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브랜드 경영’과 ‘사회공헌 활동’, ‘친환경 경영’이란 3가지 방책을 세우고, 10년간 세계화의 격랑에 맞섰다.
⊙ 2004년 말 이후 처음으로 국내 시장점유율 고공 상승
⊙ 2000년 7월 출시된 ‘타임’ 이후 신제품 출시 주기 짧아져… 브랜드 경영 본격화
⊙ 2010년 매출액 대비 2.38%를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내놓아…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사회공헌
분야에 3758억 써
⊙ 2010년 394억 개비(5억3000만 달러) 수출. 생산량(923억 개비)의 약 43%가 수출
⊙ 2004년 말 이후 처음으로 국내 시장점유율 고공 상승
⊙ 2000년 7월 출시된 ‘타임’ 이후 신제품 출시 주기 짧아져… 브랜드 경영 본격화
⊙ 2010년 매출액 대비 2.38%를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내놓아…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사회공헌
분야에 3758억 써
⊙ 2010년 394억 개비(5억3000만 달러) 수출. 생산량(923억 개비)의 약 43%가 수출
담배 피우는 자리에서 누가 양담배를 꺼내면 눈총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담배시장 개방(1988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양담배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무뎌졌다. 언제부턴가 국산담배와 양담배 간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전쟁은 ‘흡연 위해(危害) 경고’만큼이나 격해지고 있다.
‘신천지(新天地)’인 국내시장을 향해 ‘글로벌 빅3(PMI, BAT, JT)’의 의기양양(意氣揚揚)한 공세는 끝이 없어 보인다. 2004년 국내 시장점유율이 23.7%에서 2007년 30.8%, 2009년 4/4분기 41.7%, 2010년 4/4분기 44.3%까지 올라갔다. “50% 고지가 눈에 보인다”는 얘기가 나왔다.
토종 담배회사인 KT&G의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더 이상 독점(獨占)으로 이문(利文) 좋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았다. 민영화로 공기업 지위마저 잃은 KT&G는 ‘브랜드 경영’과 ‘사회공헌 활동’, ‘친환경 경영’이란 3가지 방책(方策)을 세우고, 지난 10년간 세계화의 격랑에 맞섰다.
그러자 올 들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쭉쭉 미끄러져 가던 KT&G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요동을 친 것이다. 지난 1/4분기 국내 점유율이 바닥을 치고 58.0%까지 올라갔다. 담배시장 개방 이후 이런 반등(反騰)은 2004년 말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 2/4분기에는 59.8%까지 뛰었다. 특히 일부 외국계 담배회사가 가격을 올린 5월과 6월에는 평균 시장점유율이 63.1%를 기록했다. 연말께는 65%까지 전망한다. KT&G에 2011년 한 해는 잊을 수 없는 해가 될지 모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KT&G 임직원들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의지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얻을 때까지 밀고 당기고 흔들고 문질러야 한다. 일은 고되다. 무척 힘들다! 하지만 가능성은 무한하다.”
KT&G의 ‘반등’을 더듬기 위해 대전 본사, R&D 연구소, 경북 영주 제조공장, 서울 마케팅본부를 찾았다. 담배 맛에 대한 사람들의 섬세한 취향과 변덕을 읽으려는 이들의 수성 의지를 들어 보았다.
다국적 기업에 맞서 브랜드 경영에 나서다
담배는 기호품이다. 같은 기호품인 커피, 사탕, 소주, 껌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 것, 기름진 음식과 달리 니코틴을 원래부터 갈망하는 사람은 드물다. 먹고 씹고 마시는 행위는 갈색 잎에 불을 붙이고 그 연기를 흡입하는 행동보다 더 자연스럽다.
담배, 즉 궐련(卷煙)이 현대 기업 마케팅사(史)에서 큰 획을 긋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독점시대 KT&G(舊 전매청·한국전매공사·한국담배인삼공사)는 브랜드 경영에 나설 까닭도, 디자인의 아이디어 창출 프로세스를 기업경영에 적용할 이유도 없었다. 흡연가들의 충성도가 절대적이었고, 우리나라만큼 담배 인심이 후한 곳이 없었다. 서구 경쟁사 같은 세련된 마케팅 감각도 필요 없었다. 두려움을 몰랐다.
그러나 힘과 돈을 앞세우고 자사(自社) 브랜드의 장점을 찬양하는 데 집중한 양담배 회사들의 공세가 본격화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KT&G가 디자인 중심 브랜드 경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2000년 7월 출시된 담배 ‘타임’이 시발(始發)이었다. 대기업에서나 하는 ‘브랜드 매니저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해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마다 평균 1개 이상의 브랜드를 시장에 내놓았다. ‘솔’과 ‘88라이트’, ‘디스’로 끌어 오던 브랜드 전략을 던져 버린 것이다. 어쩌면, 글로벌 담배기업 필립모리스(PMI)가 80년 이상 ‘말보로’ 브랜드로 가치를 키우던 전략과 다르다.
문제는 담배 맛을 끌어올리고,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이다. ‘타임’ 이후 10년간 KT&G는 계속된 R&D 투자와 소비자 분석을 통해 변화를 시도했다.
“그런 노력과 땀이 올 상반기 국내 점유율의 반등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우리는 양담배의 약점 비틀기나 애국심에만 호소하지 않았다”는 것이 KT&G 홍보실 조재영(趙在泳·39) 부장과 하소영(河素英·39) 차장의 설명이다.
두 사람의 설명은 기자에게, 우리가 사실이라고 아는 것과 스스로 만들어내 믿는 것 사이의 경계를 다시 긋도록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기업의 도약이 한두 종(種)의 빅 브랜드나 시장의 외풍(外風)에 좌우되지 않는다. KT&G의 저력에 새삼 구미가 당겼다.
KT&G는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빅3(현재는 빅5 수준)를 꿰차겠다는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야망의 손길은 KT&G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 심어 주는 것과 경쟁 브랜드에 뺏긴 흡연자들을 빼내 오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브랜드 경영의 첫 작품 ‘타임’
서울 대치동 코스모타워에서 만난 KT&G 브랜드실장 박창현(朴昌炫·47) 상무는 브랜드 경영에 나섰던 지난 10년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KT&G는 100년 넘는 기업이지만, 브랜드 경영을 시작한 것은 1999년 담배 ‘타임’을 만들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외산(外産)담배들이 거세게 몰려오던 시절이었죠. ‘말보로’의 필립모리스, ‘던힐’의 BAT(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 ‘마일드세븐’의 JT(재팬 타바코)의 공세가 어마어마했어요.”
1990년대 말이면 외산담배의 시장점유율이 점차 상승하기 시작해 10%를 넘어서던 때다. 박 상무는 “우리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전사적으로 달려들었다”고 회고했다.
“‘타임T/F팀’을 만들고 광고회사 제일기획 출신을 브랜드국장으로 영입하는 등 디자인 혁신을 포함한 브랜드 경영을 처음 시작했어요. 내부 의사결정의 전권을 T/F팀에 주었고 결재와 상명하복 시스템을 없앴습니다.”
이른바 피우는 담배에다 패션을 입힌 셈이다. ‘타임’이 2000년 7월 세상에 나오자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사이에서 그동안 찾지 못했던 고객을 본 것이다.
‘타임’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브랜드로, 정식 명칭은 ‘타임리스타임(Timeless Time)’이었다. 직장인과 대학생의 업무(공부) 후 휴식과 기분 전환용으로 타깃을 세웠다.
“KT&G에 대표 브랜드 계보가 있습니다. 청자→솔→88라이트→디스→디스플러스로 이어지는데, 과거 계보를 잇던 담배들은 독과점 시대인 데다 제품 간 출시 기간이 아주 길었지요. 그러나 ‘타임’ 이후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담배 수명도 짧아졌습니다.
양담배와의 한치 에누리 없는 완전경쟁하에서 KT&G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60%입니다. 시장개방 당시에는 애국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타임’을 필두로 마케팅 지향적인 제품관리와 출시가 큰 기여를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에쎄’ 브랜드, 초슬림 세계 1위로 등극
2002년 12월 KT&G의 민영화가 체질을 변모시키는 데 일조했다. 단순히 ‘담배 맛’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풍조가 조직 내부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 무렵, 회사 내 마케팅본부가 생기고 브랜드실이 만들어졌다. 박 상무는 “소비자 집단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군(群)을 분석해 ‘시장’을 주도하려 애썼다”고 했다. 그의 계속된 설명이다.
“2000년 초반 당시 시장흐름을 주도하던 트렌드는 ‘건강’이었어요. 어찌 보면 담배는 건강 트렌드와 모순되고, KT&G가 다루기에는 민감한 주제였어요. 하지만 브랜드 중심의 제품 경쟁력을 키우려면 건강 이슈를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초(超)저(低)타르 담배다. 과거 담배의 타르가 6~7㎎이었다면, 초저타르 담배는 3㎎ 이하다. 초저타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 1㎎의 ‘더 원’, 2㎎의 ‘시즌’, 3㎎의 ‘레종’이었다. 결과적으로 세 브랜드 모두 대성공을 거뒀다.
“잘 나갈 때는 ‘레종’이 7%, ‘더원’이 10%, ‘시즌’도 4%까지 시장점유율을 넓혔습니다. 초저타르 시장만큼은 우리가 먼저 뛰어들어 소비자의 건강 욕구(needs)를 반영시켜 아성을 다질 수 있었던 셈이죠.”
