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정권 때는 정부가 기업을 밀어주진 않았지만 괴롭히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기업이 봉’이에요. 투자해라 이전해라 하면서 정책 만들 땐 서민 위한다고 기업 입장은 도외시하고…”(익명의 기업인)
⊙ 공정위, LPG업체에 6689억원의 과징금 폭탄 투하
⊙ 기업 세무조사 줄어들기는커녕 전년 대비 200건 늘어
⊙ 복수노조 허용,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폐지, 대체휴무제, 예대율 규제 등 연이은 反기업
정책에 기업인들 허탈
⊙ 공정위, LPG업체에 6689억원의 과징금 폭탄 투하
⊙ 기업 세무조사 줄어들기는커녕 전년 대비 200건 늘어
⊙ 복수노조 허용,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폐지, 대체휴무제, 예대율 규제 등 연이은 反기업
정책에 기업인들 허탈
-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6개 LPG업체에 담합을 이유로 6689억원의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했다.
2009년 12월 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매가격을 담합해 온 6개 LPG업체(E1, SK가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에 6689억원이라는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국내 과징금 사상 최대 규모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애초 과징금 산정액은 무려 1조3000억원이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디스카운트된 금액이 이 정도라고 한다.
189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E1 측은 “담합한 사실도 없는데 공정위가 일부 업체의 말만 듣고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행정소송에 나설 예정임을 밝혔다. ‘일부 업체’란 리니언시(자진신고 시 과징금 경감) 제도를 이용해 자진신고, 과징금을 경감받은 SK가스와 SK에너지를 말한다. 두 회사를 제외한 4개 사는 수백억~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공정위의 ‘과도한 과징금 부과’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2009년 들어 음료업체 가격담합(255억원), 신용평가사 수수료 담합(42억원), 침대업체 가격담합(52억원), 소주업체(2263억원) 등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또는 통보했다.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부과한 과징금 부과총액(1조108억원)보다 2009년 한 해 부과된 과징금이 더 많을 정도다.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도 대폭 늘어났다. 국세청은 2009년 하반기 발표한 ‘2009년 법인세 정기조사 대상 선정방향’을 통해 2009년 세무조사 대상이 2900곳이라고 밝혔다. 2008년 조사 대상 기업 수(2700곳)보다 200곳 늘어난 수치다.
2009년 세무조사 대상 기업은 전체(39만1000곳)의 0.7%. 국세청은 세무조사 선정비율을 2005년(1.2%) 이후 매년 0.1~0.2%포인트씩 선정비율을 줄여왔으나, 2009년에는 전년(2008년 0.7%) 수준으로 동결했다. 2009년 들어 정부가 감세정책을 펼치면서 稅收(세수)가 줄어들자 국세청이 기업을 대상으로 세수 확대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09년 11월 20일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을 비롯한 재계 인사들은 白容鎬(백용호) 국세청장과 간담회를 갖고 “대기업 세무조사 주기를 4년에서 5년으로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백 청장은 “주기를 당장 바꾸기는 어렵고, 4년 주기가 기업에도 유리할 것”이라면서 재계 요구를 거절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세무조사 대상을 늘린 것에 대해 ‘정부의 (감세)정책 실패 책임을 기업에 돌리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이 제기됐다”면서 “세무조사 주기를 늘려 달라는 제안이 단칼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고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기업투자지원 제도 폐지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기업들의 투자 마인드 제고를 위해 2008년 1월부터 시행된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를 2010년 1월 1일부터 폐지키로 한 것도 기업들의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분야의 투자금액 중 일부(3~10%)를 법인세나 소득세에서 공제하여 기업 투자를 촉진시키는 제도다.
이 제도가 전면 폐지됨으로써 기업들은 투자에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최근 전경련 조사 결과 600대 기업의 58%가 이 제도 폐지 시 투자를 줄이거나 재고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재계는 정부에 이 제도의 폐지를 유예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정부는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였다는 원칙을 내세워 거부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는 법인세율을 축소한다고 생색내고 있지만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가 폐지되면 법인세 인하는 사실 소용이 없다”며 “법인세 명목세율을 인하해 봤자 직접적인 투자유인책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최저한세율(각종 공제·감면으로 기업이 납부할 세금이 지나치게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율)을 내려주거나 투자활동에 대한 세액공제를 해 줘야 기업 투자의욕이 촉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12월 14일에는 경제5단체 부회장단이 여당을 항의 방문, 한나라당이 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의 백지화를 요구했다.
