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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대 DJ - 친노 과거사 폭로전

‘상하이 총영사’ 박선원, 노(盧) 정부 ‘BDA 해결사’였나?

박선원 회고록에 드러난 ‘BDA 2500만 달러’의 진상(眞相)

글 :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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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결 해제된 BDA 북한 비자금 2500만 달러 송금을 둘러싼 한-미-북의 줄다리기
⊙ 북한이 2500만 달러 안 찾아가자 수출입은행과 한국은행을 통한 송금 방안 구상한 박선원과 미 재무부
⊙ 박선원, “산업은행이든 수출입은행이든 국책은행을 하나 준비해 주십시오”
⊙ 박선원이 밝힌 문재인 비서실장과 한은 총재와의 만남은 사실인가?
⊙ “BDA에 대해 할 말 많지만… 지금은 때 아냐”(노무현 정부 고위 관계자)
⊙ “외교부가 하는 일 지원한 것… ‘밀사’란 표현 적절치 않아”(박선원 측)
  지난 1월 2일 재외공관장 인사에서 중국 주재 상하이(上海) 총영사로 박선원씨가 발탁됐다. 박선원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국장,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박씨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실무 차원에서 주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박씨는 외교·안보 자문역(2012년)과 캠프 안보상황단 부단장(2017년)으로도 활동했다.
 
마카오에 있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전경.
  2011년 발간된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 《운명》에 따르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 실무 추진회의(속칭 ‘안골모임’)가 구성됐을 때 박씨는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백종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만복 국정원장과 함께 참석했다고 한다. 박선원씨는 연세대 재학 중 삼민투위(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으로,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거사건 당시 배후 인물로 지목돼 구속, 2년 6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그는 2010년 민주당 ‘천안함 사건 진상조사특별위 자문위원’ ‘국회 천안함 진상조사특별위 전문위원’으로 있으면서 천안함 폭침의 북한 소행을 부정하는 주장도 했다.
 
 
  국책은행 두 곳을 ‘BDA 자금’ 송금 루트로 활용하려 하다
 
박선원씨가 쓴 회고록 《하드파워를 키워라》.
  박선원씨가 2012년 발간한 회고록 《하드파워를 키워라》에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외교·안보 정책 관련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 있다. 이 책엔 2007년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 은행(Banco Delta Asia Bank·이하 BDA)에 예치된 북한의 비자금 2500만 달러의 동결 해제를 위해 박씨가 미국 재무부와 협상을 벌인 기록이 담겨 있다. 최근 주한 미국대사 물망에 올랐다가 낙마한 빅터 차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등장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북한이 동결 해제된 2500만 달러를 찾아가지 않자, 박씨가 미 재무부의 지원하에 수출입은행과 한국은행을 동원해 문제의 2500만 달러를 북한에 송금을 하려 했다는 부분이다. 북한의 비자금 송금을 위해 우리 국책은행 두 곳을 중개 루트로 활용하려 한 셈이다.
 
  BDA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2005년 9월 미 재무부는 BDA를 돈세탁 우려 은행으로 고시했다. BDA는 2005년 당시 보유 자금 기준으로 마카오 내 6위 정도에 불과한 소규모 은행이었다. 북한은 이 은행에 차명계좌 52개를 개설하고 김정일 정권의 비자금 2500만 달러를 예치해 두었다. 미 재무부는 북한이 ‘슈퍼노트’로 불리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제작해 이 은행을 통해 돈세탁을 하고, 그 자금을 북핵 개발 등에 전용한다고 보고 북한 계좌를 동결한 것이다. 이후 1년여 간 미북(美北)은 BDA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다 2007년 2월 열린 6자회담에서 2·13합의가 이뤄졌다. 이후 미국은 2·13합의에 명시된 북한의 영변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북한이 이행할 경우, 동결된 북한의 BDA 계좌를 해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2500만 달러를 중국은행(Bank of China) 베이징 지점에 개설된 조선무역은행 계좌로 송금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7년 3월 21일 북한이 BDA에 제출한 52개 계좌 송금 신청서는 한 사람이 작성한 한 장짜리에 불과했다. 통상 돈을 인출할 경우, 각 계좌의 명의자가 기재된 송금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북한은 그러한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BDA는 합법적인 계좌 송금 신청서 없이는 송금이 불가능하다고 거절했다. 이렇듯 북한이 억지를 부리자 노무현 정부도 곤란한 입장에 처했다. BDA 자금 2500만 달러가 북한에 송금되지 않으면, 그간 계획하고 있던 남북정상회담이 자칫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이 2500만 달러를 찾아가지 않은 이유
 
최세웅씨는 BDA에 예치되어 있던 2500만 달러를 북한이 한동안 찾아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조선DB
  박선원씨는 《하드파워를 키워라》에서 “우리가 계획한 대로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키려면 시간이 많지 않았다”며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썼다.
 
