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지펀드와 투표자문사들이 ‘정치적’으로 끼어든 현대차 지배구조개편案
⊙ 自社株 소각 및 社外이사 3명 요구한 엘리엇의 제안은 “헛다리 짚고 생떼 쓰는 것”
⊙ 투표자문사의 전문성 의심스러워…, 한국 ISS는 젊은 정식 직원 한 명과 소수 인턴 직원들이 700여 개 기업에 대한 보고서 내놓아
⊙ 행동주의 헤지펀드, ‘주주가치’ 앞세우면서 자기 이익을 챙겨
⊙ 정부, 기업에 지나친 압력 넣지 말아야… 순환출자 자체가 나쁜 건 아냐
신장섭
1962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박사 / 기획재정부 장관 자문관, 한국금융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KDI정책대학원 초빙 교수. 현 싱가포르국립대학 경제학 교수
⊙ 自社株 소각 및 社外이사 3명 요구한 엘리엇의 제안은 “헛다리 짚고 생떼 쓰는 것”
⊙ 투표자문사의 전문성 의심스러워…, 한국 ISS는 젊은 정식 직원 한 명과 소수 인턴 직원들이 700여 개 기업에 대한 보고서 내놓아
⊙ 행동주의 헤지펀드, ‘주주가치’ 앞세우면서 자기 이익을 챙겨
⊙ 정부, 기업에 지나친 압력 넣지 말아야… 순환출자 자체가 나쁜 건 아냐
신장섭
1962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박사 / 기획재정부 장관 자문관, 한국금융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KDI정책대학원 초빙 교수. 현 싱가포르국립대학 경제학 교수
- 현대차그룹은 최근 지배구조 개편안을 만들었다가 철회했다. 사진은 현대차 사옥.
현대차그룹이 지난 5월 22일 현대모비스 임시주주총회 1주일을 앞두고 “주주(株主) 및 시장과의 소통부족을 절감했다”며 지배구조개편안(案)을 철회했다.
지배구조개편안을 둘러싸고 격랑이 일었던 두 달 동안 현대차그룹 4인방(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현대글로비스)의 시가(時價)총액은 6조원가량 증발했다. 지배구조개편안 반대의 선봉장이었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도 많으면 700억원가량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도 6000억원 가까이 손해를 봤다고 한다. 재계는 투기자본의 한국기업 공격에 속수무책이라며 이런 식이면 앞으로 어떻게 기업합병을 하겠느냐고 절망감을 표출한다. 현대차그룹에 지배구조개편을 요구했고 개편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정책당국도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패자(敗者)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3차방정식’과 ‘1차방정식’의 충돌
이번 지배구조개편안 좌초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차그룹에는 3차방정식을 푸는 과제가 주어진 반면, ‘주주와 시장’에서는 1차방정식을 푸는 문제로만 취급됐고, 그나마 1차방정식조차 헤지펀드와 투표자문사들이 ‘정치적’으로 끼어들어 이도저도 못하게 꼬여 버렸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할 것 같다.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개편안을 만들어 낸 것은 김상조(金尙祚) 공정거래위원장의 강력한 요구를 받은 다음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8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차그룹과 지배구조 개선을 논의 중”이라며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데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신규순환출자는 불법이지만 기존순환출자는 적법사항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현대차그룹을 기존순환출자 해소의 모범사례로 삼아 삼성 등 다른 그룹들의 순환출자까지 해소시키는 ‘재벌개혁’을 속전속결로 집행하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것은 2차방정식을 풀기 위해 여러 준비를 해 왔던 현대차그룹에 3차방정식을 빨리 풀도록 몰아넣는 계기가 됐다. 정몽구(鄭夢九) 회장은 올해 80세이다. 건강이 언제 어떻게 악화될지 알 수 없는 정 회장으로부터 정의선(鄭義宣) 부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대주주의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은 현대차그룹이 풀어야 하는 방정식 중 하나였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간 합병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주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특히 2015년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주주가치’를 잘 설득해야 하는 두 번째 방정식이 더 중요해져 있었다. 여기에 정부의 순환출자 해소 요구 부응이라는 세 번째 방정식이 추가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案
현대차그룹이 올해 3월 28일에 내놓은 지배구조개편안은 ‘2.5차방정식’까지만 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장 큰 비중은 순환출자 해소에 놓였다. 모비스와 글로비스 간 분할합병을 시발점으로 삼아 순환출자 지분을 대주주가 직접 매입해서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하게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모비스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규제’도 해결한다. 김상조 위원장이 개편안 발표 후 즉각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큰 비중은 주주가치 증진에 두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택한 방안은 모비스와 글로비스 간의 분할합병이었다. 두 회사 간에 사업 내용이 겹치는 모듈, CKD(완전해체조립), 물류 등을 글로비스에 합쳐 시너지를 내도록 하고 모비스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부품 및 엔진, 전기차 관련 기술회사로 키워 나간다는 것이다. 모비스 주주들에게는 글로비스로 합쳐지는 사업부문을 글로비스 주식으로 줘서 시너지에 따르는 이익을 향유하도록 설계했다. 분할합병 후 모비스에서 글로비스로 떨어져 나가는 부분만큼 모비스 주가가 떨어지고, 글로비스로 합쳐지는 부분이 시너지를 낸다면 모비스 주주들은 그 시너지만큼 이득을 보게 된다. 만약 모비스를 기술회사로 키워 나가겠다는 비전이나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라는 프리미엄이 시장에서 잘 받아들여져 존속 모비스의 주가가 별로 떨어지지 않으면 주주들은 그만큼의 추가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 방안은 흔히 벌어지는 합병비율 ‘불공정성’ 논란을 피해 가는 묘수(妙手)이기도 했다. 만약 모비스에서 분할된 부분이 모비스에 약간 불리한 비율로 글로비스에 합병됐다 하더라도 모비스 주주들은 글로비스 주식을 갖게 되기 때문에 이를 상쇄할 수 있다. 또 모비스에서 분할된 부분이 모비스에 유리한 비율로 글로비스에 합병되면 모비스 주주가 보유하게 되는 글로비스 주식에서 이것이 상쇄된다. 합병비율이 아주 이상하게 산정되지 않는 한 비율 자체를 놓고 문제 삼기 어려운 구조였다.
