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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한반도

대한민국 무너지다(1948~20XX) (1/3)

“서울 시민 여러분! 백두산의 김정은이 왔습네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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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정찰위성 평안북도 구성에서 이상 징후 발견
⊙ 위기 때 한국 대통령은 장기간의 유럽 순방 떠나 지휘부 공백
⊙ 백악관, 주한 미국인 철수 결정 … 영국·일본도 뒤따라
⊙ 중국·러시아, 미국의 북한 억제 요청 무시
⊙ KTX 예매표 동나고 인천공항 등에 외국인 대피객 몰려
⊙ 증권 폭락 … 전쟁 냄새 맡은 외국 종군기자들 서울로 입성
⊙ 국무총리의 대(對)국민담화에도 불안 가중
⊙ 대연평도·백령도 초토화, 원전(原電)·포스코 등 주요 기간산업망도 미사일 맞아
⊙ 한미 공군의 반격 … 참수작전 시작
⊙ 평양 김일성 동상과 만수대 김일성 시신 폭격 … 북한 주요 갱도 파괴
⊙ 작전계획 5015 발동
⊙ 은신했던 김정은 나타나 ‘핵 보복’ 위협
⊙ 흔들리는 민심 … 평화 원하는 촛불집회 시작, 미국 여론도 돌아서
⊙ 북한, 방사포와 장사정포로 반격 … 한 광역시에 핵 미사일 투하
⊙ 대통령은 항복 선언 후 외국 망명

첫째, 이 시나리오의 스토리는 허구(虛構)다.
둘째, 이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전부 가상이며 특정인과 관련이 없다.
셋째, 이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문서들, 예를 들어 작전계획 5015 같은 것들은
        모두 군사기밀로서, 인터넷이나 언론에 공개된 것들을 이용한 것이다.
        무기의 제원(諸元)들도 공개된 것들이다.
  김일성은 1994년 7월 7일 사망했다. 죽기 직전까지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 준비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가 김영삼 대통령의 평양 방문 후 답례로 서울에 와서 읽을 연설 원고문이 최근 공개됐다.
 
  “서울 시민 여러분! 백두산의 김일성이 왔습니다. 북조선은 주먹이 강하고 대신 남조선은 잘삽니다. 이 둘을 합치면 우리 민족은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나진·선봉·청진, 이 황금의 삼각주(三角洲)를 왜 남들에게 주겠습니까? 남한에 개방하겠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지 20년이 넘었다. 아들·손자 대로 넘어오면서 북한의 대남 안보위협은 점점 가중되고 있다. 장거리·중거리·단거리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북한은 이제 그 미사일에 핵 탄두(彈頭)를 달아 미국·일본·한국을 공격하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는 날로 약해지는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일깨우기 위해서 기존에 발표된 자료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즉 이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팩트(fact)’들은 모두 사실이다. 다만 시나리오의 스토리 라인은 허구(fiction)이다. 이 시나리오가 전 국민이 북핵의 위험성을 깨닫고 의연히 대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D-15 새벽 3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구성시

 
  언뜻 유성(流星)처럼 보이는 19t짜리 금속체가 하늘을 ‘휙’ 하고 갈랐다. 지구 전역(全域)을 살피는 KH-12 정찰위성 5대 가운데 하나였다. 이 정찰위성은 1992년 미국 국립정찰국(NRO)과 공군우주사령부가 방산업체 록히드마틴과 함께 개발한 것이다.
 
  정찰위성은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타이탄-4 발사체(發射體)에 실려 우주로 날아간 뒤 1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해상도 15cm의 사진을 얻기 위해 이 정찰위성에는 태양계 너머를 살피는 허블 망원경과 비슷한 수준의 광학렌즈에, 적외선(赤外線) 카메라도 장착돼 있다.
 
