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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추적

MB 有罪 선고에 결정타 날린 ‘이팔성 비망록’의 비밀

‘이팔성 비망록’엔 MB 측에 건넨 ‘뇌물 내역’이 없었다!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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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팔성씨의 잦은 진술 번복, 오락가락하는 기억, 급조한 듯한 메모지… 그의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
⊙ MB 측에 뇌물 건넨 시점의 비망록은 없어… 檢도 이팔성씨에게 세 차례나 ‘고의 폐기’ 여부 물어
⊙ MB 측에 건넨 뇌물 내역은 ‘비망록’ 아닌 이팔성씨가 事後 작성한 메모지에 기록
⊙ 메모지 작성 경위도 의문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이팔성 ‘2013년 6월에 (메모지) 작성’, 檢 ‘2011년 무렵 작성한 것 아닌가’
⊙ 비망록은 물론 메모지에도 없던 ‘1억원’은 왜 공소사실에 포함됐나?
⊙ 메모지에 적힌 ‘성동’이 서울 성동구 공천 의미한다고 했다가 ‘성동조선’이라고 번복
⊙ 자기 돈으로 MB 지원했다는 이팔성씨, 나중엔 성동조선으로부터 받은 돈이라고 진술
⊙ 메모지에 적힌 ‘사모’에 대해 처음엔 “모르겠다”고 했다가 “이상주 부인” → “김윤옥 여사”로 말 바꿔
⊙ 이팔성씨에 대한 MB의 評: “이분이 좀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 이팔성 측 변호인에게 反論 요구했으나 ‘묵묵부답’
  “MB와 인연 끊고 다시 세상살이 시작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30억원을 지원했다…. MB가 원망스럽다…. 다시 MB에 대한 증오감이 솟아나는 건 왜일까.”
 
  이른바 ‘이팔성 비망록’에 기록돼 있다는 내용 중 일부다. 우리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을 지낸 이팔성(74)씨가 작성했다고 알려진 이 비망록은 이명박(MB) 전 대통령 1심 유죄 선고에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특히 이씨는 MB 측에 수십억 원 상당의 돈을 건넨 사실을 비망록에 자세히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결국 MB는 이팔성씨로부터 돈을 받았음에도 이씨가 요구했던 한국증권거래소(KRX) 이사장직 등 고위직을 보장해 주지 않은 일종의 ‘파렴치범’으로 몰렸다.
 
  MB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 오는 12월 항소심 재판이 열릴 예정인 가운데, 《월간조선》은 최근 MB 수사자료를 비롯해 ‘이팔성 비망록’ 관련 자료를 입수, 그 내용을 면밀히 검증했다. 그 결과 의구심이 드는 부분을 여럿 발견했다.
 
  우선 이팔성씨가 MB 측에 제공했다는 뇌물에 관한 내역이다. 복수의 언론은 이팔성씨가 꼬박꼬박 작성해 온 문제의 ‘비망록’에 뇌물 내역이 기록돼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확인 결과 비망록엔 그러한 내역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뇌물 내역은 이팔성씨가 사후(事後)에 작성한 여러 장의 메모지에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메모지들이 이팔성씨가 MB 측에 돈을 제공한 시점부터 최소 2년, 최장 6년이 흐른 뒤에 작성됐다는 점이다. 메모 내용도 부정확해 신빙성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검찰 조사에서 이팔성씨는 MB 측에 건넨 뇌물의 액수, 돈을 수수한 사람, 돈을 건넸을 때의 상황 등 관련 진술을 여러 차례 바꾼 사실도 확인됐다. 지금부터 검찰 수사자료를 바탕으로 이른바 ‘이팔성 비망록’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본다.
 
 
  돈을 줬다는 이팔성씨, 부인하는 MB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이팔성씨로부터 총 22억 6230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현재 복역 중이다. 사진=조선DB
  이팔성씨는 지난 2월 24일 검찰 조사를 받았고, MB는 3월 14일 조사를 받았다. 2월 21일엔 이씨의 주거지와 사무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도 있었다. 시점상 MB를 소환 조사할 무렵, 검찰은 소위 ‘이팔성 비망록’의 존재와 그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먼저 MB의 피의자 진술조서를 보자. 검찰 측과 MB가 나눈 문답이다.
 