한편 대주주 통제력이라는 방정식에서 이번 지배구조개편안은 절반의 숙제밖에 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합친 대주주 지분이 30.3%로 모비스에 대한 통제력은 유지되지만, 정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는 절반가량밖에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 부자는 이 절반의 방정식을 푸는 데에만 사비(私費)를 1조5000억원가량 써야 했다. 과거 대주주 통제력 확보과정에서 지주회사 분할 및 자사주 등을 이용해서 대주주가 세금을 거의 내지 않던 관행에 대한 사회적 비판에 부응한 것이다. 대규모 현찰이 없는 정 부회장은 세금의 상당 부분을 빚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보유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 등을 통해 그 빚을 오래도록 감당해 나가겠다는 결단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개편안이었다. 재벌그룹 중에서 대주주가 이렇게 많은 돈을 부담하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개편안에 대한 초기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엘리엇의 ‘헛다리 짚고 생떼 쓰기’
순항하는 듯 보이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개편은 ‘벌처펀드(vulture fund)’로 악명 높은 헤지펀드 엘리엇이 개입하면서 암초를 만나게 됐다. 엘리엇은 4월 4일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뒤, 4월 23일 현대모비스와 현대차를 합병한 뒤 합병 법인은 지주(持柱)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하고, 현재 및 미래의 자사주(自社株)를 모두 소각하는 한편 자신이 원하는 사외(社外)이사 3명을 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엘리엇의 ‘제안’은 “헛다리 짚고 생떼 쓰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로 갈 걸로 예상해서 현대차, 기아차, 모비스 3개사 주식을 매입했다. 3개사 중에서 현대차 주식이 가장 많았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은 예상과 달리 모비스와 글로비스 위주로 합병을 추진하고 대주주가 세금을 내더라도 사업회사 체제로 가는 방안을 택했다. 따라서 엘리엇이 많이 갖고 있는 현대차나 기아차 주식은 값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에 처했다. 엘리엇은 합병비율을 문제 삼으며 합병에 반대했다. 이와 함께 현대차의 자사주를 대거 소각할 것을 요구했다. 예상이 틀렸더라도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현대차그룹이 모든 ‘행동’을 다 하라는 압력이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모비스 주주총회에서 몽니를 부리겠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투표자문사들의 ‘반대를 위한 반대’
엘리엇은 현대모비스 지분의 1.5%가량만 갖고 있는 신참 소수(少數)주주이다. 엘리엇만 반대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1위, 2위 투표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면서 급격한 도미노 현상이 나타났다. 포문을 먼저 연 곳은 글래스루이스였다. 5월 1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글래스루이스는 분석의 대부분을 엘리엇의 주장과 현대차그룹의 주장을 대비하는 데 할애했고, 자체 분석도 없이 엘리엇 입장을 지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엘리엇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같은 날 ISS도 반대 보고서를 발표했다. 반대 이유는 합병비율이 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됐고 “납득할 만한 사업적 합리화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혹 합병비율이 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하더라도 새로 보유하게 되는 글로비스 주식에서 그것이 상쇄된다는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이해상충’이라는 항목을 따로 넣어 구체적인 증거나 내용을 밝히지는 않고 “대주주가 소수주주 이익을 침해하며 자신의 이익을 높이려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을지 모른다(may introduce economic incentives … for their benefits at the expense of minority shareholders)”며 “이런 거래를 검토할 때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재벌 대주주에 대한 일반적 불신만을 반영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백미(白眉)는 국민연금 투표자문사로 되어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보고서였다. 5월 17일 발표한 이 보고서는 분석과 결론이 다른 기묘한 내용이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분할합병 비율에 문제가 없다”고 분석해 놓고 결론부에서는 “주주가치의 훼손이 예상되는 분할합병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만약 필자의 학생이 이런 논문을 제출했다면 두말 않고 F학점을 줬을 것이다. 지배구조원은 또 순환출자 해소 등 정부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지분교환 및 양수도(讓受渡)의 결과로써 가능한 것이므로 분할합병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현대차그룹에 “지분교환 및 양수도”만으로 똑같은 효과가 있는지를 문의했다. 현대차 측의 설명은 “분할합병 없이는 대주주가 똑같은 1조5000억원을 부담하더라도 모비스 지분을 14~15%밖에 추가 확보하지 못하게 되어서 기존 지분 7%를 합치더라도 지분이 21~22%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통제력이라는 관점에서 30.3%와 21~22%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이다. 결국 지배구조원은 현대차 지배구조개편을 2차방정식(주주가치+정부규제)으로만 취급하고 통제력 유지라는 방정식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 없다고 얘기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실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투표자문사들의 이해상충
일반인들은 투표자문사들이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러한 기대와 크게 동떨어져 있다. 투표자문사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 보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다른 나라에서도 투표자문사에 대한 비판이 높다. 투표자문사들이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성도 별로 갖추지 못했고 ‘이해상충’의 여지도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보고서들이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이를 합리화하는 ‘정치적’ 문서처럼 읽힌다.
