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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oop

SNS상에서 엄청난 예언서로 불리는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

1999년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에 소개된 1000명의 386리더 중 15명 청와대, 내각 등 핵심 요직에 진출… 현직 국회의원도 12명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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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 운동권 임종석이 20여 년 전 감명깊게 읽은 책은 《동의보감》과 《성경》
⊙ 윤영찬, 언더서클 활동했지만 이른바 ‘빵잽이’는 아니었다
⊙ 하승창, 시민운동에 투신한 이유는 사회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접근방식에 이끌렸기 때문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별명은 ‘울트라 슈퍼 드라이’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천상 조직전문가
⊙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 전해철 의원, 20여 년 전 “언론개혁에 기여하고 싶다”고 주장
⊙ 안희정 충남도지사, 스스로를 ‘마담뚜’로 소개
⊙ 선정 인사 중에는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등 훗날 논란 중심에 선 인물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5일 오전 수석보좌관회의가 열린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회의에 앞서 참모진과 차를 마시며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다. 박수현(왼쪽부터) 대변인,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전병헌 정무수석, 장하성 정책실장, 문재인 대통령,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 조현옥 인사수석,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 여기에 모인 다수의 인물이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에 소개됐다.
  진보 성향 월간지 《말》이 1999년 5월호에 낸 별책부록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없는 책이 없다’는 국회도서관에 한 권이 있다고 해 가봤지만 분실한 상태였다. 유명한 헌책방, 헌책 거래 사이트를 이 잡듯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 시내 유명 도서관을 돌았다.
 
  몇 군데만 더 가보고 접자고 생각한 뒤 찾은 한 조그마한 도서관, 그곳에 이 별책부록이 있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누렇게 변한 책을 보물 다루듯 펼쳤다.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애쓴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 책에서 촉망받는 386으로 소개된 이들 다수가 문재인 정부 핵심 요직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소문을 들은 다수의 네티즌은 SNS에 “엄청난 예언서”라고 적고 있다. 별책은 당시 《말》지 취재부장이던 오연호씨가 기획했다. 오씨는 현재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 대표다. 이 책은 시민사회, 문화, 정치, 청와대(책 발간 시기인 김대중 정부), 청년사회, 경제, 언론, 학술, 법조 등 각 분야의 총 1000여 명의 386세대 인물을 소개했다.
 
  오씨는 책 서두에 선정 기준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시민·정치·경제 등 12개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50~150명씩을 선정했다. ①80~89학번까지. 예외를 두지 않는다. 고졸은 나이로 환산 ②학생운동을 했고 ③지금도 개혁적이며 ④해당 분야에서 일정한 능력을 검증받았으며 ⑤21세기에도 그 분야를 리드할 만한 ‘촉망받는 기대주’를 제1순위로 한다. ⑥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으나 ②, ③ 항목을 충족하는 인사를 제2순위로 한다. ⑦보수적이지만 ④, ⑤ 항목을 충족하는 인사를 3순위로 한다. ⑧국정원, 검찰, 군, 경찰 등 특수조직과 행정부서는 생략했다.〉
 
  책에 나온 1000명 중 상세 인터뷰가 나온 인물은 100명 정도다. 나머지는 학력과 당시 직책 등 간단한 이력만 공개했다. 《월간조선》은 책이 소개한 1000명을 정밀 분석,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누가 청와대 요직에 진출했는지, 누가 국회에 입성했는지 등을 살펴봤다. 또 현재 탄탄대로를 걷는 이들이 과거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리기 위해 책 내용을 그대로 인용, 소개한다. 참고로 책을 만든 이들이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라고 선정한 만큼, 그 인물들에 대한 비판적 내용은 없다.
 
  이 별책부록을 기획한 오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월간 《말》 취재부장이던 1998년 봄, 나는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라는 제목의 단행본 부록을 만든 적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대의 시작과 함께 정치권이 386세대를 이른바 ‘젊은 피 수혈’ 대상으로 삼고 있을 때였다. 그때 30대 중반 전후였던 386세대를 취재하고 편집하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세대가 앞으로 대한민국의 20년을 주도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생기 있게.”
 
 
  ◆청와대
 
조국, 하승창, 신동호, 윤영찬, 임종석, 조한기, 유송화, 윤건영, 장하성, 오종식.
  ①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책은 69페이지에 당시 한국청년연합회 운영위원이었던 임종석 현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1989년 한양대 총학생회장, 서총련 2기 의장,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았던 그는 임수경 방북과 관련해 수배된 이후 ‘임길동’ ‘한국판 맥가이버’ 등의 별명을 얻었다. 수배 중임에도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나타났기 때문. 이에 대해 그는 “학생운동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 지지 때문에 가능했다”고 얘기한다. 감옥에서 그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 김영삼 정권의 등장 등으로 상징되는 대내외적 정치환경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하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책은 출소 직전 읽은 《동의보감》과 《성경》. “시장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사회복지, 환경 등 ‘사회적 민주주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민주화 운동을 집단적이고 장기적으로 경험한 386세대의 역할이 무엇이고 386세대의 에너지를 어떻게 모을지 고민 중인 그는 현재 한국청년연합회(준) 상임운영위원. 한양대 무기재료 86학번.〉
 
 
  “출생지가 전주라는 이유만으로 김대중과 그의 사람들 담당”
 
진보성향 월간지 《말》이 1999년 5월호에 낸 별책부록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의 표지.
  ② 윤영찬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비서관
 
  114페이지에는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윤영찬 기자는 이른바 ‘3선급 기자’로 통한다. 정치부 기자 경력 5년 만에 얻은 별칭이다. 그만큼 중량급 기사를 많이 써 왔고, 특히 김대중 정부 진영에 대해선 ‘빠꼼이’로 정평이 나 있다. 1996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 4천억 비자금’ 기사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고 1994년에 터진 ‘안기부 지자체 선거 연기문건’도 그의 작품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막후 실세에 머물러 있던 1994년 정치부로 배속받아 가장 먼저 출입한 곳이 민주당이다. 서울서 초·중·고·대학을 나왔지만, 출생지가 전주라는 이유만으로 ‘김대중과 그의 사람들’을 담당했다.
 
