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재 재판관이 추천받은 정당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탄핵심판이 왜 있나’(최후 변론)
⊙ “민주당이 저를 탄핵해서 얻고자 했던 것은 방통위의 일시적 마비 통한 MBC를 위한 시간 벌기”
⊙ “왜 일반인이 헌재 재판관 이름을 다 알아야 하나? 재판관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아닐까”
⊙ “기자가 플레이어가 되어 막 흥분하면서 방송하고, 그것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것이 공정방송인가?”
⊙ “민주당, 다수를 앞세운 독재… 상상조차 못 할 일도 그냥 다수당이라며 밀어붙여”
⊙ “전통 미디어가 스스로 신뢰성 저버려”
李眞淑
1961년생. 경북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한국외대 영어통역대학원 한영과 졸(석사), 美 존스홉킨스대학 공공정책학 석사, 서강대 대학원 정치학·언론학 석사 / MBC 기자·워싱턴 특파원·워싱턴 지사장·홍보국장·대변인·기획홍보본부장·보도본부장, 대전 MBC 사장, 윤석열 대선캠프 언론특보·시민사회 총괄본부 대변인 역임. 現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민주당이 저를 탄핵해서 얻고자 했던 것은 방통위의 일시적 마비 통한 MBC를 위한 시간 벌기”
⊙ “왜 일반인이 헌재 재판관 이름을 다 알아야 하나? 재판관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아닐까”
⊙ “기자가 플레이어가 되어 막 흥분하면서 방송하고, 그것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것이 공정방송인가?”
⊙ “민주당, 다수를 앞세운 독재… 상상조차 못 할 일도 그냥 다수당이라며 밀어붙여”
⊙ “전통 미디어가 스스로 신뢰성 저버려”
李眞淑
1961년생. 경북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한국외대 영어통역대학원 한영과 졸(석사), 美 존스홉킨스대학 공공정책학 석사, 서강대 대학원 정치학·언론학 석사 / MBC 기자·워싱턴 특파원·워싱턴 지사장·홍보국장·대변인·기획홍보본부장·보도본부장, 대전 MBC 사장, 윤석열 대선캠프 언론특보·시민사회 총괄본부 대변인 역임. 現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2월 12일, 방통위 청사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월 23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앞.
이진숙(李眞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은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헌재로 향하던 길에 잠시 멈춰 섰다.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헌법을 수호하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재판소’
여느 때라면 그냥 스쳐 지나갔겠지만, 헌재의 최종 결정을 눈앞에 둔 당사자에게는 남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한 시간 뒤 헌재는 이렇게 결정했다.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棄却)한다.’
헌재의 결정이 난 직후 그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로 곧장 출근했다. 지난 2월 11일 방통위가 있는 정부과천청사에서 이진숙 위원장을 만났다.
“방통위가 1년의 절반을 날린 것이 안타까워”
―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174일이나 걸렸네요. 시간문제일 뿐 헌재가 당연히 기각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6개월의 공백 기간이 아쉽습니까.
“개인적으로 아쉽다기보다 방통위가 1년의 절반을 날린 것이 안타깝죠. 그간 방통위는 단순한 행정 업무만 했고 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중요한 사안들은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반년 전에 의결했더라면 진도가 상당히 나가서 국익(國益)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 있었을 텐데….”
― 이진숙 개인에 대한 판결이지만, 앞서 사퇴한 이동관(李東官), 김홍일(金洪一) 전(前) 위원장에 대한 판결이기도 하겠지요.
“몇몇은 제가 이틀 만에 탄핵을 당했지만 ‘대의(大義)를 위해 이제라도 사퇴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제 뜻은 처음부터 확고했습니다. 제가 물러난다면 국회는 자신들이 임명해야 하는 3명의 방통위원을 계속 임명하지 않을 것이고, 대통령은 자신 몫의 한 명을 임명하면서 줄다리기를 했을 겁니다. 민주당이 위법(違法)이라고 주장하는 ‘방통위 2인 체제의 정당성’은 반드시 법적인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헌재에서 판단을 내렸으니 이 문제는 더는 논란이 되지 않겠지요.
“방통위 설치법에 따르면 회의는 2명 이상의 위원들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하거나, 위원장 단독으로 소집할 수 있습니다. 헌재에서 ‘왜 의사 정족수를 정하지 않고 의결 정족수만 정해놨느냐’고 묻던데 제가 모든 과정을 겪어보니 나름 이유가 있다고 보였습니다. 법안, 개정안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단계를 거치는데 국회에서 이처럼 어깃장을 놓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때에도 위원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의결 정족수만 정해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퇴직자가 ‘나는 일을 더 하겠다’고 하는 것”
― 이런 법을 모르고 탄핵을 추진했을까요.
“저의 행동이 위법하지 않은 것을 민주당 또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쪽에도 법에 해박한 분들이 상당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저를 탄핵해서 얻고자 했던 것은 방통위의 일시적 마비일 거라 생각합니다.”
― 헌재 결과가 6개월 이내에 날 텐데 고작 그 시간을 공석(空席)으로 만들고자 탄핵했다고요?
“아니죠, 고작 6개월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MBC를 지킬 수 있다면 단 하루라도 중요합니다. MBC를 위해 벌어줘야 할 시간, 6개월은 정말 긴 시간이죠. 저는 MBC의 차기 사장에 누가 선임될지 모릅니다. 제 업무는 MBC 사장에 대한 추천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 선임입니다. 방문진 이사는 임기가 지난해 8월에 만료되는데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방문진 이사진 선임은 적법한 절차를 따랐습니다. 퇴직을 앞둔 사람을 대신할 만한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느닷없이 퇴직해야 하는 사람이 ‘나는 일을 더 하겠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나요?”
