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시대] 영부인 사업 ‘펫(Pet) 프로젝트’의 모든 것 : 월간조선

최고 통치권자의 아내를 관례상 영부인(令夫人)이라 부른다. 영부인은 공식(정식) 직함이 아니다. 헌법에 영부인의 역할이나 책임, 보수의 규정이 없다. 대통령이 수행하는 ‘공적 기능’을 영부인도 함께하길 기대하는 정도다. 공적 역할의 기대를 두고 이견이 존재한다. 현모양처나 그림자 권력자 내지 최후의 참모 같은 전통적 내조형 영부인이 존재하고 국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참여형 영부인이 존재한다.

미국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영부인 기간 1933~1945)와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1993~ 2001)은 ‘파워 퍼스트레이디’였다. 이들은 행정부 수장인 남편의 국정에 참여했고 행정부의 필수 인적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레이디 버드 존슨(Lady Bird Johnson·1963~1969)은 퍼스트레이디의 정치적, 사회적 참여의 표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퍼스트레이디는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최근 ‘대통령 보좌관’ 자격으로 활동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공적 역할로 볼 수 있다. 이반카 트럼프는 지난 4월 25일 베를린에서 열린 ‘G20 여성 경제 정상회의’에 참석, 외교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영부인의 활동은 청와대 제2부속실에서 보좌한다. 각종 행사에서 관저 생활까지 시시콜콜한 일정을 모두 챙긴다. 청와대 경호실도 영부인을 전담하는 팀이 별도 운영된다. 영부인은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방탄차, 헬기 등도 탑승할 수 있다. 영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대통령과 함께 공적 영역으로 볼 수 있다는 관점에서 각종 의전이 제공되는 셈이다.

독신 여성인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제2부속실 폐지 논란이 일었다. 박 대통령은 “소외계층을 챙기는 창구로 활용하겠다”며 2부속실을 유지했으나 최순실을 접촉하는 창구로 악용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영부인과 ‘고전적 어머니’의 역할

영부인들. 왼쪽부터 손명순 여사, 이순자 여사, 이희호 여사, 김옥숙 여사.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에서 3년간 근무한 김효겸씨의 《대통령 의전의 세계》(2013년 간)에 따르면 ‘대통령 배우자는 정책 결정과 관련된 행보보다는 봉사활동, 군부대 방문, 장애시설 방문, 여기자와의 간담회, 여성 관련 단체행사, 관광 및 문화 행사 등 고전적인 어머니 이미지와 관련된 행보에 중심을 둔다’(p.151~158)고 적고 있다.

‘고전적 어머니 이미지’는 은유적 표현이다. 어머니가 그렇듯, 보듬고 닦아주는 봉사활동이나 어린이·여성·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다독이는 역할이 중심이란 얘기다.

영부인의 역할 중에는 명예위원장, 명예회장, 명예홍보대사 같은 비공식 명예직도 종종 포함된다. 이명박 정권 시절, 김윤옥 여사(2008~2013)는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와 ‘한국박물관 100주년 기념사업회’의 명예위원장으로 활동했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권양숙 여사(2003~2008)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됐고 지난 2005년 열린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 명예 대회장직을 맡은 일도 있다. 대통령이 무겁고 골치 아픈 정치·외교 현안에 골몰하느라 못 챙기는 분야에 대해 영부인이 역할을 찾는다.

국제 외교행사에서 ‘배우자 프로그램(Spouse Program)’은 영부인의 가장 대표적인 대외 활동이다.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 G20정상회의 같은 큰 국제회의는 주 행사와 별개로 영부인끼리의 만남이 진행된다. 해외 순방에서 대통령이 의제 관련 공식 업무를 수행할 때 영부인은 현지에 한국의 전통문화나 한류를 알리고 이국에 사는 동포, 유학생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특이하게도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1998~2003)는 영부인 중에선 처음으로 해외 단독 순방을 다녀온 일이 있다.

그리고 영부인은 상대국 퍼스트레이디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수행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독신이고 여성이어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영부인들과 그들의 ‘펫 프로젝트’

1973년 5월 8일 양지회가 주관한 어버이날 경로잔치에 참석한 육영수 여사가 노인들과 정담을 나누고 있다.

정치학에서는 영부인, 즉 퍼스트레이디가 재임기간 특별히 챙기는 일을 ‘펫 프로젝트(Pet Project)’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부인 사업’이다. 한국으로 치면, 박정희 정권 시절, 육영수 여사(1963~1974)의 ‘양지회(陽地會)’ 활동이나 육 여사 사후 박근혜 영애(1974~1979)가 명예총재직을 맡았던 ‘구국여성봉사단’ 활동이 대표적이다.