  적외선 카메라는 적(敵)이 미사일이나 우주발사체를 쏠 때 발사장 일대에 남는 강한 열기(熱氣)를 포착해 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미국이 KH-12 정찰위성 수를 다섯 대로 유지하는 것은 ‘5’라는 숫자가 지구상에서 미국이 생각하는 적성(敵性)국가를 관찰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위성 하나가 수명이 다하거나 사고로 추락하면 미국은 성능이 개량된 KH-12를 다시 쏘아 같은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KH-12 정찰위성은 군사기밀이지만 태양 궤도로 돌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 대를 개발하는 데 10억 달러, 한 번 우주로 쏘아 올리는 데 4억 달러가 드는 이 정찰위성에 묘한 장면이 잡혔다.
 
  KH-12는 잠시 사람처럼 ‘갸웃’ 하는가 싶더니 사전에 프로그램된 대로 고도(高度)를 낮춰 북한 상공으로 접근하여 구성시 일대에서 수만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이윽고 다시 제 궤도로 상승한 정찰위성은 미국 버지니아주 챈틀리와 콜로라도주 엘파소 카운티로 사진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립정찰국과 공군우주사령부에 설치된 수퍼 컴퓨터는 한반도 상공에서 촬영해 동시에 전달된 이 의문의 사진 파일들을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KH-12 정찰위성은 제 값을 했을 것이다.
 
 
  # D-14 오전 10시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미국 대통령은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1947년 국가안전보장법에 의해 설치됐다. 이 회의에는 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과 함께 국가정보국장·합참의장·국가안보국보좌관·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비롯해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세계가 기억하는, 역사에 기록된 이름난 전쟁들이 모두 이곳 테이블 위에서 기획되고 진행됐다. 그중에는 6·25도 있었고 베트남전도 있었으며 걸프전도 있었다. 느닷없는 호출을 받고 대통령 집무실로 달려온 안전보장회의 멤버들 앞에는 2장짜리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1급 기밀(Top Secret)
 

  - 하루 전 북한 평북도 구성시에 이상(異常)징후 포착.
  - ‘화성-12형’(한미연합군이 명명한 코드명은 KN-1, KN은 ‘Korea North’의 약어·略語) 11기 기립(起立)확인.
  - 이 미사일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바로 이전 단계로 볼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로 최장 사거리 5000km.
  - 2017년 5월 15일 발사했을 최대 2111.5km까지 올라갔다가 발사지에서 787km 떨어진 공해상(公海上)의 목표 수역을 정확히 타격한 바 있음.
  - 정상 각도로 쐈으면 5000여km를 비행할 수 있었는데 고각(高角)발사를 했기에 비행거리는 787km였음.
  - 주한미군에 ‘데프콘3(전군・全軍의 휴가·외출 금지, 한국군이 갖고 있던 작전권의 한미연합사 이양) 즉각 발령 통보, 추후 또다른 위협 징후가 있을 경우 데프콘 상향 조정.
  - ‘KH-12’ 정찰위성 총 5대를 북한 상공에 고도 300km까지 초근접 정찰 개시.
  - 국가안보국(NSA)의 통신감청 활동 풀가동.
  - ‘SAR’ 위성 북한 상공 긴급 투입 필요.
  - 정보감시정찰(ISR) 자산 추가 투입 필요.
  - 일본 가데나 기지의 E-8 제이스타스 한반도 투입.
 
  한참 서류를 들여다보던 대통령이 침묵을 깼다.
 
  “SAR이 대체 뭐요?”
 
  국가정보국장이 말했다.
 
  “이 위성은 전파를 쏩니다. 표적에 맞은 전파가 되돌아오면 그 반사파(反射波)로 영상을 만듭니다. 건강검진을 할 때 초음파 사진과 비슷한 원리지요. 초음파 대신 레이더파를 쏘기 때문에 어두워도 관계없고 구름이 짙게 깔려도 상관없이 지상 표적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3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다시 투덜댔다.
 