  〈문: 이팔성으로부터 압수한 메모 중 2007. 1. 24. 5000만원, 2007. 7. 29. 1억원, 2007. 8. 18. 2억원 등 합계 3억5000만원의 경우 ‘사모님’ 또는 피의자의 자택인 ‘가회동’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피의자가 직접 또는 피의자의 처(妻)를 통하여 이팔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답: 이건 우리 집사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런 일이 없습니다. 이건 ‘가회동’이라고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삼청동’이라고 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이팔성이 우리 집사람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저와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주고받을 사이가 아닙니다.〉
 
  검찰은 MB의 첫째 사위 이상주 변호사에 대해서도 추궁한다.
 
  〈문: 메모지 중 2007. 8. 6. 1억원, 2007. 12. 5. 1억원, 2007. 12. 10. 1억원, 2007. 12. 15. 5억원 등 합계 8억원의 경우 ‘이 변호사’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팔성은 첫째 사위인 이상주에게 이와 같이 돈을 건네주었다고 하는데 피의자는 사위 이상주로부터 그 돈을 건네받지 않았습니까.
 
  답: 이 변호사는 우리 이상주를 말하는 것입니까.
 
  문: 네 그렇습니다. 이팔성은 이 메모와 관련하여 이와 같이 돈을 이상주에게 건네주었다고 하는데, 사위 이상주로부터 이 돈을 건네받지 않았습니까.
 
  답: 전혀 그런 적이 없습니다.〉
 
  MB 측이 이팔성씨로부터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뇌물의 액수는 총 22억6230만원이다. 이 중 이팔성씨가 2007년에 건넨 돈의 액수는 총 16억5000만원으로, MB가 대선에 출마했던 시기와 겹친다. 따라서 이 돈은 대선자금 조로 MB 측에 건네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MB 본인은 이팔성씨로부터 이 같은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여기까지는 ‘돈을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없는’ 뇌물수수 사건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노트’와 ‘메모지’… “비망록에는 뇌물 건넨 내역 없어”
 
이팔성씨의 주거지를 압수할 때 검찰 측이 촬영한 사진. 위 두 장은 이팔성씨가 검찰 수사관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며, 아래 두 장은 이씨가 삼키려 한 메모지를 촬영한 것이다.
  이팔성씨는 총 일곱 차례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다. 날짜별로 정리하면 1차(2월 21일), 2차(2월 24일), 3차(2월 25일), 4차(3월 1일), 5차(3월 3일), 6차(3월 6일), 7차(3월 9일)이다. 검찰 측과 이팔성의 문답을 자세히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발견된다. 먼저 이팔성씨의 1회 차 진술조서(3260페이지)와 2회 차 진술조서(4050페이지)엔 이런 내용이 있다.
 
  〈(1회 차)
 
  문: 비망록 중 2006년, 2007년에 해당하는 노트, 그리고 2008년 5. 13. 이후 내용이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고의로 폐기했다면 전체를 폐기하지 일부만 폐기할 리 없습니다.
 
  (2회 차)
 
  문: 주거지에는 2006년 하반기, 2007년도, 그리고 2008. 5. 14. 이후 노트가 없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의적으로 폐기한 것은 아닌가요.
 
  답: 제 주거지에 와서 서재를 봐서 알겠지만 노트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만약 고의적으로 폐기하려고 했다면 2008년도 노트도 없애버렸겠지요. 고의적으로 폐기한 것은 아니고, 그 노트들이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검찰 측이 ‘없었다(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힌 비망록(진술조서에는 ‘노트’)의 부분은 이팔성씨가 MB 측에 돈을 집중적으로 건넨 때와 겹친다. 이에 대해 MB 측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검찰이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힌 시기의 ‘노트’는 이팔성씨가 MB 측에 돈을 건넸다고 주장한 시기와 거의 다 일치한다. 따라서 비망록에는 뇌물과 관련한 내역이 하나도 없었던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팔성씨로부터 MB 측이 받았다고 알려진 돈의 내역은 어디서, 어떻게 나온 걸까. 검찰 측 질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검사는 MB에게 ‘이팔성으로부터 확보한 메모’라고 했고, 이팔성씨에게는 ‘노트’라고 했다. ‘노트’와 ‘메모’는 그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 검찰은 왜 ‘노트’와 ‘메모’라고 구분해 두 사람에게 질문한 것일까? 이팔성씨의 검찰 진술조서를 검토한 결과, 검찰은 이씨가 MB 측에 건넸다고 한 뇌물 관련 질문을 이씨가 작성한 ‘메모’에 기반해서만 물었다. 비망록엔 앞서 언급한 ‘30억’이라고 적힌 게 전부였다. 이는 비망록엔 구체적인 뇌물 공여 내역이 없음을 의미한다.
 
