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와 JP모건, 모건스탠리, 도이체방크, 씨티은행 등 10개 해외 투자은행(IB)이 올 1월 말에 예측한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2.3%. 그러나 한국경제는 마이너스 성장한 다음 해에는 高성장을 경험했다.
尹暢賢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1960년 대전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경제학과 졸업, 美 시카고大 경제학 박사.
⊙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명지대 교수 역임.
現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한국파생상품학회장,
금융발전심의위 글로벌금융분과위원장.
尹暢賢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1960년 대전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경제학과 졸업, 美 시카고大 경제학 박사.
⊙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명지대 교수 역임.
現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 한국파생상품학회장,
금융발전심의위 글로벌금융분과위원장.
-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서 개최한 실직급여설명회에 참석한 실직자들.
尹增鉉(윤증현)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월 10일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2% 내외로 발표했다. 취업자는 20만명 안팎 감소할 것으로 발표했는데 정부의 종전 전망치가 성장률 3%에, 취업자 10만명 증가였던 것을 감안하면 성장률 예상치는 5%포인트가 줄고 예상 취업자수는 30만명이 줄어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經常收支(경상수지)의 경우 수입 감소와 여행수지 개선 등에 힘입어 당초 예상보다 30억 달러 많은 130억 달러 黑字(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됐고,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 안팎에서 2% 후반으로 下向(하향) 조정됐다는 점이다. 수지와 물가는 그나마 버텨주지만 성장과 고용이 드디어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마이너스 성장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모건스탠리, 도이체방크, 씨티은행 등 10개 해외 투자은행(Invest Bank, IB)이 올 1월 말에 예측한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2.3%였다. 이는 한 달 전인 작년 12월 말 전망치인 0.8%에 비해 3.1%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세계경제가 예상 밖으로 빠르게 냉각되면서 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들 10개 기관은 하나같이 한국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나쁜 전망치는 BNP파리바가 내놓은 -4.5%였고 도이체방크(-4.0%), UBS(-3.0%)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반면 스탠다드차타드는 -1.2%, 골드만삭스는 -1.0%, 메릴린치는 -0.2%라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전망치를 내놓았다. 모건스탠리는 -2.8%의 전망치를 내놓으면서, 최악의 경우 -5%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과는 별도로 S&P와 피치는 각각 0%, -2.4% 성장이라는 전망치를 제시한 바 있다.
해외 투자은행들은 우리나라의 2010년 성장률이 3.5%가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2.6%, 내년에 2.5%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IMF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4.0%로 제시했다.
요약해보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우리나라 스스로는 -2%, 해외 주요 투자은행들은 -2.3%, IMF는 -4%를 제시했다.
마이너스 성장한 다음 해 高성장 경험
1970년 이후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은 1980년(-1.5%)과 1998년(-6.9%) 두 번이었다. 1980년은 2차 오일쇼크와 함께 ‘서울의 봄’과 광주사태로 상징되는 불안한 정치상황이 주원인이었다. 1998년은 외환위기 이후 고금리 상황과 구조조정이 겹치면서 경제가 급격히 추락한 것이 원인이었다.
다행인 것은 두 번 다 한해만 고생하고 위기에서 잘 벗어났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에 底力(저력)이 있었던 때문이다. 내년 성장률에 대해서는 주요 투자은행들이 3.5%, IMF가 4.2% 성장을 전망하고 있는데, 이 예측이 맞는다면 우리 경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올 한해 동안 고생하고 나면 다시 플러스 성장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과거와 다른 점은, 1980년 -1.5% 성장을 하고 난 다음해인 1981년에는 6.2% 성장률을 기록했고, 1998년 -6.9% 성장을 한 후인 1999년에는 성장률이 9.5%를 기록한 반면, 이번에는 그다지 큰 반등이 기대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 경제를 하나의 커다란 헤지펀드에 비유하는 시각이 있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평가인데, 수출과 관련해서 경제에 일종의 지렛대효과 내지는 乘數(승수)효과(한 경제변수의 변화가 효과를 몇 배수 이상으로 파급, 경제체제 전체를 새로운 수준으로 유도하는 효과)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세계경제가 잘되면 우리 경제는 그 이상 잘되고, 세계경제가 힘들면 우리는 더욱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올 1월의 경우 수출증가율은 前年同期(전년동기) 대비 -33%였다. 100을 수출하고 100을 수입하는 경우와 200을 수출하고 200을 수입하는 경우 모두 무역수지는 균형이라서 경제적 효과는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설비와 고용이다.
