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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時論

김원봉 敍勳 논란

김원봉 서훈은 대한민국 自殺의 첫걸음

글 : 유광호  자유민주연구학회 회장·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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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자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서훈하겠다는 것은 顚覆전쟁의 일환
⊙ ‘독립’운동은 日帝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민주국가 ‘건국’을 의미… 대한민국에 抗敵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될 수 없어
⊙ 공산주의자들의 민족해방운동은 소련 지배하의 공산화 의미… 공산주의 운동은 反민족·反독립
⊙ 해방 직후 臨政 해체 주장한 김원봉을 臨政 떠받드는 문재인 정부가 서훈하려는 것은 아이러니

柳光浩
1958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 연세대 강사, 이승만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現 자유민주연구원 연구위원, 자유민주학회장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제(諸)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서 인민공화당 위원장 자격으로 발언하는 김원봉. 그는 이후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했다.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에 반대했던 공산주의 계열의 사람이라도 일제시기에 항일운동을 한 경력이 있으면 독립운동가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에 적지 않게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독립(獨立)’과 ‘독립운동’이란 개념이 정확하게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에 대한 관념이 허술하고 감상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 대한 안팎의 전복(顚覆) 세력은 그 허술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혼란시키고 뒤집고 있다. ‘독립’ ‘해방(解放)’ ‘건국(建國)’이란 개념을 옳게 찾아옴으로써 이에 바르게 대처하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공유(共有)한 정치적・역사적 유산은 3・1운동의 자유민주주의적 독립노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法統)’, 공산전체주의에 대한 반대, 그리고 대한민국이 한반도와 한민족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사실 등이다. 이것들은 우리 헌법에도 명시돼 있거나 전제돼 있는 자명(自明)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해 투쟁했던 남조선노동당에 의한 제주 4·3사태, 대한민국 전복을 목표로 했던 조선노동당의 지하당인 통일혁명당과 그 핵심 인사, 1980년대 이후 김일성주의에 따라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 투쟁을 했던 이른바 운동권 등의 흐름을 정당화하고 그것이 옳은 ‘유산’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 이 흐름이 대한민국에서 공인(公認)된다면 대한민국에는 복수(複數)의 국민이 존재한다는 것이 공식화되는 것이다. 그 상태는 이미 하나의 국가가 아니게 된다. 이들은 역사교육을 장악하여 역사관을 전복시켰고 그 연장선상에서 사회주의자의 독립유공자 서훈(敍勳)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獨立 = 解放 + 建國
 
  우선 ‘독립운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이 법의 대상으로 순국선열(殉國先烈)과 애국지사(愛國志士)를 들고 있다. ‘일제(日帝)의 국권침탈(1895년)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그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분이나, 항거한 사실이 있는 분으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은 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1945년 8월 15일 해방 때까지로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그런 실정이다.
 
  그런데 ‘독립’이라는 말은 영어 ‘independence’의 번역어이다. 로저 스크러턴(Roger Scruton)의 《정치사상사전(The Palgrave Macmillan Dictionary of Political Thought)》은 독립을 ‘다른 국가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영토에서 정부의 권리들을 행사하는 국가의 능력으로서 이것은 국제법에서 국가가 하나의 별개의 법적 인간으로 인정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사전은 ‘독립은 다른 어떤 국가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런 법적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국가의 내부 문제들에 간섭할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를 포함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따라서 정치학적으로도 ‘독립’은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 정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독립운동이란 다른 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 자기 나라를 세우는 (건국) 운동이다. 그러니까 독립운동의 두 목적은 ‘해방’과 ‘건국’이다. 이렇게 볼 때 조선인의 독립운동사는 1910년 8월에 시작하여 1948년 8월 또는 9월에 막을 내렸다. 1945년 8월까지가 독립운동의 전반전(前半戰)이라면 그때부터 1948년 8월까지는 독립운동의 후반전(後半戰)이다. 전자(前者)가 예선전이라면 후자(後者)는 결승전이다. 독립운동의 충(忠)과 역(逆)이 그제야 판연(判然)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해방공간의 활동가들도 건국 사업을 독립을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또 그렇게 말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는 원래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해방 후 1945년 말 이후의 신탁통치 반대운동은 ‘독립운동’이었다. 1948년 8월 15일 건국 선포 후 그 1주년이 되는 1949년 8월 15일에 대한 당시 명칭 또한 ‘독립기념일’이었다. 그것이 사회과학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옳은 개념에 입각한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항일운동, 어떻게 봐야 하나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 세계는 ‘전체주의 대(對)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결장이었다. 그 대결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로의 독립은 전체주의이자 제국주의인 일본제국에 대한 투쟁일 뿐 아니라 전체주의이자 제국주의인 공산주의에 대한 투쟁이기도 했다.
 
