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제3노총 출범 예고에 촉각
⊙ 3개 노조가 근로자 끌어들이기 경쟁 불가피
⊙ 제3노총 추진 정연수 위원장, “노동운동도 민심 얻지 못하면 실패”
⊙ 3개 노조가 근로자 끌어들이기 경쟁 불가피
⊙ 제3노총 추진 정연수 위원장, “노동운동도 민심 얻지 못하면 실패”
양대 노총(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대정부 투쟁 본격화를 선언, 올해의 노동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현재 국내 양대 노총 중 온건한 편인 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은 취임 직후인 2011년 2월 10일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올 한 해를 집회와 투쟁 등을 통해 ‘싸움의 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민주노총은 과천 고용노동부 앞에서 ‘민주노총 2011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 집회 등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양대 노총의 강경노선 배경에는 오는 6월 말 출범할 ‘제3노총’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별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7월 1일을 전후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맞서는 제3의 노총(가칭 국민노총) 출범이 예고돼 있다. 새 노총은 ‘생활형 노동운동’을 표방, 투쟁 위주의 양대 노총에 염증을 느껴 온 근로자들을 대거 끌어들일 기세다. 대학가에서 투쟁 위주의 총학생회가 퇴조한 이후 우리 사회에 얼마 남지 않은 투쟁조직인 노총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노동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7월부터 복수노조 등장, 勢불리기 싸움 불 보듯
노동계가 최근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지난 2010년 1월 1일 통과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라 복수노조 설립허가 시점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새 노조법에 따르면 오는 7월 1일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다. 단 노조 수가 많아져도 노사협상의 혼란과 비용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사측과 교섭창구는 단일화해야 한다. 노조들이 과반수 등의 방법을 통해 자율적으로 창구를 단일화하고, 안되면 과반수 노조에 교섭권이 주어지며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각 노조가 일정비율로 참여하는 공동 교섭대표단을 구성하게 된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지금까지 노총에 가입해 있던 기존 단일노조에 불만을 가진 근로자들이 새로운 노조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한 사업장에서 민주노총 산하 노조, 한국노총 산하 노조, 연맹 비(非)가입 노조 등 여러 노조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새 노조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올 초 주요 회원사 230곳의 노무담당 임원과 부서장을 설문조사한 결과 51%가 복수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복수노조 설립 이유에 대해서는 직무·직종별 차이(30%), 노동운동의 노선 갈등(25%), 사내 불만 세력의 결집(17%)등이 꼽혔다.
경총 남용우 노사대책본부장은 “복수노조 허용 시점이 되면 생산직 중심의 노조활동에 불만이 컸던 사무직, 연구직 근로자가 세력을 모을 가능성이 있고 기간제와 파견직 근로자의 노조결성 움직임도 본격화할 것이어서 노조 수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특히 각 사업장의 변화는 물론 노총의 태도변화가 예상되는데, 무노조 기업이나 소수 노조를 갖고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동계의 조직화 시도가 크게 증가할 전망”이라며 “각 노총이 이들 기업을 끌어들여 몸집 불리기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만큼 ‘노조 최소 설립요건’을 도입해 혼란을 막는 등 각종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민법상 조합설립 요건에 따르면 노조는 2인 이상이면 설립할 수 있어 경영자들은 복수노조 난립에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현행법상 노조 수에 제한도 없어 노조 난립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태다.
