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 엘리트 주도하는 현 체제 전복’ 보수혁명 의식 출현
⊙ 총체적 불안감 느끼는 이대남, 노년층과 정서적 공감
⊙ 낭만적 통일관과 안이한 중국 인식에 강한 위화감
⊙ 응원봉을 들고나서는 이대녀와 민주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거부감
⊙ ‘이 나라를 부탁한다’며 손을 붙잡는 노인들에게 강렬한 정서적 경험 느껴
⊙ ‘탄핵 반대, 윤석열 대통령 복귀’ 넘어서는 대한민국 미래 비전 없으면 실패 우려
⊙ 트럼프의 프로그램은 한국을 새롭게 바꾸도록 영감을 주는 지적 원천 될 것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 총체적 불안감 느끼는 이대남, 노년층과 정서적 공감
⊙ 낭만적 통일관과 안이한 중국 인식에 강한 위화감
⊙ 응원봉을 들고나서는 이대녀와 민주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거부감
⊙ ‘이 나라를 부탁한다’며 손을 붙잡는 노인들에게 강렬한 정서적 경험 느껴
⊙ ‘탄핵 반대, 윤석열 대통령 복귀’ 넘어서는 대한민국 미래 비전 없으면 실패 우려
⊙ 트럼프의 프로그램은 한국을 새롭게 바꾸도록 영감을 주는 지적 원천 될 것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 지난 1월 21일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 젊은이들의 모습이 제법 보인다. 사진=뉴시스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시작된 탄핵 정국(政局)이 꼬박 두 달을 채웠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일어난 사태의 전개는 필자가 틀린 예측과 분석을 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 보수(保守)의 위기를 진단한 《월간조선》 1월호 기고문에서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으로 한국 보수가 멸망할 것이며, 이 결과 한국 보수가 세운 역사적 위업과 그 상징마저 민주당과 좌익의 득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8년 전 박근혜(朴槿惠) 대통령 탄핵 정국이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그지 않는다는 말처럼, 역사는 결코 반복되지 않았다. 비상계엄 이후 민주당에 의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진행됐지만, 윤 대통령 탄핵은 8년 전과 같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오히려 윤 대통령과 여당 국민의힘 지지율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는 최저점(最低點)을 찍은 뒤 반등(反騰)하여 나날이 최고점을 경신할 기세로 오르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단순히 대통령을 지키자는 수동적인 결집이 아니었고, 보수 세력의 강경파가 뭉치는 협소한 세력화도 아니었다. 다수의 보수 시민은 이 상황을 민주당의 공세에 대한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제6공화국 내내 전개된 좌익의 세력 확장에 반격을 가하고 대한민국을 다시 ‘정상화’하자는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이해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다 싫다며 정치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중도와 무당층(無黨層) 중에서도, 그동안 자신들이 대한민국에 느끼고 있던 불만의 원인이 민주당에 있음을 인식하며 선명한 보수 지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보수의 세대통일
그리고 윤 대통령의 탄핵을 막기 위해 모인 광장의 시위대에 20대와 30대 청년들이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가장 놀라운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이들은 보통 노년층이 주축이 된 정통 보수보다는 중도적이고 온건하다고 간주될 때가 많았고, 이 점에서 보수 내부의 노년층과 청년층의 세대 갈등도 분명 실존하던 문제였었다. 하지만 그 청년들이 노인들의 손을 잡고 태극기와 성조기, 이승만(李承晩)과 박정희(朴正熙)라는 상징 아래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탄핵되거나, 혹은 다음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고 치더라도 보수의 세대통일로 광장에서 분출되기 시작한 에너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실제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정말로 무기력하게 스러져가던 보수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었다.
필자도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이 에너지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출현하여 폭발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보수 청년층은 무슨 이유로 광장에 나온 것이며, 기존에 존재하던 세대의 벽을 허문 이유 말이다. 탄핵을 촉구하며 아이돌 팬덤의 응원봉을 든 페미니스트 성향의 여성들을 향한 반감인가?