예를 들어 수출·수입이 모두 100일 때는 고용이 100명이지만, 수출·수입이 모두 200이면 고용이 200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역규모가 커지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이 바로 ‘확대균형의 美學(미학)’이다. 같은 균형이지만 많이 수입하고 많이 수출하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올해의 마이너스 성장은 수출 감소와 동반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잉여설비와 잉여인력이 생기면서 고용시장이 타격을 받게 된다. 물론 수입도 줄어 무역수지 자체는 개선되겠지만, ‘축소균형’의 공포를 떨쳐버릴 수는 없다.
잉여설비는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고 잉여인력은 실업의 증가로 연결된다. 주요 해외 투자은행들은 우리나라 올해 실업률이 4%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지난 2001년 4.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우리나라 실업률은 3.2%였다. 대부분의 국내 기관들은 올해 실업률을 3.4~3.7%로 전망하고 있다.
‘투자의 분산효과’ 실종
마이너스 성장으로 표현되는 극심한 不況(불황) 국면은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선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투자의 분산효과’가 상당 부분 사라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비 오면 우산이 잘 팔려서 우산 회사 주식이 오르고, 날씨가 맑으면 아이스크림이 잘 팔려서 아이스크림 회사 주식이 오른다고 할 때, 우리는 두 회사 주식에 절반씩 투자하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바로 현대 재무학이 주장하는 ‘분산투자’다. 이 경우 전체 포트폴리오는 가치가 매우 안정적이 되면서 적정한 수익을 내게 된다.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극심한 불황국면에서는 이런 분산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불황국면에서 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자들이 날씨가 맑아도 돈이 없어서 아이스크림을 안 사먹고, 비가 와도 우산을 사서 쓰지 않는다고 하자.
이 경우 아이스크림 회사 주식과 우산 회사 주식 모두 값이 떨어져 버린다. 결국 두 주식을 같이 사놓고 분산효과를 기대하던 투자자들은 낭패를 보게 된다.
실제로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 주식과 미국 주식, 그리고 브릭스(BRICs) 주식을 모두 사놓고 분산투자라고 생각하던 투자자들은 이제 이 모든 주식의 가치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상황에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이처럼 불황이 올수록 자산투자의 분산효과는 사라진다.
반대로 그럴수록 투자 범위를 넓게 잡고 여러 자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농산물·에너지·실물자원 등의 다양한 집합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작년에 코코아 가격이 상승했다. 金(금)도 좋은 투자 대상이다.
위기 타개를 위해 지금 세계 각국은 엄청나게 돈을 풀고 있다. 지금은 새가슴이 되어버린 채 대출을 자제하는 은행들 때문에 돈은 돌지 않고 있고 화폐가치는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만일 위기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돈이 돌기 시작하면 화폐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다. 이 국면에서는 실물자산의 가치가 엄청나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최근 예를 보면 소위 一任先物(일임선물) 전략을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금융선물과 상품선물에 투자하는 펀드들은 2008년의 어려운 국면에서도 이익을 많이 냈다.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을 전제로 극심한 불황 국면에도 크게 동요되지 않을 정도의 광범위하고 탄탄한 분산효과를 추구해야 할 때다.
