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채권단이라면 비싸게 쳐주는 곳에 팔겠다”(전문경영인 A씨)
“M&A는 물건을 사는 것과 똑같다. 가격이 맞고, 내가 가진 사업과 시너지 효과가 크면 사는 거다. 자기 힘에 부치는 회사를 高價에 사고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외국계 금융회사 관계자)
⊙ 매각은 명분보다 경제논리로 풀어야
⊙ 내부 자금으로 인수에 나선 정몽구 vs 독일 건설 회사 앞세운 현정은
⊙ M&A 성공 현대차와 의지 충만 현대그룹의 전면전
“M&A는 물건을 사는 것과 똑같다. 가격이 맞고, 내가 가진 사업과 시너지 효과가 크면 사는 거다. 자기 힘에 부치는 회사를 高價에 사고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외국계 금융회사 관계자)
⊙ 매각은 명분보다 경제논리로 풀어야
⊙ 내부 자금으로 인수에 나선 정몽구 vs 독일 건설 회사 앞세운 현정은
⊙ M&A 성공 현대차와 의지 충만 현대그룹의 전면전
- 현대그룹은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이 재개될 경우, 현대건설이 북한 사회간접자본개발을 할 수 있다”며 시너지효과를 주장했다.
채권단이 현대건설을 매각기로 하면서 이 회사의 주인이 누가 될까에 재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현재 이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은 정몽구(鄭夢九)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과 현정은(玄貞恩) 회장의 현대그룹이다.
두 그룹이 모두 ‘현대’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회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같은 데서 가져가겠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는 시선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회사는 모태(母胎)만 같을 뿐, 지난 10년 동안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0년, 고(故) 정주영(鄭周永) 현대 창업주로부터 자동차 관련 회사를 갖고 독립했다. 그의 그룹에는 현대차, 기아차, 자동차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 철강회사인 현대제철, 금융회사 현대캐피탈 등이 있다.
현정은 회장은 남편인 고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맡았던 회사를 그의 사후(死後)부터 맡아 경영하고 있다.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대북(對北) 사업권을 가진 현대아산 등이다.
현대, 계열분리 이후 이름 공유
이들 두 그룹은 정씨 ‘일가’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사업적인 측면에서 교집합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혼동이 빚어지는 이유는 우리 재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한 우리 경제는 ‘재벌’이라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공룡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삼성, 현대, LG, SK 등이다. 하지만 창업주에서 2, 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그룹은 형제, 또는 자녀들에게 쪼개졌다. 2, 3세 경영인에 따라 누구는 흥했고, 누구는 망했다.
삼성은 한솔(고 이병철 회장의 맏딸 소유), 삼성(고 이 회장의 3남), 신세계(고 이 회장의 3녀), CJ(고 이 회장의 손주) 등 각자 다른 이름으로 분리했다. ‘삼성’이라는 이름을 공유하지 않는다. LG그룹은 LS(고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 GS(고 구 회장의 사돈) 등으로 분리됐다.
하지만 현대는 다르다. 계열분리를 끝냈지만,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현대그룹 등 ‘현대’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 회사의 이름만 봐서는 ‘패밀리’가 주는 강한 느낌을 버릴 수 없다. 현대건설의 매각을 두고 ‘집안 싸움’이라는 타이틀이 자주 붙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현대 연고권은 우리나라만의 특수성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현대건설에 대해 각자 ‘주도권’을 주장하기는 무리가 있다.
S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현대건설의 매각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회사를 인수하겠다면서 우리가 ‘적통이다, 아니다’ 하는 식(式)으로 명분을 내세웁니다. 현대건설은 수많은 M&A 물건 중 하나일 뿐입니다. 여유자금이 있고, 자신의 회사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하면 누구든지 인수에 나설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현대건설에는 국민의 혈세인 공적(公的) 자금이 들어갔습니다.
‘원래 내 것이었다’거나 ‘집안의 어른으로서 가져가겠다’는 등의 논리는 핵심과 무관합니다. 경제 논리와는 상관없는 감상적인 얘기죠. 우리나라 최고의 건설회사 경영권을 둘러싸고 이런 얘기들이 오가는 것은 어이가 없습니다. 우리 재계의 압축 성장으로 인한 폐해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삼성이나 SK, LG, 또는 자금 여력이 풍부한 제3의 어떤 회사가 인수해도 상관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채권단이 정식으로 매각 공고를 내고 인수의향서를 받아보니, 딱 두 군데만 참여의사를 밝혔다. 왜 그럴까. 현대건설이 매물로서 매력이 없는 것일까.
