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선진국에 비해 국가채무 과도하지 않다”고 사기극 벌여
⊙ 盧武鉉 정부 시절 복지 중심의 재정지출로 나랏빚 키워
⊙ 국내 297개 공공기관 총 부채 576조7000억원도 결국 국가채무
⊙ 公的연금 부족분도 결국은 나랏빚
⊙ 아르헨티나·멕시코, 나랏빚 관리 실패하여 국가부도
安鍾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 1959년 대구 출생.
⊙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교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 대우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조세연구원 전문연구위원 겸 연구조정부장,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조교수,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교 객원교수 역임.
⊙ 現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
⊙ 저서: <근로자와 서민을 위한 세제개혁>.
⊙ 상훈: 부총리 표창(1995).
⊙ 盧武鉉 정부 시절 복지 중심의 재정지출로 나랏빚 키워
⊙ 국내 297개 공공기관 총 부채 576조7000억원도 결국 국가채무
⊙ 公的연금 부족분도 결국은 나랏빚
⊙ 아르헨티나·멕시코, 나랏빚 관리 실패하여 국가부도
安鍾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 1959년 대구 출생.
⊙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교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 대우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조세연구원 전문연구위원 겸 연구조정부장,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조교수,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교 객원교수 역임.
⊙ 現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
⊙ 저서: <근로자와 서민을 위한 세제개혁>.
⊙ 상훈: 부총리 표창(1995).
- 지난 4월 여야가 총 29조9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심의를 놓고 ‘추경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각 상임위가 열린 국회 상임위 회의장 앞에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나랏빚이 급속히 늘어났다. 1997년 60조원이던 국가 채무가 2009년 말이 되면 366조원(추정치)이 되어 6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 채무비중으로 보면 12.3%에서 35.6%가 되어 3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국가 채무는 金大中(김대중) 정부와 盧武鉉(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각각 2배와 5배가 되었고, 이제 李明博(이명박) 정부 2년 만에 6배가 되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국가재정 운용계획에 따르면 나랏빚은 계속 늘어나 이명박 정부 종료 시점인 2012년에는 474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중 기준으로 보면 37.2%가 되어 40%에 근접하게 된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나랏빚이 그야말로 光速(광속)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 채무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 갚아야 할 이자 금액이 급속도로 많아져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된다. 미국 의회 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 CBO)의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GDP 1%의 국가 채무 증대는 0.3% 이자율 상승과 맞먹는다.
우리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국가 채무가 12% 상승했으니 이는 약 3% 이상의 이자율 상승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다시 말해 국가 채무의 급속한 증가가 우리 경제의 크나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채무의 GDP 대비 비중이 200%가 넘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나랏빚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일본은 내년 3월로 끝나는 2009년 회계연도에 2차대전 이후 최초로 조세 수입(40조 엔)보다 적자 국채 발행(44조 엔)이 더 커질 전망이다. 나랏빚이 너무 많아 나라살림을 세금보다 국채 발행에 더 의존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정정책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정책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가계 빚도 나랏빚처럼 급속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03년에 448조원이던 가계 부채가 2009년 6월 말 현재 698조원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유지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초저금리 기조가 출구전략의 시작과 더불어 금리 상승 기조로 바뀌면 가계 부담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대출 금리가 1% 상승하면 가계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2조원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자 비용 증가는 민간 소비를 위축시키고, 이는 다시 생산 감소로 이어져 실업률과 성장률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해마다 추경예산 편성 반복
가계 부채와 정부 부채의 증대는 성장률 저하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그 결과도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경기 침체가 가계와 정부의 부채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만일 내년도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부진하면 재정수지가 더욱 악화돼 국가 채무가 더욱 늘 것이고, 가계 대출은 증가할 것이다.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가계 부채와 정부 부채를 안정시키지 않을 경우, 가계·정부 부채 증대→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돼 장기 침체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나랏빚이 이처럼 급속히 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확대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세계적인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재정적자로 국가 채무가 증가했다. 큰 정부를 기조로 복지 중심의 재정 지출을 지속적으로 늘려왔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늘어나는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정부가 국민들에게 홍보했다는 점이다. 국제 기준을 보더라도 우리의 국가 채무 수준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강변하는 정부 앞에서 국민들의 재정 지출 확대 요구는 커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더 큰 국가 채무의 증대를 가져왔다.
