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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의 책으로 세상 읽기

인보길 지음 《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 1952~1954》

부산정치파동-한미동맹-四捨五入 개헌은 ‘제2의 건국혁명’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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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정치파동으로 대통령 直選制 도입… 사대주의 정치세력 밀어내고 主權在民 실현
⊙ 한미방위조약으로 안보 확보
⊙ 四捨五入 개헌으로 경제헌법상 사회주의 요소 청산하고 자유시장경제 도입
⊙ “유화라는 무서운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들인 미봉적 평화의 과정은 ‘정의의 원칙’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무참하게 실패”
  코로나19(우한폐렴) 사태로 인해 잠시 중단되기는 했지만, 서울 정동에 있는 정동교회에서는 2011년부터 매달 한 번씩 ‘이승만(李承晩)포럼’이 열렸다. 이승만 대통령의 삶과 업적, 그의 시대 등을 연구하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이 모임은 건국이념보급회가 주관하고 있다.
 
  행사 때 사회는 대개 인보길(印輔吉·80·뉴데일리 회장) 건국이념보급회 회장이 맡는다. 이분이 일단 마이크를 잡으면 우남(雩南·이승만 대통령의 호)에 대한 일장 강연(?)이 이어진다. 사실 이런 행사에서 주 강연자 이외의 사람이 마이크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민폐’다. 그런데 인보길 회장이 그러는 것은 밉지가 않다.(하지만 ‘민폐’라고 할 정도로 마이크를 오래 붙잡지는 않는다.) 우남에 대한 경애(敬愛), 글자 그대로 존경과 사랑의 정(情)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계 대선배에게 실례가 되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세상에 둘도 없다고 생각하는 애인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는 스무 살 청년 같다.
 
인보길 회장은 2011년 3월 이승만연구소를 만든 이래 10년째 이승만포럼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조선DB
  스무 살 청년 인보길은 4·19 당시 친구들과 함께 경무대 앞으로 달려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 앞장섰었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을 잃었다. 그는 자신이 이승만을 다시 인식하게 된 것은 1995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이승만과 나라세우기전(展)’ 이후라고 고백한다.
 
  이런 인보길 회장이 최근 책을 하나 냈다. 《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 1952~1954》(기파랑 펴냄)가 그것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 현대사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자부하는 기자이지만, ‘이승만 현대사? 무슨 의미지?’ ‘왜 1952~1954년이지’ 하는 의문이 드는 제목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이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1952~1954년에 무슨 일이?
 
1952년 부산정치파동 이후 국회를 통과한 발췌개헌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다. 사진=조선DB
  1952년은 이른바 부산정치파동이 있던 해다. 흔히 이에 대해서는 권력에 눈이 어두운 노(老)독재자 이승만이 실정(失政)과 독재로 국회에서 선거를 통한 재선(再選)이 어려워지자, 피란수도 부산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을 ‘국제공산당’의 간첩으로 몰아 구금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직선제(直選制) 개헌(改憲)을 감행한 사건으로 알고 있다.
 
  1953년은 한미방위조약이 맺어진 해다. 1954년에는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이 있었다. ‘이승만의 종신(終身)집권을 위해 대통령 연임(連任) 제한 규정을 초대(初代) 대통령에 한해 적용하지 않는다는 개헌을 강행하려다가 1표 차이로 부결되자 요상한 수학 논리를 들이대면서 억지로 개헌안을 통과시킨 황당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일이다. 1953년의 한미방위조약을 제외하면, 신생 민주공화국의 헌정사(憲政史)에 일대 오점(汚點)을 찍은 사건들이다. 흔히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불러온 1960년 3·15부정선거와 4·19혁명의 단초도 부산정치파동과 사사오입 개헌에서 찾는다.
 
  저자는 이런 통념에 정면으로 반기(反旗)를 든다.
 
