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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코로나19 극복한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

“병상, 백신 없는 상태서 의료진이 줄 수 있는 건 해열제뿐이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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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진 테이블서 두 마디 정도 나눴는데 감염
⊙ 3~4일간 밀접 접촉한 가족은 음성… 코로나19에 대해 풀어야 할 의문 많다 생각
⊙ 코로나19 검사 안 하고 10일 지나 체온, 산소포화도, 맥박 수치 정상이면 퇴원·퇴소시키는 이유
⊙ 거짓말하면 코로나19 회복 안 된 상태서도 퇴소 가능 허점
⊙ 안철수, 국민의힘 입당 안 할 재간 없어
⊙ 윤석열 검찰총장이 집 지을 곳은 국민의힘
⊙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악연… 정권 교체가 시급한 상황에서 두 분을 대변할 만한 분들이 풀 것으로 기대

尹熙晳
1971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인디애나대학 경영대학원 석사 / 前 삼성전자 과장, 박근혜 청와대 홍보수석·정무수석실 행정관, 자유한국당 강동(갑) 당협위원장 / 現 국민의힘 대변인
  “코로나19 항체를 획득한 유일한 정치인입니다.”
 
  정당 주요 인사 중에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윤희석(尹熙晳) 국민의힘 대변인이 인사를 건넸다. 혹시 불안해할지 모르는 기자를 배려한 말 같았다. 지난해 12월 19일 정치권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날 오후 윤 대변인이 보건당국으로부터 코로나19 확진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소식을 듣고 오랜 인연이 있는 윤 대변인에게 상태를 물었다.
 
  “증상이 전혀 없는데 양성 판정을 받아 소위 ‘멘붕’이 왔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란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격리 기간 어떻게 생활하는지 잘 기록해놓겠다며 퇴소하면 보자”고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만난 게 지난 1월 7일이었다.
 
 
  양성 판정에 멘붕
 
정당 주요 인사 중에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
  ― 몸은 잘 회복됐나요.
 
  “증상이 없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무증상’ 많다는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재채기, 기침 한 번 안 해서 ‘내가 진짜 코로나19에 걸린 게 맞나’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 언제 감염된 겁니까.
 
  “작년 12월 14일(월요일) 당 원외위원장 모임이 있어 참석했습니다. 그때 만난 분들 중 한 명이 코로나19에 걸렸다고 저에게 12월 17일 밤 9시30분쯤 전화로 알리더군요. ‘미안한데, 밀접 접촉자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당시 모임 참석자들을 이야기했다’고요. 보건소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 하더군요.”
 
  ―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겠군요.
 
  “전화를 받고 ‘알겠습니다’ 한 뒤에 당장 짐을 싸서 제 개인 사무실(여의도 소재)로 와서 자체 자가격리를 시행했습니다. 보건소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검사를 받아야 하니 추후 안내해주겠다고요.”
 
  ― 검사는 언제 받았습니까.
 
  “금요일 아침, 그러니까 12월 18일에 받았습니다. 제가 여의도에 있는 제 사무실에서 격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할인 영등포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지요. 그 전날 자가격리를 하면서 모임에 참석한 분들에게 전화해보니, 검사를 받은 분도 계셨는데 모두 음성이었습니다. 음성 판정 나온 한 분이 ‘음성’이면 문자로, ‘양성’이면 전화가 온다고 말해주시더군요.”
 
  ― 전화가 왔겠네요.
 
  “금요일 종일 기다렸는데, 문자가 안 오더군요. 이상하다 싶었는데, 토요일(12월 19일) 오후 6시에 전화벨이 울리더군요. 아차 싶었죠.”
 
  ― 모임에 참석한 확진자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까.
 
  “정확히 그분과 한 테이블 떨어져 있었습니다. 모임을 짧게 가졌는데 두 마디 말 정도 했습니다. 그분과 같은 테이블 앉은 분들은 모두 ‘음성’이 나왔는데, 저만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죠.”
 
 
  병상 부족 상황 심각
 
  ― 가족들은 어땠나요.
 
  “제가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인 만큼 가족들도 당장 검사를 받아야 했죠. 다행히 음성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코로나19를 잘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확진자와 좀 떨어진 상태에서 말 두 마디 정도 해서 감염됐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감염된 저와 3~4일을 밀접하게 접촉한 가족들은 걸리지 않았으니까요.”
 