  〈최소한 2007년 4월에는 결정이 내려져야 했다. 2007년 2월 채택된 2·13 합의 이후 6자회담이 한 번 더 열려서 북한의 핵활동 중단뿐만 아니라 핵시설을 사용할 수 없도록 불능화시킨다는 합의까지 있어야 했다. 2007년 2월 2·13합의 이행을 위해 북한은 BDA에 묶여 있던 북한 예금 2500만 달러를 미국이 송금해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은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송금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미국은 북한을 불법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한 번 지정한 이상 절대 해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간의 BDA 계좌 동결이 자칫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상적인 송금을 피하는 대신 북한이 직접 돈을 찾아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BDA 계좌 동결이 해제됐음에도 북한이 2500만 달러를 찾아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조선대성은행에 근무하고, 조선통일발전은행 부총재보를 마친 뒤 1995년 탈북한 최세웅씨는 《신동아》(2007년 6월호)와의 BDA 관련 인터뷰에서 “현금으로 들고 나가는 것은 북한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 돈을 다시 어느 해외 은행에든 입금해야 대외결제에 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설명이다.
 
  〈평양의 호텔이나 백화점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쓰고 가는 달러화 현금도 가방에 담아 해외에 반출해 해외 은행에 입금한 후에야 대외결제에 쓸 수 있다. 그러나 달러화 송금은 무조건 미국 은행을 거쳐야만 국제 금융망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신환이 될 수 있다. BDA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달러화 예금이 어디서 어디로 송금되든 애초에 그 예금을 가능케 한 물리적인 현찰 자체는 최종적으로 태환(兌換)이 가능한 미국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2005년 9월 미 재무부가 자국 은행들에 대해 북한 자금을 중개하는 은행과의 거래를 조심하라는 ‘경계령’을 발동했기 때문에 북한이 현찰 달러화를 얼마 갖고 있든 이를 전신환으로 만드는 게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BDA는 북한이 달러화 현찰을 전신환으로 만드는 주요 해외 은행이었고, 다른 은행들도 BDA와 같은 일을 당하게 될까 봐 달러화가 아닌 북한의 홍콩달러나 유로화의 송금 처리조차 꺼리게 됐다”며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돈 2500만 달러가 있고 없고는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최씨는 또 “이런 북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 국무부든 한국 정부든 언론이든 돈만 인출할 수 있게 해주면 BDA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사상 최악의 2500만 달러’
 
빅터 차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 사진=조선DB
  다시 박선원씨의 회고록으로 돌아가 보자. 북한이 돈을 찾아가지 않던 중 빅터 차(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가 박씨를 찾아왔다고 한다. 회고록의 내용이다.
 
  〈미 백악관 빅터 차가 나에게 중요한 문제를 부탁할 게 있다면서 한국이 2500만 달러를 국제적인 은행에 공탁하는 형식으로 북한에 빌려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우선 공탁해서 북한이 찾아가고 나중에 송금이 되면 그 돈을 우리가 받아 가면 되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그 제안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고민은 해보겠다. 오죽하면 그런 방안을 제시하겠는가?” 했다.〉
 
  폭로 전문 매체로 잘 알려진 ‘위키리크스’에도 빅터 차와 박선원씨가 만난 기록이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으로 전송한 전문(문서번호 07SEOUL1126)에는 두 사람이 2007년 4월 12일 회동한 것으로 나온다. 이 만남이 박씨가 회고록에서 밝힌 빅터 차와 만난 그 시점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이 기록에서 빅터 차는 박선원씨에게 BDA 자금 2500만 달러를 송금해 주는 방식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씨의 회고록 내용과 상반된 셈이다. 같은 해 4월 24일 미국 뉴욕 김명길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빅터 차는 “미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이 2500만 달러를 찾아가지 않자 미북 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다. 당시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역사상 최악의 2500만 달러’라며 곤혹스러워했다고 한다. 결국 박선원씨가 속해 있는 청와대 안보실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총대를 멨다. 박씨는 “무엇보다 남북정상회담까지 시야에 담고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고 책에 썼다. 그만큼 BDA 문제 해결은 중요한 일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2007년 5월 초 비밀리에 부산을 거쳐 베이징으로 가서 미 재무부 사람들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당시 BDA 문제에 거의 전권을 갖고 있던 짐 윌킨슨 재무부 장관 수석보좌관과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가 10여 일 전부터 베이징에 들어와 북한과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BDA 문제가 답보상태에 빠지자 두 사람도 지쳐 있었다고 한다. 그때 박씨가 이들을 찾아간 것이다.
 