  “그 빌어먹을 젊은 녀석이 또 발광을 하는군. 이번엔 과거와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한국에는 미국인이 몇 명이나 있소?”
 
  이번에는 합참의장이 말했다.
 
  “주한미군을 제외해도 23만명이 조금 넘습니다.”
 
  대통령이 상처 입은 짐승처럼 으르렁댔다.
 
  “많기도 하군. 그가 미친 짓을 한다면 그 많은 미국인들을 다 어떻게 한반도에서 빠져나오게 하지?”
 
  이번에는 중앙정보국장이 말했다.
 
  “클린턴이 대통령이던 시절, 우리는 북한 영변에 대해 제한공습을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앙정보국장은 서류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이것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국에 있는 미국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NEO(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 프로그램, 즉 민간인 소개(疏開) 계획입니다.”
 
  국무부장관이 나서더니 중앙정보국장의 말을 끊었다.
 
  “NEO는 한반도에서 대형 재난이 발생하거나 무력분쟁이 벌어질 경우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도움을 받아 미국인을 단시일 내에 효과적으로 대피시키려고 마련한 프로그램입니다. 1차 북핵 위기 이후 주한 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은 이를 숙달시키기 위해 ‘커레이저스채널(Courageous Channel·용기 있는 항로)’이라는 이름의 정기훈련을 매년 두 차례 실시해 왔습니다.”
 
  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그렇게 많은 인원이 일시에 빠져나오면 한국인들이 눈치채지 않겠소?”
 
  국무부장관이 말했다.
 
  “당연하지요. 한국인들뿐 아니라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는 일본인들도 금세 알게 될 겁니다. 커레이저스채널은 일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천안함 폭침(爆沈) 직후였던 2010년 5월에도 정기훈련이 예정돼 있었는데 ‘한국인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취소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렇다고 한국인과 함께 미국인들이 저승으로 갈 순 없지. 2차 정보가 들어와서 북한의 핵 위협이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다면 곧장 ‘철수작전’을 시작하시오. 앞서 말한 건의사항들도 모두 승낙하겠소.”
 
 
  # D-12 청와대
 
  이날 대통령은 흥분돼 있었다. 다음 날로 예정된 유럽순방 때문이었다. 그는 영국을 간 뒤 프랑스·이탈리아를 거쳐 독일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영국에서는 여왕이 VIP에게만 제공한다는 마차(馬車)를 내준다고 했다. 그 마차를 타고 유서 깊은 버킹엄궁까지 간다는 상상에 대통령은 행복했다.
 
  프랑스에서는 엘리제궁 만찬이 예정돼 있었는데 대통령을 설레게 한 것은 입맛에 맞지 않는 프랑스 요리보다 북한과 함께 루브르박물관에 지은 ‘남북한 통합 문화관’ 테이프 커팅이었다. 원래 한국문화관만 있던 것을 모든 비용을 한국이 다 대고 프랑스 쪽에 사정해 겨우 성사시킨 것이었다.
 
  이탈리아 순방에 ‘통일 대통령’으로서의 대미(大尾)를 독일에서 하기 위한 잠깐의 휴식이라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동·서독 통일의 주역으로 몇 년 전 숨진 콜 수상처럼 나도 첫 남북한 통일 대통령이 돼야지” 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갑자기 몇 년 전 유럽 순방 때의 나쁜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대통령은 “사상 최초의 통일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아내는 종북주의자로 알려진 인물의 흔적을 찾아 그의 고향에서 가져온 흙을 뿌렸다. 그런데 아내가 한 말을 보수언론이 물고 늘어졌다. 그중에서도 유독 괘씸한 인물이 있었다. 한 월간지의 편집장이라는 작자였다.
 
  그의 악의(惡意)에 찬 칼럼은 하도 읽어 이제 눈 감고도 줄줄 외울 정도였다.
 
  “남북한이 통일하는 게 그리 싫은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는데도 언론인이라는 작자가 말이야. 아직도 이 지구상에 좌파니 우파니 색깔 논쟁을 벌이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생각했다.
 