이것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 가시화된 청년층 남녀 사이의 세계관 차이를 생각하면, 좌익 진영에서 응원봉을 ‘새로운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 치켜세우고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그 응원봉을 함께 드는 광경을 보고 엄청난 정서적 거부감을 느낀 인구가 많았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순히 응원봉 시위대를 향한 불만으로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청년층, 특히 청년 남성층의 선택을 설명하는 것은 그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은 40세에 가까워지는 이 6공화국 체제 속에서 무언가 위화감(違和感)이 느껴졌기에 거리로 나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들은 체제의 구조 속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때문에 나왔지, 단순히 무언가 싫다고 떼를 쓰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한국의 중산층은 미국 패권 체제의 산물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보는 이 체제의 문제는 대체 무엇일까? 일단 가장 중요한 하나의 키워드를 꼽자면 바로 중국이다.
소위 ‘이대남’이라고 칭하는 청년층의 반중(反中) 감정은 문재인 정부 말기 본격적으로 수면으로 올라왔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기성세대는 청년층이 중국을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타나는 이 차이는 현재 세계 속 대한민국의 위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40대와 50대에게 중국은 같은 문명과 문화를 공유하는 친숙한 대상이다. 유교(儒敎) 문명의 영향으로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 고전은 대화에 반드시 필요한 상식으로 여겨졌고, 중국 대륙 문화는 아니지만 홍콩과 대만 등 중화권 대중문화는 한국에서 상당한 소프트파워를 행사했다.
중국은 또 동시에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경제 성장인 중국 경제의 폭발적 팽창에 편승했다. 한국 제품과 서비스의 최대 수요처였던 중국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한국이 ‘중진국(中進國) 함정’을 이토록 신속히 빠져나와 선진국에 안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의 중년층은 87년의 민주화와 92년 한중수교로 대표되는 지금의 정치·경제 체제에서 꾸준한 상승의 감격을 누렸고, 그중 많은 수는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선진국 한국에서 주택 자산을 보유하며 안정적인 글로벌 중산층의 대열에 올라섰다.
이 모든 것은 냉전(冷戰)이 끝나며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의 단극(單極) 패권(覇權)이 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은 전두환 제5공화국을 압박하여 한국이 민주주의를 수용하도록 밀어붙였고, 미국의 힘에 대항하기에 한참 약했던 중국은 세계화(世界化) 게임에 참여하여 돈을 버는 데 주력했다. 즉 지금의 중년층은 미국 패권이 만들어준 민주주의와 중국이 중심이 된 세계화 경제를 두 기둥으로 삼는 ‘이 체제’의 산물(産物)인 것이다.
청년층의 反中 정서
반면 90년대생 이후 청년층은 10대와 20대를 거치며 전혀 다른 환경을 마주했다. 한자 지식도 없고, 중국 고전이나 홍콩 영화가 필수 교양도 아니던 이들에게 중국은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실제의 대륙이었다. 흔히 ‘대륙의 기상’이라고 불리던, 고도성장기 중국의 기상천외한 사건 모음집이 청년층이 접한 중국의 첫인상이었다. 고소득 선진국의 시민 교양을 갖추어 나가던 한국 청년층이 보기에 중국은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가난하고 우스꽝스러운 나라였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바뀌었다. 저가(低價) 노동력으로 ‘짝퉁’을 공급하던 중국이 공산당의 전략적 산업 육성과 내부 시장의 혹독한 경쟁을 통해 질적으로 무섭게 성장해 나갔다. 2010년대를 거치며 중국은 IT부터 고부가가치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선진국을 계속해서 추격해 나갔고, 버락 오바마부터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은 방법론은 달라도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대전략을 짰다. 중국 경제의 고도화와 답보 상태가 된 한국 산업의 발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점점 다가오는 양자택일(兩者擇一)의 순간까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빛낸 6공화국의 성공 공식이 언젠가는 시효가 끝날 것임이 선명히 보였다.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청년층의 반중 정서는 중국으로부터 느끼는 실질적 위협감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중국의 내수(內需) 전환,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은 이전과 같은 자유로운 세계화는 끝나가고 있음을 알렸고, 미국의 안보 우산을 통해 중국과 개발도상국을 텃밭으로 삼았던 한국 경제도 저성장 국면에 들어갔다. 중국·러시아와 미국의 갈등은 고립되었던 북한에 생명선을 달아주었고, 그사이 북한은 핵무기를 사실상 완성해 냈다.
