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패권 전쟁 속에서 ‘전쟁터 밖에 서있는’ 존재 같은 이재명 대통령과 한국
⊙ ‘新애치슨 라인’에서 소외되는 한국, 미·일은 물론 스페인·노르웨이까지 참가한 해상훈련에서 빠져
⊙ “관세협상 끝낸 나라가 약속 이행하지 않을 경우 高관세 재부과”(러트릭 미 상무장관)
⊙ 한국, ‘역주행 심리’ ‘국뽕 심리’에서 벗어나 현실 직시해야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新애치슨 라인’에서 소외되는 한국, 미·일은 물론 스페인·노르웨이까지 참가한 해상훈련에서 빠져
⊙ “관세협상 끝낸 나라가 약속 이행하지 않을 경우 高관세 재부과”(러트릭 미 상무장관)
⊙ 한국, ‘역주행 심리’ ‘국뽕 심리’에서 벗어나 현실 직시해야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사진=AP/연합뉴스
‘운명의 시간(Doomsday Clock) 89초 진입.’
미국 원자력과학자들이 밝힌 올해 지구 종말 카운트다운이다. 핵공격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시간을 12시로 잡을 경우, 현재 상황이 어디에 있는지를 디지털 시계로 표현한 지수(指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반을 넘긴 2025년, 지구는 멸망 89초 전이다. ‘운명의 시간’ 등장 이후 멸망에 가장 가까워진 상황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핵공격 협박에 있다.
운명의 시간은 1947년 등장했다. 당시는 7분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은 냉전(冷戰) 절정기였다. 미국과 구(舊)소련 모두 원자폭탄보다 수백 배 강력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운명의 시간도 수직상승했다. 그러나 당시 운명의 시간은 120초 전으로 지금보다는 안전했다. 글로벌 시대가 끝났다는 말도 들리지만, 아직 전 세계 대부분은 ‘우리 모두 함께’의 꿈속에 빠져 있다. 현실은 72년 전 동서 냉전 피크 때보다 한층 더 위험하다.
한미정상회담의 과제
8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이 확정됐다고 한국 대통령실이 발표했다. 대통령실에 의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일본에 들러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와도 만난다고 한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관세협상 타결과 관련된 공식 문서 작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7월 30일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지만, 종이로 된 문서가 안 보인다. ‘3500억 달러 미국 투자+1000억 달러 에너지 수입’과 ‘15% 관세’가 대체적인 윤곽일 뿐, 각론은 하나도 없다. 한국 정부는 ‘입장 발표’라는 기묘한 반응을 통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의 장밋빛 미래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갑자기 한국이 미국 조선(造船)산업의 구세주로 떠오른 반면 미국산 쌀과 육류, 농산물 개방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3500억 달러 미국 투자’도 누가, 언제, 어디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 논의된 적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 방미(訪美)의 가장 큰 목적과 의미는 이 ‘오리무중’ 상황을 걷어 내는 데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식 ‘입장 발표’가 아닌, 국가 간 약속 차원의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번 한미정상의 핵심 과제다. 물론 안보 문제도 한미 정상 간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트럼프는 경제와 안보 문제를 분리하려 한다. 이번에는 ‘돈’에 방점을 주고, 안보는 차후의 과제가 될 듯하다.
新애치슨 라인에서 배제되고 있는 한국
8월 7일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200일째였다. 트럼프는 취임 후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외국 정상과 만났다. 아프리카 지하자원 개발을 위해 한꺼번에 5명의 정상을 백악관에 초대한 적도 있다. 그동안 트럼프와 대면한 세계 정상은 60여 명에 달한다. 아시아로 좁혀 보면, 일본·인도·필리핀·호주·이스라엘 등 15개국 정상이나 수반들을 만났다. 한국 대통령은 트럼프와 만나기는커녕, 취임 이틀 뒤인6월 6일 금요일 20분간 심야 통화를 한 것이 전부다.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물샐 틈 없는 철저한 한미동맹’은 갑자기 흔들리고 있다.
여태까지 한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해 ‘트럼프의 의도된 행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이 ‘왕따’라는 의미다.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 문제가 핵심일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21세기 버전 애치슨 라인’은 이미 시작됐다. 이는 일본-필리핀-인도-호주를 엮는 해상 안보 라인으로, 대만을 중심으로 한 ‘대(對)중국 방어망’이다. 한국은 여기서 벗어나 있다. 한국이 ‘대중국 방어망’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8월 5일부터 일주일간 항공모함 3척이 동원된 해상훈련이 필리핀 앞바다에서 실시됐다. ‘21세기 버전 애치슨 라인’의 가동 현장이었다고 보면 된다. 참가국은 미국·영국·일본·스페인·호주·노르웨이 6개국이다. 최신예 전투기 F-35B가 50여 기 이상 동원됐다. 누가 봐도 대만 유사시에 대비한 연합훈련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한국은 없다. 이재명 정부는 북한에 맞선 한미훈련만이 아니라 대중(對中) 자유세계 방어망 참여에도 부정적이다. 윤석열 정부 당시 한국은 대중 방어망 서방연합군 대열에 ‘잠시’ 참여했지만, 문재인 정부 때처럼 이재명 정부도 참여를 꺼리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8월 3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동북아에서 중국은 이웃 국가들에 다소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대통령실은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은 “한중 간 일부 이견이 있더라도, 민생 및 역내 안정과 번영에 기여하는 한중관계를 만들기 위해 지속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언급”이라면서 조 장관 발언 진화(鎭火)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실 발언이 나온 직후, 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주한 중국 대사의 사진을 찢으며 시위를 벌이던 이들을 경찰이 입건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8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시위들을 ‘국익을 훼손하는 혐오시위’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이시바 총리 사진을 찢고 그 나라 대사를 모독해도 경찰 조사 대상이 될지 의문이다.
