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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보호무역주의가 밀려온다

트럼프발(發) 무역제재가 우리 산업에 끼칠 영향은

철강·자동차 타격받고 반도체에 대한 영향은 미미할 듯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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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강 과잉의 주범인 중국 견제와 오는 11월 미(美) 중간선거 승기 잡기가 목표
⊙ 한미 FTA 재협상으로 자동차 업계 일자리 11만 개 이상 날아갈 수도
⊙ 중국·EU가 보복조치 할 경우 문제는 걷잡을 수 없어
2016년 11월 9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일본 닛케이 지수가 5.36%, 코스피 지수가 2.25% 각각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14.5원 급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신보호주의에 대한 우려는 오늘날 현실이 됐다.
  총성 없는 무역 전쟁이 시작될 조짐이다. 방아쇠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당겼다. 다들 그 총구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총알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직접 가지 않고, 중간에 낀 이 나라 저 나라를 벌집 쑤시듯 헤집고 있다. 전체 수출의 24.8%를 중국으로, 또 12%를 미국으로 내보내는 우리나라는 요새 죽을 맛이다.
 
  대미(對美) 수출은 불안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미국으로의 수출은 전년 2월보다 10.7%가 줄었다. 자동차(-48.9%), 차 부품(-17.3%), 휴대폰 등 무선통신기기(-58.9%) 수출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나 기획재정부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것 같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입규제가 늘어나는 등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고 있어 수출 불확실성이 커졌다. 수출 애로를 없애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획재정부도 1월 산업활동동향 발표에서 금리와 통상현안을 국내 경제 리스크로 꼽았다.
 
 
  철강을 먼저 손을 댄 이유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신(新)고립주의 보호무역은 일찌감치 예상된 바다. 2016년 공화당의 플랫폼(정강정책)은 TPP(복수 간 FTA) 폐기, 한미 FTA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을 모두 재협상하면서 그동안 미국이 주도해 온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추이에서 이탈할 것을 선언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수락하면서 “TPP 상대국이 크게 양보하지 않을 경우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파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철강 산업 제재를 위해 사문화됐던 무역법 ‘제232조’를 근거로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지난 2017년 4월부터 검토해 왔다.
 
  왜 하고많은 산업 중에서 철강이냐에 대해서 두 가지 시각이 혼재한다. 하나는 미국에서 정말 철강 산업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으며, 공급 과잉을 불러일으킨 주범인 중국을 직접적으로 또 우회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에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철강 산업을 손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둘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는 것이 대다수의 시각이다.
 
  한화투자증권이 지난 3월 6일에 내놓은 보고서의 일부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파가 글로벌 무역 전쟁을 도발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목표는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여보겠다는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다시 제조업이 꽃을 피우게 하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다. 한 나라의 제조업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이 에너지와 석유화학, 철강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력을 1차 에너지, 에틸렌(석유화학), 조강(철강)을 기준으로 보자. 미국의 에너지와 에틸렌 생산 능력과 비교해 조강 생산 능력은 크게 낮은 수준이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아랍권에 대한 원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내 에너지 생산을 늘렸고, 그 과정에서 에틸렌 생산 능력도 높아졌다. 이는 국가 안보 차원의 결정이었다. 여기에 철강 생산 능력도 끌어올려 공장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환경을 조성하고, 전 세계 조강 생산 능력의 50%를 차지하는 중국의 제조업과 군사력 확장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는 단기적인 무역적자 축소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제조업 기반 마련과 국가 안보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우위 선점하자는 정치적 이해관계
 
2018년 2월 1일 한미 FTA 2차 개정 협상이 열린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마이클 비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가 협상장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원 관계자의 얘기다.
 
  ― 왜 하필 철강인가.
 
  “미국의 철강 수입이 수출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2017년 미국의 철강 수입은 3400만 톤인데 수출은 1000만 톤 이하였다.”
 
  ― 철강 관세 부과에 미국의 전통 우방국이 빠졌는데, 우리는 포함된 것도 이것으로 설명되나.
 
  “미국의 20대 철강 수입국 중 브라질, 한국, 러시아, 터키 등 9개 국가가 이번 제재 국가에 포함돼 있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대미(對美) 철강 수출의 증가 폭이 매우 높은 국가들이다. 지난 2011년 대비 2017년 대미 철강 수출 증가 폭이 높은 국가를 지목했다. 같은 기간 브라질은 66%, 한국 42%, 러시아 146%, 터키 238%나 대미 수출이 늘었다. 또 우리나라는 미 상무부 보고서에서 언급됐듯이 미국의 강관, 파이프의 수입침투율이 70% 이상으로 매우 높다. 미국 정부가 강관 및 파이프 수입을 예의 주시하는 상황에서, 최근 들어 한국의 유정용 강관, 라인 파이프 등의 대미 수출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 한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 이번에 빠진 국가들은 대미 수출 증가 폭이 높지 않았던 건가.
 
