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문가들: “한국 경제와 정부가 만만하게 보였다”
무책임하고 의도적인 왜곡 기사로 한국경제에 타격 가해
▣ 9월 위기설이란
9월 위기설은 올 9월 중 만기가 도래하는 외국인 보유 채권 규모가 7조원이나 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 외국인이 채권을 모두 팔아 달러로 회수할 경우, 시중금리 상승, 원/달러 환율 급등, 외환보유액 급감 등으로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휩싸일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로 인해 제2의 외환 위기가 온다는 것이 9월 위기설이다.
무책임하고 의도적인 왜곡 기사로 한국경제에 타격 가해
▣ 9월 위기설이란
9월 위기설은 올 9월 중 만기가 도래하는 외국인 보유 채권 규모가 7조원이나 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 외국인이 채권을 모두 팔아 달러로 회수할 경우, 시중금리 상승, 원/달러 환율 급등, 외환보유액 급감 등으로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휩싸일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로 인해 제2의 외환 위기가 온다는 것이 9월 위기설이다.
- 지난 9월 2일 오전 7시 정부 과천청사 국무위원식당에서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당국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가 열렸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차관(오른쪽에서 두번째)이 ‘9월 위기설’에 대해 “국내 외화 유동성을 걱정할 필요 없다”는 내용의 모두 발언을 했다.
지난 9월 1일,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더 타임스>(The Times) 인터넷 판은 ‘한국 경제, 원화 약세 문제가 쌓이면서 검은 9월에 직면할 것(South Korea heads for black September as problems pile up for the ailing won)’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제목부터 1972년 뮌헨 올림픽을 급습했던 지하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을 연상케 하는 으스스한 기사였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한국이 단기외채를 감당할 만한 외환보유고가 없어, 채권 만기가 돌아오는 9월에 다시 외환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가 보도된 후 한국 언론과 시장,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언론들은 앞다퉈 이 기사를 인용 보도했고, 한국의 금융시장은 이날 원/달러 환율이 27원 이상 급등했으며, 주가는 60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몇 개월간 국내에서 ‘9월 위기설’이 떠돌아 가뜩이나 흉흉한 상태였는데, 이 기사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기사가 게재된 다음날인 9월 2일 오전 기획재정부는 정부 과천청사에서 金東洙(김동수) 기획재정부 1차관, 申齊潤(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 등 고위 간부들이 총 출동해, 해당 기사 내용에 대해 반박했다. 신 차관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더 타임스>에 정정보도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국내 언론사들에 전화를 걸어 <더 타임스>의 기사 내용을 부인했다.
해당 기사에 自社(자사) 이코노미스트의 발언이 인용된 영국계 은행 HSBC는 같은 날 “현재 한국이 대외지급불능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IMF 한국사무소 관계자는 “한국이 외환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어떠한 징후도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놓았다. 또 미국의 각종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경제 상황은 문제가 없다”고 논평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해명과 해외금융기관, 신용평가기관들의 성명서 덕분에 <더 타임스> 기사는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으로 인해 단기적인 손해와 국제 신인도(信認度)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한국씨티은행 고위 관계자는 “기사의 내용은 언급할 가치가 없지만, 해외에서 한국 경제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의도된 목적을 가지고 쓴 기사”
<더 타임스>의 해당 기사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경제규모 세계 13위인 한국 경제를 며칠 동안 들었다 놓았다 했을까. <더 타임스> 인터넷 판에서 문제의 9월 1일자 기사를 확인해봤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영국인 레오 루이스. 기자의 바이 라인(by-line: 기사를 작성한 필자의 이름을 넣는 것)을 살펴보니, 해당 기사는 서울發(발)이었다.
태평로에 있는 외신기자클럽에 문의한 결과, 레오 기자는 서울 특파원이 아니었다. 현재 <더 타임스>는 서울 특파원이 없다. 레오 기자는 <더 타임스> 인터넷판 비즈니스면에 ‘Leo Lewis in Asia’(‘레오 루이스의 아시아 이야기’ 정도로 번역: 편집자 주)라는 칼럼을 게재하고 있었다.
朝鮮日報 경제부 기자 출신의 崔聖煥(최성환ㆍ52) 대한생명 경제연구소 상무에게 해당 기사의 문제점에 대해 들어봤다. 최 상무는 “한국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틀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맞춰 쓴 기사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씨티은행 관계자의 말처럼 “<더 타임스> 기자가 한마디로 한국경제를 만만히 봤다”고 말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이 기사의 곳곳에 통계치가 잘못돼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어떤 부분입니까.
“잘못된 팩트(사실)들뿐만 아니라, 기사 전체에 오류가 많아요. 우선 두 번째 단락에서 ‘외환보유고 가운데 500억 달러(274억 파운드)에 달하는 잠재적인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다’는 부분을 보시죠. 우선 한국 정부가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 등에 투자한 건 500억 달러가 아니라, 400억 달러입니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잠재적인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다’는 문장입니다.”
