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출길 일찍 뚫고, 스마트폰 국내 최초로 출시하고, 특허만 1만 개가 넘지만…
⊙ 실제로 승승장구한 것은 6년 남짓
⊙ 실제로 승승장구한 것은 6년 남짓
- 팬택 상암동 본사 사옥.
지난 5월 8일에 방문한 팬택의 서울 상암동 본사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바이어들로 북적여야 할 2층 회의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분위기였다. 1300여 명의 임직원 중 절반 이상이 휴직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한때 세계 7위의 휴대전화 제조회사로 이름을 날린 팬택의 말로는 처참하다. 팬택의 새 주인을 찾으려는 세 번의 시도가 모두 무산됐고, 법정관리 중인 이 회사에 대해 법원이 ‘회생 불가’를 결정하면 팬택 법인은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팬택의 지난해 부채는 9961억원, 자산은 2794억원에 불과하다. 법원이 파산 절차를 시작하면, ‘빚잔치’로 팬택이 보유한 자산을 순차적으로 매각해 채권단이 가져간다. 업계에서는 그래 봐야 채권단이 손에 쥐게 될 돈이 빌려준 액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매각 주관사인 삼정회계법인은 ‘팬택의 청산가치(1500억원)가 계속기업가치(1100억원)보다 높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때 삼성, LG와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렸던 팬택은 어느 시점에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창업주인 박병엽(朴炳燁)씨는 맥슨전자의 영업사원이었다. 그는 1991년, 경기도 부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팔아 자본금 4000만원을 마련한 후 직원 6명과 함께 무선호출기 제조기업인 ‘팬택’을 설립했다.
삐삐 제조업체가 이동전화 만들며 사세 확장
팬택의 노란색 비퍼(삐삐)는 인기였다. 팬택은 지난 1992년에 매출 28억원을 기록했고, 국내 최초로 문자호출기를 출시(1994년)했다. 삐삐가 붐이었던 지난 1997년 회사의 매출은 762억원으로 불었다. 그리고 그해에 팬택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휴대전화 제조업에 진출했다. 그해 8월에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는데, 공모가격이 6만5000원. 그해 증시 사상 최고가였다.
박병엽 전(前) 부회장은 IMF의 어둠이 막 몰려오던 시기에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박 전 부회장의 한 지인은 “당시 팬택은 핫(hot)한 벤처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직원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방학 단기 어학연수를 보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직원 복지에 애썼다. 그의 방대한 인맥 덕분에 친인척, 출신학교(호서대) 사람들, IT 관련 업종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에 관한 얘기를 하기 바빴다. 화려한 벤처 회사의 탄생 전조였다”고 초창기의 상황을 증언했다.
박 전 부회장은 시대적 흐름도 빠르게 읽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생업체의 애로사항을 덮고자, 미국의 모토롤라와 전략적 제휴(1998년)를 맺고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이 제휴를 토대로 팬택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사실 이 제휴에는 뒷얘기가 있었다. 원래는 모토롤라가 거액을 박병엽 전 부회장에게 제시하며 팬택 인수를 제안했는데, 박 전 부회장이 이를 거절하고 역으로 모토롤라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냈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차린 지 불과 8년 만에 사업의 중심은 삐삐에서 이동전화로 옮겨갔다. 지난 1999년 말을 기준으로 팬택의 ‘삐삐’ 매출은 전체의 0.8%(18억원)에 불과했고, 92.6%(2098억원)가 이동전화 부문에서 발생했다. 이동전화 부문 매출 성장세는 전년 대비 1232%. 총 이동전화 가입자는 2340만명이었다. 팬택은 향후에도 이런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짐작하고 지난 2000년 5월, 매월 50만 대 이상의 단말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신공장을 건설했다.
그리고 지난 2001년, 팬택은 당시 ‘걸리버’라는 휴대전화를 생산하고 있던 하이닉스의 자회사 ‘현대큐리텔’을 인수했다. 지난 2000년 말, 이동전화 제조업체들의 국내 판매 대수는 삼성전자 650만 대, LG전자 350만 대, 세원텔레콤 124만 대였고, 텔슨전자(95만 대), 현대전자(90만 대), 한화/정보(90만 대), SK텔레텍(80만 대), 팬택(57만 대)이 뒤를 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보더라도 팬택이 현대큐리텔 인수로 삼성-LG에 이어 3위의 이동전화 제조업체가 됐다.
