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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총선 새누리당 막장공천 秘話

“대통령(박근혜)은 여당 대표(김무성)를 본인 집(여당)의 세입자 정도로 생각했다”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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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공천제와 정당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김무성의 꿈은 좌절

⊙ 2009년부터 삐걱거린 박근혜–김무성, 대통령–당 대표 체제에서 黨靑 간 완전한 不通으로
⊙ 박근혜 대통령-김무성 대표 시절 직접 전화통화 한 적 없어… 청와대 정무라인이 傳言만
⊙ 청와대 핵심 비서관, “대통령에게 다른 이야기 안 하고 말 잘 듣는 충성스러운 80~90명의 의원만 당선되면 좋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
⊙ 당시 논란이 됐던 ‘청와대 살생부’, 진짜 있었을까? 명단은?
⊙ 친박 의원들 “김무성이 대표라고 까불지 마라” “공천 안 줄 거다, 괴롭힐 거다” 등 막말 퍼레이드
⊙ 친박이 무소불위였던 이유는 박 대통령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과 지분이 공고할 것으로 굳게 믿었기 때문
2015년 4월 16일 남미 순방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마주앉았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당청관계로 단둘이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국회 의석수 100석이 넘는 제1야당이자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20%를 넘지 못하는 형편이다. 보수정당이 몰락한 것은 물론 박근혜 정권 탄핵이 가장 큰 원인이다. “탄핵까지 가는 상황을 막을 수 없었을까”라고 생각하는 보수 세력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시점은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당시다.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당을 무시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막장공천’이 보수 세력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새누리당은 당시 공천 파동으로 과반수는커녕 야당 더불어민주당(123석)에도 뒤지는 122석을 얻는 데 그쳐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을 불러왔다. 전통적 텃밭인 영남권에서도 65곳 중 17곳을 뺏겼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당청 간 불통(不通)이 연일 화제에 오르고 소위 옥새(玉璽) 파동까지 일어날 정도였던 사상 최악의 공천은 왜 일어난 것일까. 10여 년간 김무성 당 대표의 최측근으로 ‘김무성의 복심(腹心)’이라 불렸던 장성철 전 국회 보좌관이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저서 《2022년 보수집권 플랜(가제)》을 5월 말 출간한다. 《월간조선》이 책 내용을 단독 입수해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박근혜, 원조 친박이었던 김무성에게 “그렇게 장관 하고 싶냐” 힐난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청와대의 뜻에 따라 공천을 ‘사천’으로 변질시켰다.
  김무성 전 대표는 2007년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맞붙었던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도왔던 원조 친박이며 친박 좌장으로 불렸지만 그 호칭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근혜-김무성의 삐걱거림은 2009년 5월 새누리당 친이계에서 제기한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을 박근혜 전 대표가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김무성 의원은 친이-친박의 가교가 돼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한 밑거름이 되겠다는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으로 정무장관 또는 원내대표로 추대한다는 당내 의견을 받아들였지만, 박근혜 전 당 대표의 반대가 심했다. 대표직은 내놓았지만 친박이라는 계파의 수장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이 막강한 시기였다. 박 전 대표는 김무성 의원에게 “그렇게 장관이 하고 싶냐”고 힐난했다.
 
  2010년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을 놓고 친이-친박이 대립할 때 친박 좌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은 친이계가 주장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충청도민들의 입장을 고려한 절충안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는 대변인 격이었던 이정현 의원을 통해 “한마디로 가치 없는 얘기다.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며 김무성 의원을 ‘친박 좌장’에서 파문시켰다.
 
  이후 김무성 의원은 원내대표로 추대됐고, 2012년 대선 때는 총괄선대본부장을 맡는 등 친박이라는 굴레를 벗고 당의 핵심 세력이 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김 의원은 친박계로부터 모욕과 수모를 당하는 신세가 된다. 2014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새누리당 당헌은 당의 중요한 사안을 최고위원회에서 의결하는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고 있어 친박 세력이 최고위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무성 대표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혔다.
 
