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相旻
⊙ 1962년 경남 진해 출생.
⊙ 서울大 심리학과 졸업. 美 하버드大 심리학 박사.
⊙ 서울大 강사, 세종大 교육학과 교수. 現 연세大 인문학부 심리학 전공 교수.
⊙ 저서: <디지털 괴짜가 미래 소비를 결정한다> <대한민국 사이버 신인류>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워라> <대한민국 사람이 진짜 원하는 대통령> 등.
⊙ 1962년 경남 진해 출생.
⊙ 서울大 심리학과 졸업. 美 하버드大 심리학 박사.
⊙ 서울大 강사, 세종大 교육학과 교수. 現 연세大 인문학부 심리학 전공 교수.
⊙ 저서: <디지털 괴짜가 미래 소비를 결정한다> <대한민국 사이버 신인류>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워라> <대한민국 사람이 진짜 원하는 대통령> 등.
2008년 한국 사회에는 아주 뚜렷한 대중의 쏠림 현상들이 있었다. 상반기 동안 政局(정국)을 뒤흔들었던 촛불시위가 현실 세계에 일어난 狂風(광풍)이라면, 하반기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군 미네르바의 글은 사이버 세상의 태풍이었다.
2008년 3월부터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에서 경제 논객으로 활동했던 미네르바의 존재는 경제위기가 닥쳐오던 9월부터 뚜렷이 부각됐다. 대통령이나 경제부처 장관이 “경제위기가 없다”고 주장할 때, 그는 사이버 세상에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환율 급등을 이야기했다.
극단적으로 보였던 그의 주장이 실제 경제상황을 예견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인터넷상에서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언론들은 그가 누구인지 묻기 시작했다. 아니, 그가 누구일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가 쏟아졌다. 사이버 공간에 올려진 그의 글들을 현실의 경제전문가라는 분들이 분석하고, 심지어 고위 공직에까지 올랐던 한 저명한 경제학자는 그를 두고 ‘국민의 경제스승’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 모든 일들은 현실의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의 존재가 神話的(신화적)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현실에서 경제전문가를 자처했던 대통령이나 경제부처 장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과정과 일치한다. 미네르바는 제도권 전문가들이 감히 이야기하지 못했던 경제위기를 예측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둔갑했다.
일부에서는 사이버 공간에서만 나타나는 미네르바에게 名品(명품)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를 ‘우리 사회의 0.1%에 속하는 최상위 계층의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美化(미화)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미네르바는 ‘亂世(난세)에 숨어있는 예언자’의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다. 현실 세계의 경제 首長(수장)이 경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아니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미네르바는 역설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예측을 하는 사람이 됐다.
‘산업화 시대의 우등생’ vs ‘디지털 시대의 괴짜’
미네르바 신드롬은 검찰이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인물을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전격 체포하면서 또 다른 차원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의 정체가 밝혀진 후에도 狂風과 반응이 있었다. 법원이 구속영장까지 발부한 상황에서 나타난 대중의 반응은 과거 황우석 사태, 신정아 파문, 그리고 촛불사태 때 나타났던 대중의 반응과 흡사하다.
자신들이 믿고 있었던 사실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대중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심지어 “체포된 미네르바가 가짜일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자신들이 기대했던, 아니 믿고 싶었던 영웅의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화가 만들어질 때,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신화의 주인공은 영웅이어야 했다. 현실의 그 존재가 영웅의 모습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때, 그 현실의 실체는 믿고 싶은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라고 할 때, 신정아 사건이라고 할 때, 광우병의 위험 운운하면서 촛불시위를 할 때, 대중의 마음은 ‘분명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어떤 현상’을 경험하는 상황이었다. 대중이 찾았던 것은 자신들이 믿고 싶었던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줄기세포’, ‘학력’, ‘광우병’ 등의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됐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없는 대중이 大勢(대세)라고 하는 그 무엇인가를 추종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 이런 대세 추종 현상은 현실이나 사이버 세상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발생한다.
미네르바 현상은 대세 추종의 성향이 있는 대중의 심리와 산업화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대립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언론이나 대중은 미네르바를 사이버 공간의 ‘경제대통령’이라 부르면서, 현실의 경제부처 장관과 경제 전문가라는 대통령을 조롱했다.