  ― 확진 판정을 받으면 어디로 갑니까.
 
  “확정 판정(12월 19일) 바로 다음 날인 20일 오후에 보건소 의사한테 전화가 와서 양성자는 생활치료센터라는 곳에서 격리하니 대기하라더군요. 그래서 제가 ‘나야 무증상이니까 상관없지만, 증상이 있는 분들도 생활치료센터로 가는가’ 물었죠. 그랬더니 의사가 ‘증상이 심한 사람은 병원에 가야 하는데, 지금 병상이 없어서 생활치료센터에서 대기했다가 가야 한다’고 답하더군요. 병상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느꼈죠.”
 
  ― 생활치료센터가 어떤 곳입니까.
 
  “저는 영등포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고 확진 판정을 받았잖아요. 영등포 관할 생활치료센터는 영등포 로터리에 있는 비즈니스호텔이었습니다. 여기를 전세 내서 수용 시설로 사용하고 있더군요. 이곳에 도착한 순간 퇴소 때까지 사람을 실제 만날 수 없었죠.”
 
  ― 2인 1실이었나요.
 
  “2인 1실인 센터도 있다고 했는데, 이곳은 1인 1실이었습니다. 4평(14m2) 남짓한 규모였습니다.”
 
  ― 좁다는 느낌이 있었습니까.
 
  “답답한 느낌이 있었지만, 격리 기간 때 사용할 물품을 보고 놀랐습니다. 손톱깎이까지 주더군요. 컵라면, 커피믹스 등 간식은 말할 것도 없고. 아주 큰 상자에 넉넉히 담겨 있었습니다.”
 
 
  확진 날 기준으로 10일간 증상 없으면 퇴소
 
확진 판정을 받으면 관할 생활치료센터로 가서 격리를 시작한다. 사진은 해외 입국자들이 치료센터 등 격리시설로 가는 모습. 기사와 관련 없음.
  ― 코로나19는 한 열흘이면 완치가 되나요.
 
  “규정이 이렇더군요. ‘확진 날을 기준으로 10일간 증상이 없다면(경증 포함) 전염력이 없다고 간주하고 내보낸다.’ 저는 19일에 확진 판정을 받고 30일 오후에 퇴소했죠.”
 
  ― 열흘쯤 뒤에 다시 코로나19 검사를 하나요.
 
  “저도 신기한 부분이었는데 코로나19 검사는 다시 안 하고, 체온, 산소포화도, 맥박 수치를 보고 정상이면 퇴소시키더군요.”
 
  ― 코로나19가 완치되지 않은 환자가 퇴소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저도 그 점이 의아해서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원래 처음에는 7일 지나서 24시간 동안 두 번 검사를 해서 모두 음성이 나오면 퇴소하게 했답니다. 작년 6월까지는 그랬다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니 음성이 나올 때까지 기간이 한 달 반 정도 걸려서 방법을 바꿨다는 겁니다.”
 
  ― 왜 한 달 반 정도가 걸리는 겁니까.
 
  “코로나19 검사가 유전자 증폭 방식, 그러니까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유전자를 증폭해서 양성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이러스 유전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이 안 된다는 겁니다. 바이러스가 죽으면 완치인데, 이 죽은 바이러스 때문에 ‘양성’이 나와 방법을 바꿨다는 겁니다.”
 
 
  “드릴 게 해열제밖에 없어요”
 
윤 대변인은 “의료진은 병상이 부족해서, 증상이 심하더라도 센터에서 버티다가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2020년 12월 9일 서울의료원 유휴 공간에 컨테이너형 치료 공간이 설치되는 모습.
  ― 그러니까 코로나19 검사를 하지 않고 체온, 산소포화도, 맥박 수치가 열흘간 정상이면 음성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네요.
 
  “그렇죠. 의학적으로 증명됐다고 합니다. 사실 50일씩 격리당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윤 대변인이 말을 이었다.
 
  “다만, 제가 이런 식으로 생활치료센터를 나왔다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실제 체온, 산소포화도, 맥박 수치를 본인이 재서 보건당국이 지정한 앱에 입력하는 방식인데 속이려면 속일 수 있거든요. 그런 분은 없다고 믿고 싶지만, 거짓말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부에서 다시 코로나19 검사를 하지 않아도 체온, 산소포화도, 맥박 수치가 열흘간 정상이면 완치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 좀 해주면 좋겠습니다.”
 