이 과정에서 초슬림 담배인 ‘에쎄’도 변화하게 된다. 1996년 11월 첫 출시될 당시 ‘에쎄’의 인기는 가늘고 긴 ‘에쎄’의 가냘픈 허리만큼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2002년 2월 단행된 브랜드 리뉴얼과 그해 12월부터 ‘에쎄 라이트’ 등 저타르 제품을 확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1~3㎎의 ‘더원·시즌·레종’은 굵은(레귤러) 담배시장에서, ‘에쎄’는 가는(슈퍼슬림) 담배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쎄’는 2003년 이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담배가 됐다. ‘에쎄’ 종류만 해도 현재 15종에 이르고 2010년 한 해 동안 국내외 모두 422억 개비(21억1000만 갑)가 팔렸다.
국내 담배시장의 24%, 초슬림 담배시장의 85%를 장악, 세계 초슬림 담배시장 판매량 1위를 지키는 ‘월드 클래스(world class)’ 넘버원 브랜드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귀 기울여야”
브랜드1부 박성식(朴晟植·45) 부장은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려면 소비자와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체계적인 소비자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사람 속을 안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듯, 드러나지 않는 욕구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충족하지 못한 욕구를 끄집어내야 합니다. 얼마 전 출시한 ‘보헴시가모히또’의 경우 쿠바산(産) 시가 잎에다 멘솔 향을 입혔어요.”
소설가 헤밍웨이가 즐겨 찾은 것으로 알려진 ‘모히또(mojito)’는 1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쿠바의 대중적인 칵테일이다. 민트와 라임, 럼, 탄산수가 들어가 상큼한 향과 톡 쏘는 맛이 난다고 한다. 모히또의 청량감을 담배 맛으로 옮겼다.
“올해 나온 ‘더원 에티팩’도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한 결과지요. 이 담배는 담뱃잎을 두 번 감싸는 기술로 연기와 냄새를 줄여 줘요.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동료들을 배려해 만들었다고 할까요.”
KT&G 산하 R&D본부에서 3~4년에 걸쳐 연구한 끝에 생(生)연기와 주위에 배는 냄새를 30% 감축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박 부장은 “소비자의 욕망을 주기적으로 조사하거나 행동을 관찰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거나, 책을 읽고 잠재된 욕망을 찾는다”고 했다. 그의 계속된 설명이다.
“사실, 많은 종류의 담배 맛 차이를 엄격하게 구별하긴 어려워요. ‘참이슬’과 ‘처음처럼’, ‘카스’와 ‘하이트’를 구별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결국엔 인식의 차이입니다. 이 인식의 차이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구현시키느냐를 두고 끊임없이 기술적인 연구를 진행합니다.”
KT&G 마케팅본부에는 ‘인사이트부(部)’가 있다. 인사이트(insight)는 우리말로 통찰(洞察)을 뜻한다. 이 ‘인사이트부’에서 소비자의 욕구를 꿰뚫어 보기 위해 정보를 구한다. 브랜드 경쟁력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트렌드를 분석한다. 내부에서만 할 수 없어 외부 전문가와 연간(年間) 계약을 맺기도 한다. 박 상무는 “자신 있게 말하지만, 사내 브랜드 매니저의 역량은 삼성이나 현대에 못지않다. 나름의 인적·물적 자원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레종’에 거는 기대는 …
KT&G 브랜드실에는 20명의 브랜드 매니저가 있다. 회사의 핵심인력이다. 아무나 이 부서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경력관리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직 이동도 없다. 입사부터 ‘될성부른 떡잎’을 점찍어 놓고 예의주시한다. 그러나 박 부장은 “순혈주의는 경계한다. 항상 외부의 브랜드 매니저를 충원해 긴장과 자극을 준다”고 귀띔했다.
향후 담배시장을 주도할 트렌드는 뭘까. 브랜드실 김건태(金建兌·42) 과장은 “2000년부터 시작된 건강 트렌드는 여전히 위력적이고, 향후에도 계속 강화될 것으로 예견된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향후 담배시장 하나로 볼 때, 시장이 전반적으로 세분화될 것으로 예상해요. 타르 1~3㎎ 혹은 0.5㎎, 심지어 0.1㎎의 저타르 담배의 인기에 편승, 더 낮은 타르 담배는 없을까 하는 소비자의 욕구도 예상할 수 있지요. 소비자는 항상 더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향후 시장을 주도할 KT&G의 ‘신상’이 뭐냐는 질문에 박 상무는 주저없이 ‘레종’을 얘기했다. ‘레종’은 2002년 처음 출시됐으며 현재 ‘레종 블루’, ‘레종 블랙’ 등 4종류가 판매된다.
“‘솔’과 ‘청자’, ‘88라이트’, ‘디스’의 역할을 ‘레종’이 다시 이어받길 원합니다. ‘과연 레종이구나!’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대폭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생각이에요. 그렇다고 맛을 완전히 바꾸는 게 아니라, 맛을 계속 개선하되 브랜드의 차별적 우위를 강조해 갈 각오입니다. 두고 보세요.”
KT&G는 최근의 시장점유율 반등을 설명하며 “‘사회공헌 활동’이 알려지면서 담배회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KT&G의 2010년 매출액은 2조4999억원. 이 중 사회공헌 분야에 595억원을 썼다. 비율로 볼 때 연간 매출액의 2.38%.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사회공헌 총 투자액은 3758억원이다. 김광근(金光根·51) 지속경영실장은 “체계적 시스템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돕고, 사회와 더불어 성장하며, 세상과 함께 행복해지길 원한다”고 밝혔다. 2007년에는 지속경영실 산하에 ‘사회공헌부’라는 부서까지 만들었다. 그는 “앞으로 연간 매출액 대비 3%까지 늘려갈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그의 말이다.
번 만큼 이웃 위해 쓴다
“요즘 언론에서 따뜻한 복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KT&G는 오래전부터 연간 매출액의 2%를 사회공헌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 중 우리처럼 ‘사회공헌부’가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현재 ‘사회공헌부’에는 11명의 직원이 이웃에 사랑을 전하려 고민하고 있지요. 단순히 돕자는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도우려고 부서를 만들었습니다. 회사 자랑은 아니지만, 국내에 들어온 양담배 업체를 보세요. 잎담배마저 전량 수입해 들여옵니다. 거기다 주식배당으로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해외로 빼내 국부(國富)가 유출되지요. 그런데도 사회공헌 활동은 매우 미미합니다.”
KT&G는 2010년 9월 DJSI(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 World 및 DJSI KOREA 산업별 최우수 기업으로 편입됐다. DJSI World는 기업을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적·사회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업가치 평가의 글로벌 표준을 말한다. 전 세계 시가총액 기준 2500대 기업 중에서 선발한다.
이번에는 사회공헌부 박정환(朴正煥·47) 부장이 말을 받았다.
“외산 담배회사의 국내 사회공헌 비율이 0.001% 수준입니다. KT&G는 다른 오너 기업보다 사회적 책임 의식이 강해요. 2009년도 《전경련 사회공헌 백서》를 분석해 보니 500대 국내기업의 사회공헌 비율이 0.2%이더군요. 물론 덩치가 큰 기업이 한 번에 내놓는 절대액수야 많겠지만 매출액 대비 KT&G보다 많이 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KT&G의 사회공헌 활동은 크게 4가지다. 사회복지사업, 사회적 책임사업, 사회가치창출사업, 환경보호사업 등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이 가운데 사회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3년 7월 설립된 ‘KT&G 복지재단’은 재정규모가 2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볼륨이 크다. 현대아산재단을 제외하고 국내 복지재단 중 가장 크다고 한다. 수도권에 8개의 ‘행복네트워크 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과 어르신과 다문화가정을 돕고 있다. 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하는 등 지역밀착형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박 부장은 “찾아가는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부터 해마다 사회복지기관에 경승용차 100대를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700여 대의 경승용차가 쌩쌩 사랑을 실어 날랐다”고 자랑했다.
새로운 가치의 실현, ‘상상펀드’
화제가 자연스레 ‘상상펀드’로 옮겨졌다. 상상펀드는 지난 3월 전 임직원이 자발적인 성금으로 탄생했다. 임직원 4200명 중 3900명이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직원들이 십시일반 내놓은 1인당 평균 성금은 월 2만원. 많게는 월 50만원을 내놓은 이도 있지만, 경영진이 일방 ‘운전’하는 일차원적 이웃돕기 모델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KT&G 측은 설명한다.
직원들이 성금을 내자 이번에는 회사가 그 액수만큼 재차 출연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게 됐다. 박 부장은 “잘못 운영되면 ‘강제 갹출’로 비칠 수 있지만 모두 자발적이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임직원 자원봉사 단체인 ‘KT&G 상상투게더 봉사단’이 전국 86개 단위조직망을 구축하고 있다. 김광근 실장의 말이다.
“‘KT&G 상상투게더 봉사단’은 월 한두 차례 봉사활동을 펴는데, 모두 합치면 연간 2만5000~3만 시간 정도에 이릅니다. 회사는 자원봉사 시간당 1만원씩 추가로 매칭(matching)해 대략 한 해 3억원씩 후원합니다. 상상펀드의 연간 운영기금은 약 15억원입니다. 상상펀드를 어디에 어떻게 쓸지는 직원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해 운영합니다.”
유한킴벌리는 나무를 베는 만큼 나무를 심는다고 말한다. KT&G 역시 흡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고민한다. 최근 3년 동안 모 대학 병원과 함께 청소년 흡연방지 교재를 만들고 있다. 조만간 일선 학교에서 청소년 흡연예방 교육이 이뤄질 전망이다.
최근에는 공공시설의 흡연실 환경 개선사업, 휴대용 재떨이 제작보급에도 나서고 있다. 박 부장의 말이다.