 
  박선원과 미 국무부의 고민
 
  당시 윌킨슨 보좌관과 글레이저 부차관보의 고민은, 미국이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한 행위의 정당성이 유지되는 조건하에서 2500만 달러 동결을 풀어주는 법률적 방안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회고록의 내용이다.
 
  〈미국에서 의심하는 돈은 54개(실제는 52개-편집자 주) 계좌에서 800만~900만 달러 정도이고 나머지 1600만~1700만 달러는 불법이라는 증거가 없었다. 거래 내역서가 들어가야 달러로 환전이 되는데 35개 계좌에 대해서는 분명한 증빙서류가 있었다.〉
 
  박씨와 미국이 합의한 방안은 2500만 달러를 일단 반으로 쪼개 1250만 달러는 무조건 송금해 주고 나머지 1250만 달러는 남겨두는 것이었다. 박씨는 “북한 사람들은 2500만 달러를 가져가면 되는 거니까 1250만 달러는 미국의 요청대로 우리가 BDA 자금을 담보로 공탁금을 빌려주는 방법이든 뭐든 찾아보기로 했다”고 썼다. 그는 “사실 이런 모든 방안이란 게 현실성도 떨어지고 적법성 논란의 여지도 컸다”고 고백했다. 박선원씨는 이 방안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윌킨슨과 글레이저도 폴슨 재무장관과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중국의 반기(反旗)… 엎치락뒤치락하는 송금 과정
 
  그러나 이 방안에 대해 중국이 반기(反旗)를 들었다. 자국 영토(마카오는 중국령) 내에서 불법 금융거래가 있었다는 걸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6자회담 안 하면 안 했지, 그렇게는 못 한다. 전액 송금해 주든지 전액 다 찾아가든지 해야지 절반 남겨두어 중국의 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걸 확인해 주는 일은 못 하겠다”고 했다. 중국 외교부는 “왜 미북 간의 협의에 한국 고위 관리가 와서 자기들과 협의도 안 하고 먼저 만나는 것인가”라는 불만도 터트렸다고 한다. 이어지는 회고록의 내용이다.
 
  〈대통령(노무현)께 남북정상회담 계획을 보고한 5월 17일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흥미로운 친전 외교전문이 내 앞으로 올라왔다. 라이스 국무장관이 박선원 박사를 국무부로 불러 BDA 해법을 관계자들과 논의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미룰 이유가 없었다. 구체적인 방법을 협의하기 위해 미 국무부와 재무부를 방문했다.〉
 
  이때 박씨는 미국 측에 “우리가 수출입은행을 대겠다. 미국도 수출입은행이 있다. 미국도 국책은행을 하나 대라. 그렇게 송금을 해주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 무렵 박씨에게 이런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이 있었다. 재경부의 국제담당 김성진 차관보였다고 한다. 김 차관보는 박씨의 방에 찾아와 “우리 국가신인도를 높이기 위해서 BDA 문제를 해결해 내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회고록 내용 중 일부다.
 
  〈나(박선원)는 미국과 있었던 BDA 논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있느냐고 물었다. “BDA 은행이 직접 송금하는 것은 차단되어 있지만 은행이 문을 닫으면 그 은행에 있는 모든 돈을 우리로 치면 재경부가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마카오도 마카오 자치정부의 금융국(Macao More tory Authority·MMA)이 그 돈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가 있다. 불법행위를 한 BDA라는 은행은 이미 문을 닫았으니 그곳에 예치된 예금은 마카오 금융 당국이 송금해 줄 수 있다. MMA는 한국은행과 같은 권한을 갖고 있다.” 눈앞의 구름이 다 걷히는 순간이었다.〉
 
  이 아이디어를 들은 박씨는 비서실장, 정책실장, 재경부 차관과의 회의를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박선원씨는 “제가 가서 미국과 협상을 해올 테니 산업은행이든 수출입은행이든 국책은행을 하나 준비해 주십시오. 민간은행 간에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이 반발하자 박씨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우리가 송금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협조해 주십시오. 대신 보안은 꼭 지켜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재경부 차관에 의해 언론에 노출되었다고 한다. 박씨는 “그렇든 어떻든 국책은행을 통한 연쇄송금 아이디어를 작동시키기만 하면 되었다”고 주장했다.
 