―미국 금융기관에 문제가 생겨서, 400억 달러를 받지 못하면 잠재적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 정부가 투자한 미국 채권들은 신용등급이 ‘트리플 A’인 선순위 채권으로 미국 정부가 유사시 보증을 선 채권이에요. 이 때문에 미국 금융기관에 문제가 생겨도, 미국 정부에 내다 팔 수 있어서 잠재적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9월 8일 미국 정부가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에 구제금융을 베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따라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 기사를 쓴 기자가 아시아 경제를 담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투자한 채권이 어떤 종류의 채권인지 몰라서 이런 문장을 쓴 걸까요.
“한국 정부가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에 몇백억 달러를 투자했다는 내용을 보고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보증한 채권을 샀는데,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고 쓸 수는 없죠. 아마 기자가 이런 사실을 의도적으로 모른 척한 것 같아요.”
“단기 외채 성격 IMF와 다르다”
―다른 부분은 문제가 없습니까.
“다섯 번째 단락에 ‘이달(9월)에 외화 채권 가운데 67억달러가 만기가 되고, 그 가운데 많은 채권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잠재적으로 막대한 원화 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라는 부분에도 비슷한 오류가 나옵니다. 67억 달러의 채권이 만기라는 점은 맞아요. 하지만 ‘채권들의 많은 부분이 만기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라고 쓴 건 이해가 안 가요.
왜냐하면 외화채권은 주로 스와프 거래를 합니다. 스와프 거래는 장래에 채권을 살지 팔지를 미리 정해 놓는 거래입니다. 이 때문에 67억 달러의 채권 가운데 얼마가 만기 연장되는지 여부를 만기 전에 알 수 있습니다. 즉 어느 한날에 67억 달러의 채권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거죠. 기사를 쓴 기자가 이 점을 모를 리가 없는데, 왜 이렇게 쓴 건지 알 수가 없네요.”
―만약 67억 달러가 모두 만기 연장되지 않을 경우, 기사 내용처럼 원화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합니까.
“현재 서울외환시장의 평균 거래 규모가 약 600억 달러입니다. 67억 달러의 채권을 팔고 그만큼 달러를 가져간다고 해도, 大勢(대세)에 지장이 있겠어요?”
최성환 상무는 다음 단락의 ‘IMF는 신흥시장 경제의 경우 9개월간 수입량을 감당할 외환보유고를 권고한다’는 부분은 사실관계가 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디에서 9개월이라는 기간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IMF는 3개월 간의 수입량에 해당하는 외환을 보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했다.
―기사 후반부에 ‘우리나라의 1년 내에 만기가 되는 외채 규모가 2156억 달러로 치솟았다(shot up)’라고 돼 있습니다. 단기 외채가 이 정도면 많다고 볼 수 있지 않나요.
“정확히 따져보면, 6월 현재 2223억 달러예요. 하지만 이 가운데서는 채무라고 볼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어요. 예를 들어 조선업체들이 대금을 선물환으로 매입했거나, 외국은행의 한국지점이 우리 채권에 투자하기 위해 자기들 본사에서 돈을 빌려왔다든가 하는 부분이에요. 이것은 우리 조선업체들이 수출 대금을 받고, 외국은행들 사이에서 돈을 주고받으면 정산되는 겁니다.
더욱 중요한 건 지금의 단기 외채는 과거 IMF 구제금융을 받기 전의 우리나라 단기 외채와 다르다는 점이에요. 과거에는 우리 종금사, 은행들이 과도하게 단기 외채를 달러로 빌려와 장기 투자를 했어요. 이 때문에 정작 외환이 필요할 때 못썼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형식의 채무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 경제 만만하게 봤다”
―기사 가운데 ‘한국이,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감안할 때 외환시장 개입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올해 우리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문제가 될 수준인가요.
“제가 추측하기에, 이 문장이 이 기사가 나온 배경인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7월까지 경상수지 적자는 약 78억 달러입니다. 사실 이 정도 적자 규모를 막대하다(hefty)고 말할 수는 없지요. 만약 적자 규모를 문제 삼으려면, 자본수지 적자 규모를 지적했어야 합니다. 올해 자본수지 적자 규모가 약 110억 달러입니다. 그런데 이 기자는 오히려 적자 규모가 작은 경상수지에 문제가 있다고 했어요.”
―이 문장이 기사가 나온 배경이라는 건 어떤 이유입니까.
“외국 기자의 눈으로 봤을 때, 현재 한국 경제가 삐걱거린다고 비판할 부분은 지난해와 달리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모두 적자로 돌아섰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자본수지(68억 달러)와 경상수지(62억 달러)에서 모두 흑자를 기록했어요.
가뜩이나 세계경제 상황이 안 좋은 상태에서 올해 한국의 쌍끌이 적자가 이어지자, ‘한국 경제에 문제가 생겼군. 그렇다면 향후 어떻게 될지 추측을 해보자’ 뭐 이런 생각으로 기사를 준비했겠지요. 하지만 우리 경제에 문제가 생길 만한 적자 규모는 아니에요.”