― 하긴 그 6개월이 공교롭게도 일상적인 6개월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시간이죠. 6개월은 한 국가의 모습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시간 아닙니까.”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헌재 재판은 준비서면 제출 두 번, 변론 세 번, 최종 결정 순(順)이었다. 준비서면 제출에는 이 위원장의 변호인만 참석했고, 변론(辯論)에는 세 번 모두 직접 헌재에 출석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2차 변론 기일은 12월 3일(이날 밤에 12·3 계엄이 있었다), 3차 변론 기일은 1월 15일(윤석열 대통령 체포일)이었다.
“헌재 재판관들에게 강하게 제 의견을 피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처음 두 번의 변론 때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1차 변론 때국회탄핵소추단장인 정청래(鄭淸來) 의원은 아주 열을 올리더군요. 3차 변론 때는 마지막 기회여서 미리 준비해 출석했습니다.”
〈헌재 재판관도 민주당 추천, 국민의힘 추천으로 추천한 정당은 다르지만, 헌재 재판관이 되는 순간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헌재 재판관들이 추천받은 정당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이진숙에 대한 이 탄핵 심판 역시 절차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숫자에 따라 이미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헌재 재판관들께서 철저하게 법리에 따라 판단하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 작심 발언을 했네요.
“두 번째 변론 기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전이었고, 마지막 변론 기일은 그 후였으니까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죠. 언론에서 헌재 재판관들의 배경, 성향, 과거 행적 등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에 그렇게 발언했습니다.”
― 3차 변론을 위해 헌재에 갔을 때 분위기가 다르던가요.
“제 사건은 처음부터 민주당, 민노총, MBC 대(對) 이진숙의 싸움이었습니다. 민노총은 머릿수가 있고, MBC는 여론을 만들고, 민주당은 입법부 아닙니까. 보통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워낙 진영이 나뉘어 있다 보니 헌재가 객관적으로 심판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헌재 결정이 난 1월 23일에는 어떤 마음으로 갔나요.
“공교롭게 대통령 탄핵 국면과 맞물려 있어서, 6 대 2 정도로 기각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찬성 대 반대가 4 대 4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땠습니까.
“우스갯소리로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라고 하잖아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MBC는 민주당 브로드캐스팅 코퍼레이션인가’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국회의 탄핵은 헌재에서 기각 결정이 났지만,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헌재 재판관들의 의견이 정확히 4 대 4로 갈리면서 같은 사안을 두고 어떻게 해석이 이렇게 극과 극일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언론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의 바로미터’라고 했다.
“중요한 사실은 헌재가 저에 대한 탄핵안을 기각했고 이로써 방통위 2인 체제의 적법성이 인정됐다는 겁니다. 방통위의 5인 체제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급하게 올라오는 안건에 대해 저와 부위원장이 결정하는 것이 법적(法的)으로 옳다는 얘기입니다. 국회에서 이제라도 방통위원 3명을 빨리 추천해 주기를 바랍니다. 탄핵 기각 결정 당일에는 제 예상과 많이 달라서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자꾸 4 대 4를 얘기하는 것은 민주당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라 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 민주당은 탄핵이 기각된 당일부터 재(再)탄핵 얘기를 했습니다.
“‘또다시 MBC에 손을 대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건가요? 분명히 밝히지만, MBC의 일에 관여한 것이 아니라 임기가 끝날 예정인 방문진 이사를 새로 선임했을 뿐입니다. 제가 탄핵소추로 직무 정지일 때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는 저에 대한 청문회를 계속했습니다. 제가 ‘MBC는 민주당 브로드캐스팅 코퍼레이션(Broadcasting Corporation)이냐, 민노총 브로드캐스트 코퍼레이션이냐’고 했는데 재탄핵 얘기를 듣자마자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났습니다.”
― 예전에 만났을 때는 헌재로부터 탄핵 재판은 받지만, 더는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처럼 얘기했는데요.
“방통위 직원들한테 미안해서 나갔습니다. 청문회 명칭부터 ‘불법적인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대한 청문회’였잖습니까. 자기들이 벌써 ‘불법’이라고 규정을 했더군요. 제가 나가지 않으니까 방통위 과장, 처장을 증인으로 불러서 방통위 업무에 차질을 빚었고, 직원들이 위축되는 것 같아서 그냥 제가 나갔습니다.”
“좌파 전략은 ‘세게,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얘기해라’”
― 지난달에 이상휘(李尙徽) 과방위원을 만났더니 ‘MBC는 민주당의 선전, 선동기구에 불과하다’고 하더군요.
“MBC는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에 대해서 박근혜씨,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 방송은 안 하고, 북한의 열병식은 각종 신무기가 소개됐다며 방송을 했습니다. 이게 공영방송 맞습니까? 자신들은 공정방송이라고 주장하는데 누가 봐도 공정하지가 않지 않습니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 현장에 나간 기자가 마구 흥분하면서 방송을 합니다. 이게 맞는 겁니까?”
이진숙 위원장의 얘기를 들으며 불현듯 떠올랐다. 지금은 방통위원장으로, 또 바로 직전에는 대전 MBC 사장을 지냈지만, 이진숙 위원장은 인생의 절반을 기자로 지냈다. 사회부, 국제부에서 근무했고 걸프전(1991년)과 이라크 전쟁(2003년) 때 미군 공습 현장을 보도했다. 관훈언론상 최병우국제보도상, 한국기자상, 최은희여기자상을 받은 베테랑 기자 출신이다.
“기자들은 어떤 사건을 접해도 의도적으로 거리를 떨어뜨려 놓고 객관적이며 중립적으로, 냉철하게 보도해야 합니다. 일부러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기자가 플레이어가 되어 막 흥분하면서 방송을 하고, 그것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것이 공정방송입니까? 저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방송 보도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공영방송이 버젓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사건은 헌재에서 재판 중이고 심지어 내란 혐의가 빠져 있습니다. ‘12·3 계엄’이지 ‘12·3 내란’이 아닙니다.”
