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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自筆 노트 (1990~1999) 입수

박근혜가 수첩공주, 절제된 言行 보인 이유 밝혀졌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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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필 메모장 제목은 ‘나의 생각을 키워준 글’
⊙ 메모광 횡거 선생 글에 감명
⊙ 끊임없이 백성 의견 수렴한 名재상 관중 같은 지도자 되고 싶었던 듯
⊙ ‘금수저’지만 욕망 억누르고 소박한 삶 택한 혼아미 고에쓰 인정
⊙ ‘Treat your friend as if he might become an enemy’ 문구, 김재규 총탄에 맞아 서거한 아버지 때문에 적었나?
⊙ ‘言行은 군자가 되는 자격의 열쇠’(《계사전》 中)
⊙ ‘최고의 처세훈은 참을 줄 아는 것이며 지혜의 절반은 참는 데 있다’(에픽테토스)
⊙ 프랑스 68혁명 주역인 다니엘 콩방디의 글 옮긴 이유
⊙ 유영하 변호사가 최근 공개한 자필 편지 글씨체와 박 전 대통령 메모 글씨체 같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손 편지를 좋아한다. 받은 것은 물론 본인이 직접 쓴 편지도 많다. 그의 자필에는 진심과 정성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고(故)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에 오는 편지를 다 읽어보고 일일이 답장해 보내거나 현장 방문한 모습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측근들은 자필 편지를 보내 소통하려 했다. 박근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명절 때마다 자필로 쓴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내는 수석도 있었다”고 했다.
 
  4·15 총선을 42일 남겨둔 지난 3월 4일,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구속 이후 1069일 만에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때 그의 자필 편지를 유영하 변호사가 대독하는 형식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자필 편지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독선적”이라고 했다. 이어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줄 것을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지지자들에게 오는 4월 총선에서 보수 진영이 분열하지 말고 미래통합당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권 심판에 나서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1990~1999년 박근혜 자필 메모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필 메모의 일부를 2006년 공개했다. 박 전 대통령과 그 측근, 네티즌 지지자들이 공동 운영한 홈페이지인 ‘호박넷’(好朴(박근혜를 좋아하는)+네트워크의 합성어)에 ‘나의 생각을 키워준 글’이란 제목으로 올린 것이다.
  자필 편지가 공개된 후 진위 공방이 벌어졌다. 유 변호사가 공개한 편지 글씨체가 박 전 대통령의 글씨체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월간조선》이 박 전 대통령이 1990~1999년 자필로 쓴 메모장(노트 100장 분량)을 입수해 비교해본 결과, 유 변호사가 공개한 자필 편지 글씨체와 글씨체가 같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메모장의 일부를 2006년 공개했다. 박 전 대통령과 측근, 네티즌 지지자들이 공동 운영한 홈페이지 호박넷[호박(好朴·박근혜를 좋아하는) 네트워크]에 ‘나의 생각을 키워준 글’이란 제목으로 올린 것이다. 현재 호박넷은 폐쇄된 상태라 당시 공개된 박 전 대통령의 자필 메모는 사실상 다시 찾아보기 어렵다. 《월간조선》은 호박넷에 공개된 것 외에 다른 메모까지 총 75개를 박 전 대통령을 15년 넘게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김휘종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서 jpg 파일 형태로 받았다.
 
  김 전 행정관은 박 전 대통령과 호박넷을 함께 관리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두 달 전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친박누리’에 이 메모장의 일부를 공개해왔으나, “더 많은 분께 메모의 내용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며 《월간조선》에 가지고 있던 메모 일체를 제공했다.
 
 
  ‘나의 생각을 키워준 글’
 
1998년 4월 4일 오전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재·보선 당선자들. 왼쪽부터 신영국(문경예천), 정문화(부산서구), 정창화(경북의성), 박근혜(대구달성) 당선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에도 자필로 공책에 ‘나를 생각을 키워준 글’을 썼다.
  박 전 대통령의 친필 메모에는 ‘나의 생각을 키워준 글’이란 제목처럼 과거 읽은 책에서 감명받은 글이나 명언, 사색 등이 담겨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맞은 뒤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이후 성북구 성북동, 중구 장충동을 거쳐 1990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단독주택으로 옮겨왔다. 1997년 11월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다음 해 4월 15대 국회의원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될 때까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삼성동에 머물면서 자신이 어떤 정치인이 돼야 하는지 고민하며 메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뇌물수수·직권남용 등 혐의로 30년 가까이 징역을 살아야 하는 박 전 대통령은 이 메모를 썼던 삼성동 사저는 팔고 내곡동 집을 매입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영어(囹圄)의 몸이라 내곡동 집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메모의 달인’ 횡거 선생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박근혜 자필 노트 캡처.
  박 전 대통령은 1991년 11월 11일 자필로 횡거 선생이 한 이야기를 적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오직 의리의 도(道)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비록 험난한 일이 쌓여 있다 하더라도 진실로 이에 대처해 마음이 형통하고 의혹하지 않으면 비록 험난하더라도 반드시 풀릴 수 있고 성과가 있을 것이다. (중략) 오직 의리만을 실천하여 나갈 따름이면 다시 무엇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오직 마음만이 형통하여질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인의 ‘의리의 도’를 강조한 횡거 선생의 글을 옮긴 것은 정권 2인자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서거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때문 아니었을까.
 