  김 대표는 여의도연구원 원장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을 내정했다가 서청원 의원 등 최고위원들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됐다. 또 당이 대대적인 당무감사에 나섰을 때도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보복성 표적 감사’라고 강력 반발해 현직 의원의 당협은 제외하고 원외 당협에 대해서만 당무감사가 이뤄졌다.
 
 
  김무성–문재인 회동 후 친박의 원색적 비난 시작
 
20대 총선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만나 오픈프라이머리 등 국민경선 방식에 대해 의논했다.
  2015년 9월 추석 연휴 때 김무성 대표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20대 총선 공천과 관련, 권역별 비례대표, 안심번호 여론조사, 오픈프라이머리 등에 대해 원칙적 공감대를 합의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김 대표와 친박의 대치가 시작됐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무성을 용서하지 않겠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장 소장의 의견을 그대로 옮기면 〈심하게 말하자면 “당신(김무성)이 무슨 권한으로 그런 주제 넘는 짓을 하느냐”는 비아냥도 있었던 것 같다. 친박들은 ‘당의 주인은 우리다’라는 동지의식이 강했다〉. 그는 “대통령과 친박은 여당 대표를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월세 세입자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며 “세입자가 내 집에 왜 인테리어를 하겠다고 나서느냐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총선이 있는 2016년이 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정당민주주의의 근간인 공천을 정당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무성 대표와 주변인들은 친박의 이런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당시 친박계가 무소불위였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해서도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성철 보좌관은 청와대 모 비서관에게 “권력이란 언젠가는 내리막길을 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 후 보수와 TK에 지분을 갖고 영향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공천 과정에서 김무성 대표를 찾아와 ‘청와대 메신저’를 자처했던 A씨도 “박근혜의 영향력은 퇴임해서도 유지될 거고, 다른 대통령하고는 다르다”며 “청와대 말 안 들으면 ‘훅’하고 대표를 쑤시고 들어올 텐데 이대로 가다가는 대표나 청와대가 입을 상처가 크기 때문에 내가 역할을 해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천 전 나타난 ‘청와대 메신저’
 
  2016년 2월, A라는 인물이 김무성 대표를 찾아온 것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A는 김 대표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당료로 일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인물로 정당, 청와대, 공공기관 등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은 바 있다. 장 소장의 말에 따르면 “무대(김무성)가 잘나가면 곁에 있다가 좀 못나간다 싶으면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인물이다.
 
  A는 “청와대와 당이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이 문제”라며 자신이 청와대 인사들과 막역하니 당청 간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보좌진은 A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지만 김 대표는 오랜 시간 정치 역경을 함께한 경험 때문인지 A의 얘기에 “한번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는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과 전화통화 한 번 할 수 없을 정도로 대통령으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상황이었고, 대통령과 당 대표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대는 세월호 사태 직후 30분간 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장성철 보좌관 등 당청 인사들과 친밀한 김 대표의 측근들도 이미 청와대에서 ‘찍힌’ 상태여서 청와대와 소통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공천을 잘해야 총선에서 이긴다는 정도로 아주 낮은 수준의 소통만이 가능했다.
 
  김 대표는 처음엔 A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A는 당시 청와대 정무라인이며 실세인 현기환 수석, 신동철 비서관과 막역한 사이인 것은 분명했다.
 
  A는 ‘청와대의 의중’이라며 수많은 이야기를 전했다. 다음은 A가 공천 과정에서 “청와대의 뜻”이라며 김무성 대표에게 직접 했던 말들이다.
 
  ◆공관위 구성 관련
 
  ― 공천관리위원은 당 최고위원의 추천과 상관없이 청와대에서 절반, 김무성이 절반을 추천하자.
 
  ― 박 대통령은 (공관위원장에 대해서는) 요지부동이다. 오로지 이한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주변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다.
 