방만한 재정은 지난 10여 년 동안 매년 추경예산을 편성했다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해마다 경제를 빨리 살리겠다고 예산을 조기 집행한 뒤 하반기에는 추경을 편성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처럼 ‘조기 집행과 추경’을 반복했다는 것은 예산안을 편성하는 정부나 이를 심의하는 국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늘 예산을 편성하고 심의할 때 전년 대비 증가율만 신경쓸 뿐, 그 예산이 제대로 짜였는지,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소홀했다. 증가율에 집착한 예산심의는 결국 다음해에 추경을 편성하고 나면 아무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관행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경제 위기라는 변수가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의 증대를 가져오긴 했지만, 과거 정부의 과오를 반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비교를 통해 보면 국가 채무는 아직은 염려할 수준이 아니라거나, 국가 채무의 증대는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했다는 설명이 지난 두 정권 때와 다를 바 없다. 여전히 각종 국책사업을 새롭게 시도함으로써 확대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재정 지출을 늘려 국민들이 당장 좋아할 정부 사업들을 시도하는 이른바 재정 포퓰리즘의 망령이 되살아난 느낌이 들 정도다.
OECD 국가와 한국의 국가부채 규모가 다른 이유
재정 포퓰리즘은 우리의 나랏빚이 국제비교를 해 보면 괜찮다는 잘못된 자세를 만들어낸다. 이런 재정 포퓰리즘은 국가 채무의 범위를 최대한 작게 보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더욱 나쁘다.
나랏빚을 정의하는 여러 기준 중에서 우리 정부와 여당이 늘 사용하는 ‘국가 채무(National Debt)’라는 개념은 OECD 기준의 ‘일반정부 총 금융부채(General Government Gross Financial Liabilities)’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일반정부의 범위에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사회보장 기금, 비영리 공공기관을 포함하고 있다. 즉 일반정부 총 금융부채에는 우리가 국가채무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는 準(준)정부기관 전체의 금융부채를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좁은 개념을 갖고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걱정 말라고 한 것이다.
2007년 말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30.7%로서 OECD 국가의 ‘일반정부 총 금융 부채’ 비율 평균 76.9%와 비교하면 반도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의 국가채무보다 더 넓은 범위의 총 금융부채를 기준으로 하는 OECD 국가와 비교한다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제 기준으로는 나랏빚에 포함되지 않는 보증 채무와 공기업 부채의 경우도 넓은 의미의 국가 채무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 의한 채무 보증은 국가가 보증을 선 기업이 갚지 못할 경우에만 채무 상환에 대한 의무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확정된 국가 채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장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공기업은 일반정부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공기업의 부채는 국가 채무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우선 보증 채무의 예를 보자. 우리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조성한 공적자금에 대해 정부가 보증을 섰는데, 이를 놓고 2000년 총선 당시 보증 채무를 국가 채무에 포함시키는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49조원에 달하는 보증 채무를 회수할 수 없게 되자 2003년부터 4년 동안 국채로 전환함으로써 직접 채무가 됐다. 만일 당시 보증 채무가 국가 채무로 전환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국가 채무 전체를 관리했다면 아마 나랏빚 수준은 지금보다는 작아졌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정권에서 이양된 49조원의 국가 채무를 증가폭에서 제외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누가 만든 빚이건 현재 정부가 안고 있는 것이라면 피할 수 없이 관리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국내 공기업들, 정부사업 대행하며 큰 부채 떠안아
두 번째 공기업 부채를 보자. 국제 기준에 의해 제외되는 공기업은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다. 그런데 우리 공기업의 상당수는 정부의 지시와 통제에 의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준정부기관에 더 가깝다. 특히 대규모 부채를 갖고 있는 공기업일수록 정부의 사업을 대행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을 정의하고 관리하고 있다. 이 법에 적용받는 공공기관은 총 297개로서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다.