제3노총 지난해 3월 태동
따라서 양대 노총이 복수노조 설립 시점부터 각 노조를 자신의 연맹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세일즈’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이즈음에 제3 노총까지 가세할 것으로 예상돼 노동계는 올 하반기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회오리에 휘말릴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양대 노총의 이념문제와 일반노동자-노총 지도부의 소통문제, 일부 간부의 비도덕성 문제 등이 수시로 불거지면서 기존 노총에 대한 불신도 함께 높아졌다. 이럴수록 제3노총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2009~2010년에 민노총을 탈퇴하는 노조가 급격히 늘어나고 한노총의 어용 논란이 계속되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그동안 민노총의 투쟁적·정치지향적 노선에 염증을 느낀 많은 노조들이 민노총을 탈퇴했고, 새 노조법 시행 이후 노조활동에 대한 과도한 지원 등 불합리한 노사관행이 현장에서 상당히 개선되는 등 새로운 노총 탄생에 대한 분위기는 갖춰졌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는 새 노조법 시행으로 과거 투쟁 위주였던 국내 노동운동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3노총을 주도하는 단체는 지난해 3월 탄생한 ‘새희망노동연대’다. 서울지하철 노조와 서울지방공기업 노조, 현대중공업 노조 등을 중심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표방하고 출범한 이 단체는 현재 60여 개의 사업장에 12만여 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새희망노동연대는 그동안 ‘노동운동의 새로운 형식을 추구할 뿐 노총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여 왔으나, 최근 연대 공동위원장인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의 3선 성공 이후 내부적으로 제3노총을 설립하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행정안전부, 일부 시·도교육청 등 공공부문과 현대미포조선·코오롱·영진약품 노조 등이 참여 의사를 나타내거나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새희망노동연대 측은 주장하고 있으며, 또 무노조 사업장인 삼성과 포스코 등에 생겨날 노조를 끌어안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제3노총 측은 투쟁과 관련된 부서는 통폐합해 최대한 줄이고 근로자의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보건의료·자산관리 등의 부서를 신설해 양노총과 조직 체계를 다르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새희망노동연대 공동위원장인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올 6월께 새 노총을 출범시키고 고용노동부에 노총으로 등록할 것”이라며 새 노총의 가칭을 ‘노동자를 섬기고 국민에 봉사하는 국민노총(약칭 국민노총)’이라고 소개했다. 정 위원장의 설명이다.
“6월 말쯤 설립신고를 하고 연말까지 조직확대에 나설 예정입니다. 이미 많은 사업장, 특히 공기업들에서는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한노총·민노총·희망연대 3파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복수노조가 설립되기 시작하면 근시일 내에 전국적으로 3개 노총이 세력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노총, “싸움판 만들겠다”
제3노총 출범과 복수노조 설립을 놓고 양대 노총의 반응은 어떨까. 양대 노총은 위기감을 인식한 듯 강경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2011년 2월 취임한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을 선언하고 “노조법 재개정을 위해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07년 정부와 ‘정책연대’를 맺고 이를 강조해 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특히 지난 1월 열린 위원장 선거에서 모든 후보가 ‘현 정부와 정책연대 파기’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로 한노총 내부의 기류가 강경노선 쪽으로 가고 있다.
한노총은 2007년 현 정부와 ‘정책연대’를 맺어 노동계와 시민단체로부터 노동단체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을 받아 왔는데, 당시 연대의 장본인인 이용득 위원장이 이제 와서 ‘연대 파기’를 선언하고 나서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용득 위원장이 강경노선으로 턴한 이유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중인 타임오프제 이후 노동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 때문이다. ‘강성노조’의 투쟁력과 협상력이 강화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례로 민노총 산하 기아자동차의 경우 노조가 사측을 압박해 신설수당을 조합비로 돌려 노조전임자 급여를 충당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노조전임자 수를 그대로 유지했다. 민노총 금속노조 170개 사업장 중 91개가 이런 방식으로 기존 전임자 수를 유지했다. 그러나 한노총 소속 노조에서는 노조 구조조정이 많았고, 해고자가 급증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최근 “민노총은 정말 훌륭한 조직”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이용득 위원장이 스스로 ‘강성노조(민노총을 지칭)가 잘되니 우리도 강성노조로 변하겠다’고 밝힌 것은 심하게 말하면 제 발등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야기다.