전문대 학력, 경제학 獨學(독학), 無職(무직)이라는 미네르바의 實體(실체)는 우리 사회에서 마치 산업화 시대의 우등생과 디지털 시대의 괴짜가 맞붙은 상황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바로 산업화 시대의 인간과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 가진 서로 다른 세상에 대한 마음의 지도였다. 각자의 마음의 지도는 동일한 사건이나 대상에 대해 만들어졌지만, 그 지도의 모습이나 지도를 통해 찾을 수 있는 방향은 전혀 달랐다.
대중이 미네르바에 열광하고, 그 정체가 드러났을 때 나타난 반응도 바로 산업화 시대의 인간과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 ‘자신이 믿고 싶어한 것’에 대해 판단하는 방식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 차이는 바로 무엇이 정상이며, 무엇이 위험한 것인가를 판단하는 방식의 차이였다.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산업화 시대 우등생’들
대중은 디지털 괴짜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만, 미네르바를 체포한 검찰이나 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은 그를 위험한 인물로 규정한 것 같다. 뭐가 위험한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대중들, 아니 사이버 공간의 네티즌들은 왜, 이자에 대해 열광하나요? 이 사람은 심리적으로 정상인가요? 과대망상증이나 反(반)사회적 성격 장애는 아닌가요?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밝혀진 후, 사람들은 허탈한 듯 이렇게 물었다. 처음부터 백수이고, 경제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무시했을 것인데. 그것이 억울한 것일까?
“자기가 뭐라고”, 심지어, “제 정신이 아닌”이라는 말 속에, 국가경제나 환율, 주가 예측 같은 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읽을 수 있다. 규범과 틀에 의한 기대와 희망이다. 전문가, 특별한 사람이 우리의 삶의 문제를,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심리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미네르바뿐 아니라 황우석이나 신정아, 또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배신당한 것과 같은 그런 실수를 더 이상 하지 않을 방법을 묻는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또 다른 사기나 거짓을 불러일으킨다는 짐작은 못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를 뒤집은 광풍들은 모두 산업화 사회의 우등생들이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틀이나 규범이 바로 이런 현상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규범이나 틀은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여 현재 자신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일 중에서 단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을 때 우리 사회에서는 어김없이 이런 일이 일어났다.
대중들이 그의 글에 관심을 보인 이유
미네르바를 보는 입장은 바로 어떤 패러다임,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미네르바가 체포된 이후 그의 罪(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미네르바 본인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각자가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가족이 파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썼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세상을 혼란하게 한 도덕적 책임에서부터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형사 책임, 심지어 “‘국민들이 정부나 권력주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증오를 확대 유포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물론,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거나, “경제失政(실정)을 저지른 이명박 정부가 엉뚱한 곳에 화풀이한다”는 주장도 많다. 그만큼 서로 다른 세상을 보는 패러다임을 반영한다.
미네르바의 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에 불안해 하면서, 그 속에서 어떻게든 잘살아 보려 한 대중이었다.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한 사람들은 현실의 틀과 규범에 집착한 사람들이었다.
‘거짓 예언자’에게 열광하는 대중들
그렇기에 미네르바의 정체가 드러난 후, 대중이 그의 글에 열광했다는 사실은 더 큰 혼란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미네르바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대중들이 그의 글에 관심을 둔 이유다.
모두가 경제위기를 느끼고 불안해 할 때, 우리 사회의 엘리트나 전문가,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무엇이 어떻게 되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대중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시대에 따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이 대중의 마음을 잡게 되면, 그는 先知者(선지자)로, 때로는 惑世誣民(혹세무민)하는 사기꾼으로 평가된다. 그중 어느 쪽이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이든 간에, 後代(후대) 사람들이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그 시대의 민중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며, 그 당시 상황이 어떠했다는 것 정도이다. 지도자가 지도자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고, 민중들이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에 의탁한 상황 말이다.
살기 힘들고 또 세상이 어지럽다 할 때, 대중들은 거짓 예언자에게 열광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대중의 어리석음을 탓하거나 지적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대중이 간절히 찾는 것은 ‘삶이 가진 본질적인 불확실을 줄여 줄 수 있는 분명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현상은 한국 사회의 지도자가 이런 대중의 욕망에 대해 현실 세계에서 충분히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네르바 현상은 현실 세계이든 사이버 세상이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리더의 정체는 동일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것도 알려준다. 현실 세계에는 ‘그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가’하는 것이 ‘현재 그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사이버 세상에서는 과거의 경력이나 지위를 무기로 삼아서 “내가 누군데”하는 방식으로 폼을 잡을 수 없다.