  “캐나다, 일본, 영국 등 주요국들의 경우 12개 국가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과거와 비교할 때 철강 수출 증가 폭이 높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캐나다는 미국의 최대 철강 수입국이기도 하고 2011년 대비 2017년 철강 수출 증가 폭이 5% 수준으로 다른 국가보다 증가 폭이 낮다. 일본은 같은 기간에 대미 철강 수출이 2% 하락했다. 독일의 대미 철강 수출은 40% 늘었지만, 브라질, 한국, 러시아, 터키와 비교하자면 증가 폭이 낮고 수출물량도 적다. 영국은 같은 기간 대미 철강 수출이 오히려 11% 하락했다.”
 
  ― 지난해부터 예고된 상황 아닌가.
 
  “철강 수입에 대한 조사는 지난해 4월부터다. 하지만 미국 내부에서 232조 발동에 대해 반대 의견이 많았다. 이 조항을 발동할 경우에 미국 주요 산업에 대해 부정적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들도 미국이 제232조를 발동하면 보복조치를 하겠다고 시사해 왔다. 이런 미국 내 반대와 이번 결정으로 인해 미국이 얻을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트럼프 입장에서 다급했고, 의지가 강했다고 보인다.”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트럼프의 보호주의는 다분히 11월 중간선거 때문이다. 중간선거에서 이기고 재선을 노리기 위한 포석이다. 정치적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것인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철강이다”며 “전략가인 트럼프가 변칙적 기법을 사용하는 것을 일반적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경제를 도약시켜서 재선하겠다는 의도는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철강 관세 부과 결정되자, US 스틸 “직원 500명 재고용” 발표
 
미국의 조강 생산 능력은 중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트럼프가 우방국을 포함해 전(全) 세계를 상대로 폭탄 과세를 매긴 것이 적어도 현(現)시점에서 미국 일부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트럼프가 철강 관세 부과에 서명할 때 상황을 보자. 지난 3월 8일, 트럼프의 백악관에서는 미국 철강회사 직원들이 그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의 블루층을 대변하는 양 작업용 점퍼를 걸치고 트럼프의 뒤에 서서, 박수를 보냈다. 트럼프의 철강 보호에 대한 단기적 기대감은 높아 보인다. 포스코경영연구원 관계자는 “대표 철강회사인 누코르(Nucor)와 US 스틸은 전년대비 매출, 영업이익, 순익에서 큰 폭으로 개선됐다. 미국 철강회사들의 단기 실적 개선 효과는 뚜렷해 보인다. 출하가격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구조조정이 급했던 미국 철강회사들의 수익성 부담도 확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로 철강 내수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는 US 스틸은 그동안 가동을 중단했던 일리노이주 제철소의 고로 2곳 중 1곳을 우선 재가동하고, 직원 500명을 재고용하겠다고 지난 9일 발표했다.
 
  미국의 《시카고트리뷴》은 9일 “미국 최대 철강회사인 US 스틸이 일리노이주 그래닛시티 제철소의 용광로에 다시 불을 지피기로 하자 주민들이 반색하고 있다. 그래닛시티에 새로운 희망이 찾아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기사에서 “주민들은 US 스틸의 재고용 규모가 새 발의 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번 움직임은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안겼다”고 썼다.
 
  미국이 그토록 펄펄 뛰는 중국 철강의 세계 지배력은 가히 기록적이다. 중국은 2015년 대(對) 세계 철강 수출이 사상 최초로 1억 톤을 돌파했다. 중국이 수출하는 철강의 71%는 한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 국가로 간다. 중국은 전 세계 철강의 50%를 쥐락펴락하고 있고, 미국은 오랫동안 철강 공급 과잉의 주범으로 중국을 지목해 왔다.
 
 
  국내 철강 수출 연간 1조3000억원 줄어들 듯
 
  문제는 우리가 이번 통상 절차로 철강 수출에 단기적으로든 중장기적으로든 타격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철강 수출액은 약 3조5000억원(32억6000만 달러)이었다. 여기에 25%의 관세가 매겨지면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번 조치로 국내 철강 수출이 연간 1조3000억원(12억 달러)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철강업계의 지난해 대미 수출량(354만 톤) 중 140만 톤이 날아갈 수 있다는 예상이다. 특히 원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낼 때 사용되는 유정용 강관(강철로 만든 파이프) 제품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철강 제품 중에서 유정용 강관은 국내 생산 제품의 99%를 미국에 수출할 정도로 대미 의존도가 높다.
 
