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强小기업 CEO] 崔鎭植 (주)심팩 회장 : 월간조선

“한국은 훌륭하고, 제주는 아름답습니다.”

지난 5월 말,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열린 국제망간협회(IMnI;International Manganese Institute) 총회에서 피터 토스 (Peter Toth·싱가포르) 회장은 한국 방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세계 30여 개 국가에서 온 400여 명의 회원이 이에 공감한다는 듯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2박3일 일정으로 방한(訪韓)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고 한다.

국제망간협회는 망간 관련 정보를 나누고 산업 전반의 비전을 제시할 목적으로 결성된 비영리단체. 1975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범했으며 현재 30개국 91개 회사가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이 중 국내 기업은 동부메탈, 포스하이메탈, 심팩메탈로이 등 3개사다.

이 단체가 주관하는 총회는 전 세계의 철강·망간광·합금철 종사자들이 모여 관련 의제를 놓고 토의하고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국제회의. 유럽에서 주로 열리던 총회가 아시아에서 개최되기는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총회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BHP 빌리튼, 프랑스의 에라메트(Eramet), 브라질의 발레(VALE) 등 세계적인 광산회사와 합금철 기업 임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세계 철강업계가 주시하는 이 국제 행사를 한국에 유치한 기업은 연 매출 2000억원 규모의 합금철 전문 업체 심팩메탈로이다. 생소한 이름의 이 중소업체가 세계 철강업계에서 영향력이 제법 큰 국제행사를 유치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심팩은 어떤 기업일까.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철강업계에서는 ‘소금’으로 통하는 망간의 쓰임새와 합금철의 세계도 궁금하다.

제주에서 열린 국제망간협회 총회 직후 최진식(崔鎭植) 심팩 회장을 만났다. 2008년부터 협회 이사직을 맡아 온 그는 이번 총회에서 부회장에 선출됐다. 아시아 지역 기업인으로는 처음이다. 그는 이번 행사의 한국 유치와 자신이 부회장으로 선출된 것에 대해 “망간 합금철 산업을 둘러싼 세계 경제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자신감에 찬 목소리였다.

국제망간협회 총회 국내 유치

지난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열린 세계망간협회 총회. 심팩메탈로이가 국내 최초로 유치했으며, 세계 30개국 91개 회원사에서 총 40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국제망간협회 총회의 국내 개최 의의는 무엇인가요.

“한국의 조강생산량은 연간 5800만t(2010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6위입니다. 2009년 대비 생산량이 20% 늘어나는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요. 한국은 조강생산량만큼이나 세계 망간업계에서 아주 중요하고 규모가 큰 시장입니다. 그런데도 관련 기업의 국제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요. 이번 총회로 한국 철강산업과 합금철산업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으면 합니다. 또한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라요.”

최 회장은 “한국의 산업은 물론 자연과 문화, 역사와 전통 등을 알리고자 일부러 총회 장소를 제주도로 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총회 참석자들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후 당진에 있는 현대제철을 견학하고 제주에 당도했다. 현대제철은 제선(製銑), 제강(製鋼), 압연(壓延)의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일관(一貫)제철소로 2010년 1월에 1차 고로(高爐)를, 같은 해 11월에 2차 고로를 완공했다. 한 해에 고로 2개를 완공한 곳은 현대제철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최 회장은 “현대제철의 규모와 환경친화적 설비들을 둘러보며 유럽과 일본에서 온 회원들이 몹시 놀라고 감탄하더라”고 전했다.

“40년에 걸친 포스코의 신화적 성장사라든가, 한국이 조선업에서 세계 1위인 이유를 브리핑할 때도 회원들은 굉장히 놀라워했습니다. 철강산업과 조선업 분야에서 양적으로 무섭게 팽창한 중국이 한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지만 기술이나 질적인 면에서 아직은 거리가 있다는 설명에 모두 박수를 치기도 했고요.”