현대큐리텔 인수는 성공적
이즈음 팬택은 IT업계는 물론, 타 업계에서까지 인력을 대거 영입하기 시작했다. IT와 전혀 상관없는 A씨 역시 이즈음 팬택에 합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내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자본력을 앞세운 재벌 그룹에 대항하는 벤처 회사라는 점, 또 오너인 박 전 부회장이 영업직 샐러리맨이었다는 점은 호재였습니다. 당시 벤처 기업이라고 하면 다음커뮤니케이션, 프리챌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회사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팬택처럼 휴대폰을 제조하는 회사가 새로 생겼다는 것은 고무적이었습니다.”
—현대큐리텔 인수는 성공적이었군요.
“중소기업에서 단숨에 거대 단말기 업체로 변신했으니까요. 현대큐리텔은 현대전자의 자회사답게 R&D 인력이 500명이 넘었습니다. 이들이 연간 만들어내는 독자 모델이 40여 개가 넘었습니다. 사명(社名)을 팬택&큐리텔로 바꿨을 만큼, 현대큐리텔의 인지도가 높았습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효과는 미국으로의 수출 판로가 열린 것이었습니다.”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인가요?
“국내에서는 삼성, LG와 경쟁 구도가 시작됐고, 현대를 인수한 다음해에 미국의 한 회사와 1조원대의 휴대폰 수출 계약이 성사됐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였습니다. 내수 시장에서는 점차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었고, 글로벌 브랜드가 되겠다는 기치로 미국 시장을 다이렉트로 공략하던 시기였습니다.”
—성공적인 M&A, 타이밍이 맞는 해외 진출 등을 보자면 갑작스런 사세 축소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두 번째 M&A였던 SK텔레텍 인수가 독(毒)이었다고 봅니다. 통상 ‘승자의 저주’라고 하여 M&A를 성공한 모 기업이 오히려 인수 기업 때문에 약해지는 사례가 팬택에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SK텔레텍과의 시너지 효과가 좋지 않았나요?
“현대큐리텔을 성공적으로 합병한 후에 경영진의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SK텔레텍을 인수하면 과거처럼 그만큼 점유율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팬택은 당시 중저가, SK텔레텍이 내놓은 ‘스카이’라는 휴대폰은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한 최고가의 제품이었습니다. 팬택이 SK를 인수하자 SK고객이 떠나기 시작한 겁니다. 팬택으로서는 고가 고객, 기존의 중저가 전화를 이용하는 고객, 모두 잃어버리게 된 겁니다.”
패착은 SK텔레텍 인수
팬택은 지난 2005년 5월, SK텔레콤의 자회사인 휴대폰 제조업체 SK텔레텍을 3000억원에 전격 인수했다. 팬택의 인수자금 3000억원은 회사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규모였다. 일부에서는 “SK텔레텍을 지나치게 비싸게 샀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당시 팬택에 근무했던 B씨의 얘기다.
“회사가 해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며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이었고, 지나치게 비싸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팬택은 당시 SK텔레콤 지분을 조금 보유 중이었는데, 그 지분을 담보로 인수대금을 차입하겠다는 방향을 세웠습니다. 현대큐리텔을 사들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SK텔레텍 인수로 인한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SK를 사고자 하는 의욕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3000억원이나 준 것이었습니까?
“지금이야 실패로 결론지어진 상황이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불확실성이 담보돼 있지 않습니까. 그때는 저 정도의 비용을 투입하더라도 더 큰 이득을 볼 것이라는 계산이 확실히 있었죠. SK도 어차피 단말기 사업을 계속하기는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SK텔레텍이 고가의 휴대폰을 출시한 것을 경계했거든요. 정보통신부 역시 ‘이동통신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SKT)가 단말기 시장까지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두 회사 간의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겁니다.”
팬택의 당시 사업보고서 공시 내용은 이렇다.
《팬택은 2005년에 SK텔레텍과의 합병을 단행해 국내 시장에서 강한 브랜드 경쟁력을 자랑하는 SKY 브랜드를 확보해 내수, 수출 부문의 균형적인 사업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내수 사업에는 더욱 차별화된 제품을 통해 SKY 브랜드의 경쟁력을 배가할 것이다. 오는 2006년에 매출수량 1200만 대, 매출액 2조2000억원을 목표로 비약적인 성장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팬택은 지난 2006년 말에 매출 1조2692억원, 영업이익 -1670억원, 순이익 -4323억원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팬택은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오늘날 우여곡절을 겪게 된 팬택 운명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박병엽 전 부회장에 대한 원망은 거의 없어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사람에게 “결론적으로 팬택이 파산 위험에 놓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의 무리한 M&A 시도, 턱없는 자금 부족, 삼성·애플 등장으로 인한 외부적 요인 등 나름의 다양한 분석을 내놨다.