  동교동을 담당하면서 김대중 현 대통령이 그의 성실성을 높이 샀다. 동료 기자들의 표현을 따르면 당시 윤 기자는 ‘DJ 스토커’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새벽부터 디제이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다고 한다. 386세대의 미덕인 ‘성실성’을 유감없이 표출한 셈이다.
 
  특히 권노갑 현 국민회의 부총재와 죽이 잘 맞았다. 지금도 《동아일보》 정치부에선 디제이 진영의 고급 정보를 상당 부분 그에게 의존한다. 그는 정치부 기자 생활 내내 동교동계를 담당해 온 탓인지 ‘불필요한 오해’에 대한 우려와 ‘386세대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386리더 인명록에 오르는 것을 사양했다.
 
  그의 대학시절은 평범했다. 사회대 언더서클 활동을 했지만 이른바 ‘빵잽이’는 아니었다. 80년대 학번의 대학시절이 대개 그렇듯이 그 역시 광주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학내 시위의 단골 멤버였지만 앞줄에 서진 않았다. 최루탄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듯이, 언젠가는 다른 방식으로 화염병을 던져야 하는 상황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한 책무로 생각했던 것이다.
 
  4학년 때 군에 입대해 의정부 26사단에서 6월 항쟁을 맞았다. 울타리 속에 갇힌 신세였지만 한때는 병영에서 ‘진지전’을 꿈꿀 정도로 의식이 녹슬지는 않았다. (중략) 기자생활을 통한 사회개혁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지금도 당시 느꼈던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만, 가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서울대 지리 83학번.〉
 
  ③ 하승창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사회혁신수석비서관
 
  책 초반부(24페이지)에는 당시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실장이던 하승창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사회혁신수석비서관에 대한 내용이 있다. 제목은 ‘경실련 터줏대감이 학교로 돌아간 까닭’이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그는 시민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이제는 1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대학 캠퍼스에 그가 있다. 하승창 전 경실련 정책실장. 최근 경실련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껴 사직한 그는 이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이다. 시민운동의 활동공간을 현장에서 학교로 옮겼을 뿐이다. “이번 기회에 운동이론을 공부할 생각입니다. 시민운동은 이제 막 사회 저변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는데, 체계적 이론은 거의 없습니다.”
 
  그는 현재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 과정에 있다. 당분간 시민운동론 정립에 힘을 쏟고 싶다는 게 요즘 그의 바람이다. 실제 그는 경실련을 떠나며 후배들에게 남긴 글에 경실련 문제보다 시민운동의 현주소와 미래상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중략) 하승창씨는 연세대 사회학과 80학번이다. 올해로 꽉 찬 386세대다.
 
  그는 인노련 활동 등 인천·부천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90년 삼민동맹 사건에 연루돼 2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경실련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 92년 9월. “사회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접근방식에 이끌렸다”는 게 시민운동으로의 ‘이전 동기’. (중략) 20대는 노동운동, 30대는 시민운동판을 달군 그는 이제 막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이는 이론으로 무장한 40대 중견 시민운동가로 거듭나기 위한 몸짓이다. 연세대 사회 80학번/인노련·삼민동맹 사건.〉
 
  인노련은 인천 지역 민주노동자연맹의 줄임말이다. 삼민동맹 사건은 1990년에 일어난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 사건이다. 이들은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통한 민중정권 수립을 주장했다.
 
 
  등단하지 않은 시인의 문화 민국 만들기
 
  ④ 조한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
 
  54페이지 ‘등단하지 않은 시인의 문화 민국 만들기’라는 제목의 글은 당시 문화기획가인 조한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을 인터뷰한 것이다.
 
  〈조한기는 93년 진보적인 인문학과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인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간사로 출발하여, 96년 민족문화예술대학원대학교 설립 추진위원회 사무국 사무처장을 맡아 대안적 문화예술 교육과정 및 교육내용을 실무적으로 몸에 익혀 왔다. 재정적 이유로 대학원 설립이 유보된 후 97년부터는 민예총 문화정책연구소의 사무국장을 맡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화정책적 분석과 정책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여 대안 마련을 위한 활동을 펴고 있다. 시작(詩作) 노트를 늘 지니고 다니는, 등단하지 않은 시인이어서일까? 조한기의 문화기획은 실험적 발상과 과학적 예측이 상생적이다. (중략) 조한기의 직업은 문화가 정치적 효과를 발하고, 정치가 새로운 문화적 실천을 요구하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386세대인 조한기는 결코 경박하거나 엄숙하지 않으면서 밝고 진지한 자세로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는 중이다. 문화기획가/연세대 영문 86학번.〉
 
  ⑤ 조국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⑥ 신동호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연설비서관 ⑦ 유송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비서관 ⑧ 윤건영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 실장 ⑨ 오종식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정무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소개하는 내용도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간단한 이력만을 소개했다.
 
