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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제언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성공하려면…

시장원리 무시한 노동개혁은 실패한다

글 :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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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개혁의 성공조건은 ▲지도자의 리더십 ▲노동·공공·복지·시장 병행 ▲친시장적 노동 정책
⊙ “노조는 노동력의 독점단체… 기업에 대한 반독점 정책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간섭하지 않을 수 없다”(에르하르트 전 독일 총리)
⊙ 아일랜드, 앙숙이던 兩大 정당이 대타협하면서 노동·경제개혁… 후진농업국에서 세계 2위의 富國으로
⊙ 독일, 親노동자 정당인 사회민주당이 ‘하르츠 개혁’ 주도해 독일병 극복
⊙ 스웨덴, ‘고부담·고복지’ 복지국가이지만 기업에 대한 규제 없어

崔洸
1947년생 /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학 공공정책학 석사·메릴랜드대학 경제학 박사 / 미국 와이오밍대학 교수,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조세학회 회장, 한국조세연구원장, 한국공공경제학회장,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예산처 처장,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성균관대 석좌교수 역임 / 저서 《한국재정 40년사》 《한국조세정책 50년》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정부》 등
2023년 2월 28일 서울 경복궁역 일대에서 민노총 건설노조원들이 정부의 ‘건폭(건설현장폭력)’ 단속에 항의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조선DB
  우리의 노사(勞使) 관계를 보고 있으면, 참으로 답답하다. 걸핏하면 머리띠를 두르고 생산 현장을 마비시키는 관행 아닌 관행이 계속되고, 그 결과 그리고 다른 요인과 결합하여 우리 경제는 수렁에 빠져들고, 사회는 분열되어가고 있다. 지난 1980년대 중반 이후 40여 년간 계속된 대립과 갈등의 노사 관계는 3번에 걸친 친(親)노동적인 정부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안정되기는커녕 현안들이 누적되어왔다. 노조가 범법·탈법에 이어 심지어 북한과 내통하는 이적(利敵)행위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가 함몰될 지경인데도 노사 당사자는 물론 정책당국도 뚜렷한 원칙과 설득력 있는 방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노동개혁은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되어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난 30여 년간 계속된 우리나라의 해묵은 숙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핵심 국정과제로 등장은 했지만,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실패로 끝났다. 노동계 눈치에 제대로 추진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추진했더라도 사회적 대화 실패로 상처만 남긴 채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는 ‘노동후진국’으로 전락했고, 그 결과 우리 경제는 멍이 들고, 사회는 분열되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개혁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어, 교육·노동·연금의 3대 개혁 중 노동개혁을 가장 활발히 강조하고 있다.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 때문에 활력을 잃고 있는 기업은 물론, 저성장 양극화로 고통받는 노동자들도 노동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습이다. 노동개혁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라는 기득권을 가진 노동조합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개혁이 성공하려면, 개혁주체, 개혁의 목적과 수단, 개혁방향, 개혁 대상과 과제 선정, 추진 과정 등에서 정합성·통합성이 확보되고, 정치지도자의 강한 리더십이 담보되어야만 한다.
 
 
  대화합적 노동개혁 필요
 
  우리 국민 모두가 느끼는 답답한 현실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노동개혁을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취지에서 본 글을 쓴다. 글의 제목은 ‘대화합적·철학적·시장친화적 노동개혁을 하자’이다. 대화합적 노동개혁을 하고, 철학적 노동개혁을 하고, 시장친화적 노동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대화합적 노동개혁이란 무엇이고, 왜 대화합적 노동개혁이어야 하는가? 정치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노동개혁을 추진해야만 노동개혁이 성공하고, 이념을 떠나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합심해야 노동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
 
  세계의 역사를 봤을 때 위대한 지도자가 훌륭한 참모들의 도움을 받아 불세출의 경세(經世)를 하였고, 세계 각국의 성공한 노동개혁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결단의 지도자와 정치권의 대화합과 노사 간 대타협이 있었다.
 

  철학적 노동개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노사갈등의 당사자인 노동자와 사용자는 물론 노사 간 갈등을 조정·관리하는 정책 당국자 어느 누구도 노동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고민하며 정책을 수립하고 있지 않다.
 