최성환 상무는 “이 기사 전체에 ‘우리정부의 외환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뉘앙스가 흐른다”며 “우리 정부가 외국에 호락호락하지 않게 보이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외환 위기 가능성 없다” (HSBC 관계자)
필자가 접촉한 다른 경제전문가들도 최성환 상무의 지적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裵珉槿(배민근ㆍ35) LG 경제연구원 금융경제실 선임연구원의 이야기다.
“<더 타임스>의 기사에서 우리나라 외환 유동성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 외환보유고는 약 2500억 달러로 세계 6위 규모입니다. 이 정도 외환보유고를 가진 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보는 건 억지예요. 아마 IMF 이후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보였고, 외채 비중이 증가해서 위기에 대한 불안심리가 큰 듯합니다. 하지만 대외 채무에 대한 상환 압력이 높지 않고, 기업들의 부채 비율도 낮기 때문에 대응에 어려움은 없을 듯합니다.”
―<더 타임스> 기사에서 핵심은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을 대거 매도해서, 외환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논란이 됐던, ‘9월 대란설’의 해외판인데요.
“현재 외국인들은 낮은 금리로 달러를 빌려서 금리가 높은 우리나라 채권에 재투자하고 있어요. 이들은 수익을 봐도 대부분 충분한 헤지를 걸어놨기 때문에, 환율이나 금리 변동과 상관없이 꾸준히 2%포인트의 이익을 가져가고 있어요. 이는 일반적인 채권 수익률보다 큰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높은 수익을 포기하고 달러로 바꿔 가지고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삼성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 權純旴(권순우ㆍ47) 실장은 “타임스 기사는 국내 위기설을 소스로 해외에서 기사를 썼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고 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더 타임스> 기사에 인용된 HSBC의 이코노미스트는 홍콩 지사 소속이었습니다. 소속은 홍콩이었지만, 이 사람의 한국 경제에 대한 자료는 한국 지사에서 보낸 겁니다. 결국 홍콩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지사의 자료를 토대로 <더 타임스> 기자에게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감을 표시했겠지요.
외신 기자 입장에서 한국의 외환 변동이 심하고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한국 경제에 문제가 생겼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IMF때와 달리, 국내에서 조성된 위기설이 해외로 나가서 기사화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외신 기자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외환위기 때는 한국 경제에 대한 소스를 해외기관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해외 은행에서 차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외국 경제기관들이 한국의 외환 수급 상황에 대해 더 정확히 알 수 있었죠.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릅니다. <더 타임스> 기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9월 만기되는 채권 액수나 만기 연장에 대한 정보를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우리 외환수급 상황을 더 잘 알 수가 없어요.”
현대경제연구원 금융경제실 현석원 선임연구원도 “<더 타임스> 기자가 9월 채권 만기액을 기준으로, 한국 외환위기설까지 언급한 것은 너무 과장한 것”이라고 했다.
“9월 위기설의 내용을 토대로, 외환위기까지 갈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나간 겁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에 84억 달러였던 만기채권 규모가 9월에 67억 달러로 감소했잖습니까? 그런데 해당 기자는 67억 달러의 만기가 도래해서, 외환 균형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썼어요. 1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상환해야 할 부채보다 우리가 받게 될 채권이 약 1000억 달러 정도 많다는 점도 9월 위기설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증거예요.”
<더 타임스> 기사에서는 HSBC의 이코노미스트 발언이 인용되었다. 하지만 HSBC는 기사가 게재된 다음날, 해당 기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영국 HSBC 가 발표한 공식 논평은 다음과 같다.
“해당 기사에서 한국의 단기 채무를 2156억 달러로 표기한 건 오보입니다. 저희 자료에 따르면, 2분기 한국의 단기 채무는 1750억 달러였습니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2430억 달러로 명목상 단기 채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한국의 대외자산 포지션은 여전히 긍정적이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이 대외 지급불능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1997년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는 건 지나칩니다.”
한국은행 홍보실 관계자는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기사를 왜곡했다”고 말했다.
“기사에 나온 HSBC 이코노미스트인 프레드릭 노이만은 ‘<더 타임스> 기자에게 아시아 경제의 일반적인 상황을 얘기했을 뿐 이다’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당 기자는 노이만의 이야기를 엉뚱하게 썼어요. 노이만은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론보도에 만족하는 기획재정부
이 기사가 게재된 다음날인 9월 2일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더 타임스>에 정정보도문을 요청하겠다”고 강조했다. 9월 9일 기획재정부 홍보실에 전화를 걸어 정정보도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봤다. 이 신문사에 대한 정정보도 건은 담당 사무관 한 명이 <더 타임스> 의견란 담당자와 전화 통화를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해당 사무관과 나눈 이야기다.
―현재 정정보도를 요청한 상태입니까.
“<더 타임스>가 정정보도를 할 수 있는지는 저희가 파악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사이트에 있는 의견란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반론 보도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며칠 전 담장자와 전화 통화를 했어요. 이 담당자는 ‘매일 수백통의 반론을 받기 때문에, 현재 게재가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반론보도가 실릴 수 있도록 계속 요청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쓴 레오 루이스란 기자와는 연락이 됐습니까.