  〈조국 울산대 법학과 교수, 서울대 법학과 82학번, 민주주의법학 연구회 / 신동호 문화예술청년공동체, 한양대 국문과 85학번, 5기 전대협 문화국장(91년) / 유송화 서울 노원구 구의원, 재선의원, 이화여대 경제학과 85학번, 총학생회장(88년) 출신으로 지역공동체 운동 / 윤건영 성북 시의회 의원, 국민대 국제경제대학원(88학번), 국민대 총학생회장 / 오종식 지방자치센터준비장, 고려대 언어학과 89학번, 성북청년회 회장.〉
 
  ⑩ 장하성 청와대 대통령정책실 실장의 이름도 나온다. 그의 이름은 ‘이승희 소액주주운동 성공의 숨은 주역’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거론됐다.
 
  〈참여연대를 급부상시킨 ‘소액주주운동’은 장하성 교수 뒤에서 실무를 맡아온 경제민주화위원회 이승희 간사의 공이 크다. “소액주주운동을 더 알차게 하겠습니다.” 서울대 언어 87학번.〉
 
 
  ◆내각·정부 요직 5명
 
책이 소개한 인물 중 김현미 국토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오른쪽)을 포함한 5명은 문재인 정부에서 내각·정부 요직에 임명됐다.
  부록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더불어민주당 제20대 국회의원, 부산 부산진갑)에 대해서는 이렇게 소개했다.
 
  〈이정우, 송영길 변호사와 함께 84년 직선제 총학생회장 3인방 가운데 한 사람. 당시 민정당 당사 점거농성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디제이와 와이에스가 민추협 공동의장으로 있을 때 정치에 입문했는데 급진적 변혁론에 대한 회의가 그 동기였다고.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 정무비서관을 지내다 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 그는 “권위주의적 지도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국민의 정부도 문민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욕만 하기보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주길” 바라고 있다. 현재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고려대 영문 81학번.〉
 
  첫 여성 국토부 장관으로 취임한 김현미 장관(더불어민주당 제20대 국회의원, 경기·고양정)에 대한 소개도 있다. ‘방송활용 능숙한 여성 당직자’라는 제목의 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주목을 받는 젊은 여성 파워 가운데 한 사람이다. 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TV 모니터 팀장을 맡으면서 방송국 관계자를 괴롭혀(?) 공정보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민주화 청년연합(민청련)과 평화민주연구회(평민연)를 거쳐 87년 당에 들어와 10여 년 잔뼈가 굵었다. 3년간의 TV 모니터 활동을 통해 익힌 정치감각으로 박선숙 부대변인의 공석을 무난하게 메우고 있다. 그는 “정치권이 내부의 파워게임에만 매몰되어 새로운 세대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진다”며 이러한 한국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젊은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한다. 국민회의 부대변인/연세대 정외과 81학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김외숙 법제처 처장, 김진국 신임 감사위원(차관급)도 간단히 소개돼 있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82학번), 한국사회경제학회, 노사정위 활동 / 김외숙 법무법인 부산종합 변호사, 서울대 법대(85학번), 부산여성교육원 이사,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운영위원 / 김진국 법무법인 서원 변호사, 서울대 법대 81학번, 사시 29회, 노동과건강연구원 공동대표.〉
 
  김 위원장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직후부터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소액주주 보호와 재벌 지배구조 개혁에 앞장서 온 원조(元祖) 재벌 개혁론자다. 김 처장은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담았던 법무법인 ‘부산’ 소속 변호사로, 주로 여성·아동 등 분야에서 일해왔다. 경북 포항 출신이다. 김 처장이 문 대통령과 같이 일했던 법무법인 부산의 모체는 1982년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함께 운영했던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법률사무소를 떠났고, 문 대통령이 젊은 변호사들을 영입하면서 외연을 넓혔다. 김 처장은 이 과정에서 1992년 영입돼 법제처 처장 임명(2016년 6월 9일) 때까지 일했다. 김 처장은 2012년 《대한변협신문》 기고 ‘부산 신사의 품격’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신사”라고 썼다. 김 처장은 이 글에서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 와서 변호사를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M 변호사(문 대통령) 때문”이라며 “노동 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불쑥 찾아간 나를, 그는 흔쾌히 맞아줬다”고 했다.
 
  김 감사위원은 전남 보성 출신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방송위원회 심의위원 등을 지낸 뒤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5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통령 캠프에서 법률자문 등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현직 국회의원 12명(장관인 김영춘, 김현미 의원 포함)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이인영 의원(오른쪽)이 당 회의에 참석했다.
  4선(16·17·18·20대, 인천 계양을)의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85년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인천 지역 노동운동가-변호사. 김영춘, 이정우씨와 함께 84년 학생운동의 한 획을 그은 삼총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됐다.
 
  〈외모에서부터 굵은 선이 느껴진다. 85년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인천 지역 노동운동가-변호사. 김영춘, 이정우씨와 함께 84년 학생운동의 한 획을 그은 삼총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지난 4월 1일 이정우, 백태웅, 우상호, 허인회, 윤태일 등 100여 명이 주선한 ‘송영길을 격려하는 386세대 모임’에서 인천 계양·강화갑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변호사 개업 3년 만에 정치 개업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출구가 없는 21세기를 앞두고 우리 386세대가 뭉쳐서 희망을 찾자”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85년 대우자동차 하청업체에서 배관용접공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한 그는 박종열 목사, 허병섭 목사 등과 함께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를 설립하고 전국 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사무국장을 지내면서 인천 지역의 화물·버스·택시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94년 사법시험에 합격, 97년 인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연세대 경영 82학번.〉
 
  인천시장도 역임한 송 의원은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캠프 총괄 선대본부장직을 역임했다. 선대위 최고위직은 선대위원장이지만 이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제 선거운동을 끌고 가는 자리는 총괄 선대본부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2017년 5월 14일) 송 의원을 러시아 특사로 임명했다.
 