  MB 측 변호인단은 메모의 신뢰성이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들은 “사후에, 그것도 급조한 듯한 메모의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며 “검찰은 신빙성이 낮은 메모의 내역을 사실로 단정, (MB를) 기소했다”고 지적했다. 메모지가 법적증거로서의 능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事後에, 급조한 듯한 메모 신뢰할 수 없어”
 
이팔성씨가 삼키려 한 메모지. 이씨가 메모지를 삼키는 과정에서 훼손된 듯 얼룩이 져 있다.
  시곗바늘을 잠시 이팔성씨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던 2018년 2월 21일로 돌려보자. 이팔성씨는 검찰이 주거지를 압수수색 하려고 하자 검찰 수사관들 앞에서 메모지 한 장을 삼키려고 했다.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이팔성씨는, 수사관 한 명의 손가락을 물어 상처를 내기도 했다. 검찰 측은 이 장면을 촬영해 증거(증거순번 146)로 남겨뒀다. 이팔성씨는 메모지를 삼킨 이유에 대해 “그 메모지를 보고 순간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MB 측 변호인단은 이씨가 ‘공무집행방해치상죄’가 적용될 수 있음에도 수사관의 손가락을 깨물고, 메모지를 삼키려 한 행동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설 연휴(2018년 2월 15~18일) 이전에 이팔성씨를 출국금지 하고, 압수수색을 설 연휴 이후인 2018년 2월 21일로 미뤘다. 통상 검찰이 압수수색을 할 때는 비밀리에 신속히 단행하는데, 이 같은 경우는 이례적이라는 게 변호인단의 시각이다. 공교롭게도 이씨는 2018년 2월 17일 필리핀으로 출국하려다 자신이 출국금지 된 사실을 알았다(재판 과정에서 확인). 즉 압수수색 전까지 5일간의 여유가 있었음에도 이팔성씨는 사실상 메모지를 방치하다가 압수수색 당일 삼키려 한 것이다.
 
  압수수색을 하면서 검찰이 확보한 메모지는 ‘A4 용지 크기의 메모지(총 1장)’를 비롯해 ‘사무실에서 압수한 메모지(총 5~6장)’ ‘주거지에서 압수한 메모지(총 2장)’ 등 총 세 종류였다(이씨가 삼키려 한 것은 주거지에서 확보한 명함 크기의 메모지). 메모지들이 작성된 경위부터 이팔성씨 1회 차 진술조서(3256~3258페이지)를 통해 알아보자.
 
  〈문: … 진술인의 주거지에서 크게 2종류의 메모지가 발견되었는데, 1종류는 1장으로 된 명함 크기의 메모지이고 나머지는 연도(年度) 및 일자(日字)별로 순서 없이 날짜, 이름, 금액이 기재된 메모지들인데 메모지를 작성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답: 제 주거지에서 압수하였던 노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매일 있었던 일을 적어 놓은 비망록이 있습니다. 비망록 중에 돈을 준 것만 추려서 다시 명함 크기의 메모지를 만든 것입니다.
 
  문: 비망록에 있었던 돈 내역을 다시 추출하여 메모지를 작성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답: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 명함 크기의 메모지를 보면 다른 메모지들 중 이상주 및 이상득 부분만을 추출하여 따로 작성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검찰도 의문을 가진 ‘메모지 작성 시점’
 
  이팔성씨는 메모지가 작성된 시점이 “회사(우리금융지주사)를 그만둔 2013년 6월경”이라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이 “2013년 6월 이후라면 굳이 만들 이유가 있는가”라고 묻자 이씨는 “잘 모르겠다. 직장 생활이 완전 끝나는 시점에 정리하는 입장으로 쓴 것 같다”고 주장했다. 메모지를 작성한 경위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한 것도 의구심이 든다고 MB 측은 주장하고 있다.
 
  검찰도 작성 시점에 의문을 가졌던 듯,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 문제가 대두된 ‘2011년 무렵 메모지를 작성한 것 아니냐’는 요지의 질문을 이씨에게 던진다. 메모지의 내용 중, 석연치 않은 부분을 검사가 추궁하자 이팔성씨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회 차 진술 조서(3258~3259페이지)의 일부다.
 
  〈문: 더 이해가 안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돈 준 걸 왜 정리한다는 건가요. 오히려 2011년 상반기 무렵에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문제가 대두되니까 그동안 MB 측에게 전달했던 금액을 전달하여 보여주기 위해 정리한 것 아닌가요.
 
  답: 천만의 말씀입니다. 2013년 6월 이후입니다.
 