서울의 빌딩을 사들이는 일본 자금
마이너스 성장시대에 나타날 현상 중에는 통화가치 하락과 부실자산의 증가도 포함된다. 최근 국내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쇼핑을 즐기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저녁 때 먹을 반찬거리조차 사가지고 간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서울에서 빌딩들을 사들이는 일본 자금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줄잡아 1조4000억원의 자금이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다. 일종의 곗돈 같은 私設(사설)펀드들이 그 주인공인데 200억원에서 500억원 정도의 빌딩, 그 중에서도 임대료 수입이 존재하는 중간 규모의 빌딩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한때 260억원까지 올랐던 한 빌딩이 최근 220억원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원·엔 환율은 8원/엔에서 16원/엔이 됐다. 이제 빌딩 가격을 엔으로 환산해보면 빌딩 가격은 한때 35억 엔쯤 하다가 15억 엔으로 떨어진 것이다. 엔으로 환산할 때 절반 이하로 폭락한 것이다. 만일 수년 내에 원·엔 환율이 제자리로 가고 빌딩 가격이 제 수준을 회복한다면 수익률은 133%에 육박한다. 이러니 엔 자금이 국내를 휘저을 수밖에 없다.
또한 최근 홍콩시장을 보면 헤지펀드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일부 펀드는 거꾸로 好況(호황)을 맞고 있다.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포함한 투자자들로부터 10억 달러 정도를 유치한 ADM 캐피털 펀드의 경우 투자전략이 부실자산매입 전략인데, 이곳에 돈이 몰리고 있다.
소위 ‘부실 채권(distressed debt)’ 매입 전략을 사용해 커다란 이익을 보려는 자금이 이를 전문으로 하는 펀드들에 몰리고 있는 현상은 마이너스 성장 시대의 아이러니다. ‘나쁜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보다는 ‘좋은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쉬운데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에는 ‘좋은 회사’의 주가도 떨어지게 되므로 새로운 투자기회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자산 회수)을 요구한다.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엄청난 빚을 내서 투자를 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 있었다. 리먼브러더스의 경우 30조원의 자본금으로 600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남의 돈이 570조원, 부채비율은 2000%에 가까웠던 셈이다. 일부 기관은 부채비율이 3000%에 달한 경우도 있으니 금융기관이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가계도 빚을 내 주택을 무리하게 구입했고 결국 버블이 형성됐다. 사실 그동안 미국 중앙은행은 전반적인 低(저)금리를 유지하면서 풍부한 流動性(유동성)을 제공했다. 결국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非(비)이성적 버블이 형성됐고, 이 버블이 터지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은행도 한몫을 하고 있다. 바로 은행의 경기순응성이다. 맑은 날 우산을 빌려주던 은행이 비가 오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우산을 빼앗고 있다. 좋아질 것 같으면 대출을 마구 늘려서 엄청나게 좋아지게 만들다가 나빠질 것 같으면 대출을 줄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적용에도 문제가 있다. 모든 은행이 동일한 비율을 사용하다 보니 대출이 한꺼번에 줄어들면서 경제의 內在的(내재적) 불안정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이제 이들 기관이 한꺼번에 빚을 회수하고 줄이면서 경제에는 한동안 축소지향의 공포가 나타날 것이다.
달러 회피 현상 두드러져
금번에 관찰되는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에는 달러회피(De-dollarization) 성향도 두드러질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달러는 基軸(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남들이 다 사용하는 통화를 혼자서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特權(특권)이다.
우리의 원화가 이런 지위를 가졌더라면 1997년 외환위기는 아예 없었을 것이다. 위기 한해 전 우리 경제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231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GDP의 4.2%에 해당하는 엄청난 적자였다(IMF는 이 비율에 대해 -5%를 위험수위로 책정하고 있다). 적자규모는 엄청났고, 결국 이로부터 한 해 후에 우리는 외환위기를 당했다.
미국은 어떤가.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한때 800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미국 GDP의 6%를 넘는 숫자이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가 아니었다면 미국은 외환위기를 여러 번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축통화 발행국인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 이 액수만큼 달러가 전 세계에 공급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은 세뇨리지(Seignorage: 화폐 발행이득)라 부르는 이익을 향유하게 된다.