‘반국가 세력 척결’에 대한 공감
저성장 속에서 고착화되는 자산 불평등,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산업, 가중되는 안보 부담은 선진국 한국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청년층에게 지금의 평안이 언젠가는 끝날 수도 있다는 총체적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낭만적 통일관과 경계심이 없어 보이는 대중관(對中觀)을 보이고, 생존을 위한 성장과 단결 대신에 분배만을 이야기하는 감상적인 이야기에 강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왜 그 분배의 대상에 좌우를 가리지 않고 중년층이 꽉 쥐고 있는 주도권은 포함되지 않는 것인가라는 불쾌감도 함께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설령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했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에 정권이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반감(反感)을 불태웠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국가의 단결과 규율이지, 어떻게 자원을 잘 분배할지를 놓고 수평적 토의를 이어가는 다양한 종류의 정체성(正體性) 운동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이 비상계엄 선포의 충격이 가셨을 때, 계엄 선포 담화문에 일정 정도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 ‘경각심이 없는 상태’를 가장 혐오했다. 그런데 ‘반(反)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말을 대통령으로부터 들었으니 어쩌면 자신들이 실제로 원하는 줄도 몰랐던 바를,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우주 바깥으로부터 온 속삭임’을 통해 깨달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둘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갔다.
청년과 ‘태극기 노인’의 만남
그리고 광장에서 그들은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던 존재와 마주하게 된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부터 광화문 광장을 지켰던 ‘태극기 노인’들. 앞서 언급하였듯 문재인(文在寅) 정부를 거치며 청년 남성층에서 많은 보수 지지자가 생겼지만, 이들은 전통적인 보수 노년층과는 다른 관심사와 지지 행태를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노년층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말인 ‘틀딱’조차도 악명 높은 우익 웹사이트 일베저장소에서 청년층이 만들어낸 말일 정도였다.
하지만 광장에서 청년들이 눈으로 본 노인들은 그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소통하던 노인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부유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이 노인들은 허름한 패딩을 걸치고 추위에 떨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 무렵 보수 청년층이 주로 글을 올리는 인터넷 공간을 계속 관찰했는데, 집회 후기의 상당수가 8년간 광화문을 지켜온 노인들에 대한 고마움과 역시 8년간 그들을 외면해 온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감정의 고백을 담고 있었다. 특히 8년간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청년층이 광장에 나온 것에 감격해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보수 청년층이 노인들에게 갖고 있었던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말았다. 한국인의 가장 강력한 문화적 무의식 중 하나인 ‘효(孝)’가 이들 내면에서 깨어난 것이다.
실제 집회 분위기가 어떤지 둘러보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과 1월 18일의 서부지법을 찾았던 필자는 길가 곳곳에서 노인들과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노인들은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에게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전함과 함께 이 나라를 부탁한다며 손을 붙잡았다. 여기서 강렬한 정서적 경험을 느끼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청년과 노인, 세계관 공유
노년층과 청년층이 이루어낸 완벽한 심리적 동기화는 그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탈(脫)냉전과 세계화의 풍요 속에서 청년기를 보낸 지금의 중년층과 달리, 지금의 노년층은 한국 전쟁 직후의 빈곤을, 소련과 중국이 지원하는 북한의 안보 위협을 당연한 공기처럼 느끼고 살았던 이들이다. 현재 중국의 위협이 가중되며 세계화 대신에 지정학(地政學)이 귀환하고 있음을 느끼며, 세계 가치사슬 속 한국의 지위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보수 청년층은 노인들의 세계관에서 도리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형성되어 있던 공감대에 집회 현장에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개인적인 체험은 청년층이 노년층의 여타 의제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정선거 의혹이다.
필자는 주변의 중년들로부터 ‘정말 청년들이 그렇게 선관위와 부정선거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적어도 지금 정국에 관심이 있는 보수 성향 청년들로 한정한다면, 이것은 질문 자체가 우문(愚問)이다. 실제 부정선거가 있었는지까지는 몰라도 선관위가 무언가 문제가 있다라며 전면적인 조사를 하자는 보수 청년들은 필자 주변에도 정말 많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건 실제 부정선거가 있었는지, 혹은 선관위가 비위를 저질렀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래로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주류(主流) 제도권 정치에서 배제되어 온 노인들이 8년간 발전시킨 독자적인 세계관과 서사(敍事)를 청년층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1970년대 무렵에 학생운동권이 ‘민중’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엄청난 일이다.