세계 기업투표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ISS의 탄생 및 발전과정을 살펴보자. ISS는 주주행동주의의 대부(代父)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몽크스(Robert Monks)가 1985년에 창업했다. 몽크스는 변호사·사업가·은행가·정치가로 다양한 경력을 쌓은 뒤 1984년 미국 노동부의 연금국장이 되었다. 자신의 경력에 비해 ‘낮은 자리’로 옮기는 것이었지만 그는 1년만 공직에서 일하고 민간으로 돌아와 기업지배구조 관련 일을 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는 공직에서 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투표의무화를 적극 추진했다. 그리고 공직에서 나오자마자 ISS를 차렸다. 기업투표에 무관심하던 기관투자가들은 투표가 의무사항이 되자 ISS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몽크스는 1990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해상충’ 문제로 ISS를 조사하게 되자 ISS에서 형식적으로 손을 뗐다. 재단을 만들어 ISS주식을 넘긴 뒤 자신의 아들과 조카를 재단 신탁인으로 내세웠다. 그후 ISS는 사모펀드 베스타 캐피탈(Vesta Capital)이 소유하게 됐다. 베스타의 주인은 1980년대 ‘기업사냥꾼’으로 활약하던 사람들이다. 행동주의 펀드와 기업 간 분쟁이 벌어질 때에 구체적 사안이 무엇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ISS가 태생적으로 행동주의 펀드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밖에 없다.
투표자문사들은 보고서에서 해당 기업의 ‘이해상충’ 문제를 단골로 다룬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정작 커다란 이해상충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다. 투표자문을 하는 한편 컨설팅 서비스도 함께 해 주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컨설팅 업무를 주는 기관과 그렇지 않은 기관이 주주총회에서 맞붙을 경우 어느 쪽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높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기업에 대한 캠페인을 전개하기에 앞서 투표자문사에 컨설팅 업무를 주는 일들도 벌어진다. 그러나 투표자문사들은 비공개 회사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여러 비즈니스들이 실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투표자문사들의 역량도 속을 들여다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ISS는 연간 117개국에서 열린 4만 건의 회의에 올라간 850만 개의 안건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다. 안건이 주총에 올라가는 이유는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엇갈리는 견해에 대해 장단점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내놓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렇지만 이것을 종합해서 ‘예스(yes)’ 혹은 ‘노(no)’라고 딱 부러지는 보고서를 내놓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경우 ISS는 젊은 정식 직원 한 명과 극소수 인턴 직원들이 700여 개에 달하는 기업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는다. 이들이 어떻게 그 많은 회사들의 그 많은 안건들에 대해 그렇게 뛰어난 변별력을 갖고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ISS가 전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포맷에 맞춰 기계적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봐야 한다. 세계 최대 투표자문사인 ISS가 이런 정도인데, 다른 투표자문사들의 역량이나 이해상충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허상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1% 내외의 극소수 지분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것은 ISS와 같은 투표자문사들에 영향을 미치면서 기관투자가들이 갖고 있는 표를 활용하는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금융계의 악덕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악덕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사회정의를 내세우지만 뒤에서 자기 이익을 챙긴다. 자신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표는 한 표밖에 안 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표를 끌어 모아 힘을 행사한다. 마찬가지로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주주가치’를 앞에 내세우면서 자기 이익을 챙긴다. 자신이 갖고 있는 표는 적지만 기관투자가들의 공동보조를 끌어낸다.
여기에는 기관투자가들에게 투표는 의무화됐지만, 투표에 무관심하고 무능력한 기관투자가들이 국제금융시장의 대세가 되어 버린 역설적 사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기관투자가인 블랙록(BlackRock), 뱅가드(Vanguard),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 등은 모두 인덱스펀드로 컸다. 대형 연기금들도 내부에서 인덱스 방식으로 투자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 현재 상장기업 주식 중 거의 3분의 1가량은 인덱스계열 펀드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도 ELS(주가연계증권), ETF(상장지수거래펀드) 등 인덱스펀드가 갈수록 주식투자의 대세가 되고 있다.
