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北, 대중여론 뒤흔들어 親美정부 전복 획책
⊙ 광우병·세월호·촛불·핼러윈참사(이태원참사) 선동 등은 자유민주주의·한미동맹 와해시키기 위한 지속적 공격
⊙ 좌파의 내러티브 속에서 反美·反日은 한미동맹 해체, 통일은 中·北 진영으로의 편입 의미
⊙ 제2차 중국·북한의 南侵은 은밀한 내러티브 전쟁의 형태로 이미 진행 중
윤민우
1972년생.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인디애나주립대 범죄학과 석사, 샘휴스턴주립대 형사사법학대학 범죄학 전공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국제정치학 박사 / 가천대 경찰정보학과 교수, 現 국가정보원 자문위원, 국군방첩사령부 자문위원, 서울대학교 아시아센터 객원연구원 / 《폭력의 시대 국가안보의 실존적 변화와 테러리즘》 《모든전쟁:인지전, 정보전, 사이버전, 그리고 미래전쟁에 대한 전략 이야기》 저술
⊙ 광우병·세월호·촛불·핼러윈참사(이태원참사) 선동 등은 자유민주주의·한미동맹 와해시키기 위한 지속적 공격
⊙ 좌파의 내러티브 속에서 反美·反日은 한미동맹 해체, 통일은 中·北 진영으로의 편입 의미
⊙ 제2차 중국·북한의 南侵은 은밀한 내러티브 전쟁의 형태로 이미 진행 중
윤민우
1972년생.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인디애나주립대 범죄학과 석사, 샘휴스턴주립대 형사사법학대학 범죄학 전공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국제정치학 박사 / 가천대 경찰정보학과 교수, 現 국가정보원 자문위원, 국군방첩사령부 자문위원, 서울대학교 아시아센터 객원연구원 / 《폭력의 시대 국가안보의 실존적 변화와 테러리즘》 《모든전쟁:인지전, 정보전, 사이버전, 그리고 미래전쟁에 대한 전략 이야기》 저술
- 1월 14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는 촛불행동이 주최한 ‘윤석열 퇴진’ 요구 집회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민노총 간부가 연관된 북한 연계 간첩단 관련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국이 한국에서 친중 영향력 공작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일반 대중은 적국(敵國)의 간첩과 영향력 공작 위협, 전쟁 등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는 두려운 위협에 직면하면 인지적(認知的) 불균형(imbalances)과 불안감(nervousness)을 느끼게 된다. 이때 대중은 흔히 자신들이 직면한 위협을 인지적으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하거나 그 위협 정도를 평가절하해서 개인의 심리적, 인지적 불균형을 회복하려 한다. 최근 보도되는 북한과 중국의 스파이 활동과 영향력 공작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이러한 인지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같은 정보를 접해도 다른 인식과 판단을 도출한다. 부분적으로는 인지편향 때문이다. 인지편향에는 다음의 세 가지 종류가 있다. ▲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정상화 편향 ▲ 자신의 희망과 관련된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적 지각 ▲ 결과가 낙관적일 거라는 희망적인 사고로 들여다보는 낙관주의 편향이다.
이 같은 인지편향은 역사적으로 국가가 중대한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따금씩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참혹한 결과를 빚었다. 1590년 사신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년)은 선조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공할 개연성이 매우 낮다고 보고했다. 1950년 한국전쟁 직전 당시 채병덕(蔡秉德·1915~1950년) 육군참모총장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보고받았지만 무시했다. 국가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북·중의 간첩 활동과 영향력 공작 위협에 대한 인지편향이 가져올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신냉전은 글로벌 패권 투쟁
최근 관찰되는 북한과 중국의 간첩 활동과 영향력 공작은 한국에 대한 거대하고, 구조적이며, 통합적이고, 전략적인 위협의 한 퍼즐 조각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동맹국과 중국·러시아·북한의 글로벌 패권(覇權) 충돌이 진행되고 있다. ‘신냉전(新冷戰)’이다. 지난 3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으로 전체주의 진영과 그에 대항하는 자유민주 진영 간의 전선은 더 명확해졌다. 현재는 미국·동맹국의 대(對) 중국 신냉전이 반도체와 공급망 재편 등 산업과 과학기술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대만 문제를 두고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3~4년 내에 중국이 군사적으로 대만을 침공하고 이로 인해 중국과 미국 및 동맹국이 직접적으로 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尹錫悅) 정부는 미·일과의 군사적·경제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자 북한과 중국은 위협적인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대만과 한반도를 포함한 유라시아판 동쪽에서의 이 같은 안보위기는 유라시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동맹국과 중국·러시아·북한의 거대한 지정학적(地政學的) 충돌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인 미국·동맹국과 중국·러시아로 대변되는 전체주의 진영은 대체로 유라시아 대륙의 초승달 연안 지역에 해당하는 림랜드(Rimland)에서 지정학적 단층선(斷層線·fault line)을 따라 서로 대치 또는 충돌하고 있다.
이 지정학적 단층선을 따라 두 세력의 충돌 압력이 가중되면, 지정학적으로 약한 지점에서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그리고 한반도는 약한 지점에 해당한다. 현재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바로 지정학적 압력이 폭발로 이어진 사례다. 그러므로 대만과 한반도에서도 언제든 이 압력이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야망
이런 측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만, 한반도의 위기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과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는 이유는 미국과 나토(NATO)의 군사적 역량과 관심을 유라시아판의 서쪽 전선에 붙들어놓기 위해서다. 그러면 유라시아판 동쪽 전선에 실리는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적 압력을 덜어낼 수 있다.
