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심층취재

국가안보의 한 축 ‘기무사’의 해편과 계엄령 문건 내막

기무사 참모장, “쿠데타를 그런 식으로 합니까?”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기무사 계엄 문건’, 청와대의 최초 판단은 “문제없음”(2018년 3월)
⊙ 문재인 정권, 국방부-국회-군인권센터 삼각 共助에 세월호·계엄령 빌미로 기무사 해체
⊙ 기무사 문건, 2017년 5월 10일(문 대통령 취임식 날) 오후 2시 정식 등재
⊙ 청와대가 2급 기밀 문서 공개하자 사흘 뒤 국방부는 서둘러 초유의 군사 기밀 事後 해제
⊙ 기무사 개혁 두고 국방부(송영무)-청와대(조국)는 同床異夢, 그 피해는 기무사가 다 떠안아
⊙ 송영무 장관과 진실 공방 벌인 기무사 민병삼 대령, “피눈물 흘리며 쫓겨난 이들 명예 회복시켜야”
⊙ 조현천 전 사령관 변호인, “곧 한국으로 와 실체 밝힐 것”
⊙ 기무사가 간첩 조작 기획? ‘민주주의국민행동’에 대한 실체도 밝혀야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전신인 국군기무사령부.
  2018년 8월 30일 군 보안·방첩 업무를 맡았던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해체됐다. 기무사의 전신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1977년 9월 1일 육군 특무부대(1950년 창설)·해군방첩부대(1953년)·공군 특수수사대(1954년)가 통합돼 창설됐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당시 보안사는 정보력을 바탕으로 정국(政局)을 꿰뚫고 있었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계엄령이 선포되자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합수부장)을 맡아 상황을 주도했고 보안사는 신군부(新軍部)의 지휘통제소 역할을 하며 5공(共) 시대를 열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11월 4일에는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폭로(윤석양 이병 사건)가 나왔다. 파장이 일자 보안사는 1991년 9월 1일 기무사로 개칭했다. 부대명은 바뀌었지만 기무사는 부대 역사가 1950년에 시작됐으며 부대 이념은 ‘자유대한민국 수호 및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 지원’이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기무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댓글 사건·세월호 유가족 사찰·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해체돼야 했다. 2018년 8월 3일 당시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현재의 기무사를 해편(解編·해체 후 새로 편성)하여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기무사는 이후 2018년 9월 1일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보지원사)로 창설됐고 초대 사령관에 남영신 특전사령관이 임명됐다.
 
 
  기무사를 해체로 몰고 간 ‘계엄 문건’
 
  기무사를 해체로 몰고 간 결정적 사건은 이른바 ‘계엄(령) 문건’ 폭로였다. 문건을 폭로한 측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탱크·특전사 병력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을 무력 진압하고 방송과 국회를 장악하는 작전 실행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당시 군(軍) 수뇌부와 기무사 출신 인사들은 해당 문건에 대해 “비상 상황에 대비해 검토한 문건”이라며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좌파 진영은 “탄핵 기각에 대비해 작성한 실제 작전 실행 계획”이라며 ‘내란 음모’ ‘친위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서로 동떨어진 해석이 붙은 이 문건을 두고 청와대의 최초 판단(2018년 3월 중순경)은 ‘문제없음’이었다. 그러나 3개월 뒤인 7월 6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소장 임태훈)가 이 문건을 입수해 ‘촛불 진압 쿠데타 음모’라고 포장하자 청와대는 입장을 바꿨다. 2018년 7월을 기점으로 기무사는 해체라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게 됐다.
 

  계엄 문건이 작성된 경위는 이렇다.
 
  2017년 2월 17일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은 조현천 기무사령관에게 계엄령과 관련한 내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계엄 실행 작전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라 계엄령이 발동된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등을 담은 검토 보고서였다.
 
  2월 18일 조현천 기무사령관은 기우진 기무사 5처장(당시 수사단장, 육군 준장)을 책임자로 지정해 계엄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 이를 위해 사령부에 ‘미래 방첩 업무 발전 방안 TF’(인원 11명)를 만들었다.
 
  3월 2일 기우진 수사단장은 조 사령관에게 중간보고(2월 23일)에 이어 최종안을 보고했다.
 
  3월 3일 조 사령관은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을 한 장관에게 보고했다. 한 장관은 조 사령관에게 “문건을 작성하느라 고생했다, 사안을 종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기우진 처장은 조 사령관에게 ‘(공을 들여 만들었으니) 추후 을지훈련에 참고하도록 존안(보존, 비밀 등록)하자’고 건의했고 조 사령관도 이에 동의했다.
 
  한 장관이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에 ‘사인(결재)’을 했다면 이 문건은 ‘계엄 실행 계획’이 된다. 하지만 한 장관은 보고만 받았을 뿐 추가 조치는 하지 않았다. 이는 계엄 문건이 단순 검토 보고서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기무사, 文 대통령 취임식 날
  ‘계엄 문건’ 정식 등재

 
2018년 1월 25일 서울현충원에서 이석구 기무사령관과 장군단(5명)이 ‘엄정한 정치적 중립 준수 다짐’ 선포식을 가졌다. 사령관을 포함해 장군단은 투명 한 그릇에 담긴 물에 손을 씻고 하얀 장갑을 끼는 ‘세심(洗心) 의식’을 진행하며 환골탈태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대다수 기무사 간부들은 이 행사에 부정적이었다. 기무사가 자기 부정을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진=조선DB
  이후 3월 10일 헌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인용됐다. 두 달 뒤 치러진 대선에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가 당선(5월 9일)됐다.
 
