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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한반도

종반전으로 접어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특검, 이재용 부회장에 뇌물 공여 혐의 적용한다는 ‘결론’부터 내놓고 수사했나?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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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명에 가까운 특검 측 증인 신문이 있었지만 뇌물죄의 핵심 고리인 삼성의 경영권 승계 관련 청탁을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언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박재홍 전 승마국가대표 감독 등 특검조사 때 정유라 승마 지원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던 증인들은 줄줄이 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 특검이 부정청탁 증거로 내놓은 대통령 말씀자료… “인터넷에 올라온 언론보도 참고”
    (말씀자료 작성한 윤인대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 재판부, 특검의 히든카드 ‘안종범 업무수첩’ 직접 아닌 간접증거로 채택…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삼성 합병 지시하신 적 없다”(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특혜 의혹 사실상 해소
⊙ 순환출자 고리 해소 위한 처분 주식 수 감면 의혹 증언, 증거 없어… 500만 주 덜 판다고,
    그룹 지배력이나 순환출자 고리 강화에 별다른 도움 안 돼
⊙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문제 해결 청탁?… “청와대가 이 문제에 관심이
    너무 없어 오히려 서운”(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최순실에게 금품(뇌물)을 줬다는
    특검의 주장에 증인 줄줄이 증언 번복
⊙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204억원)이 뇌물이라면 과거 정권 요청으로 각종 재단에
    기금 출연한 대기업과 정권 관계자도 모두 처벌받아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종반전으로 접어들었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1심 구속 기간 만료일인 오는 8월 말 이전에 선고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4월 7일부터 3개월가량 진행된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고위 임원 5명에 대한 재판을 보면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박영수 특별검사(특검)의 장담은 상당히 빛이 바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부회장의 핵심 혐의는 뇌물 공여다. 뇌물 공여 혐의가 입증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청탁했고, 그다음 박 전 대통령이 청탁을 들어줬고, 그 대가로 삼성이 최순실에게 금품을 줬다는 고리가 연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재판에서는 이를 증명할 증언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청탁이 입증되지 않으면 법리적으로 뇌물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외신들도 “결정적인 증거(smoking gun)가 없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경제매체인 ‘블룸버그’는 6월 13일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는 수천 페이지의 증거자료가 제출되고 수백 시간의 증인 신문이 이뤄졌지만, 전문가들은 결정적 증거(a smoking gun)가 빠져 있다고 본다”고 했다.
 
  앞선 5월 9일 영국 ‘로이터 통신’은 ‘삼성 공방이 한국의 법치주의를 테스트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죄판결이 나올 경우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교훈을 주거나 부패 스캔들로 타격을 입은 국가 시스템 신뢰를 재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가벼운 증거로 인한 유죄판결은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했다. 결정적 단서나 증거를 내놓지 못한 특검을 꼬집은 것으로 해석된다.
 
  《월간조선》은 법조계는 물론, 외신에서조차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없다고 평가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봤다.
 
 
  특검이 내놓은 말씀자료는 참고자료일 뿐
 
  특검은 ‘이 부회장이 현안 해결(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경영권 승계와 관련)을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주장했다. 특검이 제시한 증거는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할 당시의 말씀자료다. 이 부회장은 총 세 번(2014년 9월 14일, 2015년 7월 25일, 2016년 2월 15일) 박 전 대통령과 독대했다.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두 번째 독대할 당시의 말씀자료에는 ‘현행 법령상 정부가 도와드릴 부분은 제한적이지만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 정부 임기 내에 승계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말씀자료는 윤인대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실 행정관이 만들었다. 이 자료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 비서관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특검은 이 자료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청탁한 명백한 근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말씀자료를 작성한 윤 전 행정관은 7월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자료 작성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나 안종범 전 수석의 지시는 없었다. 삼성 측으로부터 자료를 받은 것도 아니다”며 “자료는 인터넷에 올라온 언론보도를 참고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사실상 승계가 끝났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기 때문에 격려하는 의미에서 쓴 내용”이라고 증언했다.
 
