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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시대 6개월

문정인 파워의 원천(源泉)

DJ·盧, 그리고 그들이 좋아할만한 실력까지… 이희호 여사, 문정인에게 직접 전화해 2010년 연세대 대학원 입학한 손녀딸 부탁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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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프(harp) 전공한 DJ 손녀, 문 특보가 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활동하던 2010년 연대 일반대학원 정치학과 입학
⊙ “DJ 손녀,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2010년 함께 수업을 들은 학생)
⊙ 노무현 정권 행담도 의혹 때 빠른 사퇴…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에게 튈 불똥 사전 차단
⊙ DJ와 盧, 문 특보의 거침없는 영어 구사와 폭넓은 국제 인맥, 타고난 달변에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소통 능력 인정
⊙ “문 특보는 하루 만에 완벽한 영어논문 쓰는 ‘천재과’”(문 특보와 가까운 대학교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북핵 위기 국면에서 정부 공식 입장과 다른 발언들을 해서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례 1
  문정인 특보-“사드 때문에 한미동맹이 깨지면 그게 동맹이냐.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과 논의해 한미 합동 훈련과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를 축소할 수도 있다.”(2017년 6월 19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동아시아재단과 우드로윌슨센터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와 특파원 간담회)
  청와대-“문 특보에게 앞으로 있을 여러 한미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엄중하게 말했다.”(2017년 6월 19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통해 문 특보에게 이 같은 메시지 전달)
 
  #사례 2
  문정인 특보-“(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갖췄다고 미국이 평가한 것에 대해) 북한의 능력을 과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2017년 7월 6일 사단법인 한미클럽이 개최한 ‘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정부와 한미동맹’ 세미나)
  문재인 대통령-“(북한 ICBM 개발은) 2년쯤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했지만 4일 발사한 미사일은 거의 ICBM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2017년 7월 5일(현지시각)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남)
 
  #사례 3
  문정인 특보-“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7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때 레토릭(rhetoric·수사)을 ‘톤 다운’ 해주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2017년 8월 13일 공개된 미국 ABC 뉴스 인터뷰)
  청와대-“문 대통령은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다.”(2017년 8월 13일 청와대)
 
2017년 6월 21일 오전 한미군사훈련 축소 등 방미 발언 논란을 빚은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례 4
  문정인 특보-“(참수부대를 창설할 것이라는 송 장관의 발언은) 아주 잘못된 것.”(2017년 8월 17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송영무 국방부 장관-“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느낌이지 안보 특보로 생각되지는 않아 개탄스럽다.”(2017년 9월 13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 발언 이후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청와대로부터 엄중 주의를 받았다.)
 
  #사례 5
  문정인 특보-“(우리 정부의 지난 7월) 군사회담 제안에 대해 미국이 엄청나게 불쾌해했었다. 렉스 틸러슨(Rex Wayne Tillerson) 국무장관이 사실상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강력한 어조로 항의했다.”(2017년 9월 26일 ‘10·4 남북 정상 선언 10주년’ 기념 강연)
  외교부-“남북 군사회담 제안과 관련해 미국 측에 사전에 충분히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했다. 항의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2017년 7월)
 
  #사례 6
  문정인 특보-“최근 B-1B(미 전략폭격기)가 정부와 충분한 논의 없이 NLL(북방한계선)을 비행하고 온 건 상당히 걱정된다. 북·미 간 우발적·계획적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우려된다.”(2017년 9월 2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반도 위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동아시아 미래재단 창립 11주년 기념 토론회)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B-1B 출격은 한미 간 긴밀한 공조 속에 이뤄진 작전.”(2017년 9월 25일)
 