노년층의 목소리를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에 분개한 보수 청년들은 그들의 염원을 자신들이 실현시키고 말겠다는 의지를,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서술된 한국 근현대사를 반공(反共)과 산업입국(産業立國)으로 다시 고쳐 쓰겠다는 역사 재조립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것이 비상계엄 이후에 청년층을 광장에 쏟아져 나오게 하고, 서부지법에서 경찰 병력을 뚫어 폭력사태까지 벌이게 만든 정서의 원천이다. 이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양대 제도권 정당과 중년 엘리트가 주도하는 현 체제를 전복하겠다’는 혁명의 감각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랍의 봄
필자는 이 사태의 전개를 온라인 공간과 실제 광장에서 모두 바라보며, 2011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일어났던 ‘아랍의 봄’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청년층, 그것도 보수 청년층의 급진화와 정치적 활성화는 그 누구도 가능할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 갑작스러움은 ‘아랍의 봄’의 특징이기도 하다.
사회학자 아세프 바야트는 아랍의 봄을 다룬 그의 저서 《혁명가 없는 혁명》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인 혁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분석한다. 그는 부패하고 무능한 아랍 독재 정권이 도시의 소외된 이들을 대규모로 만들었고, 그들이 혁명의 토양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마땅한 일자리와 복지 제도도 갖지 못하고, 국가와 중산층으로부터 사실상 존재 자체를 무시당한 도시 소외 계층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 혹은 그저 돈을 들이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대도시의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명시적으로 투쟁하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으로 국가 제도를 우회하며 대안적(代案的)인 사회적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불만이 임계점(臨界點)을 넘었을 때, 도시 소외 계층이 장악하고 있던 광장에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이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에 염증(厭症)을 느낀 다른 시민들이 합류하여 광장은 혁명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의 이야기에서 광화문과 탑골공원이 겹쳐 보인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민주화와 세계화를 통해 한국은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했지만, 폐허밖에 없던 대한민국에서 번영을 일구어낸 주역들인 노인들은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외환위기의 혼란 이후 전통사회의 연결망도 해체되면서 노인들은 빈곤과 고립의 굴레로 들어갔고, 민주당 세계관이 점점 대한민국 주류 서사의 위치를 점하면서 자신들이 영웅으로 생각한 지도자들이 탐욕에 눈이 먼 독재자들이라고 폄훼되는 것을 보며 모욕감을 느껴야 했다. 이 와중에 그들은 공공 근로 일자리와 동사무소 복지 정보를 알기 위해 공원과 광장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가 좌우 정치 모두가 유기한 이 노인들에게 무료 식사부터 소속감과 삶의 의미까지 제공하며 이들은 정치적 존재로 다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현 체제에 무언가 불만과 위화감을 느끼던 보수 청년들이 합류한 것이다.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에 광장에 머물며 존재하기를 선택한 이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니, 사실 갑작스러워 보이는 보수의 혁명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스팔트 우익’운동의 한계
하지만 ‘아랍의 봄’이라는 렌즈를 낀다면 현재 한국의 ‘아스팔트 우익’운동의 한계도 보인다. 아세프 바야트는 ‘아랍의 봄’이 현 체제를 무너뜨릴 수는 있었지만, 대안적인 질서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이집트에서 집권한 무슬림형제단은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혼란을 낳았고, 구(舊)체제가 다시 돌아올 때 혁명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 광장에 더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 보수가 점하고 있는 여러 광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탄핵 반대, 윤석열 대통령 복귀’라는 간단한 구호는 구성원 내부의 차이를 줄이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단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운동이 성공하거나 실패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을 때, 단순한 구호가 통하지 않을 시점이 오면 내부로부터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다. 만약에 윤 대통령이 복귀하거나, 혹은 조기(早期)대선이 치러져 국민의힘이 정권 연장에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했을 때, 그리고 지금 논해지고 있는 의제를 모두 소진했을 때가 바로 그 시점이다.
대한민국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에 관한 아이디어와 장기적 청사진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비전과 프로그램이 있다면 운동은 일시적 패배나 성공과 무관하게 꾸준히 지속될 수 있지만, 없다면 오히려 독배(毒杯)가 되기도 한다.
트럼프가 주는 자극
그래도 천하대세의 격변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으라고 밀어붙이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년 만에 다시 권좌에 복귀하면서 더욱 강경한 정책을 좌충우돌로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 2.0 시대, 그리고 그 이후에 펼쳐질 시대에 87년 민주화와 92년 한중수교에 기대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 시스템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느리게나마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우파 진영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과한 기대를 품는 것은 금물(禁物)이다. 미국과 한국은 다른 나라이며, 트럼프 행정부는 고립주의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당장 박정희 대통령부터 미국과 얼마나 길고 지난한 싸움을 벌였는가?
