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갑제의 시각

윤석열 自爆계엄의 정신세계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조갑제TV 대표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계엄사태를 통하여 드러난 초현실적 人格. 윤석열이 격분과 망상의 흥분상태에서 터트린 비상계엄령 사태는 정치적 핵폭탄이 되어 용산 상공에서 터졌다. 그리하여 윤석열-김용현 콤비는 정권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권력 중독, 유튜브 중독, 알코올 중독이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그는 王이었다.
사진=조선DB
  윤석열 대통령의 자폭적인 비상계엄령 선포 하루 전 나는 그 전주(前週)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읽다가 이상한 수치의 흐름을 발견했다. 윤 대통령 국정 긍정률은 19%, 부정률은 72%였는데, 의료대란으로 ‘아프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불안해 하는 이들은 79%, ‘걱정 안 된다’는 19%였다. 의료사태에 대하여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8%, ‘잘못하고 있다’는 66%였다.
 
  세 항목의 긍정과 부정이 19-72/19-79/18-66으로 비슷하게 분포했다. 이는 사람들이 의료사태를 기준으로 윤석열의 국정(國政) 운영을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진료 불안감은 핵무기 사용에 대한 한국인의 불안감을 웃돌았다. 가장 많은 한국인에게 가장 심각한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김건희 문제도, 이재명 재판도, 국회 파행도 아닌 의료대란임을 보여주는 통계였다. 인명 손실 측면에서 한국전(戰) 이후 가장 큰 사건이란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김일성과 경쟁 중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한동훈, 국민의힘은 의료대란이 없는 것처럼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의정(醫政)협의체가 전날 와해되었는데도 애석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치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조갑제닷컴에 이런 경고성 글을 올렸다.
 
  〈10층 집에 불이 났는데 아래로부터 6층까지 타들어 와도 ‘나는 10층에 사니까’라면서 탈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머지않아 뛰어내려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의료대란이란 불을 질러놓고 불을 끄지 않는 집주인은 아들(한동훈 이하 국힘당원)이 불을 끄겠다는 것도 말린다. 아들은 아버지가 무서워 탈출도 하지 못한다.
 
  일가족이 불타 죽은 시신(屍身)으로 발견될 때, 소방수들은 “불이 2층까지 왔을 때 3층에서 뛰어내렸으면 살았을 텐데” 하고 안타까워할 뿐이다. 시한폭탄(時限爆彈)은 돌아가고 있다.〉

 
  그 시한폭탄은 바로 다음 날 터졌다.
 
 
  ‘이게 뭐지?’
 
  운명적인 2024년 12월 3일 밤. 부산에 사는 지인(知人)이 전화를 걸어왔다.
 
  “조 사장, 보셨죠?”
 
  “뭘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어요. 이제 다 잡아들일 것 같아요.”
 
  그의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나는 순간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닌 것으로 밝혀졌을 때 ‘이게 뭐지?’ 하고 곧 쓴웃음이 나왔다.
 
  그날 밤 전개된 드라마엔 긴박감이 나 절박함도 비장감도 없었다. 나는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6건의 동영상을 조갑제TV에 순차적으로 올렸다.
 
  첫 영상은 제목이 〈긴급뉴스! 윤석열 비상계엄 선포! 한동훈은 “막겠다”. 국회가 해제 결의할 듯, 전시나 준전시 때만 가능〉이었다. 이어서 사태 진전에 따라 올린 속보 영상 제목이다.
 