― 직무 정지를 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방송에 대해 경고를 했겠네요.
“그건 방통위원장의 영역이 아닙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가 들어오면 심의할 뿐입니다. 김성훈 경호처 차장은 ‘공수처에서 체포하러 오더라도 끝까지 대통령 경호 업무를 담당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정확한 워딩입니다. 그런데 ‘강경파 김성훈’이라고 버젓이 내보내더군요. 자기 할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갑자기 왜 강경파로 둔갑합니까?”
― 이런 프레임에 많이 당해보셔서 잘 아시지요.
“저더러 극우(極右)라고 칭합니다. 자기들과 뜻이 다르다고 극우랍니다. 선전, 선동에 강한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세게,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얘기해라’입니다. 그걸 계속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은 그들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힙니다.”
“극우는 좌파가 사용하는 프레임”
TV 화면에는 강하게 비치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이진숙 위원장은 꽤 모노톤인 사람이다. 굉장히 좋아하거나 반대로 마구 흥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항상 비슷한 목소리 톤으로 표정의 변화 없이 차근차근 설명을 한다. 이어진 이진숙 위원장의 말이다.
“동대구역에서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극우, 일타 강사 전한길씨도 극우, 저도 극우, 민주당은 뭐든 ‘극우 프레임’을 씌웁니다. 편의상 우파, 좌파에 빗대 말을 하자면 우파들은 ‘극좌’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늘 ‘극우 프레임’을 짜서 사람을 가둡니다. 요즘은 20대 남성들도 극우라고 합니다. 좌파가 사용하는 프레임입니다. 요즘 집회가 한창 열리기에 그 부분을 짚어보자면, 정확하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 집회, 반대 집회가 맞습니다. 그런데 좌파들은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대해서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집회’라고 하고, 탄핵 찬성 집회는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만든 집회’라고 합니다. 얼핏 들어도 보수단체와 시민단체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탄핵 반대 집회 참석자는 ‘주최 측 추산’ 몇 명이라고 하고, 탄핵 찬성 집회 참석자는 ‘경찰 추산’ 몇 명이라 합니다. 교묘하게 말을 바꿔서 시청자들을, 또 국민을 조종합니다. 제 눈에는 이런 것들이 정말 잘 보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불공정 보도입니다.”
이진숙 위원장은 1월 23일에 헌재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오자마자 두 개의 안건에 사인했다. 지난해 폭우로 인해 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곳에 대한 TV 수신료 면제, 또 하나는 위치정보 사업자에 대한 과태료 처분이었다. 몇몇은 “위원장으로서의 첫 번째 업무를 눈길을 확 끄는 것으로 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 위원장은 듣지 않았다.
“저는 돋보이려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도 않고요. 이 업무가 제게 주어졌기에 과거에나 현재에도, 또 앞으로도 제게 주어진 일을 할 뿐입니다. 헌재에서 곧바로 방통위로 온 날은 그것이 가장 시급한 업무라서 처리했습니다.”
― 방통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뭡니까.
“지난해 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방송 통신 분야의 주요 정책 과제들이 상당 기간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에 처리하지 못한 과제들을 최우선으로 검토하고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OTT, 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미디어”
― 과거 라디오, 지상파 TV가 주요 미디어였던 것과 비교해 오늘날은 종편, OTT,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는데 어디까지를 미디어로 봐야 할까요.
“미디어 자체가 소통의 수단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술이나 산업이 변하면 그 범위가 탄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튜브, OTT,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모두 대상과 방식만 다를 뿐 소통의 수단이기 때문에 폭넓게 미디어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 위원장으로서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한다’고 했는데 언뜻 과거의 계도방송이 떠오릅니다.
“계도방송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을 이끌어가는 방송이라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송’은 국민 누구에게나 다양한 콘텐츠를 신속하고 충분하게 제공하고 국민 스스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송입니다. 방통위는 올해 엄격한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 실시, 방송평가 제도 개선, 체계화된 재난방송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방송의 공공성과 책임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 지상파 방송 재허가 심사는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가요. 12개 방송사, 146개 방송국이 걸린 중대한 사안인데요.
“2024년 유효 기간이 만료된 지상파 재허가 심사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 중입니다. 조만간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예정입니다.”
― 불법 촬영 영상물 유포 피해도 심각합니다. 어떤 복안을 갖고 계십니까.
“방통위는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해 불법 촬영 의심 영상물을 선(先) 임시 조치 후(後) 심의해서 방심위 심의 전까지 일반인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2차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불법 촬영물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긴급 심의 대상에 포함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AI 이용자 보호법에 대해서도 고민 중입니다. 어쩌면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겼을 때부터 AI 시대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했고, 이미 싱귤레러티(singularity·인간과 기계 혹은 로봇이 하나가 되는 단일점)의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방통위가 준비하는 ‘AI 이용자 보호법’은 이용자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하면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AI 관련 이용자 보호 정책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고, 사회의 요구와 상황에 맞게 ‘AI 이용자 보호법’을 추진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 정부가 ‘국가 AI 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과기부와 방통위가 주축이 된 AI 지원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I의 국가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인 만큼 이 목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데 방통위도 예외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AI 산업 지원과 이용자 보호 정책은 AI 정책의 두 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과기정통부와 협력해 방통위가 할 수 있거나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할 겁니다.”
“국민들, 레거시 미디어 따르지 않아”
― 평생 미디어 안에, 또는 관련 업무를 하다가 좀 떨어져서 미디어를 바라보니 어떻던가요.