인덱스펀드는 기업 투표에 대한 관심과 역량이 원천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개별기업에 대해 연구하지 않고 주가지수 움직임에 대해서만 투기하기 때문이다. 한 펀드에 1만개가 넘는 기업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동안 인덱스펀드의 성공은 주식시장으로 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주가지수를 높였기 때문이지, 인덱스펀드 매니저들이 운용을 특별히 잘해서 이루어 낸 결과라고 말하기 어렵다. 인덱스펀드는 초저가 수수료를 부과하고 최소한의 운용인력만으로 주가지수 움직임에 연동시키는 컴퓨터 모델을 동원한다. 펀드매니저들이 지수에 들어가는 수많은 기업들의 개별 현안에 대해 제대로 알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한편 단기투기가 차지하는 비중도 급격히 늘었다. 현재 뉴욕주식시장에서 초단기매매(HFT, high-frequency trading)의 거래에서 비중이 절반가량에 달한다. “알고리즘이 월가를 장악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주식시장을 통제한다”는 등의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JP모건체이스는 2017년 미국 전체주식 거래에서 펀드매니저나 개인이 기업을 들여다보며 판단을 내리는 거래(discretionary equity trading)는 10%가량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기업투표라는 공간에 역량과 관심이 없는 투자자라는 거대한 공백(空白)이 생겨났다.
그런데 비밀투표를 원칙으로 하는 정치투표와 달리 기업투표는 ‘인민투표’처럼 시행된다. 기관투자가들은 투표내용을 공개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합리화해야 한다. 투표에 무관심하고 무능력한 펀드들에게 가장 쉬운 방법은 ISS와 같은 투표자문사로부터 투표방향과 합리화를 ‘구매’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ISS의 정당성 없는 파워가 강화된다. 미국의 경우 ISS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은 경영진 제출 안건은 사안에 따라 적으면 13.6%에서 많으면 20.6%까지 기관투자가들의 지지율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단 몇 퍼센트에 의해 주총 통과 여부가 갈리는 경우도 많은데, 두 자리 숫자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ISS의 영향력 때문에 국내 투표자문사들은 ISS와 다른 의견을 내는 데에 굉장히 조심할 수밖에 없다. ISS와 보조를 맞추면 ‘면피’는 할 수 있지만, 다른 의견을 냈다가 잘못되면 “국제적 흐름에 어긋나게 특정기업을 두둔했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등 ‘독박’을 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현대차그룹 개편안에 대한 투표자문사들의 ‘쏠림현상’은 이런 면피성 자문 행태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반대가 정말 모비스에 바람직한 일이었다면, 현대차그룹이 개편안 철회를 발표한 뒤 모비스 주가가 올라갔어야 한다. 그러나 모비스 주가는 하향곡선을 그렸다. 다수의 투자자들이 개편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장기 가치 생각하는 주주라면 반대 어려워
기업합병은 사업 시너지 효과가 가장 핵심 요소이고 그 과정에서 양측 주주들이 그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필자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개편안이 발표된 이후 언론으로부터 문의를 받을 때마다 “중장기 가치를 생각하는 주주라면 반대하기 어려운 안”이라고 평가했다. 모비스를 사업지주회사로 삼아 기술회사로 키워 나가겠다는 비전에 반대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쌓아 놓은 것 하나 없는 벤처기업에도 비전만 보고 투자하는데,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의 역량을 이 회사에 집중시키겠다는 비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다. 모듈, CKD, 물류 등 연관 사업들을 글로비스에 모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현대차를 세계 5위 자동차회사로 올려놓은 대주주 정씨 일가의 경영능력을 갑자기 믿지 못하겠다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의심하는 주주들이었다면 벌써 현대차그룹 주식을 팔았어야 했다. 공정성 차원에서도 모비스 분할 부분을 글로비스에 합치되 모비스 주주에게 글로비스 주식을 나눠 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나 이 지배구조개편안은 좌절됐다. 현대차그룹은 3차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이번 안을 내놓았다. 현대차그룹은 자신이 검토하던 20여 가지 안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안이었다고 말한다. 국내 자산운용사 트러스톤이 5월17일 “회사가 제시한 지배구조 변경 구조는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함에 따라 찬성하며 해당 안건보다 더 최적의 구조를 제시할 수 없기에 경영인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힌 것도 3차방정식 해법으로 바람직하다는 평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헤지펀드나 투표자문사들은 1차방정식만 확실하게 풀라고 요구했다. 1차방정식에서조차 단기이익만 챙기려거나 헛다리 짚은 뒤 생떼 부리는 행태를 보였다. 앞뒤가 맞지 않는 보고서를 내놓는 기관들도 있었다.