혹시 창업주였던 박병엽 전 부회장의 경영자로서 자질의 문제가 아닐는지 싶어 여러 사람에게 물었으나,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차례 워크아웃 신청 과정에서 보인 박 전 부회장의 행보 때문인 듯 싶었다. 팬택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팬택이 처음 워크아웃을 신청할 때 11개의 은행 채권자들을 일일이 설득했습니다. 박 전 부회장이 4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먼저 내놓겠다고 말입니다. 당시는 채권자들이 100% 동의하지 않으면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은행 관계자들이 ‘우리야 그렇다 치지만, 개인 채권자들의 동의를 어떻게 구할 것이냐’며 3개월간 부채 상환을 유예해 줬습니다.”
—박 전 부회장이 결과적으로 모두 설득한 모양이군요.
“3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 돌아다녔습니다. 개인 채권자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회사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회사 직원들조차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모든 채권자의 동의를 받아냈습니다.”
그렇게 팬택은 지난 2007년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팬택의 전직 고위 관계자인 A씨의 얘기다.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사내에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팬택이 합병을 통해 컸기 때문에 17개 회사 출신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회사 출신인지, 또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건지 당황스러워했지만 외부의 우려보다 잘 굴러갔습니다.”
실제로 팬택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1년 만인 지난 2008년 1분기 -783억원이었던 순익은 2분기에 472억원을 기록했다. 결국 팬택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4년 만인 지난 2011년 말 워크아웃 딱지를 뗐다.
기술력에 올인, 마케팅은 주춤
그리고 팬택은 워크아웃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2차 공격에 들어갔다. 팬택 관계자의 설명이다.
“스마트폰을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한 곳이 팬택입니다. 삼성전자, LG전자보다 앞섭니다. 팬택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시리우스’ ‘이자르’ ‘베가’ 등을 지난 2010년부터 출시했습니다. 국내에서만 약 10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했습니다.”
—팬택이 업체 중 가장 먼저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아 보입니다만.
“나중에 삼성과 애플이 소송전을 벌이면서 스마트폰은 두 회사 중 하나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고정됐지만, 가장 먼저 출시한 곳은 팬택입니다. 팬택은 지난 2012년, 2년 연속 스마트폰 300만 대 이상을 판매해 스마트폰 시장 2위 자리를 공고히 했죠.”
—시대적 변화에 둔감해서 오늘날 파산 처지에 처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군요.
“오히려 시대적 변화에는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단순한 스마트폰에 머물지 않고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이 형성되리라는 것을 간파하고, 세계 최초의 프로세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또 쇠락했나요.
“이때부터는 외부적 요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브랜드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지난 2011~2013년까지 삼성과 애플이 특허 소송을 했습니다. 특허 싸움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면서, 희한하게도 스마트폰은 ‘갤럭시’(삼성) 아니면 ‘아이폰’(애플)이라는 교묘한 등식이 생겼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팬택은 기술력 있는 제품 생산에 더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휴대전화가 좋은 제품에서 좋은 브랜드로 넘어가는 것을 놓친 겁니다. 팬택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고가의 마케팅 비용이 필수적인데, 여력이 없었죠.”
전직 고위 관계자인 A씨는 “팬택이 오늘날처럼 된 것은 기술력이 아닌, 재벌과의 돈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허 가치만 최소 500억원”
실제로 팬택은 지적 재산권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지난 3월 말을 기준으로, 등록 표준특허(Essential Patent) 116건(국내 22건, 해외 94건)을 보유하고 있다. 팬택 관계자는 “표준특허란 어떤 제품을 표준화할 때 이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제작, 판매, 리스, 수리, 사용 등이 불가능한 특허를 말한다. 표준특허가 많다는 것은 그 회사의 기술력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팬택은 ‘표준특허’ 외에도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1만3051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팬택이 보유한 특허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특허를 신청한 건수가 꽤 있기 때문이다.