예를 들어 100달러짜리 지폐를 한 장 찍는데 40센트가 드니까 미국에 100달러짜리 물건을 팔고 달러를 받는 외국기업의 경우 100달러짜리 물건을 주고 40센트짜리 물건을 받는 셈이다. 미국은 거꾸로 99달러60센트의 이익을 보는 것이다. 현실은 이보다 복잡하지만 소위 세뇨리지라 불리는 화폐발행에서의 이익을 미국이 어느 정도 향유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에 달러가 풀리고 미국의 무역적자가 심해지면서 달러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가 심해지고 미국 달러가 전 세계로 풀리면서 미국 달러로 인해 발생하는 유동성 팽창효과가 커졌고, 이러한 유동성은 전 세계에 버블을 만들어내는 데에 기여했다.
특히 중국의 경우 한때 對美(대미) 흑자를 2000억 달러까지 늘렸는데, 이는 미국 전체 적자의 25% 수준에 달했다. 한 나라는 물건을 열심히 만들어 팔고 다른 한 나라는 열심히 돈만 찍고 있던 형국이 나타난 셈이다. 위기가 오기 전에 나타난 이런 현상에 ‘글로벌 임밸런스(Global Imbalance)’라는 용어까지 붙일 정도였다.
미국은 1980년대 전반 나타난 쌍둥이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플라자 합의’(1985년 경제 선진 5개국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가진 환율관련 합의)를 통해 엔高(고) 국면을 유도, 해결함으로써 위기의 싹을 자른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에 대한 적자를 조절하지 못한 채 미적이다 위기를 자초했다.
기축통화는 충분히 공급돼야 하지만(공급조건), 동시에 신뢰를 받아야 한다(신뢰조건). 그런데 금번 위기 국면에서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IMF를 대체할 조직을 만들자고 주장할 정도다. 이제 중국과 러시아가 위안화와 루블화 사용을 시도하고 있고, 많은 국가들이 달러를 되도록 피하고 局地的(국지적)인 통화를 만들거나 지역중심 통화제를 도입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달러 사용이 전면적으로 폐지될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통화가 다양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우리도 이 국면에 대비를 해야 한다. 통화가 다양해질수록 달러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므로 가치가 상당부분 감소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마이너스 성장 시대의 5D
이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우리 경제에 어떤 모습이 나타날 것인가를 D로 시작하는 5개의 단어로 요약해 본다.
첫째는 혼란(Disorder)이다.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주식시장, 채권시장(특히 회사채), 부동산 시장, 파생상품 시장 등이 한꺼번에 불안해지고 있다.
둘째는 디플레이션(Deflation), 가격의 하락이다. 물가·금리·주가·부동산 가격 등 대부분의 가격이 다 하락할 것이다. 물론 올해 경제는 대략 上低下高(상저하고), 곧 상반기의 극심한 부진이 하반기에 가서 조금 나아지는 형태로 예상하고 있으므로 하반기에 상대적으로 경기가 좀 나아지면 금융시장은 먼저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그 전에는 전반적으로 힘들 것이다.
셋째는 불황(Depression)이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轉移(전이)되면서 실물경제에 극심한 불황이 나타나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잉여인력과 잉여설비가 증가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넷째는 디레버리지(Deleverage) 현상이다. 빚, 곧 남의 돈을 빌려다 무언가 하는 것이 줄어들 것이다.
다섯째는 달러사용 기피성향(De-Dollarization)이다. 달러의 가치하락 내지는 일정 부분 기피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역사상 가장 화끈한(?) 마이너스 성장 현상은 미국의 대공황 때 나타났다. 실업률은 25%까지 상승했다. 당시 물가를 이용하여 계산한 경상 GDP는 4년 만에 절반으로 하락했다. 주가는 400에서 40 근처로 거의 10분의 1이 되었고, 은행의 숫자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깊고 길었던 공황도 케인스와 루스벨트 대통령의 합작품인 뉴딜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1938년 여름부터 다시 불황 국면이 오기 시작해 실업률이 다시 20%대로 올라갔는데, 이때 미국을 구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 국면에서 유럽의 공급설비 축소, 戰費(전비) 지출을 위한 화끈한 재정적자 등의 덕분으로 미국경제는 급속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결국 실업률은 1942년 여름 완전고용상태로 복귀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유연성과 自己復元力(자기복원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마이너스 성장의 경험은 수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주장은 하도 많이 들어서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분명 맞는 이야기다.
