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책 반대론자들에게 굴복하면 경기침체는 가속화되고
금리인상의 부담은 서민에게 돌아갈 것
洪淳英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 1957년 서울 출생.
⊙ 고려대 철학과, 同 대학원 경제학 석사, 미국 워싱턴주립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국토연구원 교통경제실 책임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 역임.
⊙ 現 삼성경제연구소 공공정책실장(상무).
⊙ 저서 : <디지털충격과 한국경제의 선택〉,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등.
금리인상의 부담은 서민에게 돌아갈 것
洪淳英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 1957년 서울 출생.
⊙ 고려대 철학과, 同 대학원 경제학 석사, 미국 워싱턴주립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국토연구원 교통경제실 책임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 역임.
⊙ 現 삼성경제연구소 공공정책실장(상무).
⊙ 저서 : <디지털충격과 한국경제의 선택〉,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등.
- 부산 신선대 부두에서 수출입 화물의 선하역 작업이 진행중이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세계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비틀거리고 있다.
경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경제상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거시지표인 성장, 물가, 고용, 경상수지 모두가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2008년 1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은 소비부진과 투자위축 등으로 전기 대비 0.8%에 그쳤고, 2004년 4분기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2007년 4분기의 1.6%와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2분기에도 사정은 비슷해 개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 동행지수와 선행지수도 4개월 연속 동반 하락함으로써 경기하강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6월에 전년 대비 6%에 육박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인 2.5~3.5%를 크게 상회했다.
일자리 창출 규모도 15만 개에 불과해 당초 예상을 크게 밑도는 부진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경기의 체감온도도 계속 내려가고 있다. 심리위축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힌다면 경기 하강속도는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경상수지가 수출호조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액이 급증하면서 적자상태에 빠졌다. 원자재 가격이 크게 하락하거나 수출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지 않는 한 대외수지도 낙관할 수 없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였는지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처방이 가능하다.<그림 1>
외부 惡材가 1차적 요인
먼저 대외 惡材(악재)를 들 수 있다. 원유, 곡물가 등 원자재 가격 폭등이 새해 벽두부터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해외 수입물가 폭등이 국내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악재는 동시에 터지는 속성이 있는데, 환율상승도 한몫했다. 달러당 900원대 초반에 머물던 지난해의 환율은 우리 경제의 기본실력에 비추어 볼 때 과대평가된 수준이었다. 2003년 이후 2007년까지 일본의 엔화와 중국의 위안화가 상대적으로 변화가 없었는데 한국의 원화만 절상된 것이 비정상이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로 고평가된 원화수준이 한꺼번에 조정되면서 절하 폭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문제였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맞물려 환율 조정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전이되면서 집권 초기 거시정책 기조 전반을 혼란에 빠뜨렸다. 대선공약인 7% 성장을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상승을 유도하여 수출업체인 대기업들을 도와주고 서민들을 희생시킨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그러나 국민총생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출 촉진책이 대기업만의 이득은 아니다. 경제성장과 수출을 유지해야 고용을 확보하고 경상수지 적자도 해소할 것이 아닌가. 더구나 과대평가된 환율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은 비판론자들에게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환율 조정에 왜 대기업과 서민, 중소기업을 등장시켜 이념적 대립을 조장하는가.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쨌든 환율이 물가와 맞물리면서 정책방향이 안정 쪽으로 선회했다. 최근에는 지나친 원화절하를 막기 위해 달러를 시장에 매각하는 시장 개입까지 시행했는데 외환보유고를 낭비한다는 논쟁의 또 다른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 이래도 비판, 저래도 비판, 정책 당국자들에게는 억울하겠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한국의 특수 사정이다.
또 다른 대외 악재는 작년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 불안이다. 이는 올해에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의 호황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금융장세였다. 9·11테러와 IT(정보통신) 버블 붕괴 이후 각국의 중앙은행은 초저금리 정책을 시행했고, 시장에는 돈이 넘쳐흘렀다.