양지회는 육 여사가 이끌던 이웃돕기 모임이다. 고위 관료나 권력·국책기관 수장의 아내들이 주 회원이었다. 육 여사는 양지회를 통해 한센인과 난민촌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1974년 11월 소록도 내에 건립된 한센인들을 위한 주거시설 명칭이 양지회 이름을 딴 양지회관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1980~1988)는 ‘연희동의 빨간 바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한 영부인이었다. ‘새세대 육영회(1981년 설립)’ ‘새세대 심장재단(84년 설립)’이 대표적인 펫 프로젝트로 기록돼 있다. 이 여사는 최근 펴낸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스스로에게 힘겨웠던 영부인으로서의 삶이었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새세대 육영회와 새세대 심장재단에 남다른 의미를 두고 싶다’고 회고했다.

새세대 심장재단은 1983년 11월 방한했던 레이건 대통령의 도움으로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두 어린이가 미국으로 건너가 수술을 받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불치병 어린이를 돕기 위해 재단이 꾸려졌다. 그러나 전씨 일가의 부정축재 통로였다는 의혹이 일면서 1989년 사회복지법인 ‘한국심장재단’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전임 영부인(이순자)의 부정적 이미지 탓인지 노태우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1988~1993)는 그림자 내조에 가까웠다. 대중매체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고 청와대의 안방마님에 머물렀다.

김영삼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1993~1998) 역시 김옥숙 여사와 다르지 않았다. 남편 뒤에서 전통적인 여성상을 보이려 애썼다. 자원봉사 활동 지원, 문화예술 지원, 여성정책 지원 같은 영부인의 공식적 대외활동 외에 눈에 띄는 펫 프로젝트가 없었다.

YS 정부 시절인 1997년 5월 한국여성정치연구소(손봉숙 소장)가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00명에게 ‘바람직한 영부인상’을 물었다. 응답자 중 47.3%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사회봉사활동에 헌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내조에만 전념하는 현모양처형’과 ‘자기 영역을 갖는 전문가형’을 원하는 응답자는 각각 29.0%, 23.2%였다.

‘국민을 향해 손 흔드는 대통령 앞에서 깊숙이 허리 굽혀 절하는’ 영부인 모습에 대해 46.3%가 ‘정중하고 겸손해 보인다’며 긍정 평가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영부인 중 가장 좋아하는 영부인으로 육영수 여사가 76.2%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프란체스카 여사 4%, 김옥숙 여사 1.5%, 손명순 여사 1.2%, 이순자 여사 0.8%, 공덕귀(윤보선 대통령 부인) 여사 0.7% 순이었다.

영부인 김옥숙-손명순과 이희호-김윤옥의 경우

1995년 10월 7일 육사에서 열린 11기 임관 40주년 기념행사에 나란히 참석한 이순자, 김옥숙 여사.

손명순 여사와 반대로,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결혼 전부터 여성계 지도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전임(김옥숙·손명순 여사)과 달리 영부인 시절 공식적인 활동이 많았다. 대통령 외국 순방이나 지방순시 때에 대통령과 별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공식, 비공식 대면접촉을 활발하게 수행했다.

이 여사는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의 명예총재직을 19년째 맡고 있다. DJ가 재임 중인 1998년 설립된 ‘사랑의 친구들’은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결식아동과 북한 어린이를 돕거나 빈곤층 자녀의 장학사업을 위해 바자회나 모금운동을 벌여왔다. 지난 1월에도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에게 떡국 바구니를 전하는 ‘사랑의 떡국 바구니’ 행사를 가졌었다. (엄밀히 말해 ‘사랑의 친구들’ 활동은 펫 프로젝트로 보기 어렵다.)

MB 정권 시절, 김윤옥 여사의 ‘한식세계화 사업’도 영부인 역점사업이었다. 한식을 한류의 한 축으로 만들려는 김 여사의 의지에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가 관련 예산을 적극 지원했다. 당시 설립된 한식세계화추진단은 “한식을 2017년까지 세계 5대 음식에 진입시킨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그러나 성과는 미흡했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09~2012년 한식 세계화 지원사업으로 편성한 예산 931억원 중 704억원만 계획대로 집행되고 나머지 227억원은 내역을 변경해 사용하거나 이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행된 돈도 일회성 홍보비가 중심이고 치밀한 사전계획이나 사후평가가 없는 눈먼 돈에 가까웠다.

2001년에 출판된 함성득의 《영부인론》에 따르면, ‘전통적 내조형’ 영부인은 프란체스카, 공덕귀, 홍기(최규하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였다. 이들은 전업주부로 만족하며 소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활동에 머물렀다.