“일단 서울 외신기자클럽에 알아보니, 등록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잠깐 서울에 왔다가 기사를 쓴 것 같습니다. 저희가 기자와 통화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기자가 어디 소속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와 우선 얘기를 해야 하지 않나요.
“기사에 대한 의견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가 있으니 그쪽과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담당 사무관과 얘기를 나눈 다음날인 9월 10일 <더 타임스> 온라인 판의 ‘Letters’에는 기획재정부의 반론 보도문이 실렸다. 그 아래에는 한국은행의 짧은 반론보도가 함께 실려 있었다. 하지만 해당 신문사는 한국 경제를 흔들어 놓았던 기사에 전혀 사과하지 않았고, 자신의 기사 가운데 잘못된 팩트들을 정정하지 않았다. 담당 사무관과 다시 얘기를 나누었다.
―정정보도가 나와야 하지 않습니까.
“<더 타임스> 담당자들에게 물어보니, ‘서울의 이코노미스트들과 취재를 해서 쓴 내용이고, 경제 흐름에 대해 견해가 다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경제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니, 반론보도면 맞지 않을까 합니다.”
金大中(김대중) 정권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냈던 陳稔(진념ㆍ68) 전 장관은 “외신 기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도록 노력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더 타임스> 기사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제대로 못 봤기 때문에 나온 겁니다. 과거 제가 경제부총리를 할 때도, 외신 기자들이 오보를 낼 때가 있었어요. 일단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나서, 해당 기자를 만나 우리 입장을 자세히 전달했습니다. 그 기자가 왜 그렇게 기사를 썼는지 확인하고 다시 잘못된 기사를 쓰지 않도록 대화를 많이 했어요.”
―외신 기자들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셨습니까.
“외신 기자들을 자주 만나서 식사하고 우리 얘기를 했지요. 그들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외신 기자들이 한국 경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외신 기자들은 아무래도 한국 기자들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정보를 가질 수 있는 길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외신기자들에게 한국 경제에 대한 IR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앞서 최성환 대한생명 상무는 <더 타임스>의 해당 기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 경제가 외환 유동성을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 근거들의 통계가 틀렸고, 우리가 투자한 미국 채권이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선순위 채권이라는 점 등 여러 사실들을 일부로 못 본 척한 의심이 들어요. IMF, 미국 신용평가사, HSBC 등 모든 금융관계 기관이 해당 기사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어요. 베트남이 지난해 금융위기를 맞은 이유가 일본 다이와 증권의 한 쪽짜리 보고서 때문이었습니다.
문제의 <더 타임스> 기사는 세계 13위 경제대국을 흔들어 놓은 대형 오보입니다. <더 타임스>는 이 기사로 인해 아시아 경제 관련 기사의 신용도가 크게 떨어질 겁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어요. 해외 언론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런 오보를 자주 내면, 우리 경제가 흔들릴 수 있어요. 국제 금융 시장에 비하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규모는 微微(미미)합니다.”●
▣ [박스기사] <더 타임스>의 문제의 기사 번역본
애널리스트들은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의 위기가 커지고 있고, 한국 외환당국이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 및 원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지만 실패해, 이번 달(9월) 한국에 본격적인 외환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정부의 패니 메이, 프레디 맥 및 기타 미국 금융기관 채권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인해, 외환보유고 가운데 500억 달러(274억 파운드)에 달하는 잠재적인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원화 급락을 막을 실탄이 이제 떨어졌다는 의견이다. 시장 흐름을 거스르는 필사적인 구두 및 실질 조치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에서 7월에만 200억 달러를 날렸다.
가계 및 기업 부문이 유가 및 물가 상승 때문에 고통 받자, 한국 정부는 원화 가치를 지탱하기 위해 노력했다. 화물연대 파업 및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시위는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여론의 반영이다.
한국정부의 개입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원화가치는 미 달러화 대비 7% 이상 하락했다. CLSA(크레딧 리요네) 증권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원화가치는 달러 대비 4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 중이며,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여전히 줄어들고 있다”며 “문자 그대로 한국 정부가 더 이상 개입할 여력을 상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더구나 상황은 더욱 극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이달(9월)에 외화채권 가운데 67억 달러가 만기가 되고, 그 가운데 많은 채권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잠재적으로 막대한 원화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의 외환 보유고는 2470억 달러에 달한다. IMF는 신흥시장 경제의 경우 9개월간 수입량을 감당할 수 있는 외환 보유를 권고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약 3200억 달러의 외환 보유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HSBC의 아시아 담당 이코노미스트 프레데릭 노이먼에 따르면, 한국의 단기외채 비율 대비 외환보유고 수준이다. 1년 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한국 외채 규모는 유가에 대한 헤징 수요로 인해 2156억 달러로 치솟았다. 이는 한국의 현재 외환보유고로 명목상으로는 100% 감당할 수 있지만, 미국의 패니 메이 및 프레디 맥 위기로 인해 과연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 외환보유고의 많은 부분은 정부 채권이 아니라 한때 탄탄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일종의 미국 내 모기지 관련 채권이다. 노이먼은 “패니 메이 및 프레디 맥 사태의 전개에 따라, 한국 외환보유고의 상당부분이 유동성이 떨어져 외부 충격에 한국 경제가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외환 보유고 비율은 당국이 원하는 것처럼 높지 않을 수 있어, 원화가치 하락을 방어할 여력이 더 적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록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권 붕괴를 예측하는 이는 별로 없지만, 최근 몇 주를 보면 아시아 3위의 한국 경제는 고유의 취약성이 보인다. CLSA 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 샤밀라 웰란은 “한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감안할 때,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웰란은 “문제는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실제로 얼마나 취약한지 투자자들이 알아차리면 외국자본이 한국을 떠나고.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밝혔다.