  “보수의 수준이라는 게 그렇지, 뭘. 내가 반드시 그들이 옳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어.”
 
  이렇게 대통령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門)에서 할 역사적인 연설의 원고문을 다시 읽어 보기 시작했다.
 
  “반드시 전 세계가 감동할 거야. 암, 그렇고 말고.”
 
 
  # 그날 밤 북한 방현 비행장
 
북극성-2 미사일 기지를 시찰하는 김정은.
  김정은은 평양 인근 방현 비행장에 있었다. 그의 앞에는 연료를 주입한 ‘화성-12형 미사일’이 은빛 몸체를 반짝거리고 있었다. 원래 이 미사일은 2단 추력을 받도록 설계돼 있었다. 100여t의 1단 추력으로 미사일을 띄운 뒤 5~10t의 2단 추력을 갖추면 ‘화성-12형’은 곧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된다.
 
  즉 ‘단(段) 추가’와 ‘비행 중 단 분리’, 그리고 이 미사일에 적합한 핵탄두의 완성과 핵탄두를 실은 탄두부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만 개발했다면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미국 본토(本土) 어디든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유엔의 제재와 자금부족 때문이었다.
 
  대신 북한이 생각해 낸 게 갱도(坑道) 활주로와 격납고에 미사일을 숨겨 놓은 뒤 한미 정찰위성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전쟁이 시작될 때 숨겨 놓은 미사일을 꺼내 발사하는 전술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원래 군용(軍用)으로 쓰다 민간 국제공항으로 만든 원산 갈마 비행장 옆에 새로 만든 ‘강다리 비행장’이다.
 
  2002년 공사를 시작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인 2012년 완공된 ‘강다리 비행장’에는 두 개의 활주로가 있다. 그중 하나가 해발 140여m의 야산(野山)을 관통해 건설했다. ‘1번’이라 불리는 지상 활주로와 달리 ‘2번’으로 불리는 이 활주로는 이 야산을 뚫고 건설한 것이다.
 
  갱도 활주로의 목적은 한 가지였다. 유사시 한미연합군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 1번 활주로와 2번 활주로의 남쪽 부분이 파괴되더라도 2번 활주로의 북쪽은 140m의 산이 ‘방패’가 되는 것이다. 이 활주로에는 다른 용도도 있었다.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넣는 곳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군사용어로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TEL’이라고 한다. ‘수송’의 Transport, 기립을 뜻하는 Erection, 발사를 뜻하는 Launch의 약어다. 몇 년 전 미국 존스홉킨스대가 운영하는 ‘38노스’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강다리 비행장에서 폭발 흔적이 있었음이 처음 공개됐다.
 
  김정은은 그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었다.
 
  “종간나 새끼들. 미사일을 쏘려다 발사 전에 미사일이 터지는 사고를 쥐새끼들처럼 알아냈지. 그래 봤자 소용없다. 며칠만 기다리라. 곧 통일의 날이 올 테니.”
 
  김정은은 ‘화성-12형 미사일’을 쓱 돌아보더니 방현 비행장을 떠나 어디론가 향했다.
 
  방현 비행장에서 멀지 않은 평북 동창리 서해(西海) 위성 발사장이었다. 동창리로 향하는 위장(僞裝) 전용차 안에서 김정은은 강다리 비행장에서 그동안 벌어졌던 숱한 미사일 시험과 그 과정에 겪은 고난과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흘렸던 날들을 떠올렸다.
 
  “2016년 6월 22일에는 남조선 애들이 ‘무수단’이라고 부르는 ‘화성-10형 미사일이 두 발을 발사했지. 첫 발은 150km를 날아가 공중에서 폭발하고 두 번째는 고각발사해 1413.6km 상공까지 치솟은 뒤 400여km를 비행했다. 여섯 번 만에 화성-10형 발사에 성공한 것인데 …. 그때도 이 갱도 활주로에 무수단 이동식 발사대를 숨겨 놓았는데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은 그걸 몰랐어. 강다리 비행장보다 더 전방에 있는 황해북도 곡산 비행장의 갱도 활주로가 완공됐더라면 좋았을 텐데 ….”
 