  ― (당이 추천한) 모씨는 안 된다. TV평론을 하면서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적인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공천 관련
 
  ― (청와대와 당이) 서로 공천을 나누자. 서로 공천하고 싶은 사람을 추천하고, 양측에서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은 탈락시키자.
 
  ― 이 사람들은 공천을 주면 안 된다. 이◯◯, 유◯◯, 정◯◯, 김◯◯, 조◯◯, 김◯◯, 김◯◯, 김◯◯, 박◯◯ 등이다.
 
  ―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른 이야기 안 하고 말 잘 듣는 충성스러운 80~90명의 의원만 당선되면 좋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 특히 김◯◯, 김◯◯, 박◯◯ 등은 절대로, 끝까지 공천을 주지 않겠다. 주더라도 괴롭혀서 마지막에 주겠다.
 
  김무성 대표가 이 같은 얘기에 황당해하며 “이◯◯나 김◯◯ 지역구에 다른 사람을 공천하면 누가 경쟁력을 갖고 이길 수 있냐”고 하자 A는 “그런 사람들 다 떨어지고 박근혜 대통령 말 잘 듣는 80~90명만 당선되면 좋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라고 말해 김 대표를 경악게 했다.
 
  공천 당시 정두언 의원이 언론에 폭로했던 메모 형식의 ‘청와대 살생부’도 A가 전달한 것이다. 김 대표는 살생부를 받아들일 뜻은 전혀 없었지만 국회에서 우연히 만난 정두언 의원에게 “청와대 측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어 걱정이 된다”고 전했고, 이에 흥분한 정두언 의원이 모 기자에게 “청와대 살생부가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친박에 넘어간 최고위
 
20대 공천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는 서청원, 원유철 의원을 비롯한 친박이 점령했다.
  공천은 정당 주도로 상향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김무성 대표는 A의 얘기에 거의 동조하지 않았고, A의 말이 청와대의 뜻이라고 100% 믿지도 않았다. “김◯◯ 등은 절대로 공천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는 A의 얘기에 기막혀하며 “자기들이 뭔데 그런 얘기를 하느냐?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당 운영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당시 집단지도체제로 최고위의 의결이 없으면 주요 당무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김 대표와 함께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들은 애초 친박과 비박의 비율이 비슷했다. 그런데 2016년 초 당이 총선 준비 체제에 돌입하면서 최고위원회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이 친박계로 넘어간 것이다.
 
  ‘친박 행동대장’은 ◯◯◯ 최고위원이었다. 장 소장은 “새누리당을 망친 제1의 ××가 ◯◯◯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의원은 유승민 원내대표 시절 정책위의장으로 함께 일한 ‘러닝메이트’였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2015년 7월 청와대와의 갈등으로 물러날 때 정책위의장도 함께 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 의원은 김무성 대표를 찾아와 “원내대표를 꼭 하고 싶다, 대표가 원하는 상향식 공천을 꼭 하겠다, 한 번만 믿어달라”고 호소했고, 김 대표는 이를 믿었다.
 
  원내대표에 취임한 ◯◯◯ 의원은 청와대에서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김무성 대표에게 했던 이야기와는 반대의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고 상향식 공천은 완전히 반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청원 최고위원을 제외하면 친박계가 최고위에서 큰소리를 내는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 최고위원에 이어 김태호 최고위원, 이인제 최고위원이 차례대로 청와대와 친박계의 의견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 최고위원은 ‘친박 행동대장’으로 김무성 대표에게 큰소리를 치고 삿대질까지 하곤 했다.
 