K그룹 3세 경영인의 얘기다.
“불문율 같은 겁니다. 다른 그룹이 운영했던 회사와 관련된 일은 우선 해당 그룹 사람들에게 권한을 인정해 준다는 겁니다. 대우그룹은 그룹 자체가 공중분해 되면서 원주인에 대해 논란이 없었습니다. 계열사를 매각할 때마다 관심 있는 모든 회사가 참여할 수 있었지만, 현대건설은 상황이 다릅니다.”
―시장 논리와는 많이 다른 얘긴데요.
“우리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미국은 벤처캐피탈(벤처회사들에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 발달했고, 큰 자본이 없이 아이템으로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사업에 성공한 이후에 회사를 누구에게 얼마의 가격을 받고 팔건 거부감이 없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먹튀’ 논란이 없습니다. 미국의 ‘시스코’ 경영인은 15년 동안 100여 건이 넘는 M&A를 통해 오늘날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논리가 통하겠습니까. 국내 재계의 M&A를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가격, 시너지 효과, 경영자의 비전
어찌되었건, 현대건설은 두 회사가 서로 가져가겠다고 아옹다옹하고 있다.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M&A의 핵심은 “제대로 사고,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수석의 얘기다.
“회사를 인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회사와 얼마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입니다. 시너지를 고려해 인수가격이 산정됩니다. 시너지가 높다고 판단하면 비싼 가격을 써내고, 그렇게까지 절박하지 않으면 그만큼 낮은 가격을 내는 겁니다. 결국 인수하려는 회사가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가가 중요합니다. 여기에 인수하려는 회사의 밸류에이션(Valuation·기업미래가치)이 더해져 가격을 정합니다. M&A를 할 때 흔히 있는 실수는 가격 산정을 할 때의 주위 환경입니다. 가령 시장 상황이 아주 좋거나 인수자의 회사가 소위 잘나갈 때, 매물의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써낼 때가 있습니다. 회사를 인수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이런 때입니다. CEO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가격을 결정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얼마나 제값에 샀고, 또 이후에 어떻게 운영하느냐 입니다.”
외국계 금융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건을 사는 것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우선 가격을 보죠. 싸면 일단 관심이 더 갑니다. 하지만 다소 예상보다 비싸더라도 내게 꼭 필요하거나, 아니면 꼭 갖고 싶으면 그 돈을 주고 삽니다. 기업 간의 M&A도 같습니다. 가격이 맞고, 내가 가진 사업과 상호 발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완전히 다른 사업군에 진출하고 싶을 때에도 M&A를 합니다. 회사를 인수한 다음에 꾸려나가야 하는 경영자의 능력도 중요 변수입니다. 자기 힘에 부치는 회사를 고가(高價)에 사고 전전긍긍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됩니다.”
현대건설 채권단이 매각하려는 지분은 전체의 34.88%다. 한국정책금융공사(공적자금) 11.12%, 외환은행 8.72%, 우리은행 7.51%, 국민은행 3.6% 외에 몇몇 금융회사가 보유한 주식이다. 지난 10월 13일 종가(終價) 7만300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지분가격은 2조8000억원 정도. 통상 경영권 프리미엄을 30% 정도 쳐준다고 가정하면,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데 약 3조7000억원이 필요하다. 경쟁이 과열되면 4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전문경영인 A씨에게 ‘당신이 채권단이라면 두 곳 중 어디에 현대건설을 넘기겠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A씨는 “비싸게 쳐주는 곳에 팔겠다”고 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얘기다.
최대주주인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유재한(柳在韓) 사장은 최근 기자들을 만나 “가격, 인수주체의 자금 조달능력과 경영비전을 따져볼 예정이다. 어쨌거나 가격이 적어도 3분의 2 이상은 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결국 ‘가격을 높게 쳐주는 곳이 최우선’이라는 얘기다.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 중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쪽이 유일한 고지를 선점할 것이다.
자금력에서는 정몽구 회장 勝
현대차그룹이 실사 이후에 채권단에 더 높은 가격을 써낼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금 동원력에 있어서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이 싸우는 격’이라고 표현한다.
지난 3월을 기준으로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약 4조원으로 추산된다. 현대차그룹의 전체 자산은 100조7000억원(지난 3월 기준)이다. 재계서열 2위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룹 내에 현금성 자산이 풍부하다. 외부에서 투자자를 참여시키지 않고 우리의 자금만으로 현대건설을 인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반면 현대그룹은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1조5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그룹의 자산은 총 12조4000억원(지난 3월 기준)으로 서열 21위다.
