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聖煥의 시각] “역시 ‘다거(大兄)’다운 中國” : 월간조선

“한국과 중국이 지금은 친구(파트너)지만 미래에는 중국이 주도권을 잡고 한국은 위성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

2004년 3월 <비즈니스위크>에 실린 커버스토리의 핵심 내용이다. 당시 대통령 탄핵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는데 <비즈니스위크>의 두 기자가 “지금 한국이 이럴 때가 아니라 가장 큰 기회이자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5년이나 지난 글이지만 이후 최근까지도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등 유명인사들이 심심찮게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는 말인 동시에, 잘못하면 이름없는 변방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한국이 잘하기만 하면 중국의 파트너로서 중국의 고도성장의 열매를 오랫동안 누릴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부잣집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얻는 게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잣집과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얻을 것은 얻고 줄 것은 준다면 얼마든지 相生(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상당수 제조업 및 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앞서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도 우리나라와의 경쟁 및 협력관계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떠오르는 중국’을 기회로 잘 활용하고 위협요인을 최소화하여 韓中(한중) 양국이 相扶相助(상부상조)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가느냐의 여부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기회요인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생산기지와 內需(내수)시장 두 가지 측면이다. 여기다 우리나라 등 주변국가들만이 가지는 기회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적 유사성과 지리적 이점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기지로서의 중국

먼저 생산기지로서의 중국은 싼 임금과 땅값에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物流(물류)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이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초기단계에서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대부분이 중국을 생산기지로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부품과 소재를 들여다 가공해서 제3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보다 싼 임금과 땅을 찾아 베트남·방글라데시로 다시 공장을 이전하거나 처음부터 베트남 등지로 투자방향을 돌리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중국 경제와 소득수준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임금과 땅값의 이점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工會) 등 노동법의 강화, 환경관련 규제의 강화, 중국 정부의 달라진 태도 등으로 기업환경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한동안 중국은 ‘세계의 공장’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브라질과 인도, 아세안, 동유럽 등이 있지만 아직은 노동력과 기술력, 가격경쟁력 등에서 중국과 대적하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중국에 진출한 한국 등 외국계 기업들이 중국 내에서 부품과 소재를 조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07년 현재 한국의 對中(대중) 수출에서 부품과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61%에 달하고 있지만 이 비중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생산기지로서 중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연구개발(R&D) 등 일부 핵심기능을 제외한 부품과 소재 등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완전 로컬기업으로 변신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중국이 세계의 공장인 동시에 ‘세계분업구조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한 축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기지로서의 이점이 줄어들면서 부쩍 대두되는 것이 중국의 내수시장을 겨냥한 진출이다. 중국 경제는 1970년대 말 개방 이후 年(연)평균 실질성장률(1980~2008년)이 9.9%에 달하고 있다.

연평균 10%씩 성장하면 7년마다 경제규모가 두 배씩 늘어나게 된다. 작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4조4016억 달러로 미국(14조2646억 달러)과 일본(4조9238억 달러)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했다. 내년에는 일본을 추월해 2위로 올라설 것이라는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다.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끌어갈 G2(Group of 2)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만간 중국 내수시장 폭발할 것

중국 베이징市에 있는 현대모비스 베이징 2공장.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지화가 필요하다.

이처럼 경제규모가 급속히 늘어나는 반면 인구증가는 억제되면서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도 급증하고 있다. 1980년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13달러에 불과했으나 2001년에 1000달러, 작년에는 3000달러를 넘어섰다. 지역별로는 선전(深?)이 2007년에 1인당 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작년에는 광저우(廣州), 상하이(上海) 등 6개 도시가 1만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조만간 베이징(北京) 등 동남부 연안지역의 대다수 도시가 1인당 소득 1만 달러 클럽에 가입할 것이다.

