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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뿌리》 쓴 육사 출신 청년 작가의 고발 | 문재인 정권, 육사를 이렇게 망가뜨렸다

“홍범도 흉상 설치 후 6·25전쟁사 안 가르치고 ‘홍범도실’ 신설”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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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격훈련·과학화전투훈련 안 받고 졸업한 육사 기수도 있어”
⊙ “각 군 사관학교 면접·장병 정신교육, 항일 활동에만 유독 집중”
⊙ “육군참모총장, 육사에 ‘소대장 수준의 지식만 갖고 졸업하면 된다. 영어 공부만 잘하라’”
⊙ “영관급 장교 교육하는 육군대학에서는 북핵·북한군에 대한 교육보다 항일·독립운동에 집중”
⊙ “한국군의 뿌리는 독립군,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중국군까지 다양… 이것이 불편한 진실”
⊙ “亡者 기리는 동상 두고 싸울 때 생도 기숙사는 낙후돼 천장까지 무너져”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들이 화랑의식을 하며 분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육사) 생도들이 수업을 듣는 충무관 앞에 항일·독립운동가 5인(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흉상이 설치됐다. 동상 설치 닷새 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는 10년 만에 육사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했다(3월 6일). 이날 육사는 ‘명예 육사 졸업장’을 만들어 독립군·광복군 출신에게 수여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28일 국방부에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역사를 우리 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것을 검토하라”며 육사 교육과정 개편을 지시했다. 이어 국군의 날을 10월 1일로 정한 것도 정통성이 없다며 광복군 창설일(9월 17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라고 했다.
 
김세진 작가.
  2018년 2월 7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당시 의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가 육사에서 특강까지 했다. 주제는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재조명과 문재인 대통령의 북방정책’이었다.
 
  2021년 8월 15일에는 특별수송기를 투입해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의 유해를 봉환해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홍범도의 묘지석엔 현충원 최초로 ‘신영복체’가 사용됐다. 김일성주의자인 신영복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밝혀왔다.
 
  2011년 육사 67기로 임관해 5년간 복무하고 2016년 사회로 진출한 김세진 작가(예비역 육군 소령). 2018년부터 육사에서 이상한 일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모교를 찾아가 직접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 2018년 6월 육사에서 처음으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신흥무관학교는 경희대학교가 뿌리로 삼고 있습니다. 갑자기 육사에서 기념식을 열고,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70년도 더 됐는데 사관생도들을 항일독립투사로 만들려는 듯한 시도에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습니다.”
 
  — 당시 육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요.
 
  “충무관에는 생도들이 휴식하고 토론하는 공간인 ‘백선엽실’이 있었습니다. 2018년 홍범도 동상이 설치된 후 육사에 가보니 백선엽실이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밀려나고 ‘홍범도실’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소련군 복장에 레닌이 하사한 권총을 찬 홍범도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있었죠.”
 
  — 홍범도 때문에 책 《한국군의 뿌리》를 쓴 건가요.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이 김원봉을 한국군의 뿌리라고 말했어요. 6·25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스러져 간 모든 분을 욕보이는 것이죠. 그런데 정작 군인의 아들이자 군인이었던 저조차도 한국군의 뿌리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알려준 사람도 없었고 어디서도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군의 뿌리를 규명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자료를 수집하며 원고를 써나갔습니다.”
 
 
  “김원봉 띄우기 실패하자 홍범도 띄운 것 아닌가”
 
김세진 작가가 쓴 《한국군의 뿌리》(2022)
  김 작가는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며 2년 넘는 시간을 들여 2022년 3월 1일 책을 완성했다. 그는 “홍범도의 항일·독립투쟁 활동은 있는 사실 그대로 인정해야 하지만 대한민국이 추구한 자유민주주의와는 이질적인 삶을 살았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김원봉 띄우기에 실패하자 그 대체재(代替財)로 홍범도를 띄운 것은 아닌지 의심도 된다”고 밝혔다.
 
  — 책을 쓸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냉철하게 지피지기(知彼知己)하자’는 원칙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국제 관계와 국내 상황을 최대한 연결하고, 그 당시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입체적으로 추적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진영논리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역사를 서술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제 책은 도서 분류도 ‘역사’로 돼 있습니다.”
 