한국경제의 代案은…
이번 사태가 주는 한 가지 교훈은 정부가 기업에 지배구조 관련해서 지나친 압력을 넣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기존순환출자는 적법한 사항이다. 순환출자 자체가 나쁜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가건, 순환출자로 묶여 있건 개별기업의 금융위험은 달라지지 않는다. 김상조 위원장이 강조하는 ‘지배구조위험’은 ‘재벌총수’가 직접 보유하는 주식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총수’들은 복수(複數)의결권을 통해 1주당 10투표권을 행사한다. 워런 버핏은 1주에 대해 무려 200개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유럽에서는 3분의 1 이상의 기업이 복수의결권을 행사한다. 한국은 복수의결권이 상법에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순환출자가 복수의결권의 대체재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외국인투자자들 중에서 순환출자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그룹이 지주회사로 묶이건 순환출자로 묶이건 상관없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개별회사 주식의 가격이 올라갈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현대차그룹 개편안은 2차방정식을 푸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기업에 정부가 나서 법에도 없는 순환출자 해소를 요구하면서 더 복잡한 3차방정식이 만들어졌고 결국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가 정말 순환출자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 공론을 거쳐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래야 외국인투자자나 투표자문사에게 순환출자 해소라는 또 다른 방정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주주총회가 단기이익이나 정치적 논란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당 기업의 중장기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금융규제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를 위해 금융투자자건, 경영진이건 ‘주주 제안’을 내놓을 때에 그것이 기업의 중장기 가치를 높이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합리화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융투자자들에게 중장기적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합리화할 것을 의무화하면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통해 무작정 ‘잉여현금’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차단된다. 이 과정에서 중장기적 관점을 갖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영진의 전반적인 시각이나 행태도 중장기적이 될 것이다. 자신의 아성(牙城)을 쌓는 등 다른 목적을 위해 ‘잉여현금’을 쌓아 놓고 있다는 세간의 비판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중장기 투자자에게 더 많은 투표권을 주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나 프랑스에서는 주식 보유 기간에 따라 차등의결권을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주주제안은 1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로 한정해야 한다. 정치투표에서는 여행객이나 단기체류자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투표에서는 주식을 보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투자자가 자신의 단기이익 추구를 위해 주총을 휘젓는다. 기관투자가에 대한 투표의무화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투표의무화는 부작용을 더 많이 불러왔고 ISS 등 투표자문사들에게 정당성 없는 파워를 가져다주었다. 그 결과 행동주의 헤지펀드와 같은 일부 세력이 단기이익을 추구를 위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커다란 공백이 만들어졌다. 기업투표는 중장기적 성과에 관심 있는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공통의 과제를 놓고 협력하고 경합하는 장(場)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배구조개편안을 둘러싸고 격랑이 일었던 두 달 동안 현대차그룹 4인방(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현대글로비스)의 시가(時價)총액은 6조원가량 증발했다. 지배구조개편안 반대의 선봉장이었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도 많으면 700억원가량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도 6000억원 가까이 손해를 봤다고 한다. 재계는 투기자본의 한국기업 공격에 속수무책이라며 이런 식이면 앞으로 어떻게 기업합병을 하겠느냐고 절망감을 표출한다. 현대차그룹에 지배구조개편을 요구했고 개편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정책당국도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패자(敗者)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3차방정식’과 ‘1차방정식’의 충돌
이번 지배구조개편안 좌초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차그룹에는 3차방정식을 푸는 과제가 주어진 반면, ‘주주와 시장’에서는 1차방정식을 푸는 문제로만 취급됐고, 그나마 1차방정식조차 헤지펀드와 투표자문사들이 ‘정치적’으로 끼어들어 이도저도 못하게 꼬여 버렸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할 것 같다.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개편안을 만들어 낸 것은 김상조(金尙祚) 공정거래위원장의 강력한 요구를 받은 다음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8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차그룹과 지배구조 개선을 논의 중”이라며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데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신규순환출자는 불법이지만 기존순환출자는 적법사항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현대차그룹을 기존순환출자 해소의 모범사례로 삼아 삼성 등 다른 그룹들의 순환출자까지 해소시키는 ‘재벌개혁’을 속전속결로 집행하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것은 2차방정식을 풀기 위해 여러 준비를 해 왔던 현대차그룹에 3차방정식을 빨리 풀도록 몰아넣는 계기가 됐다. 정몽구(鄭夢九) 회장은 올해 80세이다. 건강이 언제 어떻게 악화될지 알 수 없는 정 회장으로부터 정의선(鄭義宣) 부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대주주의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은 현대차그룹이 풀어야 하는 방정식 중 하나였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간 합병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주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특히 2015년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주주가치’를 잘 설득해야 하는 두 번째 방정식이 더 중요해져 있었다. 여기에 정부의 순환출자 해소 요구 부응이라는 세 번째 방정식이 추가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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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안은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왼쪽)으로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도 관련이 있었다. |
두 번째로 큰 비중은 주주가치 증진에 두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택한 방안은 모비스와 글로비스 간의 분할합병이었다. 두 회사 간에 사업 내용이 겹치는 모듈, CKD(완전해체조립), 물류 등을 글로비스에 합쳐 시너지를 내도록 하고 모비스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부품 및 엔진, 전기차 관련 기술회사로 키워 나간다는 것이다. 모비스 주주들에게는 글로비스로 합쳐지는 사업부문을 글로비스 주식으로 줘서 시너지에 따르는 이익을 향유하도록 설계했다. 분할합병 후 모비스에서 글로비스로 떨어져 나가는 부분만큼 모비스 주가가 떨어지고, 글로비스로 합쳐지는 부분이 시너지를 낸다면 모비스 주주들은 그 시너지만큼 이득을 보게 된다. 만약 모비스를 기술회사로 키워 나가겠다는 비전이나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라는 프리미엄이 시장에서 잘 받아들여져 존속 모비스의 주가가 별로 떨어지지 않으면 주주들은 그만큼의 추가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 방안은 흔히 벌어지는 합병비율 ‘불공정성’ 논란을 피해 가는 묘수(妙手)이기도 했다. 만약 모비스에서 분할된 부분이 모비스에 약간 불리한 비율로 글로비스에 합병됐다 하더라도 모비스 주주들은 글로비스 주식을 갖게 되기 때문에 이를 상쇄할 수 있다. 또 모비스에서 분할된 부분이 모비스에 유리한 비율로 글로비스에 합병되면 모비스 주주가 보유하게 되는 글로비스 주식에서 이것이 상쇄된다. 합병비율이 아주 이상하게 산정되지 않는 한 비율 자체를 놓고 문제 삼기 어려운 구조였다.