중국의 전략적 비전은 미국을 하와이 동쪽으로 후퇴시키고 동부 유라시아판에서 중화(中華)제국 질서를 재현하는 것이다. 서부 유라시아판에서 러시아세계(the Russian world)를 재현하겠다는 푸틴의 글로벌 전략과 상호보완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중국의 전략적 비전은 과거 일본제국이 추구했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과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중국이 중화제국 질서를 복원하기 위해 공략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要衝地)가 두 곳이 있다. 대만과 한국이다. 중국이 대만을 합병하게 되면 중국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교통로를 차단할 수 있다. 그러면 남북으로 연결된 인근 권역 모두에서 미국·동맹국과의 세력 충돌에서 상당한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식량과 에너지 등 교역을 해상교통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의 목줄을 틀어쥐게 된다. 한국과 일본을 친중(親中)세력권으로 포획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합병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군사력 전개의 핵심축인 괌을 군사적으로 직접 위협할 수도 있다. 괌이 군사적으로 무력화(無力化)되면 필리핀의 고립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중립지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하와이 동쪽으로의 철수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서태평양 제국 질서의 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대중봉쇄선의 GP
중국에 한국은 양날의 칼이자 방패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을 공격할 수 있는 스프링보드(Springboard·도약판)이자 동아시아·서태평양의 대중국 봉쇄선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전선의 GP(Guard Post·초소)다. 오호츠크에서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미국의 대중(對中)·대북(對北) 봉쇄선에서 일본이 GOP(General Outpost·일반전초)라면 한국은 GP에 해당한다. 반대로 중국의 입장에서도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으로부터 스스로의 심장부를 방어할 수 있는 방패이자 미국과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스프링보드다. 한반도 서안(西岸)에서 중국의 정치·경제·군사력의 심장부인 발해만·베이징·상하이·칭다오 등은 모두 공격 사정거리 내에 있다. 반대로 만약 중국의 군사력이 한반도 동남부 연안과 제주도에 배치된다면 일본과 주변 해역 전 영역이 중국의 군사력 위협 아래 놓이게 된다.
한반도 북부 지역이 극동 지역 보호를 위한 만족스러운 완충(緩衝)지대가 되었던 냉전 시대의 소련과 달리, 중국 입장에서 현재 남한과 북한의 분단선은 중국의 심장부가 노출된 불완전한 절충점이다. 분단된 한반도 남쪽의 서쪽 해안선 전체가 중국 본토 공격의 발사대(launching pad)가 될 수 있다. 미군 해외 기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기지가 평택항에 들어선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남북 분단에 만족했던 냉전 시기 소련과 달리, 중국이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친중국 영향권으로 포획하는 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 대한 중국의 군사 전략적·경제적 관심도 이러한 상황을 방증한다. 우선 중국은 서해를 자신들의 내해(內海)로 만들고자 한다. 중국 해군이 한국 해군에 동경(東經) 124도를 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중국은 동해 또한 노리고 있다. 제3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루트인 북극항로 활용을 위해선 동해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을 확보한다면 러시아의 묵인하에 미국을 상대로 중국 전략핵잠수함을 오호츠크해와 북극해에서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中·北의 한국 흔들기
중국·북한은 공통적으로 한국을 미국과 동맹국이 구축(構築)해놓은 유라시아판 내부의 전체주의 진영에 대한 봉쇄망의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을 와일드카드로 활용하여 한·미·일 연대(連帶)체제를 이완시키려고 하며, 북한 입장에서 중국은 한·미·일의 군사적·경제적 압박에 맞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버팀목이다. 중국·북한은 한국의 내부체제를 흔들어 이 동맹체제로부터 한국을 이탈시킴으로써, 미국의 영향력을 동북아시아 역내(域內)에서 걷어내려 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 가해지는 중국·북한의 군사적, 경제적, 역사·문화적 압박과 회유, 그리고 스파이 활동과 영향력 공작들은 모두 이러한 한국 흔들기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중국의 한국 내 부동산 투자, 중국의 한일 간의 역사 갈등 증폭, 중국·러시아의 독도 상공과 동해 방공식별구역(KADIZ) 침입, 한국 내 비밀경찰서 운용, 그리고 공자학원을 통한 영향력 공작 등은 한국을 친중 국가로 길들이기 위해 조율된 작전의 개별 사례들이다.
북한의 핵 도발과 최근 적발된 민노총 침투 간첩들, 그리고 그들에게 하달된 북한의 윤석열 정권 퇴진 선동 등도 이 같은 한국 흔들기의 전략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북한 간에 어떤 전략적 조율이나 교감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러한 것들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중국·북한의 한국 흔들기는 결국 양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중국·북한이 과거 한국전쟁이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직접적인 군사적 침공이 아니라 ‘한국 흔들기’라는 간접접근전략을 채택한 것은 군사적 결전이 초래할 비용부담 때문이다.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한미동맹의 힘을 고려할 때 직접적인 군사적 결전은 중국·북한에 막대한 희생과 비용부담을 강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북한은 직접적인 군사결전보다 대중여론을 뒤흔들어 선거를 통해 친미적인 정부를 전복하고 친중·친북적 정부를 세우는 것을 비용 대비 더 효과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AI 시대의 선전선동과 심리전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 사이버를 포함한 정보통신의 급격한 혁신, 정보량의 폭발적인 증대, 그리고 초(超)연결·초개인 사회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선전선동과 정보·심리전의 파괴적 효과는 극대화되었다. 이에 따라 선전선동과 정보·심리전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주요한 한 전쟁 양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오늘날의 전쟁에서는 누구의 군대가 이기는가보다 누구의 이야기가 이기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늘날의 선전선동과 정보·심리전의 파괴력은 과거의 그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과거의 선전선동은 신뢰하기 어려웠고, 그 효과 측정도 불가능했다. 오늘날은 AI, 빅데이터, 딥러닝, 여론조사, 인지심리, 신경과학, 행동과학의 발전 등으로 마치 첨단유도미사일을 통한 정밀타격(pinpoint strike)과 같이 선전선동을 위한 정확한 대상청중 식별과 메시지 전달, 그리고 공격 후 영향력 검증에서 피드백까지 정교하게 행할 수 있다.
러시아의 정보·심리전
미국·나토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인지전(cognitive warfare)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땅, 바다, 하늘, 우주,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 이어 ‘인간 도메인(Human Domain)’을 새로운 전쟁의 공간 또는 안보위협의 공간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인지전은 한마디로 인간 도메인을 장악하기 위한 공격·방어이다. 이는 미국 국방부 특별작전지휘본부의 지원으로 발간된 2015년 인간 도메인에 대한 작전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인간 도메인은 일반 대중의 관점, 의사결정, 그리고 행동으로 구성된다. 오늘날 미군은 인간 도메인을 점령하여야만 전쟁의 궁극적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지전에 대한 미군의 최근 인식은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발전되어온 러시아와 중국의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에 대한 대응이다. 러시아는 정보·심리전, 중국은 초한전(超限戰·unrestricted warfare) 개념으로 이를 발전시켜왔고 에스토니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대만,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유럽 등 주변 국가들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을 상대로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을 오랫동안 수행해왔다.
특히 러시아는 2014년 러시아 연방 군사독트린과 게라시모프 제안들에 따라 정보·심리전을 발전시키면서 소비에트 시기부터 존재했던 과거의 특수 프로파간다, 재귀통제, 그리고 적극조치 등의 전통적 심리전·선전·선동·프로파간다 기제들을 인지심리·설득심리의 최신 지식들과 결합시키며 오늘날의 정보통신 환경에 접목시켰다.
