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기업지배구조에 손대겠다는 것은 난센스
⊙ 삼성, 노무현 정부에 金産분리 강력요청 … “(재벌이) 안 셉니까?” (노무현 정부 고위 관료)
⊙ 재벌개혁 말하던 노무현 최측근, 회의 때 삼성보고서 내밀어
⊙ 삼성, 노무현 정부에 金産분리 강력요청 … “(재벌이) 안 셉니까?” (노무현 정부 고위 관료)
⊙ 재벌개혁 말하던 노무현 최측근, 회의 때 삼성보고서 내밀어
- 지난 3월 20일, 민주통합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이 ‘재벌 개혁안’을 발표하는 모습.
‘재벌개혁’은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단골 이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ㆍ야 모두 각종 규제안(案)을 공약으로 내건다.
민주통합당이 이번에 내놓은 안은 노무현(盧武鉉) 시절로의 회귀였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실무진이 노 정부 때 의견을 제기했던 이들이었고, 내용 역시 비슷했다.
이를 바라보는 재계와 경제학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안건을 위한 안건일 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민주통합당이 꿈꾸는 재벌 개혁의 실상은 무엇일까. ‘재벌 개혁’을 부르짖었던 노무현 정부는 왜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오늘날 어떻게 ‘재탕’ 개혁안이 나왔을까.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안을 훑어봤다.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10대 과제는 이렇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이하 출총제) 도입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행위 규제 강화 ▲금산(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강화 ▲담합ㆍ납품단가 부당인하ㆍ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기업범죄 처벌 강화 ▲대기업의 공공발주 수주 제한 ▲사회적 책임공시 제도 도입 ▲대기업 전횡 방지 및 소수주주 보호 강화다.
새누리당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이나 중소기업 사업 영역 진입금지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 반해, 민주통합당은 기업의 지배구조 자체에 메스를 대겠다는 입장이다. 박근혜(朴槿惠) 의원은 ‘출총제 폐지를 보완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새누리당은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출총제는 대기업이 회사 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해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는다는 취지로 1986년에 도입됐고, 1997년 외환위기 때 대기업의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폐지됐다. 1999년에 부활했고, 2009년에 다시 폐지됐다.
SK, 한화, 한진그룹 직격탄
민주통합당의 제안대로 회사 순자산의 40% 내에서만 다른 회사에 투자를 한다면 SK와 한화, 한진그룹은 직격탄을 맞는다.
경제개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SK그룹의 출자(出資)비율은 120.1%, 한진 66.1%, 한화 63.2%, 현대그룹 49% 순이다. 삼성의 출자비율은 8.5%, 현대차 14.5%, LG그룹은 8.8%에 불과해 사실상 출총제에 해당 사항이 없다.
‘순자산 40%까지 투자’를 10대 그룹 모든 계열사에 적용하면 SK그룹은 초과금액이 무려 2조4010억원이다. 한진 1조5662억원, 한화그룹은 2조651억원이 넘는다.
결국 이들은 자산을 키워 적용 퍼센트(%)를 낮추거나, 아니면 초과한 부분(계열사)에 대해 매각을 해야 한다. 이론상으로는 이렇지만 간단치 않다.
경제개혁연구소의 분석이다.