  한인(韓人) 공산주의자의 운동은 한편으로는 항일(抗日)운동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 공산제국의 괴뢰(傀儡) 내지 노예로 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지향의 독립운동이야말로 항일운동이자 문명적인 현대 국민국가로의 독립운동이었다. 대한민국이 그 독립운동의 결산이자 한반도와 한민족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나라인 것이다. 그것이 헌법의 명령이자 정신이다.
 
  따라서 ‘독립유공자’는 식민지 상태에서의 해방투쟁에 공(功)이 있으면서 대한민국 건국에도 공이 있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독립유공자 서훈은 이 입장에서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노선의 나라를 세우는 데 반대하거나 항적(抗敵)한 사람이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성적인 측면에서도 공산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중에서 어느 것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인지를 분별할 수 없는 자라면 그 지력(知力)이 측은하기는 하지만 공적(公的)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왜적(倭敵)을 대신해 미(美) 제국주의가 들어와 강점(强占)했다”는 민족해방파의 인식 내지 선전선동은 소련과 그 괴뢰인 김일성(金日成)과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빨치산의 반미(反美)투쟁의 전제였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건국 독립을 도우려는 미국의 행위에 대한 몰(沒)이해임과 동시에 소련 공산제국주의에 대한 충성을 뜻했다. 빨치산이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듯이 김원봉(金元鳳)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은 모름지기 끝이 좋아야 좋은 법이다. 항일투쟁은 해놓고 공산전체주의 지옥으로 민족을 끌고 들어간다면 그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일제시기에도 그랬지만, 해방 후에도 박헌영(朴憲永)・김일성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소련과 스탈린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충성했다. 이를 보면 그들이 조선인의 독립, 즉 한국인의 독자적인 국민국가를 건립하려고 활동한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겉으로는 항일운동을 했지만, 실제로는 공산혁명을 위해 투쟁했다.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민족해방’이란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공산화(共産化)하는 것을 가리키는 특별하고 엄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그렇게 공산화된 나라는 공산주의의 종주국(宗主國)인 소련 지배하의 괴뢰국이나 위성국(衛星國)으로 전락했다. 그것은 독립이 아니고 도리어 독립에 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는 설사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했다 하더라도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반(反)독립 활동 내지 반민족 활동을 한 것이다.
 
 
  종족적 민족주의
 
  우리나라에서 ‘민족’이라고 번역되는 ‘네이션(nation)’이란 말은 종족적(種族的) 차원의 의미와 정치적 차원의 의미,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전자는 혈연의식, 그리고 공유된 문화적 유산 같은 것이다. 후자는 국민 각자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 어떤 공유된 정치적 원칙들, 즉 정치 이념과 제도 같은 것들이다. 전자의 의미일 때는 주로 ‘민족’이라고 쓴다. 후자의 의미일 때는 주로 ‘국민’이라고 쓴다. 분명한 영토 내에 그런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가진 공동체 구성원들을 포괄하는 나라를 ‘국민국가(nation-state)’라고 한다.
 
  실제의 ‘네이션’은 선택이라는 의사결정에 따른 공유된 정치적 원칙들과 역사적으로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을 결합해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내지 대한국민은 조선왕조를 살았던 선인(先人)들의 후예이면서 해방공간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치 원칙을 선택한 국가이고 국민인 것이다.
 
  이런 건국 과정은 평화롭게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전쟁이 국가를 만들고 국가가 전쟁을 만든다”는 정치사회학자의 말처럼,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아니 1954년에 제주사태나 남부 지방 빨치산이 다 진압될 때까지 좌익・공산 세력과의 투쟁・전쟁을 통해 수립되었다.
 