‘정치적 내조형’ 영부인은 육영수 여사였다. 전통적 아내의 내조 역할과 더불어 공인으로서의 역할도 즐겼다. 김윤옥 여사도 이 범주에 든다. 비슷한 유형인 ‘제3세계형’ 영부인은 이순자·김옥숙 여사인데, 군부독재의 파트너로 권력자인 남편과 하나의 단위로 묶인다.

1999년 8월 3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사랑의 친구들’ 창립 1주년 기념식에 이희호 여사가 참석, 시루떡을 자르고 있다.

‘전문적 참여형’ 영부인은 이희호 여사다. 전문 직업이나 전문적 능력을 갖고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경우다. 정치권에서는 DJ 시절인 1998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신설과 2001년 1월 여성부 설립, 그해 3월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설치 등이 이 여사의 손길 내지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부인은 선출되거나 임명되는 자리가 아니다. 남편의 대통령 당선 여부에 따라 덤으로 주어지는 자리지만, 최근엔 내조형보다 참여형 영부인을 국민들이 더 선호하는 추세다.

모집단 수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한국일보》가 지난 2월 7일부터 14일까지 전국 성인 5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역대 영부인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이희호 여사가 46.3%의 긍정평가로 1위를 차지했다. 응답자들은 “품위 있고 당당하되 경솔하지 않은 언행” “고령에 청와대에 입성했지만 단독으로 해외를 방문하는 등 대통령 국정활동에 기여한 점” 등을 긍정평가의 이유로 들었다.

2위는 육영수 여사(30.8%), 3위는 권양숙 여사(15.7%)였으며 김윤옥 여사(3.2%), 손명순 여사(2.5%), 김옥숙 여사(1.3%), 이순자 여사(0.2%) 순이었다.

미국 영부인의 경우 : 엘리너 루스벨트에서 팻 닉슨까지

UN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던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2009년 9월 21일 뉴욕 인근에 거주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초청, 한식 요리를 대접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미국의 영부인 중에서는 낸시 레이건(Nancy Reagan·1981~ 1989)의 ‘Just Say No’ 마약 금지 캠페인, 레이디 버드 존슨의 ‘도시 미화 프로그램(Beautification program)’ 등이 영부인 사업으로 가장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엘리너 루스벨트는 ‘활동가형’ 퍼스트레이디의 전형이다. 그녀는 고집 센 야심가였으며 남편의 중요 정책적 이슈를 열심히 홍보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권리를 적극 장려하고 여성의 인권과 페미니즘을 강조했다. 엘리너는 영부인 동안 348차례나 기자회견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미국 역사상 어떤 영부인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전국적인 신디케이션 일간지에 ‘마이 데이(My Day)’라는 고정칼럼을 가졌던 엘리너는, 다만 펫 프로젝트라 부를 만한 구체적인 사업이 없었다는 점이 흠이다.

엘리너가 너무 드셌던 탓인지 베스 트루먼(Bess Truman·1945~1953)은 대외활동을 극히 싫어했던 영부인으로 알려졌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사적인 삶으로 채웠다. 메이미 아이젠하워(Mamie Eisenhower·1953~1961) 역시 남편이 심장마비로 고통을 겪은 후 심장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짧은 활동을 제외하고 주로 백악관 안주인의 역할에 만족했다.

재키 케네디(Jackie Kennedy·1961~ 1963)는 당대 패션 아이콘으로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으나 이타적(利他的)인 캠페인은 거의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솔선해서 한 일이란 백악관을 새롭게 꾸미고 단장하는 정도였다. 이런 일들이 케네디 일가의 매력적인 ‘카멜롯 이미지’(Camelot image·카멜롯은 영국 아서왕의 궁전이 있던 곳으로 행복이 넘치는 목가적 장소를 의미한다)를 사람들에게 널리 각인시켰으나 영부인의 사회적 역할에는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디 버드 존슨은 ‘여성의 행동주의’를 장려한 인물이다. “미국 여성들이 유능하고, 남성들과 동등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 원조 페미니스트(proto-feminist)에 가까웠다.

저소득층 어린이와 그 가족들에게 포괄적인 유아교육, 건강, 영양 및 학부모 참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헤드 스타트(Head Start)’ 운동을 시작하고 홍보하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꽃 가꾸기와 나무 심기, 국립공원 개선, 대기오염 억제, 새로운 조경사업, 쓰레기 수거 및 도시 재생 등 수많은 이슈를 제기했고, 1965년 ‘고속도로 미화법(Highway Beautification Act)’을 연방정부 입법으로 발의한 일도 있다.

전망 좋은 도로를 떡 하니 차지하는 대형 광고판을 규제하는 이 법으로, 도시 미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 법은 이후 10여 년간 논란거리가 됐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 가치를 인정받았다.