대만은 ‘21세기 진주만’
‘혹시, 설마’ 하며 버티는 사람들이 아직 있지만, 트럼프와 미국의 궁극적 타깃은 중국이다. 중국 견제, 나아가 중국 약화가 미국의 최종 목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고, 지구는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곳곳에서 미국, 나아가 서방 국가들의 이익과 부딪치고 있다. 1930년대 일본에 대한 대응에서 보듯, 미국은 그냥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대만 무력(武力) 통일이란 명분하에 시진핑이 도전장을 내놓은 즉시 미국과 유럽, 나아가 일본까지 모두 대중국 방어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일본 역사학자 상당수는 대만이 ‘21세기 진주만(眞珠灣)’이 될 것으로 본다. 미국은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어도 참전(參戰)을 자제하고 있다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기화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적의 공격으로 미국 시민들의 적개심이 극에 달할 때까지 중립 노선을 고수하면서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2025년 중국과의 전쟁을 지지하는 미국인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대만 공격=일본과 태평양 미군 시설 공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국민이 태평양 주변 미군의 피해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미군 참전도 당연시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가 무작정 기다리진 않을 것이란 점이다. 중국 군사력과 경제력이 미국을 능가하기 전에 ‘반드시’ 제압해야만 한다는 것이 미국 역사의 상식이자 규칙이다.
2025년 한국은 그 같은 미국적 상식과 규칙에 반하는 변방 아웃사이더에 머물러 있다. 구한말(舊韓末) 조선왕조는 이리저리 빠지면서 ‘중립외교’만 외쳤다. 중국·러시아·일본이 나라 곳곳을 헤집고 다녀도 ‘엄정 중립, 평화 해결’만 주문(呪文)처럼 외웠다. 모두에게 잘 보이려는 ‘셰셰(謝謝) 외교’는 이런 조선왕조 유전자의 부활이라 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한국을 믿지 못하는 이유이다. 트럼프는 지금 전 세계를 향해 “미국과 중국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텔레마코스
8월 7일 아침, 한미정상회담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필자 머리에는 신화(神話) 속 인물 한 명이 떠올랐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Odysseia)》에 등장하는 텔레마코스(Telemachos)다. 오디세우스의 아들로 20년째 집을 비운 아버지를 혼자 찾아 헤매는 고독한 캐릭터다. 오디세우스는 텔레마코스가 태어난 직후 트로이 전쟁에 나선다. 부자지간에 서로 얼굴도 모른다.
이재명 대통령 방미 소식을 듣고 텔레마코스가 떠오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름에 담긴 의미다. 텔레마코스는 그리스어로 ‘전쟁에 멀리 떨어진’ ‘전쟁터 밖에 서있는’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아버지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텔레마코스가 이타카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재 약육강식(弱肉强食) 글로벌 정치 무대에서 벗어난, ‘전쟁에 멀리 떨어진, 전쟁터 밖에 서있는’ 존재다. 미중 대결은 이미 시작됐고, 점차 가속화될 전망이다. 중국에 대한 관세 유예는 트럼프 식 숨고르기일 뿐이다. 쓰나미를 동반한 초강력 태풍이 곧 태평양 양쪽에 밀려들 것이다. 유예가 끝나면 최소 100%, 아니 500% 관세도 중국 측에 퍼부을 인물이 트럼프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그의 머릿속 대부분이 국내정치로 점철돼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검찰개혁, 공짜 지원금, 지방 투어 미팅, 노동계 입장 대변, 산업재해 방지….
물론 이 대통령의 그런 행보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 한국을 둘러싼 현실을 보면 땅과 하늘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운명의 시간 89초 전’은 한국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다.
‘관세 전쟁’ 밖에 서있는 이재명
북핵도 문제지만, 일단 경제가 ‘운명의 시간 89초 전’이다. 중국의 공세에 함몰되는 한국의 경쟁력도 문제지만, 전 세계를 뒤흔든 트럼프의 관세 공격이야말로 경제적 차원의 ‘종말 전 89초’로 한국을 내모는 가장 큰 원인이다.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제조 7개사는 미일 간에 관세협상(미국에 수입되는 일본 상품에 ‘15% 관세’ 부과) 타결 이후 매일 2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고 있다고 한다. 1년이면 70억 달러 정도다. 지난해 일본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 규모는 137만 대에 약 400억 달러다. 올해 수출은 관세로 인해 지난해 총 수출액의 17% 정도 밑지고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 규모는 143만 대에 347억 달러다. 일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한국 수출액도 15% 관세 적용 후 70억 달러 정도 밑진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제조업 이익이란 것이 많아야 10%다. 이익을 많이 창출한다기보다는 고용 안정을 통해 국민들 밥벌이를 보장하는 수준이다. 트럼프의 ‘15% 관세’는 그 같은 ‘기본적인 전제’를 무너뜨린다. 1년에 70억 달러가 마이너스 되는 상태에서 출발하면서, 이익은커녕 제조업 일자리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신문·방송을 보면, 관세협상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자동차산업보다 공장 근로재해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재해 근로자도 중요하지만, 자동차산업도 국가적 관심사다. 대통령 자리는 ‘덕후’, 즉 특정 분야에만 매몰되어 사는 마니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숲과 나무 전부 보면서 대한민국 5000만의 안전과 번영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면, 과일 달린 나무만 볼 뿐, 안정된 수원(水源)을 보장하는 숲은 막 취임한 경제장관 두 명에게 떠맡기는 형세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 정상들이 행하는 식의 ‘관세협상 최고사령관’으로서의 모습이 없다. 막히면 자신이 직접 워싱턴으로 달려가 트럼프와 담판을 짓겠다는 식의 ‘정치적·외교적 결의나 수사’도 관세협상 기간중 아예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재명 대통령을 ‘전쟁터 밖에 서있는’ 존재라고 한 것이다.