  이한구 전 의원을 공관위원장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김 대표를 몰아세운 사람도 ◯ 최고위원이었다. 그가 선봉에 나서고 친박 최고위원들이 김무성 대표를 몰아세우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김 대표는 당청관계에 대해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親朴계의 막말 퍼레이드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 측과 원유철 원내대표의 이한구 공관위원장 임명 요구에 보름 정도를 “이한구는 안 된다”고 버텼지만 청와대의 오더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최고위원들을 설득할 방법도 없었고, 대통령을 설득할 방법은 더더욱 없었다. 현기환 정무수석이 “형님 걱정 마시라, 이한구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느냐”고 김 대표를 설득하기도 했다. 결국 국민공천제를 실현하기 위한 안심번호 여론조사 등에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던 김 대표는 최고위원들의 압박과 시간상 이한구 공관위원장 카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한구 위원장은 임명장 수여식날 김 대표와의 악수를 거부하고 뒷짐을 지고 있어 당직자들의 분노를 샀다.
 
  친박계 의원들은 ‘비박’인 김무성 대표와 그 주변인들에게 막말을 퍼붓곤 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당 사무총장과 부총장이 공천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자 그들을 농반진반으로 이렇게 말하며 약 올렸다. “당신들이 자꾸 김무성 대표한테 회의 내용을 보고하는 것 같아. 당신들과 회의를 함께 못하겠어. 당신들도 공천 안 줄 거야! 그 지역도 어렵지? 애먹이다가 맨 나중에 줄 거야.” 친박을 등에 업은 이한구 위원장은 “공천문제는 김무성 대표와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친박 핵심이었던 이정현 의원은 청와대에서 나와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화려하게 국회로 복귀했는데, 장성철 소장과는 당 사무처 시절 대변인실에서 함께 근무한 사이다. 어느 날 국회에서 김무성 당 대표의 보좌관이었던 장 소장을 만난 이 의원은 무척이나 모욕적이고 험한 말을 했다. 청와대와 친박들의 보편적인 생각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의원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김무성은 감이 안 된다. 부관참시할 필요도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친박과 김무성계는 원래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들로 개인적으로는 모두 막역한 사이였지만 청와대와 친박의 이 같은 입장 변화에 갈등은 더욱 깊어져 갔다. 심지어 청와대 행정관들이 ‘당(김무성)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2015년 5월 장 소장이 친하게 지내던 청와대 행정관과 통화하던 중 행정관이 ‘법조인 출신이 총리로 임명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한 기자가 이를 선배인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보고했고, 이 청와대 출입기자가 청와대 대변인에게 관련 질문을 하자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민정수석실이 누설자를 찾아내려 조사에 착수했고 장 소장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행정관 3명은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문자, SNS 등을 모조리 조사당했다. 이들은 계좌까지 털리는 취조 이상의 조사를 받았다. 민정수석실은 “당신들은 왜 장성철 보좌관과 연락하고 밥을 먹느냐”고 추궁했고 이들은 김무성 대표 측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청와대에서 나와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개입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는 공천 개입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지난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직선거법상 부정선거운동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4·13총선 여론조사 명목으로 국정원으로부터 5억원을 받는 등 당시 선거에 부정하게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기환 정무수석은 친박 인사들을 공천하기 위해 2015년 11월 약 120회에 달하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의 목적은 박근혜 대통령의 ‘친위대’ 역할을 해줄 국회의원들을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서다. 검찰은 청와대가 새누리당 비박계 현역의원 배제, 친박인물 대거 국회의원 당선, 친박 세력 확대 및 새누리당 주도권 확보 등의 목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고 파악했다.
 
  청와대는 이 여론조사를 친박 의원들과 공유하며 당과 공천관리위원회를 압박했다.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은 2015년 12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친박 의원들과 이 여론조사 결과를 공유했다. 또 최 의원은 친박 인물의 적정성 검증 및 추천, 친박 리스트, 지역구별 경선 및 선거 후보자 지지도 현황 정리, 대구·경북 등 4개 광역지구별 경선·공천 전략 수립,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안 등 친박 정치인에게 유리한 공천 룰 검토자료를 작성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문건들에 대해서도 보고받았다.
 