“우리 국민이 몰라도 될 것들을 너무 많이 알도록 하더군요. 문형배(文炯培), 이미선(李美善), 정계선(鄭桂先), 정정미(鄭貞美), 김형두(金炯枓), 조한창(趙漢暢), 김복형(金福馨), 정형식(鄭亨植)까지 왜 일반인이 헌재 재판관 이름을 다 알아야 합니까. ‘이재명 대표는 문형배 재판관에게 마나님은 잘 계시죠라고 하더라’ ‘이미선 재판관의 남편 오충진 변호사는 권순일 50억 클럽 회사에서 일한다더라’ ‘정정미 재판관은 과거 대한민국 주적(主敵)을 물었더니 대답을 못 하더라’ 등 이런 것들을 왜 일일이 알아야 하죠? 저는 재판관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재판관도 사람이라 성향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 누구를 떠나 재판만큼은 공정할 것이라는 기초적인 믿음이 사라져서 그런 거 아닐까요.
“네, 못 믿겠다는 거죠. 언론이 얼마나 신뢰성을 담보합니까. ‘방송에서 봤다’고 하면 믿음이 갔던 세상인데 이제는 일반인들이 이것을 믿지 않는 겁니다. 이런 차원에서 레거시 미디어(전통 미디어)들은 상당히 반성을 해야 합니다.”
― 스스로 신뢰성을 잃은 건가요.
“과거에는 원천 데이터를 방송국(신문사)들만 갖고 있었고 국민에게 생중계될 때 필터링을 거쳐서 나갔습니다. 요즘은 헌재의 경우만 딜레이 중계고 다른 주요 사건과 행사의 경우 생중계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원천 데이터가 모든 국민에게 공개됩니다. 레거시 미디어가 헤드라인을 뽑고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해도 국민이 따르지 않습니다.”
“민주당, 대통령의 인사권 전면 무력화”
방통위원장은 장관급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그래서 이진숙 위원장도 민감하지만, 현실적인 질문에 대답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 질문을 던졌다.
―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보십니까.
“비극이죠. 하지만 제 생각은 확고합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한 판단은 법정에서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섣부르게 예단(豫斷)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있어요.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민이 권한을 준 대한민국의 CEO입니다. CEO가 가진 최고의 권한은 인사권과 예산권 아닙니까. 한데 그동안 민주당의 행태들은 이 둘을 모두 행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저 하나를 탄핵했다면 이런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이상민(李祥敏)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朴性載) 법무부 장관, 이창수(李昌洙) 중앙지검장,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 최재해(崔載海) 감사원장에 한덕수(韓悳洙) 국무총리까지 탄핵했습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전면 무력화(無力化)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무려 스물아홉 번의 탄핵안을 발의했습니다. 게다가 검찰과 경찰의 특활비를 0원으로 만드는 등 황당한 예산 삭감을 했습니다. 민주당의 행태가 ‘나는 당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 다수당인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월급이나 받고 있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2년 반을 더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겠네요.
“의중이야 모르지만, 민주당의 행태는 정말 너무 심했죠. 사실상 대통령직 임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민주당의 횡포를 직접 당해봤으니까 말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 다수를 앞세운 독재”
이진숙 위원장이 말한 바로는 사상 초유의 그에 대한 과방위의 ‘3일 청문회’는 이렇게 결정됐다고 한다. 과방위는 여당 의원 7명, 야당 의원 13명으로 이뤄져 있다. 애초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청문회는 이틀로 예정돼 있었다. 청문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과방위원장인 최민희 의원(민주당)이 입을 열었다.
“노종면 위원님께서 제안하신 것에 따라 안건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인사청문회를 내일까지 실시하기 위해 인사청문회 실시계획 변경의 안을 추가 상정합니다. 인사청문회를 2일간에서 3일간으로 변경하는 데 이의 없으십니까?”
최 의원의 말이 끝나자 신성범 의원(국민의힘)이 말을 받았다.
“청문회를 할 만큼 했는데 왜 연장해야 합니까. 이의가 대단히 많습니다.”
최민희 의원이 말했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의가 있으므로 표결에 부치겠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후) 표결합니다. 인사청문회 실시계획서 변경의 건에 찬성하는 위원님들께서는 거수해 주세요. 네, 열한 분,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땅땅.”
이진숙 위원장이 말을 이었다.
“민주당의 행태는 다수를 앞세운 횡포, 독재 아닙니까? 그냥 머릿수가 많다는 것을 앞세워서 모든 것을 밀어붙입니다. 다수 독재의 폭정은 숫자에 집착하고, 그러려면 포퓰리즘 정책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전 국민에게 25만원 지급합니다. 4인 가족이면 100만원이죠’는 이렇게 나온 겁니다.”
― 그저 모든 것을 표결에 부친다, 왜냐하면 민주당은 다수당이니까 이겁니까.
“너무 당연하게, 자신들의 권리인 양 말을 합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모조리 하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것조차 합니다.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상상하는 모든 것은 이뤄진다’고 했는데, 민주당은 그걸 뛰어넘습니다. 상상조차 못 할 일도 그냥 다수당이라며 밀어붙입니다. 이건 정말 너무나 위험한 생각이자 행동입니다.”
― 만일 조기 대선이 치러져서 야당이 집권할 경우에 임기가 남아 있지만 상당한 압박이 들어올 수도 있는데요.
“제 머릿속에 조기 대선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진숙 위원장은 단호했다. 몇 차례 ‘만약에’라고 물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다. 인터뷰를 하면서 내내 ‘헌재’를 언급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일반인은 물론 아니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헌재에 재판 당사자로서 출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물었다.
― 지난 6개월 남짓,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을 텐데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나는 왜 항상 소란스러운 현장에 있어야 하나, 이게 나의 운명인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전쟁통에서의 취재도 늘 시끄러웠고, MBC 최장기 파업 때 홍보국장·기획본부장을 맡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이번에는 대통령 탄핵까지 이뤄진 상황에서 받는 재판이라서, 언론의 관심을 상당히 받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운명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끄러웠던 현장은 모두 의미가 있었습니다.”
― 모든 이의 관심사는 MBC 아니겠습니까.