넘쳐나는 통화는 금융파생상품, 私募(사모)펀드(PE), M&A등에 몰려 일부에는 新(신)금융자본주의의 도래라고도 했다. 2004년 이후 과잉 유동성의 부작용을 우려한 선진 각국의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에 나섰고 세계 금융장세는 서서히 내려가는 상황이었다. <그림 2>
완만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국내 주식시장도 금융 불안의 여파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작년보다 크게 하락한 1500대에서 머물고 있다. 수출은 아직도 20% 가까이 성장하는 등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지만 主(주) 대상국은 신흥국과 産油國(산유국)들이다. 이들이 침체에 돌입하면 수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신정부는 이러한 세계 금융경기의 본격적 조정국면과 더불어 출범했다. 세계경제 침체는 우리로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외생변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對內的(대내적)으로 똘똘 뭉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데, 대선 후유증으로 오히려 경기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모두가 국민의 적극적 참여와 지지가 필요한 과제들인데 현실은 사분오열이다.
수출은 당초 우려와는 달리 7월까지 수출증가율 22.7%를 기록하여 전체 성장세를 유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수출이 감소할 경우 외부충격을 흡수할 내수의 완충역할을 단기간에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소비는 2008년 2분기에 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으로 이미 침체 수준에 빠졌다. 6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부담, 과중한 사교육비로 가계의 소비 여력은 크게 손상되어 있다. 또 고령화 사회의 도래와 老後(노후)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보다 저축을 우선시하는 인구지리학적 변화도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올 하반기 성장률은 3%대 중후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자산 디플레이션 가능성
상반기 물가상승을 주도한 국제유가는 투기자금에 대한 규제, 세계경기 하강에 따른 수요 감소로 하향세로 돌아섰다. 유가하락은 반가운 일이지만 세계경제 침체를 예고하는 신호로도 보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하반기 평균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 정도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9%로 예상된다. 올해 한국경제는 경기하강기와 高(고)물가가 맞물린 완만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1년 상승 후 1년 하강이라는 경기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작년의 상승국면에 이은 순환적인 경기하강으로 볼 수 있고, 내년에 다시 상승 사이클을 탈 수 있다. 반면 부동산 경기 침체에 이은 자산 디플레이션, 고용침체, 교역조건 악화 등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험요인이다.
첫번째 문제는 資産(자산) 디플레이션이다. 한국경제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해 있지만 가계자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할 수 있는 자산 디플레이션 위험에 처해 있다.
자산가치 하락은 자산을 담보로 대출해준 금융기관들의 부실로도 연결된다. 2008년 6월말 현재 부동산 담보대출은 비은행권을 포함하면 300조 원에 육박한다. 담보가치 하락은 상환능력을 훼손시키고 1%포인트 금리인상은 이자부담을 3조 원 정도 증가시켜 그만큼 소비여력을 감소시킨다. 우리 경제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자산 디플레이션 방지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림 3>
둘째, 고용 없는 성장이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IT 혁명으로 제조업 생산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한국경제의 고용 창출력이 떨어지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이 성장의 주력군이었을 때는 경제성장은 고용창출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의 주력산업이 기술집약적ㆍ자본집약적 첨단 제조업으로 이동함에 따라 고용 없는 경제성장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교역조건 크게 악화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이미 세계 일류 수준이고 생산성도 높다. 한국의 성장엔진은 여전히 수출을 비롯한 제조업이다. 당연히 성장과 고용창출은 연관관계가 희박해져, 실제로 경제성장률 1%당 취업자 수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산업혁명 초기에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기계가 사람을 몰아낸다고 해서 기계파괴 운동(러다이트 운동)까지 일어났다.