  우선 1952년의 부산정치파동에 대해 저자는 “대통령을 국회가 선출하는 간접선거제에서 국민이 직접투표로 뽑는 직접선거제로 헌법을 바꾼 것은 미국·일본·중국·소련 등 강대국 및 적대국들의 내정(內政)간섭을 원천봉쇄하고, 정치계를 비롯해 사회 곳곳에 도사린 고질적인 사대주의(事大主義)를 뿌리 뽑아 주권을 확립하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였다”고 주장한다. 직선제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는 건국헌법 제2조(현행 헌법 제1조 2항)의 주권재민(主權在民) 정신을 명실상부 실현하게 됐다는 것이다.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과 관련해서는 이 개헌을 통해 건국헌법상에 산재(散在)해 있던 사회주의적 통제경제에 관한 규정들을 일소하고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한 ‘경제혁명’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리나라의 개헌사는 늘 ‘권력구조’에만 관심을 쏟다 보니 사사오입 개헌 역시 ‘대통령 연임 제한 조항의 삭제를 통한 이승만의 종신집권’, 그리고 개헌 과정에서의 절차적 하자(瑕疵)에만 방점(傍點)이 찍혀온 것이 사실이다. 헌법학자나 정치학자들 역시 사사오입 개헌 당시 경제조항 개정에 대해서는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저자가 여기에 착목(着目)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은 1953년 한 해 내내 휴전을 강요하는 미국에 맞서서 반공포로석방 등 ‘벼랑 끝 외교’를 통해 쟁취해낸 한미동맹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 중요성과 그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은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1948년 체제의 한계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이 세 가지 사건을 개별적인 사건이 아닌 ‘제2의 건국혁명’ ‘제2의 독립투쟁’이라는 일관된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승만’이라는 거인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건국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좌익과 투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좌우합작 정부나 세워놓고 얼른 한반도에서 기를 쓰고 발을 빼려 드는 상황에서 건국을 서두르다 보니 1948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체제는 하자투성이였다.
 
  호남 양반지주들에게 뿌리를 둔 한국민주당(한민당)은 해방 이후 이승만을 지지해왔다는 이유에서 끊임없이 ‘지분(持分)’을 요구했다. 건국헌법 제정 과정에서는 내각책임제를 주장해 이승만을 명목상의 대통령으로 밀어낸 후 실권(實權)은 자신들이 차지하려 했다. 이승만의 완강한 거부로 대통령제 헌법을 받아들인 후에도 그들은 처음에는 국무총리 자리를, 나중에는 ‘장관 6명’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 욕망이 거부되자 한민당은 건국 직후부터 야당(野黨)을 자임하고 나섰고, 계속해서 (심지어 전쟁 중에도) 내각제 개헌을 요구하면서 이승만 정권을 흔들었다.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동경(憧憬)과 북한 공산주의와의 경쟁의식에서 주요 산업의 국유화(國有化)와 경제에 대한 국가 통제, ‘근로자 이익균점권(均霑權)’ 같은 화려한 공약(公約)들을 늘어놓은 헌법상의 경제조항들도 문제였다.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농후한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갑작스러운 해방과 분단으로 산업 기반이 전무(全無)하다시피 한 농업국가에서는 현실과 거리가 먼 공약(空約)들이었다.
 
  안보도 큰 문제였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아주 낮게 본 미국은 한반도에서 손을 털고 나갈 궁리만 했고, 신생 대한민국의 안보 지원 요청도 거절했다. 6·25 남침 이전까지 미국은 한국 안보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애치슨 선언’은 그 단적인 표현이었다.
 
 
  ‘제2의 건국혁명’
 
  저자의 통찰에 의하면, 1952년 부산정치파동에서 1954년 사사오입 개헌에 이르는 과정은 이러한 ‘하자’들을 보수하는 과정이었다. 이승만은 부산정치파동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도입하고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국무총리제를 폐지함으로써, 건국헌법 제정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의 소산으로 들어간 내각제적 요소들을 청산하고, 자신이 이상(理想)으로 생각해온 미국식 공화정치 체제로 헌정 체제를 정비했다. 또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대한민국이 박정희(朴正熙) 시대 이후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미국과의 온갖 갈등을 무릅쓰며 한미방위조약을 쟁취함으로써 자유와 번영을 보장해줄 동맹과 안보를 확보했다.
 