2박3일 동안의 행사는 큰 사고 없이 성공적이라는 평가 속에 막을 내렸다. 심팩메탈로이는 일본 굴지의 철강회사와 장기계약에 관해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는 등 적지 않은 성과도 냈다. 이 일본 회사 관계자는 “중국보다는 한국 업체에 신뢰가 간다”며 “상호 좋은 파트너가 되었으면 한다”고 심팩 측에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최 회장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총회를 유치한 덕분에 얻은 결과”라고 자랑했다.

―국제망간협회 총회를 유치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국제망간협회 총회는 그동안 유럽에서 많이 개최되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 국가 회원들은 아시아 지역의 개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지요. 특히 대한민국은 중국 철강산업에 비해 규모도 작고 인지도까지 낮아 꺼렸습니다. 그런 데다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후쿠시마 원전 파괴로 인한 방사능 오염 우려까지 겹쳐 총회가 개최되어도 참석하지 않겠다는 회원이 많았어요. 문제가 생기면 전원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해 주겠다고 설득한 끝에 겨우 유치하게 되었죠.”

이번 총회의 주요 의제는 그동안 천정부지로 솟구쳤던 원자재 가격의 하락에 따른 국제 망간 시황이었다. 그는 “망간이 철광석이나 코크스보다 더 빨리 가격 조정에 들어갈 것”이라며 “금년 하반기 중 조정기를 거칠 것”으로 분석했다.

망간은 철강업계의 ‘소금’

경북 포항시 괴정동에 자리 잡고 있는 합금철 전문 기업 심팩메탈로이 공장.

망간은 철과 유사한 회색 광택의 금속이다. 철, 알루미늄, 구리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반인들은 망간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

―철강업계에서 망간은 ‘소금’으로 불릴 정도로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소재더군요.

“모든 철에는 1% 이상의 망간이 들어갑니다. 망간은 철을 강하고 질기게 하는 성질을 갖고 있지요. 망간이 들어가지 않은 철은 무르고 약해서 쉽게 깨집니다. 우리가 아는 강철에는 모두 망간이 함유돼 있다고 보시면 되지요.”

최 회장에 따르면 철광석을 가공해 만든 최초의 쇠는 탄소 함유량이 높은 ‘무쇠’다. 드라마 <주몽>에서 모팔모는 이 무쇠로 강철검을 만들기 위해 불에 달궜다 쇠망치로 두드리고 찬물에 식히는 담금질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렇게 물리적인 힘을 가하면 무쇠에서 나쁜 성질이 빠져나가 질기고 강한 성질만 남는다는 사실을 모팔모는 경험으로 터득했던 것. 나쁜 성질은 곧 탄소 함유량을 뜻한다.

무쇠를 강철로 만드는 이 고전적인 방법은 강철을 대량생산해야 하는 산업화 시대에는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등장한 방법이 망간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무쇠에 망간이 들어가면 탄소 함유량을 떨어뜨려 강철이 되는데, 이를 보통 합금철이라 부른다. 합금철은 2종 이상의 금속이 철과 융합해 별도의 성질을 갖게 되는 금속을 통칭한다.

―망간 함유량에 따라 철의 질이 달라진다는 얘기네요.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탄소 함유량에 따라 철의 질이나 용도가 결정되지요. 일반강의 경우 탄소 함유량이 7.3% 이하인 고탄소 망간철이면 되지만 자동차 강판이나 가스·석유 수송용 강관을 만드는 고급강의 경우 탄소 함유량이 2.0% 이하인 중탄소 망간철을 사용해야 하지요. 잠수함 바닥에 사용되는 특수강의 경우 탄소 함유량이 1.0% 이하인 저탄소 망간철을 써야 하고요.”