특수 프로파간다는 과거 소련 시절 공산당과 정보기관의 이데올로기 공작을 의미한다. 주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전파·확산을 위한 정치교육, 선전·선동·프로파간다와 관련된다. 재귀통제는 오정보(誤情報)와 역정보(逆情報), 그리고 위장 등을 사용해 특정 개인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 공격 대상을 통제하려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적극조치는 적의 정부와 대중, 그리고 다양한 대중 사이를 분열시켜, 혼란과 공포를 조장하고 적의 정부, 가치와 제도, 질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려 적의 정책 수행을 마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련 시기의 정보작전들을 뜻한다.
역사·문화의 武器化
중국의 초한전과 북한의 영향력 공작도 기본적으로 이 같은 소련·러시아의 정보·심리전 전통과 궤를 같이한다. 중국과 북한은 문화·역사·경제를 무기화(武器化)한다. 자국 대중에 대한 애국심과 지지를 결집시키고, 적측 대중의 가치나 사기를 떨어뜨리며, 불신과 분열을 조장한다. 또한 적국의 정부와 대중을 분열시키고 정부를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킨다. 이를 위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을 통해 정보를 유포, 확산시켜 심리적 영향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필요하다면 법규범을 위반하면서까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다.
인간 도메인을 장악하기 위한 인지전투의 핵심적인 수단은 ‘무기화된 내러티브(weaponized narrative)’다. 인간의 감정상태, 신앙체계, 행동패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주변에 대한 인식과 대응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내러티브가 극단주의, 갈등, 권력투쟁, 전쟁 또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면 정치권력을 장악하거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중요한 전투의 영역이자 수단이 된다.
내러티브는 지지층을 동원시키고, 지지층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지지층의 일체감을 지속시킨다. 또 이탈자를 통제하고, 전략을 구성하며, 신념을 확산시킨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의식, 굴욕, 그리고 저항에 관한 내러티브의 서사를 이용하여 청중으로 하여금 과거와 유사한 상황으로 데자뷔 된 현재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개인적 좌절과 공공의 소명을 연계시키고, 자신이 더 넓은 정치·사회 운동의 한 부분이라는 권능감을 부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내러티브 형식으로 정보를 전달받으면 가치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인 정보를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효과적인 내러티브는 반드시 사실에 입각할 필요가 없다. 결국 내러티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청중의 경험에 근거해 심금을 울리는 것’이지 사실 여부가 아니다.
통일전선
내러티브의 전략적 기획과 운용에는 ‘최적분할’이 고려된다. 내러티브는 다양한 이질적인 정치·사회 세력과 대중을 핵심 적에 대항하도록 공고히 결박시키는 접착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고 운용된다. 미셸 푸코는 이 최적분할을 ‘분산 프로파간다(distributed propaganda)’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다. 푸코는 ‘분산 프로파간다’를 자본주의 적들을 고립, 포위, 섬멸하기 위해서 어떻게 다양한 이질적인 세력을 하나의 통일된 힘으로 결집시킬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중국과 북한에서 사용되는 ‘통일전선’도 이 푸코의 ‘분산 프로파간다’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세력과 그들의 이야기들, 신념들을 하나로 결박하기 위해,핵심 적대 세력에 관한 차별, 소외와 배제, 죽음, 그리고 피해의 기억들이 활용된다. 부정적 경험과 기억들은 공감과 연대를 통해 다양한 세력과 그들의 내러티브들을 견고히 결박한다. 이 과정에서 온·오프라인 ‘광장’에서 함께하는 경험을 거치면서 이들은 하나의 연대된 실체(實體)가 된다. 적은 교활하고, 음모론적이고, 우둔하며, 폭압적이고, 사악한 세력으로 채색된다.
내러티브로 결박된 다양한 이질적인 네트워크 참여자들을 지휘·통제·조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제가 사용된다. 하나는 전통적인 군대식 지휘명령체계로 상층 전략지휘부의 결심이 전투 현장의 지휘관과 전투원들에게 전달되고 이것이 실제 내러티브 공격으로 구현된다. 적대국 군과 정보·공작기관, 그리고 적국의 지원·지시를 받거나 협조관계에 있는 언론사, 온라인 미디어, 또는 정치·사회·노동 단체 등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좌표 찍기
다른 하나는 ‘양떼몰이(shepher-ding)’로 양치기가 양떼몰이를 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우선, 주요 인사, 오피니언 리더, 셀럽 선동가, 또는 선동매체가 선동 메시지를 사용해 다수의 불특정 대중을 각성시킨다. 그러고 이들의 혐오, 분노, 증오 등이 향할 공격의 좌표를 찍어준다.
이렇게 되면, 선동된 다수의 불특정 개인은 마치 양떼 또는 좀비처럼 각성된 상태로 목표를 향해 돌격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 초개인화되고 온라인을 통해 초연결된 사회에서 다수의 이질적인 불특정 개인들을 동원하기에 적합하다.
전통적인 군대식 지휘명령체계와 ‘양떼몰이’는 내러티브 공격·방어를 위해 통합적으로 운용된다. 전통적인 군대식 지휘통제에 따라 코어(core) 조직들이나 행위자들이 거리시위나 추모제 등의 선도 공격을 감행하고 이를 기폭제로 양떼몰이로 동원된 자발적 개인이나 그룹이 여기에 올라타서 내러티브 공격이 증폭된다. 이를 ‘밴드왜건(bandwagon·편승) 효과’라고 한다.
이러한 내러티브 공격은 하나의 거대한 파도를 형성한다. 이 시위나 추모제, 온라인 댓글 공격 등과 같은 공격의 파도는 이슈별로 같은 공격 타깃을 향해 시간차를 두고 1파, 2파, 3파로 순차적·지속적으로 밀어닥친다. 소련·러시아의 종심(縱深)전투교리에 따른 제파(諸波)전술과 유사하다.
이 일련의 과정은 마치 폭탄이 작동하는 원리와도 같다. 폭탄은 전기 공급의 1단계와 뇌관 격발의 2단계, 그리고 폭발물 폭발의 3단계로 구성된다. 여기서 전기 공급의 1단계는 이슈나 의혹, 폭로 등의 최초 제기에 해당한다. 뇌관 격발의 2단계는 주요 방송사나 미디어, 유명 저널리스트, 외교관, 유력 정치인, 저명학자나 전문가, 싱크탱크 등의 전통적 권위를 가진 이슈메이커들이 제기된 이슈나 의혹 등에 권위나 정당성, 논리와 신뢰성을 부여함으로써 의혹을 증폭시키는 과정이다. 마지막 단계인 폭발은 동원된 다수가 공격·방어에 대규모로 동참하는 단계다.