  노동소득은 일을 해서 번 소득(earned income)이다. 흔히들 자본소득을 불로소득(不勞所得·unearned income)이라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 잘못된 용어 사용이다. 이자나 배당 등 자본소득은 불로소득이 아니고, 근로로 번 것이 아닌(unearned) 소득, 즉 비(非)근로소득이다. 노동의 목적이 소득을 얻는 것이기에, 노동의 결과로 소득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노동을 통해 생계 수단으로 많은 소득을 얻고자 한다.
 
  생계 수단 획득으로서의 노동의 의미와 더불어 전혀 다른 차원인 자아(自我)실현 수단으로서의 노동의 의미도 있다. 위대한 창조자들과 회사 내 모범 사원이 밤낮으로 미친 듯 일하는 것은 단순히 소득 획득에 있지 않고, 자기완성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모든 노동자는 직장에 나가 일을 통해 자기완성, 자아실현을 할 때 희열을 느낀다. 노동에 대한 이 철학적 고찰이 노동 정책과 노동개혁에 녹아나야만 한다.
 
 
  노동개혁은 시장친화적이어야 한다
 
  노동자 자신들을 포함하여 많은 분이 노동개혁은 사회적 개혁이라 주장하지만, 사회적 측면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노동개혁은 경제적 개혁이고, 경제적 개혁이어야 한다. 자본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서비스도 시장에서 거래되고, 노동 역시 시장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과 자본이 결합하여 한강의 기적도 일구었고, 오늘날 인류 모두가 이전에 비해 엄청난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한 기저에는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경제적 측면만 고려하여 노동개혁을 해서는 안 된다고들 주장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경제적 측면, 즉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하면, 노동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노동시장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시장을 떠나 정치로 노동개혁을 해왔다. 그래서 노동개혁의 의제(agenda) 설정이 처음부터 잘못되었고, 그 결과 노동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가격(임금)과 수량(노동시간)은 시장에서 결정된다. 노동시장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상생(相生)하는 장(場)이다. 시장과 싸우지 마라.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경제 원리와 시장 원리를 지키며 시장에 순응해야만 한다. 시장균형 임금보다 높게 최저임금을 책정하는 경우, 실업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선호를 무시하고, 노동시간을 정부가 책정하는 경우, 노동자·사용자 모두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정부는 시장이 잘 작동하는 공정한 경기규칙을 만들고, 경기규칙을 엄격히 집행만 하면 된다. 노동개혁은 반드시 시장친화적이어야 한다.
 
 
  노조는 독점적 노동공급자
 
  노동자와 노동조합이란 단어는 산업사회의 출현과 함께한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출현에는 많은 시차가 있었다. 산업혁명이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므로 노동자는 그 시점에 출현하지만, 노동조합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세기 중반에서야 출현한다. 지난 1854년 역사상 최초의 지속적 노동조합인 기술자연합회(Amalgamated Society of Engineers)가 영국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에서는 많은 수의 노동조합이 19세기 후반에 결성되었으나, 조합의 회원 수가 급속히 양적으로 증가한 것은 노동조합에 유리한 산업화된 조건을 이룩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난 후인 1937년에서 1945년 사이였다.
 
  노동조합의 활동에 정부가 왜 개입해야 하는가? 경제학자로서 동료 경제학자나 노동 전문가들이 이러한 질문 자체를 던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노동조합이 독점적 노동공급자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이 이익집단(interest group)의 대표적 사례라는 점이다.
 
  노동조합이 노동의 독점적 공급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흥미롭게도 ‘라인강의 기적’을 창출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전 독일 총리가 분명히 지적한 바 있다. 에르하르트는 “노조는 노동력의 독점단체이고, 이것이 지나치게 강대해져 독점권을 행사하게 되면, 기업에 대한 반독점 정책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간섭하지 않을 수 없다”라 하며 노조의 성격과 정부 개입의 이유를 간결하게 그리고 명료하게 밝혔다.
 
  제품시장의 독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그 폐해를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의 개입을 매우 강하게 주장하는 데 반해, 생산요소시장에서의 노동을 두고는, 노조가 공급을 독점하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에 대칭되는 노동, 자본가에 대칭되는 노동가로 인식하여 늘 약자(弱者)로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노조는 이익집단이다

 
  노동조합은 각종 경제 단체, 전문 직능 단체, 소비자 단체, 농민 단체, 직종별 협회, 카르텔, 학연·지연과 연관된 각종 단체 등등 수많은 이익집단 중의 하나이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수의 이익집단이 발흥하고 있다. 이들 이익집단이 정치의 민주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경제의 효율적 운용을 저해하고, 우리 경제의 지속적 발전과 국가경쟁력의 확보 및 유지에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인식되고 있지 못하다.
 