  저자는 특히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당시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맨 마지막 사사오입 개헌이야말로 직선제 개헌보다 더욱 중요한 경제 자유 개헌, 진정한 자유민주공화국으로 재탄생한 것”이라면서 “사회주의 공산당식 경제를 자유시장경제로 바꾸는 것만큼 국가 체제의 본질, 국민주의 자주독립 능역을 혁신하는 혁명은 없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이를 “이로써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 직선제, 한미동맹, 자유시장경제까지 3년간 해마다 한 가지씩 대한민국 지붕 아래 기둥과 서까래를 모두 바꾸고 철벽 담장까지 둘러치는 데 성공했다”면서 “건국 당시 북한의 위협에 쫓겨 서두르다 보니 사상 최초의 5·10총선에서 정부 수립까지 불과 3개월 동안에 대충 세웠던 국가 체제를 이 3년 동안 이승만 대통령 혼자 힘으로 재건축한 것”이라면서 이를 ‘제2의 건국 혁명’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의 독립 체제는 1954년에 완성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왜 ‘이승만 현대사’인가
 
  《이승만 현대사》라는 제목 역시 저자의 이러한 역사 인식과 관련이 있다. 지난 20여 년간 이승만에 대해 재평가하는 많은 책이 나왔다. 새로운 연구업적들도 많이 나왔다. 그 결과, 비록 수는 적지만 젊은 층 가운데서도 이승만을 존경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백하지만, 기자 역시 전에는 이승만에 대해 잘 모르다가 지난 20여 년 동안 《월간조선》 기자로 일하면서 이승만을 재발견하고 존경하게 됐다.
 
  하지만 이승만을 재평가하는 책이나 연구업적들조차 청년 이승만의 개화(開化)사상, 외교독립운동, 그리고 건국 과정에서의 업적 등에 주목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간조선》에서 12년간 연재했던 손세일 전 의원의 《이승만과 김구》 역시 1950년 6·25전야(前夜)에서 막을 내려 아쉬움을 샀다. 건국 이후 ‘대통령 이승만’의 행적, 특히 그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정치파동이나 사사오입 개헌 등에 대해서는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이들조차 애써 피해가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승만 현대사》는 ‘대통령 이승만’의 행적, 이승만의 오점으로 여겨지는 문제들에 대한 논쟁도 피해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읽기는 어렵지 않다. 학자의 아카데믹한 문장이 아니라 전직 언론인이 이야기체로 구수하게 풀어가는 ‘이야기 한국 현대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1951년 전쟁통에 피란 국회가 세비(歲費)를 인상했었다는 이야기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놈의 국회는…’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승만이 1956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낸 소감문에서 “언제나 내가 무슨 일을 시작할 때에는 매양 남과 싸우지 않고는 될 수 없는 형편이므로 지금은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평생 봉건 조선-일제-미국과 싸웠던 ‘싸움닭 우남’의 모습이 떠올라 싱긋이 미소를 짓게 된다. 미국의 원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이승만이 자립경제의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아려온다.
 
 
  ‘외교 귀신’ 이승만
 
1953년 8월 변영태 외무부 장관과 덜레스 미 국무부 장관 사이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됐다. 사진=조선DB
  오늘의 현실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한미방위조약 체결 과정 당시 이승만이 미국과 피 말리는 신경전을 벌이는 대목들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월터 로버트슨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방한(訪韓)했을 때, 미국 측 제안을 보고 이승만이 “한국은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와 달리 ‘순식간에 치명타’를 당할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는 나라임을 명심하고 조항을 다시 만들라”고 지적하는 대목, 로버트슨 차관보가 본국으로 보내는 보고서에서 “이승만이 미국의 정치사를 너무 잘 알아서 상원의 조약 비준에 대한 불신이 깊다”고 비명을 지르는 대목, 1954년 제네바회담을 앞두고 존 F.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에게 “미국이 전쟁으로 얻을 수 없었던 것을 협상 테이블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장관에게 선물로 주리라 기대할 수 있단 말이지요?”라고 쏘아붙이는 대목 등을 보면 ‘외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당시 세간에서 이승만을 두고 ‘외교에는 귀신(鬼神)’이라고 했던 것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한미방위조약에 미군의 자동개입 조항을 명시하지 못하자 이승만은 북한의 남침 예상로상에 미군을 배치하는 ‘인계(引繼)철선’ 개념을 고안해냄으로써 그 한계를 극복해낸다. 이승만은 1953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가조인(假調印)된 후 담화에서 “한미방위조약이 성립된 것은 그 영향이 자손만대에 영구히 미칠 것이나… 후대에 영원한 복지를 우리에게 줄 만한 토대를 세워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휴전협정 조인을 앞두고 이승만이 미국 INS 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 말들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자유를 팔아서 평화를 살 수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의 평화주창과 평화론자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반전(反戰)공식을 그릇된 전제 위에 놓고 주장해왔던 것이다. 즉 그들은 정의(正義)를 추구하는 대신에 어떤 대가(代價)를 지불하고라도 평화를 얻어내려는 노력만을 해왔다.
 