매킨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해 소득이 25만 위안(8월 말 환율로 3만6600달러)을 넘는 중국의 부유층이 2008년 현재 160만 가구에 달하고 있다. 매킨지는 이 같은 부유층이 2015년에는 440만 가구를 초과하면서 미국·일본·영국에 이어 4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중국의 내수시장, 특히 소비시장은 경제규모에 비해 매우 작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소비보다는 저축을 미덕으로 삼아온 탓에 민간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3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의 경우 소비 비중이 70%를 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규모는 작년에 중국이 1조6000억 달러 규모로 미국(11조2000억 달러)과 일본(3조8000억 달러)은 물론 경제규모 4위인 독일(2조7000억 달러)에도 한참 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소비비중이 크게 낮다는 것은 앞으로 소비잠재력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이번 글로벌 위기를 계기로 수출주도형 성장에서 내수주도형 성장으로 빠르게 전환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중국은 경제규모가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기준으로 봤을 때도 중상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부자들을 대거 배출하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은 시장이 어디 있겠는가. 부자들에게는 부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로 승부하고, 그보다 소득이 낮은 중하위 계층에는 또 그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팔 수 있는 무궁무진한 시장이다.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의 내수시장은 온전히 기업들의 몫이다.

한중 FTA 체결되면

아울러 정부 차원에서도 다양한 측면 지원과 혜택을 짜내야 할 것이다. 이 중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해야 할 과제는 한중 FTA의 체결이다.

이에 관해서는 현재 産·官·學(산·관·학) 공동연구가 진행 중으로, 아직 정부 간 협상은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작년 8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訪韓(방한)시 양국 정상이 한중 FTA의 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한중 FTA가 체결될 경우 우리나라의 농업과 경공업 등 경쟁력이 취약한 산업과 부문에서는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을 남에게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중 FTA가 한국이 중국의 파트너가 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지 위성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더 필요한 일이다.

세 번째 기회요인인 지리적 이점은 우리에게 주어진 天惠(천혜)의 資源(자원)인 셈이다. 비행기로 이동할 경우 베이징과 상하이는 1시간30분, 홍콩도 3시간 거리에 불과하다. 시차도 1시간에 불과해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는 회의 또는 제품에 대한 애프터서비스(AS)도 가능한 곳이 중국이다.

한중 수교 이후 불과 11년 만인 2003년 중국은 우리나라의 수출대상국 1위로 올라섰다. 당시 대다수 언론이 사상 처음이라고 보도했지만 실은 100년 남짓 일본과 미국이 대신했다가 중국이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유사 이래 舊韓末(구한말)까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수출대상국은 중국이었다.

2004년부터는 수출과 수입을 합한 교역규모에서도 중국이 1위로 올라섰다. 우리나라의 앞선 제조업이 지리적 이점을 등에 업고 飛翔(비상)하는 중국을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손 잡은 것이다. 지리적 이점을 잘 활용할 경우 우리나라는 무역에서의 이점을 넘어 교통(수송)·의료·레저·교육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기회요인인 문화적 유사성 또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 같은 한자 및 유교 문화권인데다 생긴 것도 비슷하다는 점은 유럽연합(EU)에 버금가는 유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 양국은 구한말까지 2000년 이상 빈번하게 교류해 왔지만 100여 년간의 단절을 거쳤다. 하지만 수교 이후 불과 17년 만에 역사상 가장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한중 간 항공편은 800여 편(1주일 기준)으로 일본과 미국보다 각각 2, 4배 정도씩 많다.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 3명 중 1명이 중국으로 가고,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5명 중 1명이 중국인이다. 한국의 대중 해외직접투자(FDI) 누적액이 그간 28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이 3만여 개, 중국에 상주하고 있는 한국인이 70만명에 달하고 있다.

중국 덕분에 外換위기 극복

중국 선전에 있는 한 소형 가전메이커에서 이마트에 납품할 선풍기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이 생산하는 저렴한 상품은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물가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이와 함께 양국 간 유학생 수도 급증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중국 내 한국인 유학생은 6만여 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3분의 1을 넘고 있고, 한국으로 유학온 중국인도 4만여 명에 달하고 있다. 양국간 교역 및 투자가 폭증하면서 교육 및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서로의 노력에 따라 앞으로 중국에서의 ‘韓流(한류)’와 한국에서의 ‘漢流(한류)’가 양국의 중요한 교육 및 문화 코드로 자리 잡는 날이 올 것이다.