  (중략)
 
  문: 메모지 중 이상주에게 준 돈의 경우에는 ‘이 변호사’ 또는 ‘이상주’라고 기재되어 있는 반면, 2007. 1. 24.자 및 2007. 7. 29.에는 ‘사모님’과 함께 MB의 삼청동 안가 및 가회동 자택이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MB의 배우자에게 돈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고, 명함 크기의 메모지를 작성할 때에는 ‘이상주’라고 정리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2007. 1. 24.자 및 2007. 7. 29.은 MB의 배우자가 직접 받은 것이 맞지요.
 
  답: (이때 진술인은 계속 생각하다.)
 
  문: 비망록을 보고 그대로 정리했던 것은 맞는가요.
 
  답: 예. 맞습니다.〉
 
  이어 검찰은 재차 “비망록 중 2006년, 2007년에 해당하는 노트, 그리고 2008년 5월 13일 이후 내용이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냐”며 ‘고의 폐기’ 여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이팔성씨는 “저도 잘 모르겠다. 고의로 폐기했다면 전체를 폐기하지 일부만 폐기할 리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비망록에서 옮겨 적었다는 세 종류의 메모지 내용, 약간씩 相異
 
이팔성씨 사무실에서 압수한 메모지. ‘2007년 12월 12일’에는 ‘500,000’이라고만 적혀 있다.
  이제 메모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차례다. 이팔성씨의 주장에 의하면 비망록에 기재돼 있던 뇌물 내역을 요약, 정리했다고 한다. 메모지에는 2007~2011년까지 MB 측으로 건너간 돈의 액수와 수령자 등이 적혀 있다. 물론 그 시기에 해당하는 비망록은 검찰이 지적한 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 종류의 메모지에 기재된 내용엔 약간씩 차이가 있다. 검찰 증거 기록을 보면, A4 용지 메모지에는 ‘2007년 4월 8일’이란 날짜만 있을 뿐, 돈의 액수가 ‘공란’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사무실 압수본 메모지에는 해당 날짜에 ‘100,000’이라고 액수가 적혀 있었다. 검찰은 이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1회 차 진술조서(3242페이지)의 내용 중 일부다.
 
  〈문: 메모지를 보면 2007. 8. 20. MB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4개월 남짓 지원을 하지 않다가 17대 대선이 임박한 2007. 12. 5. 1억원, 2007. 12. 12. 5억원 등 6억원을 이상주에게 전달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고, 아울러 다른 메모지에는 “12/5 이 변호사 100,000, 12/10 이 변호사 100,000(가회동 신한B), 12/12 워커힐 이 변호사 500,000”으로 기재되어 있어 처음 메모지와는 다르게 12. 10. 1억 부분이 추가되어 있고, 가회동 신한은행이라고 상세히 기재되어 있는데 처음 메모지에서 12. 10. 1억 부분이 누락된 것이 아닌가요.
 
  답: (이때 진술인은 메모지들을 비교해 보더니) 아무래도 2007년 4. 8.에는 1억원이 아니라 $10,000달러인 것 같고, 2007. 12. 10.에 가회동 신한은행 앞에서 이상주에게 건넨 것이 맞습니다. 작은 메모지로 옮겨 적으면서 잘못 기재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뒷 메모지를 보면 2007. 4. 8.에 $10,─로 표시되어 있고, 2007. 12. 10.에는 가회동 신한B라고 상세히 기재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팔성씨는 4회 차 검찰 진술조서(5678페이지)에서 2007년 12월 10일 1억원 내역이 빠진 이유에 대해 “이상주 부분만 추려내 작성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옮겨 적는 과정에서 실수한 것”이란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런데 7회 차 검찰 진술조서(6931~6932페이지)에서 이씨는 문제의 1만 달러에 대해 “사실 그 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상주에게 주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주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결국 2007년 4월 8일에 이상주씨에게 건넸다고 하는 1만 달러는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검찰이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모지에 등장하지 않은 돈에 대해서도 기소한 檢
 
이팔성씨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A4 용지’ 형태의 메모지. ‘2007년 12월 12일’에는 ‘500,000’과 함께 ‘100,000’이 적혀 있지만 ‘100,000’에는 가운뎃줄과 함께 물음표가 적혀 있다. ‘사무실 압수본’과 ‘거주지 압수본’ 메모지의 같은 날짜상에는 문제의 ‘100,000’이란 내역이 아예 기재돼 있지 않다.
  용처(用處)를 알 수 없는 돈이 기재된 경우도 있었다. A4 용지 메모지에 기록된 ‘2007년 12월 12일’에는 ‘500,000’과 함께 ‘100,000’이 적혀 있다. 그런데 ‘100,000’에는 가운뎃줄과 함께 물음표가 적혀 있다. 사무실 압수본과 거주지 압수본 메모지의 같은 날짜상에는 문제의 ‘100,000’이란 내역이 아예 기재돼 있지 않다. 이 대목 역시 MB 측의 주장대로, 이팔성씨의 기억이 부정확한 상태에서 메모지가 작성됐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든다.
 