  문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날(2017년 5월 10일) 오후 2시 기무사는 훗날 ‘내란 음모’라는 주홍글씨가 붙을 이 문건을 파기(삭제)하지 않고 온나라 시스템(정부가 관리하는 업무 처리 전산화 체계)에 훈련 비밀(2급)로 정식 등재했다. 계엄 문건이 2급 비밀로 지정된 이유는 계엄 문건 작성 시 참고하는 자료가 2급 비밀이기 때문이다.
 
  같은 해 8월 29일 조현천 기무사령관의 후임으로 이석구 장군이 취임했다. 조 전 사령관은 그해 12월 미국으로 갔다. 도미(渡美)한 이유는 가족·친지 대부분이 그곳에 살기 때문이다. 부모님 묘도 미국 현지에 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와 기무사는 아무런 갈등 없이 2017년을 넘겼다.
 
  하지만 2018년 3월 8일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국회에서 박 대통령 소추안이 가결(2016년 12월 9일)되자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이 ‘소요 사태 발생 시 무력 진압’을 논의했다”고 주장하며 ‘위수령’을 처음 언급했다.
 
  군인권센터의 위수령 발언 당일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한 소강원 참모장과 기우진 처장이 계엄 문건의 존재를 이석구 사령관에게 즉시 알렸다.
 
  3월 16일 이석구 사령관은 계엄 문건(2급 비밀) 2부를 방첩처에서 제출받아 송영무 국방장관과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후 국방부는 약 4개월간 문건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도 이석구 사령관이 보고한 문건을 자체 검토했고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는 사라졌고 조국 수석이 대통령을 대신해 기무사로부터 군과 방산(防産) 분야 동향을 보고받았다.
 
 
  송영무의 기무사 개혁안, 청와대가 반대
 
  송영무 장관은 평소 기무사에 부정적이었다. 기무사가 동향 보고(파악)라는 명목으로 군인들을 감시하는 게 월권이며, 이로 인해 일선 부대 장병들이 위축된다고 생각했다. 이에 기무사의 역할과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고 여겼다. 송 장관은 장관 청문회 당시 논란이 된 음주운전 전력과 방산업체 고액 자문료 등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기무사발(發)로 의심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송 장관은 2018년 4월경 기무사와는 협의도 없이 국방부 차원에서 ‘기무사 개혁안’을 자체 작성해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
 
  전언에 따르면 송 장관 측이 만든 기무사 개혁안에는 ▲군 동향 보고 폐지 ▲병력 감축(4200명→2000명 선) ▲장성 감축[9명에서 2명(사령관·참모장)] ▲독립사령부 폐지 후 국방부 산하 본부 형태로 전환 등이 담겼다.
 
  이에 대해 민정수석실은 ‘기무사의 기능과 역할을 급격하게 축소하는 것은 안 된다’고 판단해 송 장관이 건의한 개혁안을 반려했다.
 
  대신 청와대는 국방부가 ‘기무사 개혁위원회(TF)’를 설치해 외형상 기무사 개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했다. 국방부는 5월 25일 14인이 참여하는 ‘기무사 개혁위원회(위원장 장영달 전 의원) TF’를 구성했다. 민간에선 신경철 전 국방부 군구조개혁추진관,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변호사), 한국국방연구원 안석기 연구위원, 황명수 전 101기무부대장, 군에서는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 이종해 102기무부대장, 박원호 육군훈련소장(당시 육군 인사사령부 인사운영처장), 박동선 해군 정보화기획참모부장, 강규식 전 공군 군수참모부장(당시 공군 정보화기획참모부장) 등이 참여했다(민군 각각 7인, 7월 8일 소강원 참모장 해촉 후 13인).
 
  한 TF 위원은 “국방부에서 주관하다 보니 기무사의 역할 축소, 특히 현역 군인에 대한 동향 파악을 줄이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했다. 송 장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원들은 “동향 파악은 인사 분야에서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기무사 측 TF 인사는 “인사에서도 하고 기무에서도 하자. 교차 검증하면 더 좋지 않으냐”고 했다.
 
 
  최강욱 의원, 기무사 기능 축소에 가장 적극적
 
  민간에서는 최강욱 의원이, 군에서는 박원호 육군훈련소장이 기무사의 기능 축소에 가장 적극적이었다.박원호 육군훈련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으나 육군훈련소 측은 “안보지원사에 물어보라”고만 답했다.
 
  송 장관의 권유로 TF에 참여한 D씨는 “당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는 최강욱 의원을 TF 위원장으로 임명하려고 했으나 장영달 전 의원이 위원장을 맡게 됐다”며 “최 의원은 기무사의 방산 분야 수사권 폐지까지 주장하며 기무사를 크게 한 번 작살 내려고 한 것 같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기무사 TF 위원을 지낸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TF에서는 기무사의 군 동향 보고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TF 활동 초기에는 기무사의 동향 파악을 폐지하려고 했지만 일선 대대장과 대령급 이상부터는 동향 파악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TF에 참여한 한 인사는 “장영달 위원장과 공군에서 온 강규식 장군이 가장 객관적이었다”며 일화를 들려줬다.
 