사이버 세상에서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현재 급속하게 현실 세계의 영역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문화가 성숙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현상을 인정하지 않은 채, 과거의 通念(통념)으로 사이버 세계 전체를 범죄시하는 非(비)현실적인 태도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각기 다른 현상에 대해 우리가 어떤 틀로 보고 있는지를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현재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믿는 것과 우리가 실제 경험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철저한 진단과 성찰을 하는 것이다.⊙
2008년 3월부터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에서 경제 논객으로 활동했던 미네르바의 존재는 경제위기가 닥쳐오던 9월부터 뚜렷이 부각됐다. 대통령이나 경제부처 장관이 “경제위기가 없다”고 주장할 때, 그는 사이버 세상에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환율 급등을 이야기했다.
극단적으로 보였던 그의 주장이 실제 경제상황을 예견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인터넷상에서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언론들은 그가 누구인지 묻기 시작했다. 아니, 그가 누구일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가 쏟아졌다. 사이버 공간에 올려진 그의 글들을 현실의 경제전문가라는 분들이 분석하고, 심지어 고위 공직에까지 올랐던 한 저명한 경제학자는 그를 두고 ‘국민의 경제스승’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 모든 일들은 현실의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의 존재가 神話的(신화적)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현실에서 경제전문가를 자처했던 대통령이나 경제부처 장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과정과 일치한다. 미네르바는 제도권 전문가들이 감히 이야기하지 못했던 경제위기를 예측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둔갑했다.
일부에서는 사이버 공간에서만 나타나는 미네르바에게 名品(명품)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를 ‘우리 사회의 0.1%에 속하는 최상위 계층의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美化(미화)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미네르바는 ‘亂世(난세)에 숨어있는 예언자’의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다. 현실 세계의 경제 首長(수장)이 경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아니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미네르바는 역설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예측을 하는 사람이 됐다.
‘산업화 시대의 우등생’ vs ‘디지털 시대의 괴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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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박모(왼쪽)씨가 2009년 1월 1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청사를 나오고 있다. |
자신들이 믿고 있었던 사실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대중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심지어 “체포된 미네르바가 가짜일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자신들이 기대했던, 아니 믿고 싶었던 영웅의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화가 만들어질 때,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신화의 주인공은 영웅이어야 했다. 현실의 그 존재가 영웅의 모습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때, 그 현실의 실체는 믿고 싶은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라고 할 때, 신정아 사건이라고 할 때, 광우병의 위험 운운하면서 촛불시위를 할 때, 대중의 마음은 ‘분명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어떤 현상’을 경험하는 상황이었다. 대중이 찾았던 것은 자신들이 믿고 싶었던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줄기세포’, ‘학력’, ‘광우병’ 등의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됐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없는 대중이 大勢(대세)라고 하는 그 무엇인가를 추종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 이런 대세 추종 현상은 현실이나 사이버 세상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발생한다.
미네르바 현상은 대세 추종의 성향이 있는 대중의 심리와 산업화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대립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언론이나 대중은 미네르바를 사이버 공간의 ‘경제대통령’이라 부르면서, 현실의 경제부처 장관과 경제 전문가라는 대통령을 조롱했다.
전문대 학력, 경제학 獨學(독학), 無職(무직)이라는 미네르바의 實體(실체)는 우리 사회에서 마치 산업화 시대의 우등생과 디지털 시대의 괴짜가 맞붙은 상황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바로 산업화 시대의 인간과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 가진 서로 다른 세상에 대한 마음의 지도였다. 각자의 마음의 지도는 동일한 사건이나 대상에 대해 만들어졌지만, 그 지도의 모습이나 지도를 통해 찾을 수 있는 방향은 전혀 달랐다.
