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법치 붕괴’와 ‘독재’ 초래한 각국의 사법개혁 : 월간조선

더불어민주당이 사법부(司法府)를 향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다. 사법부의 구성과 운영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개혁안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려는 제도들이 위헌(違憲)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짙게 배어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0월 20일 ‘사법개혁 6대 의제’를 담은 사법개혁안을 발표하고 정기국회 내 강행 처리를 예고했다. 여섯 가지 과제는 ▲대법관 증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의 다양화 ▲법관평가제 도입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재판소원(訴願) 제도 신설이다.

민주당은 대법관 정원을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려 상고심 지연을 해소하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변경해 사법 구조를 개편하겠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민 기본권 강화’를 앞세워 법관평가제와 판결문 공개 확대를 추진하고, 압수수색영장에 대한 사전심문제까지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원 판결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시켜 위헌적 재판에 대한 구제(救濟)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시했다.

그러나 이번 사법개혁안은 실질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약화시키고 정치권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정략적 구조 개편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겉으로는 국민 기본권 강화와 사법 신뢰 회복을 내세우지만, 대법관 증원과 추천위원회 구성 변화는 특정 세력이 사법 인사(人事) 체계를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관 26명 중 보수·중도는 3명만 될 수도

6월 4일, 대통령 취임 선서식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조희대 대법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이후 이 대통령은 “정치가 사법에 종속됐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소위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사진=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려 하고 있다. 겉으로는 ‘상고심 지연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향후 정권이 다수의 대법관을 새로 임명해 사법부의 이념적 구도를 재편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헌법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을 거쳐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선고 장면.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려고 한다. 그럴 경우 이재명 대통령이 퇴임 때까지 임명할 수 있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최대 22명에 달한다. 사진=뉴시스

2030년 5월 이재명(李在明) 대통령의 임기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조희대(曺喜大) 대법원장 퇴임(2027년 6월) 이후 이 대통령은 후임 대법원장을 포함해 자신의 임기 중 퇴임하는 대법관 7명의 후임자까지 임명할 수 있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역시 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행사하게 된다. 조 대법원장 재임 시 퇴임하는 3명의 후임자 임명까지 고려하면, 대법관 증원이 실현될 경우 전체 26명 중 최대 22명을 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이른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마용주 대법관을 포함하면, 26명 중 보수·중도 성향 대법관은 3명만 남는 기형적 구도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은 사법부의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 대법원이 특정 정권이 선임한 인사들로 과도하게 채워져 이념적 균형이 무너질 경우, 사회 전반에 법적 강제력을 지닌 대법원 판결이 정권의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될 위험이 높아진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해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정치권의 영향력에 종속되는 셈이다. 이는 삼권분립(三權分立)과 국민 기본권 보장을 천명한 헌법정신에도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법개혁’인가 ‘사법 장악’인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안은 정치적 개입의 여지를 넓힐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민주당은 ‘시민 참여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로는 추천권을 가진 정치 세력이 위원 구성에 보다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지적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제도가 운영될 경우, 사법부 인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현행 법원조직법 제41조의2에 따르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대법원장이 제청할 대법관 후보를 추천하기 위해 설치되며 위원장 1명을 포함해 총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구성은 ▲선임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법무부 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대법관이 아닌 법관 1명 ▲변호사 자격이 없는 각계 전문가 3명이다. 위원장은 이들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정부 측 인사는 법무부 장관 1명에 불과해, 현재 구조에서는 정부나 정치권의 개입 여지가 사실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참여 확대 ▲소수자·사회적 약자 대변 ▲민주주의의 강화 등을 이유로 추천위원회 구조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위원 구성을 ‘다양화’한다는 명분 아래 특정 성향 인사들이 추천위에 진입할 경우, 사법부의 독립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방안 역시 우려를 낳고 있다. 겉으로는 사법 투명성과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법부를 여론의 장(場)으로 끌어내 정치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평가제 또한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도 법관 평가는 법원 내부의 절차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외부 평가까지 도입될 경우 재판 과정에 여론이나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될 위험이 존재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법관이 여론의 압력을 의식하게 되면, 법과 원칙보다 대중의 감정을 의식한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법관평가제는 사법 신뢰 회복보다는 오히려 사법부를 정치와 여론의 영향권에 더 깊이 끌어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법부를 여론의 場으로 끌어내 정치화?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도 사법 절차와 수사 체계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제도는 법원이 영장 발부 전 단계에서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을 직접 심문하거나, 경우에 따라 피압수자 측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수사의 신속성과 비밀성을 저해할 수 있다. 수사 방향이 노출되거나 증거 확보가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사법부가 정치적 영향력에 노출된 상황에서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사 과정이 왜곡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적 사건이나 권력형 비리처럼 민감한 사안에서 심문 절차가 수사기관 견제 또는 무력화의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취지보다는 수사기관 통제를 강화하려는 정략적 목적에 따라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헌법상 헌재 권한 아닌 ‘재판소원’… 개헌해야 가능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장과 위원들이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사법개혁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의 ‘재판소원’ 도입 주장은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재판소원이란 법원의 확정판결 자체를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위헌 여부를 다투는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헌재가 사실상 대법원 위에 군림하는 ‘제4심 기관’이 된다. 헌법 제111조는 헌재의 권한을 ▲위헌 법률 심판 ▲탄핵 심판 ▲정당 해산 심판 ▲권한쟁의 심판 ▲헌법소원 심판으로 한정하고 있다. 법원 판결의 위헌성 판단은 헌재의 권한 밖의 일이다. 헌법재판소법 또한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제68조 1항)고 명시한다. 헌재 역시 2000헌마558 결정에서 “법원의 재판은 원칙적으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가 심사할 수 있는 사안은 법률의 위헌 여부이지, 그 법률을 적용한 판결의 내용이 아니다. 만약 재판소원이 도입돼 헌재가 법원 판결을 뒤집게 되면 사법 안정성과 판결의 확정력이 무너지고, 패소자마다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무한 소송’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헌재법 제68조 1항의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면 재판소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헌법이 부여하지 않은 권한을 법률로 창설하는 위헌적 입법에 해당한다. 재판소원을 도입하려면 헌법 제111조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 단순한 법률 개정으로는 불가능하다.