  ― 식사는 잘 나오나요.
 
  “아주 잘 나옵니다.”
 
  ― 병상이 부족해서 증상이 심하더라도 센터에서 버티다가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센터에서 중증으로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한 코로나19 환자는 없었습니까.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자세히 알 수는 없는데… 모든 것을 방송으로 전달하니까. 만약 그런 환자가 있었다면 방송으로 말했을 것 같은데 없었습니다. 저도 걱정돼서 ‘만약 내가 열이 많이 나면 어떡하느냐’고 물으니 ‘해열제밖에 줄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격리 중 느낀 점 두 가지
 
2020년 3월 6일 오후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관계자가 코로나19 경증환자 치료를 위한 임시생활치료센터를 둘러보는 모습.
  ― 지난해 12월 30일 퇴소를 하고, 31일 출근을 하셨는데 주변인들이 피하거나 하지 않던가요.
 
  “저도 그 점이 걱정됐어요. 사실 본인이 감염된 것도 슬프지만, 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감염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컸거든요. 다행히 한 분도 안 계셨는데, 퇴소 전날 당 지도부에 전화를 드렸어요. 30일 퇴소하는데 바로 출근하느냐고 물었죠. ‘당연히 와야지’ 하시기에 출근해서 맨 끝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죠.(웃음)”
 
  윤 대변인은 열흘간의 격리 기간에 크게 두 가지를 느꼈다고 했다. 첫 번째는 ‘격리를 위한 예산이 정말 많이 들겠구나’, 두 번째는 ‘태권도장은 되지만 헬스장은 안 되는 것 같은 형평성 논란이 계속되겠구나’였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원받은 물품이 절반 이상이 남았습니다. (퇴소할 때) 모두 폐기 처분하라고 해서 새 물건을 버렸죠. 국민 세금으로 산 물품일 텐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보니까, 센터에서 택배를 받는 것은 가능하더군요. 먹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은 10일만 참으라면서도 택배는 된다니… 아이러니했습니다. 택배로 주문하면 되잖아요. 헬스장은 안 되고 태권도장은 되는 식의 방역 조치 과정에서의 형평성 기준 논란을 몸소 깨달은 것이죠.”
 
 
  고건 전 총리가 마음에 들어 했던 이유
 
  윤 대변인은 2020년 제1야당인 국민의힘 대변인으로 임명되면서 제도권 정치에 입성, 새롭게 떠오른 ‘정치신인’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정치경력은 15년 가까이 된다. 정확히 하자면 자신의 꿈인 ‘정치’를 하기 위해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정치권에 ‘노크’한 게 2007년이니 13년간 정치권에 몸담은 셈이다. 본인도 인정하지만 굶을 걱정 안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윤 대변인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정치가 꿈이었다.
 
  “제가 1979년 초등학교 2학년 때인데, 한자 공부도 할 겸 《조선일보》 등 신문을 열심히 봤죠. 그때만 해도 신문 가지고 한자 공부할 때였거든요. ‘김영삼 제명’ ‘호외, 박정희 유고’ 등이 한자로 대문짝만 하게 적힌 신문들을 본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신문 1면은 대개 정치 뉴스잖아요. 읽으면서 정치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대학에 진학할 때 정치학과(서울대)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부모님은 경영학과를 원했다.
 
  “부모님 덕분에 걱정 없이 공부했잖아요. 부모님의 뜻을 꺾을 수 없었죠. 그래서 원하시는 대로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다행히 적성에 맞았죠. 그래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정치란 생각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인디애나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한 후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에서 근무했다.
 
  “유학하고 돌아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2005년 말 고건 전 총리 측에서 아는 분을 통해 제안이 왔습니다. 수행비서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요. 고 전 총리께서 원하는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제가 부합한다고 했죠.”
 
  ― 어떤 점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까.
 
  “키가 컸으면 좋겠다고 하셨나 봐요. 당신께서 크시니까. 그리고 대학 후배인 점도 마음에 들어 하셨고요.”
 
 
  2007년 박근혜를 선택한 이유
 
  ― 고건 전 총리 수행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한 건가요.
 
