 주요 도시에 영업소를 갖고 있다. 최고급 브랜드인 ‘후’의 경우 중국 대도시의 최고급 백화점을 중심으로 총 199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분기를 기준으로, 화장품 매출 중 해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8%다. 이 중 중국에서 매출의 절반이 나온다. LG생활건강 중국법인 관계자의 말이다.
 
  “중국인들은 ‘후’를 ‘왕후의 화장품’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출범 초기부터 ‘한국적이되 글로벌할 것’을 추구한 전략이 맞아떨어졌습니다. 금색의 제품, 빨간색 패키지 등 중국인의 취향을 대거 반영했고요.”
 
  ― 흔히 해외에 진출할 때 ‘현지화 전략’을 씁니다. 중국인 맞춤형 화장품을 개발하지 않은 이유는요.
 
  “중국 여성들은 현지화된 제품이 아니라 ‘한국인이 좋아하는’ ‘한국에서 생산된’ 한국 제품을 찾습니다. ‘왕후의 궁중문화’라는 다른 브랜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럭셔리 마케팅이 통했습니다. ‘숨’ 브랜드의 경우 자연·발효 콘셉트를 이용해 중국의 현대 여성을 타깃으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LG생활건강은 1997년 베트남에도 진출했다. 우리나라보다 GDP가 낮은 베트남의 현지 여성들이 한국의 화장품을 쓸 수 있는 여력이 될까. LG생활건강 베트남 법인 담당자의 얘기는 오늘날 우리가 주목하는 ‘한류에 접목한 K뷰티’와 맞닿아 있다. 베트남법인 담당자의 말이다.
 
  “진출 당시 베트남 시장은 척박했습니다. 시장의 외형을 먼저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을 뺏어 봐〉 〈도시남녀〉 등 한국 드라마의 판권을 현지 방송에 사주고, 드라마의 주인공을 모델로 기용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1998년부터 이들 드라마를 무상으로 방송국에 제공하는 대신에, 프로그램 앞뒤의 광고권을 따냈습니다. 그렇게 ‘라끄베르’ ‘이자녹스’ 광고가 전파를 탔습니다. 한국 배우에 대한 관심이 형성된 베트남 여성들을 대상으로 단독 매장을 운영하면서 베트남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이 외에도 LG생활건강은 세계적인 K-컬처 바람을 타고 미국, 유럽 시장을 잇달아 공략하고 있다.
 
 
  “멋진 실패에 상 주고 평범한 성공에 벌줄 것”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최근 사업구조 고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상응하는 대가가 높은 ‘고부가가치’ 사업을 수행하겠다는 말이다. 한때 반짝이고 사라지는 성과가 아닌 지속 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다. 그는 “멋진 실패에는 상 주고 평범한 성공에는 벌줄 것”이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일에 과감히 도전하라고 당부한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두 발 자전거처럼 일시적인 성공에 안주해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은 도태된다는 것이 차 부회장의 생각이다. 하지만 끝없이 노력하라고 해서 무작정 사무실에만 앉아 있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LG생활건강에는 ‘형식’이 없다. 불필요한 보고서도 없고, 회의도 없다. 흔한 의전 문화도 없다. 차석용 부회장은 ‘주어진 시간 내에 더 많은 성과를 내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철학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정시퇴근제를 시행해 오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차석용 부회장 부임 이후 14년 동안 한 번도 사세(社勢)가 꺾인 적이 없다. 재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 ‘제2의 삼성전자’로 발돋움할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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