  이익집단이 구성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이익집단은 가격통제, 생산제한, 지역제한, 획일적인 시장 형태의 유도, 신규 진입의 제한 등 각종의 경쟁 제한적 행위를 통하여 기술혁신과 자본축적을 저해하는 등 전체적으로 보아 사회의 경직성을 유발하여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노동조합이 가장 활발한 이익집단의 하나이기에 조합원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경제의 지속적 발전과 국가경쟁력의 확보 및 유지에 크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노동조합의 존재를 부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노동조합의 정확한 실체를 정확히 인식해 어떠한 폐해를 초래하는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노사갈등과 그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지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노동의 본질에 대한 이해나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직업으로서의 노동에는 첫째, 생계 수단으로서의 노동, 둘째 자아실현 수단으로서의 노동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모든 근로자는 노동을 통해 첫째, 보다 높은 소득을 얻으려 하고 둘째, 보다 높은 차원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노동의 이 두 가지 측면이나 의미의 본질이 현실의 노사 관계 정립에서 강조되기는커녕 인식조차 되고 있지 못하다.
 
 
  파업으로 더 많은 소득 얻을 수 있다?
 
  먼저, 생계 수단으로서의 노동을 살펴보자. 모든 노동자가 생계 유지를 위해 보다 많은 소득을 얻기를 바란다.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협상을 더 잘하고, 파업이라는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는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그러면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노동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소득은 남에게 무언가를 베푼 것에 대한 보상 또는 생산 활동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소득을 많이 벌려는 사람은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장 잘 충족시켜주는 사람 또는 생산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이 이 나라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을 높이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조합원들이 더 많은 생산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기업이 사업을 확대해 더 크게 번창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 자아실현 수단으로서의 노동을 살펴보자. 우리는 서양의 선진국 노동자들이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에 더 빠져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기독교 사상에 젖은 서구에서 노동이나 직업은 신(神)으로부터 주어진 소명(召命)으로 인식되어왔다. 노동이 종교적 구원을 성취하는 길이기에 노동을 두고, 사람들은 엄격하고 자기희생적일 수밖에 없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세계 유일의 국가인 이웃 일본의 경우도 노동에 대한 인식은 정말로 남다르다. 일본인들의 장인(匠人)정신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가장 오래된 회사는 6세기 말에 설립되었다. 역사의식이 있는 선각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가르치고, 그 가르침을 정성껏 이어받은 후손들이 합작하여 일구어진 역사가 오늘의 일본이다.
 
  노동과 관련하여서는 이시다 바이간(石田海岩·1685~1744년)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바이간의 사상은 돈보다 귀중한 것이 자기완성이고, 노동은 곧 정신수양으로 자기완성에 도달하는 첩경이라고 설파했다. 일 자체가 수양이고 일하는 것이 도(道)를 닦는 것이니, 이익이 없더라도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노동관이든, 바이간의 노동관이든 모두 노동은 천직(天職)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근면에 의해 소득을 버는 것이 당연하다. 최근까지만 하여도 우리나라의 근로자들은 가장 열심히 그리고 많은 시간을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근면성으로 세계의 칭송을 받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보다 많은 소득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려 하지, 자기완성의 근로의식은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면 지나친 주장일까?
 
  노사 관계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노(勞)든 사(使)든 정책당국이든 모두 생계 수단으로서의 노동의 의미와 자아실현 수단으로서의 노동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의 근로의식 노동철학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는 한, 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철학의 기초부터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영국병을 고친 대처
 
영국병을 고친 대처 전 영국 총리. 사진=퍼블릭 도메인
  노동개혁에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대표적 나라는 영국, 네덜란드, 독일, 아일랜드, 그리고 스웨덴이다. 흥미로운 것은 노동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이 영국병(病), 네덜란드병, 독일병, 아일랜드병, 그리고 스웨덴병 등으로 지칭되는 하나같이 노동개혁 이전에 심각한 경제병을 앓았다는 사실이다. 위의 다섯 나라 모두 노동개혁에 성공함으로써 각자의 병에서 회복해 경제가 활력을 되찾았다.
 