  3선(17·19·20대, 경기 구리)의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유명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25일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에서 당시 바른정당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유승민 의원과 자신의 일자리 공약 핵심인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정책을 두고 공방을 벌이다 “(저희) 정책본부장하고 토론하는 게 맞겠다”고 했다. 정책본부장은 윤호중 의원이었다.
 
  책은 윤 의원을 “의미와 향기가 있는 논평 내는 부대변인”이라고 평가했다.
 
  〈원외 당직의 꽃인 부대변인. 촌철살인의 표현으로 상대편 주장을 무력화하기보다 간결하면서 표현에 의미와 향기가 담겨 있는 논평으로 유명하다. 서울대 인문대 학보인 《지양》 편집장 출신. 84년 서울대 학원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돼 10개월간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한울출판사 편집부에서 1년 동안 일하기도 한 그는 88년 평민연에 입당함으로써 정치권에 입문했다. 평민연 정책기획실 부실장, 민주당 양평갑 지구당위원장, 국민회의 창단기획단 기획위원을 거쳐 3년 넘게 국민회의 부대변인을 맡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 원내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국민회의 부대변인/서울대 철학 81학번.〉
 
  요즘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을 담당할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초대 장관이 누가 될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 정부 조직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지도 못했지만 벌써 하마평이 무성한데, 윤 의원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
 
  책에는 3선(17·19·20대, 서울 구로갑)의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에 대한 인간적인 면모도 담겼다.
 
  〈언젠가 기자가 그에게 ‘18번 곡’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너무도 빨리 송창식의 ‘사랑이야’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다음에 “내가 그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완전히 감동의 물결이지”라며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그는 ‘이인영식 특유의 썰렁함’을 사람들에게 선사해 주곤 한다. 별명이 ‘울트라 슈퍼 드라이’로 붙었을 만큼 ‘건조하고 딱딱한’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다. 전대협 초대 의장으로 전민련(3년)과 전국연합(6년)에서 잔뼈가 굵어 온 전대협 세대의 기대주다. 재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80년대 운동 세대의 창조적 진취성을 접목시키는 것이 그의 슬로건. 그래서 92년부터 97년까지 전대협 동우회 회장을 맡아 전대협 세대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데 많은 열정을 쏟았다. ‘견결(堅決)한 조직운동가’의 인상을 가진 그는 주위에서 “사람은 좋은데 언론플레이에 서툴다”라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이런 평가에 대한 그의 응대가 걸작이다. “나는 TV 체질보다 신문 체질, 신문 체질보다는 팸플릿 체질이다.” (중략) 그는 이해학 목사의 딸 도레씨와 전민련 활동을 하다 맺어져 이제는 여섯 살 사내아이(규찬)를 둔 아버지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재야의 전통과 386의 창조성 접목을 강조했다.
 
  3선(17·19·20대, 서울 서대문갑)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이렇게 소개했다.
 
  〈시인을 꿈꾸던 비운동권 출신의 국문학도가 87년 총학생회장이 되면서 연세대 학생운동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유세전은 치열하되 즐거웠고, 흥미있는 대자보와 홍보물이 일반화됐으며, 선거날엔 유례없이 2천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등 축제 같았다. 신임 학생회장 선출-위력 과시 교문 진출시위가 공식이었지만 우상호의 학생회는 그런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 선거 패배자는 승자에게 깨끗이 승복하고, 이긴 자는 진 사람을 껴안았다. (중략) 우씨는 자신보다 3년 아래인 이인영씨(고려대 총학생회장, 전대협 초대 의장)와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면서” 지금까지 줄곧 재야생활을 해 왔다. 지난 대선 때 특정 정파를 지지하진 않았지만, 정치인 가운데 김근태 국민회의 부총재를 가장 따르는 편이다. (중략) 우상호씨는 천상 조직전문가다. 세상의 변화를 통찰력 있게 읽으면서도 과거의 소중한 경험과 접목시킬 줄 아는 지혜가 있다. 겉멋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겸손하다. 아무래도 우리 정치구도가 확 뒤바뀌게 된다면 그는 괜찮은 정당의 사무총장쯤이 적격일 듯하다.〉
 
 
  전해철 20여 년 전 “언론개혁에 기여하고 싶다”고 주장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오른쪽)과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도 소개됐다.
  재선(19·20대, 경기 안산 상록갑)의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에 실린 인터뷰에서 “언론개혁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제29회 사시 합격. 93년부터 민변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언론위원회로 옮겼다. “지금까지 개혁의 사각지대였던 언론을 변화시키는 데 변호사로서 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언론은 보도 내용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96년 민변 대외협력위원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인권위원, 감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98년 민주개혁국민연합 법조분야 추천위원이며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을 맡고 있다. 법무법인 안산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고려대 법학 81학번.〉
 
  전 의원은 당내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 핵심으로 꼽히는 법조계 출신 재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가 설립한 법무법인 ‘해마루’에 함께 몸담으며 인연을 맺었다. 2004년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2006년 민정수석을 지내는 등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됐다. 민정비서관 시절 직속상관인 민정수석이 바로 문 후보였다. 이때 맺은 문 전 대표와의 ‘특별한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재선(19·20대, 경기 화성을)의 이원욱 의원에 대해서는 ‘국민회의 지방자치단체 부장, 고려대 법학과 82학번, 10년 만에 대학 졸업(90년), 광고회사 다니다 공채로 정당생활’이라고 적었다. 이 의원은 1985년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그는 좀처럼 여당과 타협하지 않는 당내 대표적인 강경파다.
 