  비망록은 물론, 세 종류의 메모지에 등장하지도 않은 돈이 공소사실에 포함된 경우도 있다. 2011년 1월 25일 MB 측에 건넸다는 1억원이 바로 그것이다. 이팔성씨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이 돈은 이씨가 우리금융지주 회장 임기 만료(2011년 3월)를 앞두고 이상주씨를 상대로 회장 연임 등 MB에게 잘 봐달란 취지로 건넨 돈이라고 한다. 이 내역은 비망록은 물론, 이팔성씨가 작성한 여러 종류의 메모지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7회 차 검찰 진술조서(6933~6934페이지)의 내용이다.
 
  〈문: 2011. 1. 25. 1억원은 여러 장으로 작성된 메모지에 그 내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답: 예. 그렇습니다. A4 용지 크기의 한 장짜리 메모지나 명함 크기의 메모지는 옮겨 적는 과정에서 실수로 적힌 것 말고는 전부 사실대로 작성한 것이어서 2011. 1. 25. 1억원도 사실로는 보입니다. 어찌 되었든 2011. 1. 25. 1억원만 여러 장으로 작성된 메모지에 없는 이유를 제가 도저히 모르겠고, 이런 상황에서 2011. 1. 25. 1억원에 대해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저로서도 답답합니다.〉
 
  이팔성씨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던 문제의 이 1억원은 뇌물로 인정,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MB 측은 “2007년 이씨로부터 받은 돈은 대선자금으로, 정치자금법이 적용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설명했다. 그런 이유로 검찰이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닌 ‘사전수뢰 뇌물죄’를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게 MB 측의 입장이다.
 
 
  이팔성은 ‘성동구’를, 이상주는 ‘성동조선’을…
 
  오락가락하는 듯한 이팔성씨의 진술은 성동조선 관련 부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팔성씨는 2008년 2월 13일 자 비망록에서 “MB에게 ‘성동’ 件 이야기함. 이 부의장과 상의할 것이라고 함”이라고 적었다. 여기서 ‘이 부의장’은 MB의 친형 이상득 의원을 지칭한다. 이에 대해 이팔성씨는 ‘성동’의 의미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2회 차 진술조서(4056페이지)에 적시된 그에 관한 이씨의 답변이다.
 
  〈경남 하동 지역구를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서울 지역 국회의원도 생각을 하던 때였습니다. 강남은 어려울 것 같아서 대안으로 성동구가 어떤지 말씀을 드렸고 그랬더니 이상득과 상의해 볼 거라고 했습니다.〉
 
  MB의 사위 이상주씨는 이 ‘성동’을 다른 의미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상주씨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이팔성씨가 우리금융지주 회장이었을 당시 어느 기업 관계자로부터 협박을 받는다는 얘기를 자신에게 했다고 한다. 이상주씨는 “기업 이름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이팔성씨가) 그 기업의 회장, 부회장으로부터 돈을 건네받아 저희 쪽(MB 측)에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검사가 “그 기업이 혹시 ‘성동’이란 이름의 회사가 아니냐”고 묻자 “아, 들어보니 맞는 것 같다”며 “성동조선이란 회사였다”고 답했다. 이상주씨의 진술 내용 중 일부다.
 
 
  “성동구에 대해 말한 것처럼 진술하였으나 사실 아냐”
 
  〈이팔성 회장이 ‘성동조선’ 얘기를 꺼내면서 저희 쪽에 자신이 제공했던 돈이 사실은 성동조선 돈이라고 얘기했었던 게 기억납니다. 그러면서 ‘성동조선’을 본인이 열심히 돕고 있다는 얘기를 제게 한 번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초 이팔성씨는 자신의 돈으로 MB 측을 지원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MB 측에 건넨 돈의 자금 출처를 묻자 2000년 초반 증권사 사장이었을 때부터 정치인이 되고자 돈을 모았는데, 그 돈으로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이다. 그러다가 성동조선 측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지원했다고 말을 바꿨다. 자신이 메모지에 적은 ‘성동’이 사실은 ‘성동조선’이었다고 번복한 것이다. 이팔성씨의 4회 차 진술조서(5695, 5698페이지)에서 옮겨본다.
 