이 개정안은 ‘통상적인 노동조합 관리업무’를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 대상에 새롭게 포함시켰다.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노조원들은 본연의 업무를 하지 않고 노조관리 활동만 하면서도 타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金基文(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에 대해 “여당의 노조법 개정안은 기업하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항의 방문은 단지 노조법 때문만은 아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 여당이 끊임없이 기업들에 협조를 요구하면서도 親(친)기업정책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불만이 재계에 널리 퍼져 있다”며 “이번 노조법 개정은 다분히 몇 개월 후의 지방선거를 의식한 처사로, 이토록 일방적으로 기업에 희생만을 요구하면 재계가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이상 ‘비즈니스 프렌들리’ 하지 않는 MB 정부
재계가 흔들리고 있다. 현 정권이 더 이상 ‘비즈니스 프렌들리’하지 않다는 사인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정부가 기업을 단지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팽배해 있다.
취재 중 만난 기업인들에게 “현 정부의 정책 중 구체적으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2010년부터 실시될 복수노조 허용을 근간으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폐지를 기업 활동의 가장 큰 부담으로 꼽았다.
이 밖에도 대체휴무제(공휴일이 주말일 경우 익일 휴무하는 제도) 도입, 대기업의 SSM(기업형 수퍼마켓) 진출을 막기 위해 사업조정제를 활용, 강제조정한 것도 대표적인 反(반)기업 정책으로 손꼽힌다. 국토해양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사업에 적용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입찰 시 대기업 간 컨소시엄 금지 조항에 대해서도 불만이 강했다.
이 밖에 預貸率(예대율: 예금잔액에 대한 대출금잔액 비율) 규제 부활 추진, 전자세금계산서 제도 도입 등에 불만을 표시했다.
예대율 규제를 부활시키면 은행들이 수신유지 비율을 높이기 위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자금줄을 옥죄게 되어 중소기업인의 자금 사정 악화가 불가피하다. 또 전자세금계산서를 도입할 경우 중소기업은 초기비용 부담도 크지만 대기업에 비해 ‘을’의 입장인 중소기업이 부당한 납세협력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것.
2009년 11월 17일, 鄭雲燦(정운찬) 국무총리가 서울롯데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全經聯) 회장단 모임에 참석했다.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세종市(시)의 기업도시화에 기업들이 적극 참여할 것을 요청하며 ‘세종시 세일즈’에 나섰다.
정 총리는 “세종시로 오는 대기업에 低價(저가)로 토지를 공급하고 자유롭게 토지를 개발토록 허용하며, 첨단 중소기업을 위해 최저가 분양 등의 방안을 검토중”이라면서 “稅制(세제) 감면과 보조금 지원, 규제 완화 등 각종 우대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경련 측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참여의향을 조사하겠다”고 했고, 鄭夢九(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공식적인 제안이 오면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 삼성, 두산, 한화그룹 등도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실제 분위기는 달랐다. 이날 참석했던 한 기업인은 “사실상 기업들에 세종시로 가라는 ‘압박’을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아직 ‘권고’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세종시 기업도시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각 기업을 상대로 구체적인 압박이 들어올 것이 분명하다”고 털어놨다.
기업들 세종시로 등 떠밀기
언론에서도 이날 정 총리의 발언은 現(현) 정권의 경제정책 기조인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 親기업)’와 상반되는 ‘기업 등 떠밀기’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金尙祚(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정부가 개발독재 시대처럼 기업에 채찍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도 즉각 공격에 나섰다. 李康來(이강래) 원내대표는 “官治(관치)경제를 혐오한다던 정 총리가 전경련에서 新(신)관치경제를 앞장서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재벌 총수들을 모아 세종시로 가라고 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사실 ‘고려해 보겠다’는 것은 완곡한 거절의 표시 아니냐”며 “정부가 세제 감면이니 보조금 지원이니 규제완화 같은 친기업 정책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은 거의 없는 만큼, 세종시에 대한 총리 약속도 솔직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 社內(사내)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내부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정부가 설사 엄청난 ‘세종시 특혜’를 준다 한들 이미 예정된 투자계획을 수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롯데그룹이 세종시에 맥주공장을 설립한다고 보도됨에 따라 원래 설립지로 유력했던 경북 김천의 자치단체 및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롯데가 골치를 앓고 있다. 삼성전기가 애초 계획했던 부산공장 증설계획을 취소하고 세종시로 갈 것이라는 설이 나돌면서 부산시가 벌컥 뒤집히기도 했다. 본사든 일부 계열사든 세종시로 옮긴다면 사내 반발은 물론 지역과 관련단체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기업인은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라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우리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투자하라고 요구만 했지, 기업을 위해 해 준 일이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기업을 위해 해 준 게 없으면 투자하라고 들들 볶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취재 중 만난 기업인들은 ‘비즈니스 프렌들리’ 측면에서 현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정부가 최근 ‘친서민 中道(중도) 실용’ 쪽으로 돌아선 데 대해 반감이 컸다.