공기업이란 직원 정원이 50인 이상이고, 자체 수입액이 총 수입액의 2분의 1 이상인 공공기관 중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한 기관을 말한다. 공기업은 시장형 공기업과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분류된다. 시장형 공기업은 자산 규모가 2조원 이상이고, 총 수입액 중 자체 수입액이 85% 이상인 공기업으로 한국전력공사, 인천공항공사 등 6개 기관이 이에 해당한다. 준시장형 공기업은 시장형 공기업이 아닌 공기업으로서 한국관광공사, 한국마사회, 한국토지공사 등 18개 기관이다.
이들 공기업은 국제 기준의 공기업과는 상당히 다른 활동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시장에서 자체적인 활동을 하기보다 정부 사업을 대행하거나 정부의 규제에 철저히 따르면서 부채를 늘려왔기 때문이다.
준시장형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등은 정부사업을 대행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부채를 안고 있고, 부채의 증가 속도도 엄청나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혁신도시 등 대형 국책사업에 토지공사가 참여했다. 현 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에 수자원공사가, 보금자리 주택사업에 주택공사(토지주택공사)가 참여해 부채가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시장형 공기업은 정부사업을 대행하지는 않지만 정부에 의한 가격 규제에서 발생한 손실이 결국 해당 공기업의 부채가 된다는 점에서 국제 기준의 공기업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油價(유가) 상승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정부 예산으로 직접 지원하기도 했다. 도로공사 역시 고속도로 통행료 규제로 인한 손실을 채권 발행을 통해 메운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이들 네 개 공기업 부채만 합해도 2008년 기준으로 134조원에 달할 정도다. 공기업 전체로 보면 부채가 177조원 규모이고, 연간 예산 지원도 4조3000억원에 달한다. 297개 공공기관 전체의 부채는 576조7000억원에 이른다.
公的연금 부족분도 국가채무
문제는 공기업 부채가 국가 채무의 증가 속도 못지않게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공기업 전체에 대한 예산 지원 규모는 34%가 증가했고, 부채 규모는 100% 늘어났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증가한 부채의 65%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노무현 정부 당시 벌인 각종 국책사업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급속히 늘어가는 공기업의 부채는 공기업 스스로 책임질 수 없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그 부담이 국민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국제 기준상 아니라고 홍보해도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통합하여 토지주택공사를 출범시켰다. ‘先(선)통합 後(후)구조조정’인가 아니면 ‘선구조조정 후통합’인가를 놓고 오랜 기간 논란을 벌인 끝에 ‘선통합 후구조조정’의 길을 택했다.
이러한 통합으로 두 기관이 갖고 있던 부채가 한 푼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구조조정을 먼저 했더라면 축소할 수 있었던 각종 사업이나, 부분 매각을 통해 줄일 수 있었던 부채가 선통합 과정에서 원천 봉쇄된 것이 더욱 큰 문제다. 통합 후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부채가 더욱 늘어날 우려까지 있다.
세 번째로 공적연금이 안고 있는 미래의 부채 또한 채무로 간주해 관리해야 한다. 지금 적립되고 있는 공적연금 보험료 수입은 물론 미래에 지급하게 될 연금 급여도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이 안고 있는 미래의 연금 부채를 암묵적 부채(implicit debt)라고도 한다.
한국조세연구원이 공적연금의 미래 연금급여 지급을 위해 납부한 기여금의 부족분을 미적립 부채라고 하여 계산한 결과 2008년 기준으로 298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큰 금액의 연금 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연금 재정의 적자를 일반회계에서 보전하도록 각 연금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금처럼 조금 내고 많이 받도록 잘못 만들어진 연금 때문에 미래 세대가 갖게 될 부담은 실로 엄청나다.
국가채무를 갖고 국제 비교를 해서 걱정하지 말라거나, 국제기준을 내세우며 여기까지만 국가채무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국가채무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확실히 조사해 모두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국민들에게 소상히 자주 알려야 한다.
