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柄淏의 경제 레이더] ‘경제 대통령 李明博’ 희망은 있는가? : 월간조선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실용과 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내건 李明博(이명박) 행정부의 출범 4개월을 지켜본 총평이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경제 회생을 위해 대통령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다면,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외부 환경은 이제껏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이는 곧바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걸었던 ‘경제 회생’이란 기대감이 추락할 수 있음을 뜻한다.

출범 초기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어려움을 경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은 던진다면, 한마디로 ‘가볍게 보았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 섬기기를 거듭 강조해 온 이 대통령은 나의 견해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영인으로 입지전적인 업적을 만들어 온 이명박 대통령은 은연중에 ‘경제는 내가 제일 잘 안다’ ‘경제만큼은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본다.

오랜 기업인 생활을 통해 아쉽게 여겼던 부분도 많을 터이고 ‘이것저것 고치면 더 잘 될 텐데’라는 생각도 자주 했을 것이다. 경영인으로서의 성공경험은 경제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잘할 수 있다는 過信(과신)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쇠고기 협상 건만 하더라도 과신이 빚어낸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영의 세계’와 ‘경제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경영의 세계는 자원의 배분에서 지시와 통제를 기본 원리로 한다. 하지만 경제의 세계는 자원의 배분에서 지시와 통제가 통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자원의 배분은 익명의 다수가 얼마만큼 자유롭게 교환과 교역을 행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 중요하다. 한쪽을 움직이는 기본 원리가 지시와 통제라면, 다른 한쪽은 교환과 교역이다.

때문에 경영자로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경제는 잘 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경영의 세계와 경제의 세계는 전혀 다른 원리가 지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고, 신중하게 경제 문제를 대해야 한다.

경제 주체들에게 믿음 못 줘

경영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하라’ 혹은 ‘저렇게 하라’는 것으로 하나의 조직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익명의 다수로 이루어진 경제의 세계에서 그런 요구는 불필요한 간섭으로 부작용을 낳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업이나 소비자, 투자자 같은 경제 주체들이 저마다 경제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소비를 하건 투자를 하건 앞을 내다볼 수 있을 때 경제 주체들은 행동에 나서게 된다. 예측 가능성이란 면에서 보면 초기 100일 동안 새롭게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행보가 중요했다.

이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있는가를 보면서 경제 주체들은 믿음을 갖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신이 생긴다. 불행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의 초기 100일은 쇠고기 협상 후유증과 거리를 메운 데모로 채워졌다. 시위의 명분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불법 시위가 판을 치고 공권력은 철저히 조롱당했다.

그곳에서 보통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이 입으로는 ‘기본질서 준수’를 외치지만 이를 강력하게 집행하려는 어떤 의지도 없음을 목격했다. 불법 시위가 두 달 이상 계속되고 공권력이 조롱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집권층을 보면서 투자를 원하는 사람이나 돈을 소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인간이란 현재를 보고 미래를 유추하게 마련이다. 이 정도 일을 원칙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과연 이 정부가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다수의 경제 주체들은 “현 정부 집권 5년 동안 이런저런 명분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일부 세력들은 “세게 밀어붙이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개혁정책 추진
자산 초기에 소진

집권한 사람들이 집권 초기에 익명의 다수에게 어떤 시그널을 보내는가가 중요하다. 불법에 대해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맞설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다. “촛불을 보고 반성했다”고 고개를 숙이는 대통령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생업에 종사하고 투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행정부에 기대하는 것은 특별한 도움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환경이다. 이는 곧 안정적인 정국과 ‘불법에 대해선 어떤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책임을 묻는 분위기 조성’을 뜻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법적인 일들이 예사롭게 행해지고,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면 대통령이 아무리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쳐봐야 허사가 되고 만다.

아무튼 특별한 반전의 기회가 없을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신뢰나 신망을 되찾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대통령은 개혁적인 정책들을 추진하는 데 필수적인 정치적 자산을 초기에 대부분 소진했다. 국민들은 이미 ‘경제 대통령 이명박’이 그다지 유능하지 않다, 기대에 휠씬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혹은 속았다는 반응일색이다. 이런 선입견은 여간해서는 뒤집기 어렵다.