  “6월에 TF 회의를 마치고 국방컨벤션(용산구)에서 만찬이 열렸어요. 송영무 장관이 와서는 ‘TF 위원들 고생이 많다’며 ‘장 위원장님 한 말씀 하시라’고 했죠. 장 위원장이 덕담 차원에서 ‘내가 TF에 오기 전에는 과거 기무사, 국정원에 대한 안 좋은 감정 때문에 기무사 인원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평화 통일 정책을 추진하려면 기무사의 역기능은 없애고 순기능은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송영무 장관의 표정이 확 바뀌면서 ‘아니 장 위원장님, 소강원 참모장한테 회유돼버린 거 아니냐’고 한 거예요. 그러자 장 위원장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했죠.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안 좋게 끝났어요.”
 
  장영달 전 의원은 전북 남원, 소강원 참모장은 전북 정읍이 고향이다. 기무사의 마지막 참모장인 소강원 장군은 국방부가 주도하는 기무사 개혁안에 비판적이었다. 이에 송 장관은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TF가 운영되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
 
  기무사 내 비주류이자 비육사, 호남 출신인 소 참모장(3사 21기)이 앞장서 송 장관이 추진하는 기무사 개혁안에 대해 개악(改惡)이라고 지적했다.
 
  송영무 장관의 권유로 TF에 참여한 D씨는 “소강원 참모장은 정보맨답지 않게 기무사에 다소 불리한 내용까지 수용해가며 합리적인 자세로 수용할 것은 수용하며 TF에 참여했다”고 했다.
 
 
  기무사의 운명이 결정된 2018년 7월
 
왼쪽부터 이재수, 조현천,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사진=조선DB
  그러던 중 2018년 7월 2일 국방부는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 재조사 TF(댓글 조사 TF, TF장 이수동 공군 대령, 2017년 9월 출범)’, 일명 댓글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알리며 세월호와 관련된 내용도 파악했다고 공개했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암시하는 내용을 밝힌 것은 예정에 없던 ‘별건’ 발표였다.
 
  당시 검찰은 댓글 조사 TF 활동을 바탕으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댓글 사건에 개입했다며 민간인 신분인 김 전 실장에게 군형법을 적용시켜 구속했다.
 
  7월 4일 송영무 장관은 “기무사는 세월호 사고 때 유족 등 민간인을 사찰했다. 여론 조작을 시도한 정황이 확인됐다. 기무사는 군의 명예를 대단히 실추시켰다”고 했다.
 
  다음 날(5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JTBC에 출연해 계엄령과 관련한 내용을 처음 공개했다. 이어 6일에는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열어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통해) 촛불 무력 진압 계획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명백한 친위 쿠데타 계획이며 관련자는 모두 형법상 내란음모죄를 범한 것으로 판단된다. 촛불 집회 때 탱크·장갑차·특전사를 동원해 무장 진압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문건 작성자는 현 기무사 참모장이자 기무사 개혁 TF 위원인 소강원 소장”이라며 “계엄령 주무부서는 합참이며 기무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명백한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기무사 개혁에 걸림돌이 된 소강원 참모장을 노린 폭로였다.
 
  소 참모장은 2016년 4월 세월호 사고 당시 광주·전남 지역을 관할하는 610기무부대장(당시 대령)이었다. 2017년 2월 계엄령 문건 작성 때는 사령부에서 근무했다.
 
  군인권센터의 기자회견 이튿날(8일) 소 참모장은 기무사 개혁 TF 위원에서 사퇴했다.
 
  계엄령 문건 공개 닷새째인 9일 오전 국방부에선 장관 주재 실국장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송 장관은 “기무사가 위수령·계엄령을 검토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법리 검토 결과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다만 기무사의 문건 검토 내용이 직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2급 비밀이 군인권센터로 전달되는 과정
 
  송 장관이 언급한 ‘법리 검토’는 무엇일까. 일부 언론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송 장관이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기무사 문건과 관련해 법리 검토를 부탁했고 이에 최 원장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보도했다.
 
  송 장관과 최 원장이 만나 의논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점을 확인해야 한다. 동계올림픽 폐막식은 2월 25일에 열렸고 최 원장과 송 장관은 그해 3월 중순에 만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방부가 계엄 문건을 기무사에서 보고받은 시점은 3월 16일이다.
 
  송 장관의 ‘(감사원) 법리 검토’ 발언이 논란이 되자 감사원은 7월 15일 “감사원은 국방부로부터 기무사의 문건과 관련하여 법률 검토를 의뢰받거나 이에 대한 검토를 실시한 적이 없다”면서도 “다만 감사원장이 2018년 3월 중순경 국방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국방부 장관이 군이 탄핵 심판 무렵 치안 유지를 위해 군병력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 검토한 서류가 있다며 이에 대한 의견을 물어와 일반론 수준의 답변을 한 적은 있다”고 했다.
 
  감사원의 공식 입장을 살펴보면 송 장관이 계엄 문건을 이석구 기무사령관에게 보고받고도 4개월가량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 또 문건을 즉시 청와대에 알리지 않은 이유(4월 말 보고 주장)는 기무사 문건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무사를 해체로 몰고 간 2급 비밀(계엄 문건)을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실과 군인권센터는 어떤 경위로 입수했을까.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국방부 강화수 장관정책보좌관이 이철희 의원실에 계엄 문건을 전달했고 이것이 다시 군인권센터로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 의원실을 거쳐 군인권센터로 갔는지, 각각 따로 제공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이철희 전 의원은 지난 9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계엄 문건과 관련해 “국회의원은 자료를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국회 국방위원으로서 법에 정해진 대로 자료를 합법적으로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 송영무 장관에게 받은 계엄 문건을 시민단체에 전달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 주장은 처음 듣는데요. 금시초문이네요.”
 