  포스코경제연구원 관계자의 얘기다.
 
  ― 이번 철강 규제로 인한 한국 철강 수출의 영향은 얼마나 되나.
 
  “현재 미국은 다수의 한국산 철강에 대해 반덤핑·상계관세(AD/CVD) 등을 부과하고 있다. 제232조 발동으로 관세가 부과될 경우 기존의 반덤핑에 추가 부과되기 때문에 사실상 대미 수출이 어려워진다. 특히 강관을 생산하는 철강회사는 수출뿐 아니라 내수시장도 줄어들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산 강관 제품을 다른 국가에 수출하는 데도 부정적으로 될 것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산 파이프 및 튜브는 미국 수입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미국 조치로 가장 손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철강은 제품군이 다양하다. 철강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자면, 파이프 및 튜브, 판재류, 스테인리스, 원형강류, 반제품 순(順)으로 손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포스코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미국으로의 철강 수출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국 철강사가 진출한 지역의 주 정부와 수요업계에 투자법인의 필요성을 계속 얘기하는 것이 방법이다. 철강무역규제 확산 방지를 위해 각국 정부와 공조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미 FTA가 양국에 윈윈이었는데도 재협상하겠다고 우기는 트럼프
 
  한국과 미국이 FTA를 재협상하는 것도 이미 기정사실이다. 미국의 무역대표부는 지난해 7월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요구했고, 석 달 만에 양국이 재협상에 착수했다. 한미 FTA가 한국과 미국 서로에게 윈윈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숫자로 나왔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무역대표부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한미 FTA로 미국의 교역에 상당한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미국이 FTA를 체결한 국가 중에서 한국처럼 서로 윈윈을 일으킨 국가(혹은 계약)가 없다”고 말했다.
 
  IBK투자증권이 내놓은 보고서의 일부다.
 
  〈지난 5년간 한미 FTA를 통해 대미 수출과 수입의 비중은 3.3%, 2.1%씩 확대돼 양국 교역 여건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가 개정 또는 폐기된다고 해도 미국의 무역 불균형 문제가 해소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양국의 관세 구조 역시 한미 FTA 폐기 시 한국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이 없어져도 미국과 한국은 모두 WTO 회원국이기 때문에 최혜국 대우(제3국에 부여하는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부여한다는 WTO의 원칙) 관세를 적용하게 된다. 대미 수출입은 모두 감소하지만, 양국 간 관세율 차이로 인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미국이 문제로 삼는 대한(對韓) 무역 적자는 한미 FTA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산업경쟁력 부진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의 조사로는 양국의 교역에서 93%를 차지(2016년 기준)하는 제조업의 가중평균 관세율은 양국 모두 0.1% 수준이다. 협정이 종료되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관세율은 1.6%, 한국의 대미 관세율은 최소 4%로 한국의 대미(對美) 관세가 더 높다. 쉽게 말해서 재협상을 하더라도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고, 우리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도 그다지 없다는 주장이다. 여러 자료와 숫자가 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뭔가에 쫓기는 사람인 양 ‘한미 FTA 재협상’을 부르짖는다.
 
 
  한미 FTA 재협상으로 자동차 업계 생산유발 손실 36조원에 이를 수 있어
 

  하지만 한미 FTA 재협상이 이뤄질 경우, 국내 자동차 업계의 타격은 피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6년 12월에 ‘한미 FTA 재협상론과 한국 산업에 대한 경제적 영향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세 가지 시나리오(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 세이프가드 발동, 한미 FTA 전면 재협상에 따른 양허 정지)를 가정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로 인해 수출 손실 46억 달러, 일자리 손실 4.1만명, 생산유발 손실 12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만일 세이프가드가 발동될 경우에는 자동차 산업 수출 손실 413억 달러, 일자리 손실 36.9만명, 생산유발 손실 113조원이라고 내다봤다. 그보다 나아가 한미 FTA 전면 재협상이 있을 경우, 자동차 산업은 수출 손실 133억 달러, 일자리 손실 11만9000명, 생산유발 손실이 36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로는, 우리가 한미 FTA를 통해 가장 이득을 본 부문은 자동차였다.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무역 패턴은 2010년 이후에 줄곧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2015년에는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2011년 이후에 증가해 세계 수출의 3분의 1(2015년 기준)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가 미국에 완성차를 수출한 총량은 100만 대(2015년 기준)였다.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한미 FTA 재협상이 이뤄질 경우 가장 걱정되는 것은 자동차다. 미국은 재협상 과정에서 자동차를 압박 수단으로 쓸 가능성이 크다”며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어차피 주도권이 없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계는 현재의 트럼프발 무역전쟁이 자신들에게 당면한 과제인 만큼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동차에 부과됐던 2.5%의 관세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없어졌다. 관세가 붙으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판매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 내 생산량을 늘릴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하고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관세를 물기 싫으면 미국에 공장 지어서 생산해 판매하라’는 것인데 말처럼 쉽지 않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공장을 더 지으라고 하면 한국 완성차 입장에서는 힘들 수밖에 없다.”
 