경제가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수록 리더의 판단 능력과 신속하고 올바른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나 타이밍 등을 보면 대통령 자신이 상황에 대한 인식과 조치에 있어 큰 문제가 있음이 발견된다. 항상 뒷북을 치고, 정책의 타이밍을 놓치고 있으며, 민심의 흐름을 역행함으로써 효과를 반감시키는 상황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필자는 국민들이 지나치게 이 대통령의 능력에 대해 사실 이상으로 후한 점수를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대통령의 경력 대부분을 차지했던 시대에 오늘과 같은 CEO라는 존재는 거의 무의미했다. 늘 오너가 있었고, 주어진 일을 확실히 처리하는 사장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주어진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과,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오너 사장과 월급 사장은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實用으로는 국정난제 해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左). 강 장관은 새 정부 초기 성장률에 지나치게 집착해 무리한 고환율 정책을 펴서 경제위기를 가속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정부가 내건 기치는 實用(실용)이다. 그런데 실용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실용이란 사안에 따라 공리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믿음 체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매사를 실용적으로 한다는 것은 사안에 따라 이익이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혹평을 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내건 경제의 국정철학인 실용으로는 지난 10여 년 축적되어 온 폐해를 해결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모든 평등주의적인 정책의 주변에는 利害(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람들이나 단체들이 득실대고 있기 때문이다. 매사를 실용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주장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이해를 조정해 가면서 일을 추진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할 때 과연 현재의 겹겹이 쌓여 있는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하는 시늉만 내다가 끝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행정부처 조정 문제는 속은 아무런 변화가 없고, 일부 부처의 이름을 바꾸고 몇 개 부서를 통폐합하는 외관상의 化粧(화장)을 약간 손질하는 것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수도권 규제 역시 지방자치단체와의 이해관계 조정 때문에, 국영기업 민영화는 관련 노동단체들과의 갈등 문제 등을 고려하면 현상유지를 고수하는 것이 정치인 입장에서 유리할 수도 있다. 한국 경제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들, 그러나 반대 세력에 의해 큰 저항을 맞게 될 과제들이 앞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을 가지기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야 하는 길은 한국 사회에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평등주의적이고 反(반)자유주의적 정책들을 신속하게 걷어내는 일이다. 장사는 셈으로 할 수 있지만 정치는 셈만으로는 할 수 없다. 특히 10년간 쌓이고 쌓인 폐해를 고쳐 나가야 하는 역사적 소임을 갖고 출범한 정부라면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불행히도 이번 정부는 신념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첫 단추를 끼웠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전반기의 경제 상황은 큰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외부 환경 가운데서 어느 것 하나 우호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중요하다. 경제 팀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관련 부처 사이에 유기적인 협조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발생 가능한 위기 상황에 대해 행정부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음을 내·외부에 확연하게 알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10여 년 전에 외환위기라는 뼈아픈 실책을 경험했다. 위기관리 능력을 강화하는 일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하나는 경제 관련 부처의 팀워크를 위한 조직 구조의 합리적인 개편을 뜻한다. 통합과 조정이란 수평 관계에서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다. 굳이 서열을 두지 않더라도 경제 문제를 추진해 나감에 있어서 불협화음이 바깥으로 지나치게 튀어나오지 않고 내부의 조정 기능을 충실히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의 개편이 필요하다.

또한 지나치게 官(관) 출신 일변도의 인사 구성에 있어서도 충분한 검토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올드 보이’들이 전권을 휘두르는 상황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新舊(신구) 간의 조화, 官民(관민) 출신 사이의 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4개월 동안 비서실과 내각 운영상의 문제점이 자주 바깥으로 드러난 적이 있다. 이 대통령 자신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안 건건에 대해서 조직의 위계질서를 고려하지 않고 맨투맨 지시 등이 지나치게 빈번하게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 문제는 다른 문제들에 비해서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크게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동안의 국정 운영의 난맥상 특히 비서실의 유기적 협조 체제 부재와 내각의 활동 부진에 대해선 이를 책임지고 있는 리더로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명박 행정부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경제 상황은 그럭저럭 돌아가게 될 것이다. 다행히 행정부가 경제 주체들에게 강한 믿음을 심어주고 동시에 좋은 정책을 제시할 수 있다면 한결 상황은 나아지리라 본다. 하지만 4개월을 지켜보면서 이 대통령이 경영인으로서는 좋은 성과를 낸 분이라고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성과를 창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경제 문제에 대한 지나친 과신을 버리고,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정확하게 깨닫고, 원칙 중심으로 시장 참여자에게 법질서 유지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미봉책에 가까운 정책이 아니라 좋은 정책 즉 자유주의적 정책을 소신 있게 추진하고, 좋은 인재로 구성된 팀들로 하여금 유기적인 협조 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면 초반기의 부진을 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우리는 늘 희망을 갖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