한편 대주주 통제력이라는 방정식에서 이번 지배구조개편안은 절반의 숙제밖에 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합친 대주주 지분이 30.3%로 모비스에 대한 통제력은 유지되지만, 정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는 절반가량밖에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 부자는 이 절반의 방정식을 푸는 데에만 사비(私費)를 1조5000억원가량 써야 했다. 과거 대주주 통제력 확보과정에서 지주회사 분할 및 자사주 등을 이용해서 대주주가 세금을 거의 내지 않던 관행에 대한 사회적 비판에 부응한 것이다. 대규모 현찰이 없는 정 부회장은 세금의 상당 부분을 빚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보유 주식에서 나오는 배당 등을 통해 그 빚을 오래도록 감당해 나가겠다는 결단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개편안이었다. 재벌그룹 중에서 대주주가 이렇게 많은 돈을 부담하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개편안에 대한 초기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엘리엇의 ‘헛다리 짚고 생떼 쓰기’
순항하는 듯 보이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개편은 ‘벌처펀드(vulture fund)’로 악명 높은 헤지펀드 엘리엇이 개입하면서 암초를 만나게 됐다. 엘리엇은 4월 4일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뒤, 4월 23일 현대모비스와 현대차를 합병한 뒤 합병 법인은 지주(持柱)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하고, 현재 및 미래의 자사주(自社株)를 모두 소각하는 한편 자신이 원하는 사외(社外)이사 3명을 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엘리엇의 ‘제안’은 “헛다리 짚고 생떼 쓰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로 갈 걸로 예상해서 현대차, 기아차, 모비스 3개사 주식을 매입했다. 3개사 중에서 현대차 주식이 가장 많았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은 예상과 달리 모비스와 글로비스 위주로 합병을 추진하고 대주주가 세금을 내더라도 사업회사 체제로 가는 방안을 택했다. 따라서 엘리엇이 많이 갖고 있는 현대차나 기아차 주식은 값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에 처했다. 엘리엇은 합병비율을 문제 삼으며 합병에 반대했다. 이와 함께 현대차의 자사주를 대거 소각할 것을 요구했다. 예상이 틀렸더라도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현대차그룹이 모든 ‘행동’을 다 하라는 압력이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모비스 주주총회에서 몽니를 부리겠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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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안은 모비스와 글로비스 간 분할합병을 시발점으로 하는 것이었다. |
같은 날 ISS도 반대 보고서를 발표했다. 반대 이유는 합병비율이 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됐고 “납득할 만한 사업적 합리화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혹 합병비율이 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하더라도 새로 보유하게 되는 글로비스 주식에서 그것이 상쇄된다는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이해상충’이라는 항목을 따로 넣어 구체적인 증거나 내용을 밝히지는 않고 “대주주가 소수주주 이익을 침해하며 자신의 이익을 높이려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을지 모른다(may introduce economic incentives … for their benefits at the expense of minority shareholders)”며 “이런 거래를 검토할 때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재벌 대주주에 대한 일반적 불신만을 반영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백미(白眉)는 국민연금 투표자문사로 되어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보고서였다. 5월 17일 발표한 이 보고서는 분석과 결론이 다른 기묘한 내용이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분할합병 비율에 문제가 없다”고 분석해 놓고 결론부에서는 “주주가치의 훼손이 예상되는 분할합병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만약 필자의 학생이 이런 논문을 제출했다면 두말 않고 F학점을 줬을 것이다. 지배구조원은 또 순환출자 해소 등 정부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지분교환 및 양수도(讓受渡)의 결과로써 가능한 것이므로 분할합병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현대차그룹에 “지분교환 및 양수도”만으로 똑같은 효과가 있는지를 문의했다. 현대차 측의 설명은 “분할합병 없이는 대주주가 똑같은 1조5000억원을 부담하더라도 모비스 지분을 14~15%밖에 추가 확보하지 못하게 되어서 기존 지분 7%를 합치더라도 지분이 21~22%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통제력이라는 관점에서 30.3%와 21~22%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이다. 결국 지배구조원은 현대차 지배구조개편을 2차방정식(주주가치+정부규제)으로만 취급하고 통제력 유지라는 방정식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 없다고 얘기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실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투표자문사들의 이해상충
일반인들은 투표자문사들이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러한 기대와 크게 동떨어져 있다. 투표자문사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 보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다른 나라에서도 투표자문사에 대한 비판이 높다. 투표자문사들이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성도 별로 갖추지 못했고 ‘이해상충’의 여지도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보고서들이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이를 합리화하는 ‘정치적’ 문서처럼 읽힌다.