나랏빚 관리에 실패하여 파산한 아르헨티나, 멕시코
미국은 재무성 내 공공채무국 홈페이지(http://www.publicdebt.treas.gov)를 따로 만들어 국가 채무를 매일 센트 단위까지 표시해서 상세한 내역을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나아가 공적연금 제도와 공적 건강보험 등과 같은 사회보험 제도가 궁극적으로 어떤 세대에게 얼마나 부담을 지우는지 ‘세대 간 회계(Generational Accounting)’를 계산해서 매년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같은 중남미 국가는 재정 포퓰리즘 때문에 위기를 겪은 대표적인 나라다. 이들 국가들은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한 정책들만을 내세운 포퓰리즘 정부가 연이어 집권함으로써 나라살림이 방만해 급속히 늘어나는 나랏빚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까지 몰고 갔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 대표적이다.
노동자 계급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잡은 후안 페론은 1946년부터 28년 동안 장기 집권했다. 페론은 당시 아르헨티나의 자원을 국유화하고, 넘쳐나던 빈민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했다. 근로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펼쳐 당장의 인기에는 영합했지만 급속히 늘어나는 재정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복지 확대 등의 인기 영합 정책으로 재정이 지속적으로 팽창되면서 막대한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해외 차관을 도입, 대외 채무가 증가하는 과정에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구제금융 신청은 이자 부담 증대로 정부의 보증 여력이 약화되고, 이는 또다시 반복적인 경제 위기를 야기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됐다. 결국 집권 초기 세계 강대국 반열에 올라 있던 아르헨티나를 집권 후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멕시코는 네 차례의 외환위기 중 세 차례가 과도한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 때문이었다. 1982년에는 급기야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했다. 재정 포퓰리즘 때문에 국가 위기를 부른 또 다른 사례다.
성공 사례로는 미국을 들 수 있다. 매년 계속되는 재정 적자와 쌓여만 가는 국가채무 문제를 부단한 對(대)국민 설득과 재정 규율(fiscal discpline)로 해결한 클린턴 대통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예금 인출 사태를 지속적인 대국민 설득으로 진정시켜 집권 2기에 戰後(전후) 최초로 재정 흑자를 실현했다.
親서민 정책은 명백한 포퓰리즘
우리 앞에 놓인 재정 위기, 경제 위기 조짐은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특히 재정 포퓰리즘을 배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재정 포퓰리즘을 떨쳐버리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다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재정 규율을 만들어 지켜야 한다. 국가재정법이 제정돼 외환위기로 인해 악화일로에 있는 재정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예산 편성과 심의는 재정 건전성 회복과 재정 효율성 제고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추경 요건을 법으로 강제하고 중기 재정계획을 세워 이를 기초로 예산 편성과 심의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국가재정법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법으로 안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선 각종 재정사업의 事前(사전)평가와 事後(사후)평가를 철저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유형별로 국가채무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유형의 채무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가를 수시로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즉 노무현 정부 당시 시작됐던 ‘디지털예산회계기획단’ 활동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재정의 범위에서부터 출발해 국가채무 범위에 이르기까지 재정 관련 통계를 정비하고 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처럼 실시간으로 매일 공표하는 국가 채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분기에 한 번 유형별 국가 채무 수준을 발표해야 한다.
셋째, 포퓰리즘에 의한 정책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사전평가와 사후평가가 전제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親(친)서민 정책’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정권 출범 이후 하락하던 지지율이 이로부터 반등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친서민 정책을 내놓고, 또 만들고 있는 중이다.
‘미소금융’ ‘대학생 학자금 대출’ ‘보금자리 주택’ 등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친서민 대책은 국민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稅制(세제) 개편도 친서민을 기본 방향으로 내세울 정도이고, 최근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소득세율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는 안까지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국민들 눈에는 ‘이제 제대로 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하고 있다.
재정 포퓰리즘의 망령 되살아나나?