팬택 관계자는 “특허청의 국내 기업 표준특허 보유 현황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이어 팬택이 보유량 4위 업체”라며 “우리가 보유한 특허의 가치만 해도 최소 500억원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팬택의 주장대로라면, 최소 특허의 가치만 500억원인데 왜 인수하려는 기업이 하나도 없을까. 팬택은 법원이 새 주인을 찾으면서, 사실 중국 기업이 자사를 인수할 것으로 기대했던 듯 싶다. 팬택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처음에 우리 회사가 매물로 나왔을 때 중국의 H사는 관심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휴대폰을 제조하고 있지만 특허, 기술력이 턱없이 모자라 우리를 탐낼 줄 알았거든요. 결과는 달랐습니다만.”
—특허가 그렇게 많은데 왜 이리 사겠다는 업체가 없나요.
“특허라는 것이 사용자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제품을 제조할 때 다른 곳으로부터 ‘우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논란이 일 때 방어하기 위해 특허를 사는 경우가 있고, 또 자신들이 특허를 가짐으로써 타업체가 비슷한 기술을 탑재할 때 그들을 공격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특허라는 것이 만들어낸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것을 사용하는 업체에서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보니, 단순히 특허만 보고 회사를 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법원은 지난 2014년 8월 이후 세 차례 공개 입찰을 실시했다. 인수 대상자로 선정된 곳 중 한 곳은 마감 일에 매각대금을 내지 않아 무산됐고, 또 다른 몇몇 업체는 법원이 실질적인 인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후속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최소 5000억원 이상 투입해야 회생 가능”
증권가에서는 팬택의 새 주인 찾기가 어려워진 원인을 앞으로 투입해야 할 비용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의 관계자는 “채권단에서 팬택의 인수자에게 꽤 많은 부채를 탕감해 준다고 해도, 향후 팬택을 원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최소 5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팬택은 막판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창업 이래 23년간 이동통신 모바일 사업만을 지속한 첨단 기술 회사인 점, 수출과 고용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점, 상징적인 벤처 기업임을 앞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팀장급 직원들 전원이 “회사를 인수하려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자, 우리의 고용권을 일임한다”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팬택이 기사회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더욱이 팬택이 청산 절차에 들어갈 경우 시장에 미치는 파장 역시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팬택과 관련된 회사들 중 상장회사가 거의 없다. 팬택이 두 번이나 워크아웃을 한 경험 탓에 부품업체들도 납품 다변화를 꾀한 상태”라며 “삼성의 독주가 심화되고 3자 구도가 깨진다는 생태계의 구조적인 변화가 있지만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수에 머물지 않고 수출길을 일찌감치 열었고, 시대적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국내 최초로 스마트폰을 내놨고, 노사 간의 극렬한 대립도 없었고, 오너의 부적절한 처신도 없었던 회사의 말로치고는 비참하다.⊙
팬택의 지난해 부채는 9961억원, 자산은 2794억원에 불과하다. 법원이 파산 절차를 시작하면, ‘빚잔치’로 팬택이 보유한 자산을 순차적으로 매각해 채권단이 가져간다. 업계에서는 그래 봐야 채권단이 손에 쥐게 될 돈이 빌려준 액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매각 주관사인 삼정회계법인은 ‘팬택의 청산가치(1500억원)가 계속기업가치(1100억원)보다 높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때 삼성, LG와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렸던 팬택은 어느 시점에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창업주인 박병엽(朴炳燁)씨는 맥슨전자의 영업사원이었다. 그는 1991년, 경기도 부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팔아 자본금 4000만원을 마련한 후 직원 6명과 함께 무선호출기 제조기업인 ‘팬택’을 설립했다.
삐삐 제조업체가 이동전화 만들며 사세 확장
팬택의 노란색 비퍼(삐삐)는 인기였다. 팬택은 지난 1992년에 매출 28억원을 기록했고, 국내 최초로 문자호출기를 출시(1994년)했다. 삐삐가 붐이었던 지난 1997년 회사의 매출은 762억원으로 불었다. 그리고 그해에 팬택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휴대전화 제조업에 진출했다. 그해 8월에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는데, 공모가격이 6만5000원. 그해 증시 사상 최고가였다.