“흡연이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기에 우리가 나선 것입니다. 다만 외부 시선이 조심스러워요. 우리가 직접 나서면 진정성이 오해받을 수 있겠다 싶어 KT&G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3년간 10억원을 후원해 청소년의 건강과 보건을 위한 교재를 만들고 있어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각각의 눈높이에 맞는 교재에다 양호교사의 교육매뉴얼까지 만들 계획이에요.”
연초 씨에서 모락모락 한 모금 연기까지
과학연구단지가 밀집한 대전 유성구의 KT&G ‘R&D본부’는 맛 좋고 질 좋은 담배를 연구·개발하는 곳이다. 연초를 시험재배하거나 잎담배에 섞는 향료와 첨가물을 만들고, 궐련 종이의 죄는 정도가 연소율에 미치는 영향관계를 따진다. 한마디로 연초 씨에서 모락모락 한 모금 연기까지 담배가 변화하는 전 과정을 연구한다.
사실, 사람들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담배를 피워 문다고 말한다. 진정을 위해 피우는 담배가 심리적 의지물인지, 실제로 몸 안에서 물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그런 의미에서 R&D 본부의 연구과제는 무궁무진하다.
현재 KT&G가 시판하는 담배는 50종이 넘는다. 내수(內需)가 반, 수출(輸出)이 반 정도다. 담배의 평균 라이프사이클은 7년. 이 가운데 ‘디스’, ‘장미’, ‘한라산’ 등은 장수(長壽)담배로 꼽힌다.
곽재진(郭在珍·56) 제품연구소장, 이영택(李英澤·55) 기술연구소장, 김도훈(金度勳·49) R&D기획실장은 R&D 본부의 핵심인물이다. KT&G의 모든 담배가 이들 손에 의해 기술적으로 구현(具現)된다.
담배를 시중에 팔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했다. 곽재진 소장의 말이다.
“서울의 마케팅본부에서 큰 틀의 브랜드 운영전략을 세우면, 그 전략 내에서 새로운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나옵니다. 그것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우리가 하지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어느 회사든 신제품을 개발하기란 대단히 어렵잖아요. 세계 톱10 안에 드는 담배회사라면 기술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죠.”
이영택 소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담배를, 그것도 적기에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며 최근 출시된 제품을 예로 들었다.
“요즘 ‘뜨고 있는’ 멘솔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보헴시가모히또’, 담배 연기를 획기적으로 줄인 ‘더원 에티팩’, 고급 시가를 세계 최초로 궐련 형태로 탈바꿈시킨 ‘보헴’은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를 제품 속에 반영한 결과이지요. 사실 1980~90년대만 해도 글로벌 제품과 비교해 미흡한 부분이 있었어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제조설비 현대화, R&D 및 품질관리에 대한 연구와 투자로 글로벌 담배와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아쉬운 남북합작 담배 ‘한마음’
곁에 있던 김도훈 실장에게 R&D기획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말이다.
“담배 신기술과 관련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평가, 관리 및 모니터링까지 합니다. 담배에 대한 소비자의 클레임이 뭔지, 연령대나 성별에 따른 기호까지 죄다 조사해 그 결과를 기술로 번역해 달라고 연구자에게 요청하지요.”
―연구·개발 주제를 어떻게 선정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해 주세요.
곽재진 소장이 말을 받았다.
“담배 필터 안을 볼 수 없잖아요. 그러니 필터 속을 보여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지요. 또 담배를 피우고 나면, 필터가 노래지는데 이런 현상을 없앨 수는 없을까 하는 아이디어도 생겨날 수 있어요. 담배 맛과 향기에 대한 모든 현상이 대상입니다.”
―제품을 생산할 때 얼마나 시행착오를 거쳤는지 궁금하네요.
곽 소장의 계속된 설명이다.
“‘레종’의 예를 들어 볼게요. 2002년 무렵 ‘레종’을 개발할 당시 잎담배, 궐련지, 필터 등 3개의 고정변수를 토대로 100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연구했지요. 담배의 쓴맛을 잡았더니 담배 맛이 부족하고, 담배 맛을 높였더니 건강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더군요. 그렇게 1년반이 흘렀습니다. 많은 연구인력이 참여했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어요. 그 덕분인지 ‘레종’이 출시된 뒤 시장반응이 뜨거웠어요.”
―‘레종’ 맛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또 주 타깃 층은 누구였나요.
“‘레종’은 담배의 ‘깔끔한 맛’을 노렸어요. 타깃은 20~30대 젊은 층이었습니다. 무엇으로 깔끔한 맛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당시 국내에 허브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허브를 깔끔한 맛과 연결시켰더니 그림이 나왔습니다. 디자인에도 많이 신경을 썼지요.”
곽 소장에게 자신이 개발한 담배 중 아쉬운 제품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한마음’이라고 했다. 2000년 남북의 화해 무드를 반영해 남북한이 공동 생산, 판매한 담배가 ‘한마음’이다. 이 담배를 만들려고 1998년 9월 평양에 모여 ‘남북한 담배협력사업 합의서’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남북한 간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해 4월 출시했다. 곽 소장의 회고다.
“남한에서 생산된 원료로, 만들기는 북한에서 했어요. 좋은 원료를 써서 원가가 높았고, 남북합작인 만큼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러나 판매가 부진, 지금은 시장에서 퇴출됐어요. 실패원인이 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이후 ‘한마음’이란 이름을 바꿔 재출시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안되더군요. 약이 많이 올랐었지요.”
궐련 종이 두겹 싸 生연기 30% 줄여
궐련을 제조하려면 우선 원료 잎담배를 제품별 처방에 따라 골고루 섞어야 하는데 이를 엽배합(blending)이라 부른다. 각기 다른 종류의 잎담배 특성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담배 특유의 맛과 향기가 결정된다. 담배회사들은 이런 엽배합의 방법을 기업 비밀로 극비에 부친다. 이번에는 이영택 소장의 말이다.
“과거에 비해 연구개발이 더 어려워졌어요. 왜냐면 시장에서 담배 브랜드가 차지하는 영역이 좁아지고, 따라서 경쟁이 격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대개 제품개발 기간은 1년에서 1년반 정도 걸리는데 2년 이상 연구한 담배도 있고, 현재 3년 넘게 연구 중인 담배도 있어요.”
곽재진 소장은 “최근에 나온 ‘더원 에티팩’은 개발에 3년이 소요됐다”며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이 담배는 타인에게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줄이고, 자신에게는 담배 냄새를 없애는 담배다. 3년 연구 끝에 담배 생연기를 30% 이상 줄였다.
이 소장은 “궐련 종이를 두 겹으로 감쌌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두 번 싸면 연기는 주는데 종이가 많이 타니 담배 맛을 잃더라”며 “엽배합을 조절해야 하고 연초의 밀도도 조절해야 했다. 기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 너무 많았다. 결국 두 번 싼 종이를 얇게 했다”고 말했다.
담배에다 ‘친환경 옷’을 입히다
대전 평촌동에 위치한 KT&G 본사를 찾았다. 담배에다 ‘친환경 옷’을 입히는 품질관리실 권순철(權純哲·53) 실장과 재료품질부 김종오(金鍾旿·40) 부장, 생산관리실 최성희(崔聖熹·38) 과장은 “담배 속지와 포(보루) 포장지를 연구하는 품질·생산관리실에서 ‘그린에코의 기적’을 만든다”고 했다.
특히 권순철 실장은 “담배를 만들 때 가급적 자연분해성이 높은 것을 쓰고, 천연자원을 아껴 쓰되 폐기물은 가급적 재활용하는 3원칙을 세웠다”고 강조했다.
KT&G는 지난 8월부터 ‘더원’ ‘시즌’ ‘디스플러스’ ‘디스 리얼’ ‘라일락’ ‘한라산’ 담배 속지에 쓰던 알루미늄 박지를 종이로 바꿨다. 흔히 알루미늄 박지는 담배의 습도와 향을 유지하는 데 탁월하지만 재활용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알루미늄 박지는 자연에서 꽤 오랜 시간 썩지 않는다고 한다. 권 실장의 말이다.
“이번에 담배 속지로 쓴 종이는 100% 펄프만 사용해 재활용이 가능해요. 사실 담배는 수분에 민감합니다. 장마철엔 담배가 금방 눅눅하잖아요. 그러니 담배 속지가 중요하지요. 일반 종이로도, 수입 종이로도 속지를 만들어 봤는데 신통치 않아 6개월 동안 실패를 거듭했죠. 그러다 ‘약 봉지’에 착안, 담배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종이를 개발하게 됐어요.”
종이 박지 교체로 연간 600t의 알루미늄을 줄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권 실장의 설명이었다. 덩달아 CO₂배출량도 연간 1434t을 줄였다고 한다.
김종오 부장은 “담배 속지 외에 포 포장지도 크게 개선했다”고 거들었다. “딱딱하고 두꺼운 ‘하드 포장지’에서 얇고 가벼운 ‘소프트(軟包) 포장지’로 바꿨다”는 얘기다. 포장지가 얇아지면 종이 사용량도 준다. 당연히 원가절감 효과가 생긴다.
최성희 과장은 “포 포장지의 개선으로 펄프 사용량이 연간 1000t, 그러니까 대략 30년생 나무 5800그루를 살리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권 실장의 계속된 말이다.
“포장지만 바꾼 게 아니라 포장지의 접착방식도 ‘풀’에서 ‘열접착’으로 바꿨습니다. 공정 중에 풀을 안 발라도 되니 작업이 편해졌고 포장상태도 좋아졌어요. 또 포를 감싸던 비닐 포장지 사용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어요. 아, 이 정도라면 시장에 내놔도 문제가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비닐 포장지 사용량이 연간 167t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이를 CO₂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연간 364t(펄프 사용 197t, 비닐 생산 167t)을 줄일 수 있다. 어림잡아 연간 30년생 나무 2만 그루를 6만㎡(1만8182평)에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고 한다.