  〈한동훈 대표, 계엄령 선포 잘못된 것, 국민과 함께 막겠다! 민주당과 국힘당이 계엄해제 결의하나?〉
 
  〈한동훈, 군경에 경고 “反헌법적 계엄에 동조 부역 말라.” 무장 계엄군, 국회 본관 진입. 유혈사태 막아야〉
 
  〈국회, 계엄령 해제 결의, 윤석열 무력화! 거부하면 군사반란! 탄핵 요구 거셀 듯〉
 
  〈“미치광이 윤석열이 계엄령 해제 지체하면 우리 군이 내란죄로 체포해야”(천하람). 공수부대의 국회 본관 진입은 심각한 사태. 윤석열은 이렇게 될 줄 몰랐단 말인가〉
 
  〈윤석열 6시간 만에 항복! 계엄령 해제! 윤석열은 재기불능〉

 
  이 6시간이 그와 국민의힘, 그리고 한국 보수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역대 최악의 공문서
 
  상황이 일단락된 뒤에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담화문을 읽어보았다. 건국 이후 최악의 공문서로 기록될 것이다. 헌법 이전에 문법(文法)과 교양어를 어지럽힌 거짓, 과장, 왜곡, 저속, 격분의 낱말들이 무질서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홧김에 저지른 비상계엄령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늘 냉철하고 느긋해야 할 세계 7대 강국의 지도자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계엄령을 선포했으니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었다.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안부장관 탄핵, 방통위원장 탄핵, 감사원장 탄핵, 국방장관 탄핵 시도 등으로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습니다”의 ‘마비’는 과장이 심하여 거짓말로 분류한다.
 
  “국가 본질 기능과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하여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습니다”도 과장이 지나쳐 거짓말이 된 경우이다.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들의 한숨은 늘어나고 있습니다”의 ‘마비’도 거짓말이다. 가장 신중한 어휘 선택을 해야 할 대통령이 극단적 과장법을 쓴 것이다. ‘국정 마비’가 사실이라면 그 국정의 책임자인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함을 무시한 글이었다.
 
  “민주당의 입법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는 운동권 말투이다.
 
  “이는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反)국가 행위입니다”의 ‘내란’은 엄청난 확대해석이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에 나오는 ‘소굴’ ‘마비’ ‘전복’은 개별적으로 쓰면 과장이지만 이어놓으면 증폭되어 거짓말이다. 윤 대통령은 이를 계엄 선포의 사유로 삼은 셈인데, 이게 헌법 77조가 규정한 ‘전시(戰時),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서 군대를 동원해야 할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인가?
 
  길지 않은 담화문에서 거짓·과장·왜곡을 잡아내니 20건이 넘었다. 이런 문장력은 그가 거쳐온 서울법대와 검찰의 교육 실패 사례이기도 할 것이다.
 
 
  의사들에게 품은 꽁하는 심정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포고령 속에는 의대 증원에 반발해 온 의사들을 겨냥한 항목도 있었다. 사진=조선DB
  윤석열 대통령이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에도 격분(激憤)의 흔적이 묻어 있다. 시작은 비장하다.
 
  〈자유 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문제는 내용이다. 1항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했는데, 국회 활동은 계엄령으로 통제할 수 없다. 이 포고령에 따라 계엄군을 국회 안으로 진입시킨 행위는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국헌 문란을 위한 폭동’으로 간주될 것이다.
 
  2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 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그 순간 2020년 4월 총선 이후 나라를 어지럽혀 온 가장 큰 가짜뉴스인 부정선거 음모론에 넘어가 과천 중앙선관위로 계엄군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음모론자들이 사주한 계엄령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5항은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인데, 사실 오인에 기초한 협박이었다. 전공의는 사직한 것이지 파업(직을 유지하면서 일을 하지 않는 행위)을 하지 않았는데 파업 중이라고 오판해 ‘처단’ 운운했다.
 
  ‘처단(處斷)’은 ‘처벌(處罰)’과 ‘처형(處刑)’의 중간쯤 되는 엄벌 표현으로서 왕조 시대에 어울리는 용어이다. 여기서 윤 대통령이 의료대란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의사들에게 꽁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부정선거쟁이들의 음모론을 믿고, 선관위에서 확보한 서버를 만져서 국회가 부정선거 당선자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밝혀내 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망상이 더해진 것이 너무나 충동적인 계엄 선포로 이어진 모양새이다.
 
 
  흥분상태
 
  여러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한 그날 밤 그는 흥분상태였다. 계엄 국무회의 때도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다고 한다.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장관이 지인에게 전한 상황은 이렇다(《동아일보》 보도).
 