  ― 기무사 관계자들은 의원님이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에게 계엄 문건을 줬다고 증언합니다.
 
  “그걸 제가 왜 줍니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 강화수 보좌관을 통해 계엄 문건을 받으신 사실은 없으십니까.
 
  “저는 자료 요구를 통해 (합법적으로) 받은 겁니다.”
 
  ― 평소 기무사에 장군 인사(人事)와 관련한 자료를 요구했는데 기무사가 이를 거절하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저한테 물어보지는 마시고. 저는 의정 활동을 통해 법에 정해진 대로 자료를 요구하고 받은 겁니다.”
 
  계엄령 문건이 공개되자 당시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전 국방부 차관)은 국방부 기획조정실에 유출 경위를 물었고 관련 문건을 자신에게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장관 주재 간담회(9일)에 참석한 민병삼(대령) 100기무부대장은 지난 9월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백승주 의원실이 기무사 문건 제출을 요구하자 장관은 ‘김정섭 기조실장이 (백 의원에게) 절차에 따라 강화수 정책보좌관을 통해 이철희 의원실에 제공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전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계엄 문건 유출의 시작이다.
 
  강화수 정책보좌관(현재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민주당 의원실 보좌진 출신이다.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 당시 전남 여수에서 국회의원·시장 예비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송 전 장관이 강 예비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문건 유출 경위와 관련해 지난 9월 19일 강 전 정책보좌관은 기자에게 연락해 “공식적인 보고 계통 외에는 누구에게도 (계엄) 문건을 전한 바가 결코 없다”고 밝혔다. 이어 “만일 이철희 전 의원이나 군인권센터가 나를 통해 계엄 문건을 입수했다면, 이미 7월 5일 이전에 폭로됐을 것이기에 이 전 의원도 국방부에 ‘계엄 문건을 제출하라’고 강하게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화수 부원장은 “공식적인 자료 제출 시점 이전에 (이철희 의원이 계엄) 문건의 존재를 알고 있어서 그 당시 의아했었다”며 “당연히 국방위 간사이니 자료 요구를 통해서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문건이 언제 전달 됐는지, 문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달한 이는 누구인지는 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기무사 관계자, ‘계엄 문건 문제없다’는 靑 녹취록 확보
 
  군인권센터가 문건을 폭로한 그날 밤(6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기무사 수뇌부에 전화를 했다. 기무사와 업무 협조를 해온 민정수석실 비서관(당시 선임행정관, 민주당 조직국장 출신) L씨는 ‘청와대(저희)도 그 문건을 3월에 보고받고 검토한 끝에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송 장관이 왜 지금 터뜨려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기무사에서 누가 보고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기무사 관계자는 이 통화 내용을 녹음했다. 청와대발 전화는 업무 실수를 막고자 녹음하는 원칙을 세워뒀기 때문이다.
 
  계엄령 문건이 폭로된 배경에는 송영무-이철희 두 사람 간에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계엄 문건 폭로를 앞두고 2018년 5~6월경 송 장관과 이 의원의 접촉 빈도도 늘어났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이었던 문 대통령은 7월 10일 ‘기무사 촛불 집회 계엄령 검토’와 관련해 장관의 통제를 배제한 국방부 특별수사단 설치를 지시한다. 군검찰은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는 것이 원칙임에도 수사 방향이 정해진 채 하명(下命)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민정수석실은 송 장관이 기무사 문건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하에 의도를 갖고 외부로 전달해 공개(7월 5~6일)되도록 했을 텐데 정작 사나흘이 지난 뒤 국방부 간담회(9일)에서는 계엄 문건에 대해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해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조국 수석이 국방부의 돌출 행동을 막고 시급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인도에 간 대통령에게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국회 국방위 소속 P의원은 “송 장관의 부주의가 일을 키웠다. 이 일로 조국 수석은 국정상황실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송영무, 국방부 간부들에게 사실확인서 요구
 
  7월 12일 KBS는 “‘지난 9일 송영무 장관이 간담회에서 기무사 위수령 검토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송 장관 측은 ‘사실확인서’를 만들어 간담회에서 위수령과 관련된 발언을 한 사실이 없음을 증명하려고 했다. 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당시 보도를 제소하기 위한 증거 수집이었다.
 
  확인자 서명란에는 ▲김정섭 국방부 기조실장 ▲여석주 정책실장 ▲김윤태 개혁실장 ▲정해일 군사보좌관 ▲강화수 정책보좌관 ▲민병삼 기무부대장 등 11명만 명기돼 있었다.
 
  당시 간담회에는 ▲서주석 국방차관 ▲이종섭 합참차장(현 국방부 장관) ▲김유근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단장(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장)도 참석했지만 사실확인서 서명란에는 이 세 명이 빠졌다. 이를 두고 ‘송 장관이 통제할 수 있는 이들의 이름만 넣었다’는 말이 나왔다.
 
  사실확인서에는 민 대령을 뺀 10명이 ‘KBS 기사 내용과 관련한 장관의 발언(기무사의 위수령 검토 문제없음)을 들은 바 없다’고 서명했다.
 
  앞서 10명이 서명을 했고 마지막 순서로 민 대령에게 사실확인서가 전달됐다. 하지만 그는 기자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어 당시 서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장관이 실시한 사실확인서 서명이 위증 교사에 해당한다”며 “앞으로 전말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7월 16일 기무사 계엄 문건 규명 특별수사단이 출범하고 이틀 뒤 18일에는 국방부 전비태세검열단이 기무사 계엄 문건에 등장하는 부대를 돌며 관련 문건 수집에 나섰다.
 