“한노총 산하노조 사업장에서는 타임오프제 실시 이후 노조가 구조조정되면서 졸지에 해고당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민노총이 각종 방법을 써서 노조 간부들을 보호한 데 비해 비연맹 노조나 한노총 소속 노조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타임오프 한도에서 벗어난 노조전임자들은 나가야 했습니다. 노조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민노총 같은 강성노조여야 본인들이 보호받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현 노조법에서는 노총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강성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익과는 상관없지만요.” 그는 “한노총의 주장은 노동자가 아닌 노조전임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겠다는 것인데,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복수노조에 긴장하는 민노총
한노총이 ‘부러워하는’ 민노총이지만 민노총의 문제도 심각하다. 잇따른 사업장노조의 탈퇴와 정치투쟁에 대한 민심의 이반 때문이다. 2009~2010년 2년 동안 민노총을 탈퇴한 기업 및 단체의 노조는 53곳 4만1000여 명에 달한다. KT, 쌍용자동차, 롯데호텔, 두산인프라코어(창원) 등 굵직한 기업 노조들이 탈퇴했다.
이 가운데 민노총은 고용노동부 앞에서 ‘2011년 투쟁선포 집회’를 열고 “2월 25일 대규모 집회를 열고, 야당 등 정치권 공조를 위한 투쟁,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투쟁 등으로 범국민적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투쟁노선을 더욱 강력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민노총의 속내는 어떤 것일까.
민노총은 타임오프제에 비교적 무난하게 대응해 왔지만,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서는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원래 경영자 측이 꺼려야 할 복수노조 허용 조항에 노동계가 외려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이유는 기존의 노조가 기득권을 나눠줘야 하기 때문이다.
민노총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계의 숙원이었지만, 정부가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독소조항을 달아 노노갈등을 유발하려 하고 있다”며 민노총 내부의 위기감에 대해 털어놨다.
“노조법 개정 당시 정부가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을 만들어 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시키고 노노갈등을 초래해 노동의 자본에 대한 대항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또 노조가 난립하다 보면 사측의 어용노조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크고, 교섭 자체가 기업 내부에서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큽니다. 민노총으로서는 노조법 재개정 투쟁과 반정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민노총은 위기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조직이탈도 크게 늘어나고 있고, 남아 있는 조직들도 민노총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 제3노총까지 출범한다면 추가적인 조직이탈은 피할 수 없겠지요.”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노사관계는 1980년대 이후 대립적 관계가 지속돼 왔지만, 세계적인 경제흐름과 노동흐름을 고려할 때 국내 노사관계는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민노총이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여 궤도수정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남 교수는 제3노총이 민노총에 위협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제3노총을 보면 민노총이 선도하는 투쟁위주 노동운동의 폐해에 불만을 가진 노조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민노총이 제3노총 출범을 계기로 노동계의 새 흐름을 시대적 요청으로 받아들여 개혁에 나선다면 모르겠지만, 제3노총을 ‘어용노조’라든가 ‘정권의 산물’로만 몰아붙인다면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제3노총 성공할 수 있을까
한편 제3노총이 양대 노총과 어깨를 겨루는 새로운 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다소 엇갈렸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제3노총의 출범은 양대 노총으로 양분된 현재의 노동운동 및 대립적인 노사관계에 대한 노조원의 불만족이 표출된 것”이라며 “희망연대는 기존의 노사관계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기존의 노총에 분발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3노총의 성공 여부보다는 출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일단 노동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노동계가 건전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봅니다. 단 제3노총이 성공하려면 이념과 가치지향점을 확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외계층 및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목표하에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에 대한 정책을 내놓는다면 기존 노총들처럼 정규직 위주의 ‘노동귀족’이라고 비난받는 경우는 피할 수 있겠지요.”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과거 투쟁 위주의 노동운동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으며, 지금은 노동운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며 “제3노총이 기존 노총들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방향을 제시한다면 제3노총의 등장은 노동운동 선진화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3노총이 기존 양대 노총 규모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노동학자들은 “현재 노동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새 노총이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고, 노동운동가들은 “현재 제3노총 설립주체는 어용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김영규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동안 현 정부가 공공부문의 민주노조 운동에 살인적인 탄압을 가해 온 만큼 공기업 노동자라도 새로운 어용노조에 가입할 이유가 없다”며 “노동계에 제3노총이 생긴다면 현재 존재하는 조직보다는 오히려 민주노총에 실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설립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민주노총의 조직 및 행태나 현 노동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3노총이 나타난다고 해서 제도적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노총의 구성원인 근로자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정치투쟁도 해야 하고, 쟁의도 해야 하고, 임금인상 요구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을까.
