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노벨경제학상이 주목한 ‘부드러운 권유’의 힘

수리(數理)·시장 중심에서 심리(心理)·사람 중심의 경제학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리처드 세일러(시카고대) … 기존 경제학에 심리학 접목
⊙ 행동경제학은 ‘넛지(Nudge) 경제학’… 타인의 긍정적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경제학
⊙ 넛지이론을 활용한 마케팅 인기… 고객의 니즈(Needs)를 읽어라!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 미국 시카고대 교수.
  거시(巨視)와 미시(微視) 같은 거대담론 경제학에 비해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소(小)서사와 같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널리 퍼뜨린 ‘넛지(nudge)’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한다. ‘넛지’는 주의를 끌기 위해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의 뜻이다. ‘물건을 조금씩 슬쩍 움직이게 하다’, ‘~에 가까이 가다(near)’의 뜻도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넛지는 정부의 ‘은근한’ 개입으로 직관적이고 게으른 사람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암스테르담 공항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이야기가 자주 회자된다. 남자 소변기 주변이 하도 더러워 물청소를 하는데 이골이 난 공항 측이 꾀를 냈다. 소변기 중앙에 검은색 파리를 슬쩍 그려 넣었다. 그러자 변기 밖으로 튀던 소변 양이 80%나 줄었다. 소변이 튀면 파리가 들끓는다는 자극적인 경고를 넣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무엇이 튀는 소변을 줄이게 만들었을까. 파리 그림이 남성들로 하여금 정확하게 조준하도록 만드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때 ‘조준한’ 남성들의 사고가 합리적이었을까, 비합리적이었을까.
 
  ‘넛지경제학’은 강제적 혹은 획일적인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다. 아주 부드럽고 자유스럽지만 스마트한 선택을 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넛지를 ‘자유주의적 개입’ 혹은 ‘부드러운 권유’라고 부른다.
 
  요즘엔 ‘넛지 마케팅’이란 말이 유행이다. 넛지 마케팅은 종전의 상품 마케팅과 다르다. 고객의 주의를 끌려고 악다구니를 쓰지 않는다. 무료 쿠폰을 나눠 주거나 원 플러스 원 같은 전략을 쓰지 않는다. 그저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음료 매장에서 최신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판다. 학용품 진열대 곁에 군것질용 과자를 둔다. 단무지, 소시지 코너 옆에서 김밥용 김과 어묵을 판다. 우유 코너에 미숫가루가 놓여 있다.
 
  여성복 브랜드들이 입점한 백화점 3층 여성의류 매장 한쪽에 패션 가발을 파는 매장 내의 헤어살롱이 인기다. 가발을 사는 고객을 위한 가발 전용 미용실이다. 머리숱이 부족한 40~50대 여성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가발 매장 매출이 덩달아 30% 늘었다.(참조 《넛지 마케팅》, 한국경제신문, 2010)
 
  이런 넛지 아이디어는 소비자의 사고를 툭 건들며 매출을 올리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행동경제학과 행동수정, 그리고 기존 경제학과의 차이
 
리처드 세일러 교수의 저서들. 왼쪽부터 《넛지》, 《미스비해빙(Misbehaving)》(국내 번역 제목은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Quasi-Rational Economics》(‘준합리적 경제학’).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행동을 수정, 더 큰 만족을 가져다준다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행동의 수정은 주변 환경이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게 하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특수한 하위문화가 특정한 범죄행동 내지 비행에 대해서 이를 강요하거나 설득하거나 묵인하거나 찬양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그런 행동을 계속하게 한다는 가설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일종의 병리적 환경을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대신 특정문화에 길들여진 특정 행동을 수정하면 된다. 굳이 가르치고 수정하지 않아도 합리적 사고(선택)를 할 수 있게끔 ‘유도’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미국의 행동수정 교육학자 프리맥(Premack)은 빈도가 높은 행동은 빈도가 낮은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것을 ‘프리맥의 원리’라 부른다. 예컨대 학교에서 학생들이 하고 싶어하는 활동이 무엇인지를 알아낸 뒤에, 그 학생에게 어떠한 과제를 주어서 그것을 규정된 시간 내에 정확하게 했다면 그 조건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하게 한다. 구체적인 예는 이렇다.
 