  대통령에게 말씀자료를 전달한 정 전 비서관도 5월 17일 열린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보통 대통령의 ‘말씀자료’는 그대로 쭉 읽어도 문제가 없도록 하는 워딩 형태로 돼 있는데 특검이 제시한 이 부회장 독대 전 작성된 말씀자료는 그런 형식이 아니고 ‘참고자료’라고 할 수 있다”며 “대통령이 면담 자리에 참고자료를 갖고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고 진술했다.
 
 
  안종범 업무수첩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특검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꼼꼼히 메모한 업무수첩(63권)도 근거로 제시했다. 2015년 7월 27일 자 안종범 업무수첩에 ‘삼성-엘리엇 대책, M&A 활성화 전개, 소액주주권익, Global Standard→대책 지속 강구’라고 적힌 것을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합병 등을 청탁한 증거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수첩의 주인인 안 전 수석은 이를 부인했다.
 
  7월 4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은 삼성 합병 문제와 관련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는 특검팀이 “박 전 대통령이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에게 ‘삼성 합병 의결권과 관련해 챙겨보라’고 말했고, 이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에 찬성하게 유도하라는 뜻’”이라고 하자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이 최 전 수석에게 ‘챙겨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특검 조사에서 처음 들었다”며 “챙기라는 말이 의사 결정을 뜻하거나 삼성 일에 개입하라는 것은 아니다. 삼성 합병이 워낙 큰 이슈였기 때문에 진행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특검팀은 또 “박 전 대통령이 ‘미국 헤지펀드로부터 삼성이 공격받아 안타깝다’고 말했다는 증언이 있는데, 사석(私席)에서라도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느냐”고 캐물었지만 안 전 수석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다음은 이날 공판에서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이 증인 심문 때 안 전 수석과 주고받은 질의응답 내용이다. 관련 내용만 추렸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하 변호인단) : 이재용 승계 작업에 대해 묻겠습니다. 대통령이 14년 6월경 증인 또는 수석비서관들에게 삼성 승계 작업 모니터링 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습니까?
 
  안종범 전 수석(이하 안종범) : 기억 없습니다.
 
  변호인단 : 혹시 대수비(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나 실수비(실장이 주재하는 비서관회의)에서 그 같은 말이 언급된 적은 있습니까?
 
  안종범 : 아니요. 제가 14년 6월부터 경제수석으로 부임했는데, 부임 이후로는 없었습니다.
 
  변호인단 : 그런 말 있었다면 수첩에 기재하지 않았을 이유 없죠?
 
  안종범 : 그랬을 것 같은데 당시 수첩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변호인단 : 삼성물산 합병 관련해 묻겠습니다. 증인은 ‘대통령 지시로 삼성물산 합병 관련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사실 없는지’에 대해 수십 차례 조사받았고, 관련 사건에서 증언도 했죠? 증인은 대통령으로부터 (삼성) 합병 관련해 지시를 받은 것도 없고, 증인이 의결권 행사에 관여한 적도 없다고 하셨죠?
 
  안종범 : 네. 맞습니다.
 
  변호인단 : 대통령으로부터 합병 관련 지시를 받았거나 회의 때 언급했다면 수첩에 ‘합병’이란 단어가 최소한 1번은 있었겠죠?
 
  안종범 : 만약 지시를 했다면 적었을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수첩에는 없었습니다.
 
  변호인단 : 최상목 비서관이나 최훈 행정관 등에게 삼성물산 합병 관련 찬반 방향성을 지시한 적 있습니까?
 
  안종범 : 없습니다.
 
  변호인단 : 대통령 포함 그 누구로부터도 위와 같은 지시를 받은 적 없죠?
 