  이어 최 의원은 2016년 2월부터 3월까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에 친박 리스트와 공천 룰 검토자료 등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특정 친박 후보자의 출마지역 변경과 특정 지역구 출마 종용을 지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유력 친박 현역의원의 당선을 위해 경쟁 후보자의 포기를 종용하도록 했고 배제 대상 비박 의원과 경쟁관계에 있는 특정 친박 후보는 연설문을 제공하는 등 직접 지원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옥새 파동’은 친박계가 퍼뜨린 이야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016년 3월 24일 ‘막장공천’에 당 직인을 찍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부산 영도로 내려갔다.
  2016년 3월 24일 후보 등록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김무성 대표는 “막장공천에 의결하지 않겠다”며 최고위원회를 열지 않기로 하고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향했다. 언론은 “김무성 대표가 친박 공천에 반발해 당 직인을 들고 부산으로 향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옥새 파동’이다. 그러나 이는 친박 최고위원들이 퍼뜨린 얘기였다. 당시 직인은 당 총무국에 보관돼 있었고, 김 대표는 그동안 제대로 돌보지 못한 본인 지역구로 내려간 것이 전부였다.
 
  이에 친박 최고위원들은 “대표 유고 상황이니 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공천을 마무리하자” “김 대표를 인장 절도 혐의로 형사고발 해야 한다” “대표 직인을 새로 파면 된다” 등을 주장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친박계는 당장 당 금고를 열어 직인의 소재를 확인하라거나 직인을 새로 파라는 등 당직자들을 협박하다시피 했다. 김 대표의 보좌진은 당헌당규상 대표 유고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당직자들의 판단 및 보고하에 대표와 함께 당사로 돌아와야 했다.
 
  김 대표는 결국 공천을 거부했던 5명 중 3명은 공천보류, 2명은 공천을 준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좌진은 반발했지만 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당과 선거를 위해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내 고집대로 해서 5명 다 공천을 주지 않으면 최고위원들이 반발하고 사퇴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도부가 붕괴된 상황에서 우리는 총선을 치러야 한다. 이번 결정이 나의 앞길에 불리하고,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당 대표로서 당과 선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무성 대표가 더 당당하게 청와대에 맞섰어야 했다거나 ‘자기 사람 심기’를 조금이라도 했어야 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김 대표는 “국민이, 주민이 선택하게 만들어야지 누가 누구를 심사해서 공천을 좌지우지하느냐”며 당헌당규에 따른 시스템 공천, 국민공천, 정당민주주의를 위한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장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조금만이라도 김무성 대표를 존중했으면 사달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천 과정에서 대통령의 태도는 ‘당 대표가 내 지시를 따르면 되지 무슨 상의를 하려고 하느냐, 상의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라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대통령의 뜻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중간에서 곡해한 점도 있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물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감옥에 있는 당시 실세 청와대 비서관에게 “이 일들이 모두 VIP(대통령)의 뜻이냐”고 물었더니 “VIP의 뜻을 조금이라도 어겼으면 우리가 살아 있겠냐”고 답했다고 한다.
 
 
  김무성 불출마선언 그 후
 
  김무성 대표는 2016년까지만 해도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강력한 대권 후보였다. 김 대표의 보좌진은 2014년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궁극적으로 김무성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NEW M(무성) PLAN〉이라는 장문의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2016년 11월 23일 전격적으로 대선 후보 불출마를 선언했다. 선언 전날 김무성 대표는 A 등 몇몇 인사와 회의를 했고, 이들은 “김 대표가 불출마해야 반기문 총장 등 새 인물을 영입해 보수통합도 할 수 있고 대표의 활로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A는 대선 승리를 위해 김 대표가 의원직을 사퇴할 정도의 정계은퇴 수준의 선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보좌진은 김 대표의 불출마 선언에 반발했지만, 김 대표는 “보수가 어려운 상황에서 친박들이 헤게모니를 향유하고 있는 한국당은 국민의 지지를 다시 받을 수 없다”며 “보수를 위한 새로운 둥지가 필요하고 반기문 총장 등 새 인물을 영입해 보수통합 후보를 내기 위해서도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바른정당은 이렇게 탄생했다.
 
