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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 한반도를 살릴 외교의 길

전직 외교부 장관 저서(著書)에서 배우는 ‘한국 외교의 길’

“리더십·전략·국민적 합의가 한국 외교의 3가지 결핍 사항”

글 : 신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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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주 “한일 양국, 조건 충족 기다리지 말고 ‘화해 제스처’ 먼저 취해야”
⊙ 공로명 “국가 생존 최우선은 안보… 한미동맹 관계 공고화 계속 추구해야”
⊙ 윤영관 “비핵화와 관계 개선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남북회담을 해야”
⊙ 반기문 “외교 리더십이란 경청(傾聽)으로 신뢰 쌓고 직면한 상황에 책임지는 것”
⊙ 송민순 “북한 압박하는 동시에 설득 위해서는 우월한 대응 논리 갖춰야”
위) 한승주, 공로명, 아래) 윤영관, 반기문,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사진=조선DB
  작년 한 해는 그 어느 때만큼이나 외교가 중요한 시기였다.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안보위기를 고조시켰고 중국은 사드 보복으로 한국을 압박해 왔다. 미국과의 안보동맹과 경제협력도 중요했고 일본과의 과거사 정리 문제도 남아 있었다. 다자외교 측면에서 러시아와의 전략적 소통, 동남아 국가들과의 교류 필요성도 대두됐다.
 
  외교부는 문재인 정부 첫 외교 1년을 다음과 같이 자평(自評)했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작년 12월 29일 자 《헤럴드경제》 특별기고에서 “취임 직후 과거와 달리 한반도 주변 4국 외에 유럽연합(EU), 독일, 아세안(ASEAN), 인도, 호주 등에 특사를 파견하고, 정상회담과 외교장관회담들을 연이어 개최하는 등 외교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이어 “대통령은 미국 방문, G20 정상회의 참석, 러시아 동방경제포럼 참석, 유엔총회 참석, 아세안 정상회담 참석, 중국 방문까지 한 달가량을 해외에서 보내며 정상외교를 복원했다”고 밝혔다.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방문 의혹, 한국 기자 폭행 사건 및 국빈 홀대 논란이 일어난 방중 외교, 중국의 이른바 ‘3불’(不-사드 추가 배치 없음, 미국 미사일 방어(MD) 불참, 한미일 3국 군사동맹 추진 없음) 요구에 흔들리는 안보 정세 등은 현 정부 외교 방향에 적신호를 보냈다.
 
  최근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 국면이 조성된 가운데, 북한 핵 이슈 대응과 미국과의 관계 조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숙제로 남았다.
 
  오히려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기도 하다. 여기 전직 외교부 장관 5인의 저서가 놓여 있다. 지난 시절 그들이 외교 현장에서 직접 겪고 느낀 일화와 전략이 담겼다. 전 정권 시절 ‘선배’들이 체험하며 깨달은 비법과 조언을 새겨듣는다면, 문재인 정부도 앞으로 외교의 방향키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저서마다 본문 내용의 핵심 발췌를 위해 일정 부분 정리·축약·재배열 작업을 거쳤음을 독자들께 알려드린다.)
 
 
  1. 제24대 한승주 - 《외교의 길》(올림, 2017)
 
《외교의 길》
  김영삼 정부 시절 초대 외교부(외무부) 장관을 역임(1993년 2월~1994년 12월)한 한승주 전 장관은 작년에 펴낸 자서전 《외교의 길》에서 한국 외교가 맞고 있는 ‘다섯 가지의 대내외적 도전’에 대해 밝혔다.
 
  〈첫 번째는 북한의 핵무장과 관련된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미국 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중국의 대국주의가 되겠다. 네 번째는 갈등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줄타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한국의 세 가지 결핍 사항, 리더십(지도자 또는 지도력), 전략, 국민적 합의다.〉
 
  한 전 장관은 특히 국내의 세 가지 결핍 사항에 대해 주의 깊게 살폈다. 그는 “외교에 있어서는 여당과 야당이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다 보니 협력과 협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적었다. 전략을 가진 지도자가 리더십을 펼쳐 정부가 지향하는 외교 노선에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말을 꼭 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려줄 것은 알려주고 협조를 받을 것은 받음으로써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국민들 전체의 전반적인 의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본격 외교에 앞서 제대로 된 내정 관리, 즉 여야합의와 국민소통이 기반이 돼야 한다는 뜻이었다.
 