  한번 나라를 세웠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결코 끝나지 않는 ‘나라 만들기(nation-building)’ 과정”이란 정치학적 통찰이 있다. 건국 이후에도 역사관 전복과 정통성 전복이란 도전이 계속된다는 의미이다. 좌익의 ‘민족해방’ 전략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이 경쟁적이고 투쟁적인 구도에서 ‘독립’과 ‘민족해방’,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전체주의 체제가 대결해온 것이다.
 
  이 구도에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라는, 인간에게 거부하기 어려운 강력한 정념(情念)의 힘이 동원된다. 내셔널리즘은 체제론적 사상은 비어 있는 감성적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체제 이론과 결합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주의가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결합한 것을 ‘시민적(civic) 내셔널리즘’ ‘국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도 일찍부터 내셔널리즘의 호소력에 눈을 떠 ‘공산주의적 민족주의’ 내지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라고 불리는 것이 성립했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과 호찌민이 그 예이다.
 
  한국인의 내셔널리즘은 혈연문화 탓에 어감 그대로 ‘민족주의’라는 말과 어울리고, 특히 샤머니즘적 성격이 강하다. 한국인의 이런 민족주의 감성은 자유주의 사상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반면,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들의 통일전선전술에는 쉽게 이용된다. 북한과 한국 내 좌익이 주장하는 ‘우리 민족끼리’나 ‘우리는 하나’ 또는 ‘끊어진 혈맥을 잇자’는 등의 선동이 그것이다.
 
 
  김원봉을 서훈하려는 이유
 
영화 〈암살〉 속의 김원봉. 문재인 대통령은 이 영화를 보고 김원봉 서훈을 다짐했다.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시민적 민족주의의 에너지를 가지고 북한의 우리 동포(국민)들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국민 사기(士氣) 내지 정치종교(civil religion)가 더욱 절실하다. ‘국가’와 ‘국민국가’가 ‘민족’보다 훨씬 중요한 관념이고 사상이어야 한다.
 
  국가가 독립유공자들을 현창(顯彰)・보훈(報勳)하는 것은 바로 이를 위해서이다. 그런데 현실은 도리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감성과 ‘민족’을 가지고 이성(理性)과 자유민주주의와 문명과 법의 지배를 유린하고 있다.
 
  지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김원봉은 해방 후 서울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 공동의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민전은 범(汎)좌익 진영을 아우르는 통일전선체(統一戰線體)였다. 이것도 ‘민족’이라는 말의 강력하고 마성(魔性) 있는 어감을 이용하는 선전선동 수법이자 정치 수법이다.
 
  김원봉은 일제시기 의열단(義烈團) 단장으로 유명했고, 해방 후 월북(越北)해 북한에서 장관(국가검열상・노동상)과 국가 부원수(副元首・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를 지낸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김원봉을 서훈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에 포상 기준을 바꾸어서 독립운동을 했으나 해방 이후 사회주의 활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포상받지 못한 인물들도 북한 정권 수립에 관여하지 않은 경우에는 포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김원봉은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원봉 서훈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야당 국회의원이 김원봉 서훈에 대해 묻자 보훈처장은 “의견을 수렴 중으로 (수여)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보훈처장은 “그 시대에 공헌한 분은 저희가 포괄적으로 예우해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따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김원봉이 등장하는 영화 〈암살〉을 본 후 “최고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은 문재인 대통령 한 사람의 즉흥적인 감상이 아니다. 국사학계를 비롯해 지식계에서 항일통일전선 나아가 해방 후에는 전민족통일전선, 즉 좌우합작(左右合作)을 숭상하는 입장이 주류(主流)가 된 지 오래다. 그 통일전선이란 것은 전 세계적으로 그렇듯이 결국 공산주의 세력이 장악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이다.
 
  김원봉을 복권시키려는 공작에는 이런 토대와 정권의 공감대, 즉 좌경 기득권 세력의 숙원이 놓여 있다. 김원봉은 ‘일제시기 최대의 현상금이 걸렸던 항일운동가’라는 등 대중의 감성에 낭만적 히어로(hero)로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이다. 좌익 세력은 그를 ‘좌익이 독립운동사의 주류였다’고 내세울 수 있는 재료로 여길 것이다.
 