“SK계열사인 SKC&C의 초과액은 2조4816억원이다. 이 금액 대부분은 SKC&C가 투자한 SK(주) 주식 때문인데, SK(주)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룹을 지배하는 핵심 연결고리 회사이기 때문이다. SKC&C와 SK(주)가 합병해 지주회사가 되는 수밖에 없다. 한화 계열사인 한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은 모두 40% 출자한도를 초과한다. 한화와 한화건설은 대한생명에 투자한 지분이 크고, 한화케미칼은 화학업종 자회사에 많이 투자했다. 한화의 다른 그룹 계열사가 대한생명 지분을 매입할 여력이 없으니 대한생명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민주통합당의 ‘40% 상한선’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들은 향후 그룹의 출자 제한범위를 순자산의 40%→30%→25%로 낮추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장 강력한 제재인 ‘순자산의 25%까지 투자’를 적용하면 위의 그룹 이외에 현대중공업, LS, 동부, STX, 부영 그룹이 포함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과거 김대중(DJ) 정부의 출총제는 각종 ‘예외규정’을 뒀었다. 동종업종에 투자할 경우 40% 상한선을 적용하지 않거나, 한시적으로 면해주는 등이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이번에 각종 ‘예외규정’마저 거의 적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의 반격
민주통합당의 안건에 대해 재계는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출총제에 걸리는 한 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출총제를 부활시켜 당장 적용시키겠다고 하면 답이 없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버려야 할 회사가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그저 당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출자한도 범위에 맞추면서, 내부든 외부든 우호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회사에 손을 내밀 겁니다. 다른 방식으로 우호 지분을 늘려 그룹을 꾸려나갈 겁니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의 말은 이렇다.
“기업이 지켜야 하는 시장의 룰이 도입과 철폐, 재도입을 반복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일입니다. A라는 정책을 따르다가 A라는 정책이 없어져서 B정책에 맞게 기업을 재구성했는데 다시 A정책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죠. 정책 변경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정책이 현실화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여러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겠죠.”
재벌그룹의 ‘반격’이 예측되는 대목이다.
삼성ㆍ현대차그룹, 순환출자 금지 때 타격
민주통합당의 ‘순환출자 금지’는 재계 서열 1ㆍ2위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발목을 잡는 일이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연결된다.
민주통합당의 주장대로라면 이건희(李健熙) 회장이나 정몽구(鄭夢九) 회장 일가는 지주회사를 만들고, 그 지주회사 아래 계열사의 지분을 직접 보유해야 한다.
재계 안팎에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소요되는 일이어서 실효성이 없다고 말을 한다.
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오너 일가가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결국 가족들이 돈을 투자해 지주회사를 세울 겁니다. 그런데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금액이 필요합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지분 20% 이상을 시장에서 매집하기 위해서는 수십조 원의 돈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부족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가 관건입니다. 회사 실적을 높이거나 다른 계열사와의 합병이 불가피한데, 그룹의 관심이 온통 여기에 집중될 가능성이 큽니다. 삼성과 현대차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투자 시기가 조그만 늦어져도 경쟁사와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자국(自國)이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게끔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황인학(黃仁鶴)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의 얘기다.
“외환위기 때 재벌기업의 경제 성과가 가장 나빴습니다. 경기 탓도 있지만 이들이 그룹의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온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이 입법화된다면 기업들은 규제에 순응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일 겁니다. 마케팅, R&D에 치중해야 할 시기에 오너의 경영권 방어에 역량을 집중할 겁니다. 삼성과 같은 기업집단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것이 세계적으로 60여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기업집단이 개혁의 대상이냐 아니냐에 대한 정답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업집단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의견이 조금 더 많은 상황에서, 세계 질서와 거꾸로 가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김현종(金鉉宗)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만 재벌이라는 기업집단이 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인도의 타타그룹은 수십 년 동안 성장했고, 경제력이 집중된 상태로 출자구조를 그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커져 있습니다. 5대째 세습하고 있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GDP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금융과 산업자본을 분리하지 않은 채 같이 가고 있습니다. 신흥공업국가에서 기업집단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을 하려면 브랜드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집단을 논하려면 그 국가의 금융제도, 노동규제, 조세제도, 국민의 성향을 두루 살펴봐야 합니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은 감기 걸린 사람은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내성을 강화시켜야 하는데 무조건 밖에 못 나가게 하는 거죠. 또 밖에서 볼 때 그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고 자기 위안을 하는 수준입니다. 정치적으로 규제를 한다 해도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은 규제를 했으니 할 일은 다했다는 식(式)일 겁니다. 기업집단이 없는 국가는 미국과 영국 정도뿐입니다.”