 
  한발 빼려는 듯한 미 국무부
 
박선원씨 주장에 따르면, 박씨는 BDA 문제 해결을 위해 2007년 당시 미 국무부 수석 부차관보였던 캐서린 스티븐슨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캐서린 스티븐슨은 2008년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했다.
  박선원씨는 2007년 5월 26일 국정원 관리를 데리고 미 국무부를 방문, 캐서린 스티븐슨 수석 부차관보를 만났다. 훗날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박씨는 스티븐슨 부차관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안보문제를 민간은행에 맡기지 않겠다. 우리 국책은행을 통해서 송금하겠다. MMA가 송금을 해줄 수 있다. 마카오 중앙은행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 중앙은행에서 우리가 받아서 당신네 국책은행에다 송금해 줄 테니까 당신들이 중국은행을 통하든 러시아 은행을 통하든 북한에 송금해 줘라. 결국 송금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최초로 송금해 주는 은행이 불법자금을 송금해 준 문제를 다 뒤집어쓰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이걸 불법자금 은행, 불법자금으로 보지 않고 국제 협력에 의한 송금 지원 행위로만 보는 것이다. 대신 미국이 확약을 해달라. 한국 수출입은행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는다는 것과 이번 행위는 일회성이고 미국과 합의하에 진행된 것이라고. 절대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 스티븐슨은 “우리는 국책은행이 없다”며 한발 빼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국무부 설득이 쉽지 않자 박선원씨는 다시 대니얼 글레이저 부차관보와 짐 윌킨슨 수석 보좌관을 만나 협상에 들어갔다. 박씨는 김성진 차관보가 알려준 MMA 아이디어를 재무부 인사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때 재무부 인사들과 나눈 대화를 회고록 내용을 기반으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재무부팀: “마카오에서 최초로 돈 받는 일을 한국은행이 해줄 수 있는가.”
 
  박선원: “해줄 수 있다. 마카오 중앙은행, 우리 한국은행, 미국의 중앙은행, 그리고 어디로 가야 되는가?”
 
  재무부팀: “중국에 있는 북한의 계좌에 넣으려면 중국 중앙은행으로 가서 중국 중앙은행이 북한 당국의 예금계좌를 트고 있는 중국은행으로 보내줄 수 있다. 중국이 안 하겠다는 것이 문제다.… 박 박사가 여기서 5일 정도 머무를 수 있는가?”
 
  박선원: “난 머무를 수 있다. 얼마든지 머무를 수 있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한은 총재를 만나고…
 
  중국은 송금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해 남은 건 러시아밖에 없었다. 북한 계좌가 있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두 곳뿐이었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박씨에게 러시아를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재무부로부터 박씨에게 연락이 왔다. 러시아가 동의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마카오 중앙은행 → 한국은행 → 미국의 FRB → 러시아 중앙은행 → 북한의 계좌가 있는 러시아의 국내 은행으로 송금해 주자는 합의를 이룬 것이다. 합의에 이르렀지만 미 재무부팀은 “이 방식을 북한이 받겠는가? 그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박선원씨는 “내가 북한을 설득하겠다”고 확언했다. 그러기 위해선 한미 간 합의가 됐다는 증표가 필요해 박씨는 폴슨 재무장관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촬영 후 박씨는 주미 한국대사관으로 가 백종천 안보실장과 대통령께 올릴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의 내용은 ‘합의가 됐고 이것을 북한에 전달해서 북한의 답변을 받아오는 일은 내가 맡기로 했다. 러시아 설득은 미국이 했으니 내가 북한을 만나겠다’는 요지였다.
 