“저와 방통위 부위원장이 선임한 방문진 이사는 아직 출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기가 만료된 방문진 이사들이 제 선임 과정을 문제 삼아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 현재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거든요. 대법원에서 하루빨리 결정 내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이널 세일(final sale)’
― 임기 내 이루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나는 이것을 했노라’고 내세울 만한 것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 혹은 어딘가에 보복을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방통위에서 내리는 행정조치나 규제는 모두 법에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제게 위임한 권한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 직업은 방통위원장인데, 직업을 수행하면서 양심을 갖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이진숙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돌고 돌아, 그가 헌재 결정을 위해 그곳으로 갔던 지난 1월 23일로 돌아갔다. 이진숙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에서 지내보니 참 세일이 많더군요. 파이널 세일(final sale)이라고 해서 100만원짜리를 5만원에 파는 일도 있어요. 대신 조건이 붙죠. ‘환불, 교환 안 돼요’라고요. 그날 헌재를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헌재는 파이널 지점입니다. 딱 한 번의 파이널. 모든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마지막 그런 곳이요. 사법 절차는 3심제로 운용되는데 헌재는 딱 한 번의 최종, 이게 맞나 싶더군요.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절차가 교환도, 환불도 되지 않는 딱 한 번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진숙(李眞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은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헌재로 향하던 길에 잠시 멈춰 섰다.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헌법을 수호하고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재판소’
여느 때라면 그냥 스쳐 지나갔겠지만, 헌재의 최종 결정을 눈앞에 둔 당사자에게는 남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한 시간 뒤 헌재는 이렇게 결정했다.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棄却)한다.’
헌재의 결정이 난 직후 그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로 곧장 출근했다. 지난 2월 11일 방통위가 있는 정부과천청사에서 이진숙 위원장을 만났다.
“방통위가 1년의 절반을 날린 것이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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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기각되면서 직무에 복귀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1월 23일 경기 과천 방송통신위원회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174일이나 걸렸네요. 시간문제일 뿐 헌재가 당연히 기각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6개월의 공백 기간이 아쉽습니까.
“개인적으로 아쉽다기보다 방통위가 1년의 절반을 날린 것이 안타깝죠. 그간 방통위는 단순한 행정 업무만 했고 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중요한 사안들은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반년 전에 의결했더라면 진도가 상당히 나가서 국익(國益)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 있었을 텐데….”
― 이진숙 개인에 대한 판결이지만, 앞서 사퇴한 이동관(李東官), 김홍일(金洪一) 전(前) 위원장에 대한 판결이기도 하겠지요.
“몇몇은 제가 이틀 만에 탄핵을 당했지만 ‘대의(大義)를 위해 이제라도 사퇴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제 뜻은 처음부터 확고했습니다. 제가 물러난다면 국회는 자신들이 임명해야 하는 3명의 방통위원을 계속 임명하지 않을 것이고, 대통령은 자신 몫의 한 명을 임명하면서 줄다리기를 했을 겁니다. 민주당이 위법(違法)이라고 주장하는 ‘방통위 2인 체제의 정당성’은 반드시 법적인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헌재에서 판단을 내렸으니 이 문제는 더는 논란이 되지 않겠지요.
“방통위 설치법에 따르면 회의는 2명 이상의 위원들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하거나, 위원장 단독으로 소집할 수 있습니다. 헌재에서 ‘왜 의사 정족수를 정하지 않고 의결 정족수만 정해놨느냐’고 묻던데 제가 모든 과정을 겪어보니 나름 이유가 있다고 보였습니다. 법안, 개정안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단계를 거치는데 국회에서 이처럼 어깃장을 놓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때에도 위원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의결 정족수만 정해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퇴직자가 ‘나는 일을 더 하겠다’고 하는 것”
― 이런 법을 모르고 탄핵을 추진했을까요.
“저의 행동이 위법하지 않은 것을 민주당 또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쪽에도 법에 해박한 분들이 상당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저를 탄핵해서 얻고자 했던 것은 방통위의 일시적 마비일 거라 생각합니다.”
― 헌재 결과가 6개월 이내에 날 텐데 고작 그 시간을 공석(空席)으로 만들고자 탄핵했다고요?
“아니죠, 고작 6개월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MBC를 지킬 수 있다면 단 하루라도 중요합니다. MBC를 위해 벌어줘야 할 시간, 6개월은 정말 긴 시간이죠. 저는 MBC의 차기 사장에 누가 선임될지 모릅니다. 제 업무는 MBC 사장에 대한 추천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 선임입니다. 방문진 이사는 임기가 지난해 8월에 만료되는데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방문진 이사진 선임은 적법한 절차를 따랐습니다. 퇴직을 앞둔 사람을 대신할 만한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느닷없이 퇴직해야 하는 사람이 ‘나는 일을 더 하겠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나요?”
― 하긴 그 6개월이 공교롭게도 일상적인 6개월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시간이죠. 6개월은 한 국가의 모습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시간 아닙니까.”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헌재 재판은 준비서면 제출 두 번, 변론 세 번, 최종 결정 순(順)이었다. 준비서면 제출에는 이 위원장의 변호인만 참석했고, 변론(辯論)에는 세 번 모두 직접 헌재에 출석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2차 변론 기일은 12월 3일(이날 밤에 12·3 계엄이 있었다), 3차 변론 기일은 1월 15일(윤석열 대통령 체포일)이었다.
“헌재 재판관들에게 강하게 제 의견을 피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처음 두 번의 변론 때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1차 변론 때국회탄핵소추단장인 정청래(鄭淸來) 의원은 아주 열을 올리더군요. 3차 변론 때는 마지막 기회여서 미리 준비해 출석했습니다.”
〈헌재 재판관도 민주당 추천, 국민의힘 추천으로 추천한 정당은 다르지만, 헌재 재판관이 되는 순간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헌재 재판관들이 추천받은 정당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이진숙에 대한 이 탄핵 심판 역시 절차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숫자에 따라 이미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헌재 재판관들께서 철저하게 법리에 따라 판단하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 작심 발언을 했네요.