어차피 근로자가 다 같을 수는 없다. 일관되게 같은 생각을 유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때로는 온건하게 때로는 과격하게 밀어붙였던 노동운동사(史)에서 근로자들 또한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그 ‘흐름’의 물꼬가 어느 쪽으로 트이느냐에 따라 노총도 이제 흥망(興亡)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6월 ‘국민노총’ 출범시키는 서울지하철노조 정연수 위원장
“전국의 근로자 중 단 10%만이 양대 노총에 소속돼 있어요. 이들이 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 조합원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의사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새희망노동연대 공동위원장인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은 “노동운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해 3월 ‘새희망노동연대’를 출범시켰고 현대중공업 오종쇄 노조위원장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 위원장은 지난 1월 제17대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당선, 14·16·17대에 걸쳐 위원장을 맡고 있다. 1987년 탄생한 서울지하철노조는 2000년까지 13년 동안 12회의 파업을 벌이는 등 노동계에서도 전통적으로 손꼽히는 강성노조로 투쟁의 선봉에 서 왔다. 노조위원장 선거가 있을 때면 늘 양대 노총 후보와 비연맹 후보들이 각축전을 벌이며 2차투표까지 하는 등 치열한 접전을 벌여 왔다. 그러나 17대에서는 정 위원장이 1차투표에서 62.4%를 득표해 민주노총 출신 후보(35.6%)에 압승을 거뒀다.
정 위원장은 2006년(14대)부터 3회에 걸쳐 위원장직을 맡으면서 ‘협력적 노사관계’를 주창해 왔다. 노사한마당 대축제와 노사정화합 사회공헌선언 등 노사화합에 주력했고, 노조비용으로 적극적인 봉사활동과 기부활동에 나서는 등 기존의 노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국민을 섬기고 봉사하는 노조가 아니면 노동자와 시민의 동조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노동계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판단하에 새희망노동연대를 출범시키게 됐습니다. 올 6월에는 고용노동부에 노총설립 신청을 완료하고 연말까지 연맹에 참여할 조합을 확장하는 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정 위원장은 “양대 노총의 간부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데다 투쟁노선을 고집해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며 “투쟁기조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통제하고 교육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기존 노총의 기본개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동과 자본을 적으로 보는 개념은 글로벌화된 현재의 환경에 맞지 않습니다.기업이 잘돼야 노동자의 권익도 높아지는데 현 노총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아무리 부정해도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갈 수는 없습니다. 노동자도 시장에 참여하고 자본에 참여해야 합니다.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는 기존의 노동운동은 더 이상 노동자와 시민들의 동조를 얻을 수 없어요.”
정 위원장은 노동조합 간부들도 대부분 개인적으로는 노동운동의 새 패러다임에 동조하고 있지만, 노총이라는 견고한 조직 내에서 이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복수노조 설립허가는 노동운동을 새로 세우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봅니다. 언론은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다고 보고 있지만, 노동계가 이를 우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노조와 노동운동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경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전문화를 꾀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복수노조가 출범한 지 1~2년 후에는 노사관계도 안정되고 기업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 봅니다.”
그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 새 노총의 정체성”이라며 “지금까지 투쟁해 본 결과 시민과 함께할 때 반드시 이겼고, 민심을 얻지 못한 투쟁은 반드시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가 힘을 가지려면 강력한 연대와 투쟁도 꼭 필요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 위원장은 “예전엔 그랬지만 이제 노동운동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물론 극한투쟁으로 임금인상이나 보너스를 얻어낼 수도 있지요. 그러나 노조가 이런 역할만 한다면 노동운동은 계속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어요. 돈만 얻어내면 된다는, 종속적인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독일의 경제학자 브렌타노는 ‘자본 없는 노동 없고, 노동 없는 자본 없다’고 했습니다. 기업이 없어지면 노동자도 없어지는 겁니다. 공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상처를 주는 극한투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 위원장은 노동운동이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심이 노동계에서 멀어진 원인 중 하나는 노동조직 및 간부의 비도덕성입니다. 노동조합 간부들이 권력을 행사하며 권위적·불법적인 행동을 많이 해서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았습니까? 이제 ‘노동귀족’은 사라질 겁니다. 경쟁하고 상생하면서 건전하고 깨끗한 노동운동을 펼쳐 나가야죠.”