  같은 재선(19·20대, 서울 중랑을)인 박홍근 의원의 이름도 있다. ‘제2건추 추진팀, 경희대 국문과 88학번, 92년 경희대 총학생회장, 청년정보문화센터 부소장(93년).’ 박 의원의 경우 19대 시절에 ‘민평련’을 탈퇴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진보 개혁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사안에 따라서는 중도 실용의 목소리도 경청하자는 입장이다.
 
 
  지사의 풍모를 가진 영원한 투위장
 
  18대부터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 20대에 처음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신동근 의원은 건치 집행위원장일 때만 해도 정치에 뜻이 없다고 밝혔다. ‘지사의 풍모를 가진 영원한 투위장’이란 제목의 글이다.
 
  〈그는 치과의사 중에는 흔치 않은 ‘공고’ 출신이다. 박정희가 기술중공업 우선정책을 펼쳐 공고 진학을 장려한 것이 계기가 돼 전북 기계공고에 입학했다. “말이 학교지 군대와 다를 바 없었어요. 교장은 예비역 장성이었고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내부 규율이 무척 엄했습니다.”
 
  졸업 후의 생활은 춥고 배고픈 공장생활일 뿐이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 81년 장학생으로 경희대 치과대학에 들어갔다. 입학 직후부터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85년에는 치과대생으로 경희대 삼민투 위원장을 맡아 당시 경희대 운동권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중략) 신씨는 청년운동에도 관심이 많다. 97년 대선 당시 청년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푸른31’을 만들어 국민승리 21의 권영길 후보를 지지했다.
 
  현재는 청년단체들의 통합을 추진한 한국청년연맹 공동대표를 거쳐 한국청년연맹, 청년정보문화센터, 전대협동우회 등을 아우르는 한국청년연합회 준비 위원장을 맡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마침 준비위 발족식을 갖고 난 뒤 디제이의 ‘젊은 피 수혈론’이 나오는 바람에 일각에서는 의혹의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직 정치에 뜻이 없단다. “당분간은 보건의료운동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전문가운동의 전형을 만드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잖아요.” 경희대 치대 81학번/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삼민투) 위원장.〉
 
  같은 초선(20대, 서울 금천)인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에 대한 소개도 있다. ‘청와대 1부속실, 서강대 사학 84학번.’ 이 의원은 정치권은 물론 야권에서도 드물게 김대중 전 대통령(DJ)계, 친노계와 두루 가깝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 출생인 그는 박지원 의원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고, 이후 김대중 총재 공보비서를 지냈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에는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 국장, 기획조정국장,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을 지냈다.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선대위 정책특보, 문재인 후보 선거캠프 공보팀장 등을 지냈다. 지난 20대 총선 때는 ‘금천 노사모’가 주도적으로 선거운동을 이끌었다.
 
  초선(20대, 비례대표)인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98년 5월 《정치와 선거의 기술》이란 책을 펴낸 차세대 정치 컨설턴트 홍보전략가, 이미지 메이커 등을 뜻하는 스핀 닥터(spin doctor)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대학원에서 NL과 PD의 통일론 비교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정치연구회 창립멤버로 학술단체협의회 출범에 실무 역할을 맡았다. 최형우 전 신한국당 의원이 설립한 정보화 전략연구소 기획의원을 맡기도 한 그는 정치 컨설팅 전문회사인 RCM 기술실장 경험을 계기로 본격적인 정치 컨설턴트의 길로 들어섰다. 정치를 “논리와 법칙을 가진 기술”로 보는 그는 와이에스 때부터 시작된 “개혁의 시대”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행정관/고려대 정외 84학번.〉
 
  책은 20여 년 전 홍보전략가였던 이 의원을 학술단체 연합 모임인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의 산파역이자 차세대 정치 컨설턴트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현재 당내 ‘전략통’으로 통한다.
 
 
  ◆전직 국회의원
 
  책에서 소개한 1000명 중에는 전직 국회의원 수도 꽤 됐다. 책은 33세의 나이로 15대 국회에 입성한 김민석 전 의원(15·16대, 국민회의, 서울 영등포을)을 “진취적 현실주의자 21C형 전문가와 손잡다”라고 표현했다.
 
  〈386세대 정치 진출자의 선두주자 김민석. 제도정치권에 진출한 이후 ‘진취적 현실주의자’의 길을 걸어온 그가 요즘 더욱 바빠졌다. 경제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21세기에 대비해 ‘21세기형 전문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자 전학련 의장으로서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복역 중 87년 말 감옥에서 후보 단일화 실패와 대선 패배를 접하고서부터다. (중략) 현실 정치를 바꾸지 않는 한 진정한 사회변혁은 요원하다는 자각을 한 것이다. 88년 2월, 2년 9개월 만에 출소한 그는 범민주 세력의 정치 진출을 모색하다 91년 민주당에 합류하게 된다. 92년 14대 총선에서 사지나 다름없는 영등포을구에 뛰어들어 당시 여당의 거물이었던 나웅배씨를 상대로 돌풍을 일으켰으나 결과는 285표 차의 석패였다. 그러나 패배했음에도 그의 가능성을 엿본 듯 기성 정치권은 그에게 줄곧 이런저런 기회를 제공해 주게 된다. 국민회의 의원/서울대 사회 82학번/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의장.〉
 
  승승장구하던 김 전 의원은 16대 대선 때 정몽준 후보 지지로 방향을 선회, ‘철새’라는 비판을 받고, 추락했다. 이후 김 전 의원은 수차례 재기를 시도했으나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공식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이다.
 
  당시 최연소 비서관(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장성민 전 의원(16대, 새천년민주당, 서울 금천)은 자신의 성공비결의 하나를 “해외 신간서적 탐독”이라고 했다.
 