 
  DJ와의 각별한 인연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분향소에서 문정인 특보(가운데)가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맨 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문정인 특보 홈페이지
  문 특보가 ‘사고’를 치면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가 ‘뒷수습’에 나서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문 특보는 오히려 발언 횟수와 강도를 더하고 있다. 야당은 “정부 공식 입장과 대통령 특보 발언이 계속 다르게 나오면서 외교적 혼선도 일고 있다. ‘문정인 리스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며 문 특보의 해촉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긍정적·부정적 측면이 모두 있다”며 해촉할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엄혹한 안보 위기 상황에도 엇박자 발언을 거듭하는 문 특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문 특보가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이 각별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 특보는 1998년 10월 김대중 정권하에서 출범한 제2건국위원회 핵심 멤버였다. 제2건국위는 중앙위원 숫자가 400명이 넘고 지방조직까지 포함하면 1만명이 넘지만, 실제 핵심 그룹은 상임위원회와 기획단이었다. 문 특보는 상임위와 기획단의 분과위원장과 간사를 맡았다. 제2건국위는 IMF 환란 극복에 온 국민이 힘을 쏟고 있던 1998년 9월 김대중 대통령 말 한마디로 제도·의식·생활 등 3대 개혁을 하겠다며 출범한 대통령 자문기구다. 2003년 4월 29일 활동을 마감했다. 4년 반 동안 매년 20억원 가까운 국민 세금과 1000여 명의 공무원이 동원됐고, 정부의 간접 지원까지 포함하면 이 단체에 들어간 국민 세금만 해마다 150억원이 넘었다. 이후 국제적 ‘마당발’로 유명한 문 특보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알리는 일종의 ‘대외 특보’ 역할을 했다.
 
  2009년 8월 24일 주간지인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문 특보는 DJ와의 각별한 관계를 소개했다.
 
  〈— DJ를 마지막으로 만나 얘기를 나눈 것이 언제인가?
 
  “지난 2009년 6월 11일 6·15 공동선언 9주년 특별강연 때 내 강연을 들으셨고, 7월 초에 6·15 행사 준비위원들과 점심을 함께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김 전 대통령과 재임 중에는 직접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퇴임 뒤에 자주 만나 얘기할 기회가 많았다. 입원하시기 전에 한번은 DJ가 ‘문 교수, 그렇게 (글을) 써도 괜찮은 거요’라고 하더라. 남북관계가 뒷걸음치면서 내가 어찌하다 보니 이명박 정부 비판의 선봉에 서서 여러 매체에 쓴 칼럼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문 교수는 2000년 6·15 정상회담 때 학계를 대표해 특별수행원으로 DJ와 동행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퇴임 뒤 더 각별했다.〉
 
  현재 정치권에 몸담은 문 특보의 제자는 “교수님(문 특보) 스타일이 거침이 없다. 눈치 보고 그런 게 전혀 없는데, DJ가 그런 점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자기와 말 상대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 특보는 김대중도서관을 모교인 연세대에 만들자고 제안한 최초 발의자이기도 하다. 2012년 9월 6일 자 “첫 발의한 ‘대통령 도서관’ 결자해지해야죠”라는 제목의 《한겨레》 기사를 보면 관련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
 
  〈그는 2002년 8월 마침 서울에 온 예이르 루네스타 노르웨이 평화연구소장과 KBS에서 대담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당시 야당 쪽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로비설을 주장하며 시끄러웠는데 내가 루네스타 소장한테 그걸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더니 ‘어떻게 그런 말들이 나올 수 있는가’라며 불가능하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고는 훗날 야당 쪽에 공식 항의 서한을 보냈던 것으로 안다.”
 
  그는 이를 계기로 청와대 쪽에 퇴임 뒤 구상으로 전직 대통령 도서관을 연세대에 건립할 것을 제안했다. 김 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당시 김우식 연세대 총장과 박지원 비서실장이 나서서 2003년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으로서 하나의 모범적 사례’를 만들어냈다.〉
 
  김대중도서관의 최초 발의자인 문 특보는 2012년 김대중도서관장을 맡았다. 2001년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그에게 ‘도서관장’은 어색한 자리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결자해지’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DJ 손녀 김화영씨 연세대 일반대학원 정치학과에 다녀
 
  DJ와 문 특보의 각별한 인연을 취재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확인했다. DJ의 손녀가 문 특보가 연세대 사회과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활동하던 2010년 연세대 일반대학원 정치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2010년 1학기 연세대 대학원 정치학과에 입학한 DJ의 손녀는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의 3녀인 김화영씨다. 김씨는 하프가 전공이다.
 