  안종범 : 네.〉
 
  안 전 수석은 본인의 업무수첩 내용에 대해서도 “(급히 받아적어 심지어 본인 글씨도 알아보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다”며 “검찰에서 조사받을 당시에는 원본 전체를 보지 않아 (문맥을 모르기 때문에 해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6월 12일 자 수첩에 ‘은산 분리’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는 특검 측 설명에 웃으며 “저보다 잘 보시는 것 같네요”라고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특검의 히든카드인 ‘안종범 업무수첩’을 직접증거가 아닌 간접증거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피고인이 수첩에 적힌 내용대로 대화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수첩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내용을 적은) 수첩이 존재한다는 간접적 사실로만 증거 능력을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독대’ 때 안 전 수석은 배석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독대 당시 정황을 보여주는 근거는 될 수 있어도 수첩에 나오는 메모가 곧 박근혜·이재용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특혜 의혹 사실상 해소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청탁대로 삼성을 위해 ▲보건복지부(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공정거래위원회(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처분 주식 수 감면) ▲금융위원회(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이슈) ▲한국거래소(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에 범(汎)정부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 대가로 최순실 측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우선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토록 했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당시(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삼성물산의 중장기적인 기업 가치 제고, 성장 동력 확보 측면에서 필요성이 있었고, 삼성그룹 경영권 안정 효과 등 경제 논리로 보자면 문제가 없었다. 반대로 합병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외국인 주주를 규합해 합병에 반대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3대 주주)가 삼성을 뒤흔들 가능성이 컸다. 엘리엇이 과거 아르헨티나를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로 몰고 간 뒤 거액을 챙겼듯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 대규모 현금배당을 하라고 요구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매출 20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는 사실상 외국인 주주들 손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경우 한국 전체 수출의 20%(2015년 기준)를 차지한다. 흔들릴 경우 한국 경제에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민연금이 국익 보호 차원에서 ‘백기사(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에 우호적인 주주)’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당시 합병과 관련해 의견을 밝힌 2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 가운데 21곳(95%)이 합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엘리엇은 삼성이 제시한 합병 비율 1대0.35(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0.35주)가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를 저평가한 것이라며 합병에 반대했다. 합병 비율은 합병 결의 이사회 전 한 달간 주가를 기준으로 자본시장법에 정한 방식에 따라 결정됐지만, 엘리엇은 합병 비율을 공격했다. 당시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지분 4%), 제일기획(12.6%) 등 14조원에 육박하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제일모직에 헐값으로 합병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특검의 의혹도 여기서 출발했다. 삼성물산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막대한 손해를 보는데도 합병에 찬성한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검이 간과한 것은 국민연금은 엘리엇과 달리 삼성물산(1조2200억원)과 제일모직 지분(1조1800억원)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물산 주주로서는 손해여도 제일모직 주주로선 이익이 되는 합병인 만큼 국민연금 입장에선 ‘제로섬’ 구도의 합병이었다. 증인들은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토록 했다는 특검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은 6월 20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결권과 관련해 챙겨보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방향성 등)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해서 잘 챙겨보라 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특검의 질문에 “제 소관 업무를 잘 챙기라는 일반적 말씀이었고 다른 문제 관련해서도 각자 소관 업무를 잘 챙기라는 얘기를 종종 대통령이 한다”고 증언했다.
 
  특검은 국민연금이 전문가들의 모임인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가 아니라 내부 조직인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2016년) SK와 SK C&C의 합병 때는 투자위원회 대신 보건복지부 산하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통해 합병 반대를 결정한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합병 찬반과 관련된 결정을 의결권 전문위원회에 넘긴 것은 SK 관련 단 1건에 불과했다. 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SK 건은 실무선에서 책임을 미루려고 의결권 전문위원회로 결정을 넘겼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특검 조사에서 “보건복지부는 삼성 합병 안건을 국민연금 전문위원회에서 검토하고자 했으나, 전문위에서는 찬성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희박해, 투자위원회에 안건을 회부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김기남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행정관은 당시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6월 14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특검에서는 (특검이) 제시한 자료를 보고 추측해 말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행정관은 “삼성 합병과 관련해 대통령의 의중을 들은 사실이 없고, 청와대 또는 복지부 관계자 등으로부터도 삼성 합병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복지부 관계자들이 삼성 합병에 찬성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바 있느냐”는 특검의 유도성 질문에도 “그런 적 없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이 제시한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에 따르면 투자위원회에서 찬반 의견이 반 이상 나올 경우 그대로 의결을 한다. 기금운용본부가 안건을 전문위원회에 넘기는 경우는 투자위원회 심의 및 표결 결과 과반 의견이 나오지 않을 때다. 국민연금 투자위원회는 모두 1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다.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 투자위원회의 결정은, 찬성 8, 기권 3, 중립 1표였다. 반대는 1표도 나오지 않았다. 참고로 2015년 7월,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국내 기관투자자 133곳 중, 합병 승인을 안건으로 한 임시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진 곳은 3곳, 찬성표를 던진 곳은 130곳이었다.
 