“두 번째 변론 기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전이었고, 마지막 변론 기일은 그 후였으니까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죠. 언론에서 헌재 재판관들의 배경, 성향, 과거 행적 등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에 그렇게 발언했습니다.”
― 3차 변론을 위해 헌재에 갔을 때 분위기가 다르던가요.
“제 사건은 처음부터 민주당, 민노총, MBC 대(對) 이진숙의 싸움이었습니다. 민노총은 머릿수가 있고, MBC는 여론을 만들고, 민주당은 입법부 아닙니까. 보통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워낙 진영이 나뉘어 있다 보니 헌재가 객관적으로 심판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헌재 결정이 난 1월 23일에는 어떤 마음으로 갔나요.
“공교롭게 대통령 탄핵 국면과 맞물려 있어서, 6 대 2 정도로 기각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찬성 대 반대가 4 대 4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땠습니까.
“우스갯소리로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라고 하잖아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MBC는 민주당 브로드캐스팅 코퍼레이션인가’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국회의 탄핵은 헌재에서 기각 결정이 났지만,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헌재 재판관들의 의견이 정확히 4 대 4로 갈리면서 같은 사안을 두고 어떻게 해석이 이렇게 극과 극일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언론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의 바로미터’라고 했다.
“중요한 사실은 헌재가 저에 대한 탄핵안을 기각했고 이로써 방통위 2인 체제의 적법성이 인정됐다는 겁니다. 방통위의 5인 체제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급하게 올라오는 안건에 대해 저와 부위원장이 결정하는 것이 법적(法的)으로 옳다는 얘기입니다. 국회에서 이제라도 방통위원 3명을 빨리 추천해 주기를 바랍니다. 탄핵 기각 결정 당일에는 제 예상과 많이 달라서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자꾸 4 대 4를 얘기하는 것은 민주당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라 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 민주당은 탄핵이 기각된 당일부터 재(再)탄핵 얘기를 했습니다.
“‘또다시 MBC에 손을 대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건가요? 분명히 밝히지만, MBC의 일에 관여한 것이 아니라 임기가 끝날 예정인 방문진 이사를 새로 선임했을 뿐입니다. 제가 탄핵소추로 직무 정지일 때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는 저에 대한 청문회를 계속했습니다. 제가 ‘MBC는 민주당 브로드캐스팅 코퍼레이션(Broadcasting Corporation)이냐, 민노총 브로드캐스트 코퍼레이션이냐’고 했는데 재탄핵 얘기를 듣자마자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났습니다.”
― 예전에 만났을 때는 헌재로부터 탄핵 재판은 받지만, 더는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처럼 얘기했는데요.
“방통위 직원들한테 미안해서 나갔습니다. 청문회 명칭부터 ‘불법적인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대한 청문회’였잖습니까. 자기들이 벌써 ‘불법’이라고 규정을 했더군요. 제가 나가지 않으니까 방통위 과장, 처장을 증인으로 불러서 방통위 업무에 차질을 빚었고, 직원들이 위축되는 것 같아서 그냥 제가 나갔습니다.”
“좌파 전략은 ‘세게,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얘기해라’”
― 지난달에 이상휘(李尙徽) 과방위원을 만났더니 ‘MBC는 민주당의 선전, 선동기구에 불과하다’고 하더군요.
“MBC는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에 대해서 박근혜씨,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 방송은 안 하고, 북한의 열병식은 각종 신무기가 소개됐다며 방송을 했습니다. 이게 공영방송 맞습니까? 자신들은 공정방송이라고 주장하는데 누가 봐도 공정하지가 않지 않습니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 현장에 나간 기자가 마구 흥분하면서 방송을 합니다. 이게 맞는 겁니까?”
이진숙 위원장의 얘기를 들으며 불현듯 떠올랐다. 지금은 방통위원장으로, 또 바로 직전에는 대전 MBC 사장을 지냈지만, 이진숙 위원장은 인생의 절반을 기자로 지냈다. 사회부, 국제부에서 근무했고 걸프전(1991년)과 이라크 전쟁(2003년) 때 미군 공습 현장을 보도했다. 관훈언론상 최병우국제보도상, 한국기자상, 최은희여기자상을 받은 베테랑 기자 출신이다.
“기자들은 어떤 사건을 접해도 의도적으로 거리를 떨어뜨려 놓고 객관적이며 중립적으로, 냉철하게 보도해야 합니다. 일부러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기자가 플레이어가 되어 막 흥분하면서 방송을 하고, 그것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것이 공정방송입니까? 저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방송 보도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공영방송이 버젓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사건은 헌재에서 재판 중이고 심지어 내란 혐의가 빠져 있습니다. ‘12·3 계엄’이지 ‘12·3 내란’이 아닙니다.”
― 직무 정지를 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방송에 대해 경고를 했겠네요.
“그건 방통위원장의 영역이 아닙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가 들어오면 심의할 뿐입니다. 김성훈 경호처 차장은 ‘공수처에서 체포하러 오더라도 끝까지 대통령 경호 업무를 담당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정확한 워딩입니다. 그런데 ‘강경파 김성훈’이라고 버젓이 내보내더군요. 자기 할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갑자기 왜 강경파로 둔갑합니까?”
― 이런 프레임에 많이 당해보셔서 잘 아시지요.
“저더러 극우(極右)라고 칭합니다. 자기들과 뜻이 다르다고 극우랍니다. 선전, 선동에 강한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세게,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얘기해라’입니다. 그걸 계속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은 그들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힙니다.”
“극우는 좌파가 사용하는 프레임”
TV 화면에는 강하게 비치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이진숙 위원장은 꽤 모노톤인 사람이다. 굉장히 좋아하거나 반대로 마구 흥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항상 비슷한 목소리 톤으로 표정의 변화 없이 차근차근 설명을 한다. 이어진 이진숙 위원장의 말이다.