  2001년 5월 25일 자 《국민일보》 보도 내용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손녀이자 민주당 김홍일 의원의 3녀인 하피스트 김화영(18·서울예고 3년) 양이 24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영산 그레이스홀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김 양은 이날 알베르 루젤의 ‘즉흥’, 보이엘디유의 ‘콘체르토’ 등 비교적 고난이도의 곡을 흔들림 없이 연주해 관객의 환호를 받았으며 찬조 출연한 서울외국인초등학교 3학년생 이유미 양과의 하프 2중주에서는 하프의 다채로운 선율을 유감없이 선사했다. 김 양은 99년 배재대 음악콩쿠르와 지난해 대진대 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독일 쾰른라디오체임버 오케스트라, 브라질 내셔널 오케스트라 등 다수의 국내외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가져왔다.〉
 
  하프를 전공한 김씨는 2001년 10월 서울대 음대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2001년 10월 28일 자 《경향신문》 보도는 다음과 같다.
 
  〈김대중 대통령의 손녀이자 민주당 김홍일 의원의 세 딸 가운데 막내인 화영(18·서울예고 3) 양이 서울대 음대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화영 양은 지난 26일 서울대 음대 기악과 수시모집에 최종 합격, 김 의원을 둘러싼 각종 의혹 주장 및 재·보선 패배 등으로 무거워진 ‘집안 분위기’를 모처럼 밝게 만들었고 김 대통령도 기뻐했다고 한다.〉
 
  2010년 연세대 일반대학원 정치학과를 다닌 대학원생 대부분은 김씨가 DJ의 손녀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 특보를 보좌한 조교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던 탓이다.
 
  “김화영씨가 어떻게 입학했는지 알아? 우리 교수님(문정인 특보)이 뽑아준 거야. 이희호 여사가 교수님한테 전화가 와서 통화하는 것을 들었는데, ‘(교수님이) 여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화영이는 제가 챙기겠습니다’라고 하더라.”
 
  당시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로는 이 조교는 ‘허풍’이 좀 있었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 조교에게 당시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하려 했지만, 그의 행방을 아는 대학원 동기들이 없었다. 다만 김씨가 입학할 당시 면접관 중 한 명이 현재 문재인 정부 핵심 요직에 있는 교수였는데 그는 문 특보의 연세대 대학원 제자였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조교의 말이 허풍이 아닐 수 있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김씨는 대학원 졸업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와 함께 수업을 들은 당시 대학원생의 이야기다.
 
  “리포트 주제를 보면 대부분 햇볕정책에 관련한 것이었다. 성적이 좋아서 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교수들이 김씨가 DJ의 손녀라는 것을 아니까, 햇볕정책을 비판하던 교수들도 수업시간에 제대로 말을(햇볕정책 비판을) 하지 못했다. 내가 알기엔 졸업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부유했던 학생으로 기억
 
  동기 및 선후배들은 김씨가 굉장히 부유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수입이 어디에 있는지, 학교 다닐 때 비싼 외제차(BMW)를 몰고 다녔다. 페이스북을 보면 남편과 자주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 같았다. 대학원생 사이에서는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돈이 많은 모양이다’라는 농담도 나왔다.”
 
  2005년 결혼한 김씨는 실제 또래와 비교했을 때 꽤 풍족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9월 24일 자 《한경비즈니스》에는 관련 내용이 실렸다.
 