둘째는 텔레마코스와 칼이다. 텔레마코스는 성장 후 아버지 소식을 듣기 위해 오디세우스 동료들의 집들을 방문한다. 그리스는 바다로 연결된 해양국가다. 전부 배를 타고 파도를 가로질러 찾아가야 한다.
텔레마코스는 배에서 내릴 때 먼저 자신의 칼부터 땅위에 던졌다. 낯선 땅에 대한 예의이자 결의로서의 투검(投劍)이다. 발로 자신이 육지에 던진 칼부터 밟은 뒤, 미지의 세계로 향했다.
당시 그리스 작은 섬들 하나하나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사람, 관습, 법, 도덕, 윤리가 전부 달랐다. 낯선 땅에 내리는 순간 어떤 일들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상상도 못 한 괴물이나 사건과 만날 수도 있다. 상륙 직전 땅에 칼을 던지는 것은 ‘위험한 일을 만나면 정면 대응해 싸울 것이고, 친구를 만날 경우 칼을 버리고 마음을 열겠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소식을 들으면서 ‘한국의 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실용외교, 먹사니즘, 셰셰 외교, 정정당당…. 무엇이 워싱턴에 던질 이 대통령의 칼인가? 칼을 품고나 있는지? 돌발적 상황에 즈음한 정면승부는 생각하는지? 또 친구를 만날 경우 허심탄회하게 모든 것을 풀겠다는 자세는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 역사적 변혁기마다 역주행
항상 의문인데, 왜 한국은 역사적 변혁기 때마다 역주행(逆走行)을 해왔을까? 세계가 신대륙 발견에 흥분하던 시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신기술이 확산되던 기술 변혁기, 중국이 무너지면서 아시아 전체가 격랑 속에 떠밀려 갈 때 보여 준 500년 조선의 쇄국(鎖國) 마인드…. 앞뒤 구별도 못하다가 게임이 끝난 뒤 우리의 억울한 처지를 호소하지만 그때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전환기를 맞아, 파워가 어디로 흐르고 어떤 것이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무지와 무관심’이 한반도 위기 때마다 등장한 고정 메뉴였다.
현재 서방 자유세계는 ‘글로벌리즘 폐해 대청소’에 들어가 있다. 우익,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받는 사람들이 새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리버럴 미디어는 반(反) 트럼프 슬로건과 함께 메디케어 예산 삭감을 맹공격한다. 사정도 모르는 한국 미디어는 리버럴 논조 그대로 실으면서 ‘우리 모두 함께 글로벌리즘’ 세계관에 한층 더 빠져든다. 현지 현실에 맞춰 보지 않고, 듣기도 보기도 먹기도 좋은, 책상머리 상상력 하나로 시대정신에 저항한다. 무관심을 넘어 아예 무식하게 대한다고나 할까.
막히면 떼로 몰려 나가 인신공격에 나서는 버릇도 조선 500년의 유산이다. 한국 언론은 트럼프가 치매에 걸린 듯하고, 남을 속이는 골프로 이겼다는 식의 미국발 옐로 저널리즘과 페이크 뉴스를 대서특필한다. 한국에서 횡행하고 있는 ‘역주행 세계관’은 정보·자세·분석의 오류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는 배척 대상이 아니라 ‘필요악(必要惡)’이란 생각은 갖고 있다. 미국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재정 파탄에다 엉망진창이 된 나라를 ‘무리를 해서라도’ 제자리로 회복시키려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PC)’을 내세우며 모두에게 환영받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대통령이 남긴 부채(負債)는 언젠가 누군가가 해결해야만 한다. 트럼프의 ‘폭탄 정치’가 등장한 것은 중국의 부상(浮上)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그동안 자체붕괴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미국 산업계의 대변인’ 정도로 이해했다. 따라서 ‘전쟁광(狂) 루스벨트’만 사라지면 전쟁도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루스벨트는 전쟁이 끝나기 4개월 전인 1945년 4월 뇌출혈로 급사했다. 당시 일본은 “신(神)의 도움으로 루스벨트가 죽었다”면서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환호했다.
트럼프 시대의 싱크탱크 ‘아메리칸 컴퍼스’
현재 한국에서 트럼프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트럼프 4년만 버티면 된다”는 얘기가 한국에서 흘러나온다. 시대정신으로서의 ‘트럼피즘(Trumpism)’을 간과한 우물 안 세계관의 발로(發露)일 뿐이다.
필자는 트럼프 레거시는 4년 뒤인 2029년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차기 대통령도 공화당 출신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나온다고 해도 트럼피즘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아메리칸 컴퍼스(www.americancompass.org)’는 그런 필자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아메리칸 컴퍼스는 모토인 ‘뉴 컨서버티브(New Conservatives)’에서 보듯, 트럼프의 주의(主義)·주장을 구체화하는 정책 요람이다. 트럼프 2.0 정책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왔다. 트럼프 시대의 실세(實勢) 싱크탱크다.
시대가 변한다는 증거라 할까,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싱크탱크들인 브루킹스, 헤리티지, CSIS는 ‘20세기 흑백 필름 무대’로 변해 가고 있다. 일단 연장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시니어 클럽’이란 점에서부터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 아메리칸 컴퍼스의 스태프 대부분은 젊다. 워싱턴 정치와 거리가 있는 지방 출신자들이 주류다.