고로나 전기로처럼 고열에 강한 특수강은 망간과 규소를 넣은 망간규소철로 제조하고,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는 망간에 니켈크롬을 첨가한 니켈크롬철로 만든다. 최 회장은 합금철 기업 CEO답게 일반인에게는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 줬다. 그는 뼛속까지 철강 기업인이었다. 그의 전직이 증권맨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부득불 쌍용정공 인수

최진식 회장은 잘나가던 금융인에서 제조업 CEO로 변신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무려 18년 동안이나 금융권에서 일했고, M&A(인수합병)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최 회장은 한누리투자증권 IB(투자은행)사업본부장으로 있던 2000년, 쌍용그룹이 해체되자 퇴출 대상인 쌍용중공업(현 STX)을 성공적으로 M&A해 회생시켰다. 그러나 프레스(압축가공기계) 업체였던 쌍용정공(현 심팩)은 마땅한 주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직접 경영에 나선 끝에 만성 적자로 부채비율 1000%가 넘던 회사를 1년여 만에 흑자회사로 바꿔 놓았다. 2006년에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합산업(현 심팩메탈로이)을 인수해 1년여 만에 흑자로 전환한 데 이어 2008년 코스닥에 상장까지 하는 등 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런 최 회장을 두고 업계에서는 ‘죽은 기업 회생 CEO’라며 그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한편 ‘기업 사냥꾼’이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제조업 CEO로 달려온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음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기업을 사고파는 M&A 전문가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그에게 “억울하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오해이니 언젠가는 풀리지 않겠느냐”며 짐짓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다.

―증권가에서 꽤 유능했던 것으로 아는데, 왜 금융업이 아닌 제조업 CEO가 되었습니까.

“제조업 CEO는 제 인생 포트폴리오에 없었습니다. 쌍용정공을 인수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 목표와 꿈은 투자회사 CEO였지요. 쌍용정공 M&A 작업을 진행할 당시 마땅한 주인만 나타났더라면 아마도 저는 지금쯤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겁니다.”

쌍용정공은 국내 프레스(압축가공기계) 업계 1위 기업이었다. 보유 기술이나 업계 평가 면에서 충분히 회생 가능한 기업이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해 난파할 위기에 처하자 M&A 담당자였던 그가 직접 닻을 내리기로 했다. 그의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 외교관을 꿈꾸었는데, 대학 졸업 후 금융인의 길을 가게 됐고, 지금은 제조업 CEO로 살고 있다”며 “이게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고 즐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 출신인 최 회장은 동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 그는 두 번에 걸쳐 외무고시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성격상 최선을 다했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는다는 그는 외교관의 꿈을 단칼에 접고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왜 하필 건설회사였습니까.

“당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직업이 외교관 아니면 건설사 직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시절 제가 외교관이 되고자 했던 것은 세계 여러 나라를 경험하며 글로벌 마인드를 키우고 싶어서였지요. 실력이 모자라 외교관이 되지는 못했지만 건설사에 들어가면 세계를 경험할 기회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외무고시를 목표로 공부한 덕분에 현대건설 신입 공채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 바레인 지사 금융팀에 배정됐다. 프로젝트론(항만시설이나 전력시설 등 특정한 프로젝트에 공여되는 대출)과 리볼빙(만기연장) CP(기업어음)를 활용해 건설 현장에 필요한 자재 구매 비용을 조달해 주는 역할이었다. 그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금융업계에는 프로젝트론이라든가 CP 개념이 없었다”며 “이 금융기법을 활용하기 위해 런던 지사에 있는 선배에게 부탁해 국제금융 관련 도서를 구입,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론과 CP 등의 금융기법이 국내 금융업계에 등장한 것은 1980년대 후반입니다만, 해외 현장에 나가 있는 기업들은 이미 1980년대 초부터 단기자금 조달방법으로 이 기법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금융기법을 현장에서 익히며 금융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제조업 위해 연봉 40억 포기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에 위치한 프레스 전문 기업 심팩 본사 및 공장.

1986년 그는 2년여 동안의 해외 지사 근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그는 2년여 동안 받은 월급과 현지 수당으로 경기도 과천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샀다.

―2년여 동안 받은 월급을 모아 아파트 한 채를 샀단 말인가요.

“건설 붐이 일던 1980년대 중동은 근무환경은 나빴지만 대우가 아주 좋은 곳이었어요. 건설현장이건 지사건 2년 정도 근무하면 아파트 한 채 값에 해당하는 목돈을 만질 수 있었죠. 저 같은 경우 월급은 25만원밖에 안되었지만 현지수당이 80만~90만원이나 됐습니다. 착실히 모으면 당시 서울 반포에 있는 주공아파트 한 채를 사고도 남는 돈이었죠.”