  20일에는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2급 기밀인 계엄 문건(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8페이지, 대비계획 세부자료 67페이지)을 공개했다. 기밀 해제도 안 된 2급 기밀을 들고나와 언론(보도검열단)·국회 장악, 기무사의 국정원 장악 등과 같은 자극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문건의 참고 사례(대비계획 세부자료)는 당초 21개였으나 ‘국회 통제’ 등 독소 조항 9개를 빼 12개로 줄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21개가 들어간 참고 사례 최초본(67페이지)을 정본인 양 공개해 음모론을 부추겼다.
 
  당시 ‘기무사가 계엄령 선포를 단순히 검토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실행을 염두에 뒀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보느냐’는 청와대 기자단 질문에 김 대변인은 “그건 여러분이 판단해달라”라고 답했다. 또 “사실관계에 회색지대 같은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2급 군사 비밀, 事後 소급 해제
 
송영무 장관과 계엄 문건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였던 민병삼 대령(전 100기무부대장).
  청와대에서 2급 비밀을 공개하자 국방부는 사흘 뒤(23일) 서주석 차관 주재로 보안심사위원회를 열어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군사상 기밀로서 요건을 갖추지 않은 문서로 의결했다. 이에 대해 백승주 전 의원은 “군사기밀을 사후 소급 적용해 해제하는 황당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기무사 해편 과정에 대해 문제 삼는 이들은 당시 계엄 문건 기밀 해제 절차가 적법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 날인 7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민병삼 대령과 송영무 장관 사이에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민 대령은 사달이 벌어질 것을 알고 이미 하루 전에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국방위 위원이 9일 간담회에 대해 묻자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저는 36년째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입니다. 군인으로서 명예를 걸고, 한 인간으로서 양심을 걸고 답변드리겠다”고 말했다.
 
  “완벽한 거짓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대장까지 마치고 장관 하고 있는 사람이 거짓말하겠습니까.”
 
  여기에 장관 군사보좌관인 정해일 준장도 민 대령의 주장에 반박했다.
 
  하극상, 항명이 벌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민주당을 비롯한 좌파 진영은 ‘일개 대령이 현직 장관을 상대로 대든다’며 기무사 개혁이 필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다음 날(25일) 국방부 특수단은 기무사령부를 압수수색한다. 26일 문 대통령은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동부지검에서는 ‘군·검찰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합동수사단’이 공식 출범했다.
 
  다음 날인 27일에는 국회 정보위(비공개 진행)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당시 이석구 사령관이 ‘계엄 문건은 실제 실행에 옮길 작전 계획(작계)’이라고 주장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배석한 기무사 수뇌부는 당황했다고 한다. 기무사 관계자의 말이다.
 
  “작계를 실행에 옮기려면 실행 계획을 담은 문건이 해당 부대에 하달돼야 합니다. 병력을 어떻게 투입할지 각 부대 지휘관과 계획을 세워야 하죠. 기무사가 ‘나오라’고 하면 그 부대가 총 들고 뛰어나오는 게 아닙니다. 기무사는 그럴 권한도 없어요. 이석구 사령관도 사단장을 해서 ‘작계’가 어떻게 실행되는지 잘 알 텐데…. 자기 혼자 살아보겠다고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은 거죠.”
 
 
  기무사 참모장, “쿠데타를 그런 식으로 합니까?”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 그는 ‘국군기무사령부 마지막 참모장’이다. 소강원 장군은 문재인 정부에서 소장으로 진급해 2018년 1월부터 기무사 참모장을 지냈다.
  정보위에 참석한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당시 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소강원 참모장을 향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아느냐”고 했고 이에 소 참모장은 이렇게 반박했다고 한다.
 
  “쿠데타를 그런 식으로 합니까? 쿠데타 계획이 실패했으면 문건을 파기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앞서 밝힌 대로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한 소 참모장과 기우진 처장은 문건을 파기하기는커녕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날(2017년 5월 10일) 오후 2시 온나라 시스템(전산)에 계엄 문건을 정식 등재했다.
 
  기무사 개혁 TF 위원 D는 “계엄 문건이 쿠데타 모의였다면 당연히 관련 문건을 파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계엄 업무는 합동참모본부(합참) 계엄과(과장 대령)에서 담당하는데 왜 기무사가 계엄 문건을 작성했느냐’며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무사 개혁위원이었던 D씨는 이렇게 말했다.
 
  “합참 계엄과는 말이 계엄과지 계엄을 검토하거나 계획을 수립할 만한 역량이 안 돼요. 거긴 장포대(장군 진급 포기한 대령)가 가는 자리예요.
 
  핵심은 한 장관이 조 사령관이 보고한 계엄 검토 문건에 ‘결재’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보고만 받고는 돌려보냈잖아요. 그걸로 끝입니다. 한 장관이 만일 기무사 문건을 바탕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다면 문재인 정부가 가만히 놔뒀겠습니까.”
 
  기무사 출신 한 예비역도 “군령(軍令)을 행사하는 합참이 계엄 문건을 작성했다면 그거야말로 계엄 실행 계획이 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계엄 문건에서 군 최고 서열자인 합참의장 대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지정한 대목을 문제 삼는다. 당시 이순진 합참의장이 3사 출신이기에 육사 출신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지정하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D씨는 “5공 시절 만든 계엄 자료도 참고하다 보니 계엄사령관 직제에 육군총장을 갖다 붙인 것 같다”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 H씨는 “당시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라 합참의장은 대북 군사 대비 태세에 집중하기 위해 육군총장을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무사 개혁 TF는 당초 2018년 7월 중순 TF 결과 보고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찰 의혹과 계엄령 문건이 터지자 결과 보고를 8월로 미뤘다.
 
