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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4·10 총선

‘호남 정치’의 소멸

‘호남 필패론’에 가스라이팅… 민주당 내 비주류로 전락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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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 맹주’ DJ 시절에도 실현하지 못했던 민주당의 호남 전체 의석 석권
⊙ 호남 정치는… ‘확장성’ 갖춘 영남 출신 후보 지원해 대선 승리 꾀하는 전략으로 전락
⊙ “민주당 비판하던 시민단체들이 안철수의 국민의당으로 갔다가, 국민의당이 망하면서 호남 정치 약화”(지병근 조선대 교수)
⊙ “호남, 정세균·이낙연도 안 키우면서 누구보고 사람 키우라고 하나?”(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 “광주 열정은 광주 위해 쓰이지 못하고 전국 정치 연료로 징발당해”(민형배 민주당 의원)
⊙ “호남 유권자 인질화 부추기는 민주당의 ‘증오·혐오 마케팅’”(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 “‘호남 출신’이 ‘호남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하는 사람 보면 정말 마음 아파”(박주선 전 국회 부의장)
사진=뉴시스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4·10 총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의석 28석(광주 8석·전남 10석·전북 10석)을 싹쓸이했다. 민주당이 호남 전체 의석을 장악한 일은 이전 선거에서는 없었다. 1988년 소선거구제가 시행된 이래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정당이 광주·전남·전북의 국회의원 의석을 모두 차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호남 맹주’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이 살아 있을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이낙연(李洛淵)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이정현(李貞鉉) 전 새누리당 대표가 호남에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이들의 낙선 사유는 비슷하다. 정치 경륜, 상대 후보 대비 경쟁력 등을 놓고 봤을 때 이들이 민주당 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떨어졌다는 사실 말고 다른 원인을 찾기 쉽지 않다. ‘호남 대표 정치인’이자 한때 ‘대선 주자 지지율 1위’였던 사람도 ‘민주당’이란 간판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호남에 예산 폭탄을 안겼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지역을 위해 일했고, 보수당 후보로 ‘불모지’인 전남에서 두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된 전 여당 대표도 ‘무명(無名)’에 가까운 민주당 후보에게 졌다. 이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지방자치단체 축제로 꼽히는 ‘함평나비축제’를 기획·시행한 이석형 전 함평군수도 민주당에서 ‘공천 배제’를 당하고, 이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나와 민주당 후보와 선거 막판까지 호각지세를 이뤘지만, 결국 떨어졌다.
 
  이들의 낙선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호남 정치’란 측면에서 봤을 때도 그렇다. 호남 내 민주당 독주(獨走) 체제에 참여하지 않는 한 정치 권력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 더 공고해졌다. 지역 목소리를 중앙에 대변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들이 ‘비(非)민주당’이란 이유로 호남에서 박대를 당했다. 이런 현상은 과거 야권을 주도했던, ‘호남 정치’가 ‘변방’으로 밀려난 걸 넘어 소멸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걸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낙연, 선거비 전액 보전도 못 받아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호남에서는 ‘호남대망론’이 아닌 ‘호남필패론’이 공고해졌다. 사진=조선DB
  ‘전남 영광 출신’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DJ에 의해 발탁돼 2000년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전남 영광·함평군, 영광·함평·담양·장성군에서 국회의원에 네 차례 당선된 대표적인 ‘호남 정치인’이다. 2014년부터는 전남지사로 일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국무총리가 됐다. 2020년에는 집권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직을 맡았다. 이때 그는 장기간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DJ 이후 사라졌던 ‘호남 대망론’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일각에서 형성되기도 했다.
 
  2024년 현재 호남은 ‘이낙연’을 버렸다.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은 ‘DJ 정신이 없는 가짜 민주당’이란 식으로 강조하면서, 지지를 호소했지만 무소용이었다. 호남 사람들은 이 공동대표를 ‘배신자’ ‘수박(겉으로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인 듯하지만 실상은 국민의힘을 위해 활동한다는 뜻) 대장’으로 취급했다. 이 공동대표는 끝내 고향인 호남에서조차 ‘DJ 후계자’ 또는 ‘이재명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호남은 ‘이재명’과 ‘이재명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 공동대표는 광주 광산을에 출마해 ‘호남 친명 1호’ 민형배 의원과 맞붙었지만, 성적은 초라했다. 향후 정치적 재기가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패를 당했다. 이 공동대표의 득표율은 13.84%에 머물러 선거비 전액 보전(15% 이상)도 불가능하다. 그와 달리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선 민형배 의원의 득표율은 76.09%에 달한다.
 