귀국 후 그는 현대건설에 사표를 제출했다. 본사로 복귀하면 25만원의 월급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만으로 만족할 자신이 없었다. 또 일반기업에 비해 보수나 근무환경이 훨씬 양호한 금융권에 이미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다. 영어 좀 하고 금융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만 갖추면 어디서든 먹고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힘을 보탰다.

1986년 그는 동양증권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월급이 현대건설의 딱 두 배였다고 한다.

―당시 국내 증권가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요.

“채권파트에서 일했는데, 선물(先物)을 기프트(Gift)로 알 정도로 후진성을 면치 못한 상태였지요. 채권의 회계처리도 고졸 여사원들이 주판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선물 교육을 시키는 한편, 동료와 함께 회계 시스템을 전산화하는 작업을 했어요. 채권시장을 보는 이가 100명도 안되던 시절에 일일 채권시황을 발행하기도 했고요. 증권가에서 최진식이라는 이름 석 자는 채권시장을 선진화한 인물로 각인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997년 그는 트레이딩본부 본부장을 끝으로 동양증권을 퇴사했다. 그는 “국내에서 MBA(연세대 경영대학원)를 하고 해외영업과 국제금융을 총괄한 사람은 내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어장벽이 없었습니까.

“영어는 잘할 수 있으면 좋지만,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무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 경험상 외국인들은 매끄럽고 기계적인 영어보다 엉터리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영어에 더 주목하더군요. 적어도 제가 담당한 해외 고객들은 영어에 능숙한 통역사를 쓰는 것보다 더듬거리는 실력이나마 제가 직접 설명할 때 더 신뢰하고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엉터리 영어라도 누구나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하겠지요.”

인수 1년여 만에 찾아온 위기

철광석과 유사한 모양의 망간 원석. 철강 업계에서 ‘소금’으로 불리는 망간은 철을 강하고 질기게 하는 소재다.

증권가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2000년 한누리투자증권 IB사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시절 쌍용중공업을 성공적으로 M&A시켜 외국계 증권사와 투자사들이 CEO 후보로 눈독 들일 정도로 주가가 올랐다. 그는 “한누리투자증권에서 받은 연봉이 30억~40억원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오너 기업인이라 해도 만지기 어려운 고액 연봉인데, 그런 혜택을 포기할 정도로 쌍용정공이 매력적인 기업이었나요.

“매력적이라기보다는 우량기업이니 회생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고, 회생시킬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무렵은 외국계 증권사와 투자사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제안을 받고 있던 때여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 중인 상황이었어요. 쌍용정공 때문에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는데, 40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쌍용정공 쪽을 택하게 한 것 같습니다. 독립하기에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나이잖아요.”

2001년 그는 그동안 자신이 모아 둔 30억원과 투자자금을 합쳐 85억원에 쌍용정공을 인수했다. 그와 동시에 상호를 심팩으로 변경했다. 이제 혁신적인 경영으로 프레스 부문 국내 1위 기업의 명예를 되찾을 일만 남았다. 업계에 눈이 밝은 전문경영인을 초빙,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실적을 개선해 나갔다. 하지만 10년여 동안 누적된 부채를 탕감하고 흑자로 전환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인수 1년여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인수 당시 30억원을 투자한 투자자 2명이 회사 실적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자 회수하겠다고 그를 찾아온 것이다. 증권사 근무 시절 투자자로서 늘 기업과 경영자들을 평가했던 그가 평가받는 입장이 되어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처지라 속상해할 틈도 없었다고 한다.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살던 집과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담보로 은행에서 30억원을 대출받아 투자자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를 믿고 따라 준 아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담보대출을 받을 당시 5억원짜리 상가건물 등기권리증을 아내 앞에 내놓으며 ‘내가 망하거든 이걸로 아이들 공부시켜라’ 했는데, 아내는 ‘한 푼이라도 사업에 보태라’며 상가마저 내놓았지요.”