金正浩(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하고 있지만 시장친화적이라고 말하기는 미흡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가의 경제정책 전반을 맡고 있는 경제 관련 부처가 시장친화적인 정책에 적극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자유기업원이 평가한 현 정부 정책의 시장친화성은 10점 만점에 6.41점으로 ‘보통을 약간 웃도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도 反시장적 법안 다수 발의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국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 자유기업원의 주장이다. 김 원장은 “2008년에는 의원들이 시장친화적 법안들을 많이 통과시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부분이 희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정부와 여당이 ‘친서민 중도실용정책’을 표방하면서 국회마저 반시장적 법안들을 다수 발의하고 가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과 경총 등 경제단체들도 지속적으로 정부에 실망스럽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趙錫來(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조 회장은 2009년 7월 제주도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에서 “정치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만든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기업이 투자하지 못하는 것은 싸움만 일삼는 정치권과 강성노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조 회장은 2009년 11월 17일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세일즈’를 하는 자리에서도 “기업은 정부가 채찍질한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며 “세종시가 어떻게 지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투자를 섣불리 약속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대통령과 사돈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잇단 쓴소리에 나서고 있는 것은 재계 불만이 심각할 정도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李秀永(이수영) 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반기업적이고 불합리한 규제가 철폐돼야 하는데, 새 정부 들어 반기업적 규제가 많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체감도가 낮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기업인 출신의 대통령과 기업이 왜 이처럼 험악한 사이가 됐을까.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조석래 전경련 회장 겸 효성그룹 회장, 李健熙(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金升淵(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具本茂(구본무) LG그룹 회장, 崔泰源(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 20여 명과 마주앉았다.
李慶淑(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 司空壹(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장, 姜萬洙(강만수) 경제1분과위원회 간사, 崔炅煥(최경환) 경제2분과위 간사, 李漢久(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등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 브레인’들도 모두 참석했다.
화기애애했던 2년 전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당선자와 공식적인 간담회를 가진 단체는 전경련이 처음이었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은 각각 비자금 사건과 폭행사건 등의 사유로 참석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당선자가 나서서 직접 참석을 독려할 만큼 당선자가 재계 총수들과 회동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이 당선자는 당선 후 첫 방문처로 전경련을 찾은 이유에 대해 “새 정부가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기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전하고, 온 국민이 바라는 일자리 창출에 기업이 적극 협력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선자는 이 자리에서 ▲준법정신을 근본으로 새로운 노사문화 창출 ▲부동산 값 급등 방지 ▲기업과 정부의 정기적 만남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규제 완화 등을 약속했다.
또 이 당선자는 “차기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만들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고, “정부는 기업투자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많이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조석래 회장도 “우리 경제계는 경제대통령의 탄생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새 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해 우리나라 선진화를 앞당기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이 당선자는 또 재계 총수들에게 “언제든 애로사항이 있으면 직접 전화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에 나타난 이날 간담회 분위기는 시종일관 훈훈했고, 당선자와 그룹 총수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참석자들은 언론을 향해 “지난 10년 동안 힘들었지만 이제 희망이 생길 것으로 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기업과 재벌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던 노 전 대통령은 전경련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따라서 대기업 총수들은 이명박 당선자와의 만남에 큰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선 직후부터 기업·기업인 우대정책도 잇따랐다. 중소기업인들이 인천공항 귀빈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처한 데 이어, 전남 영암 대불공단의 전봇대도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며 즉시 제거조치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기업인 핫라인’도 개통했다. 대통령은 2008년 3월 대기업과 중소기업, 경제연구소, 경제단체 등을 선별해 CEO와 단체장 등 102명에게 ‘청와대 핫라인(hot line: 직통전화)’의 번호를 알려줬다. 5월에는 외국기업 6곳을 선정해 핫라인에 추가시켰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은 핫라인용 전화를 새로 개설해 이들 108명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24시간 늘 소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MB폰’의 등장이다.
그러나 핫라인은 개통 몇 개월 만에 무용지물이 됐다. MB폰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기업인과 협회에 핫라인 이용 현황을 문의했지만 대부분 대답을 회피했다. 어렵게 한 중소기업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MB폰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습니다.”
―왜 한 번도 안 쓰신 겁니까? 혹시 핫라인 사용 조건이 까다로워서 사용하지 않았나요.
“보안 유지, 과시용 및 청탁용 전화 금지, 음주 후 전화 금지 등의 조건이 있었어요. 뭐 그런게 문제가 돼서는 아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분에게 전화한다는 게 꺼려지더군요. 대통령이 직접 받으실지도 알 수 없고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처럼 대통령과 직접 통화해서 만났다는 분도 있던데요.