세계 최초로 담배에 제조자의 이름 새겨
포장지를 바꾸고 비닐 사용을 줄이니 자연스레 폐기물 처리비용도 감소했다. KT&G 홍보실 하소영 차장이 건넨 자료에는 ‘2008년 폐기물 처리비용이 4억7400만원이었다가 2010년에는 2억7000만원으로 68.9%나 줄어들었다’는 설명이 나왔다.
권 실장은 “단순히 친환경 효과만 목표로 두지 않는다. 포장지가 얇아지고 세련되면서 담배 진열대 경쟁에서 외산담배에 밀리지 않게 됐다”며 “KT&G는 친환경과 제품경쟁력을 등가선상에서 바라본다”고 강조했다.
이런 자신감 때문인지 국내 시판하는 담뱃갑에 생산자 이름을 표기하는 제조실명제를 담배업계 사상 최초로 도입했다. 권 실장은 ‘세계 최초’라는 점을 내세우며 “처음엔 담뱃갑에 제조자 이름을 표기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책임경영에 동참한다는 뜻에서 제조실명제를 시작했다”고 했다.
제조실명제와 함께 최근 ‘맛-품질 보증시스템’도 구축했다. 원료투입에서 완제품 생산까지의 전 과정을 실시간 모니터해 문제발생시 생산라인을 즉시 정지시키고, 문제해결 이후 재가동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김 부장과 최 과장의 말이다.
“리얼타임으로 각 공정을 모니터해 실시간으로 구성원이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만약 생산과정에서 온도나 수분 등 표준을 벗어나면 경고음이 울려 바로 피드백할 수 있게 운영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리얼타임 피드백 시스템을 말하지요.”
게다가 제품 출하단계에서는 ‘이중 검증시스템’을 도입해 담배 맛을 감별토록 했다. 담배공장마다 ‘맛 감별사’로 불리는 전문 패널이 그날 하루 생산된 담배를 ‘시끽(試喫)’하고 이상유무를 판별한다.
권 실장은 “맛에 차이가 나면 출하하지 않는다. 대개는 컴퓨터가 제어하지만, 1%의 오차도 없애자는 뜻에서 숙련된 전문 인력의 관능(官能·오관 및 감각기관의 기능)평가를 더해 적격품을 출고하고 있다”고 했다.
‘녹색공장’을 가다
기자는 하소영 차장과 함께 경북 영주로 향했다. 최근 KT&G 영주공장은 인근 회사에서 발생하는 잉여 증기에너지를 공급받아 재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KT&G는 현재 보유 중인 4개 제조공장 중 영주공장을 가장 최근에 건설했다. 시설 면에서 아시아 최대라고 한다. 축구 경기장 면적의 15배 크기다.
영주공장 현관에서 기자를 맞이한 차영언(車榮彦·54) 공장장은 “우리 공장과 인접한 회사의 알루미늄 코팅과정에서 발생되는 증기를 파이프로 끌어다 재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차 공장장은 두 회사 간 증기 이송관로 804m를 ‘저탄소 녹색라인’이라 불렀다. KT&G 영주공장은 그 증기를 냉동기 가동용 증기에너지로 활용해 기존 가스 사용량을 대폭 줄였다. 그의 말이다.
“내다버리는 증기를 활용해 연간 944t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는데, 이는 소나무 18만8000그루를 심는 것과 맞먹는 효과가 있다고 해요. 절감액도 6개월에 3억6500만원에 이릅니다.”
KT&G 영주공장은 연간생산 능력이총 22억 갑(440억 개비)으로, 국내 총 수요의 40% 이상 차지한다. 1분에 500갑(1만 개비)을 생산하는 12개 라인과 800갑(1만6000개비)을 생산하는 3개 라인 등 총 15개 생산라인을 갖고 있다.
차 공장장, 여러 부장·과장과 함께 영주공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원료가공에서 포장까지 모든 제조공정이 자동화돼 원스톱으로 생산되고 있었다. ‘더원’ ‘레종’ ‘보헴’ ‘시즌’ 등 국내 및 수출용 담배 34종이 이곳을 거쳐 세계로 향한다.
박봉용(朴鳳用·54) 생산실장, 김지연(金志衍·50) 품질부장은 “원료보관창고에서 출고된 잎담배는 품종과 수량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바코드 리더기를 거치는데, 광학 카메라가 내장된 이물질 선별기를 통해 질 나쁜 잎담배는 자동 제거된다”고 설명했다.
이물질 선별을 마친 잎담배는 절각기에 의해 잘게 잘리고(각초) 건조기를 거쳐 담배 향을 부여하는 가향시설로 이동한다.
박영배(朴榮培·54) 지원실장, 송종술(宋鍾述·53) 과장은 “원료가공 공정에서 공급된 ‘각초’는 궐련제조기에서 궐련지로 만 뒤 ‘필터부착기’를 통해 담배(개비 담배)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궐련공정(담배 제조)을 거친 담배는 포장기에서 20개비의 갑 담배로 만들어져 10갑씩 포장된다. 다시 말해 ‘한 포(보루)’가 된다는 얘기다. 이어 라운드벨트를 통해 상자포장기로 운반돼 상자(500갑)에 담긴다.
차영언 공장장은 “적재된 담배는 무인로봇에 의해 초대형 창고로 옮겨지는데 최대 약 27만 상자의 보관이 가능하다. 이후 자동 출고 과정을 통해 KT&G 각 지역 영업 지점을 거쳐 판매점으로 배송된다”고 했다.
“수년 내 글로벌 Top4 된다”
사실, 삼성전자 휴대폰이 최고의 휴대폰이 될지, 현대차가 도요타를 뛰어넘을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KT&G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런던 드럭스(London Drugs)’에서 필립모리스, BAT 담배 옆에 당당히 최고 매출을 올리는 KT&G 담배의 모습을 상상해선 안 되는가” 하고 반문한다.
KT&G가 담배수출을 본격 시작한 것은 1999년. 국내시장이 점차 좁아지자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수출초기 중동과 중앙아시아, CIS(독립국가연합) 등지로 시장개척에 나서 현재는 미주, 동남아 등 40여 개국에 수출 길을 열었다.
지난해 수출실적이 394억 개비(5억3000만 달러). KT&G의 지난해 생산량(923억 개비)의 약 43%를 수출한 셈이다.
KT&G 허업(許業·49) 글로벌본부장은 “괄목할 만한 수출신장 배경에는 수출 초기에 경쟁이 치열한 선진국보다는 소득은 낮으나 인구증가율과 흡연율이 높은 개도국을 타깃으로 집중공략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초기 수출성장의 발판은 중앙아시아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중앙아시아는 흡연율이 높고 자체 생산기반이 취약해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높은 성장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지요. 정치·종교적인 문화 차이로 서방기업들이 진출을 기피했던 대표적인 틈새시장이라 생각해 철저히 공략했어요.”
중앙아시아 수출전용 제품인 ‘파인’ 브랜드는 강한 맛과 심플한 디자인 설계로 현지 소비자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처음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국한됐던 판매지역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전 지역 및 중동권으로 급속히 확산됐고 이를 기반으로 CIS, 동남아, 미주 등지로 시장을 넓혔다. 또 ‘에쎄’를 필두로 한 해외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수년내 ‘글로벌 톱4 담배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인터뷰] 민영진 KT&G 대표이사
“제약·바이오·화장품까지 아우르는 종합건강기업이 될 것”
KT&G는 매년 담배 판매로 번 돈 7조원의 60%가량인 4조원을 세금으로 내는 국민기업이다. 국부(國富)유출을 막는 사실상의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떠맡고 있다.
민영진(閔泳珍) 대표이사는 “공기업 시절 KT&G가 고배당·독과점 우량기업으로 전통과 안정·신뢰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지금은 젊음과 상상·나눔의 이미지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해마다 530억원을 사회복지사업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여기다 ‘상상(想像)’을 콘셉트로 젊고 빠르고 창의적인 면모를 추구한 까닭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민영화 과정에서 인력의 41%(3200여 명)를 축소했고, 방만한 조직구조를 아프게 도려냈다. 민 대표는 “돌이켜보면 아픈 과거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해 겪은 성장통이었다. 결과적으로 국민기업을 넘어 글로벌 이미지까지 더하는 토대가 됐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담배시장에서 KT&G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세계 담배시장은 필립모리스와 BAT, JT 등 소위 ‘빅3’가 중국시장을 제외한 전 세계 담배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담배시장을 개방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KT&G는 시장점유율 60% 선을 유지하며 글로벌 브랜드와 싸워 이기는, 전 세계 유일의 로컬 담배기업입니다. 중국은 아직 시장개방을 하지 않고 있고, 사실상 전매(專賣)제도가 유지되는 나라죠. 시장을 개방한 나라 중에 자국시장의 주도권을 쥔 나라는 ‘KT&G의 한국’ 외에 단 한 나라도 없어요.”
KT&G는 2010년 기준 36개국 40여 개 브랜드를 수출하는 ‘글로벌 브랜드 5’에 드는 기업이다. 특히 ‘파인(PINE)’과 ‘에쎄’의 인기가 유독 뜨겁다. 왜 그럴까.
“‘파인’ 담배는 수출전용 제품이지만 ‘파인’이 우리말로 ‘소나무’ 아닙니까? 과거 국내에서 사랑받던 ‘솔’ 담배의 명맥을 잇는다 할 수 있어요. ‘에쎄’는 주로 여성층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히려 국내 중년 남성층에 인기가 높아요.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중동(中東)에서도 남성들이 많이 찾지요. 에쎄만큼은 문화·식생활·성향이 다양한 세계인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모양입니다.”