  기무사 개혁 TF 위원장을 지낸 장영달 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무사의 계엄 문건은 쿠데타 모의이며 조현천 전 사령관이 잡히지 않아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기무사 개혁 두고 청와대-국방부는 서로 다른 생각
 
2018년 마린온 헬기 사고 조문 당시 유족들이 송영무 장관(오른쪽)에게 항의하자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왼쪽)이 유족을 진정시켰다. 임 소장은 이날 송영무 장관을 사실상 수행했다. 사진=TV조선
  8월 2일 장영달 TF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군기무사령부 존치 또는 국방부 본부화 등 3개 안을 국방부에 보고했다”며 “기무사 요원은 30% 이상을 감축, 조직 개편에서 특별히 전국 시·도에 배치된 소위 ‘6○○단위’ 기무부대는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수 TF 위원은 국방부 산하 본부화에 찬성했다. 이는 송영무 장관이 추진하는 개혁 방안이었다.
 
  다음 날인 3일 청와대는 “문 대통령은 기무사 TF 개혁안과 국방부의 기무사 개혁안을 모두 검토하고 현재의 기무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재편해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4일 이석구 사령관은 경질되고 같은 날 남영신 특전사령관이 후임으로 임명됐다. 6일에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창설준비단이 발족했다.
 
  9일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소강원 참모장과 기우진 처장은 각각 1군사령부 부사령관, 전방 군단 부군단장으로 전보 조치됐다. 이른바 원대 복귀였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청와대는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을 표면적으로 강조했지만 송 장관이 생각했던 기무사 개혁(국방부 본부화)안에는 반대했다. 송 장관은 장관의 참모 조직(국방보안·방첩본부)으로 기무사를 개혁하고 싶어 했다. 반면 청와대는 TF로 기무사를 길들인 후 현행 사령부 형태를 유지하되 민정수석실이 직접 통제하길 원했다.
 
  기무사 개혁 TF에 참여한 D씨는 “장영달 위원장이 청와대 의견을 대변하다시피 했다”며 “청와대는 기무사를 직접 통제하고 싶어 했다. 송영무 장관이 순진했다”고 했다.
 
  앞서 “장 위원장이 ‘기무사의 역기능은 폐지하되 기존의 임무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히자 송 장관이 못마땅해했다”는 증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송 장관은 기무사 개혁 TF를 운영할 당시 주변에 “후배 군인들이 더는 기무사 눈치를 보며 생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한 기무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했다. 기무사의 역할과 기능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기무사가 억울한 점은 계엄 문건이 터지자 기무사를 악(惡)의 축으로 몰고 간 것이다.”
 
  청와대와 국방부 모두 기무사 개혁을 강조했지만 지향점은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기무사는 개혁 TF의 권고를 받아들여 민간 사찰 창구로 의심받는 600 단위 부대를 해체하고 군 동향 보고를 축소했다.
 
  이 과정에서 4200여 명 수준이었던 병력(2017년 7월)은 2800여 명 수준(2019년 9월)으로 줄었다.
 
  여권의 계엄 문건 공세가 계속되자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백승주 의원실로 제보가 들어왔다. 백 의원은 제보를 바탕으로 국방부에 ‘2018년 5월 1일부터 20일까지 기무사가 온나라 시스템에 등재한 문건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국방부 담당자가 갖고 온 자료에는 기무사가 5월 10일자에 등록한 문건(계엄 문건)은 누락됐다. 백 의원이 이를 지적하자 실무자들은 당황했다고 한다. 이후 계엄 문건을 두고 민주당의 발언 수위는 점차 줄어들었다.
 
 
  287명 조사 90여 곳 압수수색… 쿠데타 증거는 못 찾아
 
  2018년 11월 6일 계엄 문건을 수사한 민군합수단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요지는 조현천 전 사령관이 미국에 있어 계엄의 실체를 밝힐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해 참고인 중지,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기소 중지 처분을 내렸다.
 
  민군합수단은 3개월간 참고인 287명을 조사하고 90여 곳을 압수수색했으나 쿠데타 모의 혐의와 관련된 증거는 찾지 못했다.
 
  대신 민군합수단은 기무사가 2017년 2월 당시 계엄 문건 작성을 숨길 목적으로 위장 TF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등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당시 TF는 특근매식비 예산 결재를 올릴 때 〈미래 방첩수사 업무체계 발전방안 연구계획〉이라는 제목으로 문서를 올렸는데 검찰은 이를 계엄 문건 작성을 위한 TF임을 숨기기 위해 허위로 작성한 공문서로 봤다.
 
  이에 대해 TF에 관여했던 기무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주장한 허위공문서는 단순히 식비를 타려고 만든 겁니다. 2주간 11명이 125만원을 탔습니다. 왜 그럼 〈미래 방첩수사 업무체계 발전방안 연구계획〉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느냐, 국방부 보안 업무 시행 규칙에 따르면, 비밀 생산 시 제목으로 비밀이 노출될 경우 가제목을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제목을 쓰는 게 관행이었죠. 검찰은 이를 쿠데타 모의를 숨기기 위해 가제목을 썼다는 식으로 몰아갔습니다.”
 