  〈국무위원들이 한두어 명씩 모여서 대통령한테 가서 설득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대통령은 원래 비상계엄 선포를 밤 10시에 발표 예정이었어서 장관들이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하려고 하니까 의사정족수(11명)를 못 채우면 안 된다고 설득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평상시에도 국무회의 하면서 대통령 앞에 있는 장관들이 고양이 앞에 있는 쥐처럼 단 한 사람도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찬성한다, 반대한다 이런 얘기를 못 한다. 그래서 (계엄 당일에도) 소수의 인원만 대통령 방에 가서 얘기하고 그런 식으로, 대통령이 얼굴이 달아올라 있어 감정적으로 격해 있으니 저 정도면 아무도 못 막는다, 그래서 국무위원들이 차라리 좀 안 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계엄을 선포할 만한 적정한 시기가 아니고 요건이 안 됐다고 얘기를 했다. 국민들이 계엄을 납득하겠냐고 했다. 대통령이 11명이 됐는지 숫자를 딱 셌다. 전체가 모여서 회의 한 건 10~20분도 안 된다. 대통령이 “국무위원은 (계엄에 대해) 입장이 그럴 수 있지만 대통령은 최후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국무위원하고 보는 관점이나 책임감이 다를 수 있다. 나는 하겠다”고 말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2024년 12월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계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했다. 사진=조선DB
  국회, 민주당, 선관위 등 시설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미리 받았던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중장)은 12월 4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대통령의 분노에 찬 전화를 받았다. 그는 지난 12월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 이렇게 증언했다.
 
  “계엄 당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끌어내라 했습니다. 대통령께서 비화폰으로 직접 제게 전화를 해 ‘의결정족수가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 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두 차례 윤 대통령과 통화했으며 세 번째 전화는 받지 않았다고 했다. 곽 당시 사령관은 “지시를 듣고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현장에 있는 지휘관들과, 공포탄을 써서 들어가야 되나, 전기를 끊어서 (계엄 해제를) 못 하게 해야 하나 이런 부분 논의했다”면서 “지시사항을 이행하더라도 너무 많은 인원들이 다치기 때문에 그것은 옳지 않다 판단하고 (진입을) 중지시켰다”고 했다. 그는 “국회와 선관위 셋, 민주당사, 여론조사 ‘꽃’ 등 6개 지역을 확보하고 경계하라는 임무를 받은 시점은 12월 1일쯤이었다”면서 김용현 국방장관에게서 유선 비화폰으로 임무를 받고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증언했다.
 
  비상계엄이 성공했으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되어 있었던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YT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남겼다.
 
  〈Q. 계엄령 선포 직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전군지휘관 화상회의를 주재했는데, 거기에는 참석했나?
 
  A. 그것도 중요한 얘기인데, 화상회의도 참석 못 했다. 왜냐하면 (화상) 연결하는 기술자들이 다 퇴근해 버려서 연결이 안 됐다.〉

 
  모든 수사기관을 통제하게 될 계엄사 합동수사본부가 이 모양이었으니 도대체 윤석열, 김용현은 계엄령 준비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지휘를 했는지 기가 찬다. ‘역시 군대 안 간 대통령이 작전을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윤석열이 국군통수권자로서 보여준 가장 큰 결점은 충동적 결정과 함께 이런 무능함이 아닐까?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萬斬)으로도 모자라는 역사의 범죄자”라는 말이 생각난다(金聲翰, 《7년전쟁》).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이번 친위 쿠데타는 옳고 그름 이전에 쿠데타를 한다는 자들의 수준이 프리고진만도 못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평했다.
 
  대통령의 격분과 무능함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이게 사실이었다. ‘무능한 격분’.
 