  그럼에도 특검은 여전히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만큼 삼성 뇌물 공여 혐의도 유죄 입증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삼성 합병에 문 전 장관 등의 외압이 있었다는 것만 인정했을 뿐, 그 외압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로부터 왔는지, 삼성이 청탁을 한 것인지 등 뇌물 사건의 핵심 쟁점이 될 문제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또 재판부는 “(합병으로 인해) 국민연금은 재산상 이익을 상실했으며, 이재용 등 삼성그룹 대주주는 이에 상당하는 재산상 이익을 얻게 됐다”면서도 “국민연금의 정확한 ‘손해액’이나 삼성 측의 ‘이득액’을 계산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합병으로 인한 국민연금의 손실이 1387억원에 달한다고 한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는 합병은 ‘이득’을 노린 ‘청탁’의 결과물이 아니란 근거가 될 수 있다. 삼성이나 국민연금이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알고 합병 문제를 다룬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토록 했다는 의혹은 사실상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처분 주식 수 감면 의혹에 대한 증거·증언 없어
 
  특검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문제를 심사하면서 특혜를 줬다고 본다. 공정위가 삼성SDI 측에 삼성물산 주식 1000만 주(1조6000억원 상당)를 처분해야 한다고 내부 결론을 내렸지만, 청와대가 개입해 처분 규모가 원래의 절반인 500만 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특검은 “공정위는 2015년 10월 14일 양사 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삼성SDI를 비롯한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1000만 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 같은 내용을 삼성과 청와대에 구두로 전달했지만, 2개월여 만인 12월 23일 계열사 지분 매각 범위를 500만 주로 확정하는 유권해석을 내놨다”며 “이 같은 공정위의 태도 변화가 청와대를 상대로 한 청탁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순환출자는 그룹 안에서 3개 이상의 계열사끼리 A→B→C→A 식으로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과거 사주들이 특정 계열사 소수 지분만으로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편법이다. 공정거래법은 2014년 7월부터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계열사 합병·매각 과정에서 새롭게 순환출자 문제가 발생하거나 강화되면, 6개월 내 지분 매각으로 이 문제를 해소하도록 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되자 두 회사 주식을 모두 소유한 삼성SDI는 새롭게 탄생한 합병사인 ‘삼성물산’에 대한 보유 주식이 늘었다. 공정위는 이를 신규 순환출자 고리 강화로 판단하고,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에 대한 매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했다. 공정위는 당초 1000만 주를 지난해 2월까지 처분하라고 삼성 측에 통보했다가 최종적으로 500만 주만 처분하도록 했다. 특검은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되는 ‘이득’을 얻었다고 본다. 하지만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증거나 증언은 없다. 관련자들은 하나같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해소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와 삼성의 개입은 없었다”며 특검의 공소내용을 부정했다.
 
  5월 26일 이 부회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고리 해소 문제와 관련해 삼성 측에서 ‘그룹 견해를 관철해 달라’라고 부탁한 적 없다”고 진술했다.
 