양대 노총의 강경노선 배경에는 오는 6월 말 출범할 ‘제3노총’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별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7월 1일을 전후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맞서는 제3의 노총(가칭 국민노총) 출범이 예고돼 있다. 새 노총은 ‘생활형 노동운동’을 표방, 투쟁 위주의 양대 노총에 염증을 느껴 온 근로자들을 대거 끌어들일 기세다. 대학가에서 투쟁 위주의 총학생회가 퇴조한 이후 우리 사회에 얼마 남지 않은 투쟁조직인 노총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노동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7월부터 복수노조 등장, 勢불리기 싸움 불 보듯
노동계가 최근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지난 2010년 1월 1일 통과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라 복수노조 설립허가 시점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새 노조법에 따르면 오는 7월 1일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다. 단 노조 수가 많아져도 노사협상의 혼란과 비용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사측과 교섭창구는 단일화해야 한다. 노조들이 과반수 등의 방법을 통해 자율적으로 창구를 단일화하고, 안되면 과반수 노조에 교섭권이 주어지며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각 노조가 일정비율로 참여하는 공동 교섭대표단을 구성하게 된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지금까지 노총에 가입해 있던 기존 단일노조에 불만을 가진 근로자들이 새로운 노조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한 사업장에서 민주노총 산하 노조, 한국노총 산하 노조, 연맹 비(非)가입 노조 등 여러 노조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새 노조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올 초 주요 회원사 230곳의 노무담당 임원과 부서장을 설문조사한 결과 51%가 복수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복수노조 설립 이유에 대해서는 직무·직종별 차이(30%), 노동운동의 노선 갈등(25%), 사내 불만 세력의 결집(17%)등이 꼽혔다.
경총 남용우 노사대책본부장은 “복수노조 허용 시점이 되면 생산직 중심의 노조활동에 불만이 컸던 사무직, 연구직 근로자가 세력을 모을 가능성이 있고 기간제와 파견직 근로자의 노조결성 움직임도 본격화할 것이어서 노조 수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특히 각 사업장의 변화는 물론 노총의 태도변화가 예상되는데, 무노조 기업이나 소수 노조를 갖고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동계의 조직화 시도가 크게 증가할 전망”이라며 “각 노총이 이들 기업을 끌어들여 몸집 불리기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만큼 ‘노조 최소 설립요건’을 도입해 혼란을 막는 등 각종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민법상 조합설립 요건에 따르면 노조는 2인 이상이면 설립할 수 있어 경영자들은 복수노조 난립에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현행법상 노조 수에 제한도 없어 노조 난립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태다.