민주당 정책도 흡수해 외연 확장 시도
아메리칸 컴퍼스는 지난 6월, 싱크탱크 개설 5주년 축하 파티를 열었다. 부통령 J.D. 밴스, 국무부 장관 마코 루비오, 국방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 무역대표부(USTR) 대표 제이미슨 그리어 등 트럼프 정부의 핵심 전원이 참석했다. 이날 모임을 통해 나타났지만, 트럼피즘은 트럼프 2.0을 넘어 ‘트럼프 3.0’으로 진화(進化)할 전망이다. 이를 보여 주듯 밴스와 루비오는 축사를 통해 국가 주도 산업구조, 노동조합 중시, 대기업 독점 규제 강화, 부자에 대한 세금 징수 강화 등의 정책들을 강조했다. 미국 정치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듯하다. 앞으로 공화당을 이끌어 갈 인사들이 종래 민주당이 주장해 온 것과 흡사한 정책들을 자신들의 정책 비전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아메리칸 컴퍼스는 과거 공화당 정책을 ‘글로벌리즘에 굴복한 실패작’이었다면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강조했다. 밴스 등의 발언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중심으로 하되, 각론에서는 민주당 정책까지도 끌어들여 지지층을 넓혀 나가겠다는 의미였다.
트럼프 4년만 견디면 되는 것이 아니다. 4년 뒤 미국의 모습은 한층 더 ‘트럼프스럽게’ 변해 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밴스와 루비오는 차기 대선 최선두 후보로 꼽히고 있다.
트럼프 임기만 넘기면 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한국이 관세협상 과정에서 약속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에너지 구입’도 트럼프 4년 뒤 유야무야될 것으로 보는 한국인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 출처, 기한, 분야, 장소도 애매한 상황에서 대충 시간을 끌다가 트럼프의 임기를 넘기면 흐지부지될 것이란 생각이다. 오산(誤算)이나 착각일 뿐이다.
지난 7월 말 한미 관세협상에서 전면에 나선 인물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었다. 트럼프와 새벽 1시까지 전화를 나눈다는, 월스트리트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비즈니스맨 출신이다. 러트닉은 7월 30일 유럽을 향해 ‘도발적’ 메시지를 하나 던졌다.
“아직 상대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There’s plenty of horse trading still to do).”
러트닉은 관세협상 타결 공동성명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유럽을 향해 제2의 포문을 열었다. 인터넷 서비스와 반도체, 의약(醫藥) 등과 관련된 유럽과의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것이다. 러트닉은 “관세협상을 끝낸 나라가 약속을 지키는지 3개월마다 조사를 한 뒤, 만약 이행하지 않은 경우 고(高)관세를 재부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슷한 얘기는 무역대표부 대표 제이미슨 그리어를 통해서도 재확인할 수 있다.
‘행복 회로 낙관론’은 역주행 세계관에 따라붙는 필수 액세서리다. ‘지상천국’이라는 북한에서 보듯, ‘국뽕’이란 이름의 마약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자고 나면 전 세계가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식의 얘기가 넘친다. 한국의 노래, 옷, 음식, 영화, 라면에 전 세계가 ‘푹’ 빠져 있다는 소프트 뉴스는 한국 사회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외국인 눈으로 보면 그 같은 한국적 국뽕이 너무도 신기하다. 외국 정치가가 한국이 와서 “오징어 게임 최고!”라고 외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주목과 박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인이 일본에 가서 “포켓몬을 좋아한다”거나 미국에 가서 “디즈니랜드에 빠져 있다”고 외치진 않는다. 그런 소릴 해도 별 반응도 없기 때문이다.
‘국뽕’ 심리는 정부 정책 관계자들 사이에도 만연해 있다. 오는 10월 27일~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 기간중 미중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있다는 뜬금없는 뉴스도 그중 하나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재해 미중관계를 개선한다”는 식의 분석도 이어진다. 트럼프와 20분 통화한 게 전부인 이 대통령이 미중 간에 중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미중 정상이 한국에서 회담을 가질 이유가 무엇인지, 미중이 만나 뭔가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을지 중금하다.
7월 말 나온 APEC 관련 보도는 며칠 후인 8월 2일 워싱턴발 뉴스를 통해 99%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트럼프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담 참가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ASEAN은 APEC 일주일 전에 열린다. 트럼프가 아시아에서 열흘 정도 머물 경우 경주 방문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인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찔러나 보고, 뭔가 생색을 내면서 화려한 일회성 이벤트로 가려는 심리는 국뽕이 갖는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역주행 세계관은 국뽕에 매달리는 허세·과장 심리의 결과일지 모르겠다.
오벌 하우스의 긴장감
이재명 대통령이 만날 트럼프는 현재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글로벌 파워 최고봉에 선 인물이다. 백악관 오벌 하우스 기자회견 광경에서 보듯, 세계 모든 정상들이 트럼프의 생각과 논리에 굴복한다. 필자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백악관 오벌 하우스는 대략 50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찬다. 아무리 에어컨이 강해도 사람들 열기로 뜨거워질 좁은 공간이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트럼프 주변 참모들의 충성심과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트럼프는 총탄이 귀를 스치는 암살 위협에서 살아남은 인물이다. 79살 본인의 사생관(死生觀)도 남다르겠지만, ‘보스 트럼프’에 대한 참모들의 자세도 ‘아주’ 특별하다. 매번 느끼지만, 트럼프 기자회견에서 묻어나는 살풍경하기까지 한 긴장감은 그 같은 사생관과 충성심 그리고 열정의 결과라 볼 수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벌 하우스에 들어가는 순간 그 무겁고도 무서운 공기에 압도된다.
‘천안문 망루’ 유혹 버려야
현재 한미관계는 서울 주재 미국 대사도,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도 공석(空席)인 기형적인 상황이다. 필자가 보기에, 공식 차원을 제외하고 한미 물밑 대화가 거의 끊긴 상태다.
이재명 정부로서는 당장 ‘트럼프 백악관 이벤트’가 지상(至上)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한미관계는 앞으로 외교·안보·군사 분야의 협력과 조정을 필요로 한다. 일회성 보여 주기 쇼가 아니라,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장기적 안목의 원칙과 전략 그리고 정보가 필요하다. 코끼리를 더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관찰하고 분석할 능력과 자세가 절실하다.