그룹의 규모도 규모지만, 당장 현대건설을 인수할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대그룹은 독일의 건설회사를 끌어들였다. 독일 ‘M+W’라는 그룹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독일회사가 어느 정도의 지분으로 참여할지는 아직 공개할 수 없지만 현대그룹과 함께 현대건설 인수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만약 독일의 회사가 현대그룹의 유일한 파트너라면, 이 회사는 적어도 2조원 이상을 쏟아부어야 한다. 현대그룹(1조5000억원)이 투자하는 금액보다 훨씬 많다.
현대차그룹처럼 ‘단독’으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좋으냐에 대한 정답은 없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여유자금으로만 M&A를 하면 우리나라에 회사를 매입할 수 있는 그룹은 몇 개 없다”며 “신뢰도가 높은 투자자를 끌어들여 함께 M&A에 나서는 것을 꼭 나쁘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파트너는 믿을 만한가
핵심은 ‘함께하는 투자자가 얼마나 우량한가’에 있다. 재무상태의 건전성이다.
독일의 M+W그룹은 지난해 매출 2조원(12억6000만 유로), 영업이익 1400억원(8900만 유로)을 기록했다. 그룹의 자산총액은 1조3000억원으로, 현대건설 자산(8조5000억원)의 7분의 1 수준이다.
이 회사가 얼마의 자금을 가용할 수 있는지, 혹 오너가 사재(私財)를 털어서 현대건설을 인수할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회사의 자산만 놓고 보면 현대건설을 인수할 ‘실탄’은 넉넉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회사의 오너인 조지 스툼프 회장이 ‘M+W’그룹을 사들이고 기업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재판을 받는 등 현지에서 의문스러운 이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간파해서인지, 현대그룹은 ‘명쾌한 숫자’보다는 이 회사의 ‘무형의 우량함’을 적극적으로 PR하는 모습이다.
현대그룹이 지난 10월 2일 내놓은 보도자료다.
〈M+W그룹은 첨단기술시설, 생명과학산업, 하이테크 기반시설에 관한 세계적인 건설 기업이다. 200개 이상의 반도체 공장과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했고, 임직원 수는 5000명이다. 오너인 조지 스툼프 회장은 오스트리아의 정주영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그룹은 이 회사가 ‘재무적 투자자(Financial Investor)’가 아니라 ‘전략적 투자자(Strategic Investor)’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재무적 투자자는 통상 회사의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배당금 형태의 수익을 챙길 목적으로 M&A에 나서는 투자자다. 반면 전략적 투자자는 회사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인수회사를 장기적으로 책임질 목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투자자다. 쉽게 설명해 재무적 투자자는 일정 수익이 달성되면 자금을 투입한 지 2~3년 만에도 자금을 회수한다. 전략적 투자자는 좀 더 긴 시선으로 투자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투자자들 간의 경계가 미묘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재무나 전략 투자자나 둘 다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같다. 둘의 경계가 명확지 않기 때문에 가령 전략적으로 참여한 파트너가 예상보다 빨리 투자금을 회수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파트너에 대해 얼마나 후한 점수를 줄 것이냐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채권단의 몫이다.
현대그룹이 인수해야 하는 이유
시너지 차원에서 보면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중 어디가 현대건설을 가져가는 것이 좋을까.
기업이 M&A를 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수직통합, 수평통합, 사업다각화 등을 꼽는다. 가령 건설회사끼리, 석유회사끼리 합병하는 경우는 수평통합이다. 비슷한 회사끼리 합쳐서 과다한 비용을 줄이고, 규모의 장점을 살리려는 케이스다. 수직합병은 물품의 납품회사를 인수하거나, 물품 판매처를 합병하는 등 수직 관계에 있는 회사끼리 합병하는 경우를 말한다. 자사(自社)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다른 회사보다 우위성을 확보하려는 케이스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지만 M&A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나서는 경우다. 어떤 회사가 아예 다른 분야로 진출하거나, 기존에 하던 사업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새롭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사용한다.
어떤 경우가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을까.