경제주체들은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되, 위기 이후 상황을 고려한 각종 ‘컨틴전시 플랜(비상 대응책)’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실물자산 등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 경제에 부족한 자원이나 에너지를 최대한 확보하는 계기가 마련되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 경제시스템에 내재된 불안요인을 파악하고 이를 최대한 미리 방지하는 안정화 장치 역할을 할 제도들을 많이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아가 사회적 불안 요인과도 싸워야 한다. 특히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서 힘들어진 사회적 弱者(약자)들을 돌보는 한편, 이들의 등 뒤에 숨어서 반사적 이익을 노리는 세력을 차단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經常收支(경상수지)의 경우 수입 감소와 여행수지 개선 등에 힘입어 당초 예상보다 30억 달러 많은 130억 달러 黑字(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됐고,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 안팎에서 2% 후반으로 下向(하향) 조정됐다는 점이다. 수지와 물가는 그나마 버텨주지만 성장과 고용이 드디어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마이너스 성장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모건스탠리, 도이체방크, 씨티은행 등 10개 해외 투자은행(Invest Bank, IB)이 올 1월 말에 예측한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2.3%였다. 이는 한 달 전인 작년 12월 말 전망치인 0.8%에 비해 3.1%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세계경제가 예상 밖으로 빠르게 냉각되면서 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들 10개 기관은 하나같이 한국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나쁜 전망치는 BNP파리바가 내놓은 -4.5%였고 도이체방크(-4.0%), UBS(-3.0%)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반면 스탠다드차타드는 -1.2%, 골드만삭스는 -1.0%, 메릴린치는 -0.2%라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전망치를 내놓았다. 모건스탠리는 -2.8%의 전망치를 내놓으면서, 최악의 경우 -5%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과는 별도로 S&P와 피치는 각각 0%, -2.4% 성장이라는 전망치를 제시한 바 있다.
해외 투자은행들은 우리나라의 2010년 성장률이 3.5%가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2.6%, 내년에 2.5%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IMF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4.0%로 제시했다.
요약해보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우리나라 스스로는 -2%, 해외 주요 투자은행들은 -2.3%, IMF는 -4%를 제시했다.
마이너스 성장한 다음 해 高성장 경험
1970년 이후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은 1980년(-1.5%)과 1998년(-6.9%) 두 번이었다. 1980년은 2차 오일쇼크와 함께 ‘서울의 봄’과 광주사태로 상징되는 불안한 정치상황이 주원인이었다. 1998년은 외환위기 이후 고금리 상황과 구조조정이 겹치면서 경제가 급격히 추락한 것이 원인이었다.
다행인 것은 두 번 다 한해만 고생하고 위기에서 잘 벗어났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에 底力(저력)이 있었던 때문이다. 내년 성장률에 대해서는 주요 투자은행들이 3.5%, IMF가 4.2% 성장을 전망하고 있는데, 이 예측이 맞는다면 우리 경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올 한해 동안 고생하고 나면 다시 플러스 성장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과거와 다른 점은, 1980년 -1.5% 성장을 하고 난 다음해인 1981년에는 6.2% 성장률을 기록했고, 1998년 -6.9% 성장을 한 후인 1999년에는 성장률이 9.5%를 기록한 반면, 이번에는 그다지 큰 반등이 기대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 경제를 하나의 커다란 헤지펀드에 비유하는 시각이 있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평가인데, 수출과 관련해서 경제에 일종의 지렛대효과 내지는 乘數(승수)효과(한 경제변수의 변화가 효과를 몇 배수 이상으로 파급, 경제체제 전체를 새로운 수준으로 유도하는 효과)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세계경제가 잘되면 우리 경제는 그 이상 잘되고, 세계경제가 힘들면 우리는 더욱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올 1월의 경우 수출증가율은 前年同期(전년동기) 대비 -33%였다. 100을 수출하고 100을 수입하는 경우와 200을 수출하고 200을 수입하는 경우 모두 무역수지는 균형이라서 경제적 효과는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설비와 고용이다.