박병엽 전(前) 부회장은 IMF의 어둠이 막 몰려오던 시기에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박 전 부회장의 한 지인은 “당시 팬택은 핫(hot)한 벤처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직원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방학 단기 어학연수를 보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직원 복지에 애썼다. 그의 방대한 인맥 덕분에 친인척, 출신학교(호서대) 사람들, IT 관련 업종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에 관한 얘기를 하기 바빴다. 화려한 벤처 회사의 탄생 전조였다”고 초창기의 상황을 증언했다.
박 전 부회장은 시대적 흐름도 빠르게 읽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생업체의 애로사항을 덮고자, 미국의 모토롤라와 전략적 제휴(1998년)를 맺고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이 제휴를 토대로 팬택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사실 이 제휴에는 뒷얘기가 있었다. 원래는 모토롤라가 거액을 박병엽 전 부회장에게 제시하며 팬택 인수를 제안했는데, 박 전 부회장이 이를 거절하고 역으로 모토롤라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냈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차린 지 불과 8년 만에 사업의 중심은 삐삐에서 이동전화로 옮겨갔다. 지난 1999년 말을 기준으로 팬택의 ‘삐삐’ 매출은 전체의 0.8%(18억원)에 불과했고, 92.6%(2098억원)가 이동전화 부문에서 발생했다. 이동전화 부문 매출 성장세는 전년 대비 1232%. 총 이동전화 가입자는 2340만명이었다. 팬택은 향후에도 이런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짐작하고 지난 2000년 5월, 매월 50만 대 이상의 단말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신공장을 건설했다.
그리고 지난 2001년, 팬택은 당시 ‘걸리버’라는 휴대전화를 생산하고 있던 하이닉스의 자회사 ‘현대큐리텔’을 인수했다. 지난 2000년 말, 이동전화 제조업체들의 국내 판매 대수는 삼성전자 650만 대, LG전자 350만 대, 세원텔레콤 124만 대였고, 텔슨전자(95만 대), 현대전자(90만 대), 한화/정보(90만 대), SK텔레텍(80만 대), 팬택(57만 대)이 뒤를 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보더라도 팬택이 현대큐리텔 인수로 삼성-LG에 이어 3위의 이동전화 제조업체가 됐다.
현대큐리텔 인수는 성공적
이즈음 팬택은 IT업계는 물론, 타 업계에서까지 인력을 대거 영입하기 시작했다. IT와 전혀 상관없는 A씨 역시 이즈음 팬택에 합류했다.“이때까지만 해도 사내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자본력을 앞세운 재벌 그룹에 대항하는 벤처 회사라는 점, 또 오너인 박 전 부회장이 영업직 샐러리맨이었다는 점은 호재였습니다. 당시 벤처 기업이라고 하면 다음커뮤니케이션, 프리챌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회사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팬택처럼 휴대폰을 제조하는 회사가 새로 생겼다는 것은 고무적이었습니다.”
—현대큐리텔 인수는 성공적이었군요.
“중소기업에서 단숨에 거대 단말기 업체로 변신했으니까요. 현대큐리텔은 현대전자의 자회사답게 R&D 인력이 500명이 넘었습니다. 이들이 연간 만들어내는 독자 모델이 40여 개가 넘었습니다. 사명(社名)을 팬택&큐리텔로 바꿨을 만큼, 현대큐리텔의 인지도가 높았습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효과는 미국으로의 수출 판로가 열린 것이었습니다.”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인가요?
“국내에서는 삼성, LG와 경쟁 구도가 시작됐고, 현대를 인수한 다음해에 미국의 한 회사와 1조원대의 휴대폰 수출 계약이 성사됐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였습니다. 내수 시장에서는 점차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었고, 글로벌 브랜드가 되겠다는 기치로 미국 시장을 다이렉트로 공략하던 시기였습니다.”
—성공적인 M&A, 타이밍이 맞는 해외 진출 등을 보자면 갑작스런 사세 축소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두 번째 M&A였던 SK텔레텍 인수가 독(毒)이었다고 봅니다. 통상 ‘승자의 저주’라고 하여 M&A를 성공한 모 기업이 오히려 인수 기업 때문에 약해지는 사례가 팬택에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SK텔레텍과의 시너지 효과가 좋지 않았나요?
“현대큐리텔을 성공적으로 합병한 후에 경영진의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SK텔레텍을 인수하면 과거처럼 그만큼 점유율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팬택은 당시 중저가, SK텔레텍이 내놓은 ‘스카이’라는 휴대폰은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한 최고가의 제품이었습니다. 팬택이 SK를 인수하자 SK고객이 떠나기 시작한 겁니다. 팬택으로서는 고가 고객, 기존의 중저가 전화를 이용하는 고객, 모두 잃어버리게 된 겁니다.”