  —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참고할 만한 자료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기존 선행(先行) 연구 자료는 특정 시기만 다루거나 특정 사관(史觀)에 치우쳐 객관적이지 못했죠.”
 
  — 왜 한국군의 뿌리를 모르고 있었나요.
 
  “배울 기회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죠. ‘배워야 한다’는 고민조차 부족했고요.”
 
  — 육사에서는 안 가르쳐주나요.
 
  “육사에는 군사사학과가 있습니다. 주로 한국전쟁사와 세계전쟁사를 집중적으로 가르칩니다. 이 학과에서도 건군사나 창군(創軍) 배경은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대장(大將)까지 오르신 분, 국방부 장관을 지내신 분 등 많은 선후배 전우들에게 한국군의 역사와 뿌리를 물어봤지만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 이유가 있나요.
 
  “한국군의 뿌리가 무엇인지, 그 뿌리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건군’이 ‘건국’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민감하기 때문이죠.”
 
  — 왜 정치적으로 민감한가요.
 
  “건군의 문제가 곧 대한민국 건국을 1919년 상해 임시정부로 볼 것인가, 1948년 정부 수립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 진영별로 지향하는 이념과 주장하는 바가 서로 달라 여전히 논쟁이 치열한 부분입니다.”
 

  — 한국군의 뿌리는 무엇인가요.
 
  “의병, 독립군, 광복군부터 일본군, 만주군, 중국군 출신까지 다양합니다. 제 책에서는 한국군뿐만 아니라 북한군의 뿌리까지 인적, 제도적, 문화적 차원에서 밝혀놓았습니다. 뿌리가 다양하기 때문에 불편해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 왜 불편한가요.
 
  “34년 11개월의 식민지배를 당하고 해방됐습니다. 그런데 현대 한국군을 만들고 이끈 주역들의 면면을 보니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 대다수이고 독립군·광복군 활동을 했던 분들은 소수였습니다. 건군 주역들의 공(功)을 인정하자니 일제시대가 딸려왔고, 이 분들의 과(過)를 드러내자니 한국군의 핵심이었죠. 모순을 동시에 품어야 하고, 또 정치 권력의 정통성과 이념 논쟁으로까지 곧장 이어지니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 광복군을 뿌리로 삼아야 ‘민족 정통성’이 살지 않나요.
 
  “진실은 한국군을 지탱하는 뿌리에 광복군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광복군, 그 이전에 대한제국이 망한 후 나타난 독립군도 매우 다양한 갈래로 나뉩니다.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이념과 가치관, 활동 지역·시기에 따라 성격이 달라요. 수많은 단체와 개인을 ‘독립군’이라는 하나의 관념으로 재단(裁斷)할 수 없어요. 저도 참 불편하지만 지피지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입니다.”
 
 
  자유시 참변
 
2018년 3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는 10년 만에 육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다양한 독립군 단체가 조직됐다. ‘육사 흉상 5인’ 중 한 명인 김좌진은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만들었는데 주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참여했다. 서간도에선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주도해 ‘서로군정서’를 조직했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1기생 김학소는 ‘흥업단’을, 의병 출신 홍범도는 ‘대한독립군’을, 최진동은 ‘군무도독부’를 만들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계기로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에 나서자 독립군 단체들은 ‘대한독립군단(1920년 12월)’으로 통합해 규모를 키웠다.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고려공산당 소속 상하이파(이항부대, 다반군대)와 이르쿠츠크파(자유대대)도 대한독립군단과 협력했다.
 
  일본군을 피해 대한독립군단 각 부대는 1921년 초 자유시로 모였다. 대한독립군단, 상하이파, 이르쿠츠크파가 모여 연합부대의 지휘권을 두고 다퉜다. 레닌이 이끄는 적군(赤軍)은 모든 조선인 부대를 직접 지휘하겠다고 선포했고 홍범도 등은 이에 따랐다. 그해 6월 28일 적군은 강제로 독립군을 무장 해제했다. 적군·자유대대는 독립군을 공격해 수십 명을 죽이고 약 970명은 포로로 삼아 적군에 편입시켰다. 이 사건이 ‘자유시 참변’이다.
 