KT&G의 10년 뒤 자화상을 그려 달라고 했더니, 민 대표는 “담배·홍삼의 사업구조에서 탈피, 제약·바이오·화장품 사업까지 아우르는 세계 제일의 종합건강기업, 지주회사 체제의 초우량 그룹을 구축하겠다”고 답했다.
“사실, 담배는 국내 총수요가 감소하고 있고, 홍삼은 이미 국내 수요의 성장세가 둔화했어요. 시장다각화를 위해 해외시장에서 퀀텀 점프(Quantum Jump·대약진)의 기회를 포착하고 있지요. 러시아·이란·터키에다 담배 현지공장을 세운 것이나, 홍삼의 세계화를 위해 중국에 ‘길림 한정 인삼유한공사’를 설립한 것도 그런 까닭이죠. 사업다각화 역시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어요. 영진약품에 이어 얼마 전 소망화장품을 인수한 사례는 종합건강기업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길고 멀리 보는 경영’으로 신성장동력을 발굴해 글로벌 초우량 기업이 되겠습니다. 두고 보세요.”⊙
담배시장 개방(1988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양담배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무뎌졌다. 언제부턴가 국산담배와 양담배 간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전쟁은 ‘흡연 위해(危害) 경고’만큼이나 격해지고 있다.
‘신천지(新天地)’인 국내시장을 향해 ‘글로벌 빅3(PMI, BAT, JT)’의 의기양양(意氣揚揚)한 공세는 끝이 없어 보인다. 2004년 국내 시장점유율이 23.7%에서 2007년 30.8%, 2009년 4/4분기 41.7%, 2010년 4/4분기 44.3%까지 올라갔다. “50% 고지가 눈에 보인다”는 얘기가 나왔다.
토종 담배회사인 KT&G의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더 이상 독점(獨占)으로 이문(利文) 좋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았다. 민영화로 공기업 지위마저 잃은 KT&G는 ‘브랜드 경영’과 ‘사회공헌 활동’, ‘친환경 경영’이란 3가지 방책(方策)을 세우고, 지난 10년간 세계화의 격랑에 맞섰다.
그러자 올 들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쭉쭉 미끄러져 가던 KT&G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요동을 친 것이다. 지난 1/4분기 국내 점유율이 바닥을 치고 58.0%까지 올라갔다. 담배시장 개방 이후 이런 반등(反騰)은 2004년 말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 2/4분기에는 59.8%까지 뛰었다. 특히 일부 외국계 담배회사가 가격을 올린 5월과 6월에는 평균 시장점유율이 63.1%를 기록했다. 연말께는 65%까지 전망한다. KT&G에 2011년 한 해는 잊을 수 없는 해가 될지 모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KT&G 임직원들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의지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얻을 때까지 밀고 당기고 흔들고 문질러야 한다. 일은 고되다. 무척 힘들다! 하지만 가능성은 무한하다.”
KT&G의 ‘반등’을 더듬기 위해 대전 본사, R&D 연구소, 경북 영주 제조공장, 서울 마케팅본부를 찾았다. 담배 맛에 대한 사람들의 섬세한 취향과 변덕을 읽으려는 이들의 수성 의지를 들어 보았다.
다국적 기업에 맞서 브랜드 경영에 나서다
 |
| KT&G의 디자인 중심 브랜드 경영을 주도하는 브랜드실 임직원들. 앞줄 왼쪽이 박창현 브랜드실장이다. |
담배, 즉 궐련(卷煙)이 현대 기업 마케팅사(史)에서 큰 획을 긋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독점시대 KT&G(舊 전매청·한국전매공사·한국담배인삼공사)는 브랜드 경영에 나설 까닭도, 디자인의 아이디어 창출 프로세스를 기업경영에 적용할 이유도 없었다. 흡연가들의 충성도가 절대적이었고, 우리나라만큼 담배 인심이 후한 곳이 없었다. 서구 경쟁사 같은 세련된 마케팅 감각도 필요 없었다. 두려움을 몰랐다.
그러나 힘과 돈을 앞세우고 자사(自社) 브랜드의 장점을 찬양하는 데 집중한 양담배 회사들의 공세가 본격화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KT&G가 디자인 중심 브랜드 경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2000년 7월 출시된 담배 ‘타임’이 시발(始發)이었다. 대기업에서나 하는 ‘브랜드 매니저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해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마다 평균 1개 이상의 브랜드를 시장에 내놓았다. ‘솔’과 ‘88라이트’, ‘디스’로 끌어 오던 브랜드 전략을 던져 버린 것이다. 어쩌면, 글로벌 담배기업 필립모리스(PMI)가 80년 이상 ‘말보로’ 브랜드로 가치를 키우던 전략과 다르다.
문제는 담배 맛을 끌어올리고,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이다. ‘타임’ 이후 10년간 KT&G는 계속된 R&D 투자와 소비자 분석을 통해 변화를 시도했다.
“그런 노력과 땀이 올 상반기 국내 점유율의 반등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우리는 양담배의 약점 비틀기나 애국심에만 호소하지 않았다”는 것이 KT&G 홍보실 조재영(趙在泳·39) 부장과 하소영(河素英·39) 차장의 설명이다.
두 사람의 설명은 기자에게, 우리가 사실이라고 아는 것과 스스로 만들어내 믿는 것 사이의 경계를 다시 긋도록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기업의 도약이 한두 종(種)의 빅 브랜드나 시장의 외풍(外風)에 좌우되지 않는다. KT&G의 저력에 새삼 구미가 당겼다.
KT&G는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빅3(현재는 빅5 수준)를 꿰차겠다는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야망의 손길은 KT&G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 심어 주는 것과 경쟁 브랜드에 뺏긴 흡연자들을 빼내 오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브랜드 경영의 첫 작품 ‘타임’
서울 대치동 코스모타워에서 만난 KT&G 브랜드실장 박창현(朴昌炫·47) 상무는 브랜드 경영에 나섰던 지난 10년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KT&G는 100년 넘는 기업이지만, 브랜드 경영을 시작한 것은 1999년 담배 ‘타임’을 만들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외산(外産)담배들이 거세게 몰려오던 시절이었죠. ‘말보로’의 필립모리스, ‘던힐’의 BAT(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 ‘마일드세븐’의 JT(재팬 타바코)의 공세가 어마어마했어요.”
1990년대 말이면 외산담배의 시장점유율이 점차 상승하기 시작해 10%를 넘어서던 때다. 박 상무는 “우리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전사적으로 달려들었다”고 회고했다.
“‘타임T/F팀’을 만들고 광고회사 제일기획 출신을 브랜드국장으로 영입하는 등 디자인 혁신을 포함한 브랜드 경영을 처음 시작했어요. 내부 의사결정의 전권을 T/F팀에 주었고 결재와 상명하복 시스템을 없앴습니다.”
이른바 피우는 담배에다 패션을 입힌 셈이다. ‘타임’이 2000년 7월 세상에 나오자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사이에서 그동안 찾지 못했던 고객을 본 것이다.
‘타임’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브랜드로, 정식 명칭은 ‘타임리스타임(Timeless Time)’이었다. 직장인과 대학생의 업무(공부) 후 휴식과 기분 전환용으로 타깃을 세웠다.
“KT&G에 대표 브랜드 계보가 있습니다. 청자→솔→88라이트→디스→디스플러스로 이어지는데, 과거 계보를 잇던 담배들은 독과점 시대인 데다 제품 간 출시 기간이 아주 길었지요. 그러나 ‘타임’ 이후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담배 수명도 짧아졌습니다.
양담배와의 한치 에누리 없는 완전경쟁하에서 KT&G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60%입니다. 시장개방 당시에는 애국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타임’을 필두로 마케팅 지향적인 제품관리와 출시가 큰 기여를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에쎄’ 브랜드, 초슬림 세계 1위로 등극
 |
| 세계 초슬림 담배 시장을 석권한 ‘에쎄’ 15종. |
“2000년 초반 당시 시장흐름을 주도하던 트렌드는 ‘건강’이었어요. 어찌 보면 담배는 건강 트렌드와 모순되고, KT&G가 다루기에는 민감한 주제였어요. 하지만 브랜드 중심의 제품 경쟁력을 키우려면 건강 이슈를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초(超)저(低)타르 담배다. 과거 담배의 타르가 6~7㎎이었다면, 초저타르 담배는 3㎎ 이하다. 초저타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 1㎎의 ‘더 원’, 2㎎의 ‘시즌’, 3㎎의 ‘레종’이었다. 결과적으로 세 브랜드 모두 대성공을 거뒀다.
“잘 나갈 때는 ‘레종’이 7%, ‘더원’이 10%, ‘시즌’도 4%까지 시장점유율을 넓혔습니다. 초저타르 시장만큼은 우리가 먼저 뛰어들어 소비자의 건강 욕구(needs)를 반영시켜 아성을 다질 수 있었던 셈이죠.”
이 과정에서 초슬림 담배인 ‘에쎄’도 변화하게 된다. 1996년 11월 첫 출시될 당시 ‘에쎄’의 인기는 가늘고 긴 ‘에쎄’의 가냘픈 허리만큼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2002년 2월 단행된 브랜드 리뉴얼과 그해 12월부터 ‘에쎄 라이트’ 등 저타르 제품을 확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1~3㎎의 ‘더원·시즌·레종’은 굵은(레귤러) 담배시장에서, ‘에쎄’는 가는(슈퍼슬림) 담배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쎄’는 2003년 이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담배가 됐다. ‘에쎄’ 종류만 해도 현재 15종에 이르고 2010년 한 해 동안 국내외 모두 422억 개비(21억1000만 갑)가 팔렸다.