  한국 정부가 이상의 다섯 가지 도전을 헤쳐 나가야 다섯 가지 원칙의 ‘신외교’ 노선을 펼칠 수 있다고도 했다.
 
  〈세계 보편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세계화’, 대미 일변도 외교를 지양하는 ‘다변화’, 안보만을 강조하는 정책을 넘어서는 ‘다원화’, 통일을 위한 외교 및 통일 후를 준비하는 ‘미래지향외교’, 지역 협력과 통합을 강조하는 ‘지역외교’의 다섯 가지 목표를 우리 외교의 기조로 삼았다.〉
 
 
  북한전략 간파하고 한일협력 추구하는 실용외교
 
2016년 2월 15일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이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한 전 장관은 자서전에서 남북 외교에 있어 북한의 ‘벼랑 끝 전술’ ‘살라미 전술’ ‘중요 조치 연기 전술’ 등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조선DB
  한 전 장관이 말하는 진정한 외교란 “정치적 이념이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냉철하게 대처”하는 ‘실용주의 외교’였다. 그런 점에서 그는 “외교안보 이슈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다루거나 정파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비생산적이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용외교가 성공하려면 어떤 준비 태세가 필요할까? 아마도 최근 고조되고 있는 북한 핵 문제에 있어 대북정책의 기본을 다잡는 게 중요할 것이다. 북측의 외교적 전략·전술을 주의 깊게 간파해야 현 정부의 대북정책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전 장관은 1994년 당시 미·북 제네바 합의를 이끌면서 경험한 북한의 협상 기술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첫 번째는 ‘벼랑 끝 전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극단적인 모험주의적 전술이다. 두 번째 전술은 ‘살라미 전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겉으로는 일괄 타결이나 포괄적 타결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합의 이전의 원상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 세 번째는 작은 양보나 합의는 초기에 실행하고 중요한 상호 조치는 미루어두는 전술이다.〉
 
  한 전 장관은 이러한 북한 외교 전술의 3가지 특징을 염두에 두고 미국은 물론 일본과의 외교·안보적 협력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북의 위협과 급변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한반도의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간의 긴밀한 협조와 공조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 전 장관은 7가지 원칙에 따라 한일 양국 협력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첫째, 양국 지도자들은 도발적인 행동과 언사를 자제해야 한다. 둘째, 양국 지도자들은 상대방이 선행 조건을 충족시켜 주길 기다리기 전에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 셋째, 양국이 서로를 일반화시켜 생각하기 전에 양국관계에 긍정적인 인사들의 입지를 부양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넷째, 양국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양심적·건설적·합리적 인사들을 도와줘야 한다. 다섯째, 양국은 서로 공유하는 이익의 범위가 경제·외교·안보·사회 등 매우 넓고 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여섯째,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 간에 과거사를 완전히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일곱째, 양국은 젊은 세대에 대해서 더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
 
 
  2. 제25대 공로명 - 《나의 외교 노트》(기파랑, 2014)
 
《나의 외교 노트》
  한 전 장관에 이어 김영삼 정부 당시 두 번째 외무부 장관에 오른(1994년 12월~1996년 11월) 공로명 전 장관은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운 외교 역사를 《나의 외교 노트》라는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책에서 공 전 장관은 한국의 현대 외교사(外交史) 중 박정희 정권 당시인 제3공화국의 대외관계에 대해 상세히 서술했다. 그는 “제3공화국의 대외정책에 따라 한국은 적극적인 대외관계를 추진하여 획기적인 발전을 보게 된다”고 평가했다.
 
  공 전 장관이 호평한 제3공화국의 외교기조(1964년 1월 10일 박정희 대통령 연두교서)는 어떤 방향과 내용으로 구성됐기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첫째, 유엔을 통한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통일 달성을 위한 적극 외교를 전개한다. 둘째, 각종 국제기구 및 국제회의에서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국제 협조와 지위 향상에 노력하고, 자유 우방과 비(非)공산권 국가와의 친선을 돈독히 하여 국제적 발언권의 강화에 힘쓴다. 셋째, 경제 외교를 적극 추진하여 외자 확보와 통상 진흥에 힘써 국가경제 재건에 노력한다. 넷째, 미국은 우방 중의 우방으로 운명공동체적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한미 유대 강화를 위한 우호 증진에 한층 노력한다. 다섯째, 동남아 제국과의 협조 관계를 이룩하기 위한 지도자들과의 의견 교환의 기회를 갖도록 노력한다. 여섯째, 한일관계는 자유 진영 상호간의 결속과 양국 간의 선린관계 수립이 상호간의 번영의 터전을 마련할 것이며, 국제사회에 있어서의 현실적 요청임을 감안하여 조속한 한일회담 타결을 위해 초당적인 외교를 추진한다.〉
 