  6월 1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상목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은 “인민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으로부터 공정위 내부에서 (삼성의) 처분 주식 수와 관련해 ‘900만 주와 500만 주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며 “이후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으로부터 500만 주로 줄이는 방안이 더 합리적이라는 설명을 들었고, ‘소신껏 결정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전부”라고 증언했다. 그는 “김학현 전 부위원장과 주식 처분 문제와 관련해 단 두 차례 통화한 것이 전부”라며 “대화 과정에서 ‘500만 주’ ‘대통령’ ‘안종범’ ‘삼성’과 같은 단어조차 언급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안 전 수석도 7월 4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 공정위가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삼성이 처분해야 할 주식 수를 결정하는 과정에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안 전 수석은 “평소 ‘개별 기업 사안에 개입하지 마라’고 항상 얘기했었다”며 “청와대가 뭘 하라고 지시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문제가 되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장과 부위원장이 빨리 결정하라고만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특검의 히든카드인 ‘안종범 업무수첩’에도 순환출자 해소와 관련한 내용이 없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특검은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을 1000만 주가 아니라 500만 주만 매각하면서, 삼성과 이 부회장은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되는 ‘이득’을 얻었다고 보는데, 500만 주는 전체 지분의 2.6%에 불과했다. 이 부회장과 특수관계인 삼성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39.85%고, KCC 지분(8.97%) 등 우호지분을 합치면 60%에 육박한다. 500만 주를 덜 판다고 해서, 그룹 지배력이나 순환출자 고리 강화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삼성 금융지주회사 전환과 관련 관심이 너무 없어 서운”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청와대가 삼성 금융지주회사 전환과 관련 관심이 너무 없어 서운했다”고 증언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2016년 2월 15일 박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독대 때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문제 해결을 청탁한 단서(안종범 업무수첩)를 확보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특검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삼성 측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금융위원회에 문의한 시점은 2016년 1월 말이다. 금융위원회는 검토를 거쳐 같은 해 2월 16일 보험업법 위반 등을 이유로 ‘불가’ 의견을 삼성에 통보했다. 삼성은 금융위원회의 ‘불가’ 통보를 받고 내부적으로 해당 사안을 재검토했으나, 4월 11일 기획안 자체를 접었다. 특검은 안종범 업무수첩을 근거로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 자체를 ‘박근혜-이재용 독대’에 따른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시점이 맞지 않다. 금융위원회가 삼성생명에 금융지주회사 전환 불가 방침을 통보한 날은 2월 16일이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마지막 독대는 바로 전날인 2월 15일이다. 특검의 추론처럼 마지막 독대에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면, 바로 다음날 금융위원회가 삼성생명에 ‘불가’ 통보를 내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삼성은 4월 11일 금융지주회사 전환 기획안 자체를 포기했다. ‘박근혜-이재용 독대’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이 있었고, 박 전 대통령이 관련 부처에 ‘특혜’를 지시했다면, 삼성이 스스로 사업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관련자들의 증언도 모두 일치한다.
 
  안 전 수석은 7월 4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검토 관련 업무는 금융위원회 자율에 맡겼다”고 증언했다. 당시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두 차례 보고받았지만, 그때마다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앞서 6월 16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삼성의 중간금융지주사 전환과 관련해) 청와대의 지시나 압력은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정 부위원장은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이)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관심이 너무 없어서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중요한 사항이라 신경 많이 쓰고 보고했는데 추가 멘트가 없었다. 우리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 안 수석이 같이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아서 서운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차례 안종범 당시 수석에게 보고했지만, 기본적으로 이견이나 지시 사항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청와대 측에서 별도의 지시가 있었다면 금융위원회에서 추가 검토를 했을 것이고 이와 관련한 흔적이 어떤 식으로든 남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 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차기 수출입은행장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현 정부가 ‘적폐세력’으로 규정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게 의도적으로 유리한 증언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의 증언의 신뢰성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다.
 
  6월 8일 증인으로 출석한 김연준 금융위원회 과장도 “금융위 윗선은 삼성 금융지주사 전환 계획에 대해 처음부터 ‘보수적으로 보라’고 했었다”며 “대통령 독대 전후로 금융위 내부 분위기가 바뀐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6월 9일 증인으로 참석한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또한 “금융위 상급자는 물론, 청와대를 비롯한 조직 외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본건 검토 사항에 대해 특정한 방향으로 추진하라는 식의 지시를 받은 적 없다”며 “2016년 3월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안종범 전 수석이 청와대 회의에서 만난 이후에도 청와대 지시 사항 등을 별도로 전달받은 바 없고, 금융위 검토 결과에 대한 수정 요구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거래소가 요청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청탁을 들어주기 위해 한국거래소에 압력을 행사, 삼성의 바이오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코스피(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특혜를 줬다고 주장한다. 원래 코스피 상장을 위해서는 3년 이상 흑자가 조건이다. 하지만 한국거래소가 2015년 11월 시가 총액 2000억원 이상이면 적자 기업도 상장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바꾸었다. 이게 이 부회장을 위한 특혜란 것이다.
 