  〈1회 조사 때 제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 어려움에 처하게 만드는 것이 싫어서 성동조선 돈이라는 얘기를 전혀 하지 않은 채 다 제 돈이라고 검사님께 말했습니다.… 2회 조사를 받으면서 2008. 2. 13.의 ‘성동 件’에 대해 그때 MB에게 성동구 지역구 국회의원 공천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처럼 진술하였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검찰 진술조서에 첨부된 이팔성씨 ‘비망록’의 일부. 확인 결과 비망록에는 MB 측에 돈을 건넨 구체적인 내역은 없다. 이씨 자신이 누굴 만났는지,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지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을 뿐이다.
 
  檢 ‘사실은 사실대로 진술해야’, 이팔성 ‘정말 유의하겠다’
 
  성동조선 측으로부터 받은 돈의 액수도 불분명하다. 당초 16억원을 받았다고 하다가 20억원을 받았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7회 차 진술조서에 의하면 검찰 측은 “진술인은 4회 조사에서는 성동조선으로부터 총 16억원가량을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는데 왜 금액이 다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씨는 “그때 제가 성동조선으로부터 받은 금액이 한 3억원 정도는 차이가 날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성동조선의 돈이라고 밝히는 것에 대해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게 있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때 이팔성씨는 검사로부터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주의’를 받기도 한다. 7회 차 진술조서(6923~6924페이지)의 내용 중 일부다.
 
  〈문: 성동조선의 돈이라고 밝히는 것에 대해 진술인에게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불법자금을 댄 것도 떳떳하지 못한데, 그 돈조차 제 돈이 아니고 거의 남의 돈이라는 것이 사실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더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졌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문: 그래도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진술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답: 예 맞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정말 유의하겠습니다. 적어도 4회 조사 이후로는 검사님께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리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동조선 김○○ 부회장에 의해 부정된 이팔성씨의 ‘RG’ 관련 주장
 
  그의 주장 중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은 또 있다. 이팔성씨가 성동조선의 경영이 어렵다는 사실을 MB에게 건의했다는 부분이다. 4회 차 진술조서(5699페이지)를 인용한다.
 
  〈성동조선 쪽에서 RG가 뒷받침되지 못하여 좋은 수주(受注)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동조선 쪽에서 제게 RG를 늘려줄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요청하였습니다.… MB에게 제가 대선 때 지원했던 자금 중에 상당 부분을 성동조선이 지원한 사실과 함께 성동조선을 포함하여 남해안의 중견 조선업체들이 수주는 많은데 RG를 못 받아서 선박 수출을 못하고 있으니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씀드렸습니다.〉
 
  ‘RG(Refund Guarantee)’란 선박 수주 업체가 발주(發注) 업체를 상대로 선박이 계약대로 인도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은행이 그 손실을 보증하는 보험제도이다.
 
  이와 관련한 이팔성씨의 주장 역시 성동조선 김○○ 부회장의 진술로 부정된다. 김○○ 부회장이 검찰에서 “2008년 당시에는 성동조선의 매출 규모가 크고 조선 경기도 아주 활황(活況)이어서 금융기관에 대한 RG 부분은 문제가 없던 상황이었다” “2008년 성동조선의 매출 규모나 실적 등을 보면 RG 계약은 걱정할 게 없었다”고 반박했기 때문이다.
 
 
  이팔성 ‘성동조선이 대선자금 제공한 사실, MB도 알았을 것’
  MB “이팔성, 근처에도 못 오게 내쫓았을 것”

 
  김 부회장의 진술에 따르면, 자신은 이팔성씨의 요구에 따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있던 2007년 8월 20일을 전후해 20억원을 이씨에게 건넸다고 한다. 이씨는 이 돈을 이상득씨를 비롯한 MB의 측근들에게 뿌렸다. 검찰은 이 돈의 존재를 이씨가 MB에게 직접 보고했는지 여부에 주목했다. 이씨는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진술인이 제공한 대선자금 중 상당 부분을 성동조선이 제공하였던 사실 정도는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묻자 “예. 그렇습니다”라고 답변했다.
 
  MB는 이팔성씨의 이 같은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씨가 성동조선 측으로부터 수수한 돈으로 대선자금을 지원한 부분, 성동조선 RG 문제 등에 관한 MB의 진술 내용이다.
 