결국 고용창출은 신산업과 기존 산업 중에서 고용 창출력이 높은 서비스 산업의 고도화로 달성해야 한다. <표1>
셋째는 교역조건 악화다. 수출가격이 수입가격에 비해 하락하는 상품 교역조건 악화 현상도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다. 2005년의 교역조건을 100이라 할 때 2008년은 81에 불과해 불과 3년 만에 20% 가까이 악화됐다. 올 상반기에만 교역조건 악화로 인한 실질 무역손실이 GDP의 13.7%에 해당하는 55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사실 올 상반기의 경제성장률은 5%를 넘어 잠재성장률을 넘는 괜찮은 수치다. 그럼에도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현장경기가 우울한 것은 교역조건 악화에 따른 실질 무역손실이 그 원인 중의 하나다.
교역조건 악화는 한국의 자연조건과 산업구조 특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인 정보통신제품은 기술혁신 속도가 빠르고 국제경쟁도 치열하여 시장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 우리의 수입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원자재는 상대적으로 가격변화가 없는 제품들이다. 원유 등 자원의 해외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경제로서는 어려운 사정이다. <그림 4>
경제난국 돌파는 현 정부의 과제뿐만 아니라 우리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그런데 난국돌파의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이 담론 수준에 머물거나 시기를 놓쳐 정책 추진력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특히 경제정책 토론이 한쪽 입장으로 쏠리거나 경제논리보다는 정치쟁점이 되는 수가 많다. 사용하는 용어 자체에 이미 특정 가치관이 담겨있거나, 정책의 시점이나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일반론적 주장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이라는 말이다. ‘인위적’이라는 표현이 ‘자연적’이라는 말과 비교돼 사용되는 문맥에 관계없이 부정적 이미지를 풍긴다. 정책당국자, 여론지도층, 경제학자, 언론 등이 인위적인 부양책에는 반대 입장이다. 그런데 경기 하강기에는 부양책, 경기 과열기에는 긴축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거시정책의 핵심이다. 또 어떤 정책도 인위적이지 자연발생적으로 시행되는 정책이 어디 있는가.
현재 우리 경제는 하강국면에 들어섰다. 하반기에는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크게 하회할 가능성이 있고 고용 사정도 어렵다. 거시정책은 당연히 경기부양 쪽으로 가야 하는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와 유사한 비용상승 인플레이션 상황이었던 1970년대의 석유 파동 때의 교훈을 활용하자.
경제 포퓰리즘 경계해야
당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진 경제상황은 통화정책 당국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고유가와 곡물가 폭등으로 경기가 급랭한 상태에서 세계 각국의 통화당국은 초기에 적극적 통화팽창으로 대응했다. 결과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만 자극해 임금을 비롯한 금리 등 비용부담이 증가하여 공급능력은 위축되고 물가는 더욱 상승했다. 물론 경기하강도 저지하지 못했다. 경기침체하의 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는 범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최근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5.0%에서 5.25%로 인상했다. 성장보다 안정을 택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지만 필자는 해석을 달리하고 싶다. 경기 하강기에 금리를 올리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통화 당국자들도 인지했을 것이다. 한국은행은 정책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초기에 차단하고 행정부는 재정으로 경기부양을 하는 역할분담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이런 역할분담은 현재의 경기상황으로 볼 때 적절한 정책조합(policy mix)이 될 것이다. 그런데 부양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일반적 담론에 굴복해 정부마저 재정부양책을 포기할 경우, 경기침체는 가속화되고 금리인상 부담은 서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다행스럽게 최근에 원유가가 하향 안정화되는 추세다. 원자재 가격이 안정될 경우 5.25%라는 높은 수준의 정책금리는 언제든 ‘경기 살리기’의 實彈(실탄)으로 동원될 수 있는 여력이 될 것이다.
한국의 재정 상태는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경쟁상대국에 비해 건전하다. 2002년 이후 한국의 재정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 침체기에 일시적으로 GDP대비 1% 정도의 재정적자가 발생해도 경기가 살아나면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경제의 전반적 효율성을 높이고 공급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대외개방 등은 우리가 인내를 갖고 꾸준히 진행되어야 하는 과제들이다. 고령자 및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확충도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원자재 가격폭등을 극복하기 위한 대체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효율화 정책도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다. 그러나 거시안정화 정책은 이와는 별도로 경기상황에 따라 내용이 변화하는 조건부 정책이 되어야 한다. 경기 하강기에도 인위적 부양책은 불가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자.