대체로 이 폭발 단계는 두 개의 하위 단계로 구성된다. 1차 폭발은 앞서 언급한 대로 군대식 지휘통제에 따라 특정 조직이나 단체 등이 선도 공격을 감행하고 여기에 양떼몰이로 각성된 불특정 개인이 자발적으로(?) 올라탐으로써 2차 폭발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스웜(swarm·군단) 전술이 나타난다.
다수의 각성된 개인과 단체들, 미디어들, 댓글들이 마치 벌떼처럼 윙윙거리며 공격 좌표로 찍힌 대상이나 대상 내러티브를 타격한다. 이렇게 되면 마치 한 국가 또는 사회 전체가 거대한 위기에 처해 있고 공격 대상 정부나 그룹, 세력이 붕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심리적 착시(錯視) 효과를 청중에게 가져다준다.
과거 냉전 시기 이래 소련·러시아, 중국, 북한 등의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자유민주체제를 흔들기 위한 선전선동 및 영향력 공작은 이와 같은 체계적·조직적·전략적 기조 아래 실행되어왔다. 2014년 이래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정보·심리전, 2016~2018년 사이에 러시아가 행한 미국 대선(大選) 개입, 독일 총선 개입, 프랑스 대선 개입,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입 등도 이러한 방식 아래 수행되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인지전 공세와 선거 개입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조용한 침공 역시 이와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 한국에 대한 중국 영향력 공작과 북한 간첩 활동, 선전선동 공작, 그리고 이들과 연계된 국내 토착 친북·친중 세력들의 선전선동에서도 이와 같은 전략적 특성들이 쉽게 발견된다.
민노총 침투 간첩단 사건
민노총에 침투한 북한 간첩단 사건이 위험한 이유는 북한의 한국에 대한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의 수행을 위한 핵심 인프라가 구축되고 운용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민노총의 모든 조직원이 북한 간첩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북한 입장에선 민노총의 모든 조직원이 간첩이 될 필요도 없다. 민노총의 핵심 지도부를 북한의 간첩으로 포획함으로써 민노총 전체의 지휘통제권을 장악할 정도면 충분하다.
북한 간첩에 포획된 지도부는 다시 여타 다른 정치·사회·노동 단체, 정치 세력, 미디어, 오피니언 리더, 선동가들과 네트워크로 연계하고 그 확장된 ‘척도 없는 네트워크(scale-free network)’에서 허브(hub)의 역할을 함으로써 전체 친북 내러티브 네트워크를 지휘·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민노총 이외의 다른 정치·사회·노동·언론 분야에 포진한 다른 간첩들은 이 네트워크 결박에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간첩들이 앞서 설명한 내러티브 공격 파도의 구현 과정에서 중요한 국면마다 전체 저항 네트워크 전선을 움직이는 키맨(keyman)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촛불·광우병 선동의 구조
내러티브 인지전 차원에서 광우병 사태, 세월호 사건, 촛불시위, 그리고 최근의 핼러윈참사(이태원참사) 관련 선동 등을 되짚어보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선동들은 파편적인 에피소드 또는 이명박(李明博) 정부 또는 박근혜(朴槿惠) 정부라는 개별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이 아니다. 긴 시간적 호흡에서 순차적·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들을 향해 밀어닥친 내러티브 공격의 파도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유민주주의체제와 한미동맹 자체를 와해시키고 한국을 중국·북한의 전체주의 진영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긴 전쟁의 개별 전투들이다.
여기서 사용된 핵심 내러티브는 반미(反美)·반일(反日)·자주·민족·통일·평화다. 반미와 반일, 자주는 신식민지 담론을 통해 미국의 동맹체제로부터 한국을 이탈시키겠다는 의미이며, 민족통일은 중국·북한 진영으로의 편입을, 그리고 평화는 한국의 군사적 무장해제와 미 군사력의 한반도로부터의 철수를 의미한다.
푸코의 ‘분산 프로파간다’는 위에 제시된 일련의 사건들에서 이해관계가 다양한 여러 정치·사회 시민 세력들을 반정부·반우파·반미 전선에 동참시키고 결박하며 한국의 보수우파 세력과 정부를 포위 섬멸하는 전략적 프레임워크로 사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반일 또는 반미 감정의 자극은 과거 일제 강압통치 시절을 소환시켜 현재의 상황에 데자뷔 시킴으로써 대중동원을 위한 선동 기제로 활용되었다. 종종 추모와 제사 의식, 죽음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되새김질함으로써 대중의 감정과 정서를 자극하여 내러티브 공격 파도에 추동력(推動力)을 제공했다.
이와 같은 정교한 내러티브 공격의 핵심 키맨들에 국내 토착 친중·친북 세력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배후에는 중국과 북한의 공작기관들의 은밀한 지원과 지휘통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민노총 관련 북한 간첩단 사건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핼러윈참사 직후 제2의 촛불대항쟁’ ‘윤석열 대통령 퇴진’ ‘반일괴담 유포’ ‘국내 선거 개입’ 등을 지시한 북한 지령문은 이 거대한 실체의 단면들이다.
인지전 개념에 따른 대응 필요
결국 이러한 중국과 북한의 선전선동 공작에 대한 대응은 인지전의 개념에 따라 전략적·체계적·포괄적·통합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정보·심리전과 영향력 공작에 수년간 곤욕을 치른 미국과 유럽은 인지전과 인간 도메인의 전장 공간으로의 편입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이에 대한 정부·군·민간의 대응 역량을 강화시켜왔다. 특히 미국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의 미국 국내 선거개입 공작을 경험하면서 국가 핵심기반 시설에 자유민주주의 선거제도 자체를 포함시켜 보호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2014년 군사독트린에 이미 우주 기반 위성에 인지무기를 배치하고 정보조작 공격 능력을 구축하겠다고 담았다. 최근 각광받는 챗GPT 등 AI 기술, 신경과학과 다른 정보통신과학기술, 우주위성기술, 새로운 물리법칙에 기반을 둔 무기체계들의 빠른 발전은 전자전, 사이버전, 정보전, 심리전, 인지전 등의 융합을 촉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향후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의 치명성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이에 대한 심각한 위기인식을 가지고 인지전 수행 역량을 전략적,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네트워크 방패 구축해야
낡은 반공의식과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버리고 오늘날의 과학기술 발전과 정보통신 환경, 그리고 정치·사회·문화 지형을 반영하여 인간 도메인에서의 인지전 승리를 위한 내러티브 개념으로 국가안보 전략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예를 들면 북한·중국의 반미·반일, 민족자주, 평화 등의 핵심 내러티브에 대응할 수 있는 대응 내러티브가 마련되어야 하고 이를 확산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정부·군·민간이 파트너십을 가지고 함께 참여하여 핵심 대응 내러티브를 가동시킬 수 있는 넓게 펼쳐진 네트워크 방패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같은 네트워크 방패는 참여 당사자들의 수평적 네트워크적인 상호 연대와 협력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를 ‘다중이해 당사자주의(multistakeholderism)’라 표현한다.