“동대구역에서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극우, 일타 강사 전한길씨도 극우, 저도 극우, 민주당은 뭐든 ‘극우 프레임’을 씌웁니다. 편의상 우파, 좌파에 빗대 말을 하자면 우파들은 ‘극좌’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늘 ‘극우 프레임’을 짜서 사람을 가둡니다. 요즘은 20대 남성들도 극우라고 합니다. 좌파가 사용하는 프레임입니다. 요즘 집회가 한창 열리기에 그 부분을 짚어보자면, 정확하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 집회, 반대 집회가 맞습니다. 그런데 좌파들은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대해서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집회’라고 하고, 탄핵 찬성 집회는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만든 집회’라고 합니다. 얼핏 들어도 보수단체와 시민단체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탄핵 반대 집회 참석자는 ‘주최 측 추산’ 몇 명이라고 하고, 탄핵 찬성 집회 참석자는 ‘경찰 추산’ 몇 명이라 합니다. 교묘하게 말을 바꿔서 시청자들을, 또 국민을 조종합니다. 제 눈에는 이런 것들이 정말 잘 보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불공정 보도입니다.”
이진숙 위원장은 1월 23일에 헌재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오자마자 두 개의 안건에 사인했다. 지난해 폭우로 인해 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곳에 대한 TV 수신료 면제, 또 하나는 위치정보 사업자에 대한 과태료 처분이었다. 몇몇은 “위원장으로서의 첫 번째 업무를 눈길을 확 끄는 것으로 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 위원장은 듣지 않았다.
“저는 돋보이려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도 않고요. 이 업무가 제게 주어졌기에 과거에나 현재에도, 또 앞으로도 제게 주어진 일을 할 뿐입니다. 헌재에서 곧바로 방통위로 온 날은 그것이 가장 시급한 업무라서 처리했습니다.”
― 방통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뭡니까.
“지난해 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방송 통신 분야의 주요 정책 과제들이 상당 기간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에 처리하지 못한 과제들을 최우선으로 검토하고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OTT, 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미디어”
― 과거 라디오, 지상파 TV가 주요 미디어였던 것과 비교해 오늘날은 종편, OTT,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는데 어디까지를 미디어로 봐야 할까요.
“미디어 자체가 소통의 수단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술이나 산업이 변하면 그 범위가 탄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튜브, OTT,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모두 대상과 방식만 다를 뿐 소통의 수단이기 때문에 폭넓게 미디어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 위원장으로서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한다’고 했는데 언뜻 과거의 계도방송이 떠오릅니다.
“계도방송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을 이끌어가는 방송이라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송’은 국민 누구에게나 다양한 콘텐츠를 신속하고 충분하게 제공하고 국민 스스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송입니다. 방통위는 올해 엄격한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 실시, 방송평가 제도 개선, 체계화된 재난방송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방송의 공공성과 책임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 지상파 방송 재허가 심사는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가요. 12개 방송사, 146개 방송국이 걸린 중대한 사안인데요.
“2024년 유효 기간이 만료된 지상파 재허가 심사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 중입니다. 조만간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예정입니다.”
― 불법 촬영 영상물 유포 피해도 심각합니다. 어떤 복안을 갖고 계십니까.
“방통위는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해 불법 촬영 의심 영상물을 선(先) 임시 조치 후(後) 심의해서 방심위 심의 전까지 일반인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2차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불법 촬영물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긴급 심의 대상에 포함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AI 이용자 보호법에 대해서도 고민 중입니다. 어쩌면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겼을 때부터 AI 시대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했고, 이미 싱귤레러티(singularity·인간과 기계 혹은 로봇이 하나가 되는 단일점)의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방통위가 준비하는 ‘AI 이용자 보호법’은 이용자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하면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AI 관련 이용자 보호 정책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고, 사회의 요구와 상황에 맞게 ‘AI 이용자 보호법’을 추진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 정부가 ‘국가 AI 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과기부와 방통위가 주축이 된 AI 지원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I의 국가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인 만큼 이 목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데 방통위도 예외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AI 산업 지원과 이용자 보호 정책은 AI 정책의 두 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과기정통부와 협력해 방통위가 할 수 있거나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할 겁니다.”
“국민들, 레거시 미디어 따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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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7일, 직무가 정지됐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우리 국민이 몰라도 될 것들을 너무 많이 알도록 하더군요. 문형배(文炯培), 이미선(李美善), 정계선(鄭桂先), 정정미(鄭貞美), 김형두(金炯枓), 조한창(趙漢暢), 김복형(金福馨), 정형식(鄭亨植)까지 왜 일반인이 헌재 재판관 이름을 다 알아야 합니까. ‘이재명 대표는 문형배 재판관에게 마나님은 잘 계시죠라고 하더라’ ‘이미선 재판관의 남편 오충진 변호사는 권순일 50억 클럽 회사에서 일한다더라’ ‘정정미 재판관은 과거 대한민국 주적(主敵)을 물었더니 대답을 못 하더라’ 등 이런 것들을 왜 일일이 알아야 하죠? 저는 재판관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재판관도 사람이라 성향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 누구를 떠나 재판만큼은 공정할 것이라는 기초적인 믿음이 사라져서 그런 거 아닐까요.
“네, 못 믿겠다는 거죠. 언론이 얼마나 신뢰성을 담보합니까. ‘방송에서 봤다’고 하면 믿음이 갔던 세상인데 이제는 일반인들이 이것을 믿지 않는 겁니다. 이런 차원에서 레거시 미디어(전통 미디어)들은 상당히 반성을 해야 합니다.”
― 스스로 신뢰성을 잃은 건가요.