“노조가 민주통합당에 항의해야”
조동근(趙東根)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기업지배구조에 손을 댄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기업은 정형화된 형태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철수와 확대를 거듭하면서 세(勢)를 넓힙니다. 이 과정에서 순환출자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순환출자를 애초에 설계한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순환출자가 된 겁니다. 순환출자를 하면 가공(架空)자산(실제로는 없는데 장부에만 기록된 자산)이 생기지만, 순환출자를 했다는 것을 시장에서 알고 있습니다. 상호출자를 안 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순환출자를 했다면 형사처벌을 받았겠죠. 순환출자를 숨겨도 처벌받죠. 하지만 공시(公示)를 통해 시장이 순환출자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그 리스크가 주가(株價)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신규로 순환출자를 하지 말자는 것에 동의하지만 한 번에 척결하자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김정호(金正浩) 전(前) 자유기업원장은 “오히려 노조가 앞장서서 민주통합당의 개혁안에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총제가 부활하면 회사 입장에서 초과분에 해당하는 회사를 팔아야 합니다. 재벌 계열사 직원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재벌그룹과 전혀 상관없는 회사 종업원이 되는 겁니다. 이를 달가워할 종업원이 어디 있을까요? 설령 그룹이 출총제 규제에 따라 계열사를 떼 내고 싶어도 노조 때문에 못 할 겁니다. 저는 재벌 기업의 노조가 민주통합당에 가서 항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책입니까. 출총제가 부활해 순환출자를 금지해서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회사 경영실적이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기업이 투자를 통해 고용을 늘릴 길이 막히고, 그룹에 소속된 종업원들의 지위가 나아지지도 않습니다.”
노무현 최측근, 정기적으로 재계 의견 취합
재벌개혁은 김영삼(金泳三), DJ, 노무현 정부에서 모두 추진했던 사안이다. 어떤 정부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20여 년째 ‘도돌이표’다. 이에 맞서는 재벌의 힘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분과위원을 지냈던 이동걸(李東傑) 박사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주변에는 재벌의 입 노릇을 하는 측근이 있었다.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내부에서 재벌개혁에 대한 조직적 반대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이자, 실세였던 A씨는 삼성그룹에서 작성한 정보보고서를 들고 청와대 회의에 참석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재벌 3세 기업인 B씨는 A씨와 정기적으로 만났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대통령 최측근 인사라고 해서 어깨에 힘깨나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소박했습니다. 요구 사항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재계의 얘기를 들려달라는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A씨를 만났고, 참여정부의 반(反)기업 정서로 인한 고충이 크다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A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는 편이었습니다.”
“재벌들이 자신들의 위치는 보호하고, 규제는 풀어달라더라”
노무현 정부를 떠올리면 으레 ‘반기업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하지만 실제 그 속내를 보면 ‘친(親)재벌에 가까웠다’는 것이 측근의 얘기다.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 경제 관료를 지낸 C씨의 얘기다.
“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재벌과 각을 세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법인세 인하를 검토했고, 조세감면제도를 연장했습니다. 출총제를 궁극적으로 폐지한 것은 이명박 정부지만, 현실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 폐기됐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재계에서 출총제를 풀지 않으면 투자가 제한된다고 했고, 보수층이 출총제를 반대했습니다. IT 등 일부 분야에서 출총제를 풀어줬고, 마지막에는 사실상 폐기됐죠. 재벌이 투자가 제한된다고 해서 풀어줬지만, 그 규제를 완화시켜서 재벌이 얼마나 투자를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무슨 소립니까.
“출총제가 기업의 투자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사회에 맞고, 경제 정의에 맞는 최선의 지배구조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청와대에서, KDI 연구원들이 끝없이 고민했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기업의 지배구조가 무엇인지 찾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벌이 출총제 폐지와 순환출자 허용을 주장한 것은 대부분 경영권 세습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삼성그룹은 금산(金産)분리를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속내를 들여다보니 삼성생명을 통한 그룹의 장악권을 위해서였습니다. 삼성생명이 자기들 돈도 아니고, 가입자들의 돈인데 말입니다. 강력한 요청으로 검토는 했습니다. 하지만 금산분리가 국익(國益)을 위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금산분리는 30여 년 이상 지켜온 원칙인데, 갑자기 없앨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고 판단했죠.”
