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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집권 한 달

57%가 노무현 정부 사람

수치상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권 2기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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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출신 전성시대… 사법 개혁, 경제 개혁의 키 참여연대가 쥐어

많은 국민이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2기’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정부가 돼주기를 원하고 있지만…

⊙ 114명 중 66명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및 정부 각 산하기관에서 활동
⊙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가까이서 보좌하는 3인방(윤건영, 송인배, 유송화) 모두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
⊙ 장차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파견 경력 인사 다수
⊙ 외교·안보 라인 노무현 정부 출신이 점령
⊙ 청(靑) 사정 라인도 노무현 정부 출신
⊙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서 “국민 모두의 정부 되겠다”고 통합 강조했지만
    ‘문 정부는 노무현 2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듯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권 2기로 평가되는 것을 우려했다. 이호철, 양정철 등 노무현 정부에서 활동했던 문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2선 후퇴를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월간조선》이 문 대통령이 현재까지 임명한 청와대 참모, 내각, 정부 요직 인사 114명을 분석한 결과 66명(57%)이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거나, 정부 각 부처 산하기관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비서실장·민정수석비서관 등을 맡았던 만큼 당시 활동했던 인물을 많이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 지근거리 보좌 3인방 모두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3인방 모두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이다. 왼쪽부터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송인배 제1부속실장, 유송화 제2부속실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2003년 정무2비서관실 행정관, 기획조정비서관실 행정관, 2006년 정무기획비서관을 지냈다.
 
  송인배 제1부속실장은 1998년 당시 노무현 의원 비서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실 행정관(2004년 8월), 사회조정비서관실 행정관(2007년 5월), 사회조정2비서관(2007년 5월~2007년 10월)직을 수행했다.
 
  유송화 청와대 제2부속실장은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참여센터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민참여센터는 각료 인선 추천을 받는 곳이었다. 이후 유 실장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2007년까지 활동했다. 문 대통령은 2004년 5월부터 2005년 1월까지 시민사회수석이었다.
 
  권혁기 춘추관 관장은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 계보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 청년조직국장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책수석비서관실 행정관(2003년), 홍보수석비서관실 행정관(2004년)을 지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노무현 정부 때 장관급인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를 역임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밑그림을 그렸다.
 
  홍석현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주미대사를 지냈으며 유엔사무총장 도전에도 뜻을 둔 적이 있다. 홍 특보는 대선 전인 2017년 4월 16일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여러 개의 동영상을 올렸다. 그중 하나가 ‘노무현의 선택, 홍석현의 선택’ 제목의 영상이었다. 홍 특보는 영상을 통해 자신이 노무현 정부 시절 받았던 공직 제의에 대해 밝혔다. 2분48초짜리 이 영상에선 홍 특보의 사진 위로 그가 쓴 글이 자막으로 올라갔다. 자막과 육성 인터뷰에서 그는 “어느 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제게 유엔사무총장 한국 후보와 주미대사직을 함께 제안하며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역할 해 줄 것을 요청해 온 적이 있다”며 “저는 하루하루 고뇌의 밤을 보냈다. 저의 태생적 배경, 재벌 관련 이미지, 언론사 사주라는 지위가 오히려 많은 것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됐다. 고뇌의 밤은 매일매일 깊어만 갔다”고 했다. 홍 특보는 이어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왜 나, 홍석현을 선택하셨을까…. 그분 주변에는 능력 좋고 국제 외교무대에서 검증받은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데. 고뇌의 밤은 한 달이나 갔다”며 “그리고 노무현의 선택을 믿기로 했다. 그분의 선택이 미래였기 때문이다. 그분의 선택이 미래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은 2005년 10월부터 교육인적자원부 제2기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이었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치적 스승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인연의 출발점은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았던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관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예산 및 세제 협의 등을 위해 당시 재경부 세제실장이던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 실장의 실력에 반한 노 전 대통령은 “최고의 공무원”이라고 극찬한 뒤 해양수산부 차관으로 영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통 재무관료 출신인 김 위원장은 재경부 차관이나 관세청장 등 다른 쪽으로 가길 원했다. 이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고, 노 전 대통령은 눈여겨본 김 위원장을 요직에 임명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2003년 7월 30일부터 2004년 3월까지 국무조정실 성매매방지기획단 위원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인권위가 가장 꽃피었던 시절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당시 인권위는 정부의 인권 침해 문제와 개선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인권위는 1997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인권위는 다양한 논의와 입법을 거쳐 DJ 임기 4년 차인 2001년 11월 25일 출범했다. ‘1세대 인권변호사’인 고 김창국 변호사가 초대위원장을 지냈다. 인권위는 독립된 국가기관으로, 국가권력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자임했다.
 
  조현옥 인사수석은 노무현 정부 초기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인 지난 2006~2007년 청와대 인사수석실 균형인사비서관(2006년 5월~2007년 8월)을 역임했다. 당시 문 대통령과도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대를 졸업한 7급 공무원 출신으로 요직인 총무비서관에 발탁돼 화제가 된 이정도 총무비서관도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수석실 경제정책행정관(2006년 6월~2008년 3월)으로 활동했다. 당시 이 비서관은 정책실장이던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의 비서 역할을 했다. 이 비서관은 변 전 장관과 가족같이 지냈다고 한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노무현 정부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2003년 2월~2004년 1월)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의 동생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누나는 노무현 정부 시절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장하진 전 장관이다.
 
  김수현 사회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전문위원(2003년 1월)으로 일했고, 2005~2008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과 제10대 환경부 차관 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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