  복잡하게 다룰 것 없이 김원봉의 정체를 밝힘과 동시에 ‘독립운동’의 진실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고자 한다. 역사학자 이영훈(李榮薰) 전 서울대 교수의 글을 길지만 소개한다.
 
 
  김원봉은 臨政 해체 세력
 
북한 초대 내각. 둘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선글라스를 쓴 사람(원 안)이 국가검열상 김원봉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소식을 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실패감을 맛보았다. 천신만고로 준비한 국내 진공 계획이 허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곧이어 임시정부의 조선민족혁명당 김원봉 계열이 들고일어났다. 한국독립당 김구 계열을 향하여 임시정부의 해체를 요구하였다. “당신들이 이 정부를 조선에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내란(內亂)을 일으키자는 위험한 생각이다. 당신들이 언제 국내 인민의 정권을 받았소. 어서 사직(辭職)하시오.”
 
  그들은 이전에도 세 차례 큰 세(勢)를 이루어 임시정부의 해체를 요구하였다. 김구와 차리석(車利錫)이 끝까지 임시정부의 간판을 붙들고 놓지 않아 임시정부의 법통이 겨우 살아남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김원봉 세력은 얼마 있지 않아 북한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제야 충과 역이 판연해졌다. 그래서 1945년 8월 이후의 3년을 독립운동의 본무대요 결승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미국의 이승만(李承晩)도 동포에게 환국(還國)의 인사를 전하면서 “너무나 통분하여 차라리 죽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싶다”고 하였다. “미주(美洲)와 원동(遠東)에서 불량한 한인들이 사욕(私慾)과 시기로 임시정부를 멸시하며 독립을 방해하고 당파의 세력을 높여서 타국(他國) 정부로 하여금 우리 임시정부를 사사(私事) 단체들과 동등으로 대우하게 하는 중에” “우리 임시정부는 승인도 못 받고 있다가 급기야 왜적이 패망한 우리 금수강산은 외국 군사의 점령으로 남북을 갈라놓았고, 외국 세력을 의뢰하고 국권을 방해하는 자들이 정계에 편만(遍滿)하여 충역(忠逆)이 혼잡되어 혼란 상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이 모든 것이 애국심이 불충분한 우리 조선인의 잘못이라고 통탄하였다.
 
  미국에서 이승만을 그렇게 괴롭혔던, 이승만을 독립운동계에서 은퇴 직전으로 몰았던, 한길수와 국민회 세력은 환국할 엄두도 못 냈다. 미국의 한길수와 중국의 김원봉은 서로 협력하는 사이였다. 한길수는 미국 회사의 사원으로 남은 인생을 누렸다. 김원봉이 북한으로 올라간 것과 필연에서 다를 바 없는 선택이었다. 그제야 충과 역이 판연해졌다. 그래서 1945년 이후를 독립운동의 결승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이 결승 본무대에서 이승만의 독립운동은 그 정수(精髓)를 활짝 꽃피웠다. 갈 길을 몰라 헤맨 남한 대중의 적어도 40%가 그의 향도(嚮導)를 따라 자유의 길로 대열을 정비하였다. 나머지 40%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는 전통 소농(小農)사회의 성원(成員)이었다. 나머지 20%는 좌익 성향인데, 그중의 10%는 진성 공산주의자로서 남로당이나 북로당 지지 세력이었다. 그 위태로운 세상을 이승만은 ‘자유의 길’로 인도하였다. 미국은 해방을 선사했지만 무책임하게도 좌우합작을 강요하였다. 이승만은 외쳤다.
 
  “민주주의라는 명사(名辭)에 두 종의 구별이 있으니 소련이 주장하는 민주정체가 하나요 미국에서 실행되는 민주정체가 또 하나이다. 이 두 가지를 혼잡해서 정부를 수립하면 장래 정부의 분열과 국내의 혼란을 면키 어렵다. 우리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미소공위(美蘇共委)에 참가하기를 보류하는 바이다.”
 