  이 공동대표가 만든 ‘새로운미래’ 소속으로 호남 각지에 출마한 후보 6명의 득표율은 선거비 반액(10% 이상~15% 미만)은커녕 단 한 푼도 보전받을 수 없는 한 자릿수 득표율(2.06~6.15%)을 기록했다. 비례대표 의원 선거 결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미래의 광주, 전남, 전북 정당 득표율은 각각 2.9%, 2.27%, 1.55%에 불과하다.
 
 
  ‘호남 민원 해결사’도 ‘민주당’ 상대 안 돼
 
  ‘전남 곡성 출신’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도 호남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 전 새누리당 대표는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활동하고, 박근혜(朴槿惠) 정부에서 정무수석비서관과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일한 ‘친박 중의 친박’이다. 이 전 대표는 2014년, 순천시·곡성군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전남 순천시에서 또 같은 당 후보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하는 ‘기적’을 이뤘다. 소선거구제 시행 이래 호남에서 연속으로 당선된 보수당 인사는 이 전 대표가 처음이다. 이후 이 전 대표는 입지전적 기록을 배경으로 2016년 8월, 새누리당 대표까지 맡게 됐다. 호남 출신 인물이 보수당 대표를 맡은 건 정래혁 전 국회의장이 1983~1984년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낸 이후 처음이다.
 
  이 전 대표는 18대 비례대표 의원 시절부터 ‘호남 예산’을 챙겼다. 호남 지역 시장·군수들이 예산 관련 민원이 있을 때 자신들 지역의 국회의원을 찾지 않고, 이 전 대표를 만나 하소연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2016년 10월에 제기된 소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이후 파상 공세에 시달린 끝에 당대표직을 사퇴하고, 2017년 1월 16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2022년 2월, 국민의힘에 복당한 이 전 대표는 그해 6월 지방선거 때 전남지사 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했다. 해당 선거에서 ‘현직’이면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김영록 지사는 득표율 75.74%로 당선했다. 이 전 대표는 18.81%를 기록했다. 압도적인 격차로 졌지만, 이는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이후 보수당 후보가 받은 득표율 중 가장 높다.
 
  이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전남 순천·광양시·곡성·구례군을 선거구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더불어민주당의 권향엽 후보와 맞붙었다. 민주당 당직자이자 ‘문재인 청와대’에서 잠깐 균형인사비서관을 지낸 권 후보는 원래 전략공천을 받았었는데 ‘이재명 부인 김혜경 사천(私薦)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의 주인공이 된 인물이다. 이후 경선을 통해 후보로 선출된 권 후보는 결과적으로 해당 선거구에서 득표율 70.09%로 당선했다. 이 전 대표는 23.66%를 기록했다.
 
 
  ‘실력’ 검증됐어도 배제된 ‘나비 군수’
 
전남 함평군을 ‘나비 명소’로 만든 이석형 전 함평군수는 ‘이재명 사수 집회’에서 소위 ‘검찰독재 규탄’ 의미로 삭발까지 감행하며 ‘친명’을 자처했지만 공천에서 배제됐다. 사진=뉴시스
  ‘전남 함평 출신’ 이석형 전 함평군수도 무소속으로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군 선거구에서 출마했지만, 떨어졌다. 이 전 군수는 1998년, 2002년, 2006년에 연이어 함평군수에 당선됐다. 그는 함평군수로 일할 때 ‘함평나비축제’를 기획하고, 시행했다.
 
  이에 따라 인구 5만 명도 채 되지 않았던 함평군(현재는 3만1000명 수준)을 찾는 관광객 수는 폭증했다. 《함평통계연보》에 따르면 이 군수 취임 첫해인 1998년 함평군을 찾은 관광객 수는 20만 명에 불과했는데, ‘제1회 함평나비축제’가 열린 1999년에는 전년 대비 5.1배 증가해 102만 명이 됐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또 191만 명을 기록했다. 이후 이 군수 재임 기간 함평군 관광객 수는 계속 늘어 2010년 612만 명에 이르렀다. 이 군수 재임 시절 기획·시행된 각종 축제 덕분에 함평군 관광객 수는 12년 사이에 20만 명에서 31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그런데도 이번 총선에서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군 유권자는 ‘나비 군수 이석형’ 대신 그 업적을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민주당 공천을 받은 ‘이개호’를 뽑았다. 해당 선거구 현역인 이개호 의원은 전남도청과 전남 관내 기초단체에서 일한 공무원 출신이다. 이번 총선 전까지 이 의원은 호남 현역 중 최다선인 ‘3선’을 기록했고, 문재인 정부 때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까지 했지만, 그의 대외 인지도는 높지 않고, 당내 영향력 또한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 이 의원은 3회 연속 단수공천을 받았다.
 