  〈문: … 대선 때 이팔성이 지원했던 자금 중에 많은 부분을 성동조선이 지원한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는데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제가 만약 그 이야기를 들었으면 이팔성이 근처에도 못 오게 내쫓았을 겁니다. 이권(利權)에 개입했다고 하면 저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문: 비망록에 따르면 피의자는 이팔성으로부터 성동조선 관련 얘기를 듣고 이상득과 상의할 것이라고 얘기한 사실이 확인되는데, 맞습니까.
 
  답: 나는 이상득 의원에게 미룬 일도 없지만 이팔성씨가 아마 성동조선에서 돈을 받았다면 그 사람에게 면피(免避)를 하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문: 이팔성은… 성동조선 등 중견업체들이 수주는 많은데 RG를 못 받아서 선박 수출을 못하고 있으니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진술하는데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사모’에 대해 “모르겠다” → “이상주 부인” → “김윤옥 여사”
 
  이팔성씨의 일관되지 못한 진술은 이뿐만이 아니다. 비망록과 메모지에 등장하는 ‘사모님’이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을 바꿨다. 그의 2008년 3월 3일 자 비망록을 보면, “이상주 정말 어처구니없는 친구다… 소송을 해서라도 はち(하찌, 8)億Won 청구 소송할 것임. 나머지는 어떻게 하지… (師母께 할까)”라고 기록돼 있다. 또한 메모지에도 돈의 액수와 함께 ‘사모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모(師母)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도 검찰 수사에 있어 쟁점 중 하나였다. 이와 관련해 이팔성씨는 두 차례나 말을 바꿨다. 1회, 2회, 3회, 4회 차 진술조서의 관련 내용을 살펴보자.
 
  〈(1회 차)
 
  문: 진술인이 직접 MB 안가를 찾아가 MB의 부인에게 5000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답: 저도 왜 이렇게 메모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화를 했는데 사모님이 받았는지… 여튼 MB나 MB 사모님에게 준 적이 없습니다.
 
  (중략)
 
  문: … 앞서 1. 24.자 5000만원과 아울러 MB의 배우자에게 돈을 전달한 것 아닌가요.
 
  답: (메모지를 살펴보더니) 여기에 왜 ‘사모님’이라고 기재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회 차)
 
  문: 내용을 보면 “師母께 할까”라고 되어 있는데 MB의 배우자를 지칭하는 것인가요.
 
  답: (자세히 살펴보더니) 아닙니다. MB의 사모님에게는 준 적이 없기 때문에 MB의 사모님은 아니고 이상주의 사모님을 지칭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3회 차)
 
  문: 전회 진술에서 메모지에 기재된… ‘사모님’은 MB의 배우자인 김윤옥 여사가 아닌 이상주의 배우자 이○○인 것 같다고 진술했는데 맞는가요.
 
  답: 명함 크기의 메모지에 ‘이상주’라는 제목하에 금액을 정리했고, 이○○에 대해서도 ‘사모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상주의 배우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4회 차)
 
  문: 진술인은 전회(前回) 모두 사실대로 진술하였나요.
 
  답: 일부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문: 어떤 부분을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한 것인가요.
 
  답: 먼저, 메모지에 나오는 사모님은 이상주의 와이프가 아니고 김윤옥 여사님이 맞습니다.〉
 
  4회 차 검찰 조사에 이르러 ‘사모님’이 MB의 부인 김윤옥 여사를 말한다고 말을 바꾼 이팔성씨는 2007년 1월 24일 현금 5000만원을 가지고 서울 가회동을 방문, 김 여사에게 돈을 건넸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다. 이어지는 4회 차 진술조서(5679페이지)의 문답이다.
 
  〈문: 여러 장으로 작성된 메모지 중 아랫부분이 지금 진술한 상황에 대한 메모인가요.
 
  (메모지 제시)
 
  답: 예. 그렇습니다. 여기 ‘사모님’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바로 사모님에게 돈을 건네서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사모님께 처음 드리는 돈이기도 해서 그때는 사모님을 뵈었던 것 같습니다.
 
  문: 진술인은 김윤옥 여사와 그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 아닌가요.
 
  답: 사실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행사 같은 곳에서 얼굴 정도 보았고, 개인적으로 말을 주고받던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천으로 된 가방’에서 ‘검은색 마대자루’로 바뀐 진술
 
  이상득 의원의 비서 김○○을 통해 돈을 건넨 정황 역시 말을 바꾼 사례 중 하나다. 이팔성씨는 검찰 조사에서 대선 국면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2007년 12월 16일 김○○(를)을 통해 MB 측에 5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때 이팔성씨는 돈을 전달하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1회 차 검찰 진술조서(3246페이지)에서 옮긴다.
 