  두 해방군을 향해 이렇게 소리친 이승만의 저항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운동이다. 미 국무부는 이승만의 저항에 더없이 불쾌하였다. “미국을 방해하는 저 늙은 망명객 출신을 제거하라”고 미군정에 지시하였다. 그렇지만 이승만의 등 뒤에는 ‘자유의 길’을 지지한 40%의 동포가 있었다. 나아가 그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미국의 정치가・군인・목사・시민이 있었다. 세계 자유연합과 자유 세계가족의 성원들이었다. 드디어 이승만은 50년 혁명가 인생에서 줄기차게 추구한 자유인의 공화국을 세움에 성공하였다. 우리의 대한민국이었다. 이를 독립운동이라 아니 하면 다른 무엇을 독립운동이라 하리요.〉 (이영훈, 2019. 2. 25, 〈3·1운동과 이승만의 독립운동〉)
 
 
  김원봉 서훈의 아이러니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떠받드는 문재인 정부는 이제 임시정부의 법통에 악착같이 도전했던 김원봉 무리를 독립운동사의 주인공으로 환생시키려 하고 있다.
 
  김원봉의 서훈 적절성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보훈처가 마련한 토론회에서 한 교수는 “남한 정부가 먼저 좌익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 통일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법학 교수는 독립운동이란 해방과 건국을 의미한다는 독립운동의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통일이 좌우합작과 남북합작을 통해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좌경 지식인들이 다 그런 상태이다.
 
  통일은 북한이 자유민주화되거나 아니면 한국이 적화(赤化)되거나 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명하는 통일이란 북한의 자유민주화를 통한 북한 해방이다. 좌경 지식인들은 전체주의 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체제를 그대로 가지고는 결코 합쳐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여 사회주의화해서 남북의 좌익들끼리 좌좌(左左)합작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같은 정치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법을 전유(專有)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투쟁이 벌어지는 장(場)이다. 법을 옹호하려는 국민 다수(多數)의 의지가 결집되지 않으면 법은 횡령(橫領)당하고 만다. 자유사회에서 국가가 이 방어전에서 물러서면 헌법과 법들을 개정하지 않고도 해석에 의해 체제를 전복당할 수 있다.
 
  좌익은 그 속성상 이견(異見)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는 타도와 혁명의 대상이지 공존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그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도 그 체제의 존립을 위해서 좌익에 대해서 자신을 방어해야 하지 않을 수 없다.
 
  남한 주체사상파, 즉 김일성주의자들은 민족해방무장투쟁(무투)을 숭상하는 감성적 정향하에서 사기(詐欺)로 점철돼 있는 김일성의 거짓 행적에 넘어간 자들이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판단하려면 국제정치・지상(地上)정치, 그리고 지하(地下)정치라는 세 차원에서 봐야만 한다. 그 지하정치가 바로 남북한 좌익의 대한민국 전복전쟁이다. 역사관을 뒤집는 독립유공자 서훈, 즉 사회주의자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서훈하겠다는 것은 바로 전복전쟁의 일환이다.
 
  사상은 인간 행위의 방향타이기 때문에 전도(顚倒)된 사상의 폐해는 근본적이고 매우 장기적이다. 다수의 사람은 입력된 이데올로기적 코드에 지배되는 로봇이 되고 만다. 결국 그 국가와 사회는 자살(自殺)에 이르고 만다. 그러면 ‘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관계이기 때문에 양자(兩者)의 합작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소멸될 것이다. 이 상태가 되면 이성이 마비되는 수준이 된다.
 
 
  자유세계로부터의 脫線
 
  어느 사이엔가 낭만적 민족주의가 만연되어 좌우합작의 민족통일전선이라는 환상을 좇는 배운 무식쟁이들이 패권(覇權)을 장악했다. 이들이 현재 성공하고 있는 반일(反日)통일전선은 물론 반미(反美)통일전선까지 구축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문명의 자유 세계연합으로부터 탈선(脫線)하게 될 것이다.
 
  6・25남침전쟁 이후 냉전(冷戰)이라는 엄혹한 국제정치 상황 아래서 한반도에서의 현상타파는 용납되지 않았다. 이제 국제정치 구조의 대전환과 북한의 핵무장을 맞이하여 한반도 현상타파가 가능해지는 환경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한국 사회의 좌경화가 더욱 심화된다면 북한 해방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도리어 대한민국이 전체주의 블록의 일원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김원봉 등 사회주의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소멸시키고, 국가의 자살을 초래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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