  김무성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보수대통합 및 보수단일후보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으며 후보단일화 및 대연정 보고서를 작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완주를 단행해 보수대통합이라는 목표는 꺾이고 말았다.
 

  [인터뷰]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
 
  “정치권에 입문하는 후배들에게 도움 되고 싶어”
 

  장성철 소장은 “《월간조선》과 인터뷰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매월 《월간조선》을 탐독했고 《월간조선》이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저의 청소년기(1980년대)를 함께한 책이죠.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시절 정치의 이면을 심층보도하는 기사들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어른이 된 후에도 빠짐없이 읽었고요. 이런 권위 있는 잡지와 인터뷰를 하게 돼 영광입니다.”
 
  장 소장은 국회 보좌진으로 일하고 있거나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를 만들고 싶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책은 장 소장이 정치권에서 겪었던 이야기들과 함께 그가 굵직한 정치적 현장에서 작성했던 정무보고서, 연설문, 프로젝트안(案), 창당계획서 등을 제공하고 있다. “보좌진이 어떤 직업이고 국정감사를 어떻게 하는지 등에 대한 책은 있는데 정치현안에 대한 정무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전당대회와 선거는 어떻게 준비하고 정당은 어떻게 창당하는지에 대한 참고서는 없어요. 그간의 경험으로 체득한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어서 책을 썼습니다. 또한 오해를 많이 받고 있는 김무성 전 대표에 대한 진짜 얘기도 들려주고 싶었어요.”
 
  이 책은 참으로 흥미롭다. 50여 페이지 정도 속에 2016년 ‘공천 과정 중에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와 ‘김무성 당 대표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 등 알려지지 않은 많은 얘기가 들어 있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또한 부록으로 첨부된 15개의 정무판단 보고서는 국회 보좌진과 지망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공보 분야를 담당하면서 체득한 ‘언론을 대하는 7대 원칙’은 기자가 읽어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장 소장은 1996년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사무처 당직자 공채로 정치권에 들어왔다. 신한국당의 후신 한나라당이 1997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1998년부터 이부영 당 원내총무의 수행비서로 근무했던 그는 2000년 이부영 의원의 국회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06년 박근혜 경선 캠프, 2007년 이회창 대선 캠프를 거쳐 2009년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의 보좌관이 됐다.
 
  당시 홍사덕 의원과 김무성 의원으로부터 동시에 보좌관 제안을 받았던 그는 정치적 스승인 이부영 의원에게 조언을 구했고, 이 의원은 “무성이가 앞으로 큰일 할 사람이다, 무성이와 일해라”라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김무성 의원을 보좌한 장 소장은 기자들 사이에서 ‘김무성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꼽힌다. 김무성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지낼 때는 당을 가장 잘 아는 보좌관으로서 김 의원의 당무를 사실상 책임지다시피 했다.
 
 
  뜻밖의 청와대행 좌절
 
  2006년 박근혜 경선 캠프에서 공보팀장을 맡았고 2012년 대선 캠프에서도 공보팀장을 맡았던 장성철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청와대 입성 명단에 올랐다. 공신(功臣)으로 당연한 절차였다. 그러나 인사 명단의 경력란을 꼼꼼히 살펴보던 박근혜 대통령이 그의 이름을 보고 이렇게 얘기했다. “왜 이부영(의원) 전 보좌관이 여기 있지요?”
 
  2000년대 중반 이부영 의원이 열린우리당 당 의장이었던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로 카운터파트(counterpart) 관계였다. 이부영 의장은 당시 박근혜 대표를 ‘독재자의 딸’이라며 거세게 공격했다. 이부영 의원은 그에게는 정치적 스승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직 인수위까지 참여했던 그의 청와대행은 좌절됐다.
 