경제정책에 정치논리와 불필요한 이념적 요소도 불식해야 한다. 자본주의 경제정책은 사유재산권 보호를 기초로 철저하게 경제적 유인을 유도하는 경제논리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질투심이나 특정 정치적 이해를 반영한 이념 지향적 정책 방향은 실패한다는 것이 20세기 이후 역사가 증명한 교훈이다.
포퓰리즘은 이성보다는 감성, 선동에 넘어가기 쉬운 치명적 약점이 있다. 일반 대중이 정의롭다고 생각한 정책들이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불의를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논란의 도마에 오른 기존의 부동산 관련 정책들도 경제논리보다는 질투와 이념적 편가르기의 산물이 아닌지….●
2분기에도 사정은 비슷해 개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 동행지수와 선행지수도 4개월 연속 동반 하락함으로써 경기하강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6월에 전년 대비 6%에 육박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인 2.5~3.5%를 크게 상회했다.
일자리 창출 규모도 15만 개에 불과해 당초 예상을 크게 밑도는 부진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경기의 체감온도도 계속 내려가고 있다. 심리위축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힌다면 경기 하강속도는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경상수지가 수출호조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액이 급증하면서 적자상태에 빠졌다. 원자재 가격이 크게 하락하거나 수출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지 않는 한 대외수지도 낙관할 수 없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였는지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처방이 가능하다.<그림 1>
외부 惡材가 1차적 요인
먼저 대외 惡材(악재)를 들 수 있다. 원유, 곡물가 등 원자재 가격 폭등이 새해 벽두부터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해외 수입물가 폭등이 국내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악재는 동시에 터지는 속성이 있는데, 환율상승도 한몫했다. 달러당 900원대 초반에 머물던 지난해의 환율은 우리 경제의 기본실력에 비추어 볼 때 과대평가된 수준이었다. 2003년 이후 2007년까지 일본의 엔화와 중국의 위안화가 상대적으로 변화가 없었는데 한국의 원화만 절상된 것이 비정상이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로 고평가된 원화수준이 한꺼번에 조정되면서 절하 폭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문제였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맞물려 환율 조정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전이되면서 집권 초기 거시정책 기조 전반을 혼란에 빠뜨렸다. 대선공약인 7% 성장을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상승을 유도하여 수출업체인 대기업들을 도와주고 서민들을 희생시킨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그러나 국민총생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출 촉진책이 대기업만의 이득은 아니다. 경제성장과 수출을 유지해야 고용을 확보하고 경상수지 적자도 해소할 것이 아닌가. 더구나 과대평가된 환율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은 비판론자들에게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환율 조정에 왜 대기업과 서민, 중소기업을 등장시켜 이념적 대립을 조장하는가.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쨌든 환율이 물가와 맞물리면서 정책방향이 안정 쪽으로 선회했다. 최근에는 지나친 원화절하를 막기 위해 달러를 시장에 매각하는 시장 개입까지 시행했는데 외환보유고를 낭비한다는 논쟁의 또 다른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 이래도 비판, 저래도 비판, 정책 당국자들에게는 억울하겠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한국의 특수 사정이다.
또 다른 대외 악재는 작년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 불안이다. 이는 올해에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의 호황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금융장세였다. 9·11테러와 IT(정보통신) 버블 붕괴 이후 각국의 중앙은행은 초저금리 정책을 시행했고, 시장에는 돈이 넘쳐흘렀다.
넘쳐나는 통화는 금융파생상품, 私募(사모)펀드(PE), M&A등에 몰려 일부에는 新(신)금융자본주의의 도래라고도 했다. 2004년 이후 과잉 유동성의 부작용을 우려한 선진 각국의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에 나섰고 세계 금융장세는 서서히 내려가는 상황이었다. <그림 2>
완만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국내 주식시장도 금융 불안의 여파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작년보다 크게 하락한 1500대에서 머물고 있다. 수출은 아직도 20% 가까이 성장하는 등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지만 主(주) 대상국은 신흥국과 産油國(산유국)들이다. 이들이 침체에 돌입하면 수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신정부는 이러한 세계 금융경기의 본격적 조정국면과 더불어 출범했다. 세계경제 침체는 우리로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외생변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對內的(대내적)으로 똘똘 뭉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데, 대선 후유증으로 오히려 경기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모두가 국민의 적극적 참여와 지지가 필요한 과제들인데 현실은 사분오열이다.