 
  처음엔 悲劇, 두 번째는 笑劇으로
 
나폴레옹 3세.
  1851년 12월 2일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 프랑스 대통령은 삼촌이 52년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독재자가 되더니 다음 해엔 나폴레옹 3세 황제로 등극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카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책을 썼다. 여기서 브뤼메르(Brumaire)는 ‘안개’라는 뜻인데 프랑스 혁명력(革命曆)의 제2월을 가리킨다. 1799년 브뤼메르 18일에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가 된 것이다. 이 책에서 마르크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헤겔은 말하기를 세계사의 대사건과 인물들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출현한다고 했다. 그는 하나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엔 비극으로, 다음엔 웃음거리(farce)로서.〉
 
  마르크스는 세 번째는 어떻게 된다고 쓰지는 않았다. 역사에 재탕은 있지만 삼탕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을 한국 현대사에 비유적으로 적용하면 이렇게 되나? 계급투쟁론자의 시각에선 1961년 박정희의 군사혁명, 그 첫 번째 되풀이인 1980년의 전두환 쿠데타는 비극이고, 두번째 되풀이인 윤석열의 계엄 자폭(自爆)은 코미디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동적 계엄 선포는 6시간 만에 헌법적 절차에 의하여 무혈(無血) 진압되었다. 앞선 두 번의 쿠데타는 계급투쟁론자들의 희망과는 달리 새로운 권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세계사의 대세(大勢)를 타고 나름의 역사적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윤석열판 친위 쿠데타는 시대착오적이었다.
 
  계엄령 선포를 접한 국민들이 보여준 첫 느낌은 공포가 아니라 “이게 뭐지?” 하는 궁금증이었다. 그날 밤을 드라마 보듯이 즐긴 이들도 많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하도 괴롭히니 경고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그 심각성을 알리려고 비상계엄을 택했다는 초현실적 발언도 했다. 계엄령을 리얼리티 쇼로 생각했다는 놀라운 고백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관심을 끌기 위하여 알몸으로 스트리킹을 하는 정도를 넘어서 사는 집에 불을 질러서야 되겠나. 그래서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윤석열 계엄테러’ ‘자폭테러’라는 말을 썼다.
 
 
  “감옥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할 사람”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가 반세기 한국학 연구자로 살아온 베르너 사세 함부르크대 명예교수를 만난 날은 계엄이 선포된 날이었다. 사세 교수는 올해 ‘이미륵상’ 수상자여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전생(前生)에 한국인이었고, 현생(現生)은 독일로 유배 온 것”이라고 했을 만큼 한국을 사랑한다. 69세였던 2010년 무용가 홍신자와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날 밤 늦게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해제되는 통에 사흘 뒤 다시 만난 사세는 김 기자에게 “누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웃음). 처음엔 놀랐지만 몇 시간 만에 여야 의원들이 모여 계엄을 해제시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국회도 국민도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따르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은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스트롱맨들이 장악한 전 세계에 대통령은 제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하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대통령이 감옥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때 그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고,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타협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치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반대 혹은 비판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심각한 문제다. 한국 사회에는 철학이 없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도 없다. 오로지 경쟁만 부추기는 한국의 교육이 돈과 권력만 좇는 지식인, 정치인을 낳았다. 그들이 학벌 좋고 지식은 많은 엘리트인지는 몰라도 타인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가슴(마음)은 없다. 나치(NAZI)도 전부 지식인들이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한글 우상숭배를 비판하고, 한자(漢字)를 버린 비극상을 이렇게 지적했다.
 
  “절에 가면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다 같이 바보가 된다. 심지어 그곳에 적힌 한문(漢文)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1500년 동안 한국의 문화이자 언어였던 한문을 한국인이 모른다. 한국의 단편시 ‘시조(時調)’는 정말 아름다운 문학인데 한국인 스스로 고리타분하다며 외면한다. 세계로 퍼져나가며 유럽 시인들에게 영감을 준 일본 하이쿠(俳句)와 대비된다.”
 
  나는 지난 30년간 한미동맹과 한글전용으로 국민 교양은 약해지고 국가 엘리트가 실종상태라고 주장해 왔다. 한미동맹에 의존해 자주국방 의지를 포기함으로써 국민들의 정신이 노예화되고, 한자를 배척해 교양어로서의 한국어를 반신불수로 만든 것이 언젠가는 국가적 위기로 폭발할 것이란 예언을 해왔는데 이번 계엄 주역들이 보여준 행태가 그런 사례가 될지 모르겠다. 자주국방과 교양어를 포기한 보수는 가짜다.
 