헌재는 더불어민주당의 ‘재판소원’ 입장에 동조하며 “재판소원은 4심이 아니라 기본권 침해 여부만 판단하는 헌법심”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려면 사실관계와 법리 적용을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법원의 재판을 다시 심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헌재가 관할 범위를 자의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법원행정처 축소·폐지와 ‘법왜곡죄’ 신설 주장은…

더불어민주당은 법원행정처 축소·폐지와 ‘법왜곡죄’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의 지휘 아래 법관 인사·예산·조직·정책을 총괄하며 사법부의 독립적 운영을 뒷받침해 온 핵심 기관이다. 민주당은 이를 ‘대법원장 권한 집중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연말까지 폐지 또는 축소한 뒤 국회 추천 인사가 다수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로 인사권과 행정권을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문제는 법원행정처의 기능이 국회 추천 인사들이 주도하는 위원회로 넘어갈 경우, 사법행정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종속되고 법관 임용·전보·승진이 여야 구도에 따라 영향을 받을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국회가 추천한 다수의 인사가 사법행정권을 행사하게 되면 재판의 독립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결국 법원행정처 폐지 주장은 사법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사법부의 독립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법관이나 검사가 법령을 고의로 잘못 적용했을 때 처벌하는 ‘법왜곡죄’ 신설도 위헌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법 해석과 판단은 헌법 제103조가 보장한 ‘법관의 양심에 따른 독립된 재판’의 본질적 요소로, 여기에 형사책임을 부과하면 사법권의 독립이 근본적으로 흔들린다.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은 헌법이 보장한 최후의 사법적 안전장치다. 법관은 정치권력이나 여론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때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법관의 독립성이 무너지면 법치주의 자체가 약화된다.