금융계의 관계자는 “수직통합을 위해 인수전에 뛰어든 곳과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기업인수를 시도한 곳 중 어느 편이 낫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꼭 인수해야 하는 이유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사업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대북 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다. 지금은 중단된 상태지만 언젠가 사업이 재개되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개발 사업을 할 권한이 우리에게 있다”며 “현대건설을 꼭 인수해야 하는 이유가 이 개발사업을 위해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직통합뿐 아니라,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택배 등 물류와 수송 중심의 그룹 주력사업에 건설을 포함시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해야 하는 이유
현대차그룹은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현대건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주력사업인 자동차 산업 전반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대기아차의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 전반의 성장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국의 건설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자동차 산업 이외에 신(新)수종 사업을 발굴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성장 잠재력을 회복하고 미래 성장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현대건설을 꼭 인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현대차는 이외에 기존의 사업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계열사 로템에서 해외 고속철과 철도 차량 사업을 해왔는데, 해외 공장건설 등 기존의 철도사업과 현대건설 사업을 연계할 수 있다”며 “현대차가 미래성장사업으로 육성해 온 그린사업의 핵심은 친환경 발전사업-주택용 충전시스템-친환경주택-하이브리드 및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자동차를 총망라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이 중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얘기가 많은 것은 단순히 두 그룹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서만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M&A 실패 사례로 남게 된 ‘대우건설 매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아서다.
시간을 2006년으로 되돌려보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2005년, 매출 11조1000억원, 영업이익 8200억원, 순익 5000억원을 기록했다.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재계서열 8위였다. 당시 대우건설은 시공능력평가공시액 7조원, 수주 잔액이 22조원이었다.
금호그룹은 주력 사업이었던 항공에 ‘건설’이라는 새로운 주력 사업을 키워 사업다각화를 꾀하겠다며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금호가 채권단에 써낸 금액은 6조6000억원이었다. 증권가의 애널리스트들은 대우건설의 적정금액을 3조원 플러스 알파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들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은 두 배로 껑충 뛰었다. 물론 대우건설의 향후 기업가치가 이 정도라고 판단하고, 자금력이 탄탄했다면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금호그룹은 당시 여유자금이 2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계열사에서 차입해도 1조원 정도였다. 결국 금호그룹은 재무적 투자자에게 연간 8%의 확정 배당을 약속하고 돈을 꿔야 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금호그룹은 대우건설을 다시 시장에 내놓았고, 그룹 자체가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업계에서는 ‘승자의 저주’라고 했다. ‘승자의 저주’란 M&A 시장에서 해당 기업을 인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인수주체가 흔들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리키는 경영학 용어다.
대우건설 매각의 채권은행이었던 산업은행은 여전히 이 얘기가 껄끄러운 모양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건설 매각은 투명한 과정을 통해 이뤄졌고 실패를 금호그룹의 내부적 요인에서만 찾기 어렵다”며 “해외 경기가 침체되는 등 운이 나빴다”고 했다.
인수주체인 금호그룹 관계자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나왔다.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사태의 전초가 보이는 등 불운한 부분이 없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대우건설 매각’이 이번 현대건설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의 대표적 건설회사인 대우건설에 이어 현대건설의 매각이 실패할 경우 채권단의 타격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M&A 성공시킨 경험” vs “오래전부터 준비”
현대건설의 매각이 마무리됐다고 치자.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 중에서 누가 이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수 있을까.
현대차그룹은 자신들이 M&A를 한 경험이 있고 성공시킨 경험도 있는 만큼 현대건설을 누구보다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아자동차(1997년)와 한보철강 인수(2004년)다.
오늘날 현대차그룹의 양대 축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다. 최근 기아차의 ‘K7’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기아차와 현대차가 한 지붕 아래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현대차가 인수했을 당시, 기아자동차의 경영상황은 최악이었다.
기아차는 1999년에 매출 8000억원, 순익 1800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기아차는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이후 환골탈태했다. 지난해 매출 18조4000억원, 순익 1조450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으로 편입된 지 10년 만에 매출은 23배, 순익은 8배 늘어났다.
한보철강의 경우는 매출 등 정확한 수치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현대차가 한보 당진공장을 자산 인수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현대차가 한보철강을 인수해 지역 경제에 가져다준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보철강을 인수한 이후에 매년 100개 이상의 새로운 기업이 당진에 둥지를 틀고 있고, 인구가 해마다 2000~3000명씩 유입되면서 당진군이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며 “현대제철 일관제철소의 고용 유발 효과는 1조7000억원 정도로 중소기업 매출과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 2003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현 회장 역시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숫자상으로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의 매출은 지난 2003년 5조2000억원, 영업이익 3000억원, 순익 785억원이었다. 이 그룹은 지난해 매출 9조3000억원, 영업이익 4200억원, 순익 460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그룹은 대신에 현 회장이 각종 경영권 위협에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KCC, 현대중공업 등과 경영권 싸움을 벌일 때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 회장이 그동안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오래전부터 인수 의지가 확고했던 만큼 체계적으로 준비해 왔고, 현대건설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낼 경영인이다”라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현재 현대건설에 대해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채권단은 오는 12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다음에 본 계약을 체결할 방침이다. 현대건설의 새 주인 찾기를 연내(年內)에 매듭짓겠다는 의지다.