  적군에 협조한 홍범도, 지청천 등은 이르쿠츠크로 이동해 홍범도를 중심으로 ‘고려혁명군’을 만들고 고려혁명군관학교(교장 지청천)를 세웠다. 자유시 참변에서 살아남은 이범석, 김홍일 등 일부 독립군과 김좌진 병력은 북간도 지역에서 무장 해제를 당했다.
 
 
  자유시 참변 이후의 독립군
 
소련군 복장에 레닌이 하사한 권총을 찬 홍범도. 오른쪽 아래는 육사 충무관 앞에 설치된 흉상. 사진=김세진
  — 자유시 참변 이후 독립군은 어떻게 됩니까.
 
  “각종 단체를 조직합니다만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간의 대립으로 갈등이 계속됐습니다. 일부는 중국군 양성 기관에서 훈련받아 중국군이 됐는데 공산주의자들은 중국 공산군, 민족주의자는 중국 국민당 계열에 속했죠. 소련군에 속한 대표적인 사례가 김일성입니다. 여기에 1932년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자 출세하고 싶었던 조선 청년들이 만주군에 입대합니다.”
 
  — 만주군에서 활동한 이들은 누가 있나요.
 
  “만주의 군간부 양성기관은 크게 봉천군관학교(2년제), 신경군관학교(4년제)가 있습니다. 만주에서 두각을 보인 이들은 일본 육사로 편입시켰죠. 봉천 출신으로는 5기 정일권(일본 육사 55기 편입)·김백일·신현준, 9기 백선엽 등이 있습니다. 신경 출신으로는 2기 박정희·이한림(일본 육사 57기), 5기 강문봉(일본 육사 59기) 등이 있죠.”
 
  —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합니다.
 
  “국민당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김구를 중심으로 광복군에 참여합니다. 여기도 뿌리가 다양합니다. 일본 육사에서 공부한 지청천, 중국 운남 육군강무학교 출신 이범석(대한민국 초대 국방부 장관), 대한제국군 출신의 황학수 등이 있습니다.”
 
  — 광복군의 규모는 어떠했나요.
 
  “1945년 4월 작성된 임시정부 문서에는 339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반면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광복군은 560명입니다. 한 광복군 출신은 339명을 두고 ‘중국에 물자를 타기 위해 가족 등을 포함해 광복군 숫자를 부풀렸다’고 증언했습니다.”
 
 
 
‘광복 이후 광복군’

 
  — 광복 직후 광복군의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임시정부는 해방 직후 국내 진공을 앞두고 일본군, 만주군 출신 조선인을 모집해 ‘해방 후 광복군’이란 부대를 창설했습니다. 규모가 커야 협상에 유리하니까요. ‘광복 이후 광복군’으로는 대표적으로 만주군 출신이자 간도특설대원이었던 신현준 초대 해병대사령관, 만주군 출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습니다.”
 
  — 조선인들이 일제 34년 11개월간 활동한 군대를 정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의병, 독립군, 한국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국민당 소속 중국군, 공산당 소속 중국군, 소련군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이들은 광복 후 어떻게 됐나요.
 
  “남한만 놓고 보면 광복 직후 건군준비단체가 우후죽순 생겨났어요.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크고 작은 단체 70여 개가 있었죠. 좌우익 대립이 심해지자 미군정은 건군준비단체를 모두 해산시켰습니다.”
 
  미국은 모든 건국·건군 활동을 부정했지만 치안 유지를 위한 병력은 필요했다. 1945년 10월 12일 북조선이 ‘보안대’를 설립하자 미군정은 다음 날 국군의 전신인 ‘남조선경비대’를 창설했다.
 