“경기도 안 좋고 우리 업계의 여러 가지 관련법이 바뀌면서 정말 전화기를 들고 싶은 때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에 어려움이 생겼던 적도 있고요. 그때는 설마 대통령이 이런 문제까지 경청해 줄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요즘은 정부가 ‘기업인 우대’보다는 서민 위주의 중도실용 정책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욱 핫라인에서 손이 멀어질 수밖에 없지요. 정부와 ‘거리감’이 더 커졌다고나 할까요. 2008년까지는 그나마 전화를 걸어 봤다는 사람을 봤는데, 2009년에는 그런 이야기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다른 기업인들도 정부와 거리감을 느끼고 있습니까.
“2008년까지만 해도 친기업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컸는데, 요즘은 아예 정부 정책에 귀를 닫고 삽니다. 현실성 없는 정책만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중소기업이 세종시로 가면 밀어주겠다는데, 영세한 중소기업이 어떻게 세종시로 갑니까.”
MB정부의 親기업 정책, 지금은?
2008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民官(민관) 합동회의’에서 재벌총수 등 기업인들은 건의사항을 쏟아냈다. 4대그룹 총수들을 비롯한 기업인들은 연구개발 세액공제 확대, 수도권 내 연구개발 시설 신설, IT산업 정부 투자, 중소기업 전용펀드 마련, 관광산업 활성화 등을 요청했고,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이 총출동해 기업인들의 요청을 경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업들은 정부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이때 대통령이 언급한 사항을 포함해 대통령이 정권 초기 기업인들에게 한 약속을 보면 ▲준법정신을 근본으로 새로운 노사문화 창출 ▲기업과 정부의 정기적 만남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규제 완화 ▲국가안보 강화로 정치 안정 및 정책 일관성 유지 ▲적정 수준 금리 유지 등이다.
이 밖에 ‘MB노믹스’의 큰 틀은 인수위에서 마련한 ‘20대 국정전략, 100대 국정과제’에 나타나 있다. 100대 국정과제 중 산업계 전반과 관련된 사항은 10개(21~30번)로, <표1>과 같다.
이런 정부의 약속은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지켜졌을까. ‘相生(상생)하는 노사문화’와 ‘외국인이 투자하고 싶은 나라’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은 앞서 전경련 조석래 회장이 언급했다. 규제 선진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전경련이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규제개혁 만족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 ‘만족’은 49%로 절반에 못 미쳤다. ‘정치 안정과 정책 일관성 유지’도 광우병 사태와 최근의 중도실용 정책 표방으로 미뤄볼 때 이뤄지지 못했다.
이 같은 정책들로 재계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중, 재계의 불만이 폭발직전에 이른 것은 2009년 8월 15일 청와대가 ‘중도 실용’ 노선을 표방하면서부터다. 대한상의의 한 관계자는 “기업인들이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前(전) 정권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정부가 공식적으로 중도 실용을 표방한 것은 솔직히 ‘쇼크’였다”고 귀띔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은 것도 이 시점이다.
그러나 조 회장처럼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해 줄 기업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직원 200여 명 규모의 중견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기업인을 찾아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밀월-기대-실망-분노-체념
―기업인들이 왜 MB 정부의 중도실용 노선에 실망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까.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했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서 뽑은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친서민 중도실용이라니요. 이건 전형적인 포퓰리즘 아닙니까.”
―친서민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만 기업인에게 가장 어려운 게 고용문제잖아요. 기업들이 국내에 선뜻 투자 못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전투적 노조와 비싼 인건비 부담 때문입니다. 친서민정책이라면서 복수노조 허용하고, 대체휴무까지 실시한다니 사람 쓰기가 겁날 지경이에요. 기업들에는 투자하라고 종용하면서 이런 정책을 내놓으니 기업 할 의욕이 나질 않아요.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물 건너간 거죠.”
―정부는 대표적인 친기업 정책으로 ‘규제 완화’를 들고 있습니다.
“사실 규제 때문에 투자 안 하고 기업 안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윤이 날 것 같으면 시키지 않아도 투자하는 게 기업입니다. 규제 운운할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투자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정부의 할 일 아닙니까.”
취재를 진행하며 재계의 정부를 향한 2년간의 감정을 시간 순으로 살펴보니 밀월-기대-실망-분노-체념 순으로 보였다. 당선 직후 밀월관계를 맺다가 취임 직후 높은 기대감을 가졌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제정책에 실망했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중도실용을 표방하면서 실망이 분노로 나타났으며, 세종시 문제로 半(반)체념 상태에 이른 것이다.
애초부터 정부와 재계의 ‘밀월’은 없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李俊求(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
“정권 초기에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기업에 투자를 늘려 달라고 부탁했고, 기업은 규제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했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밀월관계가 조성되는 것처럼 보였지요. 하지만 대통령이 기업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순진했던 겁니다. 기업의 투자는 무조건 이윤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규제 때문이라는 말은 사실 엄살에 불과해요. 규제만 풀어 주면 기업들이 투자를 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규제가 제대로 풀리지도 않았고요. 그러다 보니 정부와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되는 겁니다.”