  “아니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고 전 총리께서 대선 레이스를 완주할 것이라고 생각 안 했습니다.”
 
  ― 그럼 언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건가요.
 
  “2006년 박근혜·이명박 두 분 중 한 분이 대통령이 되는 것으로 사실상 결론 났잖아요. 그때 결심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돕기로요.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펄쩍 뛰시더군요. 그때 ‘지금까지 자식으로서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았습니까. 꿈이 바뀌지 않는 걸 어떻게 합니까’ 하면서 설득했죠. 그렇게 2007년 박근혜 후보 경선 캠프에 들어가게 됐죠.”
 
  ― 경선 캠프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습니까.
 
  “윗선에서는 제가 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는데, 실무진에서 연락이 없는 겁니다. 물어보면 이런 이유, 저런 이유 대면서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실무진에서 시간을 끌면서 뭉갠 거 같습니다. 파이는 정해져 있는데 새로운 인물이 계속 들어오면 기존 사람들에게 좋을 게 없잖아요. 특히 실무진 선에서는요. 기다리는 사이에 경선이 치러졌고, 박 전 대통령이 패배했죠. 갑자기 붕 뜬 처지가 된 겁니다.”
 
  ―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다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안국포럼 핵심 인사 중 한 명을 직접 만나기도 했죠. 그런데 못 간다고 했습니다.”
 
  ― 왜죠.
 
  “박근혜 경선 캠프에서 직접 활동하지 못했지만, 그분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경선에서 졌다고 쪼르르 상대방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 두 사람 중 왜 박 전 대통령을 도우려 한 겁니까.
 
  “제가 유학하고 돌아온 시기(2003년)가 노무현 정권이 시작됐을 때였습니다. 노무현 정권을 겪고 보수 본류가 정권을 잡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판단했죠.”
 
 
  親朴 핵심 김재원 전 의원의 연락
 
  두 번째 유학을 준비 중인 윤 대변인에게 당시 서울시당위원장이던 공성진 전 의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선을 앞두고 서울시 선대위 부대변인을 맡아달라고 했다. 거절하려 했는데, 박근혜 경선 캠프에 있던 분이 서울시 선대위 대변인을 맡는 탓에 합류했다.
 
  “그때 처음으로 기자분들도 뵙고, 많이 배웠죠. 2007년 이때가 정치를 처음 시작한 시기라고 봅니다. 공성진 위원장이 데리고 다니면서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분과 함께 2008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까지 함께했죠. 공 위원장이 당시 전당대회에 출마했거든요. 그 전당대회까진 돕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죠.”
 

  전당대회 직후 윤 대변인은 미국으로 떠났다. “2010년 지방선거까지 정치 이벤트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할 일이 없었죠. ‘미국에 가서 쉬면서 공부를 좀 더 하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2010년 중반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친박 핵심 의원들이 물밑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중엔 김재원 전 의원도 있었다.
 
  “김재원 전 의원과 인연이 좀 있었습니다. 박근혜 경선 캠프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그때부터 연을 좀 맺었죠. 2010년 ‘다음 대선에서 같이 박근혜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연락을 받고 그해 8월 귀국을 했죠. 김 전 의원과 함께 물밑에서 박 전 대통령을 도왔습니다. 경선 캠프에는 역시 못 갔어요. 당시 경선 캠프 멤버 구성을 모(某) 의원이 주도했는데, 제가 그분과 가까운 것도 아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싱거운 승리를 거뒀다. 곧장 대선 캠프가 꾸려졌고 김 전 의원은 새누리당 대변인에 내정됐다. 윤 대변인으로서는 앞으로 좋은 날만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김 전 의원이 대변인에 내정된 첫날 기자들과 만찬을 했다.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와 관련한 자신의 발언이 잘못 알려지자 기자들에게 폭언을 해 논란이 됐다. 김 의원은 다음 날 “기자의 정보 보고가 저에게 전달됐고, 잘못된 정보에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며 “이성을 잃었고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저와 가까운 김 전 의원이 물러났으니 저도 밀렸죠. 2012년 10월 중순 겨우 박근혜 대선 캠프에 합류했습니다. 공보단에서 종편 토론 모니터링을 맡았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글 쓰는 분들이 박 전 대통령을 수행하게 됐는데 그 빈자리를 제가 메웠죠. 방송도 좀 나가고 했습니다.”
 