국내 담배시장의 24%, 초슬림 담배시장의 85%를 장악, 세계 초슬림 담배시장 판매량 1위를 지키는 ‘월드 클래스(world class)’ 넘버원 브랜드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귀 기울여야”
브랜드1부 박성식(朴晟植·45) 부장은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려면 소비자와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체계적인 소비자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사람 속을 안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듯, 드러나지 않는 욕구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충족하지 못한 욕구를 끄집어내야 합니다. 얼마 전 출시한 ‘보헴시가모히또’의 경우 쿠바산(産) 시가 잎에다 멘솔 향을 입혔어요.”
소설가 헤밍웨이가 즐겨 찾은 것으로 알려진 ‘모히또(mojito)’는 1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쿠바의 대중적인 칵테일이다. 민트와 라임, 럼, 탄산수가 들어가 상큼한 향과 톡 쏘는 맛이 난다고 한다. 모히또의 청량감을 담배 맛으로 옮겼다.
“올해 나온 ‘더원 에티팩’도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한 결과지요. 이 담배는 담뱃잎을 두 번 감싸는 기술로 연기와 냄새를 줄여 줘요.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동료들을 배려해 만들었다고 할까요.”
KT&G 산하 R&D본부에서 3~4년에 걸쳐 연구한 끝에 생(生)연기와 주위에 배는 냄새를 30% 감축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박 부장은 “소비자의 욕망을 주기적으로 조사하거나 행동을 관찰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거나, 책을 읽고 잠재된 욕망을 찾는다”고 했다. 그의 계속된 설명이다.
“사실, 많은 종류의 담배 맛 차이를 엄격하게 구별하긴 어려워요. ‘참이슬’과 ‘처음처럼’, ‘카스’와 ‘하이트’를 구별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결국엔 인식의 차이입니다. 이 인식의 차이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구현시키느냐를 두고 끊임없이 기술적인 연구를 진행합니다.”
KT&G 마케팅본부에는 ‘인사이트부(部)’가 있다. 인사이트(insight)는 우리말로 통찰(洞察)을 뜻한다. 이 ‘인사이트부’에서 소비자의 욕구를 꿰뚫어 보기 위해 정보를 구한다. 브랜드 경쟁력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트렌드를 분석한다. 내부에서만 할 수 없어 외부 전문가와 연간(年間) 계약을 맺기도 한다. 박 상무는 “자신 있게 말하지만, 사내 브랜드 매니저의 역량은 삼성이나 현대에 못지않다. 나름의 인적·물적 자원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레종’에 거는 기대는 …
 |
| 보헴시가모히또(上). 레종블루캣.(下) |
향후 담배시장을 주도할 트렌드는 뭘까. 브랜드실 김건태(金建兌·42) 과장은 “2000년부터 시작된 건강 트렌드는 여전히 위력적이고, 향후에도 계속 강화될 것으로 예견된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향후 담배시장 하나로 볼 때, 시장이 전반적으로 세분화될 것으로 예상해요. 타르 1~3㎎ 혹은 0.5㎎, 심지어 0.1㎎의 저타르 담배의 인기에 편승, 더 낮은 타르 담배는 없을까 하는 소비자의 욕구도 예상할 수 있지요. 소비자는 항상 더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향후 시장을 주도할 KT&G의 ‘신상’이 뭐냐는 질문에 박 상무는 주저없이 ‘레종’을 얘기했다. ‘레종’은 2002년 처음 출시됐으며 현재 ‘레종 블루’, ‘레종 블랙’ 등 4종류가 판매된다.
“‘솔’과 ‘청자’, ‘88라이트’, ‘디스’의 역할을 ‘레종’이 다시 이어받길 원합니다. ‘과연 레종이구나!’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대폭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생각이에요. 그렇다고 맛을 완전히 바꾸는 게 아니라, 맛을 계속 개선하되 브랜드의 차별적 우위를 강조해 갈 각오입니다. 두고 보세요.”
KT&G는 최근의 시장점유율 반등을 설명하며 “‘사회공헌 활동’이 알려지면서 담배회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KT&G의 2010년 매출액은 2조4999억원. 이 중 사회공헌 분야에 595억원을 썼다. 비율로 볼 때 연간 매출액의 2.38%.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사회공헌 총 투자액은 3758억원이다. 김광근(金光根·51) 지속경영실장은 “체계적 시스템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돕고, 사회와 더불어 성장하며, 세상과 함께 행복해지길 원한다”고 밝혔다. 2007년에는 지속경영실 산하에 ‘사회공헌부’라는 부서까지 만들었다. 그는 “앞으로 연간 매출액 대비 3%까지 늘려갈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그의 말이다.
번 만큼 이웃 위해 쓴다
 |
| KT&G는 체계적 시스템으로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 ‘사회공헌부’를 만들었다. 사진은 사회공헌부 직원들. 뒷줄 오른쪽 두 번째부터 왼쪽으로 박정환 부장, 김광근 실장, 이응출 차장. |
KT&G는 2010년 9월 DJSI(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 World 및 DJSI KOREA 산업별 최우수 기업으로 편입됐다. DJSI World는 기업을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적·사회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업가치 평가의 글로벌 표준을 말한다. 전 세계 시가총액 기준 2500대 기업 중에서 선발한다.
이번에는 사회공헌부 박정환(朴正煥·47) 부장이 말을 받았다.
“외산 담배회사의 국내 사회공헌 비율이 0.001% 수준입니다. KT&G는 다른 오너 기업보다 사회적 책임 의식이 강해요. 2009년도 《전경련 사회공헌 백서》를 분석해 보니 500대 국내기업의 사회공헌 비율이 0.2%이더군요. 물론 덩치가 큰 기업이 한 번에 내놓는 절대액수야 많겠지만 매출액 대비 KT&G보다 많이 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KT&G의 사회공헌 활동은 크게 4가지다. 사회복지사업, 사회적 책임사업, 사회가치창출사업, 환경보호사업 등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이 가운데 사회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3년 7월 설립된 ‘KT&G 복지재단’은 재정규모가 2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볼륨이 크다. 현대아산재단을 제외하고 국내 복지재단 중 가장 크다고 한다. 수도권에 8개의 ‘행복네트워크 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과 어르신과 다문화가정을 돕고 있다. 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하는 등 지역밀착형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박 부장은 “찾아가는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부터 해마다 사회복지기관에 경승용차 100대를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700여 대의 경승용차가 쌩쌩 사랑을 실어 날랐다”고 자랑했다.
새로운 가치의 실현, ‘상상펀드’
화제가 자연스레 ‘상상펀드’로 옮겨졌다. 상상펀드는 지난 3월 전 임직원이 자발적인 성금으로 탄생했다. 임직원 4200명 중 3900명이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직원들이 십시일반 내놓은 1인당 평균 성금은 월 2만원. 많게는 월 50만원을 내놓은 이도 있지만, 경영진이 일방 ‘운전’하는 일차원적 이웃돕기 모델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KT&G 측은 설명한다.
직원들이 성금을 내자 이번에는 회사가 그 액수만큼 재차 출연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게 됐다. 박 부장은 “잘못 운영되면 ‘강제 갹출’로 비칠 수 있지만 모두 자발적이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임직원 자원봉사 단체인 ‘KT&G 상상투게더 봉사단’이 전국 86개 단위조직망을 구축하고 있다. 김광근 실장의 말이다.
“‘KT&G 상상투게더 봉사단’은 월 한두 차례 봉사활동을 펴는데, 모두 합치면 연간 2만5000~3만 시간 정도에 이릅니다. 회사는 자원봉사 시간당 1만원씩 추가로 매칭(matching)해 대략 한 해 3억원씩 후원합니다. 상상펀드의 연간 운영기금은 약 15억원입니다. 상상펀드를 어디에 어떻게 쓸지는 직원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해 운영합니다.”
유한킴벌리는 나무를 베는 만큼 나무를 심는다고 말한다. KT&G 역시 흡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고민한다. 최근 3년 동안 모 대학 병원과 함께 청소년 흡연방지 교재를 만들고 있다. 조만간 일선 학교에서 청소년 흡연예방 교육이 이뤄질 전망이다.
최근에는 공공시설의 흡연실 환경 개선사업, 휴대용 재떨이 제작보급에도 나서고 있다. 박 부장의 말이다.
“흡연이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기에 우리가 나선 것입니다. 다만 외부 시선이 조심스러워요. 우리가 직접 나서면 진정성이 오해받을 수 있겠다 싶어 KT&G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3년간 10억원을 후원해 청소년의 건강과 보건을 위한 교재를 만들고 있어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각각의 눈높이에 맞는 교재에다 양호교사의 교육매뉴얼까지 만들 계획이에요.”
▣ 예술가를 인큐베이팅하다!
2007년 9월에는 서울 홍대입구에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을 열었다. 지하 4층, 지상 7층, 대지 660㎡, 연건평 3366㎡ 규모다. 시네마 상상마당, 공연장, 디자인 전문숍, 갤러리, 아트마켓, 스튜디오 등이 들어서 있다. KT&G 지속경영실 이응출(李應出·41) 차장은 “‘상상마당’을 통해 영화 음악 시각예술 사진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1000여 명의 젊은 작가를 지원하고 있다. 연간 800여 회의 기획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다. 지난해 관람객이 60여만명이고 온라인 회원만 30여만명을 확보했다. ‘상상마당’에서 이뤄지는 문화행사는 다양하다. ‘시네마 상상마당’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이다. 또 국내 유일의 밴드음악 지원 프로그램인 ‘밴드 인큐베이팅’을 통해 선발된 밴드에 연습 및 앨범제작을 지원 중이다. |
연초 씨에서 모락모락 한 모금 연기까지
 |
| 연초 씨에서 한 모금 연기까지 담배의 모든 것을 연구하는 KT&G R&D본부의 곽재진 제품연구소장,이영택 기술연구소장, 김도훈 R&D기획실장(왼쪽부터). |
사실, 사람들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담배를 피워 문다고 말한다. 진정을 위해 피우는 담배가 심리적 의지물인지, 실제로 몸 안에서 물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그런 의미에서 R&D 본부의 연구과제는 무궁무진하다.