제3노총 지난해 3월 태동
따라서 양대 노총이 복수노조 설립 시점부터 각 노조를 자신의 연맹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세일즈’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이즈음에 제3 노총까지 가세할 것으로 예상돼 노동계는 올 하반기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회오리에 휘말릴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양대 노총의 이념문제와 일반노동자-노총 지도부의 소통문제, 일부 간부의 비도덕성 문제 등이 수시로 불거지면서 기존 노총에 대한 불신도 함께 높아졌다. 이럴수록 제3노총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2009~2010년에 민노총을 탈퇴하는 노조가 급격히 늘어나고 한노총의 어용 논란이 계속되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그동안 민노총의 투쟁적·정치지향적 노선에 염증을 느낀 많은 노조들이 민노총을 탈퇴했고, 새 노조법 시행 이후 노조활동에 대한 과도한 지원 등 불합리한 노사관행이 현장에서 상당히 개선되는 등 새로운 노총 탄생에 대한 분위기는 갖춰졌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는 새 노조법 시행으로 과거 투쟁 위주였던 국내 노동운동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3노총을 주도하는 단체는 지난해 3월 탄생한 ‘새희망노동연대’다. 서울지하철 노조와 서울지방공기업 노조, 현대중공업 노조 등을 중심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표방하고 출범한 이 단체는 현재 60여 개의 사업장에 12만여 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새희망노동연대는 그동안 ‘노동운동의 새로운 형식을 추구할 뿐 노총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여 왔으나, 최근 연대 공동위원장인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의 3선 성공 이후 내부적으로 제3노총을 설립하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행정안전부, 일부 시·도교육청 등 공공부문과 현대미포조선·코오롱·영진약품 노조 등이 참여 의사를 나타내거나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새희망노동연대 측은 주장하고 있으며, 또 무노조 사업장인 삼성과 포스코 등에 생겨날 노조를 끌어안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제3노총 측은 투쟁과 관련된 부서는 통폐합해 최대한 줄이고 근로자의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보건의료·자산관리 등의 부서를 신설해 양노총과 조직 체계를 다르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새희망노동연대 공동위원장인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올 6월께 새 노총을 출범시키고 고용노동부에 노총으로 등록할 것”이라며 새 노총의 가칭을 ‘노동자를 섬기고 국민에 봉사하는 국민노총(약칭 국민노총)’이라고 소개했다. 정 위원장의 설명이다.
“6월 말쯤 설립신고를 하고 연말까지 조직확대에 나설 예정입니다. 이미 많은 사업장, 특히 공기업들에서는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한노총·민노총·희망연대 3파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복수노조가 설립되기 시작하면 근시일 내에 전국적으로 3개 노총이 세력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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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은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했으나, 새 노조법이 현실화되면서 정책파기에 나섰다. 2008년 초 상생을 결의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이용득 한노총 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 |
한국노총, “싸움판 만들겠다”
제3노총 출범과 복수노조 설립을 놓고 양대 노총의 반응은 어떨까. 양대 노총은 위기감을 인식한 듯 강경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2011년 2월 취임한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을 선언하고 “노조법 재개정을 위해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07년 정부와 ‘정책연대’를 맺고 이를 강조해 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특히 지난 1월 열린 위원장 선거에서 모든 후보가 ‘현 정부와 정책연대 파기’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로 한노총 내부의 기류가 강경노선 쪽으로 가고 있다.
한노총은 2007년 현 정부와 ‘정책연대’를 맺어 노동계와 시민단체로부터 노동단체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을 받아 왔는데, 당시 연대의 장본인인 이용득 위원장이 이제 와서 ‘연대 파기’를 선언하고 나서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용득 위원장이 강경노선으로 턴한 이유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중인 타임오프제 이후 노동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 때문이다. ‘강성노조’의 투쟁력과 협상력이 강화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례로 민노총 산하 기아자동차의 경우 노조가 사측을 압박해 신설수당을 조합비로 돌려 노조전임자 급여를 충당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노조전임자 수를 그대로 유지했다. 민노총 금속노조 170개 사업장 중 91개가 이런 방식으로 기존 전임자 수를 유지했다. 그러나 한노총 소속 노조에서는 노조 구조조정이 많았고, 해고자가 급증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최근 “민노총은 정말 훌륭한 조직”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이용득 위원장이 스스로 ‘강성노조(민노총을 지칭)가 잘되니 우리도 강성노조로 변하겠다’고 밝힌 것은 심하게 말하면 제 발등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야기다.