  ― 또 손해를 입는 곳을 꼽으라면.
 
  “자동차 부품업체도 함께 피해를 본다. 자동차는 부품업체들과 동반 진출하는 것이 필수인지라 이들 역시 관세 폭탄을 피해갈 수는 없다. 더 문제는 현재 미국의 FTA 재협상 내용 중에 ‘우회 생산 제품’에 대해서도 관세를 물린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미국에서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관세를 물리겠다는 것인데, 관세 피하려고 조 단위의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하는 건지 난감하다. 자동차 업계의 입장은 FTA를 파기하고 재협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문제 삼아 WTO로 들고간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미국이 세탁기에 세금 물리기 전에 얼마나 치밀했는가 보니…
 
미국은 올 초 삼성과 LG의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제재에 앞서 세금 폭탄을 부과한 곳은 삼성, LG의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이었다. 지난 1월, 미국은 삼성과 LG전자 가정용 대형 세탁기에 대해 연간 120만 대를 초과한 수입 물량에 대해 첫해에는 50%, 2년 차에는 45%, 3년 차에는 40%의 관세를 각각 물리도록 했다. 세이프가드의 결정은 우리 가전업계에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미국이 이 조치를 내리기 전에 얼마나 치밀한 준비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월에 한국경제연구원과 긴급 좌담회를 벌인 내용에 자세히 나온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13년 한국 및 멕시코산 세탁기에 대해 반덤핑 조치를 내렸다. 이러한 상황에 삼성과 LG는 각각 중국 쑤저우와 난징을 대미 수출 기지로 활용했다. 이렇게 되자 미 정부는 2017년 1월에 중국산 세탁기에 대해 고율의 반덤핑 조치(38~57%)를 취해 이에 대응했다. 다시 삼성과 LG는 대미 수출기지를 중국에서 태국과 베트남으로 옮겼다. 이에 미국은 “세이프가드는 캐나다와 일부 지정된 개도국들을 제외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 수입하는 세탁기라도 제재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세탁기를 중국에서 생산해도 세금을 물리고, 태국과 베트남에서 생산해도 세금을 물리고, 결국 미국 안에서 생산해서 판매하라는 뜻이다. 우리 정부는 WTO의 ‘WTO 회원국이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 일방적인 무역 보복을 실시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로 보상 요구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WTO가 우리의 보호 장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삼성 등 개별업체가 아예 미국 세관을 상대로 소송을 한 예도 여러 번이다.
 
 
  “반도체를 제재하기에는 미국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너무 크다”
 
  이쯤 되니 국내 관계자들의 관심은 반도체로 쏠렸다. 국내 세탁기, 철강에 대해 세금을 매긴 것에 이어 자동차에 대해서도 재협상을 하겠다고 하니 결국은 우리 반도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하지만 취재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도체에 미국이 제재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보인다.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반도체는 대체가 안 된다. 미국 내 공장에서 조달하는 것이 10% 미만이다. 관세를 올려봐야 효과도 없고, 대체재가 없으니까 당장 그 카드를 쓰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반도체협회 관계자 역시 “낸드메모리의 경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전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다. 이에 대해 관세를 물리기도 어렵고, 반도체의 경우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주로 납품되며, 이것이 애플 등으로 납품돼 ‘메이드 인 USA’를 달고 시장에 나가기 때문에 미국이 반도체를 제재하기란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미래에셋 애널리스트는 “IT는 미국의 수입 의존도가 너무 높다. 철강, 자동차를 제재해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반도체까지 건드려 전 산업으로 무역 전쟁을 일으키기에는 그 경제적 손실이 트럼프가 얻을 정치적 이익보다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번 트럼프발 무역 전쟁을 지켜보는 일부 사람들은 많이 앞서 나간다. 이번 무역 전쟁이 혹여 환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환율은 이번 무역 전쟁과 비교해 파장이 훨씬 큰 부문이다. 쉽게 말해 환율을 움직이는 것은 똑같은 통화를 가지고, 1개의 사과를 살 수 있는 금액이 2개의 사과를 살 수도, 3개를 살 수도 있을 만큼 예민하다.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환 전쟁으로 가기는 어렵다. 환율은 통상정책이고 펀더멘털의 이슈다. 통상이 환율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소설로 보인다”며 “통상압력이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고, 따라서 환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만, 진짜 환 전쟁을 하자는 것은 실제로 무기 들고 싸우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EU의 보복조치가 가장 큰 문제
 