―또 어떤 요청이 있었습니까.
“M&A 장벽을 높여달라는 요청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과거 소버린 사태를 겪은 SK그룹 때문으로 보였습니다. 경영권 보호를 하려고 시간을 쏟다 보니 투자를 못 한다는 것이 재벌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존 주주에게는 신규 주주보다 싸게 유상증자를 하는 방안 등 여러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M&A 장벽을 낮춘 것은 외자 유치를 위한 DJ정부의 결정이었습니다. 재벌들은 국내 시장에서의 위치는 보호해 달라고 하고, 규제는 풀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재벌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재벌이) 안 셉니까? 노무현 정부라고 다를 것 없었죠. 그 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의 정서가 친서민이고,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벌 정책을 보면 많은 부분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풀어줬죠. 기업의 투자 환경을 조성하면서, 시장의 합리성을 해치지 않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민주통합당 주장대로라면 애플은 기업이 아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민주통합당 개혁안의 허구 중 하나로 ‘대기업들의 공공발주 수주 제한’을 설명했다. 내용인즉슨, 원청자(재벌회사)가 최소 30% 이상을 직접 시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공공발주의 수주를 제한한다는 제안이다. 소위 ‘통행세’(대기업 계열사가 손쉽게 일감을 따온 뒤 중소기업에 하도급을 주고, 그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것) 근절을 위한 방안이다.
조 교수의 얘기다.
“애플은 미국 본사에서 디자인과 R&D 이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주장대로라면 애플은 기업이 아닙니다. 원청에서 중소기업으로 내려가면서 계약 조건이 나빠지는 것을 막는 방안은 논의거리지만, 원청업자가 몇% 이상을 직접 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본질을 회피한 개혁 방안입니다. 그들은 기업의 소유 구조에 모범 답안이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공기업이 가장 좋은 모델입니까. 일본 노키아와 소니가 소유 지배구조가 잘못돼서 사세가 줄었습니까. 130년 된 코닥이 역사가 짧아 문을 닫았을까요.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은 제안입니다.”
“3~4등 뒤에 숨으려는 경영인 늘어날 것”
민주통합당이 제안한 ‘유전무죄 풍토 근절을 위해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하는 등 기업범죄 처벌 강화’에 대해서도 반대의 의견이 많았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통령 사면권 제한은 충분히 논의될 수 있지만, 정치인, 문화인 등 여러 분야가 있는데 유독 경제인에 대해서만 제한한다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취재에 응한 여러 경제학자는 “민주통합당의 주장대로라면 기업인이 사업 할 의욕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중 하나로 미국 정부의 IBM에 대한 독점 소송을 예로 들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의 얘기다.
“정부와 IBM이 10년 동안 소송을 했는데 나중에 소송 자체가 유야무야됐습니다. 처음에 소송을 시작할 때는 IBM이 거대제국이었고 독점이었지만, 소송과정을 거치면서 소를 제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규모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건드리려다가 포기했습니다. 시장에서 내버려둔다고 해서 독점적 지위가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처럼 크기 때문에 재벌을 없애자고 하면 앞으로 누구도 크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적당히 3~4등 뒤에 숨으려고 할 겁니다. 그 책임을 누가 감당할 겁니까. 국민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을 누릴 기회, 소비자가 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사라질 겁니다. 단지 자기들의 실험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가지고 뭔가를 해보겠다는 얘기입니다.”
현진권(玄鎭權)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의 얘기도 비슷했다.