패착은 SK텔레텍 인수
팬택은 지난 2005년 5월, SK텔레콤의 자회사인 휴대폰 제조업체 SK텔레텍을 3000억원에 전격 인수했다. 팬택의 인수자금 3000억원은 회사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규모였다. 일부에서는 “SK텔레텍을 지나치게 비싸게 샀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당시 팬택에 근무했던 B씨의 얘기다.
“회사가 해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며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이었고, 지나치게 비싸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팬택은 당시 SK텔레콤 지분을 조금 보유 중이었는데, 그 지분을 담보로 인수대금을 차입하겠다는 방향을 세웠습니다. 현대큐리텔을 사들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SK텔레텍 인수로 인한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SK를 사고자 하는 의욕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3000억원이나 준 것이었습니까?
“지금이야 실패로 결론지어진 상황이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불확실성이 담보돼 있지 않습니까. 그때는 저 정도의 비용을 투입하더라도 더 큰 이득을 볼 것이라는 계산이 확실히 있었죠. SK도 어차피 단말기 사업을 계속하기는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SK텔레텍이 고가의 휴대폰을 출시한 것을 경계했거든요. 정보통신부 역시 ‘이동통신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SKT)가 단말기 시장까지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두 회사 간의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겁니다.”
팬택의 당시 사업보고서 공시 내용은 이렇다.
《팬택은 2005년에 SK텔레텍과의 합병을 단행해 국내 시장에서 강한 브랜드 경쟁력을 자랑하는 SKY 브랜드를 확보해 내수, 수출 부문의 균형적인 사업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내수 사업에는 더욱 차별화된 제품을 통해 SKY 브랜드의 경쟁력을 배가할 것이다. 오는 2006년에 매출수량 1200만 대, 매출액 2조2000억원을 목표로 비약적인 성장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팬택은 지난 2006년 말에 매출 1조2692억원, 영업이익 -1670억원, 순이익 -4323억원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팬택은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오늘날 우여곡절을 겪게 된 팬택 운명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박병엽 전 부회장에 대한 원망은 거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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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택 본사 1층에서는 팬택의 중요했던 순간들을 모은 사진전을 개최 중이다. |
혹시 창업주였던 박병엽 전 부회장의 경영자로서 자질의 문제가 아닐는지 싶어 여러 사람에게 물었으나,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차례 워크아웃 신청 과정에서 보인 박 전 부회장의 행보 때문인 듯 싶었다. 팬택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팬택이 처음 워크아웃을 신청할 때 11개의 은행 채권자들을 일일이 설득했습니다. 박 전 부회장이 4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먼저 내놓겠다고 말입니다. 당시는 채권자들이 100% 동의하지 않으면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은행 관계자들이 ‘우리야 그렇다 치지만, 개인 채권자들의 동의를 어떻게 구할 것이냐’며 3개월간 부채 상환을 유예해 줬습니다.”
—박 전 부회장이 결과적으로 모두 설득한 모양이군요.
“3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 돌아다녔습니다. 개인 채권자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회사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회사 직원들조차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모든 채권자의 동의를 받아냈습니다.”
그렇게 팬택은 지난 2007년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팬택의 전직 고위 관계자인 A씨의 얘기다.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사내에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팬택이 합병을 통해 컸기 때문에 17개 회사 출신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회사 출신인지, 또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건지 당황스러워했지만 외부의 우려보다 잘 굴러갔습니다.”
실제로 팬택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1년 만인 지난 2008년 1분기 -783억원이었던 순익은 2분기에 472억원을 기록했다. 결국 팬택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4년 만인 지난 2011년 말 워크아웃 딱지를 뗐다.
기술력에 올인, 마케팅은 주춤
그리고 팬택은 워크아웃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2차 공격에 들어갔다. 팬택 관계자의 설명이다.
“스마트폰을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한 곳이 팬택입니다. 삼성전자, LG전자보다 앞섭니다. 팬택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시리우스’ ‘이자르’ ‘베가’ 등을 지난 2010년부터 출시했습니다. 국내에서만 약 10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했습니다.”
—팬택이 업체 중 가장 먼저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아 보입니다만.