그는 “(정부가) 억지로 기업의 등을 떠미는 일은 아주 위험한 도박”이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하루빨리 경제를 안정시켜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도중 만난 한 기업인의 푸념이 머릿속에 남았다. “前(전) 정권 때는 정부가 기업을 밀어주진 않았지만 괴롭히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기업이 봉’이에요. 투자해라 이전해라 하면서 정책 만들 땐 서민 위한다고 기업 입장은 도외시하고…. 주변에선 요즘 기업들은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 팍팍 밀어 주니 좋지 않으냐며 빈정거리고…. 이래저래 기업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189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E1 측은 “담합한 사실도 없는데 공정위가 일부 업체의 말만 듣고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행정소송에 나설 예정임을 밝혔다. ‘일부 업체’란 리니언시(자진신고 시 과징금 경감) 제도를 이용해 자진신고, 과징금을 경감받은 SK가스와 SK에너지를 말한다. 두 회사를 제외한 4개 사는 수백억~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공정위의 ‘과도한 과징금 부과’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2009년 들어 음료업체 가격담합(255억원), 신용평가사 수수료 담합(42억원), 침대업체 가격담합(52억원), 소주업체(2263억원) 등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또는 통보했다.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부과한 과징금 부과총액(1조108억원)보다 2009년 한 해 부과된 과징금이 더 많을 정도다.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도 대폭 늘어났다. 국세청은 2009년 하반기 발표한 ‘2009년 법인세 정기조사 대상 선정방향’을 통해 2009년 세무조사 대상이 2900곳이라고 밝혔다. 2008년 조사 대상 기업 수(2700곳)보다 200곳 늘어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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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용호 국세청장은 2009년 세무조사 대상기업의 수를 대폭 늘리는 한편 기업인들의 세무조사 주기변경 요청을 거절했다. |
2009년 11월 20일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을 비롯한 재계 인사들은 白容鎬(백용호) 국세청장과 간담회를 갖고 “대기업 세무조사 주기를 4년에서 5년으로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백 청장은 “주기를 당장 바꾸기는 어렵고, 4년 주기가 기업에도 유리할 것”이라면서 재계 요구를 거절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세무조사 대상을 늘린 것에 대해 ‘정부의 (감세)정책 실패 책임을 기업에 돌리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이 제기됐다”면서 “세무조사 주기를 늘려 달라는 제안이 단칼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고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기업투자지원 제도 폐지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기업들의 투자 마인드 제고를 위해 2008년 1월부터 시행된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를 2010년 1월 1일부터 폐지키로 한 것도 기업들의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분야의 투자금액 중 일부(3~10%)를 법인세나 소득세에서 공제하여 기업 투자를 촉진시키는 제도다.
이 제도가 전면 폐지됨으로써 기업들은 투자에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최근 전경련 조사 결과 600대 기업의 58%가 이 제도 폐지 시 투자를 줄이거나 재고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재계는 정부에 이 제도의 폐지를 유예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정부는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였다는 원칙을 내세워 거부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는 법인세율을 축소한다고 생색내고 있지만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가 폐지되면 법인세 인하는 사실 소용이 없다”며 “법인세 명목세율을 인하해 봤자 직접적인 투자유인책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최저한세율(각종 공제·감면으로 기업이 납부할 세금이 지나치게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율)을 내려주거나 투자활동에 대한 세액공제를 해 줘야 기업 투자의욕이 촉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12월 14일에는 경제5단체 부회장단이 여당을 항의 방문, 한나라당이 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의 백지화를 요구했다.
이 개정안은 ‘통상적인 노동조합 관리업무’를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 대상에 새롭게 포함시켰다.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노조원들은 본연의 업무를 하지 않고 노조관리 활동만 하면서도 타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金基文(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에 대해 “여당의 노조법 개정안은 기업하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항의 방문은 단지 노조법 때문만은 아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 여당이 끊임없이 기업들에 협조를 요구하면서도 親(친)기업정책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불만이 재계에 널리 퍼져 있다”며 “이번 노조법 개정은 다분히 몇 개월 후의 지방선거를 의식한 처사로, 이토록 일방적으로 기업에 희생만을 요구하면 재계가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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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 14일 경제5단체 상근 부회장단이 한나라당을 방문, 노동법 관련 재계 측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
더 이상 ‘비즈니스 프렌들리’ 하지 않는 MB 정부
재계가 흔들리고 있다. 현 정권이 더 이상 ‘비즈니스 프렌들리’하지 않다는 사인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정부가 기업을 단지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팽배해 있다.