  업계의 대다수 사람이 우려하는 것은 이번 트럼프발 무역 전쟁이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IBK투자증권의 지난 2월 보고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조치들이 다른 나라의 대응을 유도해 다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보호무역 조치들로 인해 글로벌 경제는 큰 폭의 위축을 경험했다. 과거 데이터를 봐도 미국의 무역 조치는 1~2년 시차를 두고 다른 나라의 대응으로 이어져 글로벌 보호무역 조치 통계를 변화시킨다. 글로벌 보호무역 조치는 글로벌 교역에 영향을 미치고, 교역을 통해 글로벌 경제 성장률에도 영향을 미친다. 향후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분히 정치적인 트럼프의 발언에 중국이나 EU 등 주요 교역국들이 실제적으로 어떤 조치를 내놓을 것인지다.〉
 
  이런 시각은 미국 내(內) 자유무역론자들의 생각과 똑같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 쉽다고 썼는데 완전히 바보 같은 생각이다. 수입 소재·부품 없이 미국이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수백, 수천 개의 미국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하는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세계 수출의 9%, 수입의 14%를 차지하는 미국은 지배적 초강대국이 절대 아니며 우리는 무역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함과 무지로 인해 미국과 세계경제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전쟁의 첫 총성을 울린 후 미국 철강 업종 주가는 5.75% 올랐지만 미국 전체 증시는 1% 이상 하락했다. 세계 증시가 하락의 악순환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무역 전쟁에 샌드백으로 끼였다는 것이다. 미래에셋 애널리스트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속에 우리가 끼였다. 산업 전반적 피해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더라도, 중국과 EU가 전쟁을 선포할 경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해 보면 미국이 무역 제재를 가할 경우에 다른 국가들이 1~2년 뒤에 ‘보복조치’를 한다고 하는데, 이번은 사안이 틀리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산 철강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EU는 미국산 철강은 물론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할리데이비슨, 위스키 생산업체인 버번, 청바지 업체 리바이스 등 ‘상징적 브랜드’에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폭탄 과세’ 발표 전에 이미 미국산 콩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미국산 수수에 대한 조사도 착수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들 한다. 1929년 뉴욕 증시의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이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당시 허버트 후버 행정부는 불황 타개책으로 구조조정 대신에 관세율을 59%까지 인상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이에 맞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관세율을 높이며 보호무역을 펼쳤다. 후버 행정부의 관세법은 결국 미국을 장기적 대공황으로 이끈 결과를 낳았다. 미국 내 자유무역보호론자들이 우려하는 바다. 100년 전의 무역 전쟁이 또다시 재연되지 않을까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보호무역조치의 종류
 
  반덤핑 관세: 수입국으로 판매되는 특정 품목의 덤핑(수출 가격이 수출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동일 품목의 국내 가격보다 낮은 경우), 국내 산업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겪을 경우 반덤핑 관세를 부과
 
  상계관세: 수출국이 직접(간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해 수입군 산업에 실질적 피해를 줄 경우, 해당 품목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
 
  양적 제한: 특정 품목의 수입(수출)에 대해 그 수량이나 금액을 제한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해 국내 해당 산업의 피해를 일으키는 경우, 해당 품목의 수입수량 제한(또는 관세인상)으로 수입 제한
 
  특별 세이프가드: 일반 세이프가드보다 발동 기준이 완화됨. 국내 산업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 아닌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도 수입 제한 가능
 
  SPS 협정: 식품위생 및 동식물 검역 기준이나 절차가 무역규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협정
 
  기술적 장벽(TBT 협정): 무역에 대한 기술장벽을 낮추고 자유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각국의 표준 및 기술규정을 국제표준에 맞추도록 의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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