  공 전 장관은 이 같은 6대 노선 추진을 통해 제3공화국이 괄목할 만한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고 적었다. 그는 “한일회담의 타결로 국교정상화를 기했고, 14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현안으로 넘어오던 한미행정협정을 성공적으로 체결하기도 하였다”며 “정부 수립 이래 최초가 되는 정상의 독일과 동남아 방문, 그리고 아시아태평양각료회의의 서울 개최 등 적극적인 정상외교를 추진하였다”고 밝혔다. 제3공화국이 국가경제의 기반을 닦고 국제사회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굳건한 한미동맹과 원활한 한일관계를 외교의 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승만 혜안 본받고 중국 굴기(堀起)는 속단 말아야
 
2009년 10월 29일 NEAR재단과 《조선일보》 주최로 열린 ‘일본의 변화와 동아시아’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공 전 장관은 저서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노 애국자의 역사적 혜안과 탁견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고 존경을 표했다. 사진=조선DB
  책에서 공 전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해방에서 건국, 그리고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건국 초기의 발자취를 돌아볼 때, 우리나라 운명에는 천우신조가 있었다는 생각과 함께 노 애국자의 역사적 혜안과 탁견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고 존경을 표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제의에 대해서도 숙고의 결단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이승만 박사는 이미 46년 6월의 시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차 심화되어 가던 미소 대립이 되돌릴 수 없는 상태임을 인지하고 이와 같이 제의했던 것”이라고 옹호했다. 공 전 장관은 이 같은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 아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해방 이래 우리 사회가 겪었던 많은 혼란상이 사라지고 질서와 안정이 자리 잡아갔다고 밝혔다.
 
  〈일례로 남한에서의 도매 물가가 해방되던 해 12월에 전년 대비 2364% 상승하는 초(超)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이는 46년에 370%, 47년에 81.8%, 48년에 62.9%, 49년에는 36.8%로 차츰 호전되어 갔다.〉
 
  그러면서 공 전 장관은 “이때(이승만 정권 시절) 외무부는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 비서처(秘書處)적인 분위기가 강했다”며 “한평생을 독립이라는 섭외교섭에 전념했던 이 박사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외교는 몸소 챙겼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내린 외교적 결단으로 한국의 번영이 도래했다는 사실을, 현재 우리나라 외교팀도 새겨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공 전 장관은 또 최근 중국의 군사·경제적 부상을 놓고 ‘대국굴기(大國堀起)’라며 경외(敬畏)하는 외교적 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논했다. 그는 “중국의 부상을 보고 사람들은 미국은 쇠퇴의 길에 있고, 중국이 떠오르는 해라고 말한다”며 “그러나 속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이 보유한 해·공군력과 그 무력을 지원할 수 있는 국력을 감안할 때, 20~30년 이내에 중국이 거기에 미치기는 힘들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의 관계유지는 우호적으로 진행해 나가되, 안보 차원에서는 미·일과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공 전 장관에게 있어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외교 원칙 중 하나였다.
 
  〈확실히 우리의 대외무역(약 1조800억 달러, 2013년 기준)의 26퍼센트가 중국과의 거래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국가의 생존에 최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안보라는 사실은 세계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안보 면에서는 한미동맹 관계의 공고화를 계속 추구하고, 민생 안정을 이끌어낼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과의 우호 협력관계 유지가 불가결하다.〉
 
 
  3. 제32대 윤영관 - 《외교의 시대》(미지북스, 2015)
 
《외교의 시대》
  참여정부 당시 첫 외교부 장관(2003년 2월~2004년 1월)이었던 윤영관 전 장관은 논저 《외교의 시대》를 통해 한국 외교가 성공행로를 걷기 위해서는 일종의 ‘집안단속’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교·안보 사안을 통할·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부처 간 불통과 이기주의의 타파를 촉구했던 것이다.
 