수출은 당초 우려와는 달리 7월까지 수출증가율 22.7%를 기록하여 전체 성장세를 유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수출이 감소할 경우 외부충격을 흡수할 내수의 완충역할을 단기간에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소비는 2008년 2분기에 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으로 이미 침체 수준에 빠졌다. 6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부담, 과중한 사교육비로 가계의 소비 여력은 크게 손상되어 있다. 또 고령화 사회의 도래와 老後(노후)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보다 저축을 우선시하는 인구지리학적 변화도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올 하반기 성장률은 3%대 중후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자산 디플레이션 가능성
상반기 물가상승을 주도한 국제유가는 투기자금에 대한 규제, 세계경기 하강에 따른 수요 감소로 하향세로 돌아섰다. 유가하락은 반가운 일이지만 세계경제 침체를 예고하는 신호로도 보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하반기 평균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 정도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9%로 예상된다. 올해 한국경제는 경기하강기와 高(고)물가가 맞물린 완만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1년 상승 후 1년 하강이라는 경기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작년의 상승국면에 이은 순환적인 경기하강으로 볼 수 있고, 내년에 다시 상승 사이클을 탈 수 있다. 반면 부동산 경기 침체에 이은 자산 디플레이션, 고용침체, 교역조건 악화 등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험요인이다.
첫번째 문제는 資産(자산) 디플레이션이다. 한국경제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해 있지만 가계자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할 수 있는 자산 디플레이션 위험에 처해 있다.
자산가치 하락은 자산을 담보로 대출해준 금융기관들의 부실로도 연결된다. 2008년 6월말 현재 부동산 담보대출은 비은행권을 포함하면 300조 원에 육박한다. 담보가치 하락은 상환능력을 훼손시키고 1%포인트 금리인상은 이자부담을 3조 원 정도 증가시켜 그만큼 소비여력을 감소시킨다. 우리 경제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자산 디플레이션 방지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림 3>
둘째, 고용 없는 성장이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IT 혁명으로 제조업 생산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한국경제의 고용 창출력이 떨어지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이 성장의 주력군이었을 때는 경제성장은 고용창출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의 주력산업이 기술집약적ㆍ자본집약적 첨단 제조업으로 이동함에 따라 고용 없는 경제성장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교역조건 크게 악화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이미 세계 일류 수준이고 생산성도 높다. 한국의 성장엔진은 여전히 수출을 비롯한 제조업이다. 당연히 성장과 고용창출은 연관관계가 희박해져, 실제로 경제성장률 1%당 취업자 수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산업혁명 초기에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기계가 사람을 몰아낸다고 해서 기계파괴 운동(러다이트 운동)까지 일어났다.
결국 고용창출은 신산업과 기존 산업 중에서 고용 창출력이 높은 서비스 산업의 고도화로 달성해야 한다. <표1>
셋째는 교역조건 악화다. 수출가격이 수입가격에 비해 하락하는 상품 교역조건 악화 현상도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다. 2005년의 교역조건을 100이라 할 때 2008년은 81에 불과해 불과 3년 만에 20% 가까이 악화됐다. 올 상반기에만 교역조건 악화로 인한 실질 무역손실이 GDP의 13.7%에 해당하는 55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사실 올 상반기의 경제성장률은 5%를 넘어 잠재성장률을 넘는 괜찮은 수치다. 그럼에도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현장경기가 우울한 것은 교역조건 악화에 따른 실질 무역손실이 그 원인 중의 하나다.