  미군정을 이끈 하지는 정규 군대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미국 정부는 반대했다. 이에 하지는 경찰 예비대 성격을 가진 소규모 군대를 만들기로 했다. 이를 ‘뱀부 계획(Bamboo plan)’이라고 한다. 미군정은 1946년 1월 초 국방부를 만들고 곧이어 1월 14일에는 육군부, 해군부를 각각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로 명명한다. 다음 날 서울 태릉(현 육사 부지)에 국방경비대 제1연대가 창설된다. 국가와 정부는 없지만 현대의 한국군이 최초로 조직된 것이다.
 
  — 군대를 유지하려면 간부도 필요하지 않나요.
 
  “미군정은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해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를 창설했어요. 원래 ‘군사언어학교’였지만 당시 가르친 언어가 영어여서 군사영어학교(군영)라고 불렀습니다.”
 
  — 군영이 대한민국 장교 양성의 출발점인가요.
 
  “현재 우리 육군은 군영에 대해 ‘미국이 국군 창군을 주도할 간부를 양성하려고 만들었다’고 평가하지만 사실과 차이가 있어요. 미국은 말 그대로 ‘통역요원’을 구하려는 목적이 컸습니다.”
 
  — 군영에는 누가 들어갔나요.
 
  “미군정은 일본군, 만주군, 광복군 출신을 각 20명씩 할당해 1기에 60명씩 교육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광복군은 자신들의 정통성과 법통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며 입학을 거부했죠. 여기에 광복군 중 다수가 중국에서 귀국하지 못한 상태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군영의 학생은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 주를 이뤘습니다.”
 
  — 당시 광복군 출신들은 어떠했나요.
 
  “해방 당시 약 800명 규모였습니다. 다른 출신들보다 나이도 많고 현대적인 전투기술을 교육받지 못해 주류에서 밀려났죠. 광복군 출신은 ‘남조선국방경비대’를 향해 ‘미국 용병 집단이자 친일 집단’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어요. 유동열, 이범석, 안춘생, 송호성 등을 제외하면 건군 초기에는 참여하지 않았죠.”
 
  — 군영은 간부를 얼마나 양성했나요.
 
  “약 4개월간 총 110명이 군영을 졸업했습니다. 출신별로는 일본 학도병 72명, 만주군 21명, 일본 육사 12명, 일본군 지원병 5명, 독립군 2명이었습니다.”
 
  — 군영은 한국군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군영 졸업생은 국방경비대에 속한 각 연대를 창설하고 초기 한국군을 건설한 핵심입니다. 졸업자 110명 중 78명이 장군으로 진급했고 23명은 각군 참모총장이 됐습니다. 역할과 비중을 보면 현대 한국군의 뿌리죠. 미군 교리를 우리 군에 적용해 한국군을 미국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군영은 1946년 4월 30일 폐교됐다. 다음 날 5월 1일, 미군정은 한국군 장교를 양성하는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를 창설했다. 육사는 이날을 개교기념일로 삼는다.
 
 
  “해군 창설 주축은 민간 선박회사 출신”
 
  — 해군·공군 창군에도 일본군 출신이 대다수였나요.
 
  “해군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일제는 1943년까지 조선인을 해군에 입대시키지 않았습니다. 전시에도 조선인은 함정 근무 대신 육상 근무나 가미카제 자살특공대 임무를 줬죠. 일본 해군으로 해상 함정 근무 경험을 한 조선인은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해군 창설의 주축은 식민지배기 중국·일본 등 민간 선박회사에서 일했던 이들입니다.”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은 중국에서 항해과를 졸업하고 중국 국민당 소속 해군으로 3년간 독일에서 유학했다. 그 뒤 한중일 무역회사를 만들어 활동하다 해방 후에는 해방병단(海防兵團)을 만들어 오늘날 해군으로 발전시켰다.
 
  해병대는 신현준이 주도해 창설했다. 그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 직후 해군본부에 ‘일제 해군육전대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다면 더 수월하게 진압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손원일은 육상전 경험이 풍부했던 일본군·만주군 장교 출신과 일본 해군육전대 출신에게 해병대 창설을 맡겼다. 2대 해병대 사령관은 김석범(봉천 5기, 일본 육사 54기)이었다.
 