앞서 강조했듯이 트럼프 2.0은 트럼프 3.0으로 진화하고, 트럼피즘이 당분간 미국과 세계의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막히거나 국내에서 상황이 안 좋아질 경우, ‘천안문 망루’에 오르는 것으로 그런 상황을 넘어 보려는 유혹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수록 상기해야 할 일이 있다. 왜 전 세계가 ‘트럼프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미국에 매달리는 것일까, 반면 왜 전기자동차(EV)와 인공지능(AI) 최첨단 나라라는 중국에 가서 시진핑과 어울리는 세계 지도자는 대개 독재국가나 저개발국 인사인지를 말이다.
‘역주행 세계관’은 조선조 500년만으로 충분하다. 한미정상회담은 물론 앞으로 펼쳐진 여러 외교 무대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칼’을 보고 싶다. ‘운명의 시간’이 89초밖에 남지 않은 긴박한 시대에 한국 대통령만의 실력과 비전을 피부로 느끼고 싶다. 방미길에 나서는 한국 대통령에게 응원을 보낸다.⊙
미국 원자력과학자들이 밝힌 올해 지구 종말 카운트다운이다. 핵공격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시간을 12시로 잡을 경우, 현재 상황이 어디에 있는지를 디지털 시계로 표현한 지수(指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반을 넘긴 2025년, 지구는 멸망 89초 전이다. ‘운명의 시간’ 등장 이후 멸망에 가장 가까워진 상황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핵공격 협박에 있다.
운명의 시간은 1947년 등장했다. 당시는 7분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은 냉전(冷戰) 절정기였다. 미국과 구(舊)소련 모두 원자폭탄보다 수백 배 강력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운명의 시간도 수직상승했다. 그러나 당시 운명의 시간은 120초 전으로 지금보다는 안전했다. 글로벌 시대가 끝났다는 말도 들리지만, 아직 전 세계 대부분은 ‘우리 모두 함께’의 꿈속에 빠져 있다. 현실은 72년 전 동서 냉전 피크 때보다 한층 더 위험하다.
한미정상회담의 과제
8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이 확정됐다고 한국 대통령실이 발표했다. 대통령실에 의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일본에 들러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와도 만난다고 한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관세협상 타결과 관련된 공식 문서 작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7월 30일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지만, 종이로 된 문서가 안 보인다. ‘3500억 달러 미국 투자+1000억 달러 에너지 수입’과 ‘15% 관세’가 대체적인 윤곽일 뿐, 각론은 하나도 없다. 한국 정부는 ‘입장 발표’라는 기묘한 반응을 통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의 장밋빛 미래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갑자기 한국이 미국 조선(造船)산업의 구세주로 떠오른 반면 미국산 쌀과 육류, 농산물 개방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3500억 달러 미국 투자’도 누가, 언제, 어디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 논의된 적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 방미(訪美)의 가장 큰 목적과 의미는 이 ‘오리무중’ 상황을 걷어 내는 데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식 ‘입장 발표’가 아닌, 국가 간 약속 차원의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번 한미정상의 핵심 과제다. 물론 안보 문제도 한미 정상 간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트럼프는 경제와 안보 문제를 분리하려 한다. 이번에는 ‘돈’에 방점을 주고, 안보는 차후의 과제가 될 듯하다.
新애치슨 라인에서 배제되고 있는 한국
8월 7일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200일째였다. 트럼프는 취임 후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외국 정상과 만났다. 아프리카 지하자원 개발을 위해 한꺼번에 5명의 정상을 백악관에 초대한 적도 있다. 그동안 트럼프와 대면한 세계 정상은 60여 명에 달한다. 아시아로 좁혀 보면, 일본·인도·필리핀·호주·이스라엘 등 15개국 정상이나 수반들을 만났다. 한국 대통령은 트럼프와 만나기는커녕, 취임 이틀 뒤인6월 6일 금요일 20분간 심야 통화를 한 것이 전부다.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물샐 틈 없는 철저한 한미동맹’은 갑자기 흔들리고 있다.
여태까지 한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해 ‘트럼프의 의도된 행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이 ‘왕따’라는 의미다.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 문제가 핵심일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21세기 버전 애치슨 라인’은 이미 시작됐다. 이는 일본-필리핀-인도-호주를 엮는 해상 안보 라인으로, 대만을 중심으로 한 ‘대(對)중국 방어망’이다. 한국은 여기서 벗어나 있다. 한국이 ‘대중국 방어망’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8월 5일부터 일주일간 항공모함 3척이 동원된 해상훈련이 필리핀 앞바다에서 실시됐다. ‘21세기 버전 애치슨 라인’의 가동 현장이었다고 보면 된다. 참가국은 미국·영국·일본·스페인·호주·노르웨이 6개국이다. 최신예 전투기 F-35B가 50여 기 이상 동원됐다. 누가 봐도 대만 유사시에 대비한 연합훈련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한국은 없다. 이재명 정부는 북한에 맞선 한미훈련만이 아니라 대중(對中) 자유세계 방어망 참여에도 부정적이다. 윤석열 정부 당시 한국은 대중 방어망 서방연합군 대열에 ‘잠시’ 참여했지만, 문재인 정부 때처럼 이재명 정부도 참여를 꺼리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8월 3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동북아에서 중국은 이웃 국가들에 다소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대통령실은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은 “한중 간 일부 이견이 있더라도, 민생 및 역내 안정과 번영에 기여하는 한중관계를 만들기 위해 지속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언급”이라면서 조 장관 발언 진화(鎭火)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실 발언이 나온 직후, 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주한 중국 대사의 사진을 찢으며 시위를 벌이던 이들을 경찰이 입건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8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시위들을 ‘국익을 훼손하는 혐오시위’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이시바 총리 사진을 찢고 그 나라 대사를 모독해도 경찰 조사 대상이 될지 의문이다.