  상황을 파악한 청와대는 ‘빨리 본국에 들어왔다가 북한을 만나라’는 지시를 박씨에게 내렸다. 그러나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김명길 공사는 “한국이 개입된 어떠한 송금도 거부한다”고 했다. 북한이 거부 의사를 밝히자 결국 문재인 비서실장이 나섰다. 박씨 회고록에 의하면, 문재인 실장은 한국은행 총재를 지하벙커 회의실로 불렀다고 한다. 한국은행 총재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과 미국 FRB만 들어온다면 우리도 못 할 이유가 없으니 가서 북한만 잘 설득해 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7년 6월 초 북한은 미국이 요구한 대로 52개 계좌를 하나의 계좌로 통합했다. 박씨의 설명에 따르면, 계좌 통합은 일종의 몰수 행위로 해석된다고 한다. 계좌 통합은 미국법에 따르면 적법한 계좌로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그 무렵 박선원씨는 베이징에서 북한 측과 만나 마카오로부터 러시아 중앙은행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송금을 해주겠다고 방법을 설명했다. 그런 후 북한 측에 이 방법을 수용할 것인지 본국에 보고해서 답을 가져오라고 했다. 다음날 북측에서 오후 3시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북한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본국의 훈령이 내려와 통보합니다. 어제 박 비서관 선생이 제안한 송금의 행정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관련국과 협력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조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박 비서관 선생이 얼마나 분주히 움직였는지 알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감사의 표시를 할 수 있을까요?”
 
 
  “수출입은행이 북의 돈세탁을 해준 꼴”
 
  그 말을 들은 박선원씨는 “영변 핵시설 폐기 현장에 직접 입회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오”라고 답했다. 그러자 북한은 “통보 내용을 본국 정부와 미국 측에 연락하겠다”면서 “다만 한국은행은 빠져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씨는 회고록에서 “한국은행이 빠지면 우리로서는 더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만 빠지고 송금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BDA에 묶여 있던 북한의 자금 2500만 달러는 마카오 자치 정부 중앙은행을 통해 미국 FRB, FRB에서 러시아 중앙은행을 거쳐 러시아 은행 북한 계좌로 송금됐다.
 
  결과적으로 수출입은행과 한국은행은 송금 중개 통로로 활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상 김정일의 개인 비자금이었던 BDA 자금을 북에 송금해 주기 위해 우리 국책은행 두 곳을 동원하려 했다는 건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이는 자칫 북한의 불법자금의 세탁을 도와줬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에서 수출입은행 이야기가 나오던 즈음의 《조선일보》(2007년 5월 8일 자)는 “한국수출입은행을 BDA 불법자금 이체의 통로로 사용하겠다는 정부 구상이 확정될 경우 수출입은행은 신인도 하락이라는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어지는 기사의 내용이다.
 
  〈BDA에 동결됐던 2500만 달러(230억원)는 미국에 의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불법자금’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진 상태다. 이 때문에 미국이 이 자금을 북한에 되돌려준다는 방침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어떤 금융기관도 BDA 자금 중개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미국과 북한이 BDA 자금 송금처로 합의했던 중국은행(Bank of China)이 신인도 하락을 우려해 북한 자금 입금을 거부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전형적인 ‘돈세탁’ 수법으로 보고 있다. 결국 수출입은행이 북한의 돈세탁을 해준 꼴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관련 문제가 다시 발생하면 수출입은행이 모든 피해를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금 이체에 관련된 다른 은행들은 “수출입은행이 나서서 계좌의 돈을 움직인 것”이라는 ‘면피’를 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이야기다.〉
 
 
  박선원 측 “‘BDA 밀사’란 표현 적절치 않다”
 
박선원씨 주장에 따르면,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좌)은 (BDA 송금에 관한 논의를 위해) 한국은행 총재였던 이성태씨를 지하벙커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성태 전 총재는 이 같은 주장을 부인했다. 사진=조선DB
  국책은행을 통한 송금 논의 과정에 미 재무부가 끼어 있었지만, 박선원씨가 국책은행 동원에 앞장섰던 것은 회고록 내용상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박선원씨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상하이 총영사관에 메일을 보내 박선원 총영사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우선 문재인 비서실장, 한국은행 총재와의 만남이 사실인지 여부였다. 송금 중개 은행 중 하나가 한국은행이란 점은 지나치기 어려운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한국은행 총재였던 이성태씨는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박씨의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성태 전 총재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건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되기 직전인 2006년 3월”이라며 “그때 (문 대통령은) 비서실장이 아닌 민정수석이었다. 청와대 밖에서 민정수석을 면접 차원에서 봤던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총재는 “BDA 송금 중개를 위해 한국은행을 동원하려 했다는 것도 처음 듣는 얘기”라며 “황당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성태 전 총재의 주장에 대해 박씨는 “기억에 없으시다니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BDA 자금은 사실상 김정일의 개인 비자금인데, 그 2500만 달러를 국책은행을 중개 통로로 북한에 송금했을 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박씨 측은 “동의하지 않는다. 외교부가 하는 일을 지원했다”고 답했다. 그는 ‘BDA 밀사역을 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 “동맹국인 미국과 긴밀히 협의한 것에 대해, ‘밀사’라는 단어는 적철치 않다”고 말했다.
 