  민주당에 공천 신청을 한 이 전 군수는 이에 반발해 재심을 요청했다. 실제로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의원이 단수공천을 받을 만한 객관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 KBC광주방송이 리서치뷰에 의뢰해 2023년 12월 15~16일, 해당 지역구 거주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19일에 공개한 여론조사(무선ARS, 95% 신뢰 수준 ±4.4%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결과 중 ‘22대 총선 후보 선호도’를 보면, 현역 의원 ‘이개호’의 경쟁력은 여타 후보들보다 월등하지 않다. 당시 선호도를 보면, 박노원 25.4%, 이석형 24%, 이개호 23.6%다. 표본오차를 감안하면, 이 3인 중 오차범위 밖에서 우위를 점한 이는 없다. 그런데 민주당 공관위는 ‘이개호’를 단수공천했다. 재심위가 재심 요청을 받아들여 ‘3인 경선’을 최고위원회에 요구했지만,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통합의 가치를 존중하고 당 기여도를 고려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전 군수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군 유권자는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해당 선거구에서 이개호 의원은 득표율 56.46%를 기록해 ‘4선’을 달성했다. 35.91%를 받은 이 전 군수는 낙선했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에서는 “비(非)민주당 후보로 광주·전남에서 최고 득표율 기록”이라고 치켜세웠다.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개호가 민주당 점퍼를 입지 않았다면, 떨어졌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나비축제 신화’를 쓴 그 역시 ‘민주당’만 바라보는 호남 주민의 선택에서 배제됐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국민의당 학습효과’
 
2017년 4월 24일 광주에서 대선 유세를 하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국민의당의 실패는 호남 내 대안세력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사진=조선DB
  이 같은 사실은 이제 호남에서 ‘민주당’ 간판을 내세우지 않을 경우 ‘대안(代案)’으로 선택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호남 내 ‘민주당 독재 체제’에 도전할 경우 심판받는다는 걸 암시한다. ‘제3지대 돌풍’이나 ‘보수당 후보 당선’과 같은 이변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걸 뜻한다.
 
  이는 2016년 총선 때 호남의 선택을 받았던 국민의당의 안철수 대표가 이듬해 대선에 나서면서 보수표를 의식해 ‘우경화(右傾化)’를 하자 호남 표심이 이탈한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대안’을 선택하는 실험을 감행한 호남은 ▲안철수 보수화 ▲자칭 ‘개혁보수’인 바른정당과의 합당 등을 지켜보면서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더불어민주당으로 회귀했다. 이와 함께 호남에서 ‘제3지대 세력’은 소멸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분석이다.
 
  “2016년에는 이 지역의 거의 모든 정치 엘리트가 (국민의당으로) 다 쏠렸어요. 현역 의원들이 대규모 탈당을 했고요. 저는 당시 광주 시민사회의 변화가 굉장히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을 비판하던 시민단체죠. 그 세력들이 그 당시에 다 국민의당으로 갔는데, 국민의당이 망하면서 이 지역 시민사회 세력도 약화됐습니다. 그나마 민주당을 견제하고, 경쟁할 수 있었던 정치 세력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광주 시민사회 세력을 국민의당으로 흡수해서 정당성도 상실하게 하고…. 외부에서는 잘 모르실 텐데, 이 지역 교수 중에도 시민운동 하시던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그때 다 국민의당에 합류했죠. 그랬다가 여기가 아닌가 보다 하고 나왔는데, 이제 민망한 거죠.”
 
  지병근 교수 분석에 따르면 당시 호남에서 ‘대안 세력’을 자처하던 시민사회 세력은 국민의당에 합류했다가 정당성을 상실하고, 운동 동력을 잃었다. 이렇게 ‘소멸’했기 때문에 이제 호남에서는 ‘민주당 외 대안’을 얘기하는 세력을 찾기 어렵다. 소위 ‘국민의당 학습효과’ 때문에 ‘대안 세력’에 표를 주지도 않는다. 민주당 단일대오에서 이탈하는 걸 ‘배신’으로 간주한다.
 