치솟는 물가와 가계의 막대한 부채 누적도 추가적으로 불안을 높이는 이유이다. 정부 관계자는 타임스지에 한국 금융시스템이 월가와 영국 런던 시티를 강타한 신용위기의 자가발전 버전에 휩쓸릴 ‘확실한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애널리스트들은 “부실채권, 연체율, 부도 증가세와 아울러 일부 대규모 상호저축은행 파산이 예상된다”고 예측했다.
이 기사가 보도된 후 한국 언론과 시장,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언론들은 앞다퉈 이 기사를 인용 보도했고, 한국의 금융시장은 이날 원/달러 환율이 27원 이상 급등했으며, 주가는 60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몇 개월간 국내에서 ‘9월 위기설’이 떠돌아 가뜩이나 흉흉한 상태였는데, 이 기사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기사가 게재된 다음날인 9월 2일 오전 기획재정부는 정부 과천청사에서 金東洙(김동수) 기획재정부 1차관, 申齊潤(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 등 고위 간부들이 총 출동해, 해당 기사 내용에 대해 반박했다. 신 차관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더 타임스>에 정정보도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국내 언론사들에 전화를 걸어 <더 타임스>의 기사 내용을 부인했다.
해당 기사에 自社(자사) 이코노미스트의 발언이 인용된 영국계 은행 HSBC는 같은 날 “현재 한국이 대외지급불능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IMF 한국사무소 관계자는 “한국이 외환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어떠한 징후도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놓았다. 또 미국의 각종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경제 상황은 문제가 없다”고 논평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해명과 해외금융기관, 신용평가기관들의 성명서 덕분에 <더 타임스> 기사는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으로 인해 단기적인 손해와 국제 신인도(信認度)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한국씨티은행 고위 관계자는 “기사의 내용은 언급할 가치가 없지만, 해외에서 한국 경제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의도된 목적을 가지고 쓴 기사”
<더 타임스>의 해당 기사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경제규모 세계 13위인 한국 경제를 며칠 동안 들었다 놓았다 했을까. <더 타임스> 인터넷 판에서 문제의 9월 1일자 기사를 확인해봤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영국인 레오 루이스. 기자의 바이 라인(by-line: 기사를 작성한 필자의 이름을 넣는 것)을 살펴보니, 해당 기사는 서울發(발)이었다.
태평로에 있는 외신기자클럽에 문의한 결과, 레오 기자는 서울 특파원이 아니었다. 현재 <더 타임스>는 서울 특파원이 없다. 레오 기자는 <더 타임스> 인터넷판 비즈니스면에 ‘Leo Lewis in Asia’(‘레오 루이스의 아시아 이야기’ 정도로 번역: 편집자 주)라는 칼럼을 게재하고 있었다.
朝鮮日報 경제부 기자 출신의 崔聖煥(최성환ㆍ52) 대한생명 경제연구소 상무에게 해당 기사의 문제점에 대해 들어봤다. 최 상무는 “한국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틀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맞춰 쓴 기사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씨티은행 관계자의 말처럼 “<더 타임스> 기자가 한마디로 한국경제를 만만히 봤다”고 말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이 기사의 곳곳에 통계치가 잘못돼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어떤 부분입니까.
“잘못된 팩트(사실)들뿐만 아니라, 기사 전체에 오류가 많아요. 우선 두 번째 단락에서 ‘외환보유고 가운데 500억 달러(274억 파운드)에 달하는 잠재적인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다’는 부분을 보시죠. 우선 한국 정부가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 등에 투자한 건 500억 달러가 아니라, 400억 달러입니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잠재적인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다’는 문장입니다.”
―미국 금융기관에 문제가 생겨서, 400억 달러를 받지 못하면 잠재적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 정부가 투자한 미국 채권들은 신용등급이 ‘트리플 A’인 선순위 채권으로 미국 정부가 유사시 보증을 선 채권이에요. 이 때문에 미국 금융기관에 문제가 생겨도, 미국 정부에 내다 팔 수 있어서 잠재적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9월 8일 미국 정부가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에 구제금융을 베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따라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 기사를 쓴 기자가 아시아 경제를 담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투자한 채권이 어떤 종류의 채권인지 몰라서 이런 문장을 쓴 걸까요.
“한국 정부가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에 몇백억 달러를 투자했다는 내용을 보고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보증한 채권을 샀는데,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고 쓸 수는 없죠. 아마 기자가 이런 사실을 의도적으로 모른 척한 것 같아요.”