팻 닉슨(Pat Nixon·1969~1974)은 ‘자원봉사의 대중화’를 언급할 때마다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지역사회 봉사와 불우이웃을 돕는 데 여성이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위한 국립센터 설립을 도왔다. 워싱턴D.C.에서 불우 청소년을 돕고 장애인이 백악관에 다가갈 수 있게 노력했으나 미디어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베티 포드에서 미셸 오바마까지

1994년 3월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립식물원에서 조우한 영부인들. 왼쪽부터 낸시 레이건, 레이디 버드 존슨, 힐러리 클린턴, 로잘린 카터, 베티 포드, 바버라 부시 여사.

베티 포드(Betty Ford·1974~1977)는 알코올·마약 중독 치료를 영부인 사업으로 삼았다. 캘리포니아에 그녀의 이름을 딴 ‘베티 포드 클리닉(Betty Ford clinic)’을 세워 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을 도왔다. 또 스스로 유방암 투병 사실을 공개, 절제수술을 받았다. 당시 금기시됐던 유방암을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시켜 미국 사회를 놀라게 만들었다.

로잘린 카터(Rosalynn Carter·1977~ 1981)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정신 건강위원회(Commission of Mental Health)’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정부가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고 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밝힌 보고서를 수년간에 걸쳐 완성토록 도왔다. 이 보고서는 ‘정신 건강 시스템 법(the Mental Health Systems Act)’의 근간이 됐으며 로잘린이 미국 상원에서 증언한 뒤 1980년 법률로 채택됐다.

낸시 레이건은 마약 남용 방지 캠페인을 위해 ‘Just Say No’라는 구호를 사용했다. 우리말로 하면 ‘아니라고 말하라’다. 여러 매체가 지속적으로 보도한 덕분에 ‘약물 남용 방지(Just Anti-Drug) 그룹’이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에 설립됐다. 그 결과, 레이건의 재임 당시 약물 남용이 1960~70년대에 비해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나 ‘하드코어’ 중독자에겐 이 캠페인이 별 도움이 못 됐다고 한다.

바버라 부시(Babara bush·1989~ 1993)는 부통령 부인이던 8년을 포함, 12년 동안 문맹 퇴치 캠페인을 펼쳤다. 그러나 계속되던 공교육의 몰락과 급증하던 이민자로 인해 문맹자 수는 오히려 늘었다. 부시 대통령 이후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문맹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화됐다고 한다. 문맹 퇴치 프로그램을 적극 후원했던 바버라의 선의(善意)는 박수 받을 만한 일이었다. 영부인 사업이 아니라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했어야 옳았다.

힐러리 클린턴은 엘리너 루스벨트와 마찬가지로 유순한 백악관 아내의 평범한 역할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행정부에 깊이 관여해 언론으로부터 ‘두 명의 대통령(co-presidents)’ 혹은 ‘빌러리(Billary·힐러리와 남편 빌의 합성어)’라는 조롱을 받았다.

교육학과 도서관학 학위가 있던 로라 부시(Laura Bush·2001~2009)는 전직 교사(사서)답게 교육, 특히 어린이를 위한 독서 및 문맹 퇴치에 중점을 두었다. 학생들의 책 읽기를 유도하기 위해 ‘전국 도서 축제(the National Book Festival)’를 개최했고 저소득 소외계층 자녀들의 학력을 향상시키려 만든 ‘낙제학생 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을 적극 옹호했다. 교사들의 연봉인상과 다양한 교사 연수 및 채용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교사들의 사기를 제고하는 데 앞장섰다.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는 비만퇴치 운동인 ‘렛츠 무브(Let's Move)’ 캠페인을 주도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비만이 ‘전염병’과 같고, 비만관리가 미국의 건강관리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일 중심의 식단을 강조하는 ‘연방 학교급식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순회했고, 어린이 비만율이 가장 높은 미시시피주 학교를 찾아 “인스턴트나 튀긴 음식을 급식 메뉴에서 제외하는 노력”을 당부한 일도 있다.

그러나 가족 영양을 가정이 아닌 정부가 나서는 것에 대한 반감이 일었고 부모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패스트푸드 업체의 반발이 뒤따랐으며 “비만을 줄였을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교육당국의 지나친 설득이 미(美)의 관점을 왜곡시키고 학생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는 우려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펫 프로젝트’에 관심이 쏠린다. 현모양처로서 수줍은 내조 영부인의 모습에 만족할지, 전문성을 갖춘 정치적 동반자로 나설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영부인의 역할과 기대가 상당히 변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는 과거 영부인들과 같이 ‘대통령이 손 흔들 때 깊숙이 허리 굽혀 절하는’ 전통적인 안방마님의 모습을 바라지 않는다. 완전한 동반자는 아니더라도 베갯속 내조형, 그림자 참모 이상의 역할과 책임을 기대하고 있다.⊙