정부의 최고 정책결정 지휘부나 정치·사회 엘리트가 톱 다운(Top down)으로 주도하고 위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전통적인 방식은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의 상층 전략지휘부와 정치·사회 엘리트는 전체 대응 내러티브 네트워크의 허브로 전략적 가이드와 지원을 제공하고, 다양한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자기 주도와 자발성이 강조되는 방식으로 서로 연대하고 함께하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가동되어야 한다.
전쟁은 의지와 의지의 충돌이고 적의 의지를 부러뜨리고 나의 의지를 적에게 관철시켜야만 승리가 확정된다. 오늘날 선전선동 또는 영향력 공작으로도 불리는 무기화된 내러티브는 이 의지의 투사와 관철의 핵심전장이자 기제이다. 제2차 중국·북한의 남침(南侵)은 열전(熱戰)이 아니라 은밀하고 조용한 내러티브 전쟁의 형태로 올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전투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반 대중은 적국(敵國)의 간첩과 영향력 공작 위협, 전쟁 등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는 두려운 위협에 직면하면 인지적(認知的) 불균형(imbalances)과 불안감(nervousness)을 느끼게 된다. 이때 대중은 흔히 자신들이 직면한 위협을 인지적으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하거나 그 위협 정도를 평가절하해서 개인의 심리적, 인지적 불균형을 회복하려 한다. 최근 보도되는 북한과 중국의 스파이 활동과 영향력 공작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이러한 인지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같은 정보를 접해도 다른 인식과 판단을 도출한다. 부분적으로는 인지편향 때문이다. 인지편향에는 다음의 세 가지 종류가 있다. ▲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정상화 편향 ▲ 자신의 희망과 관련된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적 지각 ▲ 결과가 낙관적일 거라는 희망적인 사고로 들여다보는 낙관주의 편향이다.
이 같은 인지편향은 역사적으로 국가가 중대한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따금씩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참혹한 결과를 빚었다. 1590년 사신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년)은 선조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공할 개연성이 매우 낮다고 보고했다. 1950년 한국전쟁 직전 당시 채병덕(蔡秉德·1915~1950년) 육군참모총장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보고받았지만 무시했다. 국가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북·중의 간첩 활동과 영향력 공작 위협에 대한 인지편향이 가져올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신냉전은 글로벌 패권 투쟁
최근 관찰되는 북한과 중국의 간첩 활동과 영향력 공작은 한국에 대한 거대하고, 구조적이며, 통합적이고, 전략적인 위협의 한 퍼즐 조각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동맹국과 중국·러시아·북한의 글로벌 패권(覇權) 충돌이 진행되고 있다. ‘신냉전(新冷戰)’이다. 지난 3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으로 전체주의 진영과 그에 대항하는 자유민주 진영 간의 전선은 더 명확해졌다. 현재는 미국·동맹국의 대(對) 중국 신냉전이 반도체와 공급망 재편 등 산업과 과학기술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대만 문제를 두고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3~4년 내에 중국이 군사적으로 대만을 침공하고 이로 인해 중국과 미국 및 동맹국이 직접적으로 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尹錫悅) 정부는 미·일과의 군사적·경제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자 북한과 중국은 위협적인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대만과 한반도를 포함한 유라시아판 동쪽에서의 이 같은 안보위기는 유라시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동맹국과 중국·러시아·북한의 거대한 지정학적(地政學的) 충돌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인 미국·동맹국과 중국·러시아로 대변되는 전체주의 진영은 대체로 유라시아 대륙의 초승달 연안 지역에 해당하는 림랜드(Rimland)에서 지정학적 단층선(斷層線·fault line)을 따라 서로 대치 또는 충돌하고 있다.
이 지정학적 단층선을 따라 두 세력의 충돌 압력이 가중되면, 지정학적으로 약한 지점에서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그리고 한반도는 약한 지점에 해당한다. 현재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바로 지정학적 압력이 폭발로 이어진 사례다. 그러므로 대만과 한반도에서도 언제든 이 압력이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야망
이런 측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만, 한반도의 위기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과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는 이유는 미국과 나토(NATO)의 군사적 역량과 관심을 유라시아판의 서쪽 전선에 붙들어놓기 위해서다. 그러면 유라시아판 동쪽 전선에 실리는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적 압력을 덜어낼 수 있다.
중국의 전략적 비전은 미국을 하와이 동쪽으로 후퇴시키고 동부 유라시아판에서 중화(中華)제국 질서를 재현하는 것이다. 서부 유라시아판에서 러시아세계(the Russian world)를 재현하겠다는 푸틴의 글로벌 전략과 상호보완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중국의 전략적 비전은 과거 일본제국이 추구했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과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중국이 중화제국 질서를 복원하기 위해 공략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要衝地)가 두 곳이 있다. 대만과 한국이다. 중국이 대만을 합병하게 되면 중국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교통로를 차단할 수 있다. 그러면 남북으로 연결된 인근 권역 모두에서 미국·동맹국과의 세력 충돌에서 상당한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식량과 에너지 등 교역을 해상교통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의 목줄을 틀어쥐게 된다. 한국과 일본을 친중(親中)세력권으로 포획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합병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군사력 전개의 핵심축인 괌을 군사적으로 직접 위협할 수도 있다. 괌이 군사적으로 무력화(無力化)되면 필리핀의 고립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중립지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하와이 동쪽으로의 철수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서태평양 제국 질서의 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대중봉쇄선의 GP
중국에 한국은 양날의 칼이자 방패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을 공격할 수 있는 스프링보드(Springboard·도약판)이자 동아시아·서태평양의 대중국 봉쇄선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전선의 GP(Guard Post·초소)다. 오호츠크에서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미국의 대중(對中)·대북(對北) 봉쇄선에서 일본이 GOP(General Outpost·일반전초)라면 한국은 GP에 해당한다. 반대로 중국의 입장에서도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으로부터 스스로의 심장부를 방어할 수 있는 방패이자 미국과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스프링보드다. 한반도 서안(西岸)에서 중국의 정치·경제·군사력의 심장부인 발해만·베이징·상하이·칭다오 등은 모두 공격 사정거리 내에 있다. 반대로 만약 중국의 군사력이 한반도 동남부 연안과 제주도에 배치된다면 일본과 주변 해역 전 영역이 중국의 군사력 위협 아래 놓이게 된다.