 
  이준석 밀어내기와 부정선거론자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장관은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계엄사태의 외교상 피해에 대하여 “국제정치가 가장 불안한 시기에 벌어진 최악의 실책”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이 뒤로 빠지려는 순간이고 어떻게 대응할지 세계의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바로 그때 윤석열發 계엄사태가 터져나왔다.
 
  그는 이런 난제(難題)의 대응책 마련을 위해 정부 내에 전략팀이 만들어져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짜고 준비를 해나가야 할 때이고, 한미 대통령 간의 개인적 인간관계도 튼튼히 하여 어려움을 막을 외교적 노력도 기울여야 할 때인데, 계엄 선포로 그 같은 대응은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고 개탄했다. 윤 전 장관은 “차기 대선까지 최소한 5~6개월의 리더십 공백 상태가 생겨버린 것”이라고 했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3대 실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면서 “언젠가 한국전 이후 최악의 사고가 터질 것”이라고 되풀이 경고해 왔다. 대통령실 졸속 이전으로 중도층이 돌아서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 중 지지율이 최저 상태로 출발했다가 2022년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압승, 50%대로 회복했다. 그 한 달 뒤 대통령이 진두지휘하여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제거하는 공작에 돌입, 석 달간 지저분한 소송전을 벌이는 사이 2030세대와 중도층이 이탈, 지지율은 20%로 내려앉았다. 지지 기반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 지난 총선까지 이어졌다. 윤석열·이준석 두 사람 사이가 벌어진 데는 부정선거론자들의 이간질이 컸다. 견제 역할을 하던 이준석 의원이 빠지니 윤 대통령은 음모론 유튜브에 더욱 노출되었고 그 망상이 이번 계엄령 선포의 주요 동기가 되었다.
 
 
  용산 상공에서 터진 핵폭탄
 
‘비상계엄 사태’ 수사 주요 대상자와 혐의. 그래픽=조선DB
  2024년 2월 6일 의대 증원 2000명 폭탄은 의료대란으로 악화되고, 의사들의 집단 반발로 수도권에서 국민의힘은 수십 석을 날렸다. 그래 놓고도 윤 대통령은 의료대란 수습을 거부, 지지율이 17%까지 떨어졌다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
 
  계엄사태를 전후한 시간대에 보여준 윤 대통령의 흥분상태, 스트레스, 주술, 음모론은 정치적 핵폭탄이 되어 용산 상공에서 폭발했다. 역대 합참의장 11명이 연명(連名)으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반대한 이유는 대통령실·국방부·합참본부가 고층건물군(高層建物群)을 이루며 모여 있으면 한 방에 가는 수가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폭테러는 국가 및 전쟁 지도부를 한 방에 날린 셈이고, 정치·경제·안보·외교에 미친 영향은 가히 핵폭탄급이었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당시 경호처장으로서 대통령실 이전을 주도했는데 이번 계엄사태 때도 윤석열 대통령과 콤비를 이뤘다.
 
  윤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이유를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에 나올 때 손바닥에 ‘王’자를 쓴 채였던 그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계엄령 선포 과정을 보면 ‘윤석열이 진짜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자신이 대한민국 헌법 위에 있는 존재라고 안하무인으로 생각하고, 계엄령 선포를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여긴다는 놀라운 토로를 부끄럼 없이 했다. 그래서 윤석열에 대한 내란죄 수사나 탄핵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2024년 12월 12일 윤 대통령은 對국민담화에서 “제가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하더니 선관위의 전산 시스템에 문제가 많아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전산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하여 비상계엄을 펴고 국군 정예부대원 등 300명을 국회보다 먼저 투입하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지난 63년 동안 단 한 번도 사고를 낸 적이 없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관위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하여 왜 계엄령이 필요했을까? “감옥보다 먼저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이란 독일 교수의 말이 문제의 핵심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즉각 반박했다. 선관위는 입장문을 내고 “선거 과정에서 수차례 제기된 부정선거 주장은 사법기관의 판결을 통해 모두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며 “부정선거에 대한 강한 의심으로 인한 의혹 제기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과 다름없다”고 했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어떻게 20여만 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당선될 수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선관위는 “대통령의 이번 담화를 통해 헌법과 법률에 근거가 없는 계엄군의 선거관리위원회 청사 무단 점거와 전산서버 탈취 시도는 위헌·위법한 행위임이 명백하게 확인됐다”며 “이번 사건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관계 당국에 진실 규명과 함께 그에 따른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했다.
 