“단기 외채 성격 IMF와 다르다”
―다른 부분은 문제가 없습니까.
“다섯 번째 단락에 ‘이달(9월)에 외화 채권 가운데 67억달러가 만기가 되고, 그 가운데 많은 채권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잠재적으로 막대한 원화 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라는 부분에도 비슷한 오류가 나옵니다. 67억 달러의 채권이 만기라는 점은 맞아요. 하지만 ‘채권들의 많은 부분이 만기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라고 쓴 건 이해가 안 가요.
왜냐하면 외화채권은 주로 스와프 거래를 합니다. 스와프 거래는 장래에 채권을 살지 팔지를 미리 정해 놓는 거래입니다. 이 때문에 67억 달러의 채권 가운데 얼마가 만기 연장되는지 여부를 만기 전에 알 수 있습니다. 즉 어느 한날에 67억 달러의 채권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거죠. 기사를 쓴 기자가 이 점을 모를 리가 없는데, 왜 이렇게 쓴 건지 알 수가 없네요.”
―만약 67억 달러가 모두 만기 연장되지 않을 경우, 기사 내용처럼 원화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합니까.
“현재 서울외환시장의 평균 거래 규모가 약 600억 달러입니다. 67억 달러의 채권을 팔고 그만큼 달러를 가져간다고 해도, 大勢(대세)에 지장이 있겠어요?”
최성환 상무는 다음 단락의 ‘IMF는 신흥시장 경제의 경우 9개월간 수입량을 감당할 외환보유고를 권고한다’는 부분은 사실관계가 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디에서 9개월이라는 기간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IMF는 3개월 간의 수입량에 해당하는 외환을 보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했다.
―기사 후반부에 ‘우리나라의 1년 내에 만기가 되는 외채 규모가 2156억 달러로 치솟았다(shot up)’라고 돼 있습니다. 단기 외채가 이 정도면 많다고 볼 수 있지 않나요.
“정확히 따져보면, 6월 현재 2223억 달러예요. 하지만 이 가운데서는 채무라고 볼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어요. 예를 들어 조선업체들이 대금을 선물환으로 매입했거나, 외국은행의 한국지점이 우리 채권에 투자하기 위해 자기들 본사에서 돈을 빌려왔다든가 하는 부분이에요. 이것은 우리 조선업체들이 수출 대금을 받고, 외국은행들 사이에서 돈을 주고받으면 정산되는 겁니다.
더욱 중요한 건 지금의 단기 외채는 과거 IMF 구제금융을 받기 전의 우리나라 단기 외채와 다르다는 점이에요. 과거에는 우리 종금사, 은행들이 과도하게 단기 외채를 달러로 빌려와 장기 투자를 했어요. 이 때문에 정작 외환이 필요할 때 못썼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형식의 채무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 경제 만만하게 봤다”
―기사 가운데 ‘한국이,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감안할 때 외환시장 개입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올해 우리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문제가 될 수준인가요.“제가 추측하기에, 이 문장이 이 기사가 나온 배경인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7월까지 경상수지 적자는 약 78억 달러입니다. 사실 이 정도 적자 규모를 막대하다(hefty)고 말할 수는 없지요. 만약 적자 규모를 문제 삼으려면, 자본수지 적자 규모를 지적했어야 합니다. 올해 자본수지 적자 규모가 약 110억 달러입니다. 그런데 이 기자는 오히려 적자 규모가 작은 경상수지에 문제가 있다고 했어요.”
―이 문장이 기사가 나온 배경이라는 건 어떤 이유입니까.
“외국 기자의 눈으로 봤을 때, 현재 한국 경제가 삐걱거린다고 비판할 부분은 지난해와 달리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모두 적자로 돌아섰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자본수지(68억 달러)와 경상수지(62억 달러)에서 모두 흑자를 기록했어요.
가뜩이나 세계경제 상황이 안 좋은 상태에서 올해 한국의 쌍끌이 적자가 이어지자, ‘한국 경제에 문제가 생겼군. 그렇다면 향후 어떻게 될지 추측을 해보자’ 뭐 이런 생각으로 기사를 준비했겠지요. 하지만 우리 경제에 문제가 생길 만한 적자 규모는 아니에요.”
최성환 상무는 “이 기사 전체에 ‘우리정부의 외환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뉘앙스가 흐른다”며 “우리 정부가 외국에 호락호락하지 않게 보이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외환 위기 가능성 없다” (HSBC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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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7일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왼쪽)과 제임스 록하트 연방주택기업감독청장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美 모기지(주택담보대출)업체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에 2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사실상 국유화하는 대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더 타임스>의 기사에서 우리나라 외환 유동성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 외환보유고는 약 2500억 달러로 세계 6위 규모입니다. 이 정도 외환보유고를 가진 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보는 건 억지예요. 아마 IMF 이후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보였고, 외채 비중이 증가해서 위기에 대한 불안심리가 큰 듯합니다. 하지만 대외 채무에 대한 상환 압력이 높지 않고, 기업들의 부채 비율도 낮기 때문에 대응에 어려움은 없을 듯합니다.”