“민주통합당의 개혁안은 전반적으로 기업의 경제활동을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악화를 불러올 겁니다. 과거에는 정부의 규제가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르나, 요즘과 같은 무한경쟁 시대는 다릅니다. 저는 과거의 50년이 오늘날 1년과 똑같다고 말합니다. 정부의 역할이 기업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4ㆍ11 선거가 치러졌다. 새누리당은 이겼고, 민주통합당은 패했다. 따라서 민주통합당이 제시한 재벌개혁안은 당분간 현실화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설령 그들이 제1당이 되고, 이 안건이 입법화됐다 쳐도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취재 과정에서 느낀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의 힘이, 그 범위가 생각보다 방대해서다.⊙
민주통합당이 이번에 내놓은 안은 노무현(盧武鉉) 시절로의 회귀였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실무진이 노 정부 때 의견을 제기했던 이들이었고, 내용 역시 비슷했다.
이를 바라보는 재계와 경제학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안건을 위한 안건일 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민주통합당이 꿈꾸는 재벌 개혁의 실상은 무엇일까. ‘재벌 개혁’을 부르짖었던 노무현 정부는 왜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오늘날 어떻게 ‘재탕’ 개혁안이 나왔을까.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안을 훑어봤다.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10대 과제는 이렇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이하 출총제) 도입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행위 규제 강화 ▲금산(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강화 ▲담합ㆍ납품단가 부당인하ㆍ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기업범죄 처벌 강화 ▲대기업의 공공발주 수주 제한 ▲사회적 책임공시 제도 도입 ▲대기업 전횡 방지 및 소수주주 보호 강화다.
새누리당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이나 중소기업 사업 영역 진입금지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 반해, 민주통합당은 기업의 지배구조 자체에 메스를 대겠다는 입장이다. 박근혜(朴槿惠) 의원은 ‘출총제 폐지를 보완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새누리당은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출총제는 대기업이 회사 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해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는다는 취지로 1986년에 도입됐고, 1997년 외환위기 때 대기업의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폐지됐다. 1999년에 부활했고, 2009년에 다시 폐지됐다.
SK, 한화, 한진그룹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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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총제가 부활할 경우 가장 타격을 받을 곳으로 꼽히는 SK그룹. |
경제개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SK그룹의 출자(出資)비율은 120.1%, 한진 66.1%, 한화 63.2%, 현대그룹 49% 순이다. 삼성의 출자비율은 8.5%, 현대차 14.5%, LG그룹은 8.8%에 불과해 사실상 출총제에 해당 사항이 없다.
‘순자산 40%까지 투자’를 10대 그룹 모든 계열사에 적용하면 SK그룹은 초과금액이 무려 2조4010억원이다. 한진 1조5662억원, 한화그룹은 2조651억원이 넘는다.
결국 이들은 자산을 키워 적용 퍼센트(%)를 낮추거나, 아니면 초과한 부분(계열사)에 대해 매각을 해야 한다. 이론상으로는 이렇지만 간단치 않다.
경제개혁연구소의 분석이다.
“SK계열사인 SKC&C의 초과액은 2조4816억원이다. 이 금액 대부분은 SKC&C가 투자한 SK(주) 주식 때문인데, SK(주)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룹을 지배하는 핵심 연결고리 회사이기 때문이다. SKC&C와 SK(주)가 합병해 지주회사가 되는 수밖에 없다. 한화 계열사인 한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은 모두 40% 출자한도를 초과한다. 한화와 한화건설은 대한생명에 투자한 지분이 크고, 한화케미칼은 화학업종 자회사에 많이 투자했다. 한화의 다른 그룹 계열사가 대한생명 지분을 매입할 여력이 없으니 대한생명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민주통합당의 ‘40% 상한선’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들은 향후 그룹의 출자 제한범위를 순자산의 40%→30%→25%로 낮추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장 강력한 제재인 ‘순자산의 25%까지 투자’를 적용하면 위의 그룹 이외에 현대중공업, LS, 동부, STX, 부영 그룹이 포함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과거 김대중(DJ) 정부의 출총제는 각종 ‘예외규정’을 뒀었다. 동종업종에 투자할 경우 40% 상한선을 적용하지 않거나, 한시적으로 면해주는 등이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이번에 각종 ‘예외규정’마저 거의 적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의 반격
민주통합당의 안건에 대해 재계는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출총제에 걸리는 한 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출총제를 부활시켜 당장 적용시키겠다고 하면 답이 없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버려야 할 회사가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그저 당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출자한도 범위에 맞추면서, 내부든 외부든 우호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회사에 손을 내밀 겁니다. 다른 방식으로 우호 지분을 늘려 그룹을 꾸려나갈 겁니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의 말은 이렇다.