현재 KT&G가 시판하는 담배는 50종이 넘는다. 내수(內需)가 반, 수출(輸出)이 반 정도다. 담배의 평균 라이프사이클은 7년. 이 가운데 ‘디스’, ‘장미’, ‘한라산’ 등은 장수(長壽)담배로 꼽힌다.
곽재진(郭在珍·56) 제품연구소장, 이영택(李英澤·55) 기술연구소장, 김도훈(金度勳·49) R&D기획실장은 R&D 본부의 핵심인물이다. KT&G의 모든 담배가 이들 손에 의해 기술적으로 구현(具現)된다.
담배를 시중에 팔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했다. 곽재진 소장의 말이다.
“서울의 마케팅본부에서 큰 틀의 브랜드 운영전략을 세우면, 그 전략 내에서 새로운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나옵니다. 그것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우리가 하지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어느 회사든 신제품을 개발하기란 대단히 어렵잖아요. 세계 톱10 안에 드는 담배회사라면 기술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죠.”
이영택 소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담배를, 그것도 적기에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며 최근 출시된 제품을 예로 들었다.
“요즘 ‘뜨고 있는’ 멘솔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보헴시가모히또’, 담배 연기를 획기적으로 줄인 ‘더원 에티팩’, 고급 시가를 세계 최초로 궐련 형태로 탈바꿈시킨 ‘보헴’은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를 제품 속에 반영한 결과이지요. 사실 1980~90년대만 해도 글로벌 제품과 비교해 미흡한 부분이 있었어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제조설비 현대화, R&D 및 품질관리에 대한 연구와 투자로 글로벌 담배와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아쉬운 남북합작 담배 ‘한마음’
 |
| ‘한마음’ 담배. |
“담배 신기술과 관련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평가, 관리 및 모니터링까지 합니다. 담배에 대한 소비자의 클레임이 뭔지, 연령대나 성별에 따른 기호까지 죄다 조사해 그 결과를 기술로 번역해 달라고 연구자에게 요청하지요.”
―연구·개발 주제를 어떻게 선정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해 주세요.
곽재진 소장이 말을 받았다.
“담배 필터 안을 볼 수 없잖아요. 그러니 필터 속을 보여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지요. 또 담배를 피우고 나면, 필터가 노래지는데 이런 현상을 없앨 수는 없을까 하는 아이디어도 생겨날 수 있어요. 담배 맛과 향기에 대한 모든 현상이 대상입니다.”
―제품을 생산할 때 얼마나 시행착오를 거쳤는지 궁금하네요.
곽 소장의 계속된 설명이다.
“‘레종’의 예를 들어 볼게요. 2002년 무렵 ‘레종’을 개발할 당시 잎담배, 궐련지, 필터 등 3개의 고정변수를 토대로 100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연구했지요. 담배의 쓴맛을 잡았더니 담배 맛이 부족하고, 담배 맛을 높였더니 건강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더군요. 그렇게 1년반이 흘렀습니다. 많은 연구인력이 참여했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어요. 그 덕분인지 ‘레종’이 출시된 뒤 시장반응이 뜨거웠어요.”
―‘레종’ 맛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또 주 타깃 층은 누구였나요.
“‘레종’은 담배의 ‘깔끔한 맛’을 노렸어요. 타깃은 20~30대 젊은 층이었습니다. 무엇으로 깔끔한 맛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당시 국내에 허브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허브를 깔끔한 맛과 연결시켰더니 그림이 나왔습니다. 디자인에도 많이 신경을 썼지요.”
곽 소장에게 자신이 개발한 담배 중 아쉬운 제품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한마음’이라고 했다. 2000년 남북의 화해 무드를 반영해 남북한이 공동 생산, 판매한 담배가 ‘한마음’이다. 이 담배를 만들려고 1998년 9월 평양에 모여 ‘남북한 담배협력사업 합의서’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남북한 간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해 4월 출시했다. 곽 소장의 회고다.
“남한에서 생산된 원료로, 만들기는 북한에서 했어요. 좋은 원료를 써서 원가가 높았고, 남북합작인 만큼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러나 판매가 부진, 지금은 시장에서 퇴출됐어요. 실패원인이 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이후 ‘한마음’이란 이름을 바꿔 재출시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안되더군요. 약이 많이 올랐었지요.”
궐련 종이 두겹 싸 生연기 30% 줄여
궐련을 제조하려면 우선 원료 잎담배를 제품별 처방에 따라 골고루 섞어야 하는데 이를 엽배합(blending)이라 부른다. 각기 다른 종류의 잎담배 특성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담배 특유의 맛과 향기가 결정된다. 담배회사들은 이런 엽배합의 방법을 기업 비밀로 극비에 부친다. 이번에는 이영택 소장의 말이다.
“과거에 비해 연구개발이 더 어려워졌어요. 왜냐면 시장에서 담배 브랜드가 차지하는 영역이 좁아지고, 따라서 경쟁이 격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대개 제품개발 기간은 1년에서 1년반 정도 걸리는데 2년 이상 연구한 담배도 있고, 현재 3년 넘게 연구 중인 담배도 있어요.”
곽재진 소장은 “최근에 나온 ‘더원 에티팩’은 개발에 3년이 소요됐다”며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이 담배는 타인에게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줄이고, 자신에게는 담배 냄새를 없애는 담배다. 3년 연구 끝에 담배 생연기를 30% 이상 줄였다.
이 소장은 “궐련 종이를 두 겹으로 감쌌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두 번 싸면 연기는 주는데 종이가 많이 타니 담배 맛을 잃더라”며 “엽배합을 조절해야 하고 연초의 밀도도 조절해야 했다. 기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 너무 많았다. 결국 두 번 싼 종이를 얇게 했다”고 말했다.
담배에다 ‘친환경 옷’을 입히다
 |
| 담배에다 ‘친환경 옷’을 입히는 품질관리실 권순철 실장과 재료품질부 김종오 부장, 생산관리실 최성희 과장(왼쪽부터). |
특히 권순철 실장은 “담배를 만들 때 가급적 자연분해성이 높은 것을 쓰고, 천연자원을 아껴 쓰되 폐기물은 가급적 재활용하는 3원칙을 세웠다”고 강조했다.
KT&G는 지난 8월부터 ‘더원’ ‘시즌’ ‘디스플러스’ ‘디스 리얼’ ‘라일락’ ‘한라산’ 담배 속지에 쓰던 알루미늄 박지를 종이로 바꿨다. 흔히 알루미늄 박지는 담배의 습도와 향을 유지하는 데 탁월하지만 재활용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알루미늄 박지는 자연에서 꽤 오랜 시간 썩지 않는다고 한다. 권 실장의 말이다.
“이번에 담배 속지로 쓴 종이는 100% 펄프만 사용해 재활용이 가능해요. 사실 담배는 수분에 민감합니다. 장마철엔 담배가 금방 눅눅하잖아요. 그러니 담배 속지가 중요하지요. 일반 종이로도, 수입 종이로도 속지를 만들어 봤는데 신통치 않아 6개월 동안 실패를 거듭했죠. 그러다 ‘약 봉지’에 착안, 담배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종이를 개발하게 됐어요.”
종이 박지 교체로 연간 600t의 알루미늄을 줄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권 실장의 설명이었다. 덩달아 CO₂배출량도 연간 1434t을 줄였다고 한다.
김종오 부장은 “담배 속지 외에 포 포장지도 크게 개선했다”고 거들었다. “딱딱하고 두꺼운 ‘하드 포장지’에서 얇고 가벼운 ‘소프트(軟包) 포장지’로 바꿨다”는 얘기다. 포장지가 얇아지면 종이 사용량도 준다. 당연히 원가절감 효과가 생긴다.
최성희 과장은 “포 포장지의 개선으로 펄프 사용량이 연간 1000t, 그러니까 대략 30년생 나무 5800그루를 살리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권 실장의 계속된 말이다.
“포장지만 바꾼 게 아니라 포장지의 접착방식도 ‘풀’에서 ‘열접착’으로 바꿨습니다. 공정 중에 풀을 안 발라도 되니 작업이 편해졌고 포장상태도 좋아졌어요. 또 포를 감싸던 비닐 포장지 사용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어요. 아, 이 정도라면 시장에 내놔도 문제가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비닐 포장지 사용량이 연간 167t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이를 CO₂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연간 364t(펄프 사용 197t, 비닐 생산 167t)을 줄일 수 있다. 어림잡아 연간 30년생 나무 2만 그루를 6만㎡(1만8182평)에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고 한다.
세계 최초로 담배에 제조자의 이름 새겨
 |
| KT&G는 세계최초로 담배에 제조자의 이름을 넣었다. |
권 실장은 “단순히 친환경 효과만 목표로 두지 않는다. 포장지가 얇아지고 세련되면서 담배 진열대 경쟁에서 외산담배에 밀리지 않게 됐다”며 “KT&G는 친환경과 제품경쟁력을 등가선상에서 바라본다”고 강조했다.