―<더 타임스> 기사에서 핵심은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을 대거 매도해서, 외환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논란이 됐던, ‘9월 대란설’의 해외판인데요.
“현재 외국인들은 낮은 금리로 달러를 빌려서 금리가 높은 우리나라 채권에 재투자하고 있어요. 이들은 수익을 봐도 대부분 충분한 헤지를 걸어놨기 때문에, 환율이나 금리 변동과 상관없이 꾸준히 2%포인트의 이익을 가져가고 있어요. 이는 일반적인 채권 수익률보다 큰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높은 수익을 포기하고 달러로 바꿔 가지고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삼성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 權純旴(권순우ㆍ47) 실장은 “타임스 기사는 국내 위기설을 소스로 해외에서 기사를 썼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고 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더 타임스> 기사에 인용된 HSBC의 이코노미스트는 홍콩 지사 소속이었습니다. 소속은 홍콩이었지만, 이 사람의 한국 경제에 대한 자료는 한국 지사에서 보낸 겁니다. 결국 홍콩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지사의 자료를 토대로 <더 타임스> 기자에게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감을 표시했겠지요.
외신 기자 입장에서 한국의 외환 변동이 심하고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한국 경제에 문제가 생겼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IMF때와 달리, 국내에서 조성된 위기설이 해외로 나가서 기사화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외신 기자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외환위기 때는 한국 경제에 대한 소스를 해외기관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해외 은행에서 차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외국 경제기관들이 한국의 외환 수급 상황에 대해 더 정확히 알 수 있었죠.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릅니다. <더 타임스> 기사에 나와 있는 것처럼 9월 만기되는 채권 액수나 만기 연장에 대한 정보를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우리 외환수급 상황을 더 잘 알 수가 없어요.”
현대경제연구원 금융경제실 현석원 선임연구원도 “<더 타임스> 기자가 9월 채권 만기액을 기준으로, 한국 외환위기설까지 언급한 것은 너무 과장한 것”이라고 했다.
“9월 위기설의 내용을 토대로, 외환위기까지 갈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나간 겁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에 84억 달러였던 만기채권 규모가 9월에 67억 달러로 감소했잖습니까? 그런데 해당 기자는 67억 달러의 만기가 도래해서, 외환 균형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썼어요. 1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상환해야 할 부채보다 우리가 받게 될 채권이 약 1000억 달러 정도 많다는 점도 9월 위기설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증거예요.”
<더 타임스> 기사에서는 HSBC의 이코노미스트 발언이 인용되었다. 하지만 HSBC는 기사가 게재된 다음날, 해당 기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영국 HSBC 가 발표한 공식 논평은 다음과 같다.
“해당 기사에서 한국의 단기 채무를 2156억 달러로 표기한 건 오보입니다. 저희 자료에 따르면, 2분기 한국의 단기 채무는 1750억 달러였습니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2430억 달러로 명목상 단기 채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한국의 대외자산 포지션은 여전히 긍정적이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이 대외 지급불능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1997년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는 건 지나칩니다.”
한국은행 홍보실 관계자는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기사를 왜곡했다”고 말했다.
“기사에 나온 HSBC 이코노미스트인 프레드릭 노이만은 ‘<더 타임스> 기자에게 아시아 경제의 일반적인 상황을 얘기했을 뿐 이다’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당 기자는 노이만의 이야기를 엉뚱하게 썼어요. 노이만은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론보도에 만족하는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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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념 전 재정경제부 장관. |
―현재 정정보도를 요청한 상태입니까.
“<더 타임스>가 정정보도를 할 수 있는지는 저희가 파악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사이트에 있는 의견란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반론 보도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며칠 전 담장자와 전화 통화를 했어요. 이 담당자는 ‘매일 수백통의 반론을 받기 때문에, 현재 게재가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반론보도가 실릴 수 있도록 계속 요청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쓴 레오 루이스란 기자와는 연락이 됐습니까.
“일단 서울 외신기자클럽에 알아보니, 등록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잠깐 서울에 왔다가 기사를 쓴 것 같습니다. 저희가 기자와 통화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기자가 어디 소속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와 우선 얘기를 해야 하지 않나요.
“기사에 대한 의견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가 있으니 그쪽과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담당 사무관과 얘기를 나눈 다음날인 9월 10일 <더 타임스> 온라인 판의 ‘Letters’에는 기획재정부의 반론 보도문이 실렸다. 그 아래에는 한국은행의 짧은 반론보도가 함께 실려 있었다. 하지만 해당 신문사는 한국 경제를 흔들어 놓았던 기사에 전혀 사과하지 않았고, 자신의 기사 가운데 잘못된 팩트들을 정정하지 않았다. 담당 사무관과 다시 얘기를 나누었다.
―정정보도가 나와야 하지 않습니까.
“<더 타임스> 담당자들에게 물어보니, ‘서울의 이코노미스트들과 취재를 해서 쓴 내용이고, 경제 흐름에 대해 견해가 다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경제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니, 반론보도면 맞지 않을까 합니다.”