끝으로 언급할 부분은 중국의 大國(대국)으로서의 행태와 입지도 우리에게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점이다. 1997년 말 外換(외환)위기 당시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동남아 국가들은 환율이 급등했다. 하지만 이후 위기 극복과정에서는 급등한 환율 덕분에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시 중국이 自國(자국)의 수출둔화를 우려해 위안화의 평가절하(환율인상)에 나섰더라면 한국과 태국 등이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위안화를 평가절하하지 않아 “역시 ‘다거(大兄)’다운 중국”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으로부터 값싼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20년 가깝게 전 세계가 낮은 물가를 유지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1970년대 선진국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9.2%로 높았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는 연평균 5.5%로 낮아진 데 이어 1990년대와 2000년대(2001~2008년)는 각각 연평균 2.7%와 2.2%로 안정됐다.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에 따른 高(고)인플레이션을 겪은 이후 주요 선진국들이 물가안정에 최우선순위를 둔 덕분이기도 했지만, 중국이 저렴한 공산품과 농수산물을 대량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함으로써 물가안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땅값을 이용한 가공수출에서 가격경쟁력을 크게 높임으로써 최근까지 매년 10~30%대의 높은 수출증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도 對(대) 중국 수출의 70% 이상이 중국 내에서 가공된 후 제3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가공무역 또는 보세무역이다.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하다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중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올해 8%대의 성장률을 지키는 ‘바오파(保八)’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이 8% 성장할 경우 우리나라 수출이 90억 달러 늘어나면서 성장률도 1%포인트 정도 올라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바오파가 아시아 경제회복을 선도한다’, 현대경제연구원, 2009년 7월). 우리 경제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위험이 이번에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新북학파의 등장

玄旿錫(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지난 8월 중국 광둥성(廣東省) 고위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국 경제의 회복에서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고조되던 작년 12월 중순 한중 통화 스와프를 체결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외환시장 안정, 즉 환율 안정에 크게 기여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제 잠시 2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병자호란(1636~37년)의 수모를 겪고 난 다음 조선은 淸(청)나라를 북쪽 오랑캐라고 경멸하면서 복수해야 한다는 ‘北伐(북벌)’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청의 문물과 사상을 배척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영조(재위 1724~1776년)와 정조(재위 1776~1800년)대에 와서는 洪大容(홍대용)·朴趾源(박지원)·朴齊家(박제가)와 같은 일부 신진학자들이 조선의 후진성을 자각하는 동시에 청나라의 문물을 선진문화로 인식하고 받아들이자는 ‘北學(북학)’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북벌의 분위기가 많이 가시기는 했어도 북학을 내세우기가 쉬운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과감하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당시 북학파 학자들은 새롭게 다가오는 국제질서와 선진학문 및 기술을 배워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利用厚生(이용후생)’의 실용적 학풍을 추구했다.

만약 북학파의 이 같은 실용적 학풍이 조선사회와 경제의 개혁과 선진문물의 수용에 성공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들의 주장과 노력은 북학 또는 實學(실학)이라는 하나의 학문 유파로 끝나면서 실제 조선시대 경제의 신성장동력이 되는 데는 실패했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북학파 또는 ‘新北學派(신북학파)’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앞서 언급한 유학생은 물론, 중국을 드나들고 상주하는 수많은 한국인을 신북학파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들은 아마도 한걸음 더 나가 중국을 알고 배우지 않고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고까지 말할 것이다.

신북학파의 성공여부는 중국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나라의 성장동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경제와 금융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과연 한국이 중국의 파트너 위치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위성국가로 전락할 것인가가 이들 신북학파들이 중국을 우리의 미래에 어떻게 가져다 붙일 것인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북학파가 조선시대의 북학파보다 훨씬 더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북학파가 중국(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선진문물과 기술을 수용하고자 했다면, 지금의 신북학파는 경쟁과 협력을 통해 얻을 것은 얻고 줄 것은 주는 相生(상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