오히려 트럼프 2.0 시대에 주목할 것은 한국을 보는 그의 시선이 아니다. 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며 제시하는 프로그램들에 주목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가 정부효율위원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알렉스 카프가 팔란티어를 통해 제시한 새로운 기술 국가의 비전을 토의하고, ‘평범한 사람’을 대변하겠다는 JD 밴스에게 영향을 끼친 ‘포스트-자유주의’ 정치 사상가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트럼프의 프로그램은 답보 상태에 놓인 20세기 민주주의를 뛰어넘어서 앞으로 한국을 새롭게 바꾸도록 영감을 주는 지적(知的) 원천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아세안,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험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다극(多極)세계가 되며 요동치고 있는 지금의 지정학 구도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새로운 세계에서 한국의 위치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준비가 없는 지금은 우익이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아랍의 봄처럼 동력을 잃고 스러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안 된다’
지금 확인된 것은 적어도 국민의 40%를 차지하는 보수 시민들이 ‘이대로 가면 한국은 안 된다’라는 데서 광범위한 공감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요한 자원을 헛되이 소진하면 안 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5·16 혁명을 통해 표출된 열망을 모아내고,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최신의 산업, 기술, 지정학적 변화를 그대로 흡수해 재건과 조국 근대화를 이루어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당대 지도자들과 우리 국민의 의지가 매우 중요했지만 그 과업이 의지만으로 달성된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당분간 우리는 계엄-탄핵 정국 속에서 살아갈 것이지만, 누군가는 ‘더 멀리, 더 깊게’ 보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새로운 청사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8년 전 박근혜(朴槿惠) 대통령 탄핵 정국이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그지 않는다는 말처럼, 역사는 결코 반복되지 않았다. 비상계엄 이후 민주당에 의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진행됐지만, 윤 대통령 탄핵은 8년 전과 같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오히려 윤 대통령과 여당 국민의힘 지지율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는 최저점(最低點)을 찍은 뒤 반등(反騰)하여 나날이 최고점을 경신할 기세로 오르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단순히 대통령을 지키자는 수동적인 결집이 아니었고, 보수 세력의 강경파가 뭉치는 협소한 세력화도 아니었다. 다수의 보수 시민은 이 상황을 민주당의 공세에 대한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제6공화국 내내 전개된 좌익의 세력 확장에 반격을 가하고 대한민국을 다시 ‘정상화’하자는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이해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다 싫다며 정치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중도와 무당층(無黨層) 중에서도, 그동안 자신들이 대한민국에 느끼고 있던 불만의 원인이 민주당에 있음을 인식하며 선명한 보수 지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보수의 세대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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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봉을 들고 탄핵 찬성에 나선 ‘이대녀’들과 민주당 정치인들의 모습은 ‘이대남’들의 반감을 샀다. 사진=조선DB |
필자도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이 에너지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출현하여 폭발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보수 청년층은 무슨 이유로 광장에 나온 것이며, 기존에 존재하던 세대의 벽을 허문 이유 말이다. 탄핵을 촉구하며 아이돌 팬덤의 응원봉을 든 페미니스트 성향의 여성들을 향한 반감인가?
이것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 가시화된 청년층 남녀 사이의 세계관 차이를 생각하면, 좌익 진영에서 응원봉을 ‘새로운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 치켜세우고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그 응원봉을 함께 드는 광경을 보고 엄청난 정서적 거부감을 느낀 인구가 많았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순히 응원봉 시위대를 향한 불만으로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청년층, 특히 청년 남성층의 선택을 설명하는 것은 그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은 40세에 가까워지는 이 6공화국 체제 속에서 무언가 위화감(違和感)이 느껴졌기에 거리로 나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들은 체제의 구조 속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때문에 나왔지, 단순히 무언가 싫다고 떼를 쓰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한국의 중산층은 미국 패권 체제의 산물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보는 이 체제의 문제는 대체 무엇일까? 일단 가장 중요한 하나의 키워드를 꼽자면 바로 중국이다.
소위 ‘이대남’이라고 칭하는 청년층의 반중(反中) 감정은 문재인 정부 말기 본격적으로 수면으로 올라왔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기성세대는 청년층이 중국을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타나는 이 차이는 현재 세계 속 대한민국의 위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40대와 50대에게 중국은 같은 문명과 문화를 공유하는 친숙한 대상이다. 유교(儒敎) 문명의 영향으로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 고전은 대화에 반드시 필요한 상식으로 여겨졌고, 중국 대륙 문화는 아니지만 홍콩과 대만 등 중화권 대중문화는 한국에서 상당한 소프트파워를 행사했다.