취재 중 만난 기업인들에게 “현 정부의 정책 중 구체적으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2010년부터 실시될 복수노조 허용을 근간으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폐지를 기업 활동의 가장 큰 부담으로 꼽았다.
이 밖에도 대체휴무제(공휴일이 주말일 경우 익일 휴무하는 제도) 도입, 대기업의 SSM(기업형 수퍼마켓) 진출을 막기 위해 사업조정제를 활용, 강제조정한 것도 대표적인 反(반)기업 정책으로 손꼽힌다. 국토해양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사업에 적용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입찰 시 대기업 간 컨소시엄 금지 조항에 대해서도 불만이 강했다.
이 밖에 預貸率(예대율: 예금잔액에 대한 대출금잔액 비율) 규제 부활 추진, 전자세금계산서 제도 도입 등에 불만을 표시했다.
예대율 규제를 부활시키면 은행들이 수신유지 비율을 높이기 위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자금줄을 옥죄게 되어 중소기업인의 자금 사정 악화가 불가피하다. 또 전자세금계산서를 도입할 경우 중소기업은 초기비용 부담도 크지만 대기업에 비해 ‘을’의 입장인 중소기업이 부당한 납세협력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것.
2009년 11월 17일, 鄭雲燦(정운찬) 국무총리가 서울롯데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全經聯) 회장단 모임에 참석했다.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세종市(시)의 기업도시화에 기업들이 적극 참여할 것을 요청하며 ‘세종시 세일즈’에 나섰다.
정 총리는 “세종시로 오는 대기업에 低價(저가)로 토지를 공급하고 자유롭게 토지를 개발토록 허용하며, 첨단 중소기업을 위해 최저가 분양 등의 방안을 검토중”이라면서 “稅制(세제) 감면과 보조금 지원, 규제 완화 등 각종 우대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경련 측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참여의향을 조사하겠다”고 했고, 鄭夢九(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공식적인 제안이 오면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 삼성, 두산, 한화그룹 등도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실제 분위기는 달랐다. 이날 참석했던 한 기업인은 “사실상 기업들에 세종시로 가라는 ‘압박’을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아직 ‘권고’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세종시 기업도시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각 기업을 상대로 구체적인 압박이 들어올 것이 분명하다”고 털어놨다.
기업들 세종시로 등 떠밀기
언론에서도 이날 정 총리의 발언은 現(현) 정권의 경제정책 기조인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 親기업)’와 상반되는 ‘기업 등 떠밀기’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金尙祚(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정부가 개발독재 시대처럼 기업에 채찍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도 즉각 공격에 나섰다. 李康來(이강래) 원내대표는 “官治(관치)경제를 혐오한다던 정 총리가 전경련에서 新(신)관치경제를 앞장서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재벌 총수들을 모아 세종시로 가라고 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사실 ‘고려해 보겠다’는 것은 완곡한 거절의 표시 아니냐”며 “정부가 세제 감면이니 보조금 지원이니 규제완화 같은 친기업 정책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은 거의 없는 만큼, 세종시에 대한 총리 약속도 솔직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 社內(사내)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내부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정부가 설사 엄청난 ‘세종시 특혜’를 준다 한들 이미 예정된 투자계획을 수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롯데그룹이 세종시에 맥주공장을 설립한다고 보도됨에 따라 원래 설립지로 유력했던 경북 김천의 자치단체 및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롯데가 골치를 앓고 있다. 삼성전기가 애초 계획했던 부산공장 증설계획을 취소하고 세종시로 갈 것이라는 설이 나돌면서 부산시가 벌컥 뒤집히기도 했다. 본사든 일부 계열사든 세종시로 옮긴다면 사내 반발은 물론 지역과 관련단체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기업인은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라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우리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투자하라고 요구만 했지, 기업을 위해 해 준 일이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기업을 위해 해 준 게 없으면 투자하라고 들들 볶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취재 중 만난 기업인들은 ‘비즈니스 프렌들리’ 측면에서 현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정부가 최근 ‘친서민 中道(중도) 실용’ 쪽으로 돌아선 데 대해 반감이 컸다.