대만은 ‘21세기 진주만’
‘혹시, 설마’ 하며 버티는 사람들이 아직 있지만, 트럼프와 미국의 궁극적 타깃은 중국이다. 중국 견제, 나아가 중국 약화가 미국의 최종 목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고, 지구는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곳곳에서 미국, 나아가 서방 국가들의 이익과 부딪치고 있다. 1930년대 일본에 대한 대응에서 보듯, 미국은 그냥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대만 무력(武力) 통일이란 명분하에 시진핑이 도전장을 내놓은 즉시 미국과 유럽, 나아가 일본까지 모두 대중국 방어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일본 역사학자 상당수는 대만이 ‘21세기 진주만(眞珠灣)’이 될 것으로 본다. 미국은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어도 참전(參戰)을 자제하고 있다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기화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적의 공격으로 미국 시민들의 적개심이 극에 달할 때까지 중립 노선을 고수하면서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2025년 중국과의 전쟁을 지지하는 미국인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대만 공격=일본과 태평양 미군 시설 공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국민이 태평양 주변 미군의 피해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미군 참전도 당연시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가 무작정 기다리진 않을 것이란 점이다. 중국 군사력과 경제력이 미국을 능가하기 전에 ‘반드시’ 제압해야만 한다는 것이 미국 역사의 상식이자 규칙이다.
2025년 한국은 그 같은 미국적 상식과 규칙에 반하는 변방 아웃사이더에 머물러 있다. 구한말(舊韓末) 조선왕조는 이리저리 빠지면서 ‘중립외교’만 외쳤다. 중국·러시아·일본이 나라 곳곳을 헤집고 다녀도 ‘엄정 중립, 평화 해결’만 주문(呪文)처럼 외웠다. 모두에게 잘 보이려는 ‘셰셰(謝謝) 외교’는 이런 조선왕조 유전자의 부활이라 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가 한국을 믿지 못하는 이유이다. 트럼프는 지금 전 세계를 향해 “미국과 중국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텔레마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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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 |
이재명 대통령 방미 소식을 듣고 텔레마코스가 떠오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름에 담긴 의미다. 텔레마코스는 그리스어로 ‘전쟁에 멀리 떨어진’ ‘전쟁터 밖에 서있는’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아버지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텔레마코스가 이타카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재 약육강식(弱肉强食) 글로벌 정치 무대에서 벗어난, ‘전쟁에 멀리 떨어진, 전쟁터 밖에 서있는’ 존재다. 미중 대결은 이미 시작됐고, 점차 가속화될 전망이다. 중국에 대한 관세 유예는 트럼프 식 숨고르기일 뿐이다. 쓰나미를 동반한 초강력 태풍이 곧 태평양 양쪽에 밀려들 것이다. 유예가 끝나면 최소 100%, 아니 500% 관세도 중국 측에 퍼부을 인물이 트럼프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그의 머릿속 대부분이 국내정치로 점철돼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검찰개혁, 공짜 지원금, 지방 투어 미팅, 노동계 입장 대변, 산업재해 방지….
물론 이 대통령의 그런 행보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 한국을 둘러싼 현실을 보면 땅과 하늘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운명의 시간 89초 전’은 한국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다.
‘관세 전쟁’ 밖에 서있는 이재명
북핵도 문제지만, 일단 경제가 ‘운명의 시간 89초 전’이다. 중국의 공세에 함몰되는 한국의 경쟁력도 문제지만, 전 세계를 뒤흔든 트럼프의 관세 공격이야말로 경제적 차원의 ‘종말 전 89초’로 한국을 내모는 가장 큰 원인이다.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제조 7개사는 미일 간에 관세협상(미국에 수입되는 일본 상품에 ‘15% 관세’ 부과) 타결 이후 매일 2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고 있다고 한다. 1년이면 70억 달러 정도다. 지난해 일본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 규모는 137만 대에 약 400억 달러다. 올해 수출은 관세로 인해 지난해 총 수출액의 17% 정도 밑지고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 규모는 143만 대에 347억 달러다. 일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한국 수출액도 15% 관세 적용 후 70억 달러 정도 밑진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제조업 이익이란 것이 많아야 10%다. 이익을 많이 창출한다기보다는 고용 안정을 통해 국민들 밥벌이를 보장하는 수준이다. 트럼프의 ‘15% 관세’는 그 같은 ‘기본적인 전제’를 무너뜨린다. 1년에 70억 달러가 마이너스 되는 상태에서 출발하면서, 이익은커녕 제조업 일자리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신문·방송을 보면, 관세협상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자동차산업보다 공장 근로재해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재해 근로자도 중요하지만, 자동차산업도 국가적 관심사다. 대통령 자리는 ‘덕후’, 즉 특정 분야에만 매몰되어 사는 마니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숲과 나무 전부 보면서 대한민국 5000만의 안전과 번영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면, 과일 달린 나무만 볼 뿐, 안정된 수원(水源)을 보장하는 숲은 막 취임한 경제장관 두 명에게 떠맡기는 형세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 정상들이 행하는 식의 ‘관세협상 최고사령관’으로서의 모습이 없다. 막히면 자신이 직접 워싱턴으로 달려가 트럼프와 담판을 짓겠다는 식의 ‘정치적·외교적 결의나 수사’도 관세협상 기간중 아예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재명 대통령을 ‘전쟁터 밖에 서있는’ 존재라고 한 것이다.