  많이 놀고 (확률이 높은 행동) 적게 공부하는 (확률이 낮은 행동)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주려고 가령 10분간 공부하게 한 뒤 15분 또는 20분 놀게 한다.
 
  인간은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적 존재다. 놀기 좋아한다. 하지만 마냥 놀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공부시간을 늘려야 한다. 프리맥은 여러 교육실험을 통해 자신의 원리를 입증했다. 행동장애아들의 공격적 행동의 수정과 학습에 참여하는 행동의 증강에 성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만 행동수정은 구체적인 수정계획에 의해 단계적으로 목표에 다가선다면 행동경제학은 간접적 방식으로 목표 달성을 돕는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비합리적 속성에 관심이 많다. 이는 기존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시장 중심 경제학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소비자(인간)의 선택이나 기호 같은 개별적인 의사결정보다, 개인에 영향을 덜 받는 시장에 관심을 가져 왔다. 개인이 자기 이익에 충실한 선택을 해도 시장이라는 커다란 테두리에서 최적의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애썼다. 그럼에도 시장의 실패가 나타났을 때 보안책을 마련하는 데 고심했다.
 
  조세제도를 개편한다거나 독점을 규제하고 영세상인을 보호하며 정부의 역할과 경제정책에만 관심을 두려 애썼다. 어디에도 소비자, 즉 인간에 대한 분석은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려서 시장을 이끌어 간다고 보았고 비합리성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 시장이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역이용
 
  행동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실패나 경제제도의 실패를 시장에서 찾기보다 소비자의 ‘선호의 실패’에서 찾는다. 비합리적 의사결정의 결과에 초점을 둔다. 이는 심리학의 연구성과를 경제학에 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심리학자 엘리스(Ellis)는 인간이 때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왜냐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선한 행동도 하지만 파괴적인 악행도 저지른다. 앞으로도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엘리스는 또 비합리적 사고체계가 문제행동을 낳는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모든’ ‘항상’ ‘반드시’ ‘꼭’ ‘결코’라는 말을 밥 먹듯 한다. 이런 단어가 들어가는 생각이나 사고는 융통성이 없는 비합리적 사고다. 따라서 인간의 문제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 같은 신념체계 내지 사고방식이 비합리적인 데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엉뚱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한 여성이 더블침대용 커버를 사려고 매장에 들렀다. 마침 물건은 세일 중이었다. 킹 사이즈 커버의 정상가는 300달러, 퀸 사이즈 커버는 250달러, 더블 사이즈 커버는 200달러였다. 그런데 이번 주만 특별히 사이즈에 관계없이 모두 150달러에 판다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분명 더블 사이즈 커버를 사러 왔지만 킹 사이즈 커버를 사서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원치 않은 물건을 샀는데도 왜 기분이 좋아졌을까. 킹 사이즈 커버의 할인율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 여성의 선택과 같은 인간의 비합리성은 교육이나 계몽, 학습을 통해 근본적으로 개선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보았다. 인간의 인지적인 취약성은 아무리 장기적으로 정보나 지식이 늘어나고 경험이 쌓여도 근본적인 개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이유
 
인간은 인지 편향(Cognitive Biases)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마음의 거리를 세일러 교수는 ‘심리적 계좌(Mental Accounting)’ 때문으로 설명한다.
  행동경제학은 이런 인간의 비합리성을 역이용한다. 슬쩍 찌르듯 말이다. 한 예로 고교의 뷔페식 식당에서 음식배열을 바꿨다. 건강식을 눈에 띄게 앞쪽에 배치했더니 건강식을 선택하는 학생비율이 훨씬 높아졌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음식배열이 어떻든지 선택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열을 달리했더니 선택의 기준이 달라지더란 것이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A전자가 심혈을 기울여 김치냉장고를 출시했다. 타사보다 밀폐력이 뛰어나고 수분도, 신선도 유지도 탁월했다. 하지만 아무리 광고를 해도 소비자 반응은 시큰둥했다. 회사는 꾀를 냈다. 김장철을 맞아 여성들이 많이 찾는 미용실과 놀이공원 등지에서 김치냉장고 행사를 벌였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머리손질하러 갔다가 김치냉장고를 사는 행위를 어떻게 합리적인 소비행위로 연결시킬 수 있겠는가.
 