“기업이 지켜야 하는 시장의 룰이 도입과 철폐, 재도입을 반복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일입니다. A라는 정책을 따르다가 A라는 정책이 없어져서 B정책에 맞게 기업을 재구성했는데 다시 A정책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죠. 정책 변경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정책이 현실화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여러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겠죠.”
재벌그룹의 ‘반격’이 예측되는 대목이다.
삼성ㆍ현대차그룹, 순환출자 금지 때 타격
민주통합당의 ‘순환출자 금지’는 재계 서열 1ㆍ2위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발목을 잡는 일이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연결된다.
민주통합당의 주장대로라면 이건희(李健熙) 회장이나 정몽구(鄭夢九) 회장 일가는 지주회사를 만들고, 그 지주회사 아래 계열사의 지분을 직접 보유해야 한다.
재계 안팎에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소요되는 일이어서 실효성이 없다고 말을 한다.
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오너 일가가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결국 가족들이 돈을 투자해 지주회사를 세울 겁니다. 그런데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금액이 필요합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지분 20% 이상을 시장에서 매집하기 위해서는 수십조 원의 돈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부족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가 관건입니다. 회사 실적을 높이거나 다른 계열사와의 합병이 불가피한데, 그룹의 관심이 온통 여기에 집중될 가능성이 큽니다. 삼성과 현대차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투자 시기가 조그만 늦어져도 경쟁사와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자국(自國)이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게끔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황인학(黃仁鶴)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의 얘기다.
“외환위기 때 재벌기업의 경제 성과가 가장 나빴습니다. 경기 탓도 있지만 이들이 그룹의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온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이 입법화된다면 기업들은 규제에 순응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일 겁니다. 마케팅, R&D에 치중해야 할 시기에 오너의 경영권 방어에 역량을 집중할 겁니다. 삼성과 같은 기업집단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것이 세계적으로 60여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기업집단이 개혁의 대상이냐 아니냐에 대한 정답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업집단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의견이 조금 더 많은 상황에서, 세계 질서와 거꾸로 가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김현종(金鉉宗)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만 재벌이라는 기업집단이 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인도의 타타그룹은 수십 년 동안 성장했고, 경제력이 집중된 상태로 출자구조를 그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커져 있습니다. 5대째 세습하고 있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GDP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금융과 산업자본을 분리하지 않은 채 같이 가고 있습니다. 신흥공업국가에서 기업집단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을 하려면 브랜드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집단을 논하려면 그 국가의 금융제도, 노동규제, 조세제도, 국민의 성향을 두루 살펴봐야 합니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은 감기 걸린 사람은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내성을 강화시켜야 하는데 무조건 밖에 못 나가게 하는 거죠. 또 밖에서 볼 때 그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고 자기 위안을 하는 수준입니다. 정치적으로 규제를 한다 해도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은 규제를 했으니 할 일은 다했다는 식(式)일 겁니다. 기업집단이 없는 국가는 미국과 영국 정도뿐입니다.”