 
  # D-11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은 2500~4000㎞의 사정거리를 자랑한다.
  이틀 전 멤버가 다시 모였다. 표정이 그때보다 훨씬 굳어 있었다. 그들 앞에 놓인 보고서는 김정은이 드러내 놓고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는 걸 입증하고 있었다. 김정은의 신호만 떨어지면 곧바로 북한의 미사일이 남한의 주요 타깃을 향해 발사될 것이다. 몇 분 내에 한반도는 아비규환의 불바다로 변할 것이다.
 
긴급상황(Urgent)
 

  - KH-12 정찰위성 총 5대와 SAR 위성 3대를 북한 상공에 모두 투입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파악했음.
  - 국가안보국(NSA)의 통신감청에는 별다른 징후 포착되지 않음.
  -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 비행장에 ‘화성-12형’ 11기 여전히 기립 중.
  - 전방 지역에 스커드B형 미사일 10기 확인.
  - 평양 부근 동창리 미사일 기지에 무수단 미사일 15기 추가 기립 확인.
  - 북한에는 모두 15개 비행장에 갱도 격납고가 건설돼 있음. 다른 비행장의 갱도 격납고도 확인 필요.
  - NEO(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 프로그램, 즉 민간인 소개계획 즉각 시행 요망.
  - 중국 주석과 러시아 대통령에게 핫라인으로 북한 통제 요청.
  - 데프콘2(실탄 지급과 휴가·외박장병 전원 귀대로 부대 편제인원 100% 충원)로 격상 명령 하달.
 
  대통령이 풀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젊은 친구가 끝내 일을 저지르려는 모양이지? 그럼 총 36기의 미사일이 발사되면 예상되는 피해는?”
 
  합참의장이 말했다.
 
  “화성-12형은 준(準) 대륙간탄도미사일, 즉 IRBM입니다. 독성이 강한 질산을 산화제로 쓰기 때문에 한 번 주입 시 1주일 안에 발사하지 않으면 엔진이 부식됩니다. 최대 사거리가 4000~5000km으로 알래스카가 타격권에 들어옵니다.”
 
  “으~음.”
 
  대통령이 신음했다. 잠시 대통령의 안색을 살피던 합참의장이 보고를 이어 갔다.
 
  “스커드 미사일은 아시다시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러시아에서 도입해 걸프전 때 처음 사용했습니다. 여러 번 개량이 이뤄졌는데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스커드는 B형으로, 그들 용어로는 화성5호입니다. 최대 사거리는 300km로 남한 대부분이 사정권입니다.”
 
  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그 발음하기도 힘든 무수단 미사일이라는 건 또 뭐요?”
 
  합참의장이 말했다.
 
  “무수단은 북한의 지명(地名)인데 사거리가 2500~4000km입니다.”
 
  대통령이 양손으로 감싸쥐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머리가 다 헝클어져 있었다.
 
  “그 빌어먹을 녀석이 그럼 미국과 일본과 한국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는 거요?”
 
  백악관 집무실에 깊은 정적이 흘렀다. 국가안보보좌관이 침묵을 깼다.
 
  “빨리 일본 총리에게도 알려줘야겠습니다. 영국 총리에게도 전화하시고요. 한국 대통령에게는 어떻게 할까요?”
 
  대통령이 말했다.
 
  “영국과 일본 지도자에게는 즉시 전화를 연결하시오. 한국 대통령은 한미연합사를 통해서 정보를 전달하라고 하시오. 그 친구 가진 것도 없이 초대 통일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뻐기더니….”
 