  횡거 선생의 이름은 장재(張載)이고, 자(字)는 자후(子厚)다. 횡거(橫渠)는 호(號)다. 장안에서 태어나 횡거진(橫渠鎭·현재 산시성 미현 횡거)으로 옮겨 살다가 그곳에서 오랫동안 제자들을 가르쳤기에 사람들은 그를 횡거 선생이라 불렀다. 횡거 선생은 벼슬살이할 때나 물러나 있을 때나 수양과 공부를 게을리하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좌우에 책을 쌓아두고 단정하게 앉아 머리를 숙이면 글을 읽었고 머리를 들면 사색에 잠겼다. 얻은 바가 있으면 글로 기록했는데, 간혹 한밤중에 일어나 촛불을 밝히고 글을 쓰기도 했다.
 
  횡거 선생은 메모의 달인이었다. 그는 무언가 깨닫게 되면 시공간에 관계없이 무조건 기록했다. 그의 주변에는 늘 문방사우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게 메모한 기록을 바탕으로 《정몽(正夢)》이란 책을 썼다.
 
  공교롭게 박 전 대통령도 메모광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서 물려받은 습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의 여당인 친(親)노무현·문재인 세력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을 ‘수첩공주’라고 폄하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시절 수첩공주라는 별명에 대해 “사실 시작은 야당에서 저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건데 그 별명이 싫지 않다”고 말했다.
 
 
  욕망을 억누른 소박한 삶
 
  박 전 대통령은 자기 욕심만 채우는 부자들을 비판한 혼아미 고에쓰(本阿彌光悅)의 말을 적기도 했다.
 
  “부자들은 소유를 늘리고, 재산의 유지에 급급해서 정신의 자유마저도 잃고 있다.”
 
  혼아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 도검 감정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교토의 상인 집안이다. 이 집안 사람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나 그 욕망을 억누르고 소박한 삶을 택했다. 칠기공예 대가인 혼아미 고에쓰는 평생 작은 집에 다다미 두세 장짜리 다실을 만들고 홀로 차를 즐기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의 어머니 묘슈는 자손들이 옷이며 용돈을 줄 때마다 모두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줬다. 세상 사람이 모두 가난한데 혼자만 많이 소유하는 것은 죄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Treat your friend as if he might become an enemy”
 
  로마 시대의 풍류시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Publilius Syrus)는 노예 출신이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는지, 아니면 전쟁포로로 노예가 됐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는 시리아 중에서도 안티오키아 출신이었다. 주인이 그를 로마로 데려간 것은 12세 때였다. 그의 재주를 아낀 주인이 자유와 교육의 기회를 주었다.
 
  시루스는 고대 로마 초기부터 인기 연극 장르던 마임(mime) 작가였다. 폭정으로 악명 높은 네로 황제가 마임에 직접 출연한 적도 있다. 이탈리아 지방 곳곳에서 명성이 자자한 시루스를 카이사르가 로마로 불러냈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 자신의 탑수스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마임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시루스에게 상을 줬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마임에서 추려낸 명언을 담아 《문장(文章·Sententiae·Sentences)》을 냈다. 《문장》은 734~1000여 개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문헌이다.
 
  박 전 대통령은 《문장》에 나온 한 문장을 직접 쓰며 마음에 새긴 모양이다.
 
  “Treat your friend as if he might become an enemy.(친구를 대할 때는 그가 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대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1999년 9월 6일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크리스토퍼 드 빙크(Christopher de Vinck)가 쓴 《올리버 스토리》의 한 부분을 발췌했다.
 
  “나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어떻게 32년 동안 올리버를 보살필 수 있었어요?’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것은 32년간의 긴 시간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올리버를 굶기지 않을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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