  그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모든 인류 사회에 있어서 정의만이 평화의 진실한 기초였다는 사실과, 인류 문화가 지탱되는 한 이것이 인류 사회 우애의 초석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망각하였다. 그리하여 각국 간에 어떤 형식의 평화를 미봉적으로 마련하여 놓으려고 노력한 현실주의 정치가들은 전쟁제조 세력들과 유화(宥和)하는 과정을 밟기 시작하였다.
 
  이런 유화란 가장 흔한 방식-즉 약소국가의 영토 침략자도 약속대로 하려니 하는 허망한 바람으로 평화애호국가의 군비를 축소하는 것, 각양각색의 외교적인 에누리 흥정-의 형식으로 시종하였다. 그러나 유화라는 무서운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들인 이 미봉적 평화의 과정이란 ‘정의의 원칙’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무참하게 실패로 돌아가곤 하였다.
 
  20세기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기록들은 유화라는 것이 평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로 불가피하게 이끌려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유화는 호전(好戰)국가들에영토와 부(富)와 인적자원으로 배불려줌으로써 그들을 강대하게 만들어주며 나아가서 그들은 새로운 침략을 꾀하게 하는 것이다.”
 
  1954년 제네바회담 때 이승만은 “그들은 자신은 모두 정당하고 우리들은 모두 부당하다는 공산주의 신조에 의지하기 때문에 ‘주고받는 진정한 협상’이란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자들은 절대 ‘주지는’ 않고 다만 ‘받기만’ 하려고 한다”고 일갈했다. 일찍이 1923년 《태평양잡지》에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이라는 논문을 쓸 정도로 공산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한 통찰이었다.
 
  이런 결기 있고 통찰력 있는 대통령 밑에 있었기 때문일까? 제네바회담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했던 변영태 당시 외무부 장관도 공산주의자들과의 타협을 강요하는 열강(列强)을 향해 “한국은 자유를 팔아서 평화를 살 수 없다”고 받아쳤다.
 
 
  ‘우물 안 개구리’식 외교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은 ‘건국의 아버지’가 그토록 노심초사(勞心焦思)해가면서 일구어낸 자유와 안전, 번영의 터전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지난 4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외교와 대북(對北)정책은 이승만의 가르침과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오늘날 대한민국 외교안보 정책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은 국제정치에 대한 ‘우물 안 개구리’식 무지(無知)와 억지,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기초한 유화정책이 전부다.
 
  자유를 팔아서 평화를 사겠다는 구걸 행각이 계속되고 있다. 새파랗게 젊은 김여정의 공갈협박에 대한민국의 대통령, 차기 유력 대권주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려서 북한 동포들에게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노력들을 압살(壓殺)하려 드는 것이 그 증거다. 이는 휴전협정이 조인되던 1953년 7월 27일 “공산 압제하에서 계속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우리 북한 동포들이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 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던 이승만의 다짐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두고 이렇게 통탄한다.
 
  “그 독립정신, 건국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 생명줄을 파괴하고 우리의 미래를 봉쇄하는 자유의 적들이 누군지 모르게 되었으며, 알았어도 적을 무찔러야 할 역사적 사명감과 투지의 에너지를 거의 상실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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