 
  # 같은 날 백악관 집무실
 
  미국 대통령이 영국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시오? 긴급한 정보가 있는데 김정은이가 마침내 광분한 모양이오.”
 
  영국 총리가 말했다.
 
  “전쟁 징후가 확실합니까?”
 
  대통령이 말했다.
 
  “미사일 36기를 곧추세워 놨소. 한국 내에 있는 미국인들을 즉각 소개(疏開)시킬 계획이오. 영국도 준비를 하시오. 내 특별히 알려드리는 것이오.”
 
  미국 대통령이 다시 일본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본 총리는 영국보다는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미 대통령 각하. 우리는 이미 자위대를 통해 북한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내각조사실을 통해 일본인 대피 계획을 즉각 시행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하실 계획입니까?”
 
  미국 대통령이 말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작전계획 5015대로 할 생각이오. 그런데 불분명한 것이 ….”
 
  일본 총리가 잽싸게 물었다.
 
  “뭡니까? 그게.”
 
  미국 대통령이 말했다.
 
  “한국이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할 각오가 돼 있는지 그걸 믿지 못하겠어요. 자유는 거저 얻는 게 아닌데 ….(Freedom is not free.)”
 
  일본 총리는 아부할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가 태평양 건너 도쿄의 집무실에서 작은 두 눈을 번쩍이고 있을 것이라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총리가 말했다.
 
  “저희는 대통령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 전비(戰費)도 갹출하겠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변치 않는 친구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이제 중국 주석에게 전화를 했다. 중국 주석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가 아무리 말려도 김정은은 듣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이 지상군을 동원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만일 지상군이 한반도에 도착한다면 우리 중국도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전화를 거느라 지쳐 가고 있었다. 러시아 대통령은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사냥을 하러 가 연락이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러시아 대통령궁 비서들이 대고 있었다. 대통령은 믿지 않았다.
 
  “음~, 이 불곰 같은 친구가 아예 나를 무시하는구먼.”
 
 
  # D-11 오전 10시
 
  성남 서울공항에 붉은 색 카펫이 깔리고 의장대가 도열했다. 10박11일의 유럽 4개국 순방을 떠나는 대통령을 위한 행사였다. 대통령은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 옆의 부인은 과거에 한 영부인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전 주한 미국대사 부인에게 벗어 줘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한복과 비슷한 차림이었다.
 
  대통령 부인의 가방에는 같은 옷이 색깔별로 여러 벌 있었다. 누군가 원하면 그 자리에서 훌렁 벗어 줄 요량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외국에 가는 게 너무 행복했다. 젊었을 때는 ‘군대도 안 간 사람이 무슨 대통령이냐’는 비판을 받고 고생깨나 했는데 역시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안다’는 옛 말이 사실이었다.
 
 
  # D-11 오전 11시
 
  대통령 일행이 탄 비행기가 떠난 뒤 성남 서울공항 VIP대기실에서는 설전(舌戰)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미연합사령관과 주한 미군사령관으로부터 북한의 도발 징후를 보고받은 국방부장관은 대통령이 떠나기 전 이런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청와대 비서실은 한사코 그를 만류했다.
 
  그뿐 아니라 대통령이 떠난 뒤 눈빛마저 달라졌다.
 
  “아니, 꼭 이런 경사스런 행사에 북한이 도발한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소? 북한이 미사일을 쏜 게 어디 한두 번입니까? 그 사람들 싸울 의지 없어요. 당장 전쟁이 시작되면 전투기를 띄울 연료조차 없는 나라라는 걸 장관도 아시잖습니까?”
 
  국방부장관은 기가 막혔다.
 
  “전쟁이 꼭 전투기 날리고 전차(戰車) 몰고 미아리고개 넘어야 시작됩니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핵 미사일 몇 방이면 상황이 종료된다고요. 그런 걸 대통령도 아셔야 ….”
 
  이때 누군가 말을 끊었다. 친북(親北) 인사로 낙인 찍혀 임명할 때부터 언론의 비판을 받은 사람이었다.
 