  한 외신기자는 이런 계엄 사유는 역사상 처음일 것이라고 평했다. 옆집의 시끄러운 부부싸움에도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발동, 수백 명의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사태가 올지 모르겠다.
 
 
  윤석열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3대 중독
 
  《중앙일보》 김정하 논설위원이 2024년 12월 13일자 칼럼에서 〈정권 망친 윤 대통령의 3중 중독〉이란 제목으로 권력 중독, 유튜브 중독, 알코올 중독을 거론했다. 그는 전날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는 ‘확신범’의 면모를 선명히 드러냈다고 했다. 국회에 병력을 보낸 데 대해 윤 대통령은 “국회를 마비시키려 한 게 아니라 거대 야당의 망국적 행태를 상징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김 위원은 “군 투입이 애들 장난인가”라면서 윤 대통령의 정신세계가 왜 이렇게 됐을까 묻고 답했다. 이번 사태는 세 가지 중독 때문에 발생한 듯하다는 것이다.
 
  첫째는 권력 중독이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한번 찍은 표적은 어떻게든 구속하는 ‘칼잡이’로 유명했는데, 거물급을 줄줄이 잡아넣으면서 그는 자신의 검사 권력에 대한 강한 확신이 생겼을 것이다. 뇌신경학자 이언 로버트슨에 따르면 권력감은 도파민(행복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해 뇌의 중독 중추를 활성화한다. 로버트슨은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권력 중독과 유튜브 중독’
 
  김 위원은 권력에 깊이 중독된 윤 대통령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을 것이고, 그래서 토론도 없이 무작정 대통령실을 옮겼고, 껄끄러운 여당 대표를 내쫓았고, 대책도 없이 의대 정원을 2000명이나 늘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4월 총선 참패 후 거대 야당이 사사건건 자신의 권력 행사를 방해하니 울화가 쌓여 폭발 지경이 된 듯하다. 권력 중독자에게 대화와 타협은 머릿속에 없는 개념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를 흔한 구속영장 청구 정도로 인식했을 것이다. 이런 권력 중독 증상이 특수부 검사 경력에서 나왔을 것이란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유튜브 중독. 김 위원은 “유튜브에 중독되면 음모론이 지배하는 망상의 세계에 빠진다”면서 이번 계엄 선포 직후 계엄군이 선관위에 진입해 서버 확보에 나선 것은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얼마나 신봉했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김진표 국회의장을 만났을 때도 이태원 참사에 대해 “특정 세력에 의해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김 위원이 지적한 셋째 중독이 충격적이다. 윤 대통령은 수십 년간 폭음을 해왔다. 술은 뇌의 전두엽을 망가뜨린다. 전두엽은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부위다. 술 때문에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툭하면 흥분하고 격노한다. 나중에 증상이 심해지면 술을 안 마신 상태에서도 그렇게 된다.
 
  김 위원의 지적은 아프다.
 
  “윤 대통령은 진작에 알코올 중독 상담을 받았어야 한다. 그랬으면 계엄 선포와 같은 비극적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술로 인한 판단력 저하가 자신의 인생과 정권을 파멸로 몰고갔다. 쓰고 나니 뜨끔하다. 새해부턴 술을 줄여야겠다.”
 
  언론도 진작 이런 점을 보도했어야 한다. 윤석열의 실패, 30% 정도의 책임은 팬클럽이 되어버린 보수 지식층에 있는 것이 아닐까?⊙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