  〈한 국가가 일관성 있는 대외 전략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중앙에 컨트롤타워, 즉 사령탑 기능을 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제 이슈들은 외교·국방안보·통일·경제 등 여러 영역들이 서로 중첩되어 있다. 그런데 과거 우리 정부에서 일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부처별 칸 나누기식 처리 방식이었다. 부처 간에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정보도 교환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처리해 버리는 경향이 강했다.〉
 
  윤 전 장관은 외교 관련 부처에 만연한 이기주의를 청산하는 ‘안방 정리’를 강조했다. 그는 “부처 간 보완관계가 심화되고 외교정책이 일관성 있게 집행되도록, ‘정책총괄조정기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직 구성이 완비됐다면 외교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외교 방향의 초점이 되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 “이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적극적 주도자(maker)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며 “역사의 숙제를 풀기 위해서 우리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그는 한미동맹의 발전을 위해 양국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이슈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한반도 문제에 관한 두 나라의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문제. 둘째, 한미 간 한반도 정책 조율과 중요하게 관련된 한중관계의 문제. 셋째,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한일관계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문제.〉
 
  이상의 3가지 이슈를 한미관계하에서 다룰 때, 우리나라 외교팀이 어떻게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인지가 한미동맹의 발전에 관건이 될 것이다.
 
 
  삼축(三軸)외교 중시하되 전시성 남북회담은 근절해야
 
2015년 12월 7일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이 마지막 강의를 갖기 전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윤 전 장관은 저서에서 “외교정책이 일관성 있게 집행되도록, ‘정책총괄조정기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조선DB
  책에서 윤 전 장관은 “전략이 없는 외교는 나침반 없이 항해를 하는 것과 같다”며 “파도가 높더라도 온 힘을 쓰며 방향키를 한 방향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가 주장한 한국 외교의 방향키란 ‘삼축(三軸)외교’ 원칙이었다. 윤 전 장관은 세계화 시대에 맞춰 정치·군사·경제뿐 아니라 개발·인권·환경·에너지 등 다방면의 협력 분야를 주제로 여러 국가와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다자외교의 기본 골자가 되는 것이 바로 ‘삼축외교’였다.
 
  〈삼축외교는 세 가지의 주요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한반도 문제의 1차적 당사국인 미국·일본·중국·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횡축외교’. 둘째, 한반도의 북쪽과 남서쪽에 위치한 인도·러시아·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종축외교’. 셋째, 공간적 범위를 보다 더 확장해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외교’가 바로 그것이다.〉
 
  윤 전 장관은 대북정책에 있어 “어느 한 문제만 따로 떼어내서 그것만을 해결할 수 없다”며 “북한의 핵·경제·정치·인권·국제·안보 문제들은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있다”고 봤다. 이 제반 문제들 중에서도 그는 북한 인권을 중시했다. 인권 개선을 위한 경제 협력도 필요하다고 봤다.
 
  〈이제까지 대북정책은 주로 북한 정부만을 상대로 해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딛고 서 있는 인간 존중의 기본 가치를 고려할 때 대북정책의 기본 정신은 평화 유지와 함께 북한 주민의 인간적 삶의 개선이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북정책의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원칙과 포용이 병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대북정책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윤 전 장관은 북측과의 섣부른 대화나 전시성 회담은 근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북 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우리도 회담에 나서야 하겠지만 북한의 비핵화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들이 오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여기서 대화는 한꺼번에 큰 성과를 기대하다가 별 성과 없이 끝나는 정상회담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회담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 정치적 의도가 담긴 전시성 정상회담보다 실질적인 작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탐색 그 자체를 위한 실무 차원의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핵과 미사일 개발 활동의 동결에 대한 북한의 협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경제 협력만을 추진한다면 결과적으로 북한이 추구하는 병진 노선을 도와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4. 제33대 반기문 - 《반기문의 도전》 《더 나은 유엔을 위하여》
 
《반기문의 도전》 《더 나은 유엔을 위하여》
  윤 전 장관에 이어 참여정부 두 번째 외교부 장관(2004년 1월~2006년 11월)으로 재임하고 유엔 사무총장까지 역임한 반기문 전 장관은 특유의 ‘조용한 외교’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기강 확립을 토대로 집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외교력을 적극 발휘했다. 조용하지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외교의 강점을 알 수 있다.
 