현대건설을 둘러싼 양측의 공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누가 가져가야 옳다’는 당위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M&A의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취재지원 朴熙錫 月刊朝鮮 인턴기자 >
현재 이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은 정몽구(鄭夢九)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과 현정은(玄貞恩) 회장의 현대그룹이다.
두 그룹이 모두 ‘현대’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회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같은 데서 가져가겠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는 시선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회사는 모태(母胎)만 같을 뿐, 지난 10년 동안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0년, 고(故) 정주영(鄭周永) 현대 창업주로부터 자동차 관련 회사를 갖고 독립했다. 그의 그룹에는 현대차, 기아차, 자동차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 철강회사인 현대제철, 금융회사 현대캐피탈 등이 있다.
현정은 회장은 남편인 고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맡았던 회사를 그의 사후(死後)부터 맡아 경영하고 있다.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대북(對北) 사업권을 가진 현대아산 등이다.
현대, 계열분리 이후 이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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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그룹은 9월 27일 현대건설 인수 참여를 공식 선언하고 인수의향서(LOI)를 채권단에 제출했다. |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한 우리 경제는 ‘재벌’이라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공룡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삼성, 현대, LG, SK 등이다. 하지만 창업주에서 2, 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그룹은 형제, 또는 자녀들에게 쪼개졌다. 2, 3세 경영인에 따라 누구는 흥했고, 누구는 망했다.
삼성은 한솔(고 이병철 회장의 맏딸 소유), 삼성(고 이 회장의 3남), 신세계(고 이 회장의 3녀), CJ(고 이 회장의 손주) 등 각자 다른 이름으로 분리했다. ‘삼성’이라는 이름을 공유하지 않는다. LG그룹은 LS(고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 GS(고 구 회장의 사돈) 등으로 분리됐다.
하지만 현대는 다르다. 계열분리를 끝냈지만,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현대그룹 등 ‘현대’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 회사의 이름만 봐서는 ‘패밀리’가 주는 강한 느낌을 버릴 수 없다. 현대건설의 매각을 두고 ‘집안 싸움’이라는 타이틀이 자주 붙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현대 연고권은 우리나라만의 특수성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현대건설에 대해 각자 ‘주도권’을 주장하기는 무리가 있다.
S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현대건설의 매각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회사를 인수하겠다면서 우리가 ‘적통이다, 아니다’ 하는 식(式)으로 명분을 내세웁니다. 현대건설은 수많은 M&A 물건 중 하나일 뿐입니다. 여유자금이 있고, 자신의 회사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하면 누구든지 인수에 나설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현대건설에는 국민의 혈세인 공적(公的) 자금이 들어갔습니다.
‘원래 내 것이었다’거나 ‘집안의 어른으로서 가져가겠다’는 등의 논리는 핵심과 무관합니다. 경제 논리와는 상관없는 감상적인 얘기죠. 우리나라 최고의 건설회사 경영권을 둘러싸고 이런 얘기들이 오가는 것은 어이가 없습니다. 우리 재계의 압축 성장으로 인한 폐해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삼성이나 SK, LG, 또는 자금 여력이 풍부한 제3의 어떤 회사가 인수해도 상관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채권단이 정식으로 매각 공고를 내고 인수의향서를 받아보니, 딱 두 군데만 참여의사를 밝혔다. 왜 그럴까. 현대건설이 매물로서 매력이 없는 것일까.
K그룹 3세 경영인의 얘기다.
“불문율 같은 겁니다. 다른 그룹이 운영했던 회사와 관련된 일은 우선 해당 그룹 사람들에게 권한을 인정해 준다는 겁니다. 대우그룹은 그룹 자체가 공중분해 되면서 원주인에 대해 논란이 없었습니다. 계열사를 매각할 때마다 관심 있는 모든 회사가 참여할 수 있었지만, 현대건설은 상황이 다릅니다.”
―시장 논리와는 많이 다른 얘긴데요.