  영국병(British disease)은 지난 1960년대 초에 서독의 보수언론이 만든 단어로, 원래 영국 노동자의 비능률성을 가리켜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후 영국의 복지제도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영국 경제 침체기의 원인이 되었다는 의미로 영국병의 내용이 변화되었다.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려다 보니, 소득세 최고세율이 한때 90%에 이르기도 했다. 노조는 파업과 협상을 통해 임금을 높여나갔다. 그 결과 고(高)복지, 고비용, 저효율이 팽배해 우리보다 앞서 IMF 구제 금융을 두 번이나 받는 불상사를 겪었다.
 
  영국병은 대처(Margaret Tha tcher) 총리에 의해 치유되었다. 원칙주의자로서 노조의 불법파업에 강경 대응한 것으로 유명하다. 포클랜드제도의 영유권을 놓고,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1983년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개혁의 동력을 확보한 철의 여인(iron lady) 대처 총리는 탄광노조 불법파업 시 공권력 투입이라는 강경 대책으로 난공불락의 영국 노조의 기를 단호히 꺾었다.
 
  영국병을 고친 대처 총리의 국정철학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사유재산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둘째, 사회가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셋째, 기업친화적 문화가 있어야 한다.
  넷째, 경쟁 관계에 있는 다양한 국가들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의욕을 부추기는 조세제도와 최소한의 규제가 있어야 한다.
 
  대처 총리는 이들 신념을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했을 뿐이고, 국민의 눈치를 보며 국정운영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아일랜드, 兩大 정당이 舊怨 씻고 대타협
 
  유럽의 후진국 농업국가인 아일랜드는 1990년부터 2021년까지의 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경제적 기적을 이룬 나라이다.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급증한 아일랜드가 보여준 경이적인 성장을 ‘켈트의 호랑이(Celtic Tiger)’라 부른다. 2021년 아일랜드 1인당 소득은 10만2000달러로 룩셈부르크의 11만7000달러에 이어 세계 2위이다. 미국 7만5000달러(7위)와 독일 4만8000달러(18위)를 크게 앞서며 아일랜드를 800년이나 식민 지배했던 영국의 4만7000달러(21위)보다 2배 이상 높은 소득 수준이다.
 
  아일랜드의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증가의 핵심은 정치지도자들의 애국심과 노조의 적극적 협조를 바탕으로 친기업적·친시장적 구조개혁을 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를 맞아 장차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2개의 대타협이 이뤄졌다. 하나는 앙숙이었던 정치가들이 대화합을 이뤄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사정이 대타협을 이뤄낸 것이다.
 
  아일랜드에는 피어나 포일당(Fiana Fail)과 피네 게일당(Fine Gale)이라는 2개의 보수정당이 있다. 두 당은 1930년대 아일랜드가 대영제국과 독립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서로 내전(內戰)까지 벌였던 앙숙이었다. 두 당은 정권을 뺏고 빼앗기며 원수처럼 서로를 물고 뜯었다. 둘 다 보수정당이었기에 특별한 이념 차이가 없었음에도 독립운동 당시의 원한을 이어가며 계속 권력투쟁을 벌였다.
 
  1987년 당시 집권 여당은 피어나 포일당이었고, 총리는 찰스 호이(Charles James Haughey)였다. 제1야당이었던 피네 게일당의 당대표 앨런 듀크스(Alan Dukes)는 높은 실업(失業)으로 국민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면, 핵심 사안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겠다. 또한 정부의 정책이 길에서 이탈되지 않고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60년 이상 정쟁을 벌이던 상대 당의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일종의 백지(白紙) 위임장을 내미는 폭탄선언이었다.
 
 
 
아일랜드의 사회연대협약

 
  호이 정부의 구조개혁을 지켜보던 제1야당 대표 듀크스와 아일랜드 최대 노조인 전국노조연합(ICTU)이 공동으로 제안해 1987년 10월에 노사정(勞使政) 합의로 사회적 약속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를 ‘사회연대협약(Social Partnership Agreement)’이라 부른다.
 
  이러한 협약에 따라 정부, 사용자 그룹, 노조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노사정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사회연대협약은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1987년부터 3년마다 한 번씩 갱신되어 2016년에 7차 협약(7차 협약은 기간이 10년)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일랜드의 사회연대협약 내용은 ▲국가 재건 ▲경제·사회 발전 ▲경쟁력 제고 ▲일자리 창출 ▲공정성 확립 ▲성장 지속 ▲복지 개선 등 거시경제 전체를 포괄했다.
 