 
  박근혜 靑 대변인실 발령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19일 치른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12월 25일 취임식을 했다. 윤 대변인은 다음 해 3월 10일 청와대 대변인실 발령을 받았다.
 
  “2013년 2월까지 약 1년 동안 대변인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 정무비서관실에서 일했죠. 청와대와 국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이명박 정부 때는 5명이었는데, 박근혜 정부 때는 1명이었죠. 이 일을 하던 분이 지방선거 출마 때문에 사표를 쓰고 나가서 제가 이 업무를 이어받아서 했습니다. 1년 반을 하고 2015년 중반에 나왔죠. 국회를 오가며 청와대라는 곳이 바깥 민심을 잘 모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알게 돼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2년 넘게 몸담았던 곳인데 끝이 좋지 않아 늘 마음 한구석이 무겁습니다.”
 
  이후 자유한국당 서울 강동구 갑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돼 활동했다. 이번 총선에는 이수희 변호사가 전략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출마의 꿈이 무산됐다.
 
  “저는 강동에서 뼈를 묻을 겁니다. 다른 곳에 전략공천될 수도 있지만 제가 그런 ‘급’도 아니고. 솔직히 당협위원장이 되기 전까지는 강동과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2년 넘게 활동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고, 강동구민들의 마음을 잘 알게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역의원인 진선미 민주당 의원을 이길 수 있는지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에서 현 당협위원장보다 제가 더 낫다고 판단할 때까지 무조건 더 노력할 각오입니다.”
 
 
  국민의힘 의원의 요청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21대 총선에서 완패하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한 의원이 윤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저에게 전화를 준 그 의원은 전혀 인연이 없는 분이었어요. 저에게 부대변인을 좀 해달라더군요. 제가 솔직히 ‘부(副)’자 붙은 건 10년 넘게 해와서 ‘부’자 붙은 것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했죠. 총선 때는 선대위 대변인을 하기도 했고요. 그랬더니 양해해주기 바란다며 맡아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요. 그렇다면 도와드려야죠. 그래서 부대변인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대변인을 뽑으면서 다른 남성 한 분과 김예령 현 대변인이 추천됐는데 남성분이 거절해서 저에게 기회가 왔죠.”
 
  ― 대학 진학, 유학, 취업까지는 승승장구했는데 정치는 꽤 돌고 돌아 제도권으로 들어왔네요.
 
  “그래도 운이 많이 따랐죠. 실력을 쌓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 김종인 위원장을 가까이서 보좌하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김 위원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 생각이지만 지금 김 위원장이 안 대표에게 호의적이지 않게 보이는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김 위원장은 안 대표가 야권 단일 후보로서 대표성을 가질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안 대표는 의문을 불식시킬 뭔가 의미 있는 조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단일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어서 본선 승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는 안 대표가 우리 당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안 대표가 우리 당에 입당하면 호의적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같은 당 사람이 아니니까 외부 사람 취급하는 건 당연하죠.”
 
  ―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으로 봅니까.
 
  “입당 또는 합당 안 할 재간이 있겠습니까. 우리 당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가 안 대표가 입당하면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00% 여론조사 경선도 제안하고요. 사실상 추대 직전까지 간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안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국민 관점에서 안 대표가 입당 안 하고, 야권이 분열돼 선거를 치러 패배하면 그 책임이 누구한테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윤석열이 집 지을 곳 국민의힘뿐
 
  ― 오는 4월 보궐선거 직후 바로 대선 정국으로 이어질 텐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보수 진영의 대권주자로 꼽힙니다.
 
  “제 생각에 윤석열 검찰총장은 정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 것 같습니다. 어디다 집을 지을 것인지가 고민일 텐데 보궐선거 승리를 전제로 국민의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민주당 후보가 될 수는 없잖아요.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윤 총장이 정치하게 되면 영입하기 위해 애쓸 겁니다.”
 
  ― 결론적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사람인데, 보수층이 하나가 돼 지지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보수층에서는 정권은 무조건 되찾아와야 한다는 여론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변할 만한 핵심 측근들이 통합메시지를 보내는 등 정권 탈환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요. 물론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윤 총장이 대구·경북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을 보면 이명박·박근혜 지지층이 윤 총장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꼭 맞는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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