“과거에는 원천 데이터를 방송국(신문사)들만 갖고 있었고 국민에게 생중계될 때 필터링을 거쳐서 나갔습니다. 요즘은 헌재의 경우만 딜레이 중계고 다른 주요 사건과 행사의 경우 생중계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원천 데이터가 모든 국민에게 공개됩니다. 레거시 미디어가 헤드라인을 뽑고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해도 국민이 따르지 않습니다.”
“민주당, 대통령의 인사권 전면 무력화”
방통위원장은 장관급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그래서 이진숙 위원장도 민감하지만, 현실적인 질문에 대답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 질문을 던졌다.
―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보십니까.
“비극이죠. 하지만 제 생각은 확고합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한 판단은 법정에서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섣부르게 예단(豫斷)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있어요.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민이 권한을 준 대한민국의 CEO입니다. CEO가 가진 최고의 권한은 인사권과 예산권 아닙니까. 한데 그동안 민주당의 행태들은 이 둘을 모두 행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저 하나를 탄핵했다면 이런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이상민(李祥敏)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朴性載) 법무부 장관, 이창수(李昌洙) 중앙지검장,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 최재해(崔載海) 감사원장에 한덕수(韓悳洙) 국무총리까지 탄핵했습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전면 무력화(無力化)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무려 스물아홉 번의 탄핵안을 발의했습니다. 게다가 검찰과 경찰의 특활비를 0원으로 만드는 등 황당한 예산 삭감을 했습니다. 민주당의 행태가 ‘나는 당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 다수당인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월급이나 받고 있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2년 반을 더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겠네요.
“의중이야 모르지만, 민주당의 행태는 정말 너무 심했죠. 사실상 대통령직 임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민주당의 횡포를 직접 당해봤으니까 말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 다수를 앞세운 독재”
이진숙 위원장이 말한 바로는 사상 초유의 그에 대한 과방위의 ‘3일 청문회’는 이렇게 결정됐다고 한다. 과방위는 여당 의원 7명, 야당 의원 13명으로 이뤄져 있다. 애초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청문회는 이틀로 예정돼 있었다. 청문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과방위원장인 최민희 의원(민주당)이 입을 열었다.
“노종면 위원님께서 제안하신 것에 따라 안건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인사청문회를 내일까지 실시하기 위해 인사청문회 실시계획 변경의 안을 추가 상정합니다. 인사청문회를 2일간에서 3일간으로 변경하는 데 이의 없으십니까?”
최 의원의 말이 끝나자 신성범 의원(국민의힘)이 말을 받았다.
“청문회를 할 만큼 했는데 왜 연장해야 합니까. 이의가 대단히 많습니다.”
최민희 의원이 말했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의가 있으므로 표결에 부치겠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후) 표결합니다. 인사청문회 실시계획서 변경의 건에 찬성하는 위원님들께서는 거수해 주세요. 네, 열한 분,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땅땅.”
이진숙 위원장이 말을 이었다.
“민주당의 행태는 다수를 앞세운 횡포, 독재 아닙니까? 그냥 머릿수가 많다는 것을 앞세워서 모든 것을 밀어붙입니다. 다수 독재의 폭정은 숫자에 집착하고, 그러려면 포퓰리즘 정책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전 국민에게 25만원 지급합니다. 4인 가족이면 100만원이죠’는 이렇게 나온 겁니다.”
― 그저 모든 것을 표결에 부친다, 왜냐하면 민주당은 다수당이니까 이겁니까.
“너무 당연하게, 자신들의 권리인 양 말을 합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모조리 하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것조차 합니다.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상상하는 모든 것은 이뤄진다’고 했는데, 민주당은 그걸 뛰어넘습니다. 상상조차 못 할 일도 그냥 다수당이라며 밀어붙입니다. 이건 정말 너무나 위험한 생각이자 행동입니다.”
― 만일 조기 대선이 치러져서 야당이 집권할 경우에 임기가 남아 있지만 상당한 압박이 들어올 수도 있는데요.
“제 머릿속에 조기 대선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진숙 위원장은 단호했다. 몇 차례 ‘만약에’라고 물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다. 인터뷰를 하면서 내내 ‘헌재’를 언급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일반인은 물론 아니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헌재에 재판 당사자로서 출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물었다.
― 지난 6개월 남짓,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을 텐데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나는 왜 항상 소란스러운 현장에 있어야 하나, 이게 나의 운명인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전쟁통에서의 취재도 늘 시끄러웠고, MBC 최장기 파업 때 홍보국장·기획본부장을 맡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이번에는 대통령 탄핵까지 이뤄진 상황에서 받는 재판이라서, 언론의 관심을 상당히 받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운명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끄러웠던 현장은 모두 의미가 있었습니다.”
― 모든 이의 관심사는 MBC 아니겠습니까.
“저와 방통위 부위원장이 선임한 방문진 이사는 아직 출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기가 만료된 방문진 이사들이 제 선임 과정을 문제 삼아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 현재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거든요. 대법원에서 하루빨리 결정 내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이널 세일(final sale)’
― 임기 내 이루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나는 이것을 했노라’고 내세울 만한 것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 혹은 어딘가에 보복을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방통위에서 내리는 행정조치나 규제는 모두 법에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제게 위임한 권한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 직업은 방통위원장인데, 직업을 수행하면서 양심을 갖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이진숙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돌고 돌아, 그가 헌재 결정을 위해 그곳으로 갔던 지난 1월 23일로 돌아갔다. 이진숙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에서 지내보니 참 세일이 많더군요. 파이널 세일(final sale)이라고 해서 100만원짜리를 5만원에 파는 일도 있어요. 대신 조건이 붙죠. ‘환불, 교환 안 돼요’라고요. 그날 헌재를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헌재는 파이널 지점입니다. 딱 한 번의 파이널. 모든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마지막 그런 곳이요. 사법 절차는 3심제로 운용되는데 헌재는 딱 한 번의 최종, 이게 맞나 싶더군요.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절차가 교환도, 환불도 되지 않는 딱 한 번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