“한노총 산하노조 사업장에서는 타임오프제 실시 이후 노조가 구조조정되면서 졸지에 해고당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민노총이 각종 방법을 써서 노조 간부들을 보호한 데 비해 비연맹 노조나 한노총 소속 노조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타임오프 한도에서 벗어난 노조전임자들은 나가야 했습니다. 노조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민노총 같은 강성노조여야 본인들이 보호받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현 노조법에서는 노총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강성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익과는 상관없지만요.” 그는 “한노총의 주장은 노동자가 아닌 노조전임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겠다는 것인데,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 타임오프 제도 노동조합 전임자(專任者)에게 사측이 임금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상황에서 노무관리적 성격이 있는 업무(노사교섭, 산업안전, 고충처리 등)에 한해 근무시간으로 인정,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타임오프의 적용범위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정한 한도 내에서 노사가 합의하게 돼 있다. 2010년 5월 1일 위원회에서 결정된 한도는 조합원 49명 이하의 사업장의 경우 1000시간, 99명 이하는 2000시간이다. |
복수노조에 긴장하는 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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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최근 대정부 강경투쟁을 선언했다. 2월 13일 민주노총 산하인 전북버스노조가 68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
이 가운데 민노총은 고용노동부 앞에서 ‘2011년 투쟁선포 집회’를 열고 “2월 25일 대규모 집회를 열고, 야당 등 정치권 공조를 위한 투쟁,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투쟁 등으로 범국민적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투쟁노선을 더욱 강력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민노총의 속내는 어떤 것일까.
민노총은 타임오프제에 비교적 무난하게 대응해 왔지만,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서는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원래 경영자 측이 꺼려야 할 복수노조 허용 조항에 노동계가 외려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이유는 기존의 노조가 기득권을 나눠줘야 하기 때문이다.
민노총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계의 숙원이었지만, 정부가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독소조항을 달아 노노갈등을 유발하려 하고 있다”며 민노총 내부의 위기감에 대해 털어놨다.
“노조법 개정 당시 정부가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을 만들어 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시키고 노노갈등을 초래해 노동의 자본에 대한 대항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또 노조가 난립하다 보면 사측의 어용노조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크고, 교섭 자체가 기업 내부에서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큽니다. 민노총으로서는 노조법 재개정 투쟁과 반정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민노총은 위기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조직이탈도 크게 늘어나고 있고, 남아 있는 조직들도 민노총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 제3노총까지 출범한다면 추가적인 조직이탈은 피할 수 없겠지요.”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노사관계는 1980년대 이후 대립적 관계가 지속돼 왔지만, 세계적인 경제흐름과 노동흐름을 고려할 때 국내 노사관계는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민노총이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여 궤도수정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남 교수는 제3노총이 민노총에 위협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제3노총을 보면 민노총이 선도하는 투쟁위주 노동운동의 폐해에 불만을 가진 노조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민노총이 제3노총 출범을 계기로 노동계의 새 흐름을 시대적 요청으로 받아들여 개혁에 나선다면 모르겠지만, 제3노총을 ‘어용노조’라든가 ‘정권의 산물’로만 몰아붙인다면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제3노총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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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희망노동연대는 ‘국민친화적 노동운동’을 표방하며 노숙자 급식봉사 등 적극적인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
그는 제3노총의 성공 여부보다는 출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일단 노동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노동계가 건전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봅니다. 단 제3노총이 성공하려면 이념과 가치지향점을 확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외계층 및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목표하에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에 대한 정책을 내놓는다면 기존 노총들처럼 정규직 위주의 ‘노동귀족’이라고 비난받는 경우는 피할 수 있겠지요.”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과거 투쟁 위주의 노동운동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으며, 지금은 노동운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며 “제3노총이 기존 노총들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방향을 제시한다면 제3노총의 등장은 노동운동 선진화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3노총이 기존 양대 노총 규모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노동학자들은 “현재 노동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새 노총이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고, 노동운동가들은 “현재 제3노총 설립주체는 어용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김영규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동안 현 정부가 공공부문의 민주노조 운동에 살인적인 탄압을 가해 온 만큼 공기업 노동자라도 새로운 어용노조에 가입할 이유가 없다”며 “노동계에 제3노총이 생긴다면 현재 존재하는 조직보다는 오히려 민주노총에 실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설립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민주노총의 조직 및 행태나 현 노동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3노총이 나타난다고 해서 제도적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노총의 구성원인 근로자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정치투쟁도 해야 하고, 쟁의도 해야 하고, 임금인상 요구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을까.