“우리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미국은 벤처캐피탈(벤처회사들에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 발달했고, 큰 자본이 없이 아이템으로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사업에 성공한 이후에 회사를 누구에게 얼마의 가격을 받고 팔건 거부감이 없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먹튀’ 논란이 없습니다. 미국의 ‘시스코’ 경영인은 15년 동안 100여 건이 넘는 M&A를 통해 오늘날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논리가 통하겠습니까. 국내 재계의 M&A를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가격, 시너지 효과, 경영자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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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한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은 매각대상자 선정조건으로 ‘가격’을 꼽았다. |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M&A의 핵심은 “제대로 사고,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수석의 얘기다.
“회사를 인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회사와 얼마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입니다. 시너지를 고려해 인수가격이 산정됩니다. 시너지가 높다고 판단하면 비싼 가격을 써내고, 그렇게까지 절박하지 않으면 그만큼 낮은 가격을 내는 겁니다. 결국 인수하려는 회사가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가가 중요합니다. 여기에 인수하려는 회사의 밸류에이션(Valuation·기업미래가치)이 더해져 가격을 정합니다. M&A를 할 때 흔히 있는 실수는 가격 산정을 할 때의 주위 환경입니다. 가령 시장 상황이 아주 좋거나 인수자의 회사가 소위 잘나갈 때, 매물의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써낼 때가 있습니다. 회사를 인수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이런 때입니다. CEO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가격을 결정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얼마나 제값에 샀고, 또 이후에 어떻게 운영하느냐 입니다.”
외국계 금융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건을 사는 것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우선 가격을 보죠. 싸면 일단 관심이 더 갑니다. 하지만 다소 예상보다 비싸더라도 내게 꼭 필요하거나, 아니면 꼭 갖고 싶으면 그 돈을 주고 삽니다. 기업 간의 M&A도 같습니다. 가격이 맞고, 내가 가진 사업과 상호 발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완전히 다른 사업군에 진출하고 싶을 때에도 M&A를 합니다. 회사를 인수한 다음에 꾸려나가야 하는 경영자의 능력도 중요 변수입니다. 자기 힘에 부치는 회사를 고가(高價)에 사고 전전긍긍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됩니다.”
현대건설 채권단이 매각하려는 지분은 전체의 34.88%다. 한국정책금융공사(공적자금) 11.12%, 외환은행 8.72%, 우리은행 7.51%, 국민은행 3.6% 외에 몇몇 금융회사가 보유한 주식이다. 지난 10월 13일 종가(終價) 7만300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지분가격은 2조8000억원 정도. 통상 경영권 프리미엄을 30% 정도 쳐준다고 가정하면,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데 약 3조7000억원이 필요하다. 경쟁이 과열되면 4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전문경영인 A씨에게 ‘당신이 채권단이라면 두 곳 중 어디에 현대건설을 넘기겠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A씨는 “비싸게 쳐주는 곳에 팔겠다”고 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얘기다.
최대주주인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유재한(柳在韓) 사장은 최근 기자들을 만나 “가격, 인수주체의 자금 조달능력과 경영비전을 따져볼 예정이다. 어쨌거나 가격이 적어도 3분의 2 이상은 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결국 ‘가격을 높게 쳐주는 곳이 최우선’이라는 얘기다.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 중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쪽이 유일한 고지를 선점할 것이다.
자금력에서는 정몽구 회장 勝
현대차그룹이 실사 이후에 채권단에 더 높은 가격을 써낼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금 동원력에 있어서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이 싸우는 격’이라고 표현한다.
지난 3월을 기준으로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약 4조원으로 추산된다. 현대차그룹의 전체 자산은 100조7000억원(지난 3월 기준)이다. 재계서열 2위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룹 내에 현금성 자산이 풍부하다. 외부에서 투자자를 참여시키지 않고 우리의 자금만으로 현대건설을 인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반면 현대그룹은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1조5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그룹의 자산은 총 12조4000억원(지난 3월 기준)으로 서열 21위다.
그룹의 규모도 규모지만, 당장 현대건설을 인수할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대그룹은 독일의 건설회사를 끌어들였다. 독일 ‘M+W’라는 그룹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독일회사가 어느 정도의 지분으로 참여할지는 아직 공개할 수 없지만 현대그룹과 함께 현대건설 인수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만약 독일의 회사가 현대그룹의 유일한 파트너라면, 이 회사는 적어도 2조원 이상을 쏟아부어야 한다. 현대그룹(1조5000억원)이 투자하는 금액보다 훨씬 많다.