중국은 또 동시에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경제 성장인 중국 경제의 폭발적 팽창에 편승했다. 한국 제품과 서비스의 최대 수요처였던 중국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한국이 ‘중진국(中進國) 함정’을 이토록 신속히 빠져나와 선진국에 안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의 중년층은 87년의 민주화와 92년 한중수교로 대표되는 지금의 정치·경제 체제에서 꾸준한 상승의 감격을 누렸고, 그중 많은 수는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선진국 한국에서 주택 자산을 보유하며 안정적인 글로벌 중산층의 대열에 올라섰다.
이 모든 것은 냉전(冷戰)이 끝나며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의 단극(單極) 패권(覇權)이 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은 전두환 제5공화국을 압박하여 한국이 민주주의를 수용하도록 밀어붙였고, 미국의 힘에 대항하기에 한참 약했던 중국은 세계화(世界化) 게임에 참여하여 돈을 버는 데 주력했다. 즉 지금의 중년층은 미국 패권이 만들어준 민주주의와 중국이 중심이 된 세계화 경제를 두 기둥으로 삼는 ‘이 체제’의 산물(産物)인 것이다.
청년층의 反中 정서
반면 90년대생 이후 청년층은 10대와 20대를 거치며 전혀 다른 환경을 마주했다. 한자 지식도 없고, 중국 고전이나 홍콩 영화가 필수 교양도 아니던 이들에게 중국은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실제의 대륙이었다. 흔히 ‘대륙의 기상’이라고 불리던, 고도성장기 중국의 기상천외한 사건 모음집이 청년층이 접한 중국의 첫인상이었다. 고소득 선진국의 시민 교양을 갖추어 나가던 한국 청년층이 보기에 중국은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가난하고 우스꽝스러운 나라였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바뀌었다. 저가(低價) 노동력으로 ‘짝퉁’을 공급하던 중국이 공산당의 전략적 산업 육성과 내부 시장의 혹독한 경쟁을 통해 질적으로 무섭게 성장해 나갔다. 2010년대를 거치며 중국은 IT부터 고부가가치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선진국을 계속해서 추격해 나갔고, 버락 오바마부터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은 방법론은 달라도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대전략을 짰다. 중국 경제의 고도화와 답보 상태가 된 한국 산업의 발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점점 다가오는 양자택일(兩者擇一)의 순간까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빛낸 6공화국의 성공 공식이 언젠가는 시효가 끝날 것임이 선명히 보였다.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청년층의 반중 정서는 중국으로부터 느끼는 실질적 위협감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중국의 내수(內需) 전환,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은 이전과 같은 자유로운 세계화는 끝나가고 있음을 알렸고, 미국의 안보 우산을 통해 중국과 개발도상국을 텃밭으로 삼았던 한국 경제도 저성장 국면에 들어갔다. 중국·러시아와 미국의 갈등은 고립되었던 북한에 생명선을 달아주었고, 그사이 북한은 핵무기를 사실상 완성해 냈다.
‘반국가 세력 척결’에 대한 공감
저성장 속에서 고착화되는 자산 불평등,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산업, 가중되는 안보 부담은 선진국 한국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청년층에게 지금의 평안이 언젠가는 끝날 수도 있다는 총체적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낭만적 통일관과 경계심이 없어 보이는 대중관(對中觀)을 보이고, 생존을 위한 성장과 단결 대신에 분배만을 이야기하는 감상적인 이야기에 강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왜 그 분배의 대상에 좌우를 가리지 않고 중년층이 꽉 쥐고 있는 주도권은 포함되지 않는 것인가라는 불쾌감도 함께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설령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했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에 정권이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반감(反感)을 불태웠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국가의 단결과 규율이지, 어떻게 자원을 잘 분배할지를 놓고 수평적 토의를 이어가는 다양한 종류의 정체성(正體性) 운동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이 비상계엄 선포의 충격이 가셨을 때, 계엄 선포 담화문에 일정 정도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 ‘경각심이 없는 상태’를 가장 혐오했다. 그런데 ‘반(反)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말을 대통령으로부터 들었으니 어쩌면 자신들이 실제로 원하는 줄도 몰랐던 바를,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우주 바깥으로부터 온 속삭임’을 통해 깨달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둘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갔다.