둘째는 텔레마코스와 칼이다. 텔레마코스는 성장 후 아버지 소식을 듣기 위해 오디세우스 동료들의 집들을 방문한다. 그리스는 바다로 연결된 해양국가다. 전부 배를 타고 파도를 가로질러 찾아가야 한다.
텔레마코스는 배에서 내릴 때 먼저 자신의 칼부터 땅위에 던졌다. 낯선 땅에 대한 예의이자 결의로서의 투검(投劍)이다. 발로 자신이 육지에 던진 칼부터 밟은 뒤, 미지의 세계로 향했다.
당시 그리스 작은 섬들 하나하나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사람, 관습, 법, 도덕, 윤리가 전부 달랐다. 낯선 땅에 내리는 순간 어떤 일들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상상도 못 한 괴물이나 사건과 만날 수도 있다. 상륙 직전 땅에 칼을 던지는 것은 ‘위험한 일을 만나면 정면 대응해 싸울 것이고, 친구를 만날 경우 칼을 버리고 마음을 열겠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소식을 들으면서 ‘한국의 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실용외교, 먹사니즘, 셰셰 외교, 정정당당…. 무엇이 워싱턴에 던질 이 대통령의 칼인가? 칼을 품고나 있는지? 돌발적 상황에 즈음한 정면승부는 생각하는지? 또 친구를 만날 경우 허심탄회하게 모든 것을 풀겠다는 자세는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 역사적 변혁기마다 역주행
항상 의문인데, 왜 한국은 역사적 변혁기 때마다 역주행(逆走行)을 해왔을까? 세계가 신대륙 발견에 흥분하던 시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신기술이 확산되던 기술 변혁기, 중국이 무너지면서 아시아 전체가 격랑 속에 떠밀려 갈 때 보여 준 500년 조선의 쇄국(鎖國) 마인드…. 앞뒤 구별도 못하다가 게임이 끝난 뒤 우리의 억울한 처지를 호소하지만 그때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전환기를 맞아, 파워가 어디로 흐르고 어떤 것이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무지와 무관심’이 한반도 위기 때마다 등장한 고정 메뉴였다.
현재 서방 자유세계는 ‘글로벌리즘 폐해 대청소’에 들어가 있다. 우익,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받는 사람들이 새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리버럴 미디어는 반(反) 트럼프 슬로건과 함께 메디케어 예산 삭감을 맹공격한다. 사정도 모르는 한국 미디어는 리버럴 논조 그대로 실으면서 ‘우리 모두 함께 글로벌리즘’ 세계관에 한층 더 빠져든다. 현지 현실에 맞춰 보지 않고, 듣기도 보기도 먹기도 좋은, 책상머리 상상력 하나로 시대정신에 저항한다. 무관심을 넘어 아예 무식하게 대한다고나 할까.
막히면 떼로 몰려 나가 인신공격에 나서는 버릇도 조선 500년의 유산이다. 한국 언론은 트럼프가 치매에 걸린 듯하고, 남을 속이는 골프로 이겼다는 식의 미국발 옐로 저널리즘과 페이크 뉴스를 대서특필한다. 한국에서 횡행하고 있는 ‘역주행 세계관’은 정보·자세·분석의 오류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는 배척 대상이 아니라 ‘필요악(必要惡)’이란 생각은 갖고 있다. 미국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재정 파탄에다 엉망진창이 된 나라를 ‘무리를 해서라도’ 제자리로 회복시키려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PC)’을 내세우며 모두에게 환영받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대통령이 남긴 부채(負債)는 언젠가 누군가가 해결해야만 한다. 트럼프의 ‘폭탄 정치’가 등장한 것은 중국의 부상(浮上)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그동안 자체붕괴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미국 산업계의 대변인’ 정도로 이해했다. 따라서 ‘전쟁광(狂) 루스벨트’만 사라지면 전쟁도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루스벨트는 전쟁이 끝나기 4개월 전인 1945년 4월 뇌출혈로 급사했다. 당시 일본은 “신(神)의 도움으로 루스벨트가 죽었다”면서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환호했다.
트럼프 시대의 싱크탱크 ‘아메리칸 컴퍼스’
현재 한국에서 트럼프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트럼프 4년만 버티면 된다”는 얘기가 한국에서 흘러나온다. 시대정신으로서의 ‘트럼피즘(Trumpism)’을 간과한 우물 안 세계관의 발로(發露)일 뿐이다.
필자는 트럼프 레거시는 4년 뒤인 2029년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차기 대통령도 공화당 출신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나온다고 해도 트럼피즘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아메리칸 컴퍼스(www.americancompass.org)’는 그런 필자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아메리칸 컴퍼스는 모토인 ‘뉴 컨서버티브(New Conservatives)’에서 보듯, 트럼프의 주의(主義)·주장을 구체화하는 정책 요람이다. 트럼프 2.0 정책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왔다. 트럼프 시대의 실세(實勢) 싱크탱크다.
시대가 변한다는 증거라 할까,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싱크탱크들인 브루킹스, 헤리티지, CSIS는 ‘20세기 흑백 필름 무대’로 변해 가고 있다. 일단 연장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시니어 클럽’이란 점에서부터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 아메리칸 컴퍼스의 스태프 대부분은 젊다. 워싱턴 정치와 거리가 있는 지방 출신자들이 주류다.
민주당 정책도 흡수해 외연 확장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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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6월 3일 워싱턴에서 열린 아메리칸 컴퍼스 창립 5주년 축하 파티에 참석했다. 왼쪽은 아메리칸 컴퍼스 창립자 오런 카스. 사진=AP/뉴시스 |
이 자리에서 아메리칸 컴퍼스는 과거 공화당 정책을 ‘글로벌리즘에 굴복한 실패작’이었다면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강조했다. 밴스 등의 발언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중심으로 하되, 각론에서는 민주당 정책까지도 끌어들여 지지층을 넓혀 나가겠다는 의미였다.