“노조가 민주통합당에 항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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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99년 9월 14일에 있었던 출총제 회의 모습. 정부부처, 전경련, 5대 그룹 관계자가 모였다. |
“기업은 정형화된 형태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철수와 확대를 거듭하면서 세(勢)를 넓힙니다. 이 과정에서 순환출자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순환출자를 애초에 설계한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순환출자가 된 겁니다. 순환출자를 하면 가공(架空)자산(실제로는 없는데 장부에만 기록된 자산)이 생기지만, 순환출자를 했다는 것을 시장에서 알고 있습니다. 상호출자를 안 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순환출자를 했다면 형사처벌을 받았겠죠. 순환출자를 숨겨도 처벌받죠. 하지만 공시(公示)를 통해 시장이 순환출자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그 리스크가 주가(株價)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신규로 순환출자를 하지 말자는 것에 동의하지만 한 번에 척결하자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김정호(金正浩) 전(前) 자유기업원장은 “오히려 노조가 앞장서서 민주통합당의 개혁안에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총제가 부활하면 회사 입장에서 초과분에 해당하는 회사를 팔아야 합니다. 재벌 계열사 직원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재벌그룹과 전혀 상관없는 회사 종업원이 되는 겁니다. 이를 달가워할 종업원이 어디 있을까요? 설령 그룹이 출총제 규제에 따라 계열사를 떼 내고 싶어도 노조 때문에 못 할 겁니다. 저는 재벌 기업의 노조가 민주통합당에 가서 항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책입니까. 출총제가 부활해 순환출자를 금지해서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회사 경영실적이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기업이 투자를 통해 고용을 늘릴 길이 막히고, 그룹에 소속된 종업원들의 지위가 나아지지도 않습니다.”
노무현 최측근, 정기적으로 재계 의견 취합
재벌개혁은 김영삼(金泳三), DJ, 노무현 정부에서 모두 추진했던 사안이다. 어떤 정부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20여 년째 ‘도돌이표’다. 이에 맞서는 재벌의 힘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분과위원을 지냈던 이동걸(李東傑) 박사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주변에는 재벌의 입 노릇을 하는 측근이 있었다.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내부에서 재벌개혁에 대한 조직적 반대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이자, 실세였던 A씨는 삼성그룹에서 작성한 정보보고서를 들고 청와대 회의에 참석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재벌 3세 기업인 B씨는 A씨와 정기적으로 만났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대통령 최측근 인사라고 해서 어깨에 힘깨나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소박했습니다. 요구 사항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재계의 얘기를 들려달라는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A씨를 만났고, 참여정부의 반(反)기업 정서로 인한 고충이 크다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A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는 편이었습니다.”
“재벌들이 자신들의 위치는 보호하고, 규제는 풀어달라더라”
노무현 정부를 떠올리면 으레 ‘반기업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하지만 실제 그 속내를 보면 ‘친(親)재벌에 가까웠다’는 것이 측근의 얘기다.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 경제 관료를 지낸 C씨의 얘기다.
“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재벌과 각을 세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법인세 인하를 검토했고, 조세감면제도를 연장했습니다. 출총제를 궁극적으로 폐지한 것은 이명박 정부지만, 현실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 폐기됐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재계에서 출총제를 풀지 않으면 투자가 제한된다고 했고, 보수층이 출총제를 반대했습니다. IT 등 일부 분야에서 출총제를 풀어줬고, 마지막에는 사실상 폐기됐죠. 재벌이 투자가 제한된다고 해서 풀어줬지만, 그 규제를 완화시켜서 재벌이 얼마나 투자를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무슨 소립니까.
“출총제가 기업의 투자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사회에 맞고, 경제 정의에 맞는 최선의 지배구조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청와대에서, KDI 연구원들이 끝없이 고민했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기업의 지배구조가 무엇인지 찾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벌이 출총제 폐지와 순환출자 허용을 주장한 것은 대부분 경영권 세습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삼성그룹은 금산(金産)분리를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속내를 들여다보니 삼성생명을 통한 그룹의 장악권을 위해서였습니다. 삼성생명이 자기들 돈도 아니고, 가입자들의 돈인데 말입니다. 강력한 요청으로 검토는 했습니다. 하지만 금산분리가 국익(國益)을 위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금산분리는 30여 년 이상 지켜온 원칙인데, 갑자기 없앨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고 판단했죠.”
―또 어떤 요청이 있었습니까.