그러나 지금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친서민 대책은 다분히 포퓰리즘적 요인이 크다. 그것은 세금을 깎아주고 재정 지출을 늘리는 재정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친서민 대책은 서민 減稅(감세)와 서민 복지 지출 증대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정 건전성을 더욱 훼손시켜 국가채무 증대를 가속시킬 가능성이 크다.
미소금융의 경우 재정 소요가 없이 순수 민간자본으로 재원이 조달되고 운용된다고 하지만 부담의 귀착을 냉철하게 따져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재원 조달에 동참한다고 하지만, 이는 기존 복지재원 조달에 참여하던 부분을 줄여 재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결국 어딘가는 손해를 본다는 것을 뜻한다.
재정 포퓰리즘을 배격하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고 국가채무 증대 속도를 완화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이처럼 재정 포퓰리즘 망령을 떨쳐 버리면 우리의 정치·경제·사회에서의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선진화하는 데 마지막 문턱을 넘는 결정적인 힘이 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가 채무는 金大中(김대중) 정부와 盧武鉉(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각각 2배와 5배가 되었고, 이제 李明博(이명박) 정부 2년 만에 6배가 되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국가재정 운용계획에 따르면 나랏빚은 계속 늘어나 이명박 정부 종료 시점인 2012년에는 474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중 기준으로 보면 37.2%가 되어 40%에 근접하게 된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나랏빚이 그야말로 光速(광속)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 채무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 갚아야 할 이자 금액이 급속도로 많아져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된다. 미국 의회 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 CBO)의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GDP 1%의 국가 채무 증대는 0.3% 이자율 상승과 맞먹는다.
우리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국가 채무가 12% 상승했으니 이는 약 3% 이상의 이자율 상승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다시 말해 국가 채무의 급속한 증가가 우리 경제의 크나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채무의 GDP 대비 비중이 200%가 넘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나랏빚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일본은 내년 3월로 끝나는 2009년 회계연도에 2차대전 이후 최초로 조세 수입(40조 엔)보다 적자 국채 발행(44조 엔)이 더 커질 전망이다. 나랏빚이 너무 많아 나라살림을 세금보다 국채 발행에 더 의존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정정책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정책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가계 빚도 나랏빚처럼 급속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03년에 448조원이던 가계 부채가 2009년 6월 말 현재 698조원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유지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초저금리 기조가 출구전략의 시작과 더불어 금리 상승 기조로 바뀌면 가계 부담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대출 금리가 1% 상승하면 가계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2조원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자 비용 증가는 민간 소비를 위축시키고, 이는 다시 생산 감소로 이어져 실업률과 성장률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해마다 추경예산 편성 반복
가계 부채와 정부 부채의 증대는 성장률 저하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그 결과도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경기 침체가 가계와 정부의 부채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만일 내년도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부진하면 재정수지가 더욱 악화돼 국가 채무가 더욱 늘 것이고, 가계 대출은 증가할 것이다.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가계 부채와 정부 부채를 안정시키지 않을 경우, 가계·정부 부채 증대→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돼 장기 침체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나랏빚이 이처럼 급속히 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확대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세계적인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재정적자로 국가 채무가 증가했다. 큰 정부를 기조로 복지 중심의 재정 지출을 지속적으로 늘려왔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늘어나는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정부가 국민들에게 홍보했다는 점이다. 국제 기준을 보더라도 우리의 국가 채무 수준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강변하는 정부 앞에서 국민들의 재정 지출 확대 요구는 커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더 큰 국가 채무의 증대를 가져왔다.
방만한 재정은 지난 10여 년 동안 매년 추경예산을 편성했다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해마다 경제를 빨리 살리겠다고 예산을 조기 집행한 뒤 하반기에는 추경을 편성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처럼 ‘조기 집행과 추경’을 반복했다는 것은 예산안을 편성하는 정부나 이를 심의하는 국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늘 예산을 편성하고 심의할 때 전년 대비 증가율만 신경쓸 뿐, 그 예산이 제대로 짜였는지,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소홀했다. 증가율에 집착한 예산심의는 결국 다음해에 추경을 편성하고 나면 아무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관행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경제 위기라는 변수가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의 증대를 가져오긴 했지만, 과거 정부의 과오를 반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비교를 통해 보면 국가 채무는 아직은 염려할 수준이 아니라거나, 국가 채무의 증대는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했다는 설명이 지난 두 정권 때와 다를 바 없다. 여전히 각종 국책사업을 새롭게 시도함으로써 확대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재정 지출을 늘려 국민들이 당장 좋아할 정부 사업들을 시도하는 이른바 재정 포퓰리즘의 망령이 되살아난 느낌이 들 정도다.