세계 기업투표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ISS의 탄생 및 발전과정을 살펴보자. ISS는 주주행동주의의 대부(代父)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몽크스(Robert Monks)가 1985년에 창업했다. 몽크스는 변호사·사업가·은행가·정치가로 다양한 경력을 쌓은 뒤 1984년 미국 노동부의 연금국장이 되었다. 자신의 경력에 비해 ‘낮은 자리’로 옮기는 것이었지만 그는 1년만 공직에서 일하고 민간으로 돌아와 기업지배구조 관련 일을 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는 공직에서 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투표의무화를 적극 추진했다. 그리고 공직에서 나오자마자 ISS를 차렸다. 기업투표에 무관심하던 기관투자가들은 투표가 의무사항이 되자 ISS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몽크스는 1990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해상충’ 문제로 ISS를 조사하게 되자 ISS에서 형식적으로 손을 뗐다. 재단을 만들어 ISS주식을 넘긴 뒤 자신의 아들과 조카를 재단 신탁인으로 내세웠다. 그후 ISS는 사모펀드 베스타 캐피탈(Vesta Capital)이 소유하게 됐다. 베스타의 주인은 1980년대 ‘기업사냥꾼’으로 활약하던 사람들이다. 행동주의 펀드와 기업 간 분쟁이 벌어질 때에 구체적 사안이 무엇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ISS가 태생적으로 행동주의 펀드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밖에 없다.
투표자문사들은 보고서에서 해당 기업의 ‘이해상충’ 문제를 단골로 다룬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정작 커다란 이해상충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다. 투표자문을 하는 한편 컨설팅 서비스도 함께 해 주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컨설팅 업무를 주는 기관과 그렇지 않은 기관이 주주총회에서 맞붙을 경우 어느 쪽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높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기업에 대한 캠페인을 전개하기에 앞서 투표자문사에 컨설팅 업무를 주는 일들도 벌어진다. 그러나 투표자문사들은 비공개 회사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여러 비즈니스들이 실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외부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투표자문사들의 역량도 속을 들여다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ISS는 연간 117개국에서 열린 4만 건의 회의에 올라간 850만 개의 안건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다. 안건이 주총에 올라가는 이유는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엇갈리는 견해에 대해 장단점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내놓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렇지만 이것을 종합해서 ‘예스(yes)’ 혹은 ‘노(no)’라고 딱 부러지는 보고서를 내놓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경우 ISS는 젊은 정식 직원 한 명과 극소수 인턴 직원들이 700여 개에 달하는 기업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는다. 이들이 어떻게 그 많은 회사들의 그 많은 안건들에 대해 그렇게 뛰어난 변별력을 갖고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ISS가 전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포맷에 맞춰 기계적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봐야 한다. 세계 최대 투표자문사인 ISS가 이런 정도인데, 다른 투표자문사들의 역량이나 이해상충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1% 내외의 극소수 지분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것은 ISS와 같은 투표자문사들에 영향을 미치면서 기관투자가들이 갖고 있는 표를 활용하는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금융계의 악덕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악덕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사회정의를 내세우지만 뒤에서 자기 이익을 챙긴다. 자신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표는 한 표밖에 안 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표를 끌어 모아 힘을 행사한다. 마찬가지로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주주가치’를 앞에 내세우면서 자기 이익을 챙긴다. 자신이 갖고 있는 표는 적지만 기관투자가들의 공동보조를 끌어낸다.
여기에는 기관투자가들에게 투표는 의무화됐지만, 투표에 무관심하고 무능력한 기관투자가들이 국제금융시장의 대세가 되어 버린 역설적 사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기관투자가인 블랙록(BlackRock), 뱅가드(Vanguard),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 등은 모두 인덱스펀드로 컸다. 대형 연기금들도 내부에서 인덱스 방식으로 투자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 현재 상장기업 주식 중 거의 3분의 1가량은 인덱스계열 펀드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도 ELS(주가연계증권), ETF(상장지수거래펀드) 등 인덱스펀드가 갈수록 주식투자의 대세가 되고 있다.
인덱스펀드는 기업 투표에 대한 관심과 역량이 원천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개별기업에 대해 연구하지 않고 주가지수 움직임에 대해서만 투기하기 때문이다. 한 펀드에 1만개가 넘는 기업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동안 인덱스펀드의 성공은 주식시장으로 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주가지수를 높였기 때문이지, 인덱스펀드 매니저들이 운용을 특별히 잘해서 이루어 낸 결과라고 말하기 어렵다. 인덱스펀드는 초저가 수수료를 부과하고 최소한의 운용인력만으로 주가지수 움직임에 연동시키는 컴퓨터 모델을 동원한다. 펀드매니저들이 지수에 들어가는 수많은 기업들의 개별 현안에 대해 제대로 알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한편 단기투기가 차지하는 비중도 급격히 늘었다. 현재 뉴욕주식시장에서 초단기매매(HFT, high-frequency trading)의 거래에서 비중이 절반가량에 달한다. “알고리즘이 월가를 장악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주식시장을 통제한다”는 등의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JP모건체이스는 2017년 미국 전체주식 거래에서 펀드매니저나 개인이 기업을 들여다보며 판단을 내리는 거래(discretionary equity trading)는 10%가량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기업투표라는 공간에 역량과 관심이 없는 투자자라는 거대한 공백(空白)이 생겨났다.