법리 해석은 본질적으로 논쟁 가능성이 크고, 사회적 쟁점이 걸린 사건일수록 해석 범위가 넓다. 그럼에도 이를 ‘고의적 왜곡’이라는 형사적 기준으로 판단하면, 법관은 자신의 법리 판단보다 정치적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재판은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정권의 이해관계나 여론의 방향에 좌우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고의’ 입증 과정에서 법관의 내심적 동기와 법리 판단 과정을 수사 대상으로 삼게 되면, 이는 재판권을 형사적 통제 아래 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구조가 제도화되면 법관은 더 이상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자유를 온전히 행사할 수 없다. 결국 ‘법 왜곡죄’는 정치권력이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억제하는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

이처럼 더불어 민주당이 내세우는 사법개혁은 명분과 달리 사법부의 독립을 약화시키고, 사법권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우(杞憂)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내세운 사법개혁이 사법부 무력화와 민주주의 후퇴로 이어진 사례는 이미 적지 않다.

사법부 무력화로 국제 제재 받은 헝가리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집권 이후 판사 임용·전보·승진 등 인사권을 전담하는 ‘국가사법청’을 신설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사법부를 무력화했다. 사진=뉴시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재임 1998~2002년, 2010년~)는 재집권 이후 전통적 군사독재나 일당독재와는 다른 형태의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해 왔다. 2010년 총선에서 여당 ‘청년민주동맹’이 의회 의석의 3분의 2를 확보하자, 오르반 정권은 이를 기반으로 헌법과 법률을 대대적으로 개정하며 권력 구조를 재편했다. 표면적 명분은 사법개혁이었다. ‘사법 효율성·투명성 강화’ ‘대법원장 권한 분산’ 등을 내세웠지만, 실제 핵심은 사법부의 인사·행정권을 정치권이 통제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었다.

2011년 제정된 ‘기본법’ 아래 오르반 정권은 사법 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판사 임용·전보·승진 등 인사권을 전담하는 ‘국가사법청’을 신설하고, 그 수장을 총리가 임명했다. 아울러 법관 정년을 70세에서 62세로 줄여 약 300명의 판사가 조기 퇴임하도록 했다. 그 자리는 여당 성향 인사로 채웠다. 이후 사법부 독립성과 권력 견제 기능은 급격히 약화됐다. 대법원장 임명 과정과 법관 배치에도 정치적 영향력이 노골적으로 개입됐다. 정권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주요 재판부에서 배제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가했고, 사법부 구성은 빠르게 여당 중심으로 재편됐다. 그 결과 사법부는 행정부의 위법 행정을 감시·견제하는 기능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헝가리의 사법개혁은 권한 분산과 투명성 강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사법행정과 인사권을 정치권이 직접 행사하는 체제로 변질됐다. 유럽연합(EU)은 헝가리의 제도 개편이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경고했고, 국제변호사협회(IBA)는 “사법부가 입법·행정 권력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2022년 EU 집행위원회는 사법권 장악과 부패를 이유로 ‘법치주의 조건부 메커니즘’을 발동해 헝가리에 대한 약 220억 유로(약 37조 5000억원)의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EU 회원국 중 법치 훼손으로 재정 제재를 받은 첫 사례였다. 프리덤하우스도 헝가리를 ‘EU 내 민주주의 후퇴가 가장 심각한 국가’로 규정하며 “법이 권력을 감시하는 구조에서, 권력이 법을 지배하는 체제로 전환됐다”고 평가했다.

헝가리 사례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법원행정처 폐지’와 ‘국회 추천 사법행정위원회에 의한 법원 인사·행정 관할’ 구상과 비교해 볼 중요한 참고점이다. 겉으로는 권한 분산과 투명성 제고를 외치더라도, 입법부 다수파가 법관 인사·행정권을 장악할 경우 사법행정의 정치화가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판·검사 대숙청 후 親정권 인사 충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법원 인사행정권을 장악한 이후 튀르키예 사법부는 ‘정권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뉴시스

2016년 7월 튀르키예에서는 군 내부 일부 세력이 정부 청사와 방송국을 장악하고 대통령 체포를 시도하는 쿠데타가 발생했다. 수도 곳곳에서 무력 충돌이 이어지며 20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쿠데타는 몇 시간 만에 진압되었다.