  애당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나스닥 상장을 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2011년 설립 이후 매년 세계 최대 바이오 전시·콘퍼런스 행사인 ‘바이오 인터내셔널’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등에 참가해 글로벌 고객과 잠재 투자자에게 사업 현황과 중장기 비전을 설명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한국거래소는 2015년 11월 상장 규정 변경 발표 후 코스피·코스닥 상장 유치를 위해 우리 회사를 수차례 방문했다”며 “이후 상장 검토 과정에 거래소의 지속적인 권유와 여론, 국민의 기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016년 4월 이사회에서 최종적으로 코스피 상장 추진을 결정했다”고 했다.
 
  2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국내 시장 상장 요건이 이익 요건에 함몰돼 우수한 기업이 해외에 나가는 사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거래소 요청으로 상장 규정을 바꾼 것”이라고 했다.
 
  한국거래소 측도 “지난해(2016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나스닥 상장을 검토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오히려 우리 쪽에서 한국 대표기업이 외국에 상장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삼성 쪽에 수차례 국내 증시 상장을 요청했다”며 “당시 유가증권시장본부(코스피)와 코스닥본부가 서로 유치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6년 11월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그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기대 이상의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 투자 비중이 높았던 이들 회사는 올해 들어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미국·인도·유럽 시장 등에 진출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바이오시밀러 등 바이오 의약품의 위탁생산업체(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말 3공장이 완공되면 스위스 제약회사 론자, 독일의 베링거 등을 제치고 CMO 기업 중 세계 최대 생산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의약품 시장은 연평균 8.7%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데, 특히 CMO는 연평균 15.0%로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어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이 본격 상업 생산에 들어가는 2020년엔 삼성바이오로직스 한 회사만으로도 2조원 이상의 매출이 기대된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은 “한국 대표기업이 외국에 상장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하에 삼성 쪽에 수차례 국내 증시 상장을 요청했다”는 한국거래소의 주장이 힘을 얻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증인들의 진술 번복 이어져
 
특검이 진행한 서증(書證)조사를 통해서도 이재용 부회장이나 삼성의 임원들이 장시호의 존재를 미리 알았음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나온 것이 없다.
  특검은 삼성이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최순실에게 금품(뇌물)을 줬다고 본다. 특검 수사로 삼성이 최순실·정유라 모녀를 위해 2015년 8~9월 220억원 규모의 지원 계약을 맺고 실제 78억원을 송금한 내용은 확인돼 있다. 삼성은 최씨 조카 장시호씨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원 넘게 지원했고, 미르·K스포츠 재단에도 204억원을 출연했다.
 
  지원금 78억원에 대해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한화로부터 승마협회를 넘겨받았으면 적어도 한화만큼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역정을 냈고, 이에 놀라 올림픽을 대비해 승마 유망주 여러 명을 지원한 금액”이라는 입장이다. 합병 문제가 없었어도 대통령이 이렇게 압박하면 똑같이 지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특검은 삼성이 승마 유망주 육성 사업에 지원한 것이 아니라, 정유라 개인을 지원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눈여겨볼 점이 있다. 바로 관련자들의 진술 번복이다.
 
  최순실 측근이자 정유라 후견인이었던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최순실이 말의 소유권이 ‘삼성’으로 기재된 것을 보고 화가 나 ‘삼성도 내가 합치도록 도와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다’라고 혼자 말하는 것을 독일에서 목격했다”는 핵심 증언을 번복, 특검을 당황케 했다. 이러한 그의 진술은 정유라 승마 지원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5월 31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박 전 전무는 “(최씨로부터) 합친다는 말을 못 들었다”며 “합병 사실은 이 사건(국정농단) 터진 다음에 알았다”고 했다.
 
  그는 삼성이 승마 유망주 여러 명을 지원하려 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삼성은 (정유라 이외에 다른) 선수를 선발하려고 했습니다. 계약서에 나온 내용대로 진행하려 했는데 최순실씨가 중간에 욕심을 부리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최씨도 계약을 체결할 당시만 해도 여러 명을 지원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돈도 마음대로 쓰는 것 같고 그랬습니다.”
 