  〈1만원권 현금을 100만원 단위로 띠지 내지 고무줄로 묶어 천으로 된 가방에 1억원 단위로 넣어 5개를 만든 다음 제 차량 트렁크에서 가방 5개를 꺼내 김○○(이)가 타온 차량 트렁크에 옮겨 담았습니다.〉
 
  그런데 6회 차 검찰 조사에서는 이씨가 묘사하는 당시의 상황이 달라졌다. 돈을 담은 ‘천으로 된 가방’이 ‘검정색 마대자루’로 바뀐 것이다. 6회 차 진술조서(6418페이지)의 관련 문답이다.
 
  〈문: 당시 5억원은 어디에 담아 갔는지 기억하는가요.
 
  답: 그 5억원은 검정색 마대자루에 1억씩 담겨 있었습니다. 성동조선 측으로부터 받은 그대로 넘긴 것입니다.
 
  문: 진술인은 1회 조사 때는 “1만원권 현금을 100만원 단위로 띠지 내지 고무줄로 묶어 천으로 된 가방에 1억원 단위로 넣어 5개를 만든 다음 제 차량 트렁크에서 가방 5개를 꺼내 김○○(이)가 타온 차량 트렁크에 옮겨 담았다”고 진술하여, 지금의 진술과는 차이가 있는데, 어떠한가요.
 
  답: 그때는 제가 성동조선 부분을 얘기하지 않았고, 그래서 제가 직접 돈을 마련한 것처럼 말씀드리려다 보니 사실과 다르게 말한 부분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MB “(이팔성)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MB는 이팔성씨의 비중이나 대선 과정에서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팔성씨에 대한 MB의 평가를 MB의 피의자 진술조서에서 옮겨본다.
 
  〈문: 이팔성은 대선 정국인 2007년 김윤옥에게 3억5000만원, 이상주에게 8억원, 이상득에게 5억원을 제공한 것은 당내 경선 및 대선을 치르는 피의자를 지원하는 한편, 피의자의 마음을 얻으려는 의도로서 실질적으로는 피의자에게 주는 돈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데 어떻습니까.
 
  답: 본인이 어떻게 기여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이팔성에 대하여 그렇게 크게 선거에 기여하였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문: 이팔성은 2007년경 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도 자신이 정책금융기관장이 될 생각으로 피의자에게 ‘금융소외자를 위한 정책 금융기관 설립’안을 제안하는 한편,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금융기관장이나 정치권에 저의 포부가 있습니다’라는 부탁을 직접 하였다고 진술하는데, 이팔성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은 사실이 있습니까.
 
  답: 이팔성이 그런 이야기는 저에게 못할 것 같습니다. 사람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제대로 말도 못하는데 그런 말을 했을 거 같지 않습니다.
 
  문: (“MB와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始作해야 되는지 여러 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라는 메모지를 보여주자)
 
  답: 이분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저는 모르는 내용입니다. 이분이 대통령께 직접 국회의원을 하고 싶다, 어쩌고 싶다 할 처지도 아니지만, 이분이 좀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이팔성씨 변호인 측 ‘묵묵부답’
 
  상기 내용들을 근거로 이팔성씨 측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그의 변호인과 접촉했다. 두 차례 전화를 걸어 이씨 측의 입장을 들어보고자 했으나, 변호인은 이를 거절했다. 재판 중인 사안이라 그에 관한 입장을 밝히는 게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MB 측 변호인단은 “이팔성 뇌물 혐의를 비롯해 MB 혐의 전반에 대한 검찰의 수사 내용은 중계방송 수준으로 언론에 보도됐고, 그로 인해 MB를 비난하는 여론이 고조됐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중국에서는 문화혁명 때 마오쩌둥(毛澤東)을 지지하는 ‘홍위병(紅衛兵)’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여론이 유도,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습니다. 결국 중국의 발전을 몇십 년 전으로 후퇴시켰습니다. 이러한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전직 대통령의 재판에 임하는 항소심 재판부가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법률에 기반해 엄격한 증거에 의해 판결을 내릴 때 역사는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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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니    (2018-11-29)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2
이맨 바꾸도 시멘토를 마니 만지고 겨랙 약에 쪼려서 가끔씩 띵 한데가 있었어, 팽창 오림피쿠 초청장 받았다고 참석하는 순진 무구지. 며칠 있다 새빨치 차고 끌려가는 줄 도 모리고.

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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