  〈청담동 강변상지리츠빌의 13층 펜트하우스 주인은 지난 2013년 1월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직을 6일 만에 사퇴한 최대석(10억800만원)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이화여대 대학원 교수 겸)이다. 최 원장은 인수위원 사퇴 이후 가급적 자신을 노출하지 않은 채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아랫집에 사는 이웃사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녀딸 김화영(10억2400만원)씨다. 2005년 결혼한 김씨는 김 전 대통령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 의원의 셋째 딸이다.〉
 
 
  행담도 게이트 희생에 보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정인 특보.
  문 특보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브레인’이었다. 그는 노무현 후보 외교·안보·통일 분야 정책팀 내 학자 그룹 멤버였다.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정책 기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문 특보는 2004년 6월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노무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던 문 특보는 2005년 5월 27일 행담도 개발 의혹 사건에 휘말려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1995년 건설교통부는 충남 당진군 행담도 일대에 17만여 평의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이른바 ‘행담도 개발 사업’을 승인했다. 외환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사업은 4년 뒤인 1999년 본격 추진됐다.
 
  사업 투자사인 싱가포르의 에콘사는 자금난을 겪던 중 2001년 김재복씨에게 사업을 맡기고 자신들은 손을 뗐다. 이후 김씨는 지분을 인수해 행담도개발주식회사를 세우고, 사실상 이 사업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도로공사(도공)에 사업이 지지부진한 책임을 물어 ‘자본을 유치하면 도공이 상환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자본투자협약을 2004년 1월 체결했다. 이 협약은 행담도 사업이 잘되면 외국투자사가 이익을 거의 다 챙기고, 안 되면 도공이 외국투자사에 투자 원금보다 많은 1억500만 달러를 물어주는 특혜 계약이었다.
 
  도공에 크게 불리한 계약에 대해 계약 체결 이후 임명된 손학래 도공 사장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자 김씨는 정부의 서·남해안개발사업인 ‘S프로젝트’에 자문을 하며 안면을 익힌 당시 동북아시대위원장이었던 문 특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씨는 문 특보 외에도 정찬용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 정태인 전 대통령 국민경제비서관에게도 ‘SOS’를 쳤다.
 
  문 특보가 수장으로 있던 동북아시대위원회(동북아위)는 문제의 특혜 계약이 이뤄진 8개월쯤 후인 2004년 9월 김씨의 행담도개발주식회사와 도공이 발행하려던 8500만 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을 위한 정부지원의향서를 써줬다.
 
  동북아위는 대통령이 자문하는 정부기구인 만큼 정부지원의향서는 김씨가 운영하는 행담도개발주식회사 측에 큰 힘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에 당시 동북아위가 정부를 대신해 정부지원의향서를 써준 것은 허위공문서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 기구의 설치 근거인 ‘동북아시대위원회 규정’(대통령령) 12조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위원회가 직무수행을 위해 관계기관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협조 요청의 범위는 자료 및 의견 제출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동북아위는 “전남 서·남해안개발(S프로젝트) 추진에 김씨의 도움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추천서를 써줬다”고 해명했다.
 
  S프로젝트는 1900여 개에 달하는 전남 서·남해안의 섬이 가진 관광자원을 이용해 관광·레저 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안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한 물류·유통단지, 바이오 산업단지 등을 조성해 2025년엔 이 지역을 250만명의 인구가 사는 종합해양 레저단지로 만든다는 것이다.
 