교역조건 악화는 한국의 자연조건과 산업구조 특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인 정보통신제품은 기술혁신 속도가 빠르고 국제경쟁도 치열하여 시장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 우리의 수입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원자재는 상대적으로 가격변화가 없는 제품들이다. 원유 등 자원의 해외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경제로서는 어려운 사정이다. <그림 4>
경제난국 돌파는 현 정부의 과제뿐만 아니라 우리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그런데 난국돌파의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이 담론 수준에 머물거나 시기를 놓쳐 정책 추진력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특히 경제정책 토론이 한쪽 입장으로 쏠리거나 경제논리보다는 정치쟁점이 되는 수가 많다. 사용하는 용어 자체에 이미 특정 가치관이 담겨있거나, 정책의 시점이나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일반론적 주장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이라는 말이다. ‘인위적’이라는 표현이 ‘자연적’이라는 말과 비교돼 사용되는 문맥에 관계없이 부정적 이미지를 풍긴다. 정책당국자, 여론지도층, 경제학자, 언론 등이 인위적인 부양책에는 반대 입장이다. 그런데 경기 하강기에는 부양책, 경기 과열기에는 긴축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거시정책의 핵심이다. 또 어떤 정책도 인위적이지 자연발생적으로 시행되는 정책이 어디 있는가.
현재 우리 경제는 하강국면에 들어섰다. 하반기에는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크게 하회할 가능성이 있고 고용 사정도 어렵다. 거시정책은 당연히 경기부양 쪽으로 가야 하는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와 유사한 비용상승 인플레이션 상황이었던 1970년대의 석유 파동 때의 교훈을 활용하자.
경제 포퓰리즘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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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7일 오전 한국은행 회의실에서 정책금리를 결정하기 위한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렸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회의 시작에 앞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
최근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5.0%에서 5.25%로 인상했다. 성장보다 안정을 택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지만 필자는 해석을 달리하고 싶다. 경기 하강기에 금리를 올리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통화 당국자들도 인지했을 것이다. 한국은행은 정책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초기에 차단하고 행정부는 재정으로 경기부양을 하는 역할분담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이런 역할분담은 현재의 경기상황으로 볼 때 적절한 정책조합(policy mix)이 될 것이다. 그런데 부양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일반적 담론에 굴복해 정부마저 재정부양책을 포기할 경우, 경기침체는 가속화되고 금리인상 부담은 서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다행스럽게 최근에 원유가가 하향 안정화되는 추세다. 원자재 가격이 안정될 경우 5.25%라는 높은 수준의 정책금리는 언제든 ‘경기 살리기’의 實彈(실탄)으로 동원될 수 있는 여력이 될 것이다.
한국의 재정 상태는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경쟁상대국에 비해 건전하다. 2002년 이후 한국의 재정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 침체기에 일시적으로 GDP대비 1% 정도의 재정적자가 발생해도 경기가 살아나면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경제의 전반적 효율성을 높이고 공급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대외개방 등은 우리가 인내를 갖고 꾸준히 진행되어야 하는 과제들이다. 고령자 및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확충도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원자재 가격폭등을 극복하기 위한 대체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효율화 정책도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다. 그러나 거시안정화 정책은 이와는 별도로 경기상황에 따라 내용이 변화하는 조건부 정책이 되어야 한다. 경기 하강기에도 인위적 부양책은 불가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자.
경제정책에 정치논리와 불필요한 이념적 요소도 불식해야 한다. 자본주의 경제정책은 사유재산권 보호를 기초로 철저하게 경제적 유인을 유도하는 경제논리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질투심이나 특정 정치적 이해를 반영한 이념 지향적 정책 방향은 실패한다는 것이 20세기 이후 역사가 증명한 교훈이다.
포퓰리즘은 이성보다는 감성, 선동에 넘어가기 쉬운 치명적 약점이 있다. 일반 대중이 정의롭다고 생각한 정책들이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불의를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논란의 도마에 오른 기존의 부동산 관련 정책들도 경제논리보다는 질투와 이념적 편가르기의 산물이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