예를 들어 수출·수입이 모두 100일 때는 고용이 100명이지만, 수출·수입이 모두 200이면 고용이 200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역규모가 커지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이 바로 ‘확대균형의 美學(미학)’이다. 같은 균형이지만 많이 수입하고 많이 수출하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올해의 마이너스 성장은 수출 감소와 동반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잉여설비와 잉여인력이 생기면서 고용시장이 타격을 받게 된다. 물론 수입도 줄어 무역수지 자체는 개선되겠지만, ‘축소균형’의 공포를 떨쳐버릴 수는 없다.
잉여설비는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고 잉여인력은 실업의 증가로 연결된다. 주요 해외 투자은행들은 우리나라 올해 실업률이 4%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지난 2001년 4.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우리나라 실업률은 3.2%였다. 대부분의 국내 기관들은 올해 실업률을 3.4~3.7%로 전망하고 있다.
‘투자의 분산효과’ 실종
마이너스 성장으로 표현되는 극심한 不況(불황) 국면은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선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투자의 분산효과’가 상당 부분 사라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비 오면 우산이 잘 팔려서 우산 회사 주식이 오르고, 날씨가 맑으면 아이스크림이 잘 팔려서 아이스크림 회사 주식이 오른다고 할 때, 우리는 두 회사 주식에 절반씩 투자하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바로 현대 재무학이 주장하는 ‘분산투자’다. 이 경우 전체 포트폴리오는 가치가 매우 안정적이 되면서 적정한 수익을 내게 된다.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극심한 불황국면에서는 이런 분산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불황국면에서 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자들이 날씨가 맑아도 돈이 없어서 아이스크림을 안 사먹고, 비가 와도 우산을 사서 쓰지 않는다고 하자.
이 경우 아이스크림 회사 주식과 우산 회사 주식 모두 값이 떨어져 버린다. 결국 두 주식을 같이 사놓고 분산효과를 기대하던 투자자들은 낭패를 보게 된다.
실제로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 주식과 미국 주식, 그리고 브릭스(BRICs) 주식을 모두 사놓고 분산투자라고 생각하던 투자자들은 이제 이 모든 주식의 가치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상황에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이처럼 불황이 올수록 자산투자의 분산효과는 사라진다.
반대로 그럴수록 투자 범위를 넓게 잡고 여러 자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농산물·에너지·실물자원 등의 다양한 집합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작년에 코코아 가격이 상승했다. 金(금)도 좋은 투자 대상이다.
위기 타개를 위해 지금 세계 각국은 엄청나게 돈을 풀고 있다. 지금은 새가슴이 되어버린 채 대출을 자제하는 은행들 때문에 돈은 돌지 않고 있고 화폐가치는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만일 위기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돈이 돌기 시작하면 화폐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다. 이 국면에서는 실물자산의 가치가 엄청나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최근 예를 보면 소위 一任先物(일임선물) 전략을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금융선물과 상품선물에 투자하는 펀드들은 2008년의 어려운 국면에서도 이익을 많이 냈다.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을 전제로 극심한 불황 국면에도 크게 동요되지 않을 정도의 광범위하고 탄탄한 분산효과를 추구해야 할 때다.
서울의 빌딩을 사들이는 일본 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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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화가치 하락으로 한국에 와서 쇼핑을 즐기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크게 늘었다 |
서울에서 빌딩들을 사들이는 일본 자금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줄잡아 1조4000억원의 자금이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다. 일종의 곗돈 같은 私設(사설)펀드들이 그 주인공인데 200억원에서 500억원 정도의 빌딩, 그 중에서도 임대료 수입이 존재하는 중간 규모의 빌딩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한때 260억원까지 올랐던 한 빌딩이 최근 220억원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원·엔 환율은 8원/엔에서 16원/엔이 됐다. 이제 빌딩 가격을 엔으로 환산해보면 빌딩 가격은 한때 35억 엔쯤 하다가 15억 엔으로 떨어진 것이다. 엔으로 환산할 때 절반 이하로 폭락한 것이다. 만일 수년 내에 원·엔 환율이 제자리로 가고 빌딩 가격이 제 수준을 회복한다면 수익률은 133%에 육박한다. 이러니 엔 자금이 국내를 휘저을 수밖에 없다.