  〈얼마 전 김 대통령이 장 실장을 가리켜 “잘 닦고 연마하면 21세기를 이끌어갈 ‘자질을 갖고 있다’고 칭찬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총애 때문인지 그는 청와대 내에서 시기와 선망을 동시에 받고 있기도 하다. 그는 학창시절 학생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서강대 대학원,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수료했고, 지금은 상황실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연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김 대통령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저서나 학문 조류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심을 끌 만한 해외 신간이 나오면 제일 먼저 구해 읽고 있다. 그는 “김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보다도 생각에서는 더 젊기 때문에 그분을 모시기 위해서는 새로운 흐름을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항상 자신감에 찬 면모와 과도한 의욕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오해를 받을 일도 많다. 서강대 정외 82학번.〉
 
  16대 이후 연이어 국회 입성에 실패한 장 전 의원은 지난 19대 대선에 국민대통합당의 후보로 출마해 0.01%의 득표율을 올렸다.
 
 
  김기식 전 의원, 차기 금융위원장 하마평
 
  당시 참여연대 정책실장이었던 김기식 전 의원(19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4번)에 대한 기사는 길다. 그에 대해 알릴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94년 9월 10일 오후 2시. 서초구 변호사회관 5층 강당에서는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새 장을 여는 뜻깊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훗날 경실련과 함께 시민운동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참여연대의 창립식이었다. (중략) 맨 앞줄에 나란히 앉아 남다른 감회로 행사를 지켜보는 세 사람이 있었다. 박원순 집행위 부위원장(현 사무처장), 조희연 사무처장(현 협동처장), 김기식 정책기획부장(현 정책실장)이었다. (중략) 김기식 정책실장. 그는 386세대 운동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고교 때 반정부시위 참여-대학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10여 차례의 연행과 두 번의 투옥-인천 지역에서 노동운동-현재 시민운동 활동가.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자마자 운동에 뛰어들어 16년간 한길을 걸어온 셈이다. 고교 3학년 때 연세대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던 그는 어느 날 광주항쟁과 관련된 대자보를 읽다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시위가 있을 때마다 대학생들 틈에 끼어 돌을 던졌다. 그해 입시에서는 당연히 낙방했고, 이듬해 서울대 인류학과에 입학했다.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선배를 찾아 자청해서 운동권이 되었고, 86년 8월 구국 학생연맹 사건으로 구속됐다. 12월 집행유예로 석방될 때까지 4개월간 서울구치소에 있으면서 건대 사건으로 들어온 학생들과 ‘빵투’를 벌이다 보안과에 끌려가서 집단구타를 당했다. 이때 항복을 하면서 자신의 운동성에 대해 처음으로 의심하며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출소하면서 감상적인 학생운동을 접고 노동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중략) 언젠가 어느 선배가 김기식 실장에게 말했다. 너는 아직도 사양산업에 종사하고 있느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보십시오, 앞으로 운동은 가장 유망한 직종이 될 겁니다. 현실과 팽팽히 맞서면서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그는 천상 운동가다. “운동하는 삶이 초라한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평생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모범이 집단적으로 나올 때 좋은 후배들이 운동에 평생을 걸 수 있지요. 저는 운동가로 아름답게 생을 마치고 싶어요.” 서울대 인류 85학번/구국 학생연맹 사건.〉
 
  김 전 의원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선캠프 정책특보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차기 금융위원장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김유정 전 의원(18대, 민주당, 비례대표 15번)은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자마자 야당 당직자로 정치권에 들어갔다. 청와대 행정관, 민주당 여성국장을 거쳐 18대 의원, 당 대변인을 지냈다. “여의도에서 청춘을 다 보냈죠. 남의 유세장은 수없이 다녔는데, 19·20대 공천을 못 받아 정작 내 유세는 못 했어요. 정치 참 비정하더라고요. 손학규 전 대표가 제게 ‘왜 당신은 안 되는 줄에만 서느냐’고 하더라고요. ‘내 소신입니다’라고 했죠.”
 
  책은 ‘여성 정치 진출 적극적인 여성 당직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 전 의원을 이같이 소개했다.
 
  〈당 출신으로 들어온 청와대 행정관 중 유일한 홍일점. 91년 졸업과 함께 일찍 정치권에 뛰어든 젊은 여성 당직자다. 야당시절 여성 당직자의 위상은 ‘야당 속의 야당’으로 상징되는데 그가 정치권에 입문할 당시 여성 당직자는 김현미, 조성은(여성 특별위 차별개선 담당관), 안상현(강원도 의원), 양경숙(서울시 의원)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신민당을 거쳐 민주당 정치연수원 부장과 여성위원회 부장을 역임하고 국민회의 지방자치국 부국장 대우를 지냈다. 현재 대통령 여성정책비서실 행정관으로 있는 그는 여성정책과 지방자치 쪽에 관심이 많다. 특히 여성의 정치 진출에 대해 대단히 적극적이다. 대통령 여성정책비서실 행정관/이화여대 정외 87학번.〉
 
  김 전 의원은 현재 국민의당 대변인이다.
 