  2019년 12월 24일 군사법원은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기소된 소강원 참모장, 기우진 처장, 전모 중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계엄 문건 작성에 대한 합법, 불법 판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계엄 문건과는 별개로 특별수사단은 ‘세월호 유가족 사찰’도 문제 삼았다.
 
  세월호 사고 당시 군은 일평균3000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이에 기무요원도 파견해야 했다. 특별수사단은 기무사령부와 진도 세월호 사고 현장을 잇는 ‘610기무부대(당시 부대장 소강원 대령)’와 단원고가 있는 경기 안산의 ‘310기무부대(당시 부대장 김병철 대령)’를 타깃으로 했다.
 
  소강원 참모장과 김병철 전 기무사 3처장은 각각 2018년 9월 5일, 8일 구속됐다. 사유는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했다는 혐의(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였다.
 
 
  이재수 사령관 遺書,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 최선 다해”
 
기무사의 상징인 호랑이와 안보지원사의 상징인 솔개. 안보사는 솔개처럼 환골탈태하고자 솔개를 부대 상징으로 삼게 됐다고 밝혔다. 안보지원사령부는 우화를 인용해 솔개는 수명이 40년일 때 환골탈태를 하면 70년을 살 수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솔개의 생물학적 수명은 약 20년이다. 안보사는 부대 역사관도 폐쇄했다.
부대 상징이 호랑이에서 솔개로 바뀐 것을 본 한 기무사 장군은 “국가와 군을 위해 대공 전선에서 수십 년간 바친 노력이 부정당한 것 같아 좌절했다”며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사진=군사안보지원사령부
  민간 검찰에선 세월호 사고 당시 기무사령관이었던 이재수 전 사령관을 겨냥했다. 이 전 사령관은 조사를 앞두고 당시 사령부에 근무했던 이들에게 ‘사령관이 모르는 불법 행위(민간인 사찰 등)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어 12월 7일에는 “세월호 사고 시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5년이 다 돼가는 지금 그때 일을 사찰로 단죄한다니 정말 안타깝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병철 전 차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전역 후에는 민간 법원에서 2심과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김 장군은 사령부 지시를 따르는 예하 부대장이었다. 그에게 지시를 내린 윗선은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대검은 세월호 유가족이 검찰에 세월호 관련 기무사 간부를 수사 의뢰한 내용에 대해서도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이러한 내용은 배제된 채 김병철 전 처장은 불리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의 극단적 선택으로 사령부 차원에서 어떠한 지시가 내려갔는지 입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말단 부대장이 가장 먼저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야 했다.
 
  소강원 전 참모장도 비슷한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군검찰은 소 참모장에 대한 공소 유지 논리가 깨질 때마다 공소장을 변경했다. 민간 법원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공소장 변경만 세 차례가 이뤄졌다. 소강원 참모장은 2019년 12월 24일 1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무사는 사령부, 사령관의 지시가 절대적입니다. 중간 경로로 형식상 610기무부대, 310기무부대가 껴 있지만 사실상 사령부가 내린 지시를 중간에서 수정하거나 의견을 첨부할 수 없어요. 사령부의 지시가 내려오면 610이나 310은 이를 현장 기무 요원에게 전달하고 또 현장 요원이 수집한 내용을 610이나 310에 보고하면 이를 다시 사령부에 전달할 뿐입니다.”
 
  김병철 전 처장은 “당시 예하 310부대장으로서 수시로 유가족 접촉 및 불법적인 활동을 일절 금지시킴은 물론, 부대원 1명이 현장 지원 활동을 하며 정부장례지원단장의 승인을 받고 파견된 국방부 및 군 관계자를 통해 자료를 제공받는 등 사령부 지시에 따라 합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였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군인권센터가 조용해진 이유
 
  지난 9월 14일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TF[위원장 한기호 의원, 위원 신원식‧서범수‧태영호‧지성호 의원, 민간 위원 구홍모(전 육군 참모차장), 김황록(전 국방정보본부장), 소강원, 임천영(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김흥광(NK지식인연대 대표), 이유동(국민의힘 부대변인)]는 기무사 계엄 문건을 왜곡한 혐의로 송영무 전 국방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 관(현 UAE 대사),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임태훈 소장은 2019년 10월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입수하고도 수사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L 비서관과 통화한 기무사 관계자는 청와대에 “군인권센터가 계엄령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을 방치할 경우 ‘계엄령에 대해 청와대가 문제없다’고 밝힌 녹취록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고, 이후 임태훈 소장이 조용해졌다고 한다.
 
  기무사 출신 인사들은 “이석구 당시 사령관이 계엄 문건을 2부 제출받아 1부는 국방부에 제출하고 1부는 행방을 안 밝히고 있다”며 “나머지 1부의 행방도 밝혀야 한다”고 했다. 당시 기무사 수뇌부 인사의 증언이다.
 
  “2018년 3월 16일 이 사령관은 송 장관에게 보고할 때 계엄 문건 2부를 기무사 방첩처에서 들고 갔다. 장관에게 1부를 주고 나머지 1부는 문건 생산처인 방첩처에 반납해야 한다. 2급 비밀 문건이라 반납 안 하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다. 그러나 이 사령관은 이 보고서를 반납하지 않았다. 문건 생산부서에서 ‘문건을 반환해달라’고 하자 ‘집무실에서 파기했다’고 했다. 사령관이라도 비밀문건은 임의로 파기하면 안 된다. 정황상 이 사령관은 그 보고서를 청와대에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석구 전 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소강원 전 참모장과 기우진 전 처장의 ‘계엄 문건 사령관 보고(2018년 3월 8일)’ ‘대통령 취임식 날 계엄 문건 비밀 등재(2017년 5월 10일)’에 대해 아래와 같은 취지로 말했다고 전해진다.
 