또한 최근 홍콩시장을 보면 헤지펀드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일부 펀드는 거꾸로 好況(호황)을 맞고 있다.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포함한 투자자들로부터 10억 달러 정도를 유치한 ADM 캐피털 펀드의 경우 투자전략이 부실자산매입 전략인데, 이곳에 돈이 몰리고 있다.
소위 ‘부실 채권(distressed debt)’ 매입 전략을 사용해 커다란 이익을 보려는 자금이 이를 전문으로 하는 펀드들에 몰리고 있는 현상은 마이너스 성장 시대의 아이러니다. ‘나쁜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보다는 ‘좋은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쉬운데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에는 ‘좋은 회사’의 주가도 떨어지게 되므로 새로운 투자기회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자산 회수)을 요구한다.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엄청난 빚을 내서 투자를 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 있었다. 리먼브러더스의 경우 30조원의 자본금으로 600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남의 돈이 570조원, 부채비율은 2000%에 가까웠던 셈이다. 일부 기관은 부채비율이 3000%에 달한 경우도 있으니 금융기관이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가계도 빚을 내 주택을 무리하게 구입했고 결국 버블이 형성됐다. 사실 그동안 미국 중앙은행은 전반적인 低(저)금리를 유지하면서 풍부한 流動性(유동성)을 제공했다. 결국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非(비)이성적 버블이 형성됐고, 이 버블이 터지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은행도 한몫을 하고 있다. 바로 은행의 경기순응성이다. 맑은 날 우산을 빌려주던 은행이 비가 오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우산을 빼앗고 있다. 좋아질 것 같으면 대출을 마구 늘려서 엄청나게 좋아지게 만들다가 나빠질 것 같으면 대출을 줄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적용에도 문제가 있다. 모든 은행이 동일한 비율을 사용하다 보니 대출이 한꺼번에 줄어들면서 경제의 內在的(내재적) 불안정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이제 이들 기관이 한꺼번에 빚을 회수하고 줄이면서 경제에는 한동안 축소지향의 공포가 나타날 것이다.
달러 회피 현상 두드러져
금번에 관찰되는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에는 달러회피(De-dollarization) 성향도 두드러질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달러는 基軸(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남들이 다 사용하는 통화를 혼자서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特權(특권)이다.
우리의 원화가 이런 지위를 가졌더라면 1997년 외환위기는 아예 없었을 것이다. 위기 한해 전 우리 경제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231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GDP의 4.2%에 해당하는 엄청난 적자였다(IMF는 이 비율에 대해 -5%를 위험수위로 책정하고 있다). 적자규모는 엄청났고, 결국 이로부터 한 해 후에 우리는 외환위기를 당했다.
미국은 어떤가.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한때 800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미국 GDP의 6%를 넘는 숫자이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가 아니었다면 미국은 외환위기를 여러 번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축통화 발행국인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 이 액수만큼 달러가 전 세계에 공급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은 세뇨리지(Seignorage: 화폐 발행이득)라 부르는 이익을 향유하게 된다.
예를 들어 100달러짜리 지폐를 한 장 찍는데 40센트가 드니까 미국에 100달러짜리 물건을 팔고 달러를 받는 외국기업의 경우 100달러짜리 물건을 주고 40센트짜리 물건을 받는 셈이다. 미국은 거꾸로 99달러60센트의 이익을 보는 것이다. 현실은 이보다 복잡하지만 소위 세뇨리지라 불리는 화폐발행에서의 이익을 미국이 어느 정도 향유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에 달러가 풀리고 미국의 무역적자가 심해지면서 달러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가 심해지고 미국 달러가 전 세계로 풀리면서 미국 달러로 인해 발생하는 유동성 팽창효과가 커졌고, 이러한 유동성은 전 세계에 버블을 만들어내는 데에 기여했다.