어차피 근로자가 다 같을 수는 없다. 일관되게 같은 생각을 유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때로는 온건하게 때로는 과격하게 밀어붙였던 노동운동사(史)에서 근로자들 또한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그 ‘흐름’의 물꼬가 어느 쪽으로 트이느냐에 따라 노총도 이제 흥망(興亡)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6월 ‘국민노총’ 출범시키는 서울지하철노조 정연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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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조준우 객원기자 |
새희망노동연대 공동위원장인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은 “노동운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해 3월 ‘새희망노동연대’를 출범시켰고 현대중공업 오종쇄 노조위원장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 위원장은 지난 1월 제17대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당선, 14·16·17대에 걸쳐 위원장을 맡고 있다. 1987년 탄생한 서울지하철노조는 2000년까지 13년 동안 12회의 파업을 벌이는 등 노동계에서도 전통적으로 손꼽히는 강성노조로 투쟁의 선봉에 서 왔다. 노조위원장 선거가 있을 때면 늘 양대 노총 후보와 비연맹 후보들이 각축전을 벌이며 2차투표까지 하는 등 치열한 접전을 벌여 왔다. 그러나 17대에서는 정 위원장이 1차투표에서 62.4%를 득표해 민주노총 출신 후보(35.6%)에 압승을 거뒀다.
정 위원장은 2006년(14대)부터 3회에 걸쳐 위원장직을 맡으면서 ‘협력적 노사관계’를 주창해 왔다. 노사한마당 대축제와 노사정화합 사회공헌선언 등 노사화합에 주력했고, 노조비용으로 적극적인 봉사활동과 기부활동에 나서는 등 기존의 노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국민을 섬기고 봉사하는 노조가 아니면 노동자와 시민의 동조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노동계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판단하에 새희망노동연대를 출범시키게 됐습니다. 올 6월에는 고용노동부에 노총설립 신청을 완료하고 연말까지 연맹에 참여할 조합을 확장하는 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정 위원장은 “양대 노총의 간부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데다 투쟁노선을 고집해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며 “투쟁기조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통제하고 교육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기존 노총의 기본개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동과 자본을 적으로 보는 개념은 글로벌화된 현재의 환경에 맞지 않습니다.기업이 잘돼야 노동자의 권익도 높아지는데 현 노총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아무리 부정해도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갈 수는 없습니다. 노동자도 시장에 참여하고 자본에 참여해야 합니다.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는 기존의 노동운동은 더 이상 노동자와 시민들의 동조를 얻을 수 없어요.”
정 위원장은 노동조합 간부들도 대부분 개인적으로는 노동운동의 새 패러다임에 동조하고 있지만, 노총이라는 견고한 조직 내에서 이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복수노조 설립허가는 노동운동을 새로 세우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봅니다. 언론은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다고 보고 있지만, 노동계가 이를 우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노조와 노동운동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경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전문화를 꾀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복수노조가 출범한 지 1~2년 후에는 노사관계도 안정되고 기업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 봅니다.”
그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 새 노총의 정체성”이라며 “지금까지 투쟁해 본 결과 시민과 함께할 때 반드시 이겼고, 민심을 얻지 못한 투쟁은 반드시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가 힘을 가지려면 강력한 연대와 투쟁도 꼭 필요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 위원장은 “예전엔 그랬지만 이제 노동운동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물론 극한투쟁으로 임금인상이나 보너스를 얻어낼 수도 있지요. 그러나 노조가 이런 역할만 한다면 노동운동은 계속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어요. 돈만 얻어내면 된다는, 종속적인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독일의 경제학자 브렌타노는 ‘자본 없는 노동 없고, 노동 없는 자본 없다’고 했습니다. 기업이 없어지면 노동자도 없어지는 겁니다. 공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상처를 주는 극한투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 위원장은 노동운동이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심이 노동계에서 멀어진 원인 중 하나는 노동조직 및 간부의 비도덕성입니다. 노동조합 간부들이 권력을 행사하며 권위적·불법적인 행동을 많이 해서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았습니까? 이제 ‘노동귀족’은 사라질 겁니다. 경쟁하고 상생하면서 건전하고 깨끗한 노동운동을 펼쳐 나가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