  1970~1980년대에 아일랜드는 노조공화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금융회사, 철도, 항만, 교원노조 모두가 투쟁으로 일관했고, 어떤 해엔 파업건수가 200여 건에 달했다. 그러나 사회연대협약 체결 후 아일랜드 노동시장은 크게 변화했다. 고용 유연성이 선진국 가운데 매우 높아졌다. 아일랜드의 노사정위원회가 체결해온 사회연대협약은 켈트의 호랑이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노사정 협의체에서 노사분규를 자제하도록 약속했기 때문에 해외 기업들에 아일랜드가 기회의 땅이 되었다.
 
 
  네덜란드, 바세나르협약
 
  2018년 11월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은 하르츠 개혁, 네덜란드는 바세나르협약을 통해 저성장과 고실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재도약과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기반을 다졌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유럽의 병자(病者)라는 비아냥을 받던 두 나라가 노동개혁을 한 후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됐다.
 
  네덜란드병은 1959년 북해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되면서 천연자원 개발로 경기 호황을 누리던 국가가 자원 수출 효과로 장기적으로는 경제가 침체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천연자원에 의존해 급성장한 국가가 산업경쟁력 제고를 등한시해, 결국 경제가 뒷걸음질하고, 국민 삶의 질도 하락했다. 그래서 ‘자원의 저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통화가치 급등과 물가상승, 급격한 임금상승 등에 따라 석유제품을 제외한 제조업의 경쟁력을 잃고, 극심한 경제적 침체를 맞게 되었다.
 
  바세나르협약은 1982년 사용자협회와 노동총연맹이 대타협하면서 맺은 협약으로 정식 명칭은 ‘고용 정책에 관한 일반권고’인데, 현대 노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협약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주요 내용은 임금인상 자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배분을 통한 고용창출, 사회 안전망 확충 등 78개 사항에 대해 협약했다. 이 협약으로 두 자릿수에 육박하던 실업률이 떨어지고, 재정이 안정되고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독일병(German disease, sick man of Europe)은 영국 언론이 독일을 비꼰 말이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기독교민주당이 집권하는 동안 ‘라인강의 기적’을 창출하였지만, 1970년부터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이 추진한 노동자의 경영참여, 노사정위원회의 설치, 평준화 교육 정책, 재분배 성격의 복지 정책 등에 의해 독일병을 앓게 되었다. 나치즘에 대한 반발이 독일 사회를 너무도 왼쪽으로 돌려놓은 결과, 번창하던 독일 경제의 엔진은 힘을 잃고, 질서는 모두 헝클어지고 말았다.
 
 
  독일, 좌파 사회민주당이 노동개혁 단행
 
‘하르츠 개혁’을 단행한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왼쪽)와 하르츠 위원장(오른쪽). 사진=조선DB
  독일 통일 후 더욱 악화되었던 독일병의 치유는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eder) 총리의 ‘하르츠 개혁(Hartz Reform)’(별칭 ‘어젠다 2010’)에서 시작되고,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의 개혁에서 마무리되었다.
 
  1990년 동독과의 통일에 따른 비용, 성장률의 정체, 높은 실업률, 노령화 사회 진입 등으로 ‘유럽의 병자’가 된 상태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끈 사회민주당이 녹색당과의 연정을 출범시키면서 1998년 ‘어젠다 2010’이란 카드를 내놨다. 기존 체제로는 더 이상 성장과 분배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정부는 15명 규모의 ‘노동시장에서의 현대적인 서비스 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폴크스바겐사의 인사담당 이사였던 페테르 하르츠(Peter Hartz)를 위원장으로 영입했다.
 
  하르츠는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사회복지제도 개혁, 경제 활성화, 교육·훈련 혁신 등을 강조하는 ‘노동시장의 현대화된 서비스-실업 감소와 연방고용청 개편을 위한 위원회의 제안’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르츠 개혁’은 고용 형태 다양화와 실업급여 개편에 초점을 맞춘바 실업자들이 실업급여나 사회부조에 의지하기보다 노동시장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대책이 중심을 이루었다. 도출된 합의안의 내용이 그대로 슈뢰더 정부의 공약으로 차용되면서 개혁의 동력이 됐다. 하르츠 개혁으로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은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독일 노동개혁의 가장 큰 특징은 우파 기민당이 아닌 좌파 사민당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슈뢰더 총리는 정통 좌파 노선에 우파 노선을 가미한 ‘신중도(Neue Mitte)’ 입장을 견지하며 시장 친화적 ‘어젠다 2010’을 강력히 추진했으나, 노동자들과 당내 지도자들의 극렬한 반대로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해 메르켈에게 정권을 내줬다. 메르켈은 독일 첫 여성 총리로 영국 대처 수상과는 다소 결이 다른 여장부였다.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의 정책을 대부분 승계하여 독일병을 종결하였다.
 