金正浩(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하고 있지만 시장친화적이라고 말하기는 미흡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가의 경제정책 전반을 맡고 있는 경제 관련 부처가 시장친화적인 정책에 적극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자유기업원이 평가한 현 정부 정책의 시장친화성은 10점 만점에 6.41점으로 ‘보통을 약간 웃도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도 反시장적 법안 다수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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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2월 28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초청 경제인간담회.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들이 대거 참석했다. |
특히 최근 정부와 여당이 ‘친서민 중도실용정책’을 표방하면서 국회마저 반시장적 법안들을 다수 발의하고 가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과 경총 등 경제단체들도 지속적으로 정부에 실망스럽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趙錫來(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조 회장은 2009년 7월 제주도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에서 “정치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만든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기업이 투자하지 못하는 것은 싸움만 일삼는 정치권과 강성노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조 회장은 2009년 11월 17일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세일즈’를 하는 자리에서도 “기업은 정부가 채찍질한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며 “세종시가 어떻게 지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투자를 섣불리 약속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대통령과 사돈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잇단 쓴소리에 나서고 있는 것은 재계 불만이 심각할 정도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李秀永(이수영) 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반기업적이고 불합리한 규제가 철폐돼야 하는데, 새 정부 들어 반기업적 규제가 많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체감도가 낮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기업인 출신의 대통령과 기업이 왜 이처럼 험악한 사이가 됐을까.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조석래 전경련 회장 겸 효성그룹 회장, 李健熙(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金升淵(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具本茂(구본무) LG그룹 회장, 崔泰源(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 20여 명과 마주앉았다.
李慶淑(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 司空壹(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장, 姜萬洙(강만수) 경제1분과위원회 간사, 崔炅煥(최경환) 경제2분과위 간사, 李漢久(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등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 브레인’들도 모두 참석했다.
화기애애했던 2년 전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당선자와 공식적인 간담회를 가진 단체는 전경련이 처음이었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은 각각 비자금 사건과 폭행사건 등의 사유로 참석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당선자가 나서서 직접 참석을 독려할 만큼 당선자가 재계 총수들과 회동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이 당선자는 당선 후 첫 방문처로 전경련을 찾은 이유에 대해 “새 정부가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기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전하고, 온 국민이 바라는 일자리 창출에 기업이 적극 협력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선자는 이 자리에서 ▲준법정신을 근본으로 새로운 노사문화 창출 ▲부동산 값 급등 방지 ▲기업과 정부의 정기적 만남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규제 완화 등을 약속했다.
또 이 당선자는 “차기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만들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고, “정부는 기업투자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많이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조석래 회장도 “우리 경제계는 경제대통령의 탄생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새 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해 우리나라 선진화를 앞당기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이 당선자는 또 재계 총수들에게 “언제든 애로사항이 있으면 직접 전화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에 나타난 이날 간담회 분위기는 시종일관 훈훈했고, 당선자와 그룹 총수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참석자들은 언론을 향해 “지난 10년 동안 힘들었지만 이제 희망이 생길 것으로 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기업과 재벌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던 노 전 대통령은 전경련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따라서 대기업 총수들은 이명박 당선자와의 만남에 큰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선 직후부터 기업·기업인 우대정책도 잇따랐다. 중소기업인들이 인천공항 귀빈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처한 데 이어, 전남 영암 대불공단의 전봇대도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며 즉시 제거조치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기업인 핫라인’도 개통했다. 대통령은 2008년 3월 대기업과 중소기업, 경제연구소, 경제단체 등을 선별해 CEO와 단체장 등 102명에게 ‘청와대 핫라인(hot line: 직통전화)’의 번호를 알려줬다. 5월에는 외국기업 6곳을 선정해 핫라인에 추가시켰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은 핫라인용 전화를 새로 개설해 이들 108명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24시간 늘 소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MB폰’의 등장이다.
그러나 핫라인은 개통 몇 개월 만에 무용지물이 됐다. MB폰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기업인과 협회에 핫라인 이용 현황을 문의했지만 대부분 대답을 회피했다. 어렵게 한 중소기업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MB폰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습니다.”
―왜 한 번도 안 쓰신 겁니까? 혹시 핫라인 사용 조건이 까다로워서 사용하지 않았나요.
“보안 유지, 과시용 및 청탁용 전화 금지, 음주 후 전화 금지 등의 조건이 있었어요. 뭐 그런게 문제가 돼서는 아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분에게 전화한다는 게 꺼려지더군요. 대통령이 직접 받으실지도 알 수 없고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처럼 대통령과 직접 통화해서 만났다는 분도 있던데요.
“경기도 안 좋고 우리 업계의 여러 가지 관련법이 바뀌면서 정말 전화기를 들고 싶은 때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에 어려움이 생겼던 적도 있고요. 그때는 설마 대통령이 이런 문제까지 경청해 줄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요즘은 정부가 ‘기업인 우대’보다는 서민 위주의 중도실용 정책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욱 핫라인에서 손이 멀어질 수밖에 없지요. 정부와 ‘거리감’이 더 커졌다고나 할까요. 2008년까지는 그나마 전화를 걸어 봤다는 사람을 봤는데, 2009년에는 그런 이야기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다른 기업인들도 정부와 거리감을 느끼고 있습니까.
“2008년까지만 해도 친기업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컸는데, 요즘은 아예 정부 정책에 귀를 닫고 삽니다. 현실성 없는 정책만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중소기업이 세종시로 가면 밀어주겠다는데, 영세한 중소기업이 어떻게 세종시로 갑니까.”