OECD 국가와 한국의 국가부채 규모가 다른 이유
재정 포퓰리즘은 우리의 나랏빚이 국제비교를 해 보면 괜찮다는 잘못된 자세를 만들어낸다. 이런 재정 포퓰리즘은 국가 채무의 범위를 최대한 작게 보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더욱 나쁘다.
나랏빚을 정의하는 여러 기준 중에서 우리 정부와 여당이 늘 사용하는 ‘국가 채무(National Debt)’라는 개념은 OECD 기준의 ‘일반정부 총 금융부채(General Government Gross Financial Liabilities)’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일반정부의 범위에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사회보장 기금, 비영리 공공기관을 포함하고 있다. 즉 일반정부 총 금융부채에는 우리가 국가채무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는 準(준)정부기관 전체의 금융부채를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좁은 개념을 갖고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걱정 말라고 한 것이다.
2007년 말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30.7%로서 OECD 국가의 ‘일반정부 총 금융 부채’ 비율 평균 76.9%와 비교하면 반도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의 국가채무보다 더 넓은 범위의 총 금융부채를 기준으로 하는 OECD 국가와 비교한다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제 기준으로는 나랏빚에 포함되지 않는 보증 채무와 공기업 부채의 경우도 넓은 의미의 국가 채무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 의한 채무 보증은 국가가 보증을 선 기업이 갚지 못할 경우에만 채무 상환에 대한 의무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확정된 국가 채무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장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공기업은 일반정부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공기업의 부채는 국가 채무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우선 보증 채무의 예를 보자. 우리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조성한 공적자금에 대해 정부가 보증을 섰는데, 이를 놓고 2000년 총선 당시 보증 채무를 국가 채무에 포함시키는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49조원에 달하는 보증 채무를 회수할 수 없게 되자 2003년부터 4년 동안 국채로 전환함으로써 직접 채무가 됐다. 만일 당시 보증 채무가 국가 채무로 전환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국가 채무 전체를 관리했다면 아마 나랏빚 수준은 지금보다는 작아졌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정권에서 이양된 49조원의 국가 채무를 증가폭에서 제외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누가 만든 빚이건 현재 정부가 안고 있는 것이라면 피할 수 없이 관리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국내 공기업들, 정부사업 대행하며 큰 부채 떠안아
두 번째 공기업 부채를 보자. 국제 기준에 의해 제외되는 공기업은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다. 그런데 우리 공기업의 상당수는 정부의 지시와 통제에 의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준정부기관에 더 가깝다. 특히 대규모 부채를 갖고 있는 공기업일수록 정부의 사업을 대행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을 정의하고 관리하고 있다. 이 법에 적용받는 공공기관은 총 297개로서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다.
공기업이란 직원 정원이 50인 이상이고, 자체 수입액이 총 수입액의 2분의 1 이상인 공공기관 중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한 기관을 말한다. 공기업은 시장형 공기업과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분류된다. 시장형 공기업은 자산 규모가 2조원 이상이고, 총 수입액 중 자체 수입액이 85% 이상인 공기업으로 한국전력공사, 인천공항공사 등 6개 기관이 이에 해당한다. 준시장형 공기업은 시장형 공기업이 아닌 공기업으로서 한국관광공사, 한국마사회, 한국토지공사 등 18개 기관이다.
이들 공기업은 국제 기준의 공기업과는 상당히 다른 활동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시장에서 자체적인 활동을 하기보다 정부 사업을 대행하거나 정부의 규제에 철저히 따르면서 부채를 늘려왔기 때문이다.