 
  “다양한 뿌리가 현대 한국군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성장”
 
  공군은 육군 항공부대로 존재했다. 1949년 10월 1일 육군에서 약 1600명과 연락기 20기를 떼어내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했다. 1948년 5월 항공부대가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장교는 7명에 불과했지만 인력 양성에 힘써 1950년 6·25전쟁 직전에는 조종사가 약 240명까지 늘었다.
 
  공군 창설의 주역 7인으로는 ▲최용덕(초대 국방부 차관·2대 공군참모총장, 중국 육군군관학교 졸업, 중화민국 공군 소령) ▲김정렬(초대 공군참모총장, 일본 육사 54기) ▲김영환(김정렬의 동생, 일본 학병) ▲박범집(초대 공군참모부장, 일본 육사 52기) ▲이근석(초대 공사 교장, 일본 소년비행병 2기, 만주군 활동) ▲장덕창(4대 공군참모총장, 일본 이토비행학교 졸업) ▲이영무(공군비행단장, 중국 운남육군학교 졸업, 중화민국 공군 소령)가 있다. 김세진 작가는 “한국 공군의 대부(代父)인 미 공군 딘 헤스 대령도 한국 공군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인적·제도적·문화적 차원에서 분석했을 때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 건군 당시 대부분을 차지했다”며 “6·25전쟁을 계기로 다양한 뿌리가 현대 한국군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성장한다. 여기에는 한국군의 각종 제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 밴 플리트 미 8군사령관 등 미군의 노고도 담겨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각 군 사관학교 면접, 군 장병 정신교육, 영관급 장교를 교육하는 육군대학 등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나 북한군의 실체에 대한 교육 대신 항일·독립운동에 대해서만 유독 강조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2018년 책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를 펴내 일본 근현대사에도 밝은 김 작가에게 군에 있는 지인(知人)들이 연락해왔다. 자신들도 이런 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김 작가에게 물어온 것이다.
 

  — 문재인 정권 시절 군 수뇌부가 육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도 합니다.
 
  “학군 출신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육사에 ‘소대장 수준의 지식만 갖고 졸업하면 된다. 영어 공부만 잘하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육사 교육도 부실해졌죠. 유격훈련과 과학화군사훈련(KCTC)을 없애고 공수훈련도 없애려고 했죠. 육사 78기는 과학화훈련을, 79기는 유격훈련과 과학화훈련을 하지 않고 졸업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그간 육사 생도들이 반드시 들어야 했던 필수과목인 6·25전쟁사를 선택과목으로 바꿨죠. 이 때문에 육사생도 4명 중 3명은 6·25전쟁사를 배우지 않아도 됐습니다. 6·25전쟁사를 필수과목에서 제외한 게 문제 되자 육사는 임관을 앞둔 4학년 생도를 대상으로 급하게 6·25전쟁사 보충 교육을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 왜 그런 지시를 내렸습니까.
 
  “육사 생도들은 4학년이 되면 대대급·연대급 이상의 전술 지식을 배우고 졸업합니다. 육사의 교육목표가 육군과 국가안보를 책임질 정예 장교를 양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사를 제외한 다른 출신들이 볼 때 육사 생도들이 받는 교육이나 훈련을 특혜라고 본 것이죠. 다행히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정상화됐습니다.”
 
 
  육사 교장 면박 준 육사 출신 정치인
 
김세진 작가는 육사 생도 4년 생활을 총정리한 《나를 외치다!》(2016)와 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를 추적한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2018)를 펴내기도 했다.
  — 육사에서 홍범도 흉상을 철거한다고 합니다. 국방부에 있는 동상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어려운 문제가 됐습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돼버렸거든요.”
 
  — 홍범도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홍범도가 대한민국 건국과 호국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홍범도는 독립운동을 했던 하나의 인물로 기려도 충분해요. 문제는 자유시 참변이나 홍범도에 대한 연구가 아직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치적 주장에 앞서 역사적 사실관계를 밝혀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육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홍범도 동상 정쟁화에 가장 앞장서고 있습니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과 함께 육사에 가 사관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육사 교장에게 면박을 주고 생도들의 수업 시간에 행패를 부렸습니다. 희극이자 비극입니다.”
 