  문 특보가 정부지원의향서를 써준 이유에 대한 의혹이 커진 것은 김씨가 도공에 제출한 이력서가 속속 가짜로 판명되면서다. 김씨는 존재하지도 않은 훈장을 받았다고 기재했다. 논란이 증폭되자 문 특보는 2005년 5월 27일 ‘행담도 개발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3개월쯤 뒤인 8월 10일 검찰은 문 특보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다음해인 2006년 2월 6일 서울중앙지법은 동북아위의 내부적인 검토나 외자 유치 전문위원회 심의 등을 거치지 않은 채 행담도 개발을 지원한다는 정부지원의향서를 써준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문 특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부지원의향서에 써준 말들이 판단이나 의견 제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허위공문서 작성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문 특보의 빠른 사퇴,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튈 ‘불똥’ 막아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에 민간인으로는 유일하게 특별수행원으로 참석한 문정인 특보. 왼쪽부터 김정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문 특보.
  무죄가 선고됐지만 문 특보가 입은 상처는 컸다. 의혹 보도 과정에서 문 특보의 아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했으며 이에 따라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 특보의 아들은 2005년 행담도개발주식회사에 취업했는데, 이 과정을 추적하던 한 언론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 문씨는 한 살 되던 해인 1977년 문 특보가 미국 메릴랜드대로 유학을 가면서 함께 따라갔고, 이후 문 특보가 86년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면서 문씨도 자동으로 영주권을 얻어 만 18세가 되던 96년 미국 국적을 선택했다. 줄곧 미국에서 이중국적자로 살아오던 문씨는 2002년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에서 3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지난 1월 행담도개발주식회사에 취직하면서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담도 의혹의 책임을 지고 빠르게 사임한 문 특보가 아들 문제로까지 곤욕을 치르는 데 대해 상당한 부채 의식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죄가 선고된 이유로 더욱 그랬다. 노 전 대통령이 사표를 낸 지 11개월 만인 2006년 4월 13일 문 특보를 국가안보 분야 대외직명대사로 임명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대외직명대사는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특정 임무를 수행할 경우 외교관 신분 보장과 예우를 받는 자리였다.
 
  문 특보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한 것은 당시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는 “어쩌면 노 전 대통령보다도 문재인 대통령이 문 특보에 대한 부채의식이 컸을 수 있다”며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행담도 개발 의혹을 ‘행담도 게이트’로 규정하고, 이력도 불분명한 일개 업자(김재복씨)에게 청와대가 농락당했다면 당연히 김우식 비서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이 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했는데 문 특보가 빨리 사표를 내는 바람에 이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꼽히는 외교·안보와 국제정치학 연구자
 
문정인 외교안보특보가 지난 2012년 10·4 남북정상선언 5주년을 맞아 열린 ‘문재인-문정인 특별대담’에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함께 참석한 모습.
  문 특보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및 사연만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견도 있지만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외교·안보와 국제정치학 연구자라는 평을 받는다. 국제정치학계의 글로벌 마당발답게 미국 국제정치학회(ISA) 부회장 및 세계국제정치학회(WISC) 공동조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거침없는 영어 구사와 폭넓은 국제 인맥, 타고난 달변에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소통 능력은 그만의 장점이다. 한글논문, 영어논문이 340여 편, 단행본, 공저, 편저 등도 70권에 달한다. 문 특보를 잘 아는 한 교수는 “문 특보는 천재”라며 “특히 어학 능력,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렇게도 능력이 출중한 문 특보가 청문회를 거치는 공직을 못 맡는 이유는 자제력과 절제력이 부족하고, 가족의 국적 문제, 음주운전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문 특보는 중동 전문가로 학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젊은 시절 인도네시아인 친구의 독실함에 감탄해 이슬람에 관심을 가졌고 이슬람 관련 기관에 근무하면서 이슬람 서적도 여러 권 번역했다.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받은 박사 학위 논문도 사우디아라비아에 관한 것이었고,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중동 정치를 주로 강의했다.
 
  1994년 귀국해 연세대에 자리 잡은 뒤 문 특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국가정보론이었다. 국가 기밀과 정보기관을 다루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어 DJ와 연결돼 남북정상회담, 노벨상 수상에 관여하면서 동북아 국제관계와 평화 문제로 관심의 폭을 넓혔다.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장과 국제안보대사를 맡고 난 후에는 중국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2016년 6월 7일 연세대 신촌캠퍼스 연희관 402호에서는 문 특보의 ‘국가 안보와 정보’라는 과목의 수업이 있었다. 이날 수업을 끝으로 문 특보는 정년 퇴임했다. 제자들은 그를 쉬이 떠나 보내기 싫어했다. 노타이에 재킷 차림으로 신촌캠퍼스 연희관 402호에 들어서자 조용하던 강의실에 박수 소리가 차올랐다. 여러 교수와 학생이 몰려들어 “고생 많으셨다” “감사했다”며 인사를 전했다. 학자 문정인의 화려한 이력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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