준시장형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등은 정부사업을 대행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부채를 안고 있고, 부채의 증가 속도도 엄청나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혁신도시 등 대형 국책사업에 토지공사가 참여했다. 현 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에 수자원공사가, 보금자리 주택사업에 주택공사(토지주택공사)가 참여해 부채가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시장형 공기업은 정부사업을 대행하지는 않지만 정부에 의한 가격 규제에서 발생한 손실이 결국 해당 공기업의 부채가 된다는 점에서 국제 기준의 공기업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油價(유가) 상승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정부 예산으로 직접 지원하기도 했다. 도로공사 역시 고속도로 통행료 규제로 인한 손실을 채권 발행을 통해 메운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이들 네 개 공기업 부채만 합해도 2008년 기준으로 134조원에 달할 정도다. 공기업 전체로 보면 부채가 177조원 규모이고, 연간 예산 지원도 4조3000억원에 달한다. 297개 공공기관 전체의 부채는 576조7000억원에 이른다.
公的연금 부족분도 국가채무
문제는 공기업 부채가 국가 채무의 증가 속도 못지않게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공기업 전체에 대한 예산 지원 규모는 34%가 증가했고, 부채 규모는 100% 늘어났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증가한 부채의 65%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노무현 정부 당시 벌인 각종 국책사업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급속히 늘어가는 공기업의 부채는 공기업 스스로 책임질 수 없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그 부담이 국민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국제 기준상 아니라고 홍보해도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통합하여 토지주택공사를 출범시켰다. ‘先(선)통합 後(후)구조조정’인가 아니면 ‘선구조조정 후통합’인가를 놓고 오랜 기간 논란을 벌인 끝에 ‘선통합 후구조조정’의 길을 택했다.
이러한 통합으로 두 기관이 갖고 있던 부채가 한 푼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구조조정을 먼저 했더라면 축소할 수 있었던 각종 사업이나, 부분 매각을 통해 줄일 수 있었던 부채가 선통합 과정에서 원천 봉쇄된 것이 더욱 큰 문제다. 통합 후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부채가 더욱 늘어날 우려까지 있다.
세 번째로 공적연금이 안고 있는 미래의 부채 또한 채무로 간주해 관리해야 한다. 지금 적립되고 있는 공적연금 보험료 수입은 물론 미래에 지급하게 될 연금 급여도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이 안고 있는 미래의 연금 부채를 암묵적 부채(implicit debt)라고도 한다.
한국조세연구원이 공적연금의 미래 연금급여 지급을 위해 납부한 기여금의 부족분을 미적립 부채라고 하여 계산한 결과 2008년 기준으로 298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큰 금액의 연금 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연금 재정의 적자를 일반회계에서 보전하도록 각 연금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금처럼 조금 내고 많이 받도록 잘못 만들어진 연금 때문에 미래 세대가 갖게 될 부담은 실로 엄청나다.
국가채무를 갖고 국제 비교를 해서 걱정하지 말라거나, 국제기준을 내세우며 여기까지만 국가채무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국가채무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확실히 조사해 모두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국민들에게 소상히 자주 알려야 한다.
나랏빚 관리에 실패하여 파산한 아르헨티나, 멕시코
미국은 재무성 내 공공채무국 홈페이지(http://www.publicdebt.treas.gov)를 따로 만들어 국가 채무를 매일 센트 단위까지 표시해서 상세한 내역을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나아가 공적연금 제도와 공적 건강보험 등과 같은 사회보험 제도가 궁극적으로 어떤 세대에게 얼마나 부담을 지우는지 ‘세대 간 회계(Generational Accounting)’를 계산해서 매년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같은 중남미 국가는 재정 포퓰리즘 때문에 위기를 겪은 대표적인 나라다. 이들 국가들은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한 정책들만을 내세운 포퓰리즘 정부가 연이어 집권함으로써 나라살림이 방만해 급속히 늘어나는 나랏빚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까지 몰고 갔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 대표적이다.