이런 자신감 때문인지 국내 시판하는 담뱃갑에 생산자 이름을 표기하는 제조실명제를 담배업계 사상 최초로 도입했다. 권 실장은 ‘세계 최초’라는 점을 내세우며 “처음엔 담뱃갑에 제조자 이름을 표기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책임경영에 동참한다는 뜻에서 제조실명제를 시작했다”고 했다.
제조실명제와 함께 최근 ‘맛-품질 보증시스템’도 구축했다. 원료투입에서 완제품 생산까지의 전 과정을 실시간 모니터해 문제발생시 생산라인을 즉시 정지시키고, 문제해결 이후 재가동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김 부장과 최 과장의 말이다.
“리얼타임으로 각 공정을 모니터해 실시간으로 구성원이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만약 생산과정에서 온도나 수분 등 표준을 벗어나면 경고음이 울려 바로 피드백할 수 있게 운영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리얼타임 피드백 시스템을 말하지요.”
게다가 제품 출하단계에서는 ‘이중 검증시스템’을 도입해 담배 맛을 감별토록 했다. 담배공장마다 ‘맛 감별사’로 불리는 전문 패널이 그날 하루 생산된 담배를 ‘시끽(試喫)’하고 이상유무를 판별한다.
권 실장은 “맛에 차이가 나면 출하하지 않는다. 대개는 컴퓨터가 제어하지만, 1%의 오차도 없애자는 뜻에서 숙련된 전문 인력의 관능(官能·오관 및 감각기관의 기능)평가를 더해 적격품을 출고하고 있다”고 했다.
‘녹색공장’을 가다
 |
| 축구 경기장 면적의 15배 크기인 KT&G 영주공장의 직원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차영언 공장장. |
KT&G는 현재 보유 중인 4개 제조공장 중 영주공장을 가장 최근에 건설했다. 시설 면에서 아시아 최대라고 한다. 축구 경기장 면적의 15배 크기다.
영주공장 현관에서 기자를 맞이한 차영언(車榮彦·54) 공장장은 “우리 공장과 인접한 회사의 알루미늄 코팅과정에서 발생되는 증기를 파이프로 끌어다 재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차 공장장은 두 회사 간 증기 이송관로 804m를 ‘저탄소 녹색라인’이라 불렀다. KT&G 영주공장은 그 증기를 냉동기 가동용 증기에너지로 활용해 기존 가스 사용량을 대폭 줄였다. 그의 말이다.
“내다버리는 증기를 활용해 연간 944t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는데, 이는 소나무 18만8000그루를 심는 것과 맞먹는 효과가 있다고 해요. 절감액도 6개월에 3억6500만원에 이릅니다.”
KT&G 영주공장은 연간생산 능력이총 22억 갑(440억 개비)으로, 국내 총 수요의 40% 이상 차지한다. 1분에 500갑(1만 개비)을 생산하는 12개 라인과 800갑(1만6000개비)을 생산하는 3개 라인 등 총 15개 생산라인을 갖고 있다.
 |
| 차영언 공장장이 담배를 제조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박봉용(朴鳳用·54) 생산실장, 김지연(金志衍·50) 품질부장은 “원료보관창고에서 출고된 잎담배는 품종과 수량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바코드 리더기를 거치는데, 광학 카메라가 내장된 이물질 선별기를 통해 질 나쁜 잎담배는 자동 제거된다”고 설명했다.
이물질 선별을 마친 잎담배는 절각기에 의해 잘게 잘리고(각초) 건조기를 거쳐 담배 향을 부여하는 가향시설로 이동한다.
박영배(朴榮培·54) 지원실장, 송종술(宋鍾述·53) 과장은 “원료가공 공정에서 공급된 ‘각초’는 궐련제조기에서 궐련지로 만 뒤 ‘필터부착기’를 통해 담배(개비 담배)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궐련공정(담배 제조)을 거친 담배는 포장기에서 20개비의 갑 담배로 만들어져 10갑씩 포장된다. 다시 말해 ‘한 포(보루)’가 된다는 얘기다. 이어 라운드벨트를 통해 상자포장기로 운반돼 상자(500갑)에 담긴다.
차영언 공장장은 “적재된 담배는 무인로봇에 의해 초대형 창고로 옮겨지는데 최대 약 27만 상자의 보관이 가능하다. 이후 자동 출고 과정을 통해 KT&G 각 지역 영업 지점을 거쳐 판매점으로 배송된다”고 했다.
“수년 내 글로벌 Top4 된다”
사실, 삼성전자 휴대폰이 최고의 휴대폰이 될지, 현대차가 도요타를 뛰어넘을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KT&G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런던 드럭스(London Drugs)’에서 필립모리스, BAT 담배 옆에 당당히 최고 매출을 올리는 KT&G 담배의 모습을 상상해선 안 되는가” 하고 반문한다.
KT&G가 담배수출을 본격 시작한 것은 1999년. 국내시장이 점차 좁아지자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수출초기 중동과 중앙아시아, CIS(독립국가연합) 등지로 시장개척에 나서 현재는 미주, 동남아 등 40여 개국에 수출 길을 열었다.
지난해 수출실적이 394억 개비(5억3000만 달러). KT&G의 지난해 생산량(923억 개비)의 약 43%를 수출한 셈이다.
KT&G 허업(許業·49) 글로벌본부장은 “괄목할 만한 수출신장 배경에는 수출 초기에 경쟁이 치열한 선진국보다는 소득은 낮으나 인구증가율과 흡연율이 높은 개도국을 타깃으로 집중공략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초기 수출성장의 발판은 중앙아시아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중앙아시아는 흡연율이 높고 자체 생산기반이 취약해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높은 성장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지요. 정치·종교적인 문화 차이로 서방기업들이 진출을 기피했던 대표적인 틈새시장이라 생각해 철저히 공략했어요.”
중앙아시아 수출전용 제품인 ‘파인’ 브랜드는 강한 맛과 심플한 디자인 설계로 현지 소비자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처음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국한됐던 판매지역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전 지역 및 중동권으로 급속히 확산됐고 이를 기반으로 CIS, 동남아, 미주 등지로 시장을 넓혔다. 또 ‘에쎄’를 필두로 한 해외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수년내 ‘글로벌 톱4 담배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인터뷰] 민영진 KT&G 대표이사
“제약·바이오·화장품까지 아우르는 종합건강기업이 될 것”
KT&G는 매년 담배 판매로 번 돈 7조원의 60%가량인 4조원을 세금으로 내는 국민기업이다. 국부(國富)유출을 막는 사실상의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떠맡고 있다.민영진(閔泳珍) 대표이사는 “공기업 시절 KT&G가 고배당·독과점 우량기업으로 전통과 안정·신뢰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지금은 젊음과 상상·나눔의 이미지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해마다 530억원을 사회복지사업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여기다 ‘상상(想像)’을 콘셉트로 젊고 빠르고 창의적인 면모를 추구한 까닭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민영화 과정에서 인력의 41%(3200여 명)를 축소했고, 방만한 조직구조를 아프게 도려냈다. 민 대표는 “돌이켜보면 아픈 과거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해 겪은 성장통이었다. 결과적으로 국민기업을 넘어 글로벌 이미지까지 더하는 토대가 됐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담배시장에서 KT&G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세계 담배시장은 필립모리스와 BAT, JT 등 소위 ‘빅3’가 중국시장을 제외한 전 세계 담배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담배시장을 개방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KT&G는 시장점유율 60% 선을 유지하며 글로벌 브랜드와 싸워 이기는, 전 세계 유일의 로컬 담배기업입니다. 중국은 아직 시장개방을 하지 않고 있고, 사실상 전매(專賣)제도가 유지되는 나라죠. 시장을 개방한 나라 중에 자국시장의 주도권을 쥔 나라는 ‘KT&G의 한국’ 외에 단 한 나라도 없어요.”
KT&G는 2010년 기준 36개국 40여 개 브랜드를 수출하는 ‘글로벌 브랜드 5’에 드는 기업이다. 특히 ‘파인(PINE)’과 ‘에쎄’의 인기가 유독 뜨겁다. 왜 그럴까.
“‘파인’ 담배는 수출전용 제품이지만 ‘파인’이 우리말로 ‘소나무’ 아닙니까? 과거 국내에서 사랑받던 ‘솔’ 담배의 명맥을 잇는다 할 수 있어요. ‘에쎄’는 주로 여성층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히려 국내 중년 남성층에 인기가 높아요.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중동(中東)에서도 남성들이 많이 찾지요. 에쎄만큼은 문화·식생활·성향이 다양한 세계인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모양입니다.”
KT&G의 10년 뒤 자화상을 그려 달라고 했더니, 민 대표는 “담배·홍삼의 사업구조에서 탈피, 제약·바이오·화장품 사업까지 아우르는 세계 제일의 종합건강기업, 지주회사 체제의 초우량 그룹을 구축하겠다”고 답했다.
“사실, 담배는 국내 총수요가 감소하고 있고, 홍삼은 이미 국내 수요의 성장세가 둔화했어요. 시장다각화를 위해 해외시장에서 퀀텀 점프(Quantum Jump·대약진)의 기회를 포착하고 있지요. 러시아·이란·터키에다 담배 현지공장을 세운 것이나, 홍삼의 세계화를 위해 중국에 ‘길림 한정 인삼유한공사’를 설립한 것도 그런 까닭이죠. 사업다각화 역시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어요. 영진약품에 이어 얼마 전 소망화장품을 인수한 사례는 종합건강기업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길고 멀리 보는 경영’으로 신성장동력을 발굴해 글로벌 초우량 기업이 되겠습니다. 두고 보세요.”⊙
이승노
(2011-08-30)
: 423
: 3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