한반도 북부 지역이 극동 지역 보호를 위한 만족스러운 완충(緩衝)지대가 되었던 냉전 시대의 소련과 달리, 중국 입장에서 현재 남한과 북한의 분단선은 중국의 심장부가 노출된 불완전한 절충점이다. 분단된 한반도 남쪽의 서쪽 해안선 전체가 중국 본토 공격의 발사대(launching pad)가 될 수 있다. 미군 해외 기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기지가 평택항에 들어선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남북 분단에 만족했던 냉전 시기 소련과 달리, 중국이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친중국 영향권으로 포획하는 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 대한 중국의 군사 전략적·경제적 관심도 이러한 상황을 방증한다. 우선 중국은 서해를 자신들의 내해(內海)로 만들고자 한다. 중국 해군이 한국 해군에 동경(東經) 124도를 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중국은 동해 또한 노리고 있다. 제3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루트인 북극항로 활용을 위해선 동해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을 확보한다면 러시아의 묵인하에 미국을 상대로 중국 전략핵잠수함을 오호츠크해와 북극해에서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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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공자학원에서는 중공군의 6·25 참전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
오늘날 한국에 가해지는 중국·북한의 군사적, 경제적, 역사·문화적 압박과 회유, 그리고 스파이 활동과 영향력 공작들은 모두 이러한 한국 흔들기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중국의 한국 내 부동산 투자, 중국의 한일 간의 역사 갈등 증폭, 중국·러시아의 독도 상공과 동해 방공식별구역(KADIZ) 침입, 한국 내 비밀경찰서 운용, 그리고 공자학원을 통한 영향력 공작 등은 한국을 친중 국가로 길들이기 위해 조율된 작전의 개별 사례들이다.
북한의 핵 도발과 최근 적발된 민노총 침투 간첩들, 그리고 그들에게 하달된 북한의 윤석열 정권 퇴진 선동 등도 이 같은 한국 흔들기의 전략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북한 간에 어떤 전략적 조율이나 교감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러한 것들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중국·북한의 한국 흔들기는 결국 양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중국·북한이 과거 한국전쟁이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직접적인 군사적 침공이 아니라 ‘한국 흔들기’라는 간접접근전략을 채택한 것은 군사적 결전이 초래할 비용부담 때문이다.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한미동맹의 힘을 고려할 때 직접적인 군사적 결전은 중국·북한에 막대한 희생과 비용부담을 강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북한은 직접적인 군사결전보다 대중여론을 뒤흔들어 선거를 통해 친미적인 정부를 전복하고 친중·친북적 정부를 세우는 것을 비용 대비 더 효과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AI 시대의 선전선동과 심리전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 사이버를 포함한 정보통신의 급격한 혁신, 정보량의 폭발적인 증대, 그리고 초(超)연결·초개인 사회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선전선동과 정보·심리전의 파괴적 효과는 극대화되었다. 이에 따라 선전선동과 정보·심리전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주요한 한 전쟁 양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오늘날의 전쟁에서는 누구의 군대가 이기는가보다 누구의 이야기가 이기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늘날의 선전선동과 정보·심리전의 파괴력은 과거의 그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과거의 선전선동은 신뢰하기 어려웠고, 그 효과 측정도 불가능했다. 오늘날은 AI, 빅데이터, 딥러닝, 여론조사, 인지심리, 신경과학, 행동과학의 발전 등으로 마치 첨단유도미사일을 통한 정밀타격(pinpoint strike)과 같이 선전선동을 위한 정확한 대상청중 식별과 메시지 전달, 그리고 공격 후 영향력 검증에서 피드백까지 정교하게 행할 수 있다.
미국·나토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인지전(cognitive warfare)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땅, 바다, 하늘, 우주,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 이어 ‘인간 도메인(Human Domain)’을 새로운 전쟁의 공간 또는 안보위협의 공간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인지전은 한마디로 인간 도메인을 장악하기 위한 공격·방어이다. 이는 미국 국방부 특별작전지휘본부의 지원으로 발간된 2015년 인간 도메인에 대한 작전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인간 도메인은 일반 대중의 관점, 의사결정, 그리고 행동으로 구성된다. 오늘날 미군은 인간 도메인을 점령하여야만 전쟁의 궁극적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지전에 대한 미군의 최근 인식은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발전되어온 러시아와 중국의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에 대한 대응이다. 러시아는 정보·심리전, 중국은 초한전(超限戰·unrestricted warfare) 개념으로 이를 발전시켜왔고 에스토니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대만,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유럽 등 주변 국가들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을 상대로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을 오랫동안 수행해왔다.
특히 러시아는 2014년 러시아 연방 군사독트린과 게라시모프 제안들에 따라 정보·심리전을 발전시키면서 소비에트 시기부터 존재했던 과거의 특수 프로파간다, 재귀통제, 그리고 적극조치 등의 전통적 심리전·선전·선동·프로파간다 기제들을 인지심리·설득심리의 최신 지식들과 결합시키며 오늘날의 정보통신 환경에 접목시켰다.
특수 프로파간다는 과거 소련 시절 공산당과 정보기관의 이데올로기 공작을 의미한다. 주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전파·확산을 위한 정치교육, 선전·선동·프로파간다와 관련된다. 재귀통제는 오정보(誤情報)와 역정보(逆情報), 그리고 위장 등을 사용해 특정 개인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 공격 대상을 통제하려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적극조치는 적의 정부와 대중, 그리고 다양한 대중 사이를 분열시켜, 혼란과 공포를 조장하고 적의 정부, 가치와 제도, 질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려 적의 정책 수행을 마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련 시기의 정보작전들을 뜻한다.