결국 최 회장은 평생 모은 전재산 65억원을 심팩에 올인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고, 다시 바닥에서 시작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위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판매가격이 원가 수준이어서 단가를 올려 달라며 최대 거래처인 S사를 찾아간 것이 화근이었다. S사는 최 회장이 증권가에 있을 때부터 잘 아는 곳이었다. 그가 오래된 친분을 믿고 “단가를 5%만 올려 달라”고 하자 S사 측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거래처를 바꾸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후 6개월 동안 단 한 건의 주문도 들어오지 않았다.

직원들 급여를 30%씩 삭감하고, 자신의 연봉도 700만원으로 줄였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낙담해 있던 그에게 귀중한 정보 하나가 증권가로부터 날아들었다. 말레이시아 자동차회사 ‘프로톤(Proton)’이 생산설비를 늘린다는 정보였다. 금융인 특유의 더듬이로 감을 잡은 그는 사비 300만원을 들고 말레이시아 프로톤사로 날아가 설비 담당자를 만났다.

―공급 계약이 성사됐습니까.

“성사되긴 했지만 쉽지 않았지요. 프로톤 설비 책임자는 처음에 ‘품질을 믿을 수 없다’며 저희 제품을 거절했습니다. 현대차와 쌍용차 등 기존 거래처 엔지니어 사이에서 ‘품질은 최고다’는 평판을 받아 온 터라 그냥 물러설 수 없었어요. 프로톤 생산현장의 엔지니어들을 만나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두 달 동안 10번이나 말레이시아를 오가며 엔지니어들을 설득했다. 결국 설비 책임자가 그를 불러 “오너가 직접 와서 이렇게 영업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이 정도 정성이면 제품을 믿어도 될 것 같다”며 300만 달러의 공급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국내 판매가보다 30% 정도 높은 가격이었다고 한다. 이후 최 회장은 연중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내며 글로벌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그 덕분에 심팩은 적자기업에서 탈출, 9년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이다. 인수 당시 438억원(당기손실 51억원)이었던 매출이 작년 기준 1805억원(당기순이익 201억원)으로 증가했다.

2013년 매출 1조원 돌파가 목표

심팩은 자동차와 조선에 필요한 강판을 찍는 프레스 기계 제조업체다. 현대차, 기아차, 쌍용차 등이 주요 고객이다.

최 회장이 쌍용정공을 인수할 당시 그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가 증권사에서 기업을 팔 사람과 살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거간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가 쌍용정공의 기업가치를 한껏 높인 후 비싸게 되팔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그는 되팔기는커녕 새로운 회사를 추가로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2006년 그는 국내 최초의 합금철 생산업체인 한합산업을 M&A한 후 사명(社名)을 심팩ANC(현 심팩메탈로이)로 변경했다. 심팩이 인수하기 전 한합산업은 무려 10년 동안 노사(勞使)대립과 장기파업으로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수 당시에는 법정관리 상태였다.

―한합산업 역시 부실기업이지만 회생 가능성이 많은 회사였습니까.

“한합산업은 1959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합금철 전문 업체로 경제위기 전까지 업계 1위를 달리던 우량기업이었습니다. 그런 데다 합금철은 철강산업이 존재하는 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분야죠. 제강과 제철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산업이니 기업가치가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프레스 사업을 해 오면서 자연적으로 원자재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회사를 인수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지요.”

인수할 당시 이 회사의 노조는 포항 지역 금속노조 산하 최대 강성노조였다. 조합원 80명으로, 생산직 사원 대부분이 가입한 상태였다. 이들의 잦은 파업이 부실의 원인이었던 만큼 경영 정상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노조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인수 초기 그가 조합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자 그의 가족이 사는 집 약도와 빨간색으로 폭발물 표시가 그려진 협박편지가 왔다. 이를 본 그의 아내가 ‘아이들 키우는데 폭발 위험 부담까지 안고 살아야 하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합산업 노조가 왜 강성노조가 되었는가부터 차근차근 따져 보기로 했다. 그 결과 경영위기 이후 경영층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살기 위해 자기들끼리 뭉치다 보니 강성노조가 되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영층이라면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조합원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는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신념으로 1년여 동안 노사 간의 대화를 시도했다. “노조가 회사발전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역할을 할 테니 믿고 따라와 달라. 내가 회사의 대주주로서 무능하다고 판단되면 독하게 평가하라. 달게 받겠다”며 끈질기게 노조원들을 접촉했다. 그 결과 노사가 터놓고 이야기하는 대화의 장이 마련됐고,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이익의 20%를 직원들에게 분배하겠다”고 약속했다.