  20여 년간 국회 보좌관, 즉 공무원 신분을 유지해 왔던 그는 최근 국회를 그만두고 여의도 국회 앞 한 빌딩에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공론센터)’를 열었다. 보수 정권의 몰락에 대한 아쉬움과 반성,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의 충전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실무자가 아닌 자유로운 입장에서 보수의 위기에 대해 할말은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국가 운영에 이바지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김무성 의원을 모시면서 그런 꿈에 한 발 가까워지는 듯했지요. 하지만 지금 보니 권력은 허무한 것이고, 잘못하지 않아도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위험해질 수 있는 게 권력이더라고요. 보수 정권이 이렇게 무너지고 나니 그동안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축적했던 에너지가 고갈된 것 같아서 국회를 나오게 됐습니다. 그래도 내 청춘의 평생을 몸담아온 여의도를 떠날 수는 없고, 능력이 부족하지만 낭떠러지에 떨어진 보수 진영이 새롭게 태어나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 되고 싶어서 공론 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정치평론과 정책대안 제시를 해보고 싶어요.”
 
 
  한국당이 지역정당 되지 않으려면
 
  장 소장은 “보수가 살아나려면 ‘박근혜를 버리고 새로운 인물을 키우는’ 영 라이트(young right)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15년 동안 보수는 전설과도 같은 선거의 여왕 박근혜를 빼고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익숙함을 버리지 않고 미래를 개척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출발점은 박근혜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미래가 없어요. 보수가 친박이냐 아니냐 탄핵에 찬성했냐 반대했냐 하며 서로 으르렁거리는 게 얼마나 한심합니까. 보수는 저급한 싸움박질과 내부 분열로 망했습니다. 계파를 배경으로 당을 좌지우지했던 정치인들은 물러나고, 새로운 지도자를 길러야 합니다.”
 
  장 소장은 “이번 6·13 지방선거는 자유한국당의 처절한 패배가 확실해 보인다”며 “최악의 경우 과거 자민련처럼 TK(대구경북) 지역정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방선거 후 자유한국당 홍준표 체제가 끝나고 야권 정계개편 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로 보수가 분열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선거 후 황폐해진 보수 진영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두 가지 큰 흐름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는 ‘보수대통합’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 세력의 세대교체’입니다. 어느 쪽이든 다음 보수당의 당 대표는 보수대통합의 명분과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철저하고 진정성 있는 반성을 토대로 혁신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사심 없이, 본인이 무엇이 되겠다는 욕심 없이,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진영의 누구든 품고 갈 수 있는 포용력과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어야죠. 그런 사람이 누가 있냐고요? 그건 국민이 판단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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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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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ㅇ    (2018-05-29)     수정   삭제 찬성 : 8   반대 : 21
ㅎㅎㅎ 김무성 영웅 대 서사시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낯이 간지러울 지경이네 무슨 쓰레기 소설책을 이렇게 길게 광고도 해주고
  가로팔로    (2018-05-25)     수정   삭제 찬성 : 15   반대 : 3
권세진기자???ㅋㅋㅋ 안 부끄럽나???김무성같은 자를 선량함과 우직함으로 포장하려는 노력이 눈물나는군. 여기서 기자다운 사람은 그나마 문갑식,배진영 이 두 사람 밖에 없구나. 기자로서의 자질이 매우 의심됩니다.과연 다음 총선에서 김무성이 지금의 지역구에서 당선 될 수 있으려나...해당 지역구 사람들. 김무성에 대해 좋게 얘기하는 사람...단 한명도 못 봤는데...
권세진씨는 이런 기사 써놓고 안 부끄럽소???

  갓번    (2018-05-24)     수정   삭제 찬성 : 4   반대 : 2
선거를 앞두고 이런 글이 왜 기어나오는지^^
당시 김무성파워가 어땠는지 아는사람들이 이글보면 무슨생각할까 ㅋㅋㅋㅋ 김무성이무슨 피해자인것처럼 쳐써놨네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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