  김제남 전 의원(19대, 정의당, 비례대표 5번)은 녹색연합을 비롯해 ‘핵 없는 공동행동’ 등 좌파 환경운동을 해온 사람이다. 김 전 의원은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와의 인터뷰에서 “평화운동과 생명운동을 연결하는 교각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은 “평화운동과 생명운동을 연결하는 교각”이 되고자 한다. 그가 택한 환경운동이란 매개를 통해서. 녹색연합에서 그가 주력했던 미군기지 환경운동은 이 같은 맥락. 그의 또 다른 화두는 ‘풀뿌리 조직’을 통한 시민파워를 만드는 일이다. 덕성여대 사회과 83학번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87년 졸업하면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북부지역에서 간사를 맡았던 그는 88년 우리나라 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나라사랑 청년회’란 청년 대중조직을 만든다. 환경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92년 ‘푸른한반도되찾기모임’이 창립되면서부터. 그는 이 청년 환경조직의 대표를 맡다가 94년 녹색연합배달연구소와 통합했다.〉
 
 
  간첩 논란 있었던 이철우 전 의원
 
책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 전 의원, ‘왼팔’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두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인제가 열린 2009년 5월 29일 새벽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을 뒤따르고 있다.
  이 밖에 김형주(17대, 열린우리당, 서울 광진을), 박원석(19대, 정의당, 비례대표), 고진화(17대, 한나라당, 서울 영등포갑), 이광재(17·18대, 열린우리당,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이화영(17대, 열린우리당, 서울 중랑갑), 이상규(19대, 통합진보당, 서울 관악을), 이철우(17대, 열린우리당, 경기 포천·연천), 유기홍(17·19대, 열린우리당·민주통합당, 서울 관악갑), 강기정(17·18·19대, 민주당, 광주 북구갑) 전 의원의 이름이 있었다.
 
  이들은 간단한 이력만 소개됐다.
 
  〈▲김형주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외국어대 서반어과 83학번, 외국어대 정치학 박사 ▲박원석 참여연대 시민권리국 국장, 동국대 사회학과 88학번 ▲고진화 ‘한국과 세계’ 준비위원장, 성균관대 사회학과 82학번, 청년운동의 산증인, 96년 총선 패배 후 2년 동안 유학 ▲이광재 노무현 의원 보좌관, 연세대 화학공학과 83학번, 자치경영연구원 기획실장, 법학공부 중 ▲이화영 국민회의 이상수 의원 보좌관, 성균관대 사회학과 81학번, 90년대 노동문제에서 지방자치로 무게이동, 중랑구청장 준비 중 ▲이상규 구로사랑민주협의회 의장, 서울대 법학과 83학번, 한국민족민주청년단체연합 사무처장 ▲이철우 전대협 동우회 운영위원,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84학번, 전대협의장비서(87년), 동화 작가 ▲유기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화협) 사무처장, 서울대 국사학과 77학번, 서울민주청년단체협의회(서청협) 의장(93년), 한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 의장(94~98년) ▲강기정 공동준비위원장, 전남대 전기공학과 82학번,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협) 부의장(96~97년).〉
 
  이광재 전 의원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 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왼팔은 안희정 충남도지사)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순하고 조용한 편이지만 ‘논리와 기획’이 강하다. 항시 책을 끼고 다니고 논쟁이 벌어지면 쉽게 굽히지 않는다. 가끔 고집스럽다는 얘기도 듣는다. 1988년 ‘국회의원 노무현’의 비서관으로 시작해 2년여를 빼고는 줄곧 노 전 대통령 옆에 있었다. 3당 합당 반대 논리를 만들었고, 2002년 대선 때는 화제를 모았던 TV 광고를 총괄했다.
 
  이철우 전 의원은 간첩 논란이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지하조직인 ‘반미청년회’의 학생부 지도위원 자격으로 전대협 활동에 관여했다. 이 반미청년회의 조직국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충남도지사였다. 이 전 의원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래 희망에 ‘유정회 국회의원’이라고 썼던 순진한 시골 청년이었지만,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알게 된 후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1992년 이선실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중부지역당 간첩사건’의 지역조직책으로 지목돼 4년의 실형을 살았다.
 
  강기정 전 의원은 ‘몸싸움하는 의원’으로 유명하다. 서울남부지법은 국회 의사진행 방해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에서 배제됐다. 2월 25일 이 소식을 접한 채 그는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의사 지연 연설)를 위해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5시간을 연설했다.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내려왔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장
 
  책에 소개된 인물 중에는 현재 지방자치단체장을 역임하는 인물도 있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표적이다. 책은 안 지사를 “지방자치운동에 앞장서는 ‘마담뚜’”라고 했다.
 
  〈고려대에 입학하기도 전에 지하서클에 가입한 이래 지하에서만 학생운동을 했다. 87년과 88년에 각각 고대 애국학생회 사건과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89년 김덕룡 의원 비서관으로 출발해 꼬마민주당 당직자를 거쳐 93년 노무현 의원의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프로모터나 왕도우미” 같은 역할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마담뚜’라고 부르기도 한다. 80년대가 ‘반독재’였다면 90년대 이후는 대중의 정치적 소외현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여 자치 개혁을 중심의제로 한 지방자치운동이 그의 최근 화두다. 자치경영연구원 사무국장/고려대 철학 83학번.〉
 
  ‘제주도가 낳은 천재’로 유명세를 탄 원희룡 제주도지사에 대해서는 이같이 썼다.
 
  〈‘수석합격자’라는 꼬리표가 그를 늘 따라다닌다. 서울대 입학 때는 332점(340점 만점)으로 전국수석을, 92년에는 사법시험 전체수석을 했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고향인 제주도에서는 그를 ‘영웅’으로까지 우러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편하고 겸손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그는 학생운동보다 야학과 노동운동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민중의 구체적 삶과 정서를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관념적인 생각이 앞선 까닭에 한계에 부딪히면서 변화의 계기가 필요함을 느껴” 90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 92년 수석 합격했다. 서울지검, 여주지청, 부산지검에서 98년까지 검사생활을 하다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아웃사이더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위치에서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것이 변신의 변이다. 최근 젊은 층의 움직임에 대해서 “정치 지향적인 멤버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온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서울대 법대 82학번.〉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 문재인 대통령과 경쟁한 최성 고양시장의 이름도 있었다. 책은 그를 “정치감각 겸비한 통일 문제 박사”라고 평했다.
 