심팩ANC는 인수 후 1년 만에 흑자구조로 전환됐다. 2005년 444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현재는 1966억원(2010년)에 이를 정도로 고속성장했다. 최 회장은 인수 이듬해 전 직원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약속을 지켰다. 또한 화장실을 고치고 공장에 집진기와 변압기를 설치했으며, 직원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방화복과 작업복을 지급하는 등 근무여건을 대폭 개선했다. 직원들에 대한 최 회장의 무한한 애정 표시에 감격한 노조는 2008년 노조원 100%의 찬성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이후 노사갈등 없는 건강한 기업문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법정관리의 오명에서 완벽히 벗어난 심팩ANC는 2008년 10월 코스닥에 상장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글로벌 전략을 구축하기 위해 사명을 심팩메탈로이로 변경했다. 이 회사는 합금철업계에서 현재 국내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위는 세계 2위의 합금철 기업 동부메탈이다. 최 회장은 “과거 1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사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목표(꿈)는 뭔가요.

“심팩그룹의 총 매출액은 현재 4000억원 정도 됩니다. 단기적인 목표는 2013년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중견기업으로 키우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죠.”

최 회장에게 “금융인으로 산 18년과 제조업 CEO로 산 10년을 정의해 달라”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금융인으로 산 10년이 사익(私益)을 위해 보낸 세월이었다면 제조업 CEO로 산 10년은 공익(公益)을 위해 뛰는 나날이었습니다. 전보다 훨씬 힘들고 외롭지만 후손에게 물려줄 위대한 유산(遺産)을 증식해 가고 있는 듯 보람 있고 즐겁습니다. 증권가에서 일한 18년은 제조업을 하기 위한 트레이닝 기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성공노트]

늘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일하라
제조업 CEO가 된 이후 언제든 교도소에 들어가 6개월 살 각오로 일했다. 사무실보다는 현장에 있을 때가 더 많았고, CEO보다는 해외영업 사원이라는 기분으로 세계를 누볐다. 제조업 CEO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일해야 기업을 살린다.

세계를 향해 뛰어라
제조업자들에게 변화가 많은 내수시장은 불안하다. 안정된 경영을 위해서는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영어실력이 부족하다고 위축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내 경험상 해외 바이어들이나 구매 담당자들은 서툴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오너의 설득에 마음을 움직일 확률이 더 높다.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

경쟁력 있는 분야를 택하라
중소기업 CEO 중에는 자금조달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 중 대다수는 투자자들에게 매력이 없는 사양산업을 붙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들의 감각은 동물적이다. 기업을 보는 그들의 눈은 매처럼 정확하고 후각은 표범처럼 예민하다. 그들의 눈 밖에 난 기업이라면 하루빨리 접는 것도 손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마케팅 전문 CEO가 되라
이제는 생산의 효율성보다 시장과 수요를 알아야 성공하는 시대다. 애플이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중심의 생산성이 아니라 마케팅 중심의 시장과 수요를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당진에 수천억 원을 들여 합금철 설비 공장을 짓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 조선 시장과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리라는 나름의 분석에서다.

오픈된 정보의 행간을 읽어라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대변되는 정보화 시대가 되었다. 이제 기업정보를 사람을 통해 얻는 데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나는 업계 관련 시장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파악한다. 각 기업 홈페이지나 매체를 통해 오픈된 기업정보들을 꼼꼼히 살피다 보면 행간에 미래 시장을 예측하는 고급 정보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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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小기업 CEO

崔鎭植 (주)심팩 회장

시장을 읽는 투자자의 눈으로 죽어 가던 기업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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