  “아직도 전쟁 운운하니, 이 정부의 장관 맞습니까? 언제는 감군(減軍)해도 된다고 큰소리 펑펑 치더니. 북한이 미사일 쏘면 미국이 가만히 있겠어요? 통일 선언하러 가는 대통령께 좋은 소식은 못 전할망정.”
 
  국방부장관은 할 말이 없어 VIP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대통령이 떠난 하늘이 유달리 붉었다. 불길했다.
 
 
  # D-10
  서울 용산 캠프 개리슨

 
  새벽부터 사람들의 행렬이 미군 용산기지 내 ‘캠프 개리슨’으로 몰려들었다. 캠프 개리슨은 공식 명칭이 제34지역지원단이다. 이 조직은 전쟁이 임박하면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의 철수를 지원한다. 이들은 약 1시간 30분 만에 대형 트럭에 나눠 타고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에 도착했다.
 
  이들은 쉴 틈도 없이 한참 프로펠러에 속도가 붙은 치누크 헬기에 나눠 타고 대구의 캠프 워커로 이동한 뒤 다시 같은 기종의 헬기로 김해 공군기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C-130 허큘리스 수송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2800여 대가 생산된 C-130 허큘리스 수송기는 130명을 태우고 이륙했다.
 
  한 미군 대위는 상공으로 올라가는 수송기를 바라보며 “우리는 군인들이 가족과 이별하는 마지막 순간에 ‘내 아내, 내 남편, 내 아이는 어떻게 되는가’ 하고 걱정하길 원하지 않는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내년에 정년을 맞는 한국인 군무원은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 같은 날 용산구 동부이촌동
 
  ‘리틀 도쿄’라 불리는 이 동네는 일본어를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일본 상사원들이 주거환경이 좋다며 몰려들어 아침이면 아이들을 통학버스에 태워 보낸 뒤 일본어로 수다를 떠는 일본 아낙네들의 재잘대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날은 한꺼번에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듯했다.
 
 
  # 같은 날 KTX 예약센터
 
  이날 근무자는 KTX 예약현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닷새치 KTX 경부선 표가 다 매진된 것이었다. KTX는 서울-부산에 하루 46편이 편성되며 입석표까지 치면 최대 1043명을 실어 나를 수 있다. 하루 46편이면 4만7978명, 닷새면 23만9890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근무자는 의아했다. 추석이나 설날도 아닌데 갑자기 KTX 표가 닷새치나 완전 매진된 것은 처음이다. 근무자는 상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임박한 시간 개찰구에 내려가 보니 하나같이 외국인들이었다. 그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짐 크기도 통일한 것 같았다.
 
  근무자는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에 사는 미국인들이 전부 부산으로 가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고 알렸다. 머지않아 그의 SNS에 2009년 5월 14일부터 사흘간 미군이 실시했다는 ‘커레이저스채널’ 훈련 내용을 보도한 기사가 링크돼 올라왔다. 내용을 살펴보는데 댓글이 폭주했다.
 
  *
 
  주한 미국인의 탈출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비행기를 통한 탈출(fly-away)과 수송선박을 통한 탈출(sail-away)이다. 위키리크스 전문에 따르면 민간인 대피계획 가운데 비행기를 통한 탈출은 오산 미7공군기지를 통해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나 후텐마 기지로 수송하는 것이다.
 
  또 다른 수송선박을 위한 탈출은 한반도 전역에 거주하는 미국민을 철도를 이용해 부산에 집결시킨 다음 선박을 이용해 일본으로 대피시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전쟁을 대비해 용산 등 18개의 집결지와 대피통제소(Evacuation Control Center)를 설치하고 대피 희망자 가운데 적격자를 선별한다.
 