그런데 비밀투표를 원칙으로 하는 정치투표와 달리 기업투표는 ‘인민투표’처럼 시행된다. 기관투자가들은 투표내용을 공개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합리화해야 한다. 투표에 무관심하고 무능력한 펀드들에게 가장 쉬운 방법은 ISS와 같은 투표자문사로부터 투표방향과 합리화를 ‘구매’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ISS의 정당성 없는 파워가 강화된다. 미국의 경우 ISS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은 경영진 제출 안건은 사안에 따라 적으면 13.6%에서 많으면 20.6%까지 기관투자가들의 지지율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단 몇 퍼센트에 의해 주총 통과 여부가 갈리는 경우도 많은데, 두 자리 숫자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ISS의 영향력 때문에 국내 투표자문사들은 ISS와 다른 의견을 내는 데에 굉장히 조심할 수밖에 없다. ISS와 보조를 맞추면 ‘면피’는 할 수 있지만, 다른 의견을 냈다가 잘못되면 “국제적 흐름에 어긋나게 특정기업을 두둔했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등 ‘독박’을 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현대차그룹 개편안에 대한 투표자문사들의 ‘쏠림현상’은 이런 면피성 자문 행태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반대가 정말 모비스에 바람직한 일이었다면, 현대차그룹이 개편안 철회를 발표한 뒤 모비스 주가가 올라갔어야 한다. 그러나 모비스 주가는 하향곡선을 그렸다. 다수의 투자자들이 개편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장기 가치 생각하는 주주라면 반대 어려워
기업합병은 사업 시너지 효과가 가장 핵심 요소이고 그 과정에서 양측 주주들이 그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필자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개편안이 발표된 이후 언론으로부터 문의를 받을 때마다 “중장기 가치를 생각하는 주주라면 반대하기 어려운 안”이라고 평가했다. 모비스를 사업지주회사로 삼아 기술회사로 키워 나가겠다는 비전에 반대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쌓아 놓은 것 하나 없는 벤처기업에도 비전만 보고 투자하는데,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의 역량을 이 회사에 집중시키겠다는 비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다. 모듈, CKD, 물류 등 연관 사업들을 글로비스에 모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현대차를 세계 5위 자동차회사로 올려놓은 대주주 정씨 일가의 경영능력을 갑자기 믿지 못하겠다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의심하는 주주들이었다면 벌써 현대차그룹 주식을 팔았어야 했다. 공정성 차원에서도 모비스 분할 부분을 글로비스에 합치되 모비스 주주에게 글로비스 주식을 나눠 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나 이 지배구조개편안은 좌절됐다. 현대차그룹은 3차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이번 안을 내놓았다. 현대차그룹은 자신이 검토하던 20여 가지 안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안이었다고 말한다. 국내 자산운용사 트러스톤이 5월17일 “회사가 제시한 지배구조 변경 구조는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함에 따라 찬성하며 해당 안건보다 더 최적의 구조를 제시할 수 없기에 경영인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힌 것도 3차방정식 해법으로 바람직하다는 평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헤지펀드나 투표자문사들은 1차방정식만 확실하게 풀라고 요구했다. 1차방정식에서조차 단기이익만 챙기려거나 헛다리 짚은 뒤 생떼 부리는 행태를 보였다. 앞뒤가 맞지 않는 보고서를 내놓는 기관들도 있었다.
한국경제의 代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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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은 5월 10일 ‘공정거래위원장과 10대 그룹간 정책간담회’을 열었다. 사진=조선일보DB |
외국인투자자들 중에서 순환출자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그룹이 지주회사로 묶이건 순환출자로 묶이건 상관없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개별회사 주식의 가격이 올라갈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현대차그룹 개편안은 2차방정식을 푸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기업에 정부가 나서 법에도 없는 순환출자 해소를 요구하면서 더 복잡한 3차방정식이 만들어졌고 결국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가 정말 순환출자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 공론을 거쳐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래야 외국인투자자나 투표자문사에게 순환출자 해소라는 또 다른 방정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주주총회가 단기이익이나 정치적 논란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당 기업의 중장기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금융규제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를 위해 금융투자자건, 경영진이건 ‘주주 제안’을 내놓을 때에 그것이 기업의 중장기 가치를 높이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합리화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융투자자들에게 중장기적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합리화할 것을 의무화하면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통해 무작정 ‘잉여현금’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차단된다. 이 과정에서 중장기적 관점을 갖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영진의 전반적인 시각이나 행태도 중장기적이 될 것이다. 자신의 아성(牙城)을 쌓는 등 다른 목적을 위해 ‘잉여현금’을 쌓아 놓고 있다는 세간의 비판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중장기 투자자에게 더 많은 투표권을 주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나 프랑스에서는 주식 보유 기간에 따라 차등의결권을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주주제안은 1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로 한정해야 한다. 정치투표에서는 여행객이나 단기체류자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투표에서는 주식을 보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투자자가 자신의 단기이익 추구를 위해 주총을 휘젓는다. 기관투자가에 대한 투표의무화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투표의무화는 부작용을 더 많이 불러왔고 ISS 등 투표자문사들에게 정당성 없는 파워를 가져다주었다. 그 결과 행동주의 헤지펀드와 같은 일부 세력이 단기이익을 추구를 위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커다란 공백이 만들어졌다. 기업투표는 중장기적 성과에 관심 있는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공통의 과제를 놓고 협력하고 경합하는 장(場)으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