그러나 에르도안(2003~2014년 총리, 2014년 이후 대통령) 정권은 이 사건을 사법 체계 전반을 재편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정권은 쿠데타의 배후로 종교 지도자 펫훌라흐 귈렌을 중심으로 학교·언론·금융을 운영해 온 ‘귈렌 운동’을 지목하고, 이 조직이 “수십 년 동안 사법·군·경찰에 인맥을 심어 왔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직후 판사·검사위원회는 판사·검사 2745명을 일괄 해임·구금했다. 사법부 독립성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조치였으나, 이들이 쿠데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구체적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숙청은 계속돼 2017년까지 약 4200명의 판·검사가 해임됐다. 그 공백은 단기 교육을 받은 친정권 성향 인사들이 채웠다. 그 결과 사법부 요직은 정권에 우호적인 인사 중심으로 재편됐다. 검찰 기능도 정권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작동하게 되었다.

에르도안 정권은 인적 숙청에 이어 사법 제도 개편에도 착수했다. 의회는 대법원·고등법원의 구성원 수와 임기를 조정하는 법을 통과시켜 다수의 기존 구성원이 자동 퇴출되도록 했고, 그 자리를 정부가 임명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판사·검사위원회 구성도 바꿔 위원 과반을 대통령과 집권당이 선택하도록 했다. 이로써 판사 인사·전보·징계권이 사실상 정권에 집중됐다. 이후 튀르키예에서는 정권을 비판한 정치인·언론인·학자에게 반(反)테러법상 혐의가 광범위하게 적용됐고, 명확한 증거 없이 장기 구금이나 중형 선고가 반복됐다. 유엔과 주요 인권단체들은 “튀르키예 사법부가 정권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튀르키예의 사례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원행정처 폐지와 ‘법왜곡죄’ 신설 논의와 맞물려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원 인사·행정권이 정치권력의 영향권에 놓이면 재판부 구성, 보직 이동, 징계 등이 정치적 고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일 ‘법왜곡죄’ 로 판사의 법적 판단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면,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법관을 제압하거나 배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 튀르키예 사례는 결국 사법부를 친정권 성향 인사들로 채우려는 대규모 숙청과 ‘법왜곡죄’ 도입이 본질적으로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베네수엘라의 ‘대법관 증원’과 그 결말

베네수엘라 사법부는 우고 차베스(1999~2013년 재임) 정권이 사법개혁을 내세워 대법원 구조와 인사 체계를 정치권력 아래 편입시키면서 급격히 약화됐다.

차베스 정권은 2004년 대법관 수를 20명에서 32명으로 확대하는 법률을 통과시켜, 새로 생긴 12석을 친정권 인사로 채웠다. 국제 인권단체 국제인권감시기구(HRW)는 이 법률에 대해 ‘대법원의 구성을 사실상 다시 짜는 방식으로 독립적 사법부의 토대를 무너뜨린 조치’라고 평가했다. 같은 법률은 기존 대법관들의 임명 적격성까지 국회가 재검토하도록 해, 정권이 사법부를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여지를 크게 넓혔다.

차베스 정권은 사법부 전체의 인적 기반도 흔들었다. HRW에 따르면 2004년 당시 베네수엘라 판사의 약 80%가 신분 보장이 없는 임시·대체직으로 임명돼 있었다. 이는 정권이 판사를 언제든 교체하거나 압박할 수 있는 구조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취약한 인사 구조는 대법원 인적 구성 재편과 맞물려, 사법 체계 전반이 정치권력의 영향 아래 들어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권에 종속된 사법부는 이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 시민단체, 야당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기소 사건에서 정부가 원하는 결정을 반복적으로 내렸다. 반정부 시위 참가자에게 장기 구금과 중형이 선고되는 일도 빈번했다.

차베스 사망 후 집권한 니콜라스 마두로(2013년~) 정권도 사법 종속 구조를 더욱 공고히 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사법부는 정권을 견제하는 헌법기관이 아니라 정권을 방어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비판이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네타냐후 “非선출 권력이 선출 권력 침해”

부패·사기·배임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돌연 “선출 권력이 비선출 권력에 의해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대법원의 권한을 제한하고, 법관 임명 구조를 여당 중심으로 재편하는 ‘사법개혁’에 나섰다. 사진=뉴시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1996~99년, 2006~21년, 2022년~)가 추진한 사법개혁은 본인의 형사재판을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라는 비판을 받으며 국가적 혼란을 초래했다.