역사·문화의 武器化
중국의 초한전과 북한의 영향력 공작도 기본적으로 이 같은 소련·러시아의 정보·심리전 전통과 궤를 같이한다. 중국과 북한은 문화·역사·경제를 무기화(武器化)한다. 자국 대중에 대한 애국심과 지지를 결집시키고, 적측 대중의 가치나 사기를 떨어뜨리며, 불신과 분열을 조장한다. 또한 적국의 정부와 대중을 분열시키고 정부를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킨다. 이를 위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을 통해 정보를 유포, 확산시켜 심리적 영향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필요하다면 법규범을 위반하면서까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다.
인간 도메인을 장악하기 위한 인지전투의 핵심적인 수단은 ‘무기화된 내러티브(weaponized narrative)’다. 인간의 감정상태, 신앙체계, 행동패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주변에 대한 인식과 대응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내러티브가 극단주의, 갈등, 권력투쟁, 전쟁 또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면 정치권력을 장악하거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중요한 전투의 영역이자 수단이 된다.
내러티브는 지지층을 동원시키고, 지지층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지지층의 일체감을 지속시킨다. 또 이탈자를 통제하고, 전략을 구성하며, 신념을 확산시킨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의식, 굴욕, 그리고 저항에 관한 내러티브의 서사를 이용하여 청중으로 하여금 과거와 유사한 상황으로 데자뷔 된 현재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개인적 좌절과 공공의 소명을 연계시키고, 자신이 더 넓은 정치·사회 운동의 한 부분이라는 권능감을 부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내러티브 형식으로 정보를 전달받으면 가치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인 정보를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효과적인 내러티브는 반드시 사실에 입각할 필요가 없다. 결국 내러티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청중의 경험에 근거해 심금을 울리는 것’이지 사실 여부가 아니다.
통일전선
내러티브의 전략적 기획과 운용에는 ‘최적분할’이 고려된다. 내러티브는 다양한 이질적인 정치·사회 세력과 대중을 핵심 적에 대항하도록 공고히 결박시키는 접착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고 운용된다. 미셸 푸코는 이 최적분할을 ‘분산 프로파간다(distributed propaganda)’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다. 푸코는 ‘분산 프로파간다’를 자본주의 적들을 고립, 포위, 섬멸하기 위해서 어떻게 다양한 이질적인 세력을 하나의 통일된 힘으로 결집시킬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중국과 북한에서 사용되는 ‘통일전선’도 이 푸코의 ‘분산 프로파간다’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세력과 그들의 이야기들, 신념들을 하나로 결박하기 위해,핵심 적대 세력에 관한 차별, 소외와 배제, 죽음, 그리고 피해의 기억들이 활용된다. 부정적 경험과 기억들은 공감과 연대를 통해 다양한 세력과 그들의 내러티브들을 견고히 결박한다. 이 과정에서 온·오프라인 ‘광장’에서 함께하는 경험을 거치면서 이들은 하나의 연대된 실체(實體)가 된다. 적은 교활하고, 음모론적이고, 우둔하며, 폭압적이고, 사악한 세력으로 채색된다.
내러티브로 결박된 다양한 이질적인 네트워크 참여자들을 지휘·통제·조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제가 사용된다. 하나는 전통적인 군대식 지휘명령체계로 상층 전략지휘부의 결심이 전투 현장의 지휘관과 전투원들에게 전달되고 이것이 실제 내러티브 공격으로 구현된다. 적대국 군과 정보·공작기관, 그리고 적국의 지원·지시를 받거나 협조관계에 있는 언론사, 온라인 미디어, 또는 정치·사회·노동 단체 등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좌표 찍기
다른 하나는 ‘양떼몰이(shepher-ding)’로 양치기가 양떼몰이를 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우선, 주요 인사, 오피니언 리더, 셀럽 선동가, 또는 선동매체가 선동 메시지를 사용해 다수의 불특정 대중을 각성시킨다. 그러고 이들의 혐오, 분노, 증오 등이 향할 공격의 좌표를 찍어준다.
이렇게 되면, 선동된 다수의 불특정 개인은 마치 양떼 또는 좀비처럼 각성된 상태로 목표를 향해 돌격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 초개인화되고 온라인을 통해 초연결된 사회에서 다수의 이질적인 불특정 개인들을 동원하기에 적합하다.
전통적인 군대식 지휘명령체계와 ‘양떼몰이’는 내러티브 공격·방어를 위해 통합적으로 운용된다. 전통적인 군대식 지휘통제에 따라 코어(core) 조직들이나 행위자들이 거리시위나 추모제 등의 선도 공격을 감행하고 이를 기폭제로 양떼몰이로 동원된 자발적 개인이나 그룹이 여기에 올라타서 내러티브 공격이 증폭된다. 이를 ‘밴드왜건(bandwagon·편승) 효과’라고 한다.
이러한 내러티브 공격은 하나의 거대한 파도를 형성한다. 이 시위나 추모제, 온라인 댓글 공격 등과 같은 공격의 파도는 이슈별로 같은 공격 타깃을 향해 시간차를 두고 1파, 2파, 3파로 순차적·지속적으로 밀어닥친다. 소련·러시아의 종심(縱深)전투교리에 따른 제파(諸波)전술과 유사하다.
이 일련의 과정은 마치 폭탄이 작동하는 원리와도 같다. 폭탄은 전기 공급의 1단계와 뇌관 격발의 2단계, 그리고 폭발물 폭발의 3단계로 구성된다. 여기서 전기 공급의 1단계는 이슈나 의혹, 폭로 등의 최초 제기에 해당한다. 뇌관 격발의 2단계는 주요 방송사나 미디어, 유명 저널리스트, 외교관, 유력 정치인, 저명학자나 전문가, 싱크탱크 등의 전통적 권위를 가진 이슈메이커들이 제기된 이슈나 의혹 등에 권위나 정당성, 논리와 신뢰성을 부여함으로써 의혹을 증폭시키는 과정이다. 마지막 단계인 폭발은 동원된 다수가 공격·방어에 대규모로 동참하는 단계다.
대체로 이 폭발 단계는 두 개의 하위 단계로 구성된다. 1차 폭발은 앞서 언급한 대로 군대식 지휘통제에 따라 특정 조직이나 단체 등이 선도 공격을 감행하고 여기에 양떼몰이로 각성된 불특정 개인이 자발적으로(?) 올라탐으로써 2차 폭발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스웜(swarm·군단) 전술이 나타난다.