  미국 정부는 실제 상황에서 우선 대피시켜야 할 인원을 내부적으로 정했다. 1순위가 주한미군의 배우자와 자녀 등 직계가족과 군무원, 민간인 정부 관료다. 이들은 대부분 미 공군기지에서 이륙하는 수송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대피 계획 대상이다.
 
  다음으로는 기타 미국 시민권자이고 마지막이 미국 시민권자의 직계가족이다. 이들은 한국군이 제공하는 열차를 이용해 부산으로 향한 뒤 배 편으로 일본으로 떠난다. 한반도 전면전을 상정해 한미연합사령부가 작성해 둔 작전계획 5027에는 이를 위해 수십 편의 열차를 마련하는 시나리오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 커레이저스채널 훈련은 주로 주한미군 가족과 군무원을 대상으로 이뤄진 비행대피 연습이었다. 총 50명의 자원자가 실제로 용산 미군 기지 대피통제소에 나와 신분을 확인받고 오산 공군기지에서 오키나와까지 미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날아간 다음 이틀을 머물고 돌아오는 스케줄이다.
 
  훈련에 참가한 이들은 각각 여권과 주한미군 가족임을 증명하는 문서를 지참하고 사흘치의 간편 식량과 물, 약간의 원화와 달러화 현금,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손전등, 만성질환자의 경우 30일 분량의 의약품 등을 휴대했다. 이들 수화물은 모두 합해 1인당 30kg 내외로 중량이 제한됐다.
 
  미군 측은 기지 내 대피통제소에서 자격을 승인받은 이들에게 식별용 바코드를 부착한 흰색 팔찌를 배부했다. 이후 비행장 진입과 수송기 탑승, 착륙 후 일본 입국 과정의 주요 관문마다 NTS(NEO Tracking System)라는 이름의 탐지장비를 설치해 누가 어느 단계의 대피과정에 있는지 실시간 확인할 수 있도록 자동화했다. 별도의 인원점검에 소요되는 시간낭비를 줄이려는 조치인 셈이다. 시스템 운영과 대피계획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주한미군 각 기지에는 NEO 프로그램만 전담하는 부서와 인원이 할당돼 있음을 전문을 통해 알 수 있다.
 
  대피항로의 목적지가 일본이므로 NEO 프로그램과 훈련에는 일본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전문은 당시 훈련도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들이 미군 측 안내를 받아 참관했다고 전한다. 특히 50명의 인원이 실제로 대피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이와 관련해 미처 예상치 못했던 난점도 확인했다.
 
  한 필리핀 출신의 여성이 일본 비자가 없어 최종적으로 입국하지 못한 채 도쿄 요코타 기지에 머물러야 했다. 위키리크스 전문은 “참가자 개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피자의 지참 문서를 꼼꼼히 점검해야 할 필요성과 일본 정부와의 사전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대피 대상자의 애완동물도 계획에 포함되느냐를 두고 미국 대사관과 주한미군 사이에 혼선이 빚어졌다는 전문의 마지막 단락이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사전 논의 과정에서 애완동물 역시 포함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 구체적인 범위를 놓고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5월 실시한 커레이저스채널 훈련에 관해 미국 국방부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동영상에는 용산 기지 대피통제소에서 강아지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장면이 포함됐다. 2009년 이후의 훈련에는 애완동물도 함께 대피하는 절차가 포함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억해 둘 것은 이러한 NEO 프로그램을 실제로 가동하는 것은 상황이 매우 극단적으로 번졌을 경우에 한한다는 점이다. 1994년 당시 백악관과 국무부는 각국 대사관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항공편을 예약해 두던 시점까지도 NEO를 가동하지 않았다.
 
  관계자들의 회고록에 따르면 섣불리 NEO를 가동할 경우 위기를 심각하게 증폭시킬 수 있음을 충분히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이는 만에 하나 한반도 전쟁 발발이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르는 경우에도 미국이 자국민 소개계획을 먼저 가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프로그램 가동 여부로 한반도 위기상황의 심각성을 가늠해 보려는 시도가 의미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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