“M&A 장벽을 높여달라는 요청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과거 소버린 사태를 겪은 SK그룹 때문으로 보였습니다. 경영권 보호를 하려고 시간을 쏟다 보니 투자를 못 한다는 것이 재벌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존 주주에게는 신규 주주보다 싸게 유상증자를 하는 방안 등 여러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M&A 장벽을 낮춘 것은 외자 유치를 위한 DJ정부의 결정이었습니다. 재벌들은 국내 시장에서의 위치는 보호해 달라고 하고, 규제는 풀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재벌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재벌이) 안 셉니까? 노무현 정부라고 다를 것 없었죠. 그 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의 정서가 친서민이고, 약자에 대한 동정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벌 정책을 보면 많은 부분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풀어줬죠. 기업의 투자 환경을 조성하면서, 시장의 합리성을 해치지 않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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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12월 28일, 청와대에서 4대 재벌총수를 만나는 모습. 참여정부는 재벌개혁에 사실상 실패했다. |
“민주통합당 주장대로라면 애플은 기업이 아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민주통합당 개혁안의 허구 중 하나로 ‘대기업들의 공공발주 수주 제한’을 설명했다. 내용인즉슨, 원청자(재벌회사)가 최소 30% 이상을 직접 시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공공발주의 수주를 제한한다는 제안이다. 소위 ‘통행세’(대기업 계열사가 손쉽게 일감을 따온 뒤 중소기업에 하도급을 주고, 그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것) 근절을 위한 방안이다.
조 교수의 얘기다.
“애플은 미국 본사에서 디자인과 R&D 이외에는 하지 않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주장대로라면 애플은 기업이 아닙니다. 원청에서 중소기업으로 내려가면서 계약 조건이 나빠지는 것을 막는 방안은 논의거리지만, 원청업자가 몇% 이상을 직접 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본질을 회피한 개혁 방안입니다. 그들은 기업의 소유 구조에 모범 답안이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공기업이 가장 좋은 모델입니까. 일본 노키아와 소니가 소유 지배구조가 잘못돼서 사세가 줄었습니까. 130년 된 코닥이 역사가 짧아 문을 닫았을까요.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은 제안입니다.”
“3~4등 뒤에 숨으려는 경영인 늘어날 것”
민주통합당이 제안한 ‘유전무죄 풍토 근절을 위해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하는 등 기업범죄 처벌 강화’에 대해서도 반대의 의견이 많았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통령 사면권 제한은 충분히 논의될 수 있지만, 정치인, 문화인 등 여러 분야가 있는데 유독 경제인에 대해서만 제한한다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취재에 응한 여러 경제학자는 “민주통합당의 주장대로라면 기업인이 사업 할 의욕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중 하나로 미국 정부의 IBM에 대한 독점 소송을 예로 들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의 얘기다.
“정부와 IBM이 10년 동안 소송을 했는데 나중에 소송 자체가 유야무야됐습니다. 처음에 소송을 시작할 때는 IBM이 거대제국이었고 독점이었지만, 소송과정을 거치면서 소를 제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규모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건드리려다가 포기했습니다. 시장에서 내버려둔다고 해서 독점적 지위가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처럼 크기 때문에 재벌을 없애자고 하면 앞으로 누구도 크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적당히 3~4등 뒤에 숨으려고 할 겁니다. 그 책임을 누가 감당할 겁니까. 국민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을 누릴 기회, 소비자가 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사라질 겁니다. 단지 자기들의 실험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가지고 뭔가를 해보겠다는 얘기입니다.”
현진권(玄鎭權)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의 얘기도 비슷했다.
“민주통합당의 개혁안은 전반적으로 기업의 경제활동을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악화를 불러올 겁니다. 과거에는 정부의 규제가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르나, 요즘과 같은 무한경쟁 시대는 다릅니다. 저는 과거의 50년이 오늘날 1년과 똑같다고 말합니다. 정부의 역할이 기업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4ㆍ11 선거가 치러졌다. 새누리당은 이겼고, 민주통합당은 패했다. 따라서 민주통합당이 제시한 재벌개혁안은 당분간 현실화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설령 그들이 제1당이 되고, 이 안건이 입법화됐다 쳐도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취재 과정에서 느낀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의 힘이, 그 범위가 생각보다 방대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