  유명세답게 시중에는 그와 관련된 다양한 책이 나와 있다. 그러나 그가 직접 본격 자서전을 집필한 경우는 없었다. 대신 반 전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거나 교류하면서 친분을 쌓은 주변인들이 그의 외교 역정(歷程)을 기록한 경우는 많았다.
 
  그중 근간(近刊)에 속하는 《반기문의 도전》(남정호, 김영사, 2017)과 유엔 공식백서인 《더 나은 유엔을 위하여(반기문 사무총장 10년의 기록)》(UN, 생각정거장, 2017)에서 그가 추구한 외교 리더십을 읽을 수 있었다. 둘 다 유엔 사무총장 때의 활동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그가 외교부 장관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고 넓은 시야로 국제외교를 추진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외교팀들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반 전 총장은 외교에 있어 “인류의 보편적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되 “상대방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내밀한 대화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꼼꼼한 현안 공부가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 그는 “나는 회의 시간을 지키는 확률이 97퍼센트이고 회의를 주재하기 전에 100퍼센트 모든 자료를 읽고 간다”고 했다. 일선 직원들에게 세부 사항을 떠맡기는 게 아니라, 직접 챙기고 친람하는 외교 수장으로서의 기본자세를 뜻한다.
 
  앞서 윤 전 장관이 ‘집안단속’을 주문했던 것처럼 성공외교를 위해서는 내부 조직에 대한 통솔력도 중요하다. 반 전 총장은 총장으로 재임할 당시 유엔에 대한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유엔의 개혁에서 가장 중점을 둔 사안은 인사와 부패였다. 반 총장은 ‘의무적 이동근무제’ 도입을 선언했다. 특정 근무지의 한 부서에서 일정 기간 근무한 직원은 의무적으로 다른 지역,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반 총장이 꺼내든 칼은 투명성과 책임 추궁이었다. 첫째, 조달 및 관련 회계 업무 등을 수행할 때 자료와 절차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둘째, 철저한 책임 소재를 규명하도록 했다. 셋째, 유엔 고위직 직원에게 자신의 재산 변동 상황을 공개하도록 했다.〉
 
 
  조직 기강 확립하고 현장 외교 중시해야
 
2017년 1월 3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책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외교에 있어 “인류의 보편적 원칙을 벗어날 경우 단호한 입장을 견지”한다면서도 “상대방의 태도 변화를 위해 내밀한 대화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사진=조선DB
  무엇보다 반 전 총장은 현장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외교부 장관 시절은 물론 유엔 사무총장 재직 시절에도 현장에서 상대국을 설득하고 두 나라의 분쟁을 조율했다. 책에서 황인혁 《매일경제》 뉴욕특파원은 반 전 총장의 현장 외교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반 총장은 현안이 있을 때마다 뉴욕 유엔 본부 집무실에 앉아 있지 않고 현장을 찾았다. 10년간 약 480만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강행군을 고집했는데, 이는 지구를 100여 바퀴나 돈 거리다. 1년 중 36퍼센트를 해외에서 보냈다. 현장과 소통을 중시하는 반 총장에겐 글로벌 현안이 벌어지는 그곳이 곧 사무실이다.〉
 
  〈반 총장은 재임시절인 2012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시작, 팔레스타인 가자·서안 지구를 거쳐 이집트 카이로, 요르단 암만, 그리고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돌아오는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했다. 하루에 무려 네 나라, 여섯 도시를 주파한 ‘셔틀 외교’의 전형이었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재임시절 정중동 자세로 이스라엘 가자지구, 프랑스 테러 현장, 반군과 난민으로 들끓는 아프리카 서사하라 지역 등을 누비며 현장 외교를 펼쳤다. 그가 실천한 현장 외교는 곧 ‘예방 외교’였다. 현장에서 답을 구하면 나중의 외교 실패도 미리 방지할 수 있었다. 공론(空論)이 오가는 탁상 외교가 아닌, 치열하고 첨예한 현장 외교에서 거둔 성과와 얻은 깨달음은 미래 외교의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장에서 사무총장의 주선과 예방 외교, 중재 활동을 진행하여 지역별 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구축할 지원실을 설립하고 통합하는 작업도 빨라졌다. 덕분에 유엔은 분쟁의 원천과 잠재적 해법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반 전 총장은 외교부 장관이 되기 전 대통령 외교보좌관으로 활동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해박한 지식에 감명받아 ‘만물박사’로 칭하기도 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당시 노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있던 진보 성향의 젊은 참모들은 왕왕 혈기와 경험 부족으로 무모한 일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럴 때 이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 대통령에게 다양한 의견을 전하는 것도 늘 반 보좌관의 몫이었다”고 한다.
 