  〈통일 문제 전문가로서 80년대에는 대중적인 통일 문제 강연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상임연구원을 역임한 그는 95년 남궁진, 정동채, 임동원, 김상응, 이강래, 박금옥 등과 함께 아태평화재단 창립에 참여했다. 이후 통일·외교·안보 문제에 관한 한 디제이의 최측근 정책 브레인 중 한 사람으로 자리를 잡았다. 96년에는 2백여 명의 친디제이 통일·외교·안보 전문가 그룹인 ‘21세기 통일포럼’을 창립,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연구(학문)와 실무(현실 정치) 능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정치감각이 빛을 발한 때는, 97년 대선 방송대책팀 총괄간사를 맡으면서 당시 TV 토론과 토크쇼 등의 예상 질문과 응답을 정교하게 작성해 디제이의 득표력을 올리는 데 공을 세웠다. 성급한 조기통일 논의에 반대하는 그는 “21세기 통일운동의 방향은 평화운동, 남북나눔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 고려대 정외 82학번.〉
 
  김영배 서울 성북구 구청장, 복기왕 충남 아산시 시장도 간단한 이력이 소개됐다.
 
  1992년 학생운동의 핵심 조직인 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 연합) 중앙위원을 지낸 김 구청장은 2010년 성북구청장에 선출(5·6대, 재선)됐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86학번이다.
 
  복 시장은 충남 아산군 온양읍 법곡리에서 3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온양초, 온양중, 아산고를 거쳐 명지대 무역학과(86학번)를 졸업했다. 고려대정책대학원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생 때 웅변을 잘해 상을 여러 번 탔고 명지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아산시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중도 하차(당선무효형)했고 절치부심하며 재기를 준비해 온 끝에 아산시장에 당선(5·6대, 재선)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양정철(외대 법학 84학번)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대표적. 양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에 문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수족 역할을 했다. 문 전 대통령이 정계에 발을 들이며 냈던 책 《운명》에서 그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다고 쓰기도 했었다. 그는 대선 직후 “그분(문 대통령)과의 눈물 나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 저는 퇴장한다”며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줘야 새 사람이 오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한다”는 문자를 남기고 2선으로 후퇴했다. 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의 한국고용정보원 채용을 둘러싼 논란으로 유명해진 권재철 전 청와대 노동비서관(성대 경제학 82학번)도 소개됐다. 준용씨가 2007년 1월 한국 고용정보원에 입사했을 때 고용정보원장은 권 전 비서관이었다.
 
  양정철 전 비서관과 함께 문재인 대선캠프 비서실 부실장을 역임한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한 내용도 있다.
 
  〈대학시절 전형적인 학생회 활동가였다. 90년 전대협 4기 의장시절 뛰어난 연설 솜씨를 발휘하며 대중을 사로잡기도. 감옥생활 동안 신과학 관련 책들을 탐독했으며 새로운 공동체 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현재 전대협 동우회 부회장과 한국청년연합회(준) 운영위원 그리고 광주 지역 청년모임인 21세기 청년광장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지역 내 젊은 전문가그룹을 중심으로 연구소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토지》와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리고 《제3의 길》을 인상깊게 읽었다는 그는 “호남의 운동권 출신인데 현 정부에서 얘기하는 혈액형과 맞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21세기 청년광장 공동대표/전남대 무역 85학번.〉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
 
  책이 꼽은 인물 중에는 훗날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이들도 있었다. 유몽희 전 국회의원 보좌관(전남대 영문학과 83학번)은 상품권 업체로부터 오락실 경품용 상품권 업체로 지정되도록 힘써 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2007년 4월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는 유 전 보좌관에게 징역 10월, 추징금 6800여만원을 선고했다. 판결문을 보면 유 전 보좌관은 2005년 상품권 업체인 CS클럽코리아로부터 오락실 경품용 상품권 업체로 지정되도록 힘써 달라는 청탁과 함께 4차례에 걸쳐 8500만원을 받고, 이 회사 법인카드 3300여만원을 사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사회경력을 이용해 알선의 대가로 금전을 취득하고 수수한 금액이 적지 않은 점에 비춰 보면 공무의 공정성과 그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훼손한 죄질이 중해 실형으로 처벌함이 적정하다”고 판시했다.
 
  이강진 전 총리실 공보수석비서관(연세대 사학과 80학번)은 2006년 3월 4일 골프를 쳐 비난을 받았다. 당시는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고조된 시기였다. 이 전 수석은 4일 낮 12시50분 경기 광주 지역 뉴서울컨트리클럽에서 학교 선후배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과 라운딩을 했다. 이 수석과 함께 라운딩한 동반자는 변호사, 시중은행 지점장, 자영업자 등 3명이다. 이 전 수석은 골프 모임 뒤 밤 10시쯤 이 총리의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아침 총리 공관으로 출근하라는 지시였다. 그는 출근해 이 총리의 거취 관련 입장을 발표했었다. 골프를 하던 시각 청와대와 총리실 등은 이 총리 골프 문제로 초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이 전 수석은 “지난해 내가 약속을 한 번 못 지킨 적이 있었고, 아프리카 순방 등으로 일정이 많이 미뤄졌기 때문에 참석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각자 30만원씩 내 그린피와 식대를 계산했으며 모일 때마다 비용은 각자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함께 골프를 친 사람들은 정치권 또는 업무와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2012년 저축은행 사태에 연루된 임석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고려대 경제)도 386리더의 한 사람으로 선정됐다. 임 회장은 1987년 '새시대새정치청년연합회 (연청)' 기획국장, 청년 YMCA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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