  헬스클럽과 관계되는 예도 있다. 헬스클럽을 이용할 수 있는 옵션이 네 가지 있다고 하자. 한 번 갈 때마다 1만5000원을 내는 것, 10번 갈 때 10만원을 내는 것, 한 달에 15만원을 내는 것, 1년에 90만원을 내는 옵션이다. 사람들은 어떤 옵션을 주로 택할까? 한 번 갈 때마다 비용을 따져 보면, 연간 계약이나 한 달 계약보다 10번 갈 때 10만원을 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꼬박꼬박 매일 운동하는 사람에게는 연간 옵션이 가장 저렴하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은 처음 열심히 헬스를 하다 중도포기하기 마련이다. 헬스클럽 입장에서는 이런 심리를 역이용,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1000명밖에 수용할 수 없어도 장기간에 1만명과 계약을 맺어 운영할 수 있어 수익은 늘어날 수 있다. 헬스클럽 입장에서 장기간 계약에 가격을 내리면 실제 수익은 늘어나게 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저렴해 보인다.
 
  과거 기업들은 고객 선호도를 파악하기 위해 시장조사를 활용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 시장조사 무용론이 대두되고 있다. 수치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통계적 기법의 유용성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두고 여러 주장이 있지만 “고객 스스로도 자신의 니즈(needs)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도 있다. 이 말은 기존의 분석으론 고객의 내밀한 심리와 감성, 다시 말해 비합리적 선호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닌텐도는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소니나 MS와 같은 경쟁자들이 찾아내지 못한 니즈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닌텐도는 비게이머들이 왜 게임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성인이나 여성고객들의 니즈가 무엇인가를 찾아냈다. 닌텐도는 비폭력적인 가족형 게임기를 개발하는 데 이르렀다.⊙
 
마음의 계좌(Mental accounting)란?
 
  “‌같은 돈이라도 심리적으로 다른 이름 붙여 다르게 취급”
 
  행동경제학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 중에 심리적 계좌(혹은 마음의 계좌, 심성회계)라는 말이 있다. 다음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가) 영화 티켓을 1만원 주고 사려고 극장엘 갔다. 지갑 속에 있던 용돈 1만원이 사라졌다. 오다가 흘린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집에 들러 1만원을 들고 영화 티켓을 사겠는가?
 
  (나) 영화 티켓을 1만원 주고 구입했다. 극장에 도착했는데 티켓을 잃어버렸다. 다시 1만원을 주고 티켓을 사겠는가?

 
  (가)상황은 매우 유동적이다. 티켓을 구입할 수도, 안할 수도 있다.
 
  (나)상황은 티켓을 구입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사라진다. 실제 실험에서도 그랬다. (나)상황은 왠지 돈이 더 아깝게 느껴진다.
 
  (가)(나)상황 모두 1만원을 잃어버린 것은 똑같다. 영화를 보려면 1만원을 다시 지불해야 하는 것도 똑같다.
 
  그럼에도 왜 차이가 나는 것일까? 상황 (가)에서 잃어버린 1만원은 전적으로 지갑에 있는 현금이다. 하지만 상황 (나)에서 잃어버린 것은 영화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상황 (나)에서는 그것을 위해 ‘다시 지불’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비슷한 일에 무언가를 소모하면 그다음 일에 인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깝고 속상한 기분이 더 든다.
 
  이런 차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심리적 계좌’ 차이 때문으로 본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7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정기구독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