  이런 까닭에 2020년 총선 당시 호남 다선 중진이 모여 단독으로 원내교섭단체를 만든 민생당이 단 1석도 얻지 못하고 궤멸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호남 대표 정치인’이자 대선 경선 당시 광주·전남에서 이재명 현 민주당 대표를 꺾은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역시 ‘배신자’ 소리를 들었고, 득표율도 15%를 넘기지 못했다. 그의 새로운미래 역시 앞서 살핀 것처럼 호남에서 처참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호남 필패론’
 
  이처럼 호남의 ‘민주당 편애’, 민주당의 ‘호남 내 일당독재’가 심화하면서 호남의 정치적 영향력은 갈수록 줄고 있다. 오수열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2월 6일, 《광주매일신문》에 기고한 〈22대 총선과 정치발전〉이란 칼럼에서 “인구와 경제력 등이 수도권에 집중되는가 하면, 호남이라는 정체성(正體性)과 정치적 결속력 또한 낮아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 지역의 정치적 역할은 점점 왜소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수열 교수의 평가처럼 소위 ‘호남 정치’는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중앙정치권에서 흔적을 찾기 어렵다. DJ 이후 호남 출신이 민주당의 주류가 된 일은 전북 순창 출신 정동영(鄭東泳) 전 통일부 장관이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로 나선 일,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당권을 잠시 잡은 일 말고는 없다. 이는 민주당뿐 아니라 원내 정당에서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호남 정치 세력이 비주류로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호남 출신’이란 지역적 한계 때문이다. 국내 지역별 인구 비중, 특히 영남권 유권자 수를 고려했을 때 호남 대권 주자는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호남 필패론’ 때문이다.
 
  영남 인구는 1255만 명에 달하고, 호남 인구는 그 40%도 채 되지 않는 496만 명에 불과하므로 인구 구조상 호남 후보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 ‘호남 맹주’ DJ조차 박정희(朴正熙)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金鍾泌) 전 총리와 손잡고, 당시 한나라당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해 국민신당 후보로 나와 492만 표를 받은 이인제(李仁濟) 전 의원이 보수표를 잠식한 덕분에 대권을 쥘 수 있었다.
 
  이런 탓에 DJ 이후 호남은 ‘확장성’을 갖춘 영남 출신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대선 승리를 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른바 ‘정치적 양자(養子)’를 들인 셈이다. 노무현(盧武鉉),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낙연은 본선 경쟁력 없다”
 
  앞서 살핀 것처럼 ‘민주당 본류(本流)’를 자처하는 호남은 정동영 이후로 대선 후보를 배출한 일이 없다. 이 뒤 대권에 도전한 호남 출신도 극소수다. 당내 경선에서 의미 있는 지지율 또는 득표율을 올린 이는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가 유일하다. 이럼에도 그는 “호남 출신 이낙연은 ‘이재명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낙연은 본선 경쟁력이 없다”는 ‘호남 필패론’에 따라 광주에서 고전했다. ‘이재명당’을 비판한 이 공동대표는 호남에서 외면을 받았다. ‘호남의 호남 박대’에 대해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월, 광주 KBS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도지사, 5선 국회의원, 국무총리, 여당 대표를 한 이낙연 그분은 인물 아닙니까? 정세균 의장이 6선 국회의원, 민주당 대표 두 번, 산업부 장관, 국회의장, 국무총리, 이 정도면 인물 아닙니까? 그런데 호남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을 키웠습니까? 여러분은 ‘호남 사람’을 키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발로 차더라도, 적어도 고향에서는 챙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놓고 누구보고 사람을 키우라고 합니까? 정세균, 이낙연 정도 되면 인물 아니에요? 고향에서조차 버림받아야 할 사람들입니까? 그럼 그 사람들 말고 호남에서 키워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얘기를 한 번 해보십시오. 왜 호남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 이후 대통령 후보가 안 돼야 합니까? 저는요, 정말 화납니다. 이건 진짜 호남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고. 우리 자식들, 조카들, 손주들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호남 필패론’에 따라 정치적 주도권을 가질 가능성이 없는 호남 정치 세력은 DJ 이후 ‘비주류’로 전락했다. 호남 지역구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직에 도전했다가 매번 떨어져 지명직 최고위원만 겨우 맡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권파(黨權派)에 의존하고, 정치적 미래를 보장받아야 하는 ‘변방’ 처지가 됐다.
 