청년과 ‘태극기 노인’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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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시위. ‘북중러에 대항하면 탄핵? 나는 반댈세’라는 팻말이 눈길을 끈다. 사진=조선DB |
하지만 광장에서 청년들이 눈으로 본 노인들은 그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소통하던 노인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부유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이 노인들은 허름한 패딩을 걸치고 추위에 떨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 무렵 보수 청년층이 주로 글을 올리는 인터넷 공간을 계속 관찰했는데, 집회 후기의 상당수가 8년간 광화문을 지켜온 노인들에 대한 고마움과 역시 8년간 그들을 외면해 온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감정의 고백을 담고 있었다. 특히 8년간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청년층이 광장에 나온 것에 감격해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보수 청년층이 노인들에게 갖고 있었던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말았다. 한국인의 가장 강력한 문화적 무의식 중 하나인 ‘효(孝)’가 이들 내면에서 깨어난 것이다.
실제 집회 분위기가 어떤지 둘러보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과 1월 18일의 서부지법을 찾았던 필자는 길가 곳곳에서 노인들과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노인들은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에게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전함과 함께 이 나라를 부탁한다며 손을 붙잡았다. 여기서 강렬한 정서적 경험을 느끼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청년과 노인, 세계관 공유
노년층과 청년층이 이루어낸 완벽한 심리적 동기화는 그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탈(脫)냉전과 세계화의 풍요 속에서 청년기를 보낸 지금의 중년층과 달리, 지금의 노년층은 한국 전쟁 직후의 빈곤을, 소련과 중국이 지원하는 북한의 안보 위협을 당연한 공기처럼 느끼고 살았던 이들이다. 현재 중국의 위협이 가중되며 세계화 대신에 지정학(地政學)이 귀환하고 있음을 느끼며, 세계 가치사슬 속 한국의 지위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보수 청년층은 노인들의 세계관에서 도리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형성되어 있던 공감대에 집회 현장에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개인적인 체험은 청년층이 노년층의 여타 의제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정선거 의혹이다.
필자는 주변의 중년들로부터 ‘정말 청년들이 그렇게 선관위와 부정선거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적어도 지금 정국에 관심이 있는 보수 성향 청년들로 한정한다면, 이것은 질문 자체가 우문(愚問)이다. 실제 부정선거가 있었는지까지는 몰라도 선관위가 무언가 문제가 있다라며 전면적인 조사를 하자는 보수 청년들은 필자 주변에도 정말 많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건 실제 부정선거가 있었는지, 혹은 선관위가 비위를 저질렀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래로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주류(主流) 제도권 정치에서 배제되어 온 노인들이 8년간 발전시킨 독자적인 세계관과 서사(敍事)를 청년층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1970년대 무렵에 학생운동권이 ‘민중’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엄청난 일이다.
노년층의 목소리를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에 분개한 보수 청년들은 그들의 염원을 자신들이 실현시키고 말겠다는 의지를,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서술된 한국 근현대사를 반공(反共)과 산업입국(産業立國)으로 다시 고쳐 쓰겠다는 역사 재조립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것이 비상계엄 이후에 청년층을 광장에 쏟아져 나오게 하고, 서부지법에서 경찰 병력을 뚫어 폭력사태까지 벌이게 만든 정서의 원천이다. 이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양대 제도권 정당과 중년 엘리트가 주도하는 현 체제를 전복하겠다’는 혁명의 감각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랍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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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은 30여 년에 걸친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끝장냈다. 사진=AFP/뉴시스 |
사회학자 아세프 바야트는 아랍의 봄을 다룬 그의 저서 《혁명가 없는 혁명》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인 혁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분석한다. 그는 부패하고 무능한 아랍 독재 정권이 도시의 소외된 이들을 대규모로 만들었고, 그들이 혁명의 토양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마땅한 일자리와 복지 제도도 갖지 못하고, 국가와 중산층으로부터 사실상 존재 자체를 무시당한 도시 소외 계층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 혹은 그저 돈을 들이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대도시의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명시적으로 투쟁하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으로 국가 제도를 우회하며 대안적(代案的)인 사회적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불만이 임계점(臨界點)을 넘었을 때, 도시 소외 계층이 장악하고 있던 광장에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이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에 염증(厭症)을 느낀 다른 시민들이 합류하여 광장은 혁명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의 이야기에서 광화문과 탑골공원이 겹쳐 보인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민주화와 세계화를 통해 한국은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했지만, 폐허밖에 없던 대한민국에서 번영을 일구어낸 주역들인 노인들은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외환위기의 혼란 이후 전통사회의 연결망도 해체되면서 노인들은 빈곤과 고립의 굴레로 들어갔고, 민주당 세계관이 점점 대한민국 주류 서사의 위치를 점하면서 자신들이 영웅으로 생각한 지도자들이 탐욕에 눈이 먼 독재자들이라고 폄훼되는 것을 보며 모욕감을 느껴야 했다. 