현대차그룹처럼 ‘단독’으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좋으냐에 대한 정답은 없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여유자금으로만 M&A를 하면 우리나라에 회사를 매입할 수 있는 그룹은 몇 개 없다”며 “신뢰도가 높은 투자자를 끌어들여 함께 M&A에 나서는 것을 꼭 나쁘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파트너는 믿을 만한가
핵심은 ‘함께하는 투자자가 얼마나 우량한가’에 있다. 재무상태의 건전성이다.
독일의 M+W그룹은 지난해 매출 2조원(12억6000만 유로), 영업이익 1400억원(8900만 유로)을 기록했다. 그룹의 자산총액은 1조3000억원으로, 현대건설 자산(8조5000억원)의 7분의 1 수준이다.
이 회사가 얼마의 자금을 가용할 수 있는지, 혹 오너가 사재(私財)를 털어서 현대건설을 인수할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회사의 자산만 놓고 보면 현대건설을 인수할 ‘실탄’은 넉넉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회사의 오너인 조지 스툼프 회장이 ‘M+W’그룹을 사들이고 기업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재판을 받는 등 현지에서 의문스러운 이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간파해서인지, 현대그룹은 ‘명쾌한 숫자’보다는 이 회사의 ‘무형의 우량함’을 적극적으로 PR하는 모습이다.
현대그룹이 지난 10월 2일 내놓은 보도자료다.
〈M+W그룹은 첨단기술시설, 생명과학산업, 하이테크 기반시설에 관한 세계적인 건설 기업이다. 200개 이상의 반도체 공장과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했고, 임직원 수는 5000명이다. 오너인 조지 스툼프 회장은 오스트리아의 정주영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그룹은 이 회사가 ‘재무적 투자자(Financial Investor)’가 아니라 ‘전략적 투자자(Strategic Investor)’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재무적 투자자는 통상 회사의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배당금 형태의 수익을 챙길 목적으로 M&A에 나서는 투자자다. 반면 전략적 투자자는 회사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인수회사를 장기적으로 책임질 목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투자자다. 쉽게 설명해 재무적 투자자는 일정 수익이 달성되면 자금을 투입한 지 2~3년 만에도 자금을 회수한다. 전략적 투자자는 좀 더 긴 시선으로 투자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투자자들 간의 경계가 미묘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재무나 전략 투자자나 둘 다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같다. 둘의 경계가 명확지 않기 때문에 가령 전략적으로 참여한 파트너가 예상보다 빨리 투자금을 회수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파트너에 대해 얼마나 후한 점수를 줄 것이냐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채권단의 몫이다.
현대그룹이 인수해야 하는 이유
시너지 차원에서 보면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중 어디가 현대건설을 가져가는 것이 좋을까. 기업이 M&A를 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수직통합, 수평통합, 사업다각화 등을 꼽는다. 가령 건설회사끼리, 석유회사끼리 합병하는 경우는 수평통합이다. 비슷한 회사끼리 합쳐서 과다한 비용을 줄이고, 규모의 장점을 살리려는 케이스다. 수직합병은 물품의 납품회사를 인수하거나, 물품 판매처를 합병하는 등 수직 관계에 있는 회사끼리 합병하는 경우를 말한다. 자사(自社)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다른 회사보다 우위성을 확보하려는 케이스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지만 M&A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나서는 경우다. 어떤 회사가 아예 다른 분야로 진출하거나, 기존에 하던 사업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새롭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사용한다.
어떤 경우가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을까.
금융계의 관계자는 “수직통합을 위해 인수전에 뛰어든 곳과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기업인수를 시도한 곳 중 어느 편이 낫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꼭 인수해야 하는 이유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사업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대북 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다. 지금은 중단된 상태지만 언젠가 사업이 재개되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개발 사업을 할 권한이 우리에게 있다”며 “현대건설을 꼭 인수해야 하는 이유가 이 개발사업을 위해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직통합뿐 아니라,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택배 등 물류와 수송 중심의 그룹 주력사업에 건설을 포함시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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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 실패사례로 남게 된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
현대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대기아차의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 전반의 성장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국의 건설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자동차 산업 이외에 신(新)수종 사업을 발굴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성장 잠재력을 회복하고 미래 성장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현대건설을 꼭 인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현대차는 이외에 기존의 사업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계열사 로템에서 해외 고속철과 철도 차량 사업을 해왔는데, 해외 공장건설 등 기존의 철도사업과 현대건설 사업을 연계할 수 있다”며 “현대차가 미래성장사업으로 육성해 온 그린사업의 핵심은 친환경 발전사업-주택용 충전시스템-친환경주택-하이브리드 및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자동차를 총망라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이 중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얘기가 많은 것은 단순히 두 그룹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서만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M&A 실패 사례로 남게 된 ‘대우건설 매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아서다.