 
  ‘호남 정치 복원’ 외치지만…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로 ‘불모지’인 전남 순천·광양시·곡성·구례군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무명’에 가까운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대패했다. 사진=뉴시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14대 국회(1992~1996년) 때 지역구 의원 237명 중 39명, 전체의 16.45%였던 호남 국회의원 비율은 곧 개원할 22대 국회에서 11%(254명 중 28명)에 불과하다. 의석도 과거보다 11석 줄었고, 비율도 5%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상대적인 비중은 더 줄었다. DJ가 총재이던 2000년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호남 25석 등 지역구 선거에서 96석을 차지했다. 새천년민주당 지역구 의석의 26%가 호남 의석이었던 셈이다. 22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한 지역구 의석 161석 중 호남 의석은 28석으로, 전체의 17.4%에 불과하다.
 
  지속적인 인구 유출에 따라 의석 수가 감소하더라도 이를 상쇄할 질적 성장을 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호남 정치는 질적인 측면에서도 퇴보하고 있다. 해당 지역에서 입후보하는 이들의 ▲인지도 ▲정치적 위상 ▲업적 등을 보면, 질적으로 그 수준이 과거와 비슷하거나 또는 높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에는 호남이 ‘텃밭’이고, 국민의힘에는 ‘무덤’이라서 양당 모두 호남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경쟁력이 우수한 ‘인재’를 내놓지도 않는다.
 
  이런 까닭에 이번에 호남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하나같이 ‘호남 정치 복원’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서 이번에 광주·전남에서 3~5선의 다선 국회의원이 배출되면서 ‘호남 정치 복원’에 대한 기대감이 나타나고 있다는 식의 기사가 보도되지만, 그 면면을 보면 이 같은 ‘예측’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박지원(5선) ▲이개호(4선) ▲신정훈·서삼석(3선) ▲민형배·김원이·주철현(재선) 등이 과거 호남 다선 중진과 같은 영향력을 갖출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제외하면 정치적 위상이 뚜렷하지 않은 이들조차도 중앙무대에서 활동할 시간이 별로 없다. 현재 지역 정가에서는 총선 이전부터 이들이 2년 후 지방선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개호 의원 같은 이는 이미 전남지사 선거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런 까닭에 이들이 외치는 ‘호남 정치 복원’은 여러모로 실현될 가능성이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선수’가 우선인 정치권에서 초선 의원이 다수이고 위상이 높지 않은 다선 의원 소수가 포진한 지역 출신들이 국회 상임위 배정 등에 목소리를 내고, 핵심 당직을 맡을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앞서 소개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인터뷰 중 이와 관련된 내용이다.
 
  “광주 국회의원 8명 중 7명이 초선 의원입니다. 전남 국회의원 10명 중 6명이 초선 의원입니다. 광주 최고 다선 의원이 1.5선, 전남 최고 다선 의원이 2.5선입니다. 초선 의원들이 당에서 어떻게 당직을 맡고, 국회에서 어떻게 국회직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그 회의에 못 들어가는데 어떻게 호남 현안에 대해서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초선이니까 일 못한다고 갈아치우니까 또 초선. 왜 ‘호남 정치’가 이렇게 됐습니까?”
 
 
  “정치적 착취당한 ‘민주화 성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좌파 집권’의 선봉대를 자임해야 하는 까닭을 아는 호남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점이다. 현실적인 자신과 지역의 ‘이익’보다 추상적인 ‘민주진보 세력의 집권’을 우선시하며 특정 정당에 몰표를 줘야 하는 이유를 자각하는 호남인들은 몇이나 될까. 호남에 상처를 안겼다는 5·18과 관련된 인사들이 없는 정당, 5·18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집권 세력에 이들이 적대적 감정을 유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광주·전남·전북 주민 500만 명 중 5·18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이는 또 얼마나 되기에 44년이 지난 지금까지 ‘호남의 한(恨)’을 얘기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 과거 《김대중 죽이기(1995년)》란 도발적 저서로 ‘호남 특유의 정서’ 등을 옹호한 바 있는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1월 8일 《한겨레》 칼럼을 통해 ‘호남 내 일당 독재 공고화’와 ‘호남 정치 소멸 가속화’를 자초하는 호남의 행태를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강 교수는 〈정권 장악을 위해 착취당하는 호남〉이란 제하의 칼럼에서 광주 출신 한 정치인이 쓴 책의 한 구절을 먼저 인용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형식민주주의가 정착한 이후에 ‘민주화의 성지’는 민주당 계열 정당이 독식하면서 정치적으로 ‘착취’당했다. 광주 시민의 열정은 광주를 위해 쓰이지 못하고 전국 정치 연료로 징발당했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휩쓴 구호는 언제나 정권교체였다. 광주는 없었다. 심지어는 지방선거를 하는 데도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한 표 행사를 강요받았다.〉
 
  강준만 교수는 또 동일 인물이 2013년에 출간한 책에서 호남인들이 농락당하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고 소개한다.
 