MB정부의 親기업 정책, 지금은?
2008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民官(민관) 합동회의’에서 재벌총수 등 기업인들은 건의사항을 쏟아냈다. 4대그룹 총수들을 비롯한 기업인들은 연구개발 세액공제 확대, 수도권 내 연구개발 시설 신설, IT산업 정부 투자, 중소기업 전용펀드 마련, 관광산업 활성화 등을 요청했고,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이 총출동해 기업인들의 요청을 경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업들은 정부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이때 대통령이 언급한 사항을 포함해 대통령이 정권 초기 기업인들에게 한 약속을 보면 ▲준법정신을 근본으로 새로운 노사문화 창출 ▲기업과 정부의 정기적 만남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규제 완화 ▲국가안보 강화로 정치 안정 및 정책 일관성 유지 ▲적정 수준 금리 유지 등이다.
이 밖에 ‘MB노믹스’의 큰 틀은 인수위에서 마련한 ‘20대 국정전략, 100대 국정과제’에 나타나 있다. 100대 국정과제 중 산업계 전반과 관련된 사항은 10개(21~30번)로, <표1>과 같다.
이런 정부의 약속은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지켜졌을까. ‘相生(상생)하는 노사문화’와 ‘외국인이 투자하고 싶은 나라’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은 앞서 전경련 조석래 회장이 언급했다. 규제 선진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전경련이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규제개혁 만족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 ‘만족’은 49%로 절반에 못 미쳤다. ‘정치 안정과 정책 일관성 유지’도 광우병 사태와 최근의 중도실용 정책 표방으로 미뤄볼 때 이뤄지지 못했다.
이 같은 정책들로 재계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중, 재계의 불만이 폭발직전에 이른 것은 2009년 8월 15일 청와대가 ‘중도 실용’ 노선을 표방하면서부터다. 대한상의의 한 관계자는 “기업인들이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前(전) 정권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정부가 공식적으로 중도 실용을 표방한 것은 솔직히 ‘쇼크’였다”고 귀띔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은 것도 이 시점이다.
그러나 조 회장처럼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해 줄 기업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직원 200여 명 규모의 중견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기업인을 찾아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밀월-기대-실망-분노-체념
―기업인들이 왜 MB 정부의 중도실용 노선에 실망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까.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했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서 뽑은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친서민 중도실용이라니요. 이건 전형적인 포퓰리즘 아닙니까.”
―친서민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만 기업인에게 가장 어려운 게 고용문제잖아요. 기업들이 국내에 선뜻 투자 못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전투적 노조와 비싼 인건비 부담 때문입니다. 친서민정책이라면서 복수노조 허용하고, 대체휴무까지 실시한다니 사람 쓰기가 겁날 지경이에요. 기업들에는 투자하라고 종용하면서 이런 정책을 내놓으니 기업 할 의욕이 나질 않아요.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물 건너간 거죠.”
―정부는 대표적인 친기업 정책으로 ‘규제 완화’를 들고 있습니다.
“사실 규제 때문에 투자 안 하고 기업 안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윤이 날 것 같으면 시키지 않아도 투자하는 게 기업입니다. 규제 운운할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투자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정부의 할 일 아닙니까.”
취재를 진행하며 재계의 정부를 향한 2년간의 감정을 시간 순으로 살펴보니 밀월-기대-실망-분노-체념 순으로 보였다. 당선 직후 밀월관계를 맺다가 취임 직후 높은 기대감을 가졌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제정책에 실망했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중도실용을 표방하면서 실망이 분노로 나타났으며, 세종시 문제로 半(반)체념 상태에 이른 것이다.
애초부터 정부와 재계의 ‘밀월’은 없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李俊求(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
“정권 초기에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기업에 투자를 늘려 달라고 부탁했고, 기업은 규제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했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밀월관계가 조성되는 것처럼 보였지요. 하지만 대통령이 기업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순진했던 겁니다. 기업의 투자는 무조건 이윤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규제 때문이라는 말은 사실 엄살에 불과해요. 규제만 풀어 주면 기업들이 투자를 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규제가 제대로 풀리지도 않았고요. 그러다 보니 정부와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되는 겁니다.”
그는 “(정부가) 억지로 기업의 등을 떠미는 일은 아주 위험한 도박”이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하루빨리 경제를 안정시켜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도중 만난 한 기업인의 푸념이 머릿속에 남았다. “前(전) 정권 때는 정부가 기업을 밀어주진 않았지만 괴롭히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기업이 봉’이에요. 투자해라 이전해라 하면서 정책 만들 땐 서민 위한다고 기업 입장은 도외시하고…. 주변에선 요즘 기업들은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 팍팍 밀어 주니 좋지 않으냐며 빈정거리고…. 이래저래 기업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