노동자 계급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잡은 후안 페론은 1946년부터 28년 동안 장기 집권했다. 페론은 당시 아르헨티나의 자원을 국유화하고, 넘쳐나던 빈민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했다. 근로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펼쳐 당장의 인기에는 영합했지만 급속히 늘어나는 재정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복지 확대 등의 인기 영합 정책으로 재정이 지속적으로 팽창되면서 막대한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해외 차관을 도입, 대외 채무가 증가하는 과정에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구제금융 신청은 이자 부담 증대로 정부의 보증 여력이 약화되고, 이는 또다시 반복적인 경제 위기를 야기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됐다. 결국 집권 초기 세계 강대국 반열에 올라 있던 아르헨티나를 집권 후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멕시코는 네 차례의 외환위기 중 세 차례가 과도한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 때문이었다. 1982년에는 급기야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했다. 재정 포퓰리즘 때문에 국가 위기를 부른 또 다른 사례다.
성공 사례로는 미국을 들 수 있다. 매년 계속되는 재정 적자와 쌓여만 가는 국가채무 문제를 부단한 對(대)국민 설득과 재정 규율(fiscal discpline)로 해결한 클린턴 대통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예금 인출 사태를 지속적인 대국민 설득으로 진정시켜 집권 2기에 戰後(전후) 최초로 재정 흑자를 실현했다.
親서민 정책은 명백한 포퓰리즘
우리 앞에 놓인 재정 위기, 경제 위기 조짐은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특히 재정 포퓰리즘을 배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재정 포퓰리즘을 떨쳐버리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다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재정 규율을 만들어 지켜야 한다. 국가재정법이 제정돼 외환위기로 인해 악화일로에 있는 재정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예산 편성과 심의는 재정 건전성 회복과 재정 효율성 제고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추경 요건을 법으로 강제하고 중기 재정계획을 세워 이를 기초로 예산 편성과 심의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국가재정법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법으로 안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선 각종 재정사업의 事前(사전)평가와 事後(사후)평가를 철저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유형별로 국가채무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유형의 채무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가를 수시로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즉 노무현 정부 당시 시작됐던 ‘디지털예산회계기획단’ 활동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재정의 범위에서부터 출발해 국가채무 범위에 이르기까지 재정 관련 통계를 정비하고 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처럼 실시간으로 매일 공표하는 국가 채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분기에 한 번 유형별 국가 채무 수준을 발표해야 한다.
셋째, 포퓰리즘에 의한 정책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사전평가와 사후평가가 전제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親(친)서민 정책’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정권 출범 이후 하락하던 지지율이 이로부터 반등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친서민 정책을 내놓고, 또 만들고 있는 중이다.
‘미소금융’ ‘대학생 학자금 대출’ ‘보금자리 주택’ 등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친서민 대책은 국민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稅制(세제) 개편도 친서민을 기본 방향으로 내세울 정도이고, 최근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소득세율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는 안까지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국민들 눈에는 ‘이제 제대로 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하고 있다.
재정 포퓰리즘의 망령 되살아나나?
그러나 지금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친서민 대책은 다분히 포퓰리즘적 요인이 크다. 그것은 세금을 깎아주고 재정 지출을 늘리는 재정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친서민 대책은 서민 減稅(감세)와 서민 복지 지출 증대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정 건전성을 더욱 훼손시켜 국가채무 증대를 가속시킬 가능성이 크다.
미소금융의 경우 재정 소요가 없이 순수 민간자본으로 재원이 조달되고 운용된다고 하지만 부담의 귀착을 냉철하게 따져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재원 조달에 동참한다고 하지만, 이는 기존 복지재원 조달에 참여하던 부분을 줄여 재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결국 어딘가는 손해를 본다는 것을 뜻한다.
재정 포퓰리즘을 배격하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고 국가채무 증대 속도를 완화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이처럼 재정 포퓰리즘 망령을 떨쳐 버리면 우리의 정치·경제·사회에서의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선진화하는 데 마지막 문턱을 넘는 결정적인 힘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