“나중에 삼성과 애플이 소송전을 벌이면서 스마트폰은 두 회사 중 하나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고정됐지만, 가장 먼저 출시한 곳은 팬택입니다. 팬택은 지난 2012년, 2년 연속 스마트폰 300만 대 이상을 판매해 스마트폰 시장 2위 자리를 공고히 했죠.”
—시대적 변화에 둔감해서 오늘날 파산 처지에 처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군요.
“오히려 시대적 변화에는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단순한 스마트폰에 머물지 않고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이 형성되리라는 것을 간파하고, 세계 최초의 프로세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또 쇠락했나요.
“이때부터는 외부적 요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브랜드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지난 2011~2013년까지 삼성과 애플이 특허 소송을 했습니다. 특허 싸움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면서, 희한하게도 스마트폰은 ‘갤럭시’(삼성) 아니면 ‘아이폰’(애플)이라는 교묘한 등식이 생겼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팬택은 기술력 있는 제품 생산에 더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휴대전화가 좋은 제품에서 좋은 브랜드로 넘어가는 것을 놓친 겁니다. 팬택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고가의 마케팅 비용이 필수적인데, 여력이 없었죠.”
전직 고위 관계자인 A씨는 “팬택이 오늘날처럼 된 것은 기술력이 아닌, 재벌과의 돈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허 가치만 최소 5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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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까지 가동되고 있는 팬택의 김포 공장. |
팬택은 ‘표준특허’ 외에도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1만3051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팬택이 보유한 특허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특허를 신청한 건수가 꽤 있기 때문이다.
팬택 관계자는 “특허청의 국내 기업 표준특허 보유 현황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이어 팬택이 보유량 4위 업체”라며 “우리가 보유한 특허의 가치만 해도 최소 500억원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팬택의 주장대로라면, 최소 특허의 가치만 500억원인데 왜 인수하려는 기업이 하나도 없을까. 팬택은 법원이 새 주인을 찾으면서, 사실 중국 기업이 자사를 인수할 것으로 기대했던 듯 싶다. 팬택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처음에 우리 회사가 매물로 나왔을 때 중국의 H사는 관심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휴대폰을 제조하고 있지만 특허, 기술력이 턱없이 모자라 우리를 탐낼 줄 알았거든요. 결과는 달랐습니다만.”
—특허가 그렇게 많은데 왜 이리 사겠다는 업체가 없나요.
“특허라는 것이 사용자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제품을 제조할 때 다른 곳으로부터 ‘우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논란이 일 때 방어하기 위해 특허를 사는 경우가 있고, 또 자신들이 특허를 가짐으로써 타업체가 비슷한 기술을 탑재할 때 그들을 공격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특허라는 것이 만들어낸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것을 사용하는 업체에서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보니, 단순히 특허만 보고 회사를 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법원은 지난 2014년 8월 이후 세 차례 공개 입찰을 실시했다. 인수 대상자로 선정된 곳 중 한 곳은 마감 일에 매각대금을 내지 않아 무산됐고, 또 다른 몇몇 업체는 법원이 실질적인 인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후속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최소 5000억원 이상 투입해야 회생 가능”
증권가에서는 팬택의 새 주인 찾기가 어려워진 원인을 앞으로 투입해야 할 비용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의 관계자는 “채권단에서 팬택의 인수자에게 꽤 많은 부채를 탕감해 준다고 해도, 향후 팬택을 원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최소 5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팬택은 막판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창업 이래 23년간 이동통신 모바일 사업만을 지속한 첨단 기술 회사인 점, 수출과 고용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점, 상징적인 벤처 기업임을 앞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팀장급 직원들 전원이 “회사를 인수하려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자, 우리의 고용권을 일임한다”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팬택이 기사회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더욱이 팬택이 청산 절차에 들어갈 경우 시장에 미치는 파장 역시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팬택과 관련된 회사들 중 상장회사가 거의 없다. 팬택이 두 번이나 워크아웃을 한 경험 탓에 부품업체들도 납품 다변화를 꾀한 상태”라며 “삼성의 독주가 심화되고 3자 구도가 깨진다는 생태계의 구조적인 변화가 있지만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수에 머물지 않고 수출길을 일찌감치 열었고, 시대적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국내 최초로 스마트폰을 내놨고, 노사 간의 극렬한 대립도 없었고, 오너의 부적절한 처신도 없었던 회사의 말로치고는 비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