이 와중에 그들은 공공 근로 일자리와 동사무소 복지 정보를 알기 위해 공원과 광장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가 좌우 정치 모두가 유기한 이 노인들에게 무료 식사부터 소속감과 삶의 의미까지 제공하며 이들은 정치적 존재로 다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현 체제에 무언가 불만과 위화감을 느끼던 보수 청년들이 합류한 것이다.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에 광장에 머물며 존재하기를 선택한 이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니, 사실 갑작스러워 보이는 보수의 혁명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스팔트 우익’운동의 한계
하지만 ‘아랍의 봄’이라는 렌즈를 낀다면 현재 한국의 ‘아스팔트 우익’운동의 한계도 보인다. 아세프 바야트는 ‘아랍의 봄’이 현 체제를 무너뜨릴 수는 있었지만, 대안적인 질서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이집트에서 집권한 무슬림형제단은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혼란을 낳았고, 구(舊)체제가 다시 돌아올 때 혁명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 광장에 더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 보수가 점하고 있는 여러 광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탄핵 반대, 윤석열 대통령 복귀’라는 간단한 구호는 구성원 내부의 차이를 줄이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단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운동이 성공하거나 실패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을 때, 단순한 구호가 통하지 않을 시점이 오면 내부로부터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다. 만약에 윤 대통령이 복귀하거나, 혹은 조기(早期)대선이 치러져 국민의힘이 정권 연장에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했을 때, 그리고 지금 논해지고 있는 의제를 모두 소진했을 때가 바로 그 시점이다.
대한민국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에 관한 아이디어와 장기적 청사진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비전과 프로그램이 있다면 운동은 일시적 패배나 성공과 무관하게 꾸준히 지속될 수 있지만, 없다면 오히려 독배(毒杯)가 되기도 한다.
트럼프가 주는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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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는 일런 머스크(왼쪽), JD 밴스(오른쪽) 같은 이들을 발굴해 연대하는 트럼프(가운데)의 행보를 참고해야 한다. 사진=AP/뉴시스 |
이런 의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우파 진영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과한 기대를 품는 것은 금물(禁物)이다. 미국과 한국은 다른 나라이며, 트럼프 행정부는 고립주의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당장 박정희 대통령부터 미국과 얼마나 길고 지난한 싸움을 벌였는가?
오히려 트럼프 2.0 시대에 주목할 것은 한국을 보는 그의 시선이 아니다. 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며 제시하는 프로그램들에 주목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가 정부효율위원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알렉스 카프가 팔란티어를 통해 제시한 새로운 기술 국가의 비전을 토의하고, ‘평범한 사람’을 대변하겠다는 JD 밴스에게 영향을 끼친 ‘포스트-자유주의’ 정치 사상가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트럼프의 프로그램은 답보 상태에 놓인 20세기 민주주의를 뛰어넘어서 앞으로 한국을 새롭게 바꾸도록 영감을 주는 지적(知的) 원천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아세안,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험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다극(多極)세계가 되며 요동치고 있는 지금의 지정학 구도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새로운 세계에서 한국의 위치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준비가 없는 지금은 우익이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아랍의 봄처럼 동력을 잃고 스러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안 된다’
지금 확인된 것은 적어도 국민의 40%를 차지하는 보수 시민들이 ‘이대로 가면 한국은 안 된다’라는 데서 광범위한 공감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요한 자원을 헛되이 소진하면 안 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5·16 혁명을 통해 표출된 열망을 모아내고,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최신의 산업, 기술, 지정학적 변화를 그대로 흡수해 재건과 조국 근대화를 이루어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당대 지도자들과 우리 국민의 의지가 매우 중요했지만 그 과업이 의지만으로 달성된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당분간 우리는 계엄-탄핵 정국 속에서 살아갈 것이지만, 누군가는 ‘더 멀리, 더 깊게’ 보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새로운 청사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