  반 전 총장을 다룬 책들은 그의 외교 리더십에 대해 “이상을 세우고 사람들이 그 이상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매일 직면하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것, 귀기울여 듣고 신뢰를 쌓는 것”이었다고 적었다.
 
 
  5. 제34대 송민순 - 《빙하는 움직인다》(창비, 2016)
 
《빙하는 움직인다》
  반 전 장관에 이어 참여정부의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 외교부 장관(2006년 11월~2008년 2월)이었던 송민순 전 장관은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앞으로의 한국 외교 노선에 있어 정교하고 논리적인 대북정책 수립을 주문했다.
 
  그는 “북한의 의사결정 과정과 협상 형태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했다. 책에 따르면 북한은 정권의 생존을 위해서 ‘3M 방식’의 전술을 사용한다. 위장하고(mendacity), 호전적으로 나오며(militancy), 억지지원을 요구하는(mendicancy) 전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송 전 장관은 “북한을 압박하는 동시에 설득도 하기 위해서는 우월한 대응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고 적었다. 비합리적인 북한을 다루기 위해선 합리적인 외교 논리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특히 우리는 보통 북한을 ‘예측하기 힘든 막무가내의 상대’로 인식하지만 송 전 장관은 “실제로는 그 반대”라며 “다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예측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은 정권과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핵 카드는 끝까지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럴수록 송 전 장관은 철저한 문제인식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북측이 핵을 놓지 않는다고 해서 대응과 협상을 게을리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1퍼센트의 타협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협상의 바닥까지 가봐야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 핵은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 전략적 대립과 연결되어 있고 전 세계적 핵 비확산 체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한반도 내부의 문제로 국한할 수가 없다. 북한이 핵 능력을 계속 발전시키기 때문에 유지 관리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통일은 규범과 당위가 아니라 힘에 의해 이뤄진다
 
2016년 2월 25일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국내 정치현안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한국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권을 초월하는 대북정책을 만들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모든 외교적 자산을 투입할 때 미국·중국·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조선DB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그것은 무력도 대화도 아니었다. 지도자의 설득을 통한 내부 단결 그리고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다루겠다는 외교 의지에서 비롯되는 힘이었다.
 
  〈지난 40여 년에 걸쳐 알게 된 것은 통일이 규범이나 당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네 가지 힘이 필요하다. 첫째, 정권을 초월하는 통일정책의 지속 능력, 즉 사회적 응집력이다. 둘째, 한반도 내부의 구심력으로 주변의 원심력을 극복하는 능력, 즉 남북화해의 주도 능력이다. 셋째,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다. 넷째, 한민족은 물론이고 주변국, 특히 미국과 중국도 공유할 수 있는 통일 한국의 미래상을 만들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역량이다.〉
 
  송 전 장관은 북한의 급변상황 발생 시 우리나라가 통일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개방과 개혁에 실패하여 통치 불능의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며 “이 경우 북한의 미래는 국제사회의 지배적 원칙인 ‘주민의 의지’에 좌우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주민들이) 두 개의 국가로 존립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남과 북의 커다란 격차, 특히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삶의 질 차이 때문에 주민 다수가 통일을 선택할 개연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주민의 통일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계속 키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앞서 윤 전 장관이 북한 인권을 중시한 것과 같은 목소리로 들린다.
 
  송 전 장관은 대북정책에 있어서 ‘국민적 합의’를 가장 기본으로 삼았다. 국민들의 의견이 일치단결에 이를 때 좌우 정권을 초월해 적용 가능한 대북정책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한국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권을 초월하는 대북정책을 만들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모든 외교적 자산을 투입할 때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대외 출구를 찾는 데 절박하고,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로 인한 동북아 핵 확산 가능성을 방치할 수 없으며, 중국은 북한의 안정과 동북아 정세 관리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노력은 성공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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