  국책은행 동원 관련 회의의 멤버 중 한 명이었던 A씨에게 BDA 전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A씨는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당시 BDA 문제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현 정부 고위직에 있다”며 말을 아꼈다.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이면합의 같은 게 있었냐’는 질문에도 그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말할 것”이란 입장을 내놓아 무언가 암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외교관으로서 BDA 문제를 다루었던 B씨는 “박선원씨가 책에 쓴 내용 중 일부는 과장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박씨가 BDA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의구심을 표한 것이다. 기자는 당시의 외교부 장관이었던 송민순씨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확인해 보았다. 송 전 장관 회고록에도 BDA를 둘러싸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 자세히 실려 있다. 그러나 외교부 차원에서 박선원씨에게 임무를 줬다든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실과 BDA 문제를 논의했다든지 하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상하이 총영사로 간 이유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박선원씨는 대미 특사로 파견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전 주미대사)과 함께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 국가안보실 1차장 물망에 오르는 등 외교안보 핵심 직책에 기용될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불발됐다. 지난해 중순엔 샌프란시스코 총영사 하마평에도 올랐지만 결국 상하이 총영사로 임명되었다.
 
  그가 맡은 상하이 총영사는 어떤 직책일까? 《주간조선》(2018년 1월 15일 자)에 따르면, 다른 총영사직은 주로 전업 외교관 출신이 맡는 데 반해 상하이 총영사는 상징성을 고려한 인사나 정치권 출신들이 기용되는 자리라고 한다. 매체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때 상하이 총영사를 지낸 김양씨의 경우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라는 이유로 기용되었고, 그 후임인 김정기씨는 이명박 캠프에 몸담았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때에는 전직 국회의원 출신인 구상찬씨가 이 자리를 맡았었고, 한석희씨 역시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 외교안보 분야 발기인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매체는 박선원씨의 상하이 총영사직 임명 사실을 전하며 이 직책의 이점을 이렇게 분석했다.
 
  〈상하이의 경우 한국과 비행기로 채 2시간이 안 되는 거리의 이점이 있다. 김포공항에서 왔다 갔다 할 수 있어 국내 기반을 그대로 유지한 채 대략 2년의 임기를 보낼 수도 있다. 박선원 신임 총영사 역시 2012년 19대 총선 때와 2014년 재보궐선거 때는 고향인 전남 나주·화순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국회의원 출마를 타진하기도 했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있어 역대 대통령들이 재임 중 한 번씩은 반드시 찾는 곳이라 최고 권력자와 ‘눈도장’을 찍기도 좋다.〉
 
 
  “선원이는 큰일을 할 겁니다”
 
  박선원씨의 회고록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게 있다. 이 역시 박씨의 비중과 문재인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직후,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한 것이다. 박씨는 문재인 이사장에게 “지금 대통령 후보는 실장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간의 언론 보도나 여러 기록으로 따져보았을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의 최초로 대선 출마를 권유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듬해인 2010년 브루킹스 연구소 인사들을 문재인 이사장에게 인사시키려고 하자 경남 양산에 있던 문재인 이사장은 서울로 가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러자 박선원씨는 문 이사장에게 “아이고 이사장님, 넥스트 프레지던트가 자기 영토 안에서 만나야죠”라며 그들을 양산의 통도사로 데려왔다고 한다. 박선원씨와 대학 동기로 현재 학계에 몸담고 있는 C씨는 박씨에 대해 이런 평을 남겼다.
 
  “(박)선원이는 친화력이 있고 매우 유능한 친구입니다. 재주가 많죠. 이 정부에서 뭔가 일을 하긴 할 겁니다. 그게 북한과의 협상일지, 중국과의 협상일지는 모르지만요. 조만간 큰일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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