트럼프 4년만 견디면 되는 것이 아니다. 4년 뒤 미국의 모습은 한층 더 ‘트럼프스럽게’ 변해 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밴스와 루비오는 차기 대선 최선두 후보로 꼽히고 있다.
트럼프 임기만 넘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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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사진=퍼블릭 도메인 |
지난 7월 말 한미 관세협상에서 전면에 나선 인물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었다. 트럼프와 새벽 1시까지 전화를 나눈다는, 월스트리트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비즈니스맨 출신이다. 러트닉은 7월 30일 유럽을 향해 ‘도발적’ 메시지를 하나 던졌다.
“아직 상대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There’s plenty of horse trading still to do).”
러트닉은 관세협상 타결 공동성명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유럽을 향해 제2의 포문을 열었다. 인터넷 서비스와 반도체, 의약(醫藥) 등과 관련된 유럽과의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것이다. 러트닉은 “관세협상을 끝낸 나라가 약속을 지키는지 3개월마다 조사를 한 뒤, 만약 이행하지 않은 경우 고(高)관세를 재부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슷한 얘기는 무역대표부 대표 제이미슨 그리어를 통해서도 재확인할 수 있다.
‘행복 회로 낙관론’은 역주행 세계관에 따라붙는 필수 액세서리다. ‘지상천국’이라는 북한에서 보듯, ‘국뽕’이란 이름의 마약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자고 나면 전 세계가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식의 얘기가 넘친다. 한국의 노래, 옷, 음식, 영화, 라면에 전 세계가 ‘푹’ 빠져 있다는 소프트 뉴스는 한국 사회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외국인 눈으로 보면 그 같은 한국적 국뽕이 너무도 신기하다. 외국 정치가가 한국이 와서 “오징어 게임 최고!”라고 외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주목과 박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인이 일본에 가서 “포켓몬을 좋아한다”거나 미국에 가서 “디즈니랜드에 빠져 있다”고 외치진 않는다. 그런 소릴 해도 별 반응도 없기 때문이다.
‘국뽕’ 심리는 정부 정책 관계자들 사이에도 만연해 있다. 오는 10월 27일~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 기간중 미중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있다는 뜬금없는 뉴스도 그중 하나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재해 미중관계를 개선한다”는 식의 분석도 이어진다. 트럼프와 20분 통화한 게 전부인 이 대통령이 미중 간에 중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미중 정상이 한국에서 회담을 가질 이유가 무엇인지, 미중이 만나 뭔가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을지 중금하다.
7월 말 나온 APEC 관련 보도는 며칠 후인 8월 2일 워싱턴발 뉴스를 통해 99%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트럼프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담 참가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ASEAN은 APEC 일주일 전에 열린다. 트럼프가 아시아에서 열흘 정도 머물 경우 경주 방문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인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찔러나 보고, 뭔가 생색을 내면서 화려한 일회성 이벤트로 가려는 심리는 국뽕이 갖는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역주행 세계관은 국뽕에 매달리는 허세·과장 심리의 결과일지 모르겠다.
오벌 하우스의 긴장감
이재명 대통령이 만날 트럼프는 현재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글로벌 파워 최고봉에 선 인물이다. 백악관 오벌 하우스 기자회견 광경에서 보듯, 세계 모든 정상들이 트럼프의 생각과 논리에 굴복한다. 필자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백악관 오벌 하우스는 대략 50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찬다. 아무리 에어컨이 강해도 사람들 열기로 뜨거워질 좁은 공간이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트럼프 주변 참모들의 충성심과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트럼프는 총탄이 귀를 스치는 암살 위협에서 살아남은 인물이다. 79살 본인의 사생관(死生觀)도 남다르겠지만, ‘보스 트럼프’에 대한 참모들의 자세도 ‘아주’ 특별하다. 매번 느끼지만, 트럼프 기자회견에서 묻어나는 살풍경하기까지 한 긴장감은 그 같은 사생관과 충성심 그리고 열정의 결과라 볼 수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벌 하우스에 들어가는 순간 그 무겁고도 무서운 공기에 압도된다.
‘천안문 망루’ 유혹 버려야
현재 한미관계는 서울 주재 미국 대사도,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도 공석(空席)인 기형적인 상황이다. 필자가 보기에, 공식 차원을 제외하고 한미 물밑 대화가 거의 끊긴 상태다.
이재명 정부로서는 당장 ‘트럼프 백악관 이벤트’가 지상(至上)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한미관계는 앞으로 외교·안보·군사 분야의 협력과 조정을 필요로 한다. 일회성 보여 주기 쇼가 아니라,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장기적 안목의 원칙과 전략 그리고 정보가 필요하다. 코끼리를 더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관찰하고 분석할 능력과 자세가 절실하다.
앞서 강조했듯이 트럼프 2.0은 트럼프 3.0으로 진화하고, 트럼피즘이 당분간 미국과 세계의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막히거나 국내에서 상황이 안 좋아질 경우, ‘천안문 망루’에 오르는 것으로 그런 상황을 넘어 보려는 유혹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수록 상기해야 할 일이 있다. 왜 전 세계가 ‘트럼프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미국에 매달리는 것일까, 반면 왜 전기자동차(EV)와 인공지능(AI) 최첨단 나라라는 중국에 가서 시진핑과 어울리는 세계 지도자는 대개 독재국가나 저개발국 인사인지를 말이다.
‘역주행 세계관’은 조선조 500년만으로 충분하다. 한미정상회담은 물론 앞으로 펼쳐진 여러 외교 무대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칼’을 보고 싶다. ‘운명의 시간’이 89초밖에 남지 않은 긴박한 시대에 한국 대통령만의 실력과 비전을 피부로 느끼고 싶다. 방미길에 나서는 한국 대통령에게 응원을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