  이에 대해 지난 10월 20일 김병주 의원실 측은 “행패를 부린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혀왔다.
 
  — 동상 때문에 육사 안팎이 시끄럽습니다.
 
  “학교 밖에서는 육사를 규탄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육사 앞에는 ‘일본군의 후예’와 같은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생도들은 혹시 테러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심적(心的)으로 굉장히 괴롭다고 합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들에게 돌아오는 건 비난뿐이니까요. 이번에도 국군의 날 행사와 시가행진 준비하느라 생도들은 비를 맞으면서 연습했습니다.”
 
  — 육사에 백선엽, 맥아더 동상을 세운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지금은 망인(亡人)의 동상을 두고 아무것도 안 하면 좋겠습니다. 이미 백선엽 동상은 칠곡 다부동에, 맥아더 동상은 인천에 있습니다. 육사 생도들은 곰팡이가 핀 숙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시설이 너무 열악해 천장이 무너질 정도입니다. 오늘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역량과 관심을 쏟기도 부족합니다. 망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거두고 현재와 미래를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군, 뿌리부터 무너지고 있다”
 
충무관 앞에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과 안 의사의 유묵인 위국헌신 군인본분이 새겨진 비석. 사진=김세진
  김 작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생도들이 가장 많이 마주하는 육사의 조형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 적힌 석상(石像)입니다. 생도 기숙사(화랑관) 입구에 있습니다. 생도들은 오전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갈 때, 점심을 먹으러 생활관에 올 때, 오후 수업을 들으러 갈 때, 다시 생활관으로 들어올 때마다 이 상을 수없이 마주합니다. 육사 생도들은 지금도 항일투쟁정신을 충실히 기리며 사관생도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는 책에서 한국군의 뿌리를 말했습니다만 지금 한국군은 정치권과 군 수뇌부의 무관심과 불통으로 인해 뿌리부터 무너지고 있습니다. 육사에서도 생도들의 자퇴(自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3·4학년들이 많습니다. 심각합니다. 정치인들은 동상이 아니라 이런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군의 뿌리를 규명한 김세진 작가는 이 불편한 진실이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안다. 그럼에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존경해 생애 처음으로 돈을 주고 샀던 책도 《충무공 정신》이었다”며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를 실천하기 위해 퇴직금을 털어 일본어와 일본을 공부했다. 국내외 온갖 독립운동 유적과 사적지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이다. 앞서 2016년에는 4년의 육사 생도 생활을 다룬 책 《나를 외치다!》도 출판했다. 그는 군을 사랑하기에 역설적으로 군을 떠났다고 말한다. 예비역 장교로서 책임감을 갖고 사회에서 활동한다면 동료 군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고향이 어딘지를 물었더니 아버지(고 김영수 육군 대령)를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기에 자기 고향은 ‘코리아’라고 답했다. 여러 사람과의 소통창구로 유튜브 채널 ‘코리아세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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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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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    (2023-10-27) 찬성 : 1   반대 : 4
대한민국은 육,해,공군이 너무나 육사 편향위주로 가다보니 군의 합동전력을 종합해 보면 해,공, 일반출신들도 모두가 불편해 한다. 미육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말도안되는 육사의 특혜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모든 정책방향이 육사위주로 되다 보니 흉상물 설치 이전문제에 있어서도 갑론을박으로 이제 나라의 정체성과 근간을 흔들지경에 이르렀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육사를 지방으로 이전해서 한번에 문제를 해결해 보자. 늦었지만 대선 공약을 에행하여 민심도 돌아봐야 한다. 꼭 지켜져야 한다. 대선공약 총선승리! 육사지방이전!!!
  ksbang    (2023-10-26) 찬성 : 2   반대 : 10
오늘날 육사는 군사정권의 뿌리가 되버린 것에 대해서 소리 없는 비판을 받고 있는 건 사실. 또 육사 출신 장교의 진급에 필요 이상의 지나친 특혜도 사실. 어쩜 우리 현실에 4년제 육사가 필요한지도 의심. 해사나 공사는 필요한 전문 과학지식이 필요하기에 4년제가 타당 하지만 육사는 2년제 3사관학교가 정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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