부패·사기·배임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네타냐후 총리는 이 사건들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대법원의 권한을 제한하고, 법관 임명 구조를 여당 중심으로 재편하는 개혁을 밀어붙였다. 법원의 사법심사 권한을 제한하고, 법관 임명 제도를 정부·여당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당시 네타냐후 총리는 “국민이 선출한 권력의 자유로운 선택이 비(非)선출 권력에 의해 침해돼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국민의 선택이 도난당하는 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비선출 권력인 사법부가 선출 권력을 위협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셈이다. 이는 12개 혐의로 재판 5건을 받던 중 집권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9월 11일)에서 내놓은 주장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음은 당시 이 대통령의 발언이다.

〈국민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선출 권력들이다. 임명 권력은 선출 권력으로부터 이차적으로 권한을 다시 나눠 받은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권력은 국민이고, 국민주권.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 이걸 우리가 가끔 망각한다. 국회는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들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곳이다. 국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은 입법부의 권한이다.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서 판단하는 것이다. 사법부의 구조는 사법부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 (중략) 사법이란 정치로부터 간접적으로 권한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느 날 전도됐다. 대한민국이 사법국가가 되고 있다. 사법이 모든 걸 결정한다. 정치가 사법에 종속됐다. 위험한 나라가 됐다.〉

이스라엘, 법안 통과됐지만 국민 지지는 저조

네타냐후가 기소된 사건은 ‘사건 1000·2000·4000’으로 불린다. ‘사건 1000’은 해외 부호들로부터 시계, 보석, 고급 술 등 약 20만 달러 상당의 고가 선물을 반복적으로 받고 그 대가로 편의를 제공한 혐의다. ‘사건 2000’은 비판적 언론사를 회유하기 위해 경쟁 매체의 유통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안했다는 정경유착 의혹이다. ‘사건 4000’은 이스라엘 최대 통신기업 베제크(Bezeq)의 대주주에게 수억 달러 규모의 특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자신과 부인에게 유리한 보도를 요구했다는 혐의다.

이런 상황에서 네타냐후는 2022년 총리직에 복귀한 직후 이른바 사법개혁을 밀어붙였다. 개혁안에는 ▲대법원 판결을 국회 과반 표결로 무효화할 수 있도록 하고 ▲대법관추천위원회를 여당이 우위에 서도록 재구성하며 ▲총리 유죄 선고시 자동 해임을 방지하는 조항 등이 포함됐다. 또한 정부의 행정 결정에 대해 대법원이 ‘불합리성’을 이유로 제동을 걸지 못하도록 하는 제한도 마련됐다. 이스라엘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가 결합할 경우, 네타냐후가 향후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제거하는 체계적 방어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 3월 27일, 이스라엘 의회는 정부와 여당이 법관 임명에 더 깊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사법임명위원회 개편안을 표결에 부쳐 67 대 1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차기 의회에서부터 시행되며, 대법관을 포함한 고등법원 판사 임명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국민적 지지는 매우 낮다. 법안 통과 전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IDI)가 2023년 4월 17~27일 이스라엘 성인 7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법개혁안의 핵심 조치를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은 25%에 그쳤다. 반면 응답자의 53%는 ‘개혁이 국가경제와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비선출 권력에 대한 견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개혁안이 사실상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완화하려는 시도라는 국민적 비판에 부딪쳤다. 전국적인 시위가 연달아 이어졌고 국론 분열은 더욱 심화됐다.

‘법치’ 대신 ‘권력의 지배’로

헝가리, 튀르키예, 베네수엘라, 이스라엘 등 여러 국가의 사례는 하나의 공통된 흐름을 보여 준다. 정치권력은 ‘민주주의 강화’ ‘사법 신뢰 회복’ 같은 구호를 내세워 사법개혁을 추진했지만, 그 결과는 사법부의 약화와 정치권력에 의한 종속이었다. 사법부 인사 구조는 정치권력에 의해 재편됐고, 법원의 결정은 정권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작동하는 방향으로 변질되됐다.

해외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경고하는 점은 명확하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종속되면 ‘법의 지배’는 약해지고 ‘권력의 지배’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사법부 독립의 원칙이 무너지면 법관은 법과 양심이 아니라 권력과 여론을 의식하게 된다. 결국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법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누구도 온전한 법적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념 성향이나 지지 정당을 떠나 모든 시민이 마주하게 될 중대한 위험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