2017년 5월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재홍 전 승마국가대표 감독 역시 특검에서의 진술을 부인하며 삼성에 힘을 실어주는 증언을 했다. 특검 조사 때 “삼성이 정유라 이외에 마장마술이나 장애물 등 다른 분야의 승마선수를 지원하려고 한 이유”를 묻는 말에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순실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우니까, 무엇인가를 부탁했거나 부탁하려고 정유라에게 특혜 지원을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던 박 전 감독은 5월 12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는 “그렇게 생각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박 전 감독의 증언이 조서의 주요 내용과 크게 상반되자 재판을 심리하는 김진동 부장판사가 직접 질의를 하기도 했다. 그는 재판장의 질문에도 “(참고인 진술 당시 어떤 취지로 진술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는 “독일 출국 당시, 삼성은 국내 승마선수 훈련 지원을 위해 진정성을 갖고 있었다”며 “개인적인 생각은, 삼성에서 (국내 승마선수 훈련 지원을 위해) 분명히 (자금을) 지원했을 것 같은데 (최순실이 정유라와 종목이 다른) 장애물(선수 훈련 지원) 쪽에 쓰는 게 아깝고 자기 돈처럼 생각해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삼성이 승마선수 독일 전지훈련 지원을 위해 코어 스포츠에 자금을 지원했지만, 최순실이 이를 자기 마음대로 전용하면서, 삼성의 지원금이 본래 목적대로 쓰이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다.
 
  5월 2일 재판 증인으로 참석한 전직 승마국가대표 선수도 진술을 바꿨다. 그는 특검 조사에서 정유라 지원 배후에 이 부회장이 있다는 취지로 답했지만 이날 법정에서는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 것이고, 그랬을 것이라고 (단정)한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삼성은 지원을 다 같이 하려고 했는데, 여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너무 단편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6월 20일 재판에서 특검이 뇌물로 지목한 승마 지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삼성이 최순실에게 소유권을 넘겨줬다고 특검이 주장한 말 ‘라우싱’이 지난 6월 19일 한국으로 들어왔다며 관련 자료를 제출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삼성전자가 독일의 말 중개상 ‘헬그스트란드’와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말 소유권을 되돌려 받았다”며 “특검은 삼성이 말을 최씨에게 증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이 부회장이 장시호 존재 미리 알았다는 증거 없어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가 입증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청탁했고, 그다음 박 전 대통령이 청탁을 들어줬고, 그 대가로 삼성이 최순실에게 금품을 줬다는 고리가 연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재판에서는 이를 증명할 증언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원 지원에 대해 특검은 이 부회장이 장시호(동계스포츠영재센터 운영)가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의 조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경우 뇌물죄가 적용된다는 추론을 폈다. 그러나 특검이 진행한 서증(書證)조사를 통해서도 이 부회장이나 삼성의 임원들이 장시호의 존재를 미리 알았음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나온 것이 없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동계영재센터는 철저하게 유명 메달리스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며 “그 배후에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라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이 부회장을 비롯한 피고인들은 알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변호인단은 “영재센터 관계자들조차 장시호와 최순실의 연결고리를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특검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204억원도 뇌물로 보는 것은 극단적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이 금액이 뇌물이라면 과거 정권의 요청으로 각종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모든 대기업과 정권 관계자들은 모두 뇌물죄 처벌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지원한 걸 모두 뇌물이라고 본다는 건 극단적 논리에 불과하다”며 “이 논리대로라면 노무현 정권 시절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기금, 이명박 정권 시절 미소금융재단 기금도 모두 뇌물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출연한 돈을 삼성만 뇌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이 국가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이니까 이 부회장을 배려해야 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위법 행위는 똑같이 처벌받아야 한다. 최근의 대중 정서나 대기업에 대한 국민 일부의 반감을 의식해 법리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혐의로 인신 구속부터 하려 드는 것도 옳지 않다. 이런 경우 피의자 쪽에도 방어할 기회와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재판을 통해 법관이 유무죄 판단을 내려야 한다. 3개월가량 진행한 이 부회장 재판을 되짚어 보니, 특검이 삼성에 뇌물 공여 혐의를 적용한다는 결론부터 내려놓고 그것에 맞추려고 수사를 진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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