다수의 각성된 개인과 단체들, 미디어들, 댓글들이 마치 벌떼처럼 윙윙거리며 공격 좌표로 찍힌 대상이나 대상 내러티브를 타격한다. 이렇게 되면 마치 한 국가 또는 사회 전체가 거대한 위기에 처해 있고 공격 대상 정부나 그룹, 세력이 붕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심리적 착시(錯視) 효과를 청중에게 가져다준다.
과거 냉전 시기 이래 소련·러시아, 중국, 북한 등의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자유민주체제를 흔들기 위한 선전선동 및 영향력 공작은 이와 같은 체계적·조직적·전략적 기조 아래 실행되어왔다. 2014년 이래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정보·심리전, 2016~2018년 사이에 러시아가 행한 미국 대선(大選) 개입, 독일 총선 개입, 프랑스 대선 개입,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입 등도 이러한 방식 아래 수행되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인지전 공세와 선거 개입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조용한 침공 역시 이와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 한국에 대한 중국 영향력 공작과 북한 간첩 활동, 선전선동 공작, 그리고 이들과 연계된 국내 토착 친북·친중 세력들의 선전선동에서도 이와 같은 전략적 특성들이 쉽게 발견된다.
민노총 침투 간첩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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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국정원은 민노총이 반발하는 가운데 간첩 사건 수사를 위해 민노총 서울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사진=조선DB |
북한 간첩에 포획된 지도부는 다시 여타 다른 정치·사회·노동 단체, 정치 세력, 미디어, 오피니언 리더, 선동가들과 네트워크로 연계하고 그 확장된 ‘척도 없는 네트워크(scale-free network)’에서 허브(hub)의 역할을 함으로써 전체 친북 내러티브 네트워크를 지휘·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민노총 이외의 다른 정치·사회·노동·언론 분야에 포진한 다른 간첩들은 이 네트워크 결박에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간첩들이 앞서 설명한 내러티브 공격 파도의 구현 과정에서 중요한 국면마다 전체 저항 네트워크 전선을 움직이는 키맨(keyman)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촛불·광우병 선동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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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세력들을 하나로 결박하기 위해 죽음과 피해의 기억들이 활용된다. 사진은 2022년 12월 13일 열린 핼러윈참사 유가족들의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 사진=조선DB |
여기서 사용된 핵심 내러티브는 반미(反美)·반일(反日)·자주·민족·통일·평화다. 반미와 반일, 자주는 신식민지 담론을 통해 미국의 동맹체제로부터 한국을 이탈시키겠다는 의미이며, 민족통일은 중국·북한 진영으로의 편입을, 그리고 평화는 한국의 군사적 무장해제와 미 군사력의 한반도로부터의 철수를 의미한다.
푸코의 ‘분산 프로파간다’는 위에 제시된 일련의 사건들에서 이해관계가 다양한 여러 정치·사회 시민 세력들을 반정부·반우파·반미 전선에 동참시키고 결박하며 한국의 보수우파 세력과 정부를 포위 섬멸하는 전략적 프레임워크로 사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반일 또는 반미 감정의 자극은 과거 일제 강압통치 시절을 소환시켜 현재의 상황에 데자뷔 시킴으로써 대중동원을 위한 선동 기제로 활용되었다. 종종 추모와 제사 의식, 죽음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되새김질함으로써 대중의 감정과 정서를 자극하여 내러티브 공격 파도에 추동력(推動力)을 제공했다.
이와 같은 정교한 내러티브 공격의 핵심 키맨들에 국내 토착 친중·친북 세력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배후에는 중국과 북한의 공작기관들의 은밀한 지원과 지휘통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민노총 관련 북한 간첩단 사건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핼러윈참사 직후 제2의 촛불대항쟁’ ‘윤석열 대통령 퇴진’ ‘반일괴담 유포’ ‘국내 선거 개입’ 등을 지시한 북한 지령문은 이 거대한 실체의 단면들이다.
인지전 개념에 따른 대응 필요
결국 이러한 중국과 북한의 선전선동 공작에 대한 대응은 인지전의 개념에 따라 전략적·체계적·포괄적·통합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정보·심리전과 영향력 공작에 수년간 곤욕을 치른 미국과 유럽은 인지전과 인간 도메인의 전장 공간으로의 편입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이에 대한 정부·군·민간의 대응 역량을 강화시켜왔다. 특히 미국의 경우 러시아와 중국의 미국 국내 선거개입 공작을 경험하면서 국가 핵심기반 시설에 자유민주주의 선거제도 자체를 포함시켜 보호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2014년 군사독트린에 이미 우주 기반 위성에 인지무기를 배치하고 정보조작 공격 능력을 구축하겠다고 담았다. 최근 각광받는 챗GPT 등 AI 기술, 신경과학과 다른 정보통신과학기술, 우주위성기술, 새로운 물리법칙에 기반을 둔 무기체계들의 빠른 발전은 전자전, 사이버전, 정보전, 심리전, 인지전 등의 융합을 촉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향후 선전선동과 영향력 공작의 치명성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이에 대한 심각한 위기인식을 가지고 인지전 수행 역량을 전략적,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네트워크 방패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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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북한의 영향력 공작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정부·군·민간이 함께 네트워크 방패를 구축해야 한다. 사진=공자학원추방국민운동본부 |
이와 함께 정부·군·민간이 파트너십을 가지고 함께 참여하여 핵심 대응 내러티브를 가동시킬 수 있는 넓게 펼쳐진 네트워크 방패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같은 네트워크 방패는 참여 당사자들의 수평적 네트워크적인 상호 연대와 협력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를 ‘다중이해 당사자주의(multistakeholderism)’라 표현한다.
정부의 최고 정책결정 지휘부나 정치·사회 엘리트가 톱 다운(Top down)으로 주도하고 위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전통적인 방식은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의 상층 전략지휘부와 정치·사회 엘리트는 전체 대응 내러티브 네트워크의 허브로 전략적 가이드와 지원을 제공하고, 다양한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자기 주도와 자발성이 강조되는 방식으로 서로 연대하고 함께하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가동되어야 한다.
전쟁은 의지와 의지의 충돌이고 적의 의지를 부러뜨리고 나의 의지를 적에게 관철시켜야만 승리가 확정된다. 오늘날 선전선동 또는 영향력 공작으로도 불리는 무기화된 내러티브는 이 의지의 투사와 관철의 핵심전장이자 기제이다. 제2차 중국·북한의 남침(南侵)은 열전(熱戰)이 아니라 은밀하고 조용한 내러티브 전쟁의 형태로 올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전투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