 
  복지와 성장 조화 이룬 스웨덴
 
  스웨덴병(Swedish disease)은 한마디로 복지병이었다. 1992년 9월 스웨덴의 경제는 처참히 무너졌다. 대량 해고에다 스웨덴 화폐를 지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무려 500%로 올렸던 적도 있다. 스웨덴은 과잉복지에 따른 금융위기, 재정위기로 경제가 나락에 빠졌다가, 1990년대 중반에 ‘빚진 사람에게 자유는 없다’는 기치를 바탕으로 친시장적 개혁을 추진, 기력을 회복했다.
 
  스웨덴은 복지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복지국가의 모범을 넘어 전범(典範)이라고까지 인식하고 있다. 스웨덴은 높은 세 부담을 바탕(조세부담률 50%, 국민부담률 60%)으로 매우 관대한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웨덴은 ‘고부담-고복지’ 복지국가의 전형임에도 국가의 국제경쟁력(2021년 세계 2위)도 높고, 지속적 성장을 유지하여 1인당 소득도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 빼고는 가계(家計)나 기업의 활동에 정부가 전혀 개입을 하지 않는다. 스웨덴을 포함 북구 모든 나라가 국제경쟁력 평가에서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는, 특히 기업에 대한 규제가 없고, 사유재산권을 철저히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스웨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공개적이고, 투명한 정책을 펴고 시장친화적 제도를 만들면, 복지를 추구함에도 나라가 번창하고 역동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병, 네덜란드병, 독일병, 아일랜드병, 그리고 스웨덴병 등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각 나라 노동개혁에서 중심에 둔 각종 대응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3가지이다. 첫째는 훌륭한 지도자가 노동개혁의 중심에 서서 대단한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노동개혁이 공공개혁·복지개혁·시장개혁 등과 함께 추진되었다는 것이고, 셋째는 친시장적 노동 정책이 강력히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노사 간 공정한 경기규칙 마련해야
 
  모든 국가 정책에서 첫째, 기본에 충실하지 못할 때, 둘째 원리원칙을 무시할 때, 셋째 추구하는 목적에 합당한 수단이 강구되지 않을 때, 넷째 정치력과 관리력이 미흡할 때 정책은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다. 위의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만 해당돼도 실패하기에 현실에서 경제 정책이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이들 실패 조건 모두를 피하며 신중하게 잘 처리하면 정책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노동정책·노동개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 열기에 이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소위 진보주의 좌파 사상의 전면적 등장과 반지성적 풍토의 팽배이다. 특히 좌파 정부에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질서를 무차별하게 파괴하고 좁은 땅덩어리 내에서 각종 편 가르기를 하는 과정에서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사상과 지성의 요체가 무참히 타기(唾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좌파 사회주의 사상은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며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을 설계하면 인민이 다 같이 잘사는 지상낙원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문제는 20세기 최대의 역사적 기록이 사회주의가 20세기에 발흥하고 20세기에 멸망한 것인데도, 21세기 대한민국에 그 망한 사회주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사회주의의 유일한 잔존 세력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동조하고 협력하려는 세력들이 활개를 펴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잘못으로 야기되는 각종 사고와 자연이 초래하는 천재지변의 피해는 그 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단기적이고 치유가 가능하지만 잘못된 사상과 지성으로 인한 피해는 장기적이고 많은 경우 치유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결코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위 전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오늘 우리의 시대정신은 아직도 잘 먹고 잘사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운동경기의 심판처럼 정부는 경제활동의 심판자이며 더 나아가 경기규칙의 결정자이다. 기업가를 적대시하면서 노조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상황에서는 노동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물론 사용자만 편드는 것도 안 된다. 어느 쪽을 향해서든 불공정한 규칙을 제정하고 편파적으로 심판을 보는 정부를 상정해서는 노동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 노동개혁은 노사 간에 공정한 경기규칙을 마련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우리 모두 생각을 바꿔야 한다. 틀린 생각으로는 어떤 개혁을 하든 사회적 약자가 고통을 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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