시간을 2006년으로 되돌려보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2005년, 매출 11조1000억원, 영업이익 8200억원, 순익 5000억원을 기록했다.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재계서열 8위였다. 당시 대우건설은 시공능력평가공시액 7조원, 수주 잔액이 22조원이었다.
금호그룹은 주력 사업이었던 항공에 ‘건설’이라는 새로운 주력 사업을 키워 사업다각화를 꾀하겠다며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금호가 채권단에 써낸 금액은 6조6000억원이었다. 증권가의 애널리스트들은 대우건설의 적정금액을 3조원 플러스 알파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들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은 두 배로 껑충 뛰었다. 물론 대우건설의 향후 기업가치가 이 정도라고 판단하고, 자금력이 탄탄했다면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금호그룹은 당시 여유자금이 2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계열사에서 차입해도 1조원 정도였다. 결국 금호그룹은 재무적 투자자에게 연간 8%의 확정 배당을 약속하고 돈을 꿔야 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금호그룹은 대우건설을 다시 시장에 내놓았고, 그룹 자체가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업계에서는 ‘승자의 저주’라고 했다. ‘승자의 저주’란 M&A 시장에서 해당 기업을 인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인수주체가 흔들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리키는 경영학 용어다.
대우건설 매각의 채권은행이었던 산업은행은 여전히 이 얘기가 껄끄러운 모양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건설 매각은 투명한 과정을 통해 이뤄졌고 실패를 금호그룹의 내부적 요인에서만 찾기 어렵다”며 “해외 경기가 침체되는 등 운이 나빴다”고 했다.
인수주체인 금호그룹 관계자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나왔다.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사태의 전초가 보이는 등 불운한 부분이 없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대우건설 매각’이 이번 현대건설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의 대표적 건설회사인 대우건설에 이어 현대건설의 매각이 실패할 경우 채권단의 타격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M&A 성공시킨 경험” vs “오래전부터 준비”
현대건설의 매각이 마무리됐다고 치자.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 중에서 누가 이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수 있을까.
현대차그룹은 자신들이 M&A를 한 경험이 있고 성공시킨 경험도 있는 만큼 현대건설을 누구보다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아자동차(1997년)와 한보철강 인수(2004년)다.
오늘날 현대차그룹의 양대 축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다. 최근 기아차의 ‘K7’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기아차와 현대차가 한 지붕 아래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현대차가 인수했을 당시, 기아자동차의 경영상황은 최악이었다.
기아차는 1999년에 매출 8000억원, 순익 1800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기아차는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이후 환골탈태했다. 지난해 매출 18조4000억원, 순익 1조450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으로 편입된 지 10년 만에 매출은 23배, 순익은 8배 늘어났다.
한보철강의 경우는 매출 등 정확한 수치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현대차가 한보 당진공장을 자산 인수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현대차가 한보철강을 인수해 지역 경제에 가져다준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보철강을 인수한 이후에 매년 100개 이상의 새로운 기업이 당진에 둥지를 틀고 있고, 인구가 해마다 2000~3000명씩 유입되면서 당진군이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며 “현대제철 일관제철소의 고용 유발 효과는 1조7000억원 정도로 중소기업 매출과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 2003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현 회장 역시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숫자상으로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의 매출은 지난 2003년 5조2000억원, 영업이익 3000억원, 순익 785억원이었다. 이 그룹은 지난해 매출 9조3000억원, 영업이익 4200억원, 순익 460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그룹은 대신에 현 회장이 각종 경영권 위협에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KCC, 현대중공업 등과 경영권 싸움을 벌일 때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 회장이 그동안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오래전부터 인수 의지가 확고했던 만큼 체계적으로 준비해 왔고, 현대건설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낼 경영인이다”라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현재 현대건설에 대해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채권단은 오는 12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다음에 본 계약을 체결할 방침이다. 현대건설의 새 주인 찾기를 연내(年內)에 매듭짓겠다는 의지다.
현대건설을 둘러싼 양측의 공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누가 가져가야 옳다’는 당위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M&A의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취재지원 朴熙錫 月刊朝鮮 인턴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