특히 중국의 경우 한때 對美(대미) 흑자를 2000억 달러까지 늘렸는데, 이는 미국 전체 적자의 25% 수준에 달했다. 한 나라는 물건을 열심히 만들어 팔고 다른 한 나라는 열심히 돈만 찍고 있던 형국이 나타난 셈이다. 위기가 오기 전에 나타난 이런 현상에 ‘글로벌 임밸런스(Global Imbalance)’라는 용어까지 붙일 정도였다.
미국은 1980년대 전반 나타난 쌍둥이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플라자 합의’(1985년 경제 선진 5개국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가진 환율관련 합의)를 통해 엔高(고) 국면을 유도, 해결함으로써 위기의 싹을 자른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에 대한 적자를 조절하지 못한 채 미적이다 위기를 자초했다.
기축통화는 충분히 공급돼야 하지만(공급조건), 동시에 신뢰를 받아야 한다(신뢰조건). 그런데 금번 위기 국면에서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IMF를 대체할 조직을 만들자고 주장할 정도다. 이제 중국과 러시아가 위안화와 루블화 사용을 시도하고 있고, 많은 국가들이 달러를 되도록 피하고 局地的(국지적)인 통화를 만들거나 지역중심 통화제를 도입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달러 사용이 전면적으로 폐지될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통화가 다양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우리도 이 국면에 대비를 해야 한다. 통화가 다양해질수록 달러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므로 가치가 상당부분 감소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마이너스 성장 시대의 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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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공황 당시 거리에서 직장을 구하는 실직자들. |
첫째는 혼란(Disorder)이다.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주식시장, 채권시장(특히 회사채), 부동산 시장, 파생상품 시장 등이 한꺼번에 불안해지고 있다.
둘째는 디플레이션(Deflation), 가격의 하락이다. 물가·금리·주가·부동산 가격 등 대부분의 가격이 다 하락할 것이다. 물론 올해 경제는 대략 上低下高(상저하고), 곧 상반기의 극심한 부진이 하반기에 가서 조금 나아지는 형태로 예상하고 있으므로 하반기에 상대적으로 경기가 좀 나아지면 금융시장은 먼저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그 전에는 전반적으로 힘들 것이다.
셋째는 불황(Depression)이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轉移(전이)되면서 실물경제에 극심한 불황이 나타나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잉여인력과 잉여설비가 증가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넷째는 디레버리지(Deleverage) 현상이다. 빚, 곧 남의 돈을 빌려다 무언가 하는 것이 줄어들 것이다.
다섯째는 달러사용 기피성향(De-Dollarization)이다. 달러의 가치하락 내지는 일정 부분 기피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역사상 가장 화끈한(?) 마이너스 성장 현상은 미국의 대공황 때 나타났다. 실업률은 25%까지 상승했다. 당시 물가를 이용하여 계산한 경상 GDP는 4년 만에 절반으로 하락했다. 주가는 400에서 40 근처로 거의 10분의 1이 되었고, 은행의 숫자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깊고 길었던 공황도 케인스와 루스벨트 대통령의 합작품인 뉴딜정책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1938년 여름부터 다시 불황 국면이 오기 시작해 실업률이 다시 20%대로 올라갔는데, 이때 미국을 구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 국면에서 유럽의 공급설비 축소, 戰費(전비) 지출을 위한 화끈한 재정적자 등의 덕분으로 미국경제는 급속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결국 실업률은 1942년 여름 완전고용상태로 복귀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유연성과 自己復元力(자기복원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마이너스 성장의 경험은 수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주장은 하도 많이 들어서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분명 맞는 이야기다.
경제주체들은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되, 위기 이후 상황을 고려한 각종 ‘컨틴전시 플랜(비상 대응책)’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실물자산 등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 경제에 부족한 자원이나 에너지를 최대한 확보하는 계기가 마련되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 경제시스템에 내재된 불안요인을 파악하고 이를 최대한 미리 방지하는 안정화 장치 역할을 할 제도들을 많이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아가 사회적 불안 요인과도 싸워야 한다. 특히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서 힘들어진 사회적 弱者(약자)들을 돌보는 한편, 이들의 등 뒤에 숨어서 반사적 이익을 노리는 세력을 차단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