  〈민주정부 10년을 거치고도 광주는 그냥 광주에 머물러 있다. 광주·전남에 연고를 둔 정치 엘리트, 고위 관료,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 등이 잠깐 괜찮은 기회를 누렸을 뿐이다. 이 진실을 뒤집으면, 정치 권력을 ‘빼앗긴’ 현재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광주·전남 시·도민이 아니다. 한때 괜찮은 기회를 누린 그들이 기회를 박탈당했을 뿐이다.〉
 
 
  ‘호남 가스라이팅’
 
4월 10일,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접한 ‘호남 친명 1호’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준만 교수에 따르면 ‘호남 정치’의 문제점, 정치 기득권 유지·강화를 꾀하는 정치 세력의 ‘호남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의심하게 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을 비판하며 분노한 이는 바로 ‘위장 탈당’으로 유명한 ‘호남 친명 1호’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다.
 
  강 교수는 ‘2017년 이전 민형배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 “호남 유권자의 인질화를 부추기는 건 민주당과 강성 지지자들의 ‘증오·혐오 마케팅’”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살핀 기사 내용을 요약한 것과 같은 그의 칼럼 일부 대목을 발췌했다.
 
  〈반대 정당 악마화는 여야가 모두 똑같이 써먹는 수법이지만, 호남 유권자들은 그런 선전·선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경험과 상처를 갖고 있다. 그렇게 해서 지난 수십 년간 호남에 굳건한 뿌리를 내린 게 바로 ‘일당 독재’다. (중략) 견제와 경쟁이 없는 곳에서 경제인들 잘될 리 만무하다. 유권자들이 그 폐해를 모르는 게 아니다. 사석에선 ‘일당 독재’에 대한 온갖 개탄과 비난이 난무한다. 그러나 투표장만 들어가면 자기 지역 정당의 정권 장악과 유지를 위해 평소 그리도 욕하던 정당에 표를 주고야 만다. 이제 그런 악성의 ‘승자독식 정치’를 청산할 때가 됐다. (중략)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지역 발전을 위한 자치 역량을 키우는 데에 스스로 노력과 열정을 바치는 자율성 회복이다. 지역을 외면한 중앙정치 승리에 대한 집착이 그런 노력과 열정의 씨앗마저 죽이고 있는 현실을 바꿔보자.〉
 
 
  “호남 유권자, 호남 정치 살리려는 의지 없어 아쉬워”
 
  한편, 지금까지 살핀 내용과 관련해서 ‘호남 거물’로 통했던 박주선(朴柱宣) 전 국회 부의장은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호남 유권자들이 호남 정치를 살리고, 키우고, 만들어야겠다는 의지와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호남 사람들은 민정당 후신 국민의힘을 찍을 수 없다고 해요. 국민의힘 전신 정당이 호남을 핍박했다고 하는데, 지금 국민의힘 사람들은 그와 관계가 없잖아요. 호남을 배려하려고 노력하고, 5·18도 ‘헌법’ 전문에 넣겠다고 하잖아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많은 핍박을 다 겪었는데도 그 가해자들을 전부 용서하고, 화해하고, 포용해서 호남 정치의 꽃을 피웠고 정권교체를 했습니다. 만일 호남이 김대중을 지지한다면, 이 같은 ‘김대중 정신’을 알고, 김대중의 행동을 따라야 할 것 아닙니까. ‘호남 출신’이 호남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소위 식자층이나 언론에서도 이 점을 많이 지적하고 시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광신도적으로 특정 정당에 함몰된 사람들한테 욕 안 먹으려고 아무도 얘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여당도 호남에 섭섭하고, 실망스럽겠지만요.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게 배부르라고 주는 게 아니고, 내 사람 만들기 위해서 주는 거잖아요. 적극적인 호남 정책을 펴야 하는데, 사실 그런 것이 없잖아요. 여러 면에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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