金大中(김대중) 정권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냈던 陳稔(진념ㆍ68) 전 장관은 “외신 기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도록 노력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더 타임스> 기사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제대로 못 봤기 때문에 나온 겁니다. 과거 제가 경제부총리를 할 때도, 외신 기자들이 오보를 낼 때가 있었어요. 일단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나서, 해당 기자를 만나 우리 입장을 자세히 전달했습니다. 그 기자가 왜 그렇게 기사를 썼는지 확인하고 다시 잘못된 기사를 쓰지 않도록 대화를 많이 했어요.”
―외신 기자들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셨습니까.
“외신 기자들을 자주 만나서 식사하고 우리 얘기를 했지요. 그들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외신 기자들이 한국 경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외신 기자들은 아무래도 한국 기자들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정보를 가질 수 있는 길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외신기자들에게 한국 경제에 대한 IR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앞서 최성환 대한생명 상무는 <더 타임스>의 해당 기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 경제가 외환 유동성을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 근거들의 통계가 틀렸고, 우리가 투자한 미국 채권이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선순위 채권이라는 점 등 여러 사실들을 일부로 못 본 척한 의심이 들어요. IMF, 미국 신용평가사, HSBC 등 모든 금융관계 기관이 해당 기사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어요. 베트남이 지난해 금융위기를 맞은 이유가 일본 다이와 증권의 한 쪽짜리 보고서 때문이었습니다.
문제의 <더 타임스> 기사는 세계 13위 경제대국을 흔들어 놓은 대형 오보입니다. <더 타임스>는 이 기사로 인해 아시아 경제 관련 기사의 신용도가 크게 떨어질 겁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어요. 해외 언론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런 오보를 자주 내면, 우리 경제가 흔들릴 수 있어요. 국제 금융 시장에 비하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규모는 微微(미미)합니다.”●
▣ [박스기사] <더 타임스>의 문제의 기사 번역본
애널리스트들은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의 위기가 커지고 있고, 한국 외환당국이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 및 원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지만 실패해, 이번 달(9월) 한국에 본격적인 외환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정부의 패니 메이, 프레디 맥 및 기타 미국 금융기관 채권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인해, 외환보유고 가운데 500억 달러(274억 파운드)에 달하는 잠재적인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원화 급락을 막을 실탄이 이제 떨어졌다는 의견이다. 시장 흐름을 거스르는 필사적인 구두 및 실질 조치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에서 7월에만 200억 달러를 날렸다.
가계 및 기업 부문이 유가 및 물가 상승 때문에 고통 받자, 한국 정부는 원화 가치를 지탱하기 위해 노력했다. 화물연대 파업 및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시위는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여론의 반영이다.
한국정부의 개입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원화가치는 미 달러화 대비 7% 이상 하락했다. CLSA(크레딧 리요네) 증권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원화가치는 달러 대비 4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 중이며,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여전히 줄어들고 있다”며 “문자 그대로 한국 정부가 더 이상 개입할 여력을 상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더구나 상황은 더욱 극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이달(9월)에 외화채권 가운데 67억 달러가 만기가 되고, 그 가운데 많은 채권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잠재적으로 막대한 원화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의 외환 보유고는 2470억 달러에 달한다. IMF는 신흥시장 경제의 경우 9개월간 수입량을 감당할 수 있는 외환 보유를 권고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약 3200억 달러의 외환 보유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HSBC의 아시아 담당 이코노미스트 프레데릭 노이먼에 따르면, 한국의 단기외채 비율 대비 외환보유고 수준이다. 1년 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한국 외채 규모는 유가에 대한 헤징 수요로 인해 2156억 달러로 치솟았다. 이는 한국의 현재 외환보유고로 명목상으로는 100% 감당할 수 있지만, 미국의 패니 메이 및 프레디 맥 위기로 인해 과연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 외환보유고의 많은 부분은 정부 채권이 아니라 한때 탄탄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일종의 미국 내 모기지 관련 채권이다. 노이먼은 “패니 메이 및 프레디 맥 사태의 전개에 따라, 한국 외환보유고의 상당부분이 유동성이 떨어져 외부 충격에 한국 경제가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외환 보유고 비율은 당국이 원하는 것처럼 높지 않을 수 있어, 원화가치 하락을 방어할 여력이 더 적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록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권 붕괴를 예측하는 이는 별로 없지만, 최근 몇 주를 보면 아시아 3위의 한국 경제는 고유의 취약성이 보인다. CLSA 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 샤밀라 웰란은 “한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감안할 때,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웰란은 “문제는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실제로 얼마나 취약한지 투자자들이 알아차리면 외국자본이 한국을 떠나고.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밝혔다.
치솟는 물가와 가계의 막대한 부채 누적도 추가적으로 불안을 높이는 이유이다. 정부 관계자는 타임스지에 한국 금융시스템이 월가와 영국 런던 시티를 강타한 신용위기의 자가발전 버전에 휩쓸릴 ‘확실한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애널리스트들은 “부실채권, 연체율, 부도 증가세와 아울러 일부 대규모 상호저축은행 파산이 예상된다”고 예측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