  “감추고 있다가 적발되면 처벌받을까 봐 두려워 뒤늦게 사령관에게 보고한 후 전산 등록도 했다.”
 
  이석구 전 사령관도 계엄 문건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입을까 봐 한 부는 송 장관에게, 한 부는 청와대에 전달하지 않았을까.
 
  기무사 수뇌부 인사의 주장이다.
 
  “청와대는 계엄령 문건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넉 달 뒤 문건이 공개되고 쿠데타 음모론으로 비화하자 입장을 바꿔 기무사를 해편했다. 이런 사정이 드러나면 문재인 청와대가 곤란해지니까 이석구 사령관이 ‘내가 파기했다’며 보고서를 넘긴 사실을 감추고 있다.”
 
  기무사 예비역들은 이석구 전 사령관에 대해 “배가 난파하는 데 선장부터 살겠다고 가장 먼저 배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기무사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한 예비역 대령은 “기무사는 좌파 대통령, 우파 대통령 가려서 충성하는 조직이 아니다”고 했다.
 
  민주당과 좌파 진영에선 ‘친위 쿠데타 음모’라고 주장하며 ‘기각될 경우 계엄령을 실행할 것’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기무사 계엄 문건은 탄핵 인용과 기각 모든 경우를 대비했다.
 
  〈현 상황 평가
  정치권이 가세한 촛불·태극기 집회 등 진보(종북)-보수 세력 간 대립 지속
  촛불 집회: 18차 연인원 1540만여 명, ‘기각되면 혁명’ 주장
  태극기 집회: 15차 연인원 1280만여 명, ‘인용되면 내란’ 주장.
  …
  일부 보수 진영에서 계엄 필요성 주장하나 국민 대다수가 과거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어 계엄 시행 시 신중한 판단 필요….〉
 
 
  원대 복귀한 기무사 출신은 좌절·무력감
 
  기무사 해편 과정에서 간부는 756명이 줄어들었다. 야전 부대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기무사로 전입 온 우수 자원이었지만 적폐 청산 몰이에 휘말려 원대 복귀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써야 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간부도 있다. 원대 복귀한 이들은 하나같이 좌절감, 무력감에 빠졌다고 했다.
 
  국방부는 민병삼 대령을 징계하기 위해 다섯 차례 시도했지만 처벌할 조항을 찾지 못해 징계에 실패했다.
 
  민병삼 예비역 대령은 기자에게 아래와 같은 문자를 보냈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마치 군사 쿠데타 모의로 몰아가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기무사를 해편한 것은 ‘무술사화(戊戌士禍)’이다. 기무사에서 쫓겨나 피눈물을 흘리며 지금도 군 생활을 이어가거나 전역한 기무사 요원들의 원복 및 명예 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고(故) 이재수 사령관의 변호인을 맡았던 임천영 변호사(전 국방부 법무관리관)는 기자에게 “계엄 문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인도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이 외국에서 특별 지시를 통해 수사를 지시한 점”이라며 “당시 계엄 문건은 민정수석실에서 담당했는데 조국 수석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해외에 나간 대통령에게 수사 지시를 요청했겠느냐. 당시 벌어진 일을 수사로 밝혀야 한다”고 했다.
 
 
  백승주, 기밀 문서 유출 과정 밝혀내야
 
  백승주 전 의원은 “기밀 문건(계엄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는 과정, 외부로 유출된 기밀 문건을 사후 기밀 해제한 과정의 적법성 등을 따져야 한다. 또 ‘민주주의국민행동’에 대한 문건도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2016년경 기무사는 방첩 활동 과정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이 국내 종북 좌익 세력과 연계해 탄핵 여론 조성, 반미 활동 등을 기획하는 것을 포착했다. 하지만 탄핵이 인용된 후 이 문건은 자취를 감췄다가 2018년 7월 5일 또 이철희 의원을 거쳐 한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보도 내용은 기무사가 촛불 집회와 조총련을 엮어 간첩 조작을 시도했고 간첩 검거라는 명분으로 계엄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 문건도 송영무 국방장관 정책보좌관 이◯◯(더불어민주당 출신)을 통해 외부로 유출됐다.
 
  조현천 전 사령관의 변호인은 “곧 한국으로 돌아가 당시 상황의 진실을 밝힐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철희 전 의원은 2019년 10월 민주당 일각이 ‘황교안 전 총리가 계엄에 관여했다’고 주장하자 “낡은 정치”라며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지난 9월 8일 이 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계엄 문건 작성자가 무죄를 받은 것’에 대해 묻자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지난 9월 13일 송영무 전 장관은 서면 답변을 통해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은 사실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지금은 말씀드릴 때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은 현재 자유총연맹 총재로 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1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허남선    (2022-09-20) 찬성 : 7   반대 : 0
좌파정권은 기무사령부를 전광석화처럼 해체했고, 좌파 국회의원, 시민단체, 어용언론들을 동원하여 국민들을 선동하고 각 공안기관들을 무력화시켰다.
우파정권은 좌파들이 무너뜨린 국가 보루의 원상회복도 이쪽저쪽 눈치보고 본인의 유불리를 따지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용기없는 우파는 좌파보다 더 위험하다.

202210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