대중이 미네르바에 열광하고, 그 정체가 드러났을 때 나타난 반응도 바로 산업화 시대의 인간과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 ‘자신이 믿고 싶어한 것’에 대해 판단하는 방식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 차이는 바로 무엇이 정상이며, 무엇이 위험한 것인가를 판단하는 방식의 차이였다.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산업화 시대 우등생’들
대중은 디지털 괴짜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만, 미네르바를 체포한 검찰이나 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은 그를 위험한 인물로 규정한 것 같다. 뭐가 위험한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대중들, 아니 사이버 공간의 네티즌들은 왜, 이자에 대해 열광하나요? 이 사람은 심리적으로 정상인가요? 과대망상증이나 反(반)사회적 성격 장애는 아닌가요?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밝혀진 후, 사람들은 허탈한 듯 이렇게 물었다. 처음부터 백수이고, 경제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무시했을 것인데. 그것이 억울한 것일까?
“자기가 뭐라고”, 심지어, “제 정신이 아닌”이라는 말 속에, 국가경제나 환율, 주가 예측 같은 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읽을 수 있다. 규범과 틀에 의한 기대와 희망이다. 전문가, 특별한 사람이 우리의 삶의 문제를,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심리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미네르바뿐 아니라 황우석이나 신정아, 또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배신당한 것과 같은 그런 실수를 더 이상 하지 않을 방법을 묻는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또 다른 사기나 거짓을 불러일으킨다는 짐작은 못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를 뒤집은 광풍들은 모두 산업화 사회의 우등생들이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틀이나 규범이 바로 이런 현상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규범이나 틀은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여 현재 자신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일 중에서 단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을 때 우리 사회에서는 어김없이 이런 일이 일어났다.
대중들이 그의 글에 관심을 보인 이유
미네르바를 보는 입장은 바로 어떤 패러다임,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미네르바가 체포된 이후 그의 罪(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미네르바 본인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각자가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가족이 파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썼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세상을 혼란하게 한 도덕적 책임에서부터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형사 책임, 심지어 “‘국민들이 정부나 권력주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증오를 확대 유포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물론,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거나, “경제失政(실정)을 저지른 이명박 정부가 엉뚱한 곳에 화풀이한다”는 주장도 많다. 그만큼 서로 다른 세상을 보는 패러다임을 반영한다.
미네르바의 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에 불안해 하면서, 그 속에서 어떻게든 잘살아 보려 한 대중이었다.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한 사람들은 현실의 틀과 규범에 집착한 사람들이었다.
‘거짓 예언자’에게 열광하는 대중들
그렇기에 미네르바의 정체가 드러난 후, 대중이 그의 글에 열광했다는 사실은 더 큰 혼란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미네르바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대중들이 그의 글에 관심을 둔 이유다.
모두가 경제위기를 느끼고 불안해 할 때, 우리 사회의 엘리트나 전문가,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무엇이 어떻게 되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대중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시대에 따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이 대중의 마음을 잡게 되면, 그는 先知者(선지자)로, 때로는 惑世誣民(혹세무민)하는 사기꾼으로 평가된다. 그중 어느 쪽이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이든 간에, 後代(후대) 사람들이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그 시대의 민중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며, 그 당시 상황이 어떠했다는 것 정도이다. 지도자가 지도자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고, 민중들이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에 의탁한 상황 말이다.
살기 힘들고 또 세상이 어지럽다 할 때, 대중들은 거짓 예언자에게 열광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대중의 어리석음을 탓하거나 지적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대중이 간절히 찾는 것은 ‘삶이 가진 본질적인 불확실을 줄여 줄 수 있는 분명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현상은 한국 사회의 지도자가 이런 대중의 욕망에 대해 현실 세계에서 충분히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네르바 현상은 현실 세계이든 사이버 세상이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리더의 정체는 동일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것도 알려준다. 현실 세계에는 ‘그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가’하는 것이 ‘현재 그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사이버 세상에서는 과거의 경력이나 지위를 무기로 삼아서 “내가 누군데”하는 방식으로 폼을 잡을 수 없다.
사이버 세상에서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현재 급속하게 현실 세계의 영역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문화가 성숙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현상을 인정하지 않은 채, 과거의 通念(통념)으로 사이버 세계 전체를 범죄시하는 非(비)현실적인 태도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각기 다른 현상에 대해 우리가 어떤 틀로